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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드리는 감사

빌립보서 4:6~7

김경진 목사

2024.08.18

<그리스도인은 염려의 자리를 기도의 자리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아마 성도님들 중에 이 말씀을 좋아하는 분들이 참 많이 있을 것입니다. 거실에 걸어 둔 성경 구절 중에 이 구절이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외우는 분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신앙인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매우 귀중한 신앙생활의 시금석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염려에서 시작해서 평강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현실은 끊임없는 염려와 근심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 중에서 실제로는 4% 정도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노만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rel) 박사는 그의 책 『적극적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에서 피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대학 입학 수학능력시험이 이제 꼭 88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보니 수능 시험 100일 전쯤 되면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는 분들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납니다. 부모님들과 할머님, 할아버님들이 자녀들을 위해 나오시는구나 생각하며 반갑게 맞이하곤 합니다. 한 분 두 분, 늘어날 때마다 자녀에 대한 걱정들이 많아지신 것을 보고 함께 기도하곤 합니다. 제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성도님들 중에서도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일까 생각하며 한마음으로 기도하곤 합니다.

아마 이 자리에도 이런저런 걱정과 염려를 가지고 나온 분들이 꽤 많이 있으실 것입니다. ‘나의 사업에 여러 가지 걱정들이 제대로 잘될 수 있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염려를 가지고 온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겼는데, 이 사람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이런 염려 저런 염려로 오신 분들도 있겠습니다.

끊임없는 걱정이 우리의 삶을 압박해 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돈이 없어서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결혼하지 못한 자녀가 있어서 걱정이고요, 또 결혼한 가정이 있으면 아직 아이를 낳지 못해서 염려와 걱정이 계속됩니다. 방금 건강검진을 받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아들고 나오면서도 혹시나 검사가 놓친 것은 없을까 하는 염려가 또 나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염려’는 헬라어로 ‘메림나오’(μεριμνάω, merimnaó, distracted)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메리조’(나뉘다)라는 단어와 ‘누스’(마음)라는 단어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염려’라는 말은 마음이 나뉜 상태, 마음이 분산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흩어진 상태를 말하는 거죠. 마음이 흩어졌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염려입니다. 모든 두려움과 불안의 시작이 염려이고 모든 불행의 시작도 염려입니다. 이렇게 염려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여정을 주님께서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빌 4:6a)

 

사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라는 이 말씀을 듣고 염려가 딱 끊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으면서도 염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죠. 염려와 걱정이 올라오는 것은 우리의 일상과도 같은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염려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요?

늘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가지면서 살죠.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 노력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운동을 하거나 다양한 활동에 함께하기도 하고요. 또는 명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 조정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염려가 생겨나면 마음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잘 생각해서 판단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합니다.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의 마음속에 주입시키려고 노력하고요. 그렇게 하며 염려로부터 빠져나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잘되지 않습니다. 되는 듯해도 또 염려에 빠지고 다시 염려에 정복당하는 연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라는 명령과 더불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b)

 

“염려를 기도와 간구로 바꾸어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권면입니다. 염려와 걱정이 생겨날 때 그 자리를 기도와 간구의 자리로 메꾸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염려로부터 탈출하는 비결을 “하나님께 염려하는 바를 아뢰라”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름대로 스스로 자신의 노력과 이성, 그리고 마음의 다스림으로 염려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잘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하라’라고 가르칩니다.

 

<기도는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기도하라’라는 좋은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는데, 기도하면 어떻게 된다는 말일까요? 우리가 염려하는 바가 모두 사라지고 모든 것이 다 만사형통하게 된다는 말씀이겠습니까? 한번 제가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사업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나 혼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걱정거리들이 있습니다. 사업이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기도하며 하나님께 아룁니다. ‘하나님 제가 사업으로 여러 염려가 많습니다. 하나님, 이 모든 걱정이 불필요한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제 염려가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업이 번창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장애나 문제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셔서 사업이 날로 잘되는 결과를 허락해 주실까요?

‘자녀의 입시를 위해서 염려가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염려를 버리라고 하셨으니 염려를 내어놓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녀의 문제와 걱정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 해결해 주십시오.’ 그러면 자녀가 대학 입시에서 잘 붙고 자녀의 미래가 번창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기도하면서 이와 같은 축복을 누리기도 합니다. 기도했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응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삶에는 그렇지 않을 때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면 ‘네가 염려하는 모든 것들이 다 해결될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죠. 사실 ‘염려하는 모든 것들 하나님께 기도하면 싹 다 해결해 주신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도하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자녀와 사업도 잘되고 건강해지며 병은 낫는다.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씀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다른 방향에서 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도록 기도하면 해 주시겠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평강’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이레네’(εἰρήνη)라는 단어입니다. ‘에이레네’는 평화, 평강 또는 화평, 화해, 화목 등으로 번역되며 성경에서 아주 두루 널리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구약의 히브리어 단어로는 ‘샬롬’이 평행어로 사용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염려가 흩어진 마음, 나누어지는 마음이라면, 샬롬과 에이레네는 온전해진 마음, 하나가 되는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평강이 오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요? 평강을 설명하기 전에 ‘에이레네’라는 단어를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한 곳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말씀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 16:33, 새번역)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이유가 “나의 제자들인 너희가 평안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환란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에 따르면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내가 너희들에게 평안과 평강을 주려고 한다. 그러니 이제부터 너희들에게는 어떤 시련이나 환란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앞뒤가 맞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도 잘 맞아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내가 너희들에게 주려고 하는 것은 평안이다. 그런데 이제 너희에게 환란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의 의미는 환란이나 시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외적으로 전쟁이나 고통, 어떤 특별한 어려운 문제가 생겨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평화는 그것과는 관계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기도의 종착점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참된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이 환란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전제를 가지고 오늘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7)

 

과거에는 염려와 걱정이 마음과 생각을 지배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평강은 어떠한 차원일까요? 시련이나 환란이 없는 평강이 아니라면, 그 평강은 어떠한 상태를 말할까요? 이것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빌립보서 4장 7절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빌 4:7)

 

이 말씀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이라는 말씀의 새번역은 더욱 원어에 가깝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빌 4:7, 새번역)

 

하나님의 평화, 평안인 ‘에이레네’는 인간적인 차원과 이해를 훌쩍 뛰어넘는 어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들이 얼마나 일어날 확률이 적은 것인지 확인하고 이 염려를 할 필요가 없겠다고 선을 그으며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성으로 나를 위로하며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안심하자고 스스로 다독일 수도 있겠죠. 또는 명상을 통해서 염려들을 가라앉히고 안정과 평안을 생각하며 조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평안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조용한 마음의 상태, 안정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겠죠.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헤아림으로 해 낼 수 있는 평안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우리의 삶을 온전한 평안으로 이끌지는 못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평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개역개정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이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평화, 에이레네는 인간이 산출해 낼 수 있는 차원의 평화, 평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성의 헤아림이나 명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완전히 전적으로 다른 영역의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예수를 믿는 사람들 또는 정규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등 이런저런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지 정의하라고 말한다면 ‘이 세상이 갖지 못하는 하나님의 평안과 평강이 무엇인지 알고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의 상황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 차서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평안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평안을 노래했습니다. 찬송가에도 그 평안의 노래들이 참 많이 있죠. 새찬송가 412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 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새찬송가 412장, 1절)

 

다음 장인 413장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내 영혼) 평안해(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새찬송가 413장 1절)

 

그리스도인들이란 이 평안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우리 소망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이 평안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염려하고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려 주시는 평화, 사람의 헤아림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차원의 평화를 맛보고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된 평강을 누리게 하는 기도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감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평화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앞으로 한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6절을 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빌 4:6, 새번역)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며 간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저도 기도하라는 말씀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늘 걱정과 염려가 있고 두려움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해도 평안이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헬라어로 보면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라’라는 말씀과 ‘감사를 가지고 탄원하라’라는 두 표현이 나타납니다. 물론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그런데 기도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태도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도 있고, 때로는 절실함을 가지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불평하는 마음, 때로는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는 반드시 얻어 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간절하게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기도의 방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키’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라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한다’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감사는 보통 어떻게 하는 거죠? 보통 무엇인가를 받았을 때 그다음에 감사하는 것이 감사의 일반적인 속성입니다. 받지 않았는데 감사한다는 것은 뭔가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말씀하기를 “저에게 내일 식사를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분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아직 식사 한 대접 드리지도 않았는데 감사하다고 말하면 식사를 사달라는 말인지 압력을 느낄 거 같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라”는 말씀이 하나님께 압력을 행사하라는 의미일까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미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믿으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염려를 하나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평강이 우리 안에 임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미리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을 압박하는 전술이 아닙니다. ‘미리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고 생각하고 전적으로 털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여러분, 염려가 되는 것들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아뢰시지요? 그러면서도 내어놓지 못할 때가 있죠. 염려를 하나님께 다 말씀드리고도 나갈 때 여전히 염려를 갖고 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완전히 내려놓고 ‘다 됐다. 이제는 괜찮다.’라는 생각으로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놀라운 평화와 평안이 임재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전에 우리가 많이 불렀던 찬송 중에 이런 찬송이 있죠.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청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분명합니다. 염려의 반대말은 기도입니다. 기도의 반대말 역시 염려입니다. 염려의 반대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신뢰입니다. 이 믿음의 신비를 경험하고 신앙의 맛을 느끼며 모든 소망의 성도님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한마음으로 결단하며 평안을 얻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 4:6~7, 새번역)

Thanksgiving in Advance

 

Philippians 4:6-7

 

“Don’t worry about anything;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 Then you will experience God’s peace, which exceeds anything we can understand. His peace will guard your hearts and minds as you live in Christ Jesus.”(Philippians 4:6-7 NLT)

 

This Scripture is probably one of our most favorite verses in the Bible. Many Christians have it framed on the wall, have it set up on their desks where they can see it often, or memorize it.

 

In fact, these words from Philippiansserve as a precious barometer for Christians in deciding what they must pursue and how they must live in this turbulent world.

 

This Scripture starts with worry and ends with God’s peace.

 

Man’s reality is marked by endless worry and anxiety. Even though only 4% of ourworries becomes a reality, as Dr. Norman Vincent Peale pointed out in his book 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 we live in constant anxiety.

 

Only 88 days remain until the Collage Scholastic Ability Test (CSAT). I have observed that the number of morning prayer attendeesstart to increase from D-100 of CSAT. Parents anxious about their children’s future come to pray. As thenumber of attendees increase one by one, I sense their deepened concern for their children.

 

Also,many people whose circumstances I know well about come to early morning prayer services. Whenever I see them, I pray for them because I know how earnest their prayers will be.

 

Worry leads to anxiety and fear. Even though the things we worry about cannot affect us, we continue to worry.

 

Even here todaythere will be people who are worried and anxious about various issues. What if my upcoming business project fails? Can I trust that person and work with him? Endless worries weigh upon us and when they overwhelm us, we experiencedifficult and dark times.

 

We worry because we lack money; we are anxious that we have not met anyone when we are ready to get married; after getting married we worry about infertility; and we worry about doctors missingsomethingin our medical checkup, even when the results are normal.

 

We know very well that we cannot affect or do anything about our worries. Nevertheless, we continue to worry and be anxious. This may be man’s inherent yoke.

 

The Greek word for “worry” is “μεριμνάω (merimnaó, distracted),” which is a compound of merizo (to divide) and nous (mind). Worry, therefore, indicates a state of mind that is divided, scattered, or distracted. Worry causes anxiety. But the Bible clearly says:

 

“Don’t worry about anything…”(Philippians 4:6a NLT)

 

Worry is a highly natural part of our daily lives. But it is that worry that divides our thoughts and minds, causes anxiety, and makes us suffer. Worry is the root of all fear and the beginning of all anxiety. It is also the root of unhappiness.

 

Then what must we do instead of worrying? The Bible states: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Philippians 4:6b NLT)

 

The above verse tells us to change our worry into prayer. When worries and anxieties arise within us, we must go to a place of prayer and petition.

The people of this world try to control their minds whenworry begins. They try to escape that worry by controlling their thoughts, calming themselves, and telling themselves it’s nothing. But it doesn’t work so well.

 

Conversely, the Bible teaches us the secret to escaping our worries. Pray to God. Tell God about them.

 

What happens then? Do our worries disappear? Is all well?

 

Let’s think about it. Let’s say you have a worry about your business. You tell God, ‘Lord, I am worried that this business might fail. Lord, protect it, and turn my worries into needless ones. Make them disappear.’

 

What do you think God will do? Will He prosper your business and erase all your cares? Is this what God is saying?“Don’t worry about your children’s CSAT; just pray. Then your children will get good resultson their college entrance exams.”

 

We often use the phrase “prosperity faith.” If we think that our prayers will make all our worries go away, this may be a sort of “prosperity faith.”

 

But after teaching us not to worry but to pray, the Bible says:

 

“Then you will experience God’s peace, which exceeds anything we can understand. His peace will guard your hearts and minds as you live in Christ Jesus.”(Philippians 4:7 NIV)

 

God is not saying, “Don’t worry about anything; but pray and tell Me about everything. Then I will solveall your worries.”This is what God is saying:“My peace will guard your hearts and minds.”

 

These words seem lacking. How great it would be if God said, “Don’t worry about anything, but tell Me about it. Then I will grant all your wishes.” But God’s words spokento us through Paul say otherwise; they lead us to see things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God says that His peace will guard us.

 

The Greek word for “peace” here is “εἰρήνη (eirene).”The Korean Bible conveys eirene’s comprehensive concept by translating it in various words such as peace, harmony, and concord. Eirene is a concept that is parallel to, and used together with, “shalom,” the Hebrew word for peace in the Old Testament.

 

While worry is a divided mind, eirene refers to a whole mind.

 

How can we describe this state of peace? Before I go into it, let’s look at a verse the Bible where eirene appears inJesus’ words:

 

“I have told you all this so that you may have peace in me. Here on earth you will have many trials and sorrows. But take heart, because I have overcome the world.”(John 16:33 NLT)

 

Jesus says to His disciples that He wishes them peace; but immediately after wishing them peace, our Lord says they will have manysorrows in this world.

 

Commonly speaking, it doesn’t sound right. After wishing His disciples peace, Jesus says they will face trials and sorrows.

 

The “peace” Jesus is referring to, therefore, is not a state free of trials and sorrows. It is not a state where there are no wars externally, or where there are no sorrows, pain, or trials. The peace Jesus is talking about belongs to an entirelydifferent dimension.

 

Now let’s go into today’s text:

 

“And the peace of God,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Philippians 4:7 NIV)

 

The above is saying that while,in the past, worryruled one’s thoughts and mind, now, God’s peace rules them.

 

Then how can we describe the dimension God’s peace? In order to understand it,we need to deeply ponder the phrase“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The New Living Translation (NLT) translates this phrase as follows:

 

“which exceeds anything we can understand”(Philippians 4:7 NLT)

 

God’s peace, eirene, exceeds any dimension of human thought or understanding.

 

We may think about how miniscule the chances are that our worries will become a reality. Our reasoning may comfort us. Such a thing won’t happen. So, I can rest assured. Let’s not worry. Let’s have peace.

 

This is human understanding, a dimension of human thinking. We may try to restore peace in such ways.

 

But the Bible states that God’s peace exceeds anything that humans can understand and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That is, this peace of God, eirene, is not a dimension created by man. It is not a tranquility of mind that can be gained through understanding or a persuasion of our reason. It is something wholly different, God’s gift. Christians are people who experience this dimension of peace.

 

Countless people got a taste of this peace and sang of it:

 

Far away in the depths of my spirit tonight

Rolls a melody sweeter than psalm;

In celestial-like strains it unceasingly falls

O’er my soul like an infinite calm.

 

Peace, peace! wonderful peace,

Coming down from the Father above,

Sweep over my spirit forever, I pray,

In fathomless billows of love.

(Verse 1 of “Far away in the depths of my spirit tonight”)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

whatever my lot, thou hast taught me to say,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Verse 1 of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Christians are those who experience and enjoy this peace. The joy and privilege of our faith is to live in this peace.

 

What a treasure I have in this wonderful peace

Buried deep in the heart of my soul,

So secure that no power can mine it away

While the years of eternity roll.

Peace, peace! wonderful peace,

Coming down from the Father above,

Sweep over my spirit forever, I pray,

In fathomless billows of love.

(Verse 2 of “Far away in the depths of my spirit tonight”)

 

As a pastor, I hope every one of us will enter this peace that our Lord gives us.

 

I hope we will no longer be people who worry, are anxious, fear, fret, and struggle, but become people who enjoy the peace that our Lord gives us, a peace of a wholly different dimension that cannot be fathomed byhuman understanding.

 

Then how can we enjoy this peace of God?

 

Let’s look at verse 6 again:

 

“Don’t worry about anything;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Philippians 4:6-7 NLT)

 

The Bible teaches us not to worry, to pray instead and make petitions to God, and tell God about everythingwith a thankful heart. The original Greek text expresses this in two parts: 1) “προσευχῇ (prayer)” and 2) “δεήσει, μετὰ εὐχαριστίας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This means that when we stop worrying, pray to God, and make petitions with thanksgiving about our worries, God will give us a peace that the world cannot give us, a true peace that cannot be surmised by humanunderstanding.

 

We are familiar with the “prayer” part. It is to tell God about our circumstances, our needs. But what does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mean?

 

Generally, we give thanks when we receive something. That is, thanksgiving is a response to a gift. But the situation in today’s text is different.

 

There is a worry, a trouble. There is a worry that disorients your mind. But you take it to God. You pray that He might solve that problem. But you pray with thanksgiving.

 

What does this mean? “Thanksgiving in advance” cannot be a tactic to pressure God. The praying man cannot expect to get anything by applying pressure on God.

 

“Thanksgiving in advance” is a thanksgiving which comes from our faith that God has already solved our problem. Without faith we cannot give thanks in advance. In short, thanksgiving in advance is an expression of our deep trust in God.

 

Let’s say we have a problem. An issue that disorients us. We are anxious and afraid. At that moment we pray. And at that moment we begin to have a thankful heart.

 

How does this happen? We realize that God knows me, loves me deeply, and is working for me. Whether a problem is solved or not, or whether an upcoming project succeeds or not becomes secondary issue.

 

Telling God about everything with a thankful heart means trusting God deeply and entrusting Him with everything. Through Paul, God tells us that when we entrust Him with everything, He will guard our minds and hearts with His peace which exceeds man’s understanding.

 

This is the mystery of our faith. In thanksgiving in advance, there is trust and faith. When we entrust God with everything in this way, we will have true peace.

 

This is a translation of a Korean praise song we used to sing often:

 

Why worry when you can pray?

Why are you anxious as you pray?

Why lose heart when you can pray?

Why do you wander as you pray?

 

Come to the Lord on bended knees

Pray with all your heart and soul

Why worry when you can pray?

Why are you anxious as you pray?

(“Why worry when you can pray?”)

 

The opposite word of worry is prayer. The opposite of worry is thanksgiving toward andtrustin God.

 

I hope that all of us at Somang Church will experience this mystery of faith. Lastly, let’s read today’s Scripture again, together:

 

“Don’t worry about anything;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 Then you will experience God’s peace, which exceeds anything we can understand. His peace will guard your hearts and minds as you live in Christ Jesus.”(Philippians 4:6-7 N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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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리스도인은 염려의 자리를 기도의 자리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아마 성도님들 중에 이 말씀을 좋아하는 분들이 참 많이 있을 것입니다. 거실에 걸어 둔 성경 구절 중에 이 구절이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외우는 분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신앙인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매우 귀중한 신앙생활의 시금석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염려에서 시작해서 평강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현실은 끊임없는 염려와 근심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 중에서 실제로는 4% 정도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노만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rel) 박사는 그의 책 『적극적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에서 피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대학 입학 수학능력시험이 이제 꼭 88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보니 수능 시험 100일 전쯤 되면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는 분들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납니다. 부모님들과 할머님, 할아버님들이 자녀들을 위해 나오시는구나 생각하며 반갑게 맞이하곤 합니다. 한 분 두 분, 늘어날 때마다 자녀에 대한 걱정들이 많아지신 것을 보고 함께 기도하곤 합니다. 제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성도님들 중에서도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일까 생각하며 한마음으로 기도하곤 합니다.

아마 이 자리에도 이런저런 걱정과 염려를 가지고 나온 분들이 꽤 많이 있으실 것입니다. ‘나의 사업에 여러 가지 걱정들이 제대로 잘될 수 있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염려를 가지고 온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겼는데, 이 사람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이런 염려 저런 염려로 오신 분들도 있겠습니다.

끊임없는 걱정이 우리의 삶을 압박해 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돈이 없어서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결혼하지 못한 자녀가 있어서 걱정이고요, 또 결혼한 가정이 있으면 아직 아이를 낳지 못해서 염려와 걱정이 계속됩니다. 방금 건강검진을 받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아들고 나오면서도 혹시나 검사가 놓친 것은 없을까 하는 염려가 또 나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염려’는 헬라어로 ‘메림나오’(μεριμνάω, merimnaó, distracted)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메리조’(나뉘다)라는 단어와 ‘누스’(마음)라는 단어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염려’라는 말은 마음이 나뉜 상태, 마음이 분산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흩어진 상태를 말하는 거죠. 마음이 흩어졌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염려입니다. 모든 두려움과 불안의 시작이 염려이고 모든 불행의 시작도 염려입니다. 이렇게 염려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여정을 주님께서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빌 4:6a)

 

사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라는 이 말씀을 듣고 염려가 딱 끊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으면서도 염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죠. 염려와 걱정이 올라오는 것은 우리의 일상과도 같은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염려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요?

늘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가지면서 살죠.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 노력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운동을 하거나 다양한 활동에 함께하기도 하고요. 또는 명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 조정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염려가 생겨나면 마음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잘 생각해서 판단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합니다.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의 마음속에 주입시키려고 노력하고요. 그렇게 하며 염려로부터 빠져나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잘되지 않습니다. 되는 듯해도 또 염려에 빠지고 다시 염려에 정복당하는 연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라는 명령과 더불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b)

 

“염려를 기도와 간구로 바꾸어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권면입니다. 염려와 걱정이 생겨날 때 그 자리를 기도와 간구의 자리로 메꾸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염려로부터 탈출하는 비결을 “하나님께 염려하는 바를 아뢰라”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름대로 스스로 자신의 노력과 이성, 그리고 마음의 다스림으로 염려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잘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하라’라고 가르칩니다.

 

<기도는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기도하라’라는 좋은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는데, 기도하면 어떻게 된다는 말일까요? 우리가 염려하는 바가 모두 사라지고 모든 것이 다 만사형통하게 된다는 말씀이겠습니까? 한번 제가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사업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나 혼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걱정거리들이 있습니다. 사업이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기도하며 하나님께 아룁니다. ‘하나님 제가 사업으로 여러 염려가 많습니다. 하나님, 이 모든 걱정이 불필요한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제 염려가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업이 번창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장애나 문제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셔서 사업이 날로 잘되는 결과를 허락해 주실까요?

‘자녀의 입시를 위해서 염려가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염려를 버리라고 하셨으니 염려를 내어놓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녀의 문제와 걱정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 해결해 주십시오.’ 그러면 자녀가 대학 입시에서 잘 붙고 자녀의 미래가 번창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기도하면서 이와 같은 축복을 누리기도 합니다. 기도했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응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삶에는 그렇지 않을 때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면 ‘네가 염려하는 모든 것들이 다 해결될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죠. 사실 ‘염려하는 모든 것들 하나님께 기도하면 싹 다 해결해 주신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도하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자녀와 사업도 잘되고 건강해지며 병은 낫는다.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씀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다른 방향에서 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도록 기도하면 해 주시겠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평강’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이레네’(εἰρήνη)라는 단어입니다. ‘에이레네’는 평화, 평강 또는 화평, 화해, 화목 등으로 번역되며 성경에서 아주 두루 널리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구약의 히브리어 단어로는 ‘샬롬’이 평행어로 사용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염려가 흩어진 마음, 나누어지는 마음이라면, 샬롬과 에이레네는 온전해진 마음, 하나가 되는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평강이 오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요? 평강을 설명하기 전에 ‘에이레네’라는 단어를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한 곳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말씀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 16:33, 새번역)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이유가 “나의 제자들인 너희가 평안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환란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에 따르면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내가 너희들에게 평안과 평강을 주려고 한다. 그러니 이제부터 너희들에게는 어떤 시련이나 환란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앞뒤가 맞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도 잘 맞아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내가 너희들에게 주려고 하는 것은 평안이다. 그런데 이제 너희에게 환란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의 의미는 환란이나 시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외적으로 전쟁이나 고통, 어떤 특별한 어려운 문제가 생겨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평화는 그것과는 관계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기도의 종착점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참된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이 환란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전제를 가지고 오늘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7)

 

과거에는 염려와 걱정이 마음과 생각을 지배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평강은 어떠한 차원일까요? 시련이나 환란이 없는 평강이 아니라면, 그 평강은 어떠한 상태를 말할까요? 이것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빌립보서 4장 7절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빌 4:7)

 

이 말씀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이라는 말씀의 새번역은 더욱 원어에 가깝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빌 4:7, 새번역)

 

하나님의 평화, 평안인 ‘에이레네’는 인간적인 차원과 이해를 훌쩍 뛰어넘는 어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들이 얼마나 일어날 확률이 적은 것인지 확인하고 이 염려를 할 필요가 없겠다고 선을 그으며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성으로 나를 위로하며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안심하자고 스스로 다독일 수도 있겠죠. 또는 명상을 통해서 염려들을 가라앉히고 안정과 평안을 생각하며 조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평안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조용한 마음의 상태, 안정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겠죠.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헤아림으로 해 낼 수 있는 평안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우리의 삶을 온전한 평안으로 이끌지는 못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평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개역개정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이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평화, 에이레네는 인간이 산출해 낼 수 있는 차원의 평화, 평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성의 헤아림이나 명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완전히 전적으로 다른 영역의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예수를 믿는 사람들 또는 정규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등 이런저런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지 정의하라고 말한다면 ‘이 세상이 갖지 못하는 하나님의 평안과 평강이 무엇인지 알고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의 상황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 차서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평안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평안을 노래했습니다. 찬송가에도 그 평안의 노래들이 참 많이 있죠. 새찬송가 412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 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새찬송가 412장, 1절)

 

다음 장인 413장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내 영혼) 평안해(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새찬송가 413장 1절)

 

그리스도인들이란 이 평안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우리 소망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이 평안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염려하고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려 주시는 평화, 사람의 헤아림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차원의 평화를 맛보고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된 평강을 누리게 하는 기도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감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평화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앞으로 한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6절을 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빌 4:6, 새번역)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며 간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저도 기도하라는 말씀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늘 걱정과 염려가 있고 두려움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해도 평안이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헬라어로 보면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라’라는 말씀과 ‘감사를 가지고 탄원하라’라는 두 표현이 나타납니다. 물론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그런데 기도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태도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도 있고, 때로는 절실함을 가지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불평하는 마음, 때로는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는 반드시 얻어 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간절하게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기도의 방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키’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라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한다’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감사는 보통 어떻게 하는 거죠? 보통 무엇인가를 받았을 때 그다음에 감사하는 것이 감사의 일반적인 속성입니다. 받지 않았는데 감사한다는 것은 뭔가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말씀하기를 “저에게 내일 식사를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분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아직 식사 한 대접 드리지도 않았는데 감사하다고 말하면 식사를 사달라는 말인지 압력을 느낄 거 같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라”는 말씀이 하나님께 압력을 행사하라는 의미일까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미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믿으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염려를 하나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평강이 우리 안에 임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미리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을 압박하는 전술이 아닙니다. ‘미리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고 생각하고 전적으로 털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여러분, 염려가 되는 것들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아뢰시지요? 그러면서도 내어놓지 못할 때가 있죠. 염려를 하나님께 다 말씀드리고도 나갈 때 여전히 염려를 갖고 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완전히 내려놓고 ‘다 됐다. 이제는 괜찮다.’라는 생각으로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놀라운 평화와 평안이 임재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전에 우리가 많이 불렀던 찬송 중에 이런 찬송이 있죠.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청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분명합니다. 염려의 반대말은 기도입니다. 기도의 반대말 역시 염려입니다. 염려의 반대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신뢰입니다. 이 믿음의 신비를 경험하고 신앙의 맛을 느끼며 모든 소망의 성도님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한마음으로 결단하며 평안을 얻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 4:6~7, 새번역)

2024년 8월 18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미리 드리는 감사” (빌 4장 6-7)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61장, 364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빌 4장 6-7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8월 18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기도하면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만사형통을 이룰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오늘 본문의 참된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설교의 요약

 

우리는 끊임없이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염려는 불안을 가져오고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염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메리조(나뉜다)’라는 단어와 ‘누스(마음)’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염려란 마음이 나뉘는 것, 마음이 분산되고 흩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즉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염려를 기도와 간구로 바꾸라고 말씀합니다. 염려와 걱정이 생길 때 기도의 자리, 간구의 자리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기도하면 네가 염려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평강’은 ‘에이레네’입니다. ‘에이레네’는 한글 성경에서 ‘평강, 평안, 평화, 화평, 화해, 화목’ 등으로 폭넓게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염려가 흩어진 마음이라면 ‘에이레네’는 온전한 마음입니다. ‘에이레네’는 인간의 생각과 이해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간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 우리의 헤아림의 경지로는 경험할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무엇을 받을 때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감사는 항상 어떤 선물이 주어진 것에 대한 반응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상황은 다릅니다. 먼저 감사하며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미리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을 압박하려는 어떤 진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를 이미 해결해 주셨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먼저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께 아뢴다는 말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맡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사람의 헤아림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평안을 주시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염려의 반대말은 기도입니다. 염려의 반대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신뢰입니다. 이 믿음의 신비를 경험하며, 신앙의 맛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소망의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 현재 나의 삶 속에서 가장 많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 ‘미리 드리는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끊임없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된 평화를 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께 간구하게 하옵소서. 모든 염려와 걱정을 모두 주님께 맡기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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