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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한 신앙의 부산물 – 이스마엘

창세기 21: 8~13

김경진 목사

2023.03.12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브람을 부를 때 항상 따라다니는 칭호가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표현입니다.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그가 모리아 땅의 한 산에 올라가서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 사건은 그의 믿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는 일에 대하여 반대하실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 땅을 떠나는 시점부터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바치는 22장에 이르기까지, 아브람의 삶에도 믿음이 약해지는 시간들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그가 고향 땅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는데, 기근이 들자 그곳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이 결정을 내렸을 때 아브람이 하나님께 물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애굽 땅에서 자신과 아내가 안전하게 살기 위한 전략도 세웁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래에게 제안합니다.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창 12:12~13)

 

기근을 피하고자 애굽으로 가는 아브람 그가 나름의 꾀를 짜냅니다. 자신이 사래의 남편이라 말하면 혹시라도 죽임당할까 염려하며, 사래를 누이라고 부르기로 입을 맞춘 것입니다. 상황은 어떻게 전개됩니까? 애굽 왕 바로가 사래를 보고 왕궁으로 불러들입니다. 법적으로는 문제 될 일이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시고 아브람을 도우시지 않으셨다면, 그는 아내를 빼앗긴 채 정처 없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인간적으로 해결해 보려다가 된통 당하게 된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브람의 일생 가운데도 믿음 없어 보이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때로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미성숙한 믿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로 이스마엘 탄생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실 때 고향 땅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명하시며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죠. 그런데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약속해 주신 자식이 좀처럼 생기지 않습니다. 창세기 15장으로 넘어가면 아브람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창 15:2~3)

 

아마도 아브람은 자신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태어나지 않자 나름대로 고민한 것 같습니다. 나이는 들고 육체적으로 연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의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양자를 들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에게서 난 자라야 진짜 상속자가 될 것이다.” 하고 들려주십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습니다. 사래의 나이도 많아지고 도저히 아이를 가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이번에는 사래 스스로 해결책을 마련합니다. 자신의 종인 하갈을 아브람에게 보내서 그 종으로 아이를 갖게 하는 방책이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성경은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 아브람과 사래가 하나님께 의논한 일이 없음을 알려 주는 듯,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창 16:2~3)

 

이 말씀을 보면 주어가 사래이고 아브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어가 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하지 아니하고, 자신들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래의 종 하갈이 임산을 하게 되자 아직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종이 그의 여주인을 멸시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사실 사래가 저질러 놓은 일이었는데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이 된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갈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사래에게 넘깁니다. 그래서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고, 그것을 견디다 못한 하갈이 주인을 피해 도망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길에서 하갈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게 되고, 아브라함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성경은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라고 전합니다.

다음 장인 창세기 17장에서 우리는 99세가 된 아브라함을 만나게 됩니다. 벌써 13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흐른 셈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꾸어 주셨고, 사래의 이름을 ‘사라’라고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열국의 아버지, 어머니가 될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 17:18)

 

어떤 뜻입니까? “하나님, 저는 이스마엘로 족합니다.”라고 고백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다 늙은 그들이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겠냐는 의미였을 테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고쳐서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 17:19)

 

<하나님은 미숙한 신앙의 부산물과 단절하기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늘 이야기가 나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삭을 선물로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는 해였습니다. 이삭이 젖 떼는 때가 되었을 즈음에 종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 모습을 사라가 발견하게 됩니다. 두 아들이 큰 문젯거리가 됩니다. 결국 사라는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을 것을 종용하게 되고, 아브라함의 마음은 심히 근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창 21:11)

 

자, 이제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서로 화평하라고 답하실 것 같은데, 뜻밖에도 사라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함께 내쫓으라고 명령하시죠. 어떻게 이 일을 하실 수 있었을까 고민하기 이전에 먼저는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과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스마엘은 어떤 존재였냐는 점입니다.

이삭이 없었을 때 아브라함의 대를 이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고민해서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이지 않습니까? 이삭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가 아브라함의 대를 잇는 족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이 태어나면서부터 이스마엘의 자리는 사라지고 없어져 버립니다. 결국 그가 아브라함을 떠나게 되고 다른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의 설입니다마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떠나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도착하여 이슬람의 선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지금의 아랍인들이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는 참으로 안타까운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면 아마도 태어나지도 않았을 존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이스마엘 때문에 여러 문제가 계속 생겨납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이 사건을 후에 정리하고 평가하면서 이스마엘의 출생을 두고 ‘육체를 따라 태어났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났다고 말하지요.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2~23)

 

하나님께서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들이 움직여진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실 일들이 참 많으실 텐데, 인간이 저지른 오류와 잘못까지도 다 해결해야 하시고 책임져 주시니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계획대로라면 이삭이 태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의 다른 판단으로 인해서 그만 이스마엘이 태어나게 되고, 다른 민족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렇듯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오류를 경험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도 있지 않습니까? 마치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스마엘을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결과물을 ‘미숙한 신앙의 부산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결국 힘들게 하고 괴롭게 만드는 문젯거리가 되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에 이런 경우가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솔로몬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기를 허락하실 때 조건을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신명기 17장 17절에서는 ‘아내를 두어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지혜로 스스로 판단합니다. 왕권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곳에서 많은 왕비들을 데리고 오기도 합니다. 나라의 안정을 공고히 하려는 나름의 전략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분열이 일어나고 남과 북이 갈라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지혜를 가지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올무가 되고 짐이 되는 경우였습니다.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에게 위협을 주게 되는 존재, 끝까지 이 땅에서 경쟁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그의 후손을 번창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로 큰 민족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죠. 이 일에는 과연 몇 명이 필요했을까요? 아브라함과 사라가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 수는 얼마였을까요? 10명입니까? 15명입니까? 아니죠. 딱 한 사람, 이삭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으로 충분하셨습니다. 그것도 백세에 얻은 아들 하나면 충분하셨습니다. 그 하나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드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조금 더 많아야 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법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한 사람,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우리의 성급한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이루는 일에 때론 방해가 됩니다. 얼굴에 뾰루지가 나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까? 의사에게 보여 주고 약 처방을 받고 꾸준히 약을 바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조금 더 작게 만든다고 손을 대고 만지면 도리어 커지고 엉망이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을 신앙생활에서 종종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신앙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돕겠다고 나름대로 생각하다가 결국엔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일어납니다.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날까지 기다리고 참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백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이스마엘을 낳지 아니하고 백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인내하는 것, 이것이 믿음 아니겠습니까?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삭이지만 그 안에서 열국의 백성을 볼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믿음에 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 (히 11:12~13 중)

 

비록 보지는 못하였지만, 지금 내 눈에 수많은 민족이 보이지는 않지만, 한 사람 이삭 안에서 민족을 볼 수 있는 것이 믿음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스마엘과 이삭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미숙한 신앙의 부산물인 이스마엘과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이야기가 갈리디아서 4장에도 이어집니다.

 

<믿음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구약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말한 사건을 소환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내쫓은 것이 단순히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힙니다. 성경은 이 안에 담긴 심오한 영적 의미를 보여 줍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28~30)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삭과 이스마엘의 공존이 왜 불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본다면 둘이 함께 살고, 사라와 하갈이 도우며 사는 것이 아름답고 멋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는 육체를 따라 난 자이고, 하나는 성령을 따라 난 자임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낳은 아들, 미숙한 신앙의 단계에서 얻은 부산물과는 단절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스마엘과 같은 존재가 우리에게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각자에게 미숙한 신앙의 부산물들이 다르지만 조금씩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일 수 있고요. 스스로 쌓아 올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가 응답 없는 현실 앞에서 나름대로 일하고, 열심히 쌓아 놓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로부터 단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어 쫓으라고 명하십니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갈라디아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미숙한 신앙의 단계에서 나온 부산물로서 율법을 이야기하십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너무도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 갔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율법은 너무나도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율법은 미숙한 신앙인,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몽학 선생과도 같은 것입니다. 율법은 육체로 살아가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여 주지만 온전한 단계, 완전한 단계로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율법이 이스마엘과 같은 존재라면, 이삭과 같은 약속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약속의 아들이 오시면 모든 것은 무의미해집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온전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러한 변화를 종과 자유인의 비유로 말씀합니다. 즉 태생적인 출발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종의 아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유인의 아들입니다. 종의 아들로 태어나면 종일 뿐이나 자유인의 아들로 태어나면 자유자가 됩니다. 율법의 아들로 살면 여전히 종이지만, 참 자유를 주시는 주님의 아들로 태어나면 진정한 자유자가 됩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2~23)

 

그러므로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은 ‘참된 자유’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시기 원하신 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자유였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자유를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꾀가 들어가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도리어 망가지고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자유자가 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다시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까? 지금까지 미성숙한 신앙으로 살았다면, 그로 인한 부산물을 짊어지고 힘겹게 살고 있다면 단절하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 앞으로 나아가십시다. 종의 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영의 이끌리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시다. 이것이 사순절에 우리가 배워야 할 일입니다.

최근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이단 문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참으로 세상을 더럽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단들을 보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단에 빠지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결같습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순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죄에 속박되어 있는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고, 풀어 주시고, 모든 짊어진 것들을 끊어내게 하셔서 참된 자유자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며 배우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he Byproduct of Immature Faith: Ishmael

 

Genesis 21:8-13

 

 

There is a title that always accompanies the name of Abraham: the “Father of Faith.” Although this title is not literallyexpressed in the Bible, the incident in which Abraham attempted to sacrifice Isaac to God on a mountain in Moriah is proof of his great faith. In light of this, no one would object to his being called “the Father of Faith.”

 

But when we take a closer look at his life, particularly from Genesis 12 where God calls him to leave his homelandtoGenesis 22 where he sacrifices his son, we will discoverthat there were many times when he did not trust God completely.

 

For example, let’s look at what Abraham does after arriving at Canaan, the land God commands him to go to after leaving his home. When a famine strikes Canaan, Abraham leaves and goes down to Egypt. The Bible gives no indication whatsoever of God telling him to go to Egypt. Abraham just makes that judgement. He even devises his own strategy for living safely there with his wife. This is what he proposes to her:

 

“When the Egyptians see you,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Then they will kill me but will let you live. Say you are my sister, so that I will be treated well for your sake and my life will be spared because of you.” (Genesis 12:12-13)

 

But how did things turn out? A terribly difficult situation occurs: Pharoah, believing Sarai to be Abraham’s sister, takes her to his palace.

 

If God had not inflicted a plague on Pharoah’s household and helped Abraham, he may have ended up living the life of a wanderer who lost his wife in Egypt.

 

This is a prime example of how our lives end up worse when we don’t follow the word of God and try to solve things in human ways. In Abraham’s life, we often see such incidents occurring fromhis lack of faith. It is also true that these, in a sense, gives us comfort.

 

What I mean is that the fact that Abraham was nota perfect man without blemish possessing a strong and firm faith from the start offers us some consolation.

 

Another example of Abraham’s immature faith is the birth of Ishmael. When God calls Abraham in Genesis 12, He tells him to go to the land that He will show him, promising that He will make a great nation from him and his offspring. Then in Genesis 15 this is what Abraham says to God in prayer:

 

“But Abram said, ‘Sovereign Lord, what can you give me since I remain childless and the one who will inherit my estate is Eliezer of Damascus?’ And Abram said, ‘You have given me no children; so a servant in my household will be my heir.’” (Genesis 15:2-3)

 

Hearing this, Godassures Abraham that Eliezer will not be his heir but that a son from his seed will be his heir.

 

Abraham would have been constantly thinking about God’s promise of making a great nation out of him. But I think he would have also thought, ‘If I am getting old and still remain childless, how can a great nation come from me?’ The reality was that he was getting old and, physically and biologically, any hope of bearing a child was diminishing. So Abraham probably thought, ‘Now my only choice is to adopt a son.’ But God says that his heirshall be a son born from his seed.

 

Then a considerable amount of time passes. Sarai is now very old, believes she cannot have children, and so comes up with an alternative plan. She sends her slave, Hagar, to her husband so that they can get a child through her. And Ishmael is born. As if to let us know that no one asked the will of God in this process and that it all came from Abraham and Sarai’s judgment, the Bible says:

 

“so she said to Abram, ‘The Lord has kept me from having children. Go, sleep with my slave; perhaps I can build a family through her.’ Abram agreed to what Sarai said. So after Abram had been living in Canaan ten years, Sarai his wife took her Egyptian slave Hagar and gave her to her husband to be his wife.” (Genesis 16:2-3)

 

But what happens as a result? As soon as Hagar gets pregnant, she looks down on Sarai, her mistress, even before the baby is born. Sarai becomes envious and complains. She has created this situation, but she cannot bear it. Abraham has gotten a child, but as Sarai’s complaints get more fierce, he gives Sarai all authority over Hagar. As a result, Sarai abuses her, which makes her run away from her master’s home. However, as she runs away, Hagar meets an angel of God who tells her to return, which she does, and gives birth to the baby: Ishmael. Abraham was 86 years old when he was born.

 

Then in Genesis 17 we meet the 99-year-old Abraham. God has changed Abram’s name to “Abraham,” promising to prosper him greatly. He also gives Sarai a new name: “Sarah.” Now God tells them that His promise will come true through them.

 

God tells them that they will be the father and mother of the nations. At this Abraham says:

 

“And Abraham said to God, ‘If only Ishmael might live under your blessing!’”(Genesis 17:18)

 

To this God replies:

 

“Then God said, ‘Yes, but your wife Sarah will bear you a son, and you will call him Isaac.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with him as an everlasting covenant for his descendants after him.’” (Genesis 17:19)

 

All this forms the background of today’s story. In Genesis 21 God finally gives Isaac to Abraham as a present, as He promised. Abraham was 100 years old when it happened.

 

The story goes on. About the time Isaac was weaned, Sarah discovers that Ishmael is mocking her son. The problem between the two boys becomes a serious headache. Sarah manipulates the situation so that Hagar and her son will be kicked out:

 

“The matter distressed Abraham greatly because it concerned his son.”(Genesis 21:11)

 

Yet God takes Sarah’s side. As He does so, He comforts Abraham, telling him that He will protect and bless Ishmael too. After hearing this, Abraham sends Hagar and Ishmael away.

 

We wonder, ‘What is Ishmael to Abraham and Sarah?’ Ishmael was the very son they got after some hard thinking, planning, and efforts when they were childless and desperate for an heir. If Isaac had not been born, Ishmael would have been Abraham’s heir and the next patriarch.

 

But the birth of Isaac nullified Ishmael’s status. Eventually, Ishmael was forced to leave Abraham and formed another people.

 

This is only a theory, but there is a saying that after leaving Abraham, Ishmael went to the region which is modern-day Mecca, Saudi Arabia, and became the ancestor of Muslims. Also it is known that Arabs today consider themselves the descendants of Ishmael.

 

Whether this is true or not, the relationship between Isaac and Ishmael ended sadly. If Abraham and Sarah had waited for God’s will in faith, Ishmael, I believe, would not have existed.

 

In assessing this incident, Galatians 4 later records that Ishmael was born according to the flesh, while Isaac was born by a promise:

 

“For it is written that Abraham had two sons, one by the slave woman and the other by the free woman. His son by the slave woman was born according to the flesh, but his son by the free woman was born as the result of a divine promise.” (Galatians 4:22-23)

 

In our faith journey too we often make such mistakes. That is, we fail to follow the word of God and make decisions based on human thoughts and judgements. It is not that we don’t follow the word of God at all in our lives; but we occasionally think, ‘Shouldn’t this be done this way? This is the only way. Even God cannot do anything about this matter!’ At times we think and judge for ourselves and do not follow God’s word. And there are consequences—like Ishmael—that arise as a result.

 

I wish to call them “the byproducts of immature faith.” But these byproducts often become a thorn that trouble and torment us.

 

Although there are many examples in the Bible, let’s think of the case of Solomon. God clearly told him how a king must act when He appointed him king over Israel.

 

In Deuteronomy 17 God makes it clear that a king must not have many wives if he is to avoid temptations. But Solomon did the opposite. He probably took many wives to ensure the stability and strength of his country. But what was the result? After his death, the nation was torn and divided.

 

Ishmael becomes such a “thorn” to Abraham. For generations to come, Ishmael becomes the very source that continues to be a threat and rival to the descendants of Abraham’s promised son, Isaac.

 

If this isthe result of Abraham and Sarah’s actions conducted in immature faith out of human considerations, then let’s have a look at what God did.

 

God told Abraham that his descendants would be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that he would become the father of a great nation. But all God needed for that to happen was just one person. Not ten or twenty men, but just one: Isaac.

 

To God just one person, Isaac, was enough. Moreover, if that one man was the son gotten at the age of 100, he was sufficient. With that one son, God was fully able to make Abraham’s descendants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and the sand on the beach.

 

We would think more people would be needed, that there ought to be more; butGod is able to create a great nation though a single person. What matters is that this son is born by His promise.

 

Sometimes our rash thoughts and actions interfere with the fulfillment of God’s great promises. What is the best response to a pimple on your face? The surest way is to get a drug prescription from the dermatologist. It will only become worse and bigger if you try to squeeze it in an attempt to make it smaller. This is the same for God’s work.

 

We must wait and endure until the day God accomplishes His work, holding onto His words of promise. Since God continues to speak His promises to us even now through the Word, wewait patiently for that day which God will allow. This is faith.

 

God gave Abraham Isaac, his only son, at the age of 100. What is faith? It is to wait patiently until God gives me that promised son even if it is at the age of 100 and to see in his face the numerous people of the great nation that God promised me. Although God’s promises did not all come true in Abraham’s lifetime, faith is to see and rejoice in God’s promisesin faith. This is how Hebrews describes faith:

 

“And so from this one man, and he as good as dead, came descendants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and as countless as the sand on the seashore. All these people were still living by faith when they died. They did not receive the things promised; they only saw them and welcomed them from a distance, admitting that they were foreigners and strangers on earth.”(Hebrews 11:12-13)

 

But the story of Ishmael and Isaac does not end here. The story between the promised son and the son produced incidentally by an immature faith continues in Galatians 4.

 

Galatians 4 recalls the incident in the Old Testament where God tells Abraham to send Ishmael away. It also states that this decision did not simply originate in human judgement but was the will of God.

 

“Now you, brothers and sisters, like Isaac, are children of promise. At that time the son born according to the flesh persecuted the son born by the power of the Spirit. It is the same now. But what does Scripture say? ‘Get rid of the slave woman and her son, for the slave woman’s son will never share in the inheritance with the free woman’s son.’” (Galatians 4:28-30)

 

The reason God told Abraham to send Ishmael away is because Isaac and Ishmael cannot coexist. The one was born according to the flesh, while the other was born by the Spirit.

 

God is telling Abraham to sever himself from the son he got from his own human thinking and judgment, the byproducts of his immature faith. What can be compared to Ishmael? God tells us through Galatians that the Law is like Ishmael. The Law was absolutely necessary to the Israelites in the past. They depended on it; obeying it was important.

 

But the Law was something like a custodian, prepared for God for the finite and imperfect man, the immature man of faith. Although the Law offers man a way to go before God, attaining to the whole, perfect stage through the law is impossible. The Law is inherently incapable of doing this.

 

If the Law is something like Ishmael, then who is the promised son comparable to Isaac? Jesus Christ. When the Promised Son comes, everything else becomes meaningless—because salvation is attained through this one Man. Since we have this Jesus in our hearts, nothing more is needed.

 

Galatians explains this change by comparing the slave and the free man. In other words, it explains how the two are different from birth. One is born the son of a slave. The other is born the son of a free man.

 

A man born from a slave is only a slave. A child born from a free man is a free man from birth. If we live as sons of the Law, we are still only slaves. But if we are born as sons of the Lord who gives us true freedom, we become truly free men.

 

“For it is written that Abraham had two sons, one by the slave woman and the other by the free woman. His son by the slave woman was born according to the flesh, but his son by the free woman was born as the result of a divine promise.” (Galatians 4:22-23)

 

Therefore, our Lord speaks to us: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Galatians 5:1)

 

This verse is telling us that we must live as children of Christ who gives us true freedom, not as slaves of the Law. We must live as free men who have been delivered by the blood of Christ, not as slaves following the Law.

 

This is the Lent season. What areas in our lives must we get sorted out and set straight? If you have been living with an immature faith till now, and if your life has been troubled by the byproducts of that immature faith, you must break away from it and move toward God’s true promises. We must learn to live by the Spirit of Christ as free men, not by the spirit of the slave. This is what we must remember and do during Lent.

 

Our Lord wants us to become truly free men and women who break free fromsins and from misguided religious customs and hab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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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1: 8~13

8~13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브람을 부를 때 항상 따라다니는 칭호가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표현입니다.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그가 모리아 땅의 한 산에 올라가서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 사건은 그의 믿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는 일에 대하여 반대하실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 땅을 떠나는 시점부터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바치는 22장에 이르기까지, 아브람의 삶에도 믿음이 약해지는 시간들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그가 고향 땅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는데, 기근이 들자 그곳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이 결정을 내렸을 때 아브람이 하나님께 물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애굽 땅에서 자신과 아내가 안전하게 살기 위한 전략도 세웁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래에게 제안합니다.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창 12:12~13)

 

기근을 피하고자 애굽으로 가는 아브람 그가 나름의 꾀를 짜냅니다. 자신이 사래의 남편이라 말하면 혹시라도 죽임당할까 염려하며, 사래를 누이라고 부르기로 입을 맞춘 것입니다. 상황은 어떻게 전개됩니까? 애굽 왕 바로가 사래를 보고 왕궁으로 불러들입니다. 법적으로는 문제 될 일이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시고 아브람을 도우시지 않으셨다면, 그는 아내를 빼앗긴 채 정처 없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인간적으로 해결해 보려다가 된통 당하게 된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브람의 일생 가운데도 믿음 없어 보이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때로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미성숙한 믿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로 이스마엘 탄생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실 때 고향 땅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명하시며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죠. 그런데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약속해 주신 자식이 좀처럼 생기지 않습니다. 창세기 15장으로 넘어가면 아브람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창 15:2~3)

 

아마도 아브람은 자신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태어나지 않자 나름대로 고민한 것 같습니다. 나이는 들고 육체적으로 연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의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양자를 들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에게서 난 자라야 진짜 상속자가 될 것이다.” 하고 들려주십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습니다. 사래의 나이도 많아지고 도저히 아이를 가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이번에는 사래 스스로 해결책을 마련합니다. 자신의 종인 하갈을 아브람에게 보내서 그 종으로 아이를 갖게 하는 방책이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성경은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 아브람과 사래가 하나님께 의논한 일이 없음을 알려 주는 듯,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창 16:2~3)

 

이 말씀을 보면 주어가 사래이고 아브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어가 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하지 아니하고, 자신들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래의 종 하갈이 임산을 하게 되자 아직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종이 그의 여주인을 멸시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사실 사래가 저질러 놓은 일이었는데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이 된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갈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사래에게 넘깁니다. 그래서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고, 그것을 견디다 못한 하갈이 주인을 피해 도망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길에서 하갈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게 되고, 아브라함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성경은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라고 전합니다.

다음 장인 창세기 17장에서 우리는 99세가 된 아브라함을 만나게 됩니다. 벌써 13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흐른 셈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꾸어 주셨고, 사래의 이름을 ‘사라’라고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열국의 아버지, 어머니가 될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 17:18)

 

어떤 뜻입니까? “하나님, 저는 이스마엘로 족합니다.”라고 고백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다 늙은 그들이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겠냐는 의미였을 테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고쳐서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 17:19)

 

<하나님은 미숙한 신앙의 부산물과 단절하기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늘 이야기가 나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삭을 선물로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는 해였습니다. 이삭이 젖 떼는 때가 되었을 즈음에 종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 모습을 사라가 발견하게 됩니다. 두 아들이 큰 문젯거리가 됩니다. 결국 사라는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을 것을 종용하게 되고, 아브라함의 마음은 심히 근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창 21:11)

 

자, 이제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서로 화평하라고 답하실 것 같은데, 뜻밖에도 사라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함께 내쫓으라고 명령하시죠. 어떻게 이 일을 하실 수 있었을까 고민하기 이전에 먼저는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과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스마엘은 어떤 존재였냐는 점입니다.

이삭이 없었을 때 아브라함의 대를 이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고민해서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이지 않습니까? 이삭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가 아브라함의 대를 잇는 족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이 태어나면서부터 이스마엘의 자리는 사라지고 없어져 버립니다. 결국 그가 아브라함을 떠나게 되고 다른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의 설입니다마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떠나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도착하여 이슬람의 선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지금의 아랍인들이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는 참으로 안타까운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면 아마도 태어나지도 않았을 존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이스마엘 때문에 여러 문제가 계속 생겨납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이 사건을 후에 정리하고 평가하면서 이스마엘의 출생을 두고 ‘육체를 따라 태어났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났다고 말하지요.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2~23)

 

하나님께서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들이 움직여진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실 일들이 참 많으실 텐데, 인간이 저지른 오류와 잘못까지도 다 해결해야 하시고 책임져 주시니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계획대로라면 이삭이 태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의 다른 판단으로 인해서 그만 이스마엘이 태어나게 되고, 다른 민족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렇듯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오류를 경험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도 있지 않습니까? 마치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스마엘을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결과물을 ‘미숙한 신앙의 부산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결국 힘들게 하고 괴롭게 만드는 문젯거리가 되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에 이런 경우가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솔로몬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기를 허락하실 때 조건을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신명기 17장 17절에서는 ‘아내를 두어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지혜로 스스로 판단합니다. 왕권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곳에서 많은 왕비들을 데리고 오기도 합니다. 나라의 안정을 공고히 하려는 나름의 전략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분열이 일어나고 남과 북이 갈라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지혜를 가지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올무가 되고 짐이 되는 경우였습니다.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에게 위협을 주게 되는 존재, 끝까지 이 땅에서 경쟁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그의 후손을 번창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로 큰 민족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죠. 이 일에는 과연 몇 명이 필요했을까요? 아브라함과 사라가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 수는 얼마였을까요? 10명입니까? 15명입니까? 아니죠. 딱 한 사람, 이삭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으로 충분하셨습니다. 그것도 백세에 얻은 아들 하나면 충분하셨습니다. 그 하나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드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조금 더 많아야 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법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한 사람,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우리의 성급한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이루는 일에 때론 방해가 됩니다. 얼굴에 뾰루지가 나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까? 의사에게 보여 주고 약 처방을 받고 꾸준히 약을 바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조금 더 작게 만든다고 손을 대고 만지면 도리어 커지고 엉망이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을 신앙생활에서 종종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신앙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돕겠다고 나름대로 생각하다가 결국엔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일어납니다.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날까지 기다리고 참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백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이스마엘을 낳지 아니하고 백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인내하는 것, 이것이 믿음 아니겠습니까?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삭이지만 그 안에서 열국의 백성을 볼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믿음에 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 (히 11:12~13 중)

 

비록 보지는 못하였지만, 지금 내 눈에 수많은 민족이 보이지는 않지만, 한 사람 이삭 안에서 민족을 볼 수 있는 것이 믿음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스마엘과 이삭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미숙한 신앙의 부산물인 이스마엘과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이야기가 갈리디아서 4장에도 이어집니다.

 

<믿음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구약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말한 사건을 소환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내쫓은 것이 단순히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힙니다. 성경은 이 안에 담긴 심오한 영적 의미를 보여 줍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28~30)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삭과 이스마엘의 공존이 왜 불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본다면 둘이 함께 살고, 사라와 하갈이 도우며 사는 것이 아름답고 멋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는 육체를 따라 난 자이고, 하나는 성령을 따라 난 자임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낳은 아들, 미숙한 신앙의 단계에서 얻은 부산물과는 단절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스마엘과 같은 존재가 우리에게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각자에게 미숙한 신앙의 부산물들이 다르지만 조금씩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일 수 있고요. 스스로 쌓아 올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가 응답 없는 현실 앞에서 나름대로 일하고, 열심히 쌓아 놓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로부터 단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어 쫓으라고 명하십니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갈라디아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미숙한 신앙의 단계에서 나온 부산물로서 율법을 이야기하십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너무도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 갔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율법은 너무나도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율법은 미숙한 신앙인,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몽학 선생과도 같은 것입니다. 율법은 육체로 살아가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여 주지만 온전한 단계, 완전한 단계로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율법이 이스마엘과 같은 존재라면, 이삭과 같은 약속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약속의 아들이 오시면 모든 것은 무의미해집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온전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러한 변화를 종과 자유인의 비유로 말씀합니다. 즉 태생적인 출발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종의 아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유인의 아들입니다. 종의 아들로 태어나면 종일 뿐이나 자유인의 아들로 태어나면 자유자가 됩니다. 율법의 아들로 살면 여전히 종이지만, 참 자유를 주시는 주님의 아들로 태어나면 진정한 자유자가 됩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2~23)

 

그러므로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은 ‘참된 자유’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시기 원하신 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자유였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자유를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꾀가 들어가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도리어 망가지고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자유자가 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다시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까? 지금까지 미성숙한 신앙으로 살았다면, 그로 인한 부산물을 짊어지고 힘겹게 살고 있다면 단절하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 앞으로 나아가십시다. 종의 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영의 이끌리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시다. 이것이 사순절에 우리가 배워야 할 일입니다.

최근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이단 문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참으로 세상을 더럽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단들을 보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단에 빠지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결같습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순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죄에 속박되어 있는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고, 풀어 주시고, 모든 짊어진 것들을 끊어내게 하셔서 참된 자유자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며 배우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331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미숙한 신앙의 부산물이스마엘” (21:8-13)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67장, 546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창 21:8-13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3월 1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는 하는데, 간혹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아! 이런 것들은 하나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어!’와 같은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생겨난 ‘미숙한 신앙의 부산물’ 같은 것들이 발생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마엘처럼 말입니다.

 

설교의 요약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네 몸에서 난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고,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 약속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처음부터 믿음이 완전하고 굳건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점점 나이는 들어가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실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내 사래도 점점 나이가 많아져 도저히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 결과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고 그만 여종인 하갈을 아브람에게 보내 아이를 갖게 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이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그렇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갈은 임신을 하게 되자마자 사래를 멸시하였고, 그렇게 둘의 갈등과 질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훗날 하나님의 약속대로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아이 사이에 갈등이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스마엘은 그래도 대를 이를 아들이었습니다. 나름대로 고민하고 노력해서 얻은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이 태어나자, 이삭과 이스마엘은 참으로 안타까운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만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더라면 이런 불필요한 갈등은 없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후에 이 사건을 정리하고 평가하면서, 이스마엘의 출생은 육체를 따라 났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4:22)

 

하나님은 한 사람 이삭이면 충분하셨습니다. 그것도 100세에 얻을 아들, 그 한 사람으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더 많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더 가져야 할 것 같지만, 하나님은 단 한 사람으로도 위대한 민족을 이루어가십니다. 그 하나, 약속으로부터 받은 그 하나가 중요합니다.

때로 우리의 성급한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약속을 이루는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그 날을 기다리며 참아 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지금도 약속을 주시기에, 우리는 그 말씀을 붙잡고 인내하며 주님께서 주실 그날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나누기

  1.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결정과 판단으로 일을 그르친 경험이 있습니까?
  2. 내가 붙잡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마무리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죄의 멍에를 매고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신앙으로 산다 하지만, 우리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자꾸 문제가 일어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종의 자녀에서 자유인의 자녀로, 참된 약속의 자녀로 거듭나는 사순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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