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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사랑을 더하라

베드로후서 1:2~7

김경진 목사

2024.07.07

<신앙의 여정은 목적지가 있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내용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금 딱딱한 음식 같은 느낌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매우 중요한 내용이어서 여러분에게 꼭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여러분의 목표 지점은 어디입니까? 또 지금 어떤 기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나는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고 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어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예수를 믿고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우리에게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오늘 베드로후서의 말씀은 이런 질문에 대해 매우 의미 있는 한 가지 대답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베드로 사도는 그의 편지 서두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랍니다. (벧후 1:2, 새번역)

 

신앙의 여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수록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 결과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은혜’라고 하는 ‘카리스’(χάρις, charis, grace)라는 단어는 기독교가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은혜란, 내가 받을 만하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인데 내가 누리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세계 바깥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개념인데, 교회 안에서는 흔하게 사용되는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어떠한 환경이나 상황에서든지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어떻게 알아 갈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는 성경 말씀과 설교, 성경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배워 갑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삶에 실천할 때 경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알아 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말씀, 기도하라는 말씀을 따라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에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용서하라는 말씀을 따라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참된 평화를 경험적으로 배워 갑니다. 이렇듯 우리는 말씀과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 갑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와 평강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여정입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깨닫는 은혜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를 알아 갈수록 누리게 되는 은혜의 차원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은혜’라고 말한다면 그 차원은 어떤 차원일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벧후 1:9~11)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첫 번째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은혜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이라는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벧후 1;9). 두 번째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라는 말씀 속에 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벧후 1;10).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수록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택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세 번째 은혜는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벧후 1:11)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수록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깨끗하게 해 주시고, 나를 부르시고 택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은혜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영원한 나라에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의 차원입니다.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들어갈 수 없는 나라에 하나님께서 선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 앞에 설 때에도 두려움이 없게 됩니다. 혹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속죄의 은총을 기억하면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회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은혜받은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 가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는 평화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마지막에는 항상 평화와 평강이 있습니다. 죽음과 이별, 어려움, 그리고 병약함 앞에서도 우리에게는 평화가 평강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신앙에 근거하여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달리 은혜로 품격 있는 고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성경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 1:3~4)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라는 이 믿음 가운데서 우리는 신성하고 고귀한 성품을 닮아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 신성한 성품을 어떻게 만들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성한 성품은 8가지 모든 덕목이 어우러져야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8가지 덕목이 나오는데, 이 말씀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8가지 신성한 성품의 내용입니다. 품격 있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 8가지를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덕목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 1:5~7)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제일 먼저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면, ‘아 많고 복잡하다. 헷갈린다.’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하라는 말인지 이해가 잘되지 않을 수도 있겠고, 개념이 비슷해 보여서 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8가지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서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우리 마음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말씀 중에서 8가지 덕목 외에 한 가지 단어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더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에피코레게오’(ἐπιχορηγέω, epichorégeó, to supply)라는 이 단어는 ‘공급한다, 보충한다, 보완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덕을 더하라”라는 말은 “믿음 위에 덕을 보충해야 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믿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덕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식만 아니라 절제가, 절제만 아니라 인내가, 인내만 아니라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더해지고 서로 보완될 때 진정으로 신성한 성품, 거룩한 성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지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보완이 되는 8가지 가치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8가지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1)믿음, (2)덕, (3)지식, (4)절제, (5)인내, (6)경건, (7)형제우애, (8)사랑

 

당시 그레코로만 철학, 초대교회 당시 문화권에서 이야기하는 품격 있는 인간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면 본문이 말하는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양 끝의 두 번째에 있는 ‘덕’과 ‘형제 우애’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레코로만 철학 사상에서 가장 칭송되는 인간의 가치는 ‘덕’이었습니다. ‘아레테’(ἀρετή, areté, moral goodness, virtue)라는 이 덕목은 당시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탁월성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습니다. 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서 골몰하였습니다. 그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인간과 짐승이 다른 점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짐승과 인간의 다른 점으로 인간의 ‘덕’을 꼽았습니다. 인간에게는 관계를 만들어 내는 아레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덕은 자발적으로 사람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능력이며 법이나 윤리를 넘어서는 탁월성을 의미하였습니다. 때로는 관대함으로 표출되기도 하였고, 단지 성품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행위로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철학자들에게는 ‘인간은 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다.’라는 것이 주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덕의 가장 큰 단계로서 인류를 향한 사랑, ‘형제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필라델피아’(φιλαδελφία, philadelphia, the love of brothers, brotherly love)라는 개념이죠. 형제 사랑으로 번역하는 이 개념은 많은 철학자들에게 흔히 사용됐던 개념입니다. 모든 사람들, 곧 인류를 사랑하는 형제 사랑의 개념이 덕의 최고의 단계에 놓여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신앙인의 덕목의 처음과 끝은 오직 하나님을 향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살펴보았듯이 그레코로만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중요한 덕목으로 잡은 이 두 가지가 중간 두 번째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것을 감싸고 있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한 가지씩 덧붙여 놓고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있는 개념이 무엇입니까? 8가지 덕목을 다시 보면, ‘믿음’이 마치 앞을 가로막듯이 있고, 형제 우애 뒤에는 ‘사랑’이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덕목의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마지막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형제 우애 뒤에 왜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을까요? 세상의 지식은 형제 사랑, 인류적인 사랑에 머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신앙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것을 ‘아가페’(ἀγάπη, agapé, love)라고 부릅니다. 이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죠. 이 사랑은 단지 혈연이나 형제 사랑을 넘어서는 개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개념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품격 있는 신앙인의 덕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7~28)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눅 6:32~33)

 

신앙인의 멋진 품격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이것이 세상이 갖지 못하는 신성한 성품의 한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고 말할 때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인류애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인류애적인 사랑도 물론 중요하죠.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목표 지점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자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덕이라는 개념을 가장 우선으로 두었지만, 베드로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덕 앞에 한 가지를 앞세워 놓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피스티스’(πίστις, pistis, faith)라는 단어입니다. 신앙의 첫걸음은 한마디로 말하면 믿음이죠.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을 구별시키는 시금석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겠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겠죠.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수많은 사건과 사실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믿음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보내 주셨다’라는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겠다’라는 결단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여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의 자의식을 믿음으로 갖게 된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 너그러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덕스러운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탁월성은 그저 짐승과 다른 인간의 어떤 특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여 주신다는 믿음으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품격 있는 신앙생활이자 행동의 양식입니다. 신앙의 여정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출발해서 사랑받은 자로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누는 덕스러운 존재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덕목이 서로 뒷받침할 때 결국 사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때로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 가치의 순환 과정이 멈추어 설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통이나 고난, 혹은 시련과 박해가 올 때 우리는 자칫 동력과 관대함을 잃어버리고 덕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주춤하고 평안을 누리지 못하며 두려움 속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지식’입니다. ‘그노시스’(γνῶσις, gnósis, knowledge)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노시스라는 단어는 철학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냥 철학적으로 말하는 가르침이나 이론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의학적인 지식이나 사법적인 지식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바른 인격적인 관계에서 얻어지는 지식이요, 분별력이요, 이해력이요 그리고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후 1:2)

 

이 지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과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꿰뚫어서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구속 과정 속에서 나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하셨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실 때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꿰뚫어 보셨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십자가 위에 자신을 주실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속의 흐름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한 흐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것에 기꺼이 동참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절제’와 ‘인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지식은 우리에게 절제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다시 한번 8개의 덕목을 보십시다. 맨 앞과 뒤에 믿음과 사랑이 있고 그다음에 덕과 형제 우애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이 위치합니다. 지식은 절제와 인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만들어 줍니다. 그 가운데 ‘경건’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경건은 형제 우애와 사랑을 뒷받침해 주는 동력과도 같은 것입니다. ‘유세베이아’(εὐσέβεια, eusebeia, piety)라는 단어인데 ‘하나님 앞에 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확인은 형제 사랑인 필라델피아로, 아가페적 사랑으로 우리가 나갈 수 있게 동력을 만들어 줍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마침내 아가페적 사랑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셨습니까? 아직 이해가 되지 않으신 분들도 계실 텐데, 아마 이 길을 찾고 계셨던 분들에게는 ‘아하!’의 중요한 경험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듣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아마 놓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고 또 다른 기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 이것을 알아 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씀을 드렸지만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꼭 새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품격 있는 신앙, 신성한 성품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은혜와 평화를 누리는 참다운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Add Love To Faith

 

2 Peter 1:2-7

 

Where are we headed? As a Christian, how am I different in this world from those who don’t believe in Jesus? Is my perspective, as a believer, really different from that of unbelievers? How is my perspective different from theirs? As a Christian, what are my eyes set on in life?

 

If somebody asked you, “Why are you a Christian? By becoming one how have you become different from those who don’tbelieve in Christ?”,what would you say? Today’s Scripture from 2 Peter provides an extremely meaningful answer to this question.

 

What is the life of faith? The apostle Peter starts his letter with this greeting:

 

“Grace and peace be yours in abundance through the knowledge of God and of Jesus our Lord.”(2 Peter 1:2)

 

In one word, the journey of faithis the process of knowing God andJesus. The more we come to know God and Jesus, we understand grace and gain peace. Grace ((χάρις, charis) is a particularly significant word in Christianity.

 

Grace is something that is given to us, even though we are unworthy to receive it. It is to gain that whichcan never be gotten through our efforts. It is a concepttotally unimaginablebythe world’s principles. Grace is a concept that cannot be understood or known by the non-Christian world.

 

In short, the Christian faith starts by realizing and knowing that life cannot be lived by our own strength. Christians are those who live life, accepting and knowing that they can only livethroughthe help of God. When we accept this fact, we will have peace in all circumstances and environments, no matter what. This is the journey of faith.

 

Then how can we know God and Christ? First, through Scripture. Then, by carrying out the Word of God and applying it in our lives, we come to know God and Christ through experience.

 

For example, when we pray in obedience to the Word of God which teaches us to pray, we experienceGod’s grace more clearly. By forgiving others as the Scripture tells us to, we experience the peace of God more clearly. That is, we experience grace and peace more fully, by coming to know God and Christ.

 

This is our journey of faith.

 

Now let’s delve deeper.

 

Then what is the grace that we come to experience as we know God and Christ more? If grace is something we cannot get on our own, what is it? Second Peter 1:9-11 says:

 

“But whoever does not have them is nearsighted and blind, forgetting that they have been cleansed from their past sins. Therefore, my brothers and sisters, make every effort to confirm your calling and election. For if you do these things, you will never stumble, and you will receive a rich welcome into the eternal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2 Peter 1:9-11)

 

In this passage we find the grace of God. First, it is that which cleanses our sins. “They have been cleansed from their past sins.”(2 Peter 1:9) Second, it is that which calls and elects us. “Therefore, my brothers and sisters, make every effort to confirm your calling and election.”(2 Peter 1:10) Third, it is that which allows us to enter the eternal Kingdom. “and you will receive a rich welcome into the eternal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2 Peter 1:11)

 

The more we know God and Christ, we more come to realize this grace: I have been cleansed of my sins; I have been called and elected as a child of God; and I will enter the eternal Kingdom the Lord has prepared.

 

You may say a Christian is a man who lives a different, dignified life based on this faith. The Bible states thatthose who live such dignified lives“participate in the divine nature” of God:

 

“His divine power has given us everything we need for a godly life through our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by his own glory and goodness. Through these he has given us his very great and precious promises, so that through them you may participate in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in the worldcaused by evil desires.” (2 Peter 1:3-4)

 

Then how must we live, specifically? As Christians, how can we live a dignified life? How can we develop a divine nature?

 

The eight virtues listed in 2 Peter 1:5-7, the text following verses 3-4,are those required of the Christian in his/her life; they are the virtues shown in the life of the Christian who lives a dignified life, participating in the divine nature of God.

 

Let’s look at them in more detail today. This is Peter’s advice:

 

“For this very reason, make every effort to add to your faith goodness; and to goodness, knowledge; and to knowledge, self-control; and to self-control, perseverance; and to perseverance, godliness; and to godliness, mutual affection; and to mutual affection, love.”(2 Peter 1:5-7)

 

First, let’s scrutinize a word from the above text—“add to.” The Greek word for“add to” is “ἐπιχορηγέω (epichorégeó)” which means“to supply, supplement, or complement.”So, to add goodness to faith means to complement or supplement faith with goodness.

 

It means that having just one of the two is insufficient. When the eight virtues complement each other, we can attain to the truly dignified life of the Christian, the divine nature.

 

Then what are those eight virtues or values? They are 1)faith, 2) goodness, 3) knowledge, 4) self-control, 5) perseverance, 6) godliness, 7) mutualaffection, and 8) love.

 

Butsomething interesting is found here. The intent of this passage becomes clearer when we consider the virtues of the noble man discussed in Greco-Roman philosophy and the culture surrounding the Early Church.

 

The value of man most praised by Greco-Roman philosophers was virtue. In Greek this is“ἀρετή (areté)”, which means moral goodness or virtue; as a concept which indicates moral excellence, it was admired by the people of the time.

 

As the ancients pondered what differentiated man from beasts—even if they could not know where man came from—they concluded that it was “ἀρετή (areté)”, orvirtue, that set him apart. Virtue was considered the ability to form 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 and to bestow benefits upon them in relationships. It went beyond merely observing laws and ethics; virtue was not just the character of a person, butwould bedisplayed in actions.

 

The highest level of that virtue was none other than love for humanity, that is, love for brothers. In Greek this is the well-known “φιλαδελφία (philadelphia),”whichmeansthe love of brothers or brotherly love.

 

But what is interesting is that these two worldly virtues, areté and philadelphia, appear as the second and seventh virtues, respectively, in today’s Scripture. Moreover, they are surrounded by other virtues as if to complement them. This marks the difference between the values of the world’s philosophies and those of the Christian faith.

 

What is that distinction? In the Christian faith, faith comes first and love comes last. Let’s think of the last, love, first.

 

The knowledge of this world culminates in brotherly love, philadelphia, or love for humanity. But the Christian faith takes a step further—to “ἀγάπη (agape)”, that is, love. A love that gives selflessly.

 

This is the virtue of the dignified Christian that sets himself apart from the world. Our Lord Himself said:

 

“But to you who are listening I say: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bless those who curse you, pray for those who mistreat you.” (Luke 6:27-28)

 

“If you love those who love you, what credit is that to you? Even sinners love those who love them. And if you do good to those who are good to you, what credit is that to you? Even sinners do that.”(Luke 6:32-33)

The dignity of the great Christian is revealed in his love for even his enemy. This precisely is the divine nature that the world does not have.

 

 

Now let’s return to the beginning. While the people of the world placed the concept of virtue at the very beginning, Peter placed something before that through the Holy Spirit’s inspiration—faith.

 

The Greek word used for faith is “πίστις (pistis)”.

 

The first step toward becoming a Christian is faith. That is, the very barometer that sets Christians apart from all others is faith. Then what is faith? And faith in what?

 

Faith here means a trust in God, a complete trust in Jesus Christ. Furthermore, it means to accept the statements on God and Jesus in the Bible written by the apostles and passed down to us.

 

I believe this faith may be summed up in the following words. It is to believe that God loves me. It is to believe that God sent His only Son because He loves me. The Bible says: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John 3:16)

 

I am a child loved by God. This is the starting point of the journey of faith.

 

I am loved by God. I have been saved. I have been forgiven. I have received grace. Accepting these thoughts is to have faith.

Now this self-awareness as a person loved by God makes us generous. It makes us into beings that can share our virtue with others. Therefore, moral excellence is the dignified way of life of the person who has been forgiven, the one who is loved.

 

But our journey of faith requires other values that can complement faith and virtue.This is because we may face trials, suffering, tribulations, and persecutions. Even when we live as children loved by God showing generosity and moral excellence, we mayshrink back at times, not be able to enjoy true peace, complain, and fear when hardships come our way.

 

At such times there is something we absolutely need: knowledge. Knowledge, which is “γνῶσις (gnosis)” in Greek, must be read as a biblical concept. It is a very importantconcept in Second Peter. It is not merely a theoretical knowledge or a philosophical teaching. This “knowledge” is the knowledge, discernment, understanding, insight, and wisdom gained in an upright and close relationship with God and Christ.

 

As we read earlier, Peter says:

 

“Grace and peace be yours in abundance through the knowledge of God and of Jesus our Lord.”(2 Peter 1:2)

 

This “knowledge”means to knowGod and Christ with a clear insight, seeing things from theperspective of God’s salvation work and salvation history.

 

Let’s say there is a student studying for the CSATs. If he understands how great an inflection point the test will be in his life, he would study hard. And he will finally reach his goal. But the student who does not have this knowledge will only want the test to be over quickly. This the importance of knowing the flow.

 

A good keyboard player in worship is the not the musician who understands just the music score. He/she must be able to quickly catch the flow of the service and play softly or slowly according to that flow.

 

Likewise, it is important for us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God’s salvation work. Jesus could bear the Cross because he understood God’s salvation history. When we understand the providence of God’s salvation, we can show self-control and perseverance in that knowledge.

 

Therefore, true knowledge gives us self-control and perseverance. If self-control is the strength to control one’s emotions and desires, perseverance is the power or ability to withstandoutside pressures. It is the power to bear all kinds of circumstances.

 

Philadelphia or brotherly love, the virtue considered the greatest among ancient philosophers, must also be reestablished in our relationship with God. That is why “godliness” comes before brotherly love (which is translated “mutual affection” in the NIV). Just as faith comes before the value of virtue, godliness appears before the value of mutual love.

 

“εὐσέβεια (Eusebeia)”, translated “piety” in English, means to stand before God. It means to stand before our relationship with God. In it, we are reminded of our Lord who loves us. And that confirmation of God’s love for us enables us to advance to brotherly love and agape love.

 

Today I spoke about some complex things. Some of you may find it hard to understand, but don’t worry because that’s totally normal.

 

But let me just say this: my message today will be the very one that some of you may have been looking for, and for those of you who didn’t get it today, there will come a day when you will. I have faith that God will guide you to that place of knowledge one day.

 

May we become men and women of Godwho please Him in this world as dignified Christians with a divine nature, enjoying His grace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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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2~7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신앙의 여정은 목적지가 있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내용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금 딱딱한 음식 같은 느낌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매우 중요한 내용이어서 여러분에게 꼭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여러분의 목표 지점은 어디입니까? 또 지금 어떤 기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나는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고 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어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예수를 믿고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우리에게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오늘 베드로후서의 말씀은 이런 질문에 대해 매우 의미 있는 한 가지 대답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베드로 사도는 그의 편지 서두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랍니다. (벧후 1:2, 새번역)

 

신앙의 여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수록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 결과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은혜’라고 하는 ‘카리스’(χάρις, charis, grace)라는 단어는 기독교가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은혜란, 내가 받을 만하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인데 내가 누리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세계 바깥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개념인데, 교회 안에서는 흔하게 사용되는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어떠한 환경이나 상황에서든지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어떻게 알아 갈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는 성경 말씀과 설교, 성경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배워 갑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삶에 실천할 때 경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알아 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말씀, 기도하라는 말씀을 따라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에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용서하라는 말씀을 따라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참된 평화를 경험적으로 배워 갑니다. 이렇듯 우리는 말씀과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 갑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와 평강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여정입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깨닫는 은혜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를 알아 갈수록 누리게 되는 은혜의 차원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은혜’라고 말한다면 그 차원은 어떤 차원일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벧후 1:9~11)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첫 번째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은혜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이라는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벧후 1;9). 두 번째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라는 말씀 속에 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벧후 1;10).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수록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택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세 번째 은혜는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벧후 1:11)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수록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깨끗하게 해 주시고, 나를 부르시고 택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은혜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영원한 나라에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의 차원입니다.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들어갈 수 없는 나라에 하나님께서 선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 앞에 설 때에도 두려움이 없게 됩니다. 혹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속죄의 은총을 기억하면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회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은혜받은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 가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는 평화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마지막에는 항상 평화와 평강이 있습니다. 죽음과 이별, 어려움, 그리고 병약함 앞에서도 우리에게는 평화가 평강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신앙에 근거하여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달리 은혜로 품격 있는 고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성경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 1:3~4)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라는 이 믿음 가운데서 우리는 신성하고 고귀한 성품을 닮아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 신성한 성품을 어떻게 만들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성한 성품은 8가지 모든 덕목이 어우러져야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8가지 덕목이 나오는데, 이 말씀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8가지 신성한 성품의 내용입니다. 품격 있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 8가지를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덕목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 1:5~7)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제일 먼저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면, ‘아 많고 복잡하다. 헷갈린다.’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하라는 말인지 이해가 잘되지 않을 수도 있겠고, 개념이 비슷해 보여서 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8가지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서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우리 마음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말씀 중에서 8가지 덕목 외에 한 가지 단어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더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에피코레게오’(ἐπιχορηγέω, epichorégeó, to supply)라는 이 단어는 ‘공급한다, 보충한다, 보완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덕을 더하라”라는 말은 “믿음 위에 덕을 보충해야 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믿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덕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식만 아니라 절제가, 절제만 아니라 인내가, 인내만 아니라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더해지고 서로 보완될 때 진정으로 신성한 성품, 거룩한 성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지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보완이 되는 8가지 가치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8가지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1)믿음, (2)덕, (3)지식, (4)절제, (5)인내, (6)경건, (7)형제우애, (8)사랑

 

당시 그레코로만 철학, 초대교회 당시 문화권에서 이야기하는 품격 있는 인간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면 본문이 말하는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양 끝의 두 번째에 있는 ‘덕’과 ‘형제 우애’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레코로만 철학 사상에서 가장 칭송되는 인간의 가치는 ‘덕’이었습니다. ‘아레테’(ἀρετή, areté, moral goodness, virtue)라는 이 덕목은 당시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탁월성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습니다. 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서 골몰하였습니다. 그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인간과 짐승이 다른 점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짐승과 인간의 다른 점으로 인간의 ‘덕’을 꼽았습니다. 인간에게는 관계를 만들어 내는 아레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덕은 자발적으로 사람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능력이며 법이나 윤리를 넘어서는 탁월성을 의미하였습니다. 때로는 관대함으로 표출되기도 하였고, 단지 성품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행위로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철학자들에게는 ‘인간은 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다.’라는 것이 주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덕의 가장 큰 단계로서 인류를 향한 사랑, ‘형제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필라델피아’(φιλαδελφία, philadelphia, the love of brothers, brotherly love)라는 개념이죠. 형제 사랑으로 번역하는 이 개념은 많은 철학자들에게 흔히 사용됐던 개념입니다. 모든 사람들, 곧 인류를 사랑하는 형제 사랑의 개념이 덕의 최고의 단계에 놓여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신앙인의 덕목의 처음과 끝은 오직 하나님을 향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살펴보았듯이 그레코로만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중요한 덕목으로 잡은 이 두 가지가 중간 두 번째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것을 감싸고 있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한 가지씩 덧붙여 놓고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있는 개념이 무엇입니까? 8가지 덕목을 다시 보면, ‘믿음’이 마치 앞을 가로막듯이 있고, 형제 우애 뒤에는 ‘사랑’이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덕목의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마지막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형제 우애 뒤에 왜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을까요? 세상의 지식은 형제 사랑, 인류적인 사랑에 머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신앙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것을 ‘아가페’(ἀγάπη, agapé, love)라고 부릅니다. 이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죠. 이 사랑은 단지 혈연이나 형제 사랑을 넘어서는 개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개념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품격 있는 신앙인의 덕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7~28)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눅 6:32~33)

 

신앙인의 멋진 품격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이것이 세상이 갖지 못하는 신성한 성품의 한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고 말할 때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인류애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인류애적인 사랑도 물론 중요하죠.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목표 지점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자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덕이라는 개념을 가장 우선으로 두었지만, 베드로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덕 앞에 한 가지를 앞세워 놓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피스티스’(πίστις, pistis, faith)라는 단어입니다. 신앙의 첫걸음은 한마디로 말하면 믿음이죠.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을 구별시키는 시금석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겠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겠죠.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수많은 사건과 사실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믿음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보내 주셨다’라는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겠다’라는 결단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여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의 자의식을 믿음으로 갖게 된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 너그러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덕스러운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탁월성은 그저 짐승과 다른 인간의 어떤 특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여 주신다는 믿음으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품격 있는 신앙생활이자 행동의 양식입니다. 신앙의 여정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출발해서 사랑받은 자로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누는 덕스러운 존재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덕목이 서로 뒷받침할 때 결국 사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때로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 가치의 순환 과정이 멈추어 설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통이나 고난, 혹은 시련과 박해가 올 때 우리는 자칫 동력과 관대함을 잃어버리고 덕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주춤하고 평안을 누리지 못하며 두려움 속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지식’입니다. ‘그노시스’(γνῶσις, gnósis, knowledge)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노시스라는 단어는 철학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냥 철학적으로 말하는 가르침이나 이론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의학적인 지식이나 사법적인 지식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바른 인격적인 관계에서 얻어지는 지식이요, 분별력이요, 이해력이요 그리고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후 1:2)

 

이 지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과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꿰뚫어서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구속 과정 속에서 나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하셨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실 때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꿰뚫어 보셨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십자가 위에 자신을 주실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속의 흐름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한 흐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것에 기꺼이 동참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절제’와 ‘인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지식은 우리에게 절제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다시 한번 8개의 덕목을 보십시다. 맨 앞과 뒤에 믿음과 사랑이 있고 그다음에 덕과 형제 우애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이 위치합니다. 지식은 절제와 인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만들어 줍니다. 그 가운데 ‘경건’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경건은 형제 우애와 사랑을 뒷받침해 주는 동력과도 같은 것입니다. ‘유세베이아’(εὐσέβεια, eusebeia, piety)라는 단어인데 ‘하나님 앞에 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확인은 형제 사랑인 필라델피아로, 아가페적 사랑으로 우리가 나갈 수 있게 동력을 만들어 줍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마침내 아가페적 사랑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셨습니까? 아직 이해가 되지 않으신 분들도 계실 텐데, 아마 이 길을 찾고 계셨던 분들에게는 ‘아하!’의 중요한 경험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듣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아마 놓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고 또 다른 기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 이것을 알아 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씀을 드렸지만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꼭 새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품격 있는 신앙, 신성한 성품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은혜와 평화를 누리는 참다운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7월 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믿음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 1장 2~7)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79장, 433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벧후 1장 2~7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7월 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신앙인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요?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일까요?

 

 

설교의 요약

 

신앙의 여정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우리 주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또 평화를 얻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누리게 되는 은혜는 무엇일까요? 나의 죄가 깨끗하게 되었고, 나는 주님의 자녀로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았으며,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나는 은혜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을 통하여 평화를 누리게 되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이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에 근거하여,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성경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서 갖추어야 할 8가지 삶의 덕목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그리고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덕이라는 개념을 가장 칭송했지만 사도 베드로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덕 앞에 한 가지를 놓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여정은 믿음과 덕을 넘어 다른 것들로 보충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고난과 고통, 혹은 시련과 박해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 때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지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이해할 때 그 깨달음 안에서 절제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고대 철학의 가장 큰 덕목인 형제사랑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재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앞에 경건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서는 것입니다. 그 관계 속에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다시 기억하게 되고 그러한 사랑의 확인은 우리로 하여금 형제 사랑과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나누기

  • ‘나는 은혜받은 사람’이란 사실을 감격적으로 깨닫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서로의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 오늘 본문에 나온 8가지 덕목 중 신앙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덕목이 있나요?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우리가 은혜를 누리고 평화를 맛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그리고 사랑을 더해가는 우리의 신앙 여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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