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구독

ic_info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c_info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디모데전서 3:8~11

김경진 목사

2023.12.10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설명해 줍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일입니다. 한 25년 전쯤 된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한 가정이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막 이민 온 분들이었습니다. “교회 다니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교회에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는 겁니다.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처음 온 것 같았습니다. 어색해 보이기도 했고, 예배를 잘 따라오지 못하더라고요. 당시 제가 섬긴 교회는 예배 후에 애찬식을 가졌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에 점심시간이 되면 탁자를 가져다놓고, 식탁을 설치하고, 의자를 내놓고 음식을 나누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막 준비하는 시간이었는데 아, 새로 오신 이분이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시는 겁니다. 식탁을 설치하는 것, 의자를 놓는 것, 수저를 세팅하는 것, 음식을 나르는 것… 어딘가 처음 온 분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처럼 봉사를 잘하시네요.”라고 말했더니 그분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예, 제가 절에서 많이 해 봐서 압니다.” 그때는 그런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다른 종교를 믿다가도 이민을 와서는 교회에 나와 정착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절에서 봉사 잘하는 분들이 교회에서도 봉사 잘하신다는 것을요. 그러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에서의 봉사가 다른 종교에서의 봉사, 사회단체에서의 봉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실 교회 안의 봉사나 다른 종교에서의 봉사는 유사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그렇고요.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음식을 만들어서 먹이고 격려하는 일도 그렇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도 비슷합니다. 서로 친교하고 사귀는 일도 비슷합니다. 차량 안내, 장례식에 가서 문상하고 위로하는 것, 결혼식에 가서 축하하고 축복하는 것… 얼마든지 다른 종교나 사회단체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일로만 말한다면 절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교회에서도 잘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사회에서 봉사 잘하는 사람이 교회에도 잘 섬깁니다. 성실한 사람은 어디서든지 성실하게 일하며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사회에서 봉사 활동을 많이 하던 사람이 이민 교회에 나오면서 꾸준히 섬기는 일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때로는 성실하고 지도력이 있는 그분들 때문에 분열이 일어나고, 편이 갈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회에는 열심히 다녔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앙생활은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한 교회 생활이 사실은 사회생활의 일부였고, 자신을 위한 친교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였을 뿐,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먼 봉사들이 이어진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의 다양한 봉사와 섬김이 다른 종교나 사회단체의 봉사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차이를 조금 더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겠습니다. 교회 안에도 수많은 봉사의 자리가 있습니다. 봉사의 직분을 가진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수천 명의 집사님들이 있습니다. 1,400여 명의 권사님들이 봉사의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직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설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며,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집사의 자격에 대한 내용입니다. 원어로 집사라는 단어는 ‘봉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 diakonos)입니다. ‘디아코노스’는 ‘종’이라는 뜻입니다. 웨이터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디아코노스라고 부르죠. 봉사하는 사람, 서비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집사라는 뜻입니다. 현대적인 의미로 본다면 교회 안에서 집사 혹은 권사와 같은 평신도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성경적인 단어입니다.

디모데전서를 쓰고 있을 당시, 에베소 교회를 포함한 초대 교회는 기독교의 부활 신앙이라는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전에 없었던 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전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당시에는 기독교 신앙이 신자의 삶에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마치 절에 나간 사람이 교회 나오면서 겪는 시행착오라고 할까요? 문화적으로, 교리적으로, 사회적으로 해결될 문제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거짓 교사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철학적인 토대를 가지고 기독교를 나름대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유혹에 빠져들곤 하였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나아가야 하는데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혼란스러워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씁니다. 교회를 바르게 이끌어 갈 일꾼이 필요하였고, 이 일을 위해서 직분자들이 세워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사도 바울은 크게 두 가지 사역을 이야기합니다. 기독교 교리를 어떻게 바르게 세워 갈 수 있을지, 어떻게 교회를 바르게 치리하고 이끌어 갈 수 있을지에 관해서 말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직분을 맡은 자들을 ‘감독’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다양한 섬김과 봉사를 담당하는 자들을 가리켜 ‘집사’라고 칭하였습니다. 교회의 직분을 두 가지로 구분한 바울이 특별히 봉사와 섬김을 위한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딤전 3:14~15a)

 

디모데가 머문 곳에 빨리 가서 가르치고 싶지만 그보다 급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바울이 지금 디모데전서를 쓰고 있습니다.

 

<직분자의 섬김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구원의 비밀을 받아들이는 믿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자, 바울이 먼저는 하나님의 집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해 줍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딤전 3:15b)

 

교회는 어떤 자리인가? 교회는 어떤 곳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이라는 말이 참 귀합니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며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 이곳이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원어로 ‘집’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단순히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라기보다는 일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성격이 강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경찰서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경찰들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보다는 경찰들이 일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죠. 또 소방서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소방관들이 대기하며 일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드시죠. 이것처럼 사역과 관련된 의미가 ‘집’이라는 표현에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은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교회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일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도 바울이 이것에 대하여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진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사역을 하는 곳입니다. 사교적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자기 계발을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의 터입니다. 진리가 머무르는 곳이고, 진리를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진리가 온 세상을 향하여 퍼져나가도록 하는 터전이자 기둥이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진리가 존재합니다. 교회에서 진리를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집사요, 권사요, 또한 감독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일을 하는 집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이 말은 어떤 사람이 집사로 선출될 수 있는지 그 자격에 관한 말이면서 동시에 집사 혹은 권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여섯 가지를 말합니다. 앞의 네 가지는 앞과 뒤를 감싸면서 중복해서 나타나고, 중간에 두 가지 중요한 자격 요건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8,9절과 11절 말씀이 그러합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딤전 3:8)

 

여기 네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정중하고, 둘째 일구이언하지 아니하고, 셋째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넷째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를 말한 후에 바울은 직분자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자격을 말해 줍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딤전 3:9)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자의 경우를 이야기하며 앞서 말한 네 가지 자격 조건을 반복하는데 조금은 다른 표현입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딤전 3:11)

 

정숙, 모함하지 아니함, 절제, 충성됨이 자격 조건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특히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는 표현입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여기서 ‘비밀’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뮈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 mustérion)인데 참으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사실 ‘비밀’이라기보다는 ‘신비’라는 말로 해석할 때 보다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비밀은 감추어져서 도저히 풀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뮈스테리온’은 비밀인 것이 드러나서 우리에게 나타나 알려지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지개를 볼 때 신비로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산에 올라가서 가득한 구름을 보며 신비를 느끼곤 합니다. 무지개를 통해, 구름을 통해 숨겨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신비는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 주실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뮈스테리온이라는 단어가 성찬과 세례를 통칭하는 성례를 의미할 때도 동일하게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말했을 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열어 주셔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이라는 뜻이겠죠. 그 믿음의 비밀이 무엇인지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딤전 3:16)

 

바울은 믿음의 비밀을 ‘경건의 비밀’로 고쳐 말하면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다고 말씀합니다.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부활하시고(의롭다 함을 받으시고), 전파되시고,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다시 올려지신(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분 안에 경건의 비밀, 경건의 신비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깨닫게 된 사람입니다. 예수만이 참된 소망이며, 주님이 유일한 희망이 되심을 아는 사람이 곧 믿음의 비밀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파하시고, 영원한 나라를 약속해 주신 능력이자 힘이신 주님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나에게 어떤 달란트가 있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사교를 목적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역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믿음의 비밀을 가졌느냐의 여부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의 교회에서 집사로, 권사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뮈스테리온은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셔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입니다.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 주님의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다면, 이어서 또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깨끗한 양심’이라는 표현입니다. 원어적으로 보면 깨끗한 양심과 더불어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비를 알게 된 사람, 그와 더불어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자격이 필요한데 바로 ‘깨끗한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믿음은 깨끗한 양심에 토대를 두며 선한 행실로 이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여러 곳에서 깨끗한 양심에 대해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서두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죠.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딤전 1:5~6)

 

“청결하고, 선한, 거짓이 없는”이라는 표현이 서신의 의도를 잘 드러내어 줍니다. 그 반대편에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선생이 되려 하지만 자신이 말하는 것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거짓사도들이 책망되고 있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교회 안에 다툼이 일어나고, 변론이 일어나고, 헛된 신화나 이념에 빠지는 자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믿음의 비밀, 구원의 신비는 깨끗한 양심과 더불어 아름답게 빛나게 됩니다. 둘은 서로 보완적이고, 또 함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비밀은 가지고 있어도 더러운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사역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동시에 아무리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있어도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 또한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며 동시적으로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깨끗한 양심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깨끗한 양심과 더불어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됩니까? 사도 바울은 깨끗한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행실을 네 가지로 말해 줍니다. 첫 번째로는 ‘정중하다’라는 표현입니다. 원어로는 셈노스(σεμνός, semnos)입니다. 품위가 있고, 행동이 진지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이 단어는 여자 집사의 경우를 말하는 11절에서도 똑같이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라는 표현에서 ‘정숙’이라는 표현이 역시 셈노스(σεμνός, semnos)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태도, 항상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 품위가 있는 모습. 이 모습 속에서 믿음의 비밀을 가진 모습이 들어 있고 깨끗한 양심이 함께 드러납니다.

두 번째로 디아로고스라는 단어인데,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δίλογος, dilogos)라고 번역된 단어입니다. 여자 집사의 경우에는 “모함하지 아니하며”(διάβολος, diabolos)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의미가 조금 다르지만 같은 맥락 안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 것, 앞에서는 칭찬하고 뒤돌아서서는 욕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깨끗한 양심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겠죠. 무언가 혼탁한 생각이 그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앞에서는 아부하면서 뒤에서는 비난하는 태도. 거짓이 배어 있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은 깨끗한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행실로 봉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을 여성의 경우에는 ‘네팔리오스’(νηφαλέος, néphalios) 곧 ‘절제하다’라는 단어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의 깨끗한 정신 상태를 말합니다. 차분하고, 침착하고, 절제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이것이 사역자의 자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자격 요건은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아이스크로 케르데스’(αἰσχροκερδής, aischrokerdés)라는 단어는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피스토스’(πιστός, pistos)라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충성되다, 신뢰할 만하다, 믿을 만하다는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말씀드려서 여러분의 정신이 깨끗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진리의 기둥과 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경건의 비밀, 믿음의 신비를 깨닫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정중하고, 모함하거나 악한 말을 하지 아니하며,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정신을 바르게 하여 침착하고, 절제할 줄 알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이러한 일꾼들을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주님의 일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지 생각하게 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씀을 듣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어떤 종이 되시겠습니까? 어떻게 충성된 종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집사의 자격 조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해 봅니다. 권사임직식이 4부 예배에 있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 권사님들, 또 소망교회의 모든 제직 한 분, 한분이 믿음의 비밀과 더불어 깨끗한 양심을 따라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귀한 청지기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ose Who Keep Hold of Mystery of the Faith

 

1 Timothy 3:8-11

 

 

Let me tell you a story of when I was ministering in the United States. One Sunday, a family that had just immigrated to the U.S. visited our church. There were many Koreans like that in those days. The family said they had never attended church before. Since it was their first time at church, they appeared awkward during the service. After the service, we had fellowship. Our church would put out tables and chairs, set the table, and share a meal for fellowship. As all our church members came into the cafeteria and set the table together, the mother of the visiting family also moved tables and chairs, set the table, and laid out the food. She did it so well, as if she had been serving our church for a long time. I was curious. So I asked, “I thought it was your first time at church. How can you serve so well?” She answered, “I used to go a Buddhist temple and we did a lot of things like this. It’s familiar to me.”

 

At that moment I realized something: The work of service is the same—whether at a church or at a Buddhist temple! A capable worker at a temple can be a capable worker at church too!

 

This realization, however, led to another question: Then what makes church service different?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church service and service at temples or in society?

 

The things we do at church—teaching children, singing, playing musical instruments, preparing food, encouraging, caring of the poor, having fellowship, serving in the parking lot, offeringcondolences at funerals, consoling families in mourning, and congratulating newly-weds—how are these different from the service of other religions, social organizations, and charity groups?

 

In terms of work, a capable worker at a temple would also be a proficient worker at church. The one who served capably in society would also prove to be a capable worker at church. A diligent person outside the church would also do church work diligently and properly once he/she is given a task.

 

The above phenomenon is often witnessed in Korean immigrant churches in the U.S. People who had never attended church in Korea but had done a lot of charity work would start coming to church in the U.S. and get involved in church service. People who loved socializing by nature, frequently invited others, and shared meals back in Korea would also socialize energetically, show leadership, and become a helpful member in their newfound church.

 

But with such people problems sometimes occurred in church—though not always. There would be divisions and church members would take sides; and at the center of these problems there would often be the kind of people I mentioned above.

 

Why did such things happen?

 

It was because despite their passion for church life, these people were not actually pursuing a life of faith but merely doing social activities and charity work and socializing. I saw the church experience difficulties because ofsuch people who got involved in church activities with such an attitude.

 

Then how is church work—that is, all the things we do at church, including various services and charitable work—different from that of other social/religious groups? There will, of course, be many similarities between them in that they are all services. This explains how someone who had served well in a temple could also serve with ease in a church. Yet there will be a clear distinction between the service of the church and that of other social/religious groups.

 

We, believers, must be acutely aware of this. Our church has countless positions for serving and many of us are currently carrying out those services. We have thousands of deacons and senior deaconesses. What kind of person must a leader or servant of the church be and how must he/she carry outGod’s work? Today, I would like to answer these questions by studying God’s Word given to us through Paul.

 

Today’s Scripture talks about the qualities of a deacon. Who is qualified to be one?

 

“Deacon” derives from the Greek word that means “service”—“διάκονος (diakonos).” Diakonos refers to a servant or a person who waits on tables. In other words, it indicates a person who serves, someone who does a service. Today, it would refer to the lay leaders of the church, including deacons and senior deaconesses.

 

When Paul was writing 1 Timothy, the Early Church, including the church in Ephesus, had just started to have a new faith in Christ. Consequently, transitioning to this new faith from their former religions, that is, their past experiences and culture of worshiping other gods, was a major problem and challenge.

 

You could say the Early Church was made up of “Buddhist-turned-Christians” in today’s terms, which meant many hurdleshad to be overcome culturally, doctrinally, and socially.

 

Under such circumstances, false teachers were teaching wrong doctrines and misinterpreting Christianity, based on their past religious and philosophical beliefs; and many were being tempted by them. Therefore, there was a great need for good workers in the church, capable of leadingit in the right path, and servants and workers had to be appointed for that work.

 

This work could be largely divided into two areas. First, there was the work of overseers—that is, teaching the correct doctrine to the church and leading it properly within that doctrine. Second, there was the work of deacons, which was to carry out all sorts of services and charitable work in the church.

 

After identifying these two ministries of the church, Paul speaks about the qualifications of deacons, appointed especially for the work of service and charity:

 

“Although I hope to come to you soon, I am writing you these instructions so that, if I am delayed, you will know how people ought to conduct themselves in God’s household,”(1 Timothy 3:14-15a)

 

How should people conduct themselves in God’s household? Paul is saying he will now talk about how one should work for God’s household. But first he briefly explains what “God’s household” is:

 

“God’s household,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the pillar and foundation of the truth.” (1 Timothy 3:15b)

 

First, we must understand what the church is, that is, the place we are serving. What is the church? Above all, it is the church, the household of the living God. The words “living God” are precious. Paul says that the church is the household where God, the One who isalive andworking even now, dwells.

 

The meaning of the Greek word for “household” is not justa space where God dwells but a place where His work is done. In other words, “household” is closely related to ministry. When we think of a police station or a fire station, we immediately think of things—like a certain work or a function. God’s household is also like this. Just as police officers do their work in police stations and firemen do their work in fire stations, the church is a place where God’s work is done.

 

A certain work is done in God’s household. Paul says that the church is “the pillar and foundation of the truth.” God’s household is related to the truth. Its foundation and pillar are the truth. This is the church. The church is the place that carries out the ministry of truth. It is the pillar and foundation that spreads this truth to the whole world.

 

Overseers and deacons are thevery workers ofthis church.

 

Then what kind of person must a deacon, a man/woman who does the work of the church, be? This question may be translated as follows: What kind of person should I pick as deacon or senior deaconess? As a deacon/senior deaconess myself, what kind of person must I strive to be?

 

Today Paul talks about six qualifications for deacons: the two most important are described in the verse placed in the middle (verse 9), while the other fourqualities are mentioned repeatedly in the verses proceeding and succeeding it (verses 8 and 11). This is the structure of verses 8, 9, and 11.

 

First, Paul describes four qualities of deacons in verse 8:

 

“In the same way, deacons are to be worthy of respect, sincere, not indulging in much wine, and not pursuing dishonest gain.” (1 Timothy 3:8)

 

First, deacons are to be worthy of respect; second, sincere; third, not indulging in much wine; and fourth, not pursuing dishonest gain. After mentioning these qualities, Paul explains the two most important traits in the following verse:

 

“They must keep hold of the deep truths of the faith with a clear conscience.”(1 Timothy 3:9)

 

Paul says that deacons must be people who “keep hold of the deep truths of the faith with a clear conscience.”Then, as he talks about how women should conduct themselves, he repeats the former four qualifications, using different expressions.

 

“In the same way, the women are to be worthy of respect, not malicious talkers but temperate and trustworthy in everything.”(1 Timothy 3:11)

 

The four traits required of women are being worth of respect, not being malicious talkers, being temperate, and being trustworthy in everything.

 

Now with this structure in mind, let’s study more closelythe qualificationsfor people who do God’s work—in particular, the qualities of those who serve in church and the character of people doing the Lord’s work.

 

Above all, the most important trait is to “keep hold of the deep truths of the faith”.

 

I love these words. Here the Greek for “deep truths” is “μυστήριον, (mustérion)”, which has many meanings. The meaning of the Greek word becomes clearer when we interpret it as “mystery” rather than “deep truths.” A mystery is like a secret, but when it is opened and solved, everyone can see it.

 

A rainbow or clouds covering the mountains feels mysterious to us. When we look at them, we get a glimpse of the beauty and the power of nature hidden in them. That is why they are a mystery.

 

Therefore, “the deep truths of the faith” or “the mystery of the faith” implies that we see what God opens and reveals to us. That is why the Greek word for “sacrament”, which refers to baptism and the Eucharist, is also “μυστήριον(mustérion).”

 

What does it mean to be a person who keeps hold of the deep truths or mystery of the faith? What is that mystery? This is how Paul explains it:

 

“Beyond all question, the mystery of godliness is great: He appeared in a body, was vindicated by the Spirit, was seen by angels, was preached among the nations, was believed on in the world, was taken up in glory.” (1 Timothy 3:16)

 

Rephrasing the mystery of the faith as “the mystery of godliness,” Paul says that the latter was revealed in Jesus Christ. The secret, the mystery, of godliness appeared in Jesus Christ who came as God incarnate (appeared in a body), was resurrected (was vindicated), was preached, was believed, and ascended to heaven in glory (was taken up in glory).

 

What does this mean? Who is the man who has this mystery of the faith? He is the one who has understood God’s providence of redemption revealed through Christ. He is the one who knows that Jesus is the one, true hope. He is the one who has come to know the Lord, who destroyed the power of death and is the power and strength who promised us the eternal kingdom.

 

Mustérion is a phenomenon that occurs with God acting as the subject. We can see this mystery when God opens and reveals it to us. Therefore, the one who sees it is also the one chosen by God.

 

Now, it is such a person who has this mystery of faith that can serve God’s household. But we see another important expression describing the one who has the mystery of faith: “with a clear conscience.”

 

Paul writes, “They must keep hold of the deep truths of the faith with a clear conscience.” The original Greek meaning of this sentence is this: “They must keep hold of the deep truths and have a clear conscience.”

 

Deacons must know the deep truths, the mystery, of God’s redemption revealed in Christ. But on top of that, another critical qualification is needed: a clear conscience.

 

Paul talks about a “clear conscience” in many places in the Bible. A similar expression appears in an introductory passage to 1 Timothy:

 

“The goal of this command is love, which comes from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Some have wandered away from these and turned to meaningless talk.They want to be teachers of the law, but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talking about or what they so confidently affirm.”(1 Timothy 1:5-7)

 

Theexpression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 well conveys the intent of Paul’s letter. Paul says that people who have wandered from these “want to be teachers of the law, but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talking about or what they so confidently affirm.”

 

Consequently, fights, arguments, meaningless mythologies and worthless ideologies occur within the church. Paul says that people who cause and do such things are destroyers of the church, that is, false teachers.

 

The deep truths of the faith, that is, the mystery of the faith, shines when one has a clear conscience.

 

In verses 8 and 11, Paul listsfour characteristics of a deaconthat come from a clear conscience.

 

The first is being “worthy of respect.” In Greek this is“σεμνός(semnos),” which means to be of noble character and sincere/thoughtful in one’s actions. This word is repeated in verse 11 which teaches how women should act: “In the same way, the women are to be worthy of respect(σεμνός, semnos).” This refers to an attitude worthy of other people’s respect.

 

Second, deacons must be “sincere,” which in Greek is “δίλογος(dilogos).” This means to not have a forked tongue. Applying this to women, Paul describes it as not being “malicious talkers,” which in Greek is “διάβολος (diabolos).”

 

Not being sincere means, for example,flattering a person in one place and slandering that person in another. Someone who does this is full of lies, is selfish, and thinks self-centeredly.

 

Paul is telling his readers not to become such a person. Anyone serving the church must not act in this way; this attitude comes from an impure conscience, not a clear one.

 

Third, deacons must “not indulge in much wine.” For women, this means to be “temperate,” in Greek “νηφαλέος (néphalios).” This refers to a pure, sober state of mind and a calm, self-controlling attitude.

 

The final fourth quality is“not pursuing dishonest gain.” The original Greek word, “αἰσχροκερδής (aischrokerdés),” means “to gain unjust gain.” For women this means to be “πιστός (pistos),” which in the NIV is expressed as being “trustworthy in everything.”

 

This long list of qualities may confuse you. Now let’s summarize.

 

Those working in God’s household—that is, those working in the pillar and foundation of the truth—are those who have understood the secret of godliness, the mystery of the faith. Such people are qualified to do God’s work. At the same time, they must have a clear conscience. And those with a clear conscience are thosewho are worthy of respect, do not slander others, and do not say malicious things. They must also have a pure state of mind, not pursue dishonest gain, and be calm, self-controlled, trustworthy, and faithful.

 

Our living God calls such workers to serve the church and wishes to accomplish His ministry through them. What kind of person am I? Today, we will appoint senior deaconesses. Even today, our Lord calls people who keep hold of the mystery of the faith with a clear conscience.

btn_switch

디모데전서 3:8~11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설명해 줍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일입니다. 한 25년 전쯤 된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한 가정이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막 이민 온 분들이었습니다. “교회 다니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교회에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는 겁니다.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처음 온 것 같았습니다. 어색해 보이기도 했고, 예배를 잘 따라오지 못하더라고요. 당시 제가 섬긴 교회는 예배 후에 애찬식을 가졌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에 점심시간이 되면 탁자를 가져다놓고, 식탁을 설치하고, 의자를 내놓고 음식을 나누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막 준비하는 시간이었는데 아, 새로 오신 이분이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시는 겁니다. 식탁을 설치하는 것, 의자를 놓는 것, 수저를 세팅하는 것, 음식을 나르는 것… 어딘가 처음 온 분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처럼 봉사를 잘하시네요.”라고 말했더니 그분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예, 제가 절에서 많이 해 봐서 압니다.” 그때는 그런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다른 종교를 믿다가도 이민을 와서는 교회에 나와 정착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절에서 봉사 잘하는 분들이 교회에서도 봉사 잘하신다는 것을요. 그러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에서의 봉사가 다른 종교에서의 봉사, 사회단체에서의 봉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실 교회 안의 봉사나 다른 종교에서의 봉사는 유사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그렇고요.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음식을 만들어서 먹이고 격려하는 일도 그렇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도 비슷합니다. 서로 친교하고 사귀는 일도 비슷합니다. 차량 안내, 장례식에 가서 문상하고 위로하는 것, 결혼식에 가서 축하하고 축복하는 것… 얼마든지 다른 종교나 사회단체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일로만 말한다면 절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교회에서도 잘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사회에서 봉사 잘하는 사람이 교회에도 잘 섬깁니다. 성실한 사람은 어디서든지 성실하게 일하며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사회에서 봉사 활동을 많이 하던 사람이 이민 교회에 나오면서 꾸준히 섬기는 일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때로는 성실하고 지도력이 있는 그분들 때문에 분열이 일어나고, 편이 갈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회에는 열심히 다녔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앙생활은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한 교회 생활이 사실은 사회생활의 일부였고, 자신을 위한 친교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였을 뿐,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먼 봉사들이 이어진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의 다양한 봉사와 섬김이 다른 종교나 사회단체의 봉사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차이를 조금 더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겠습니다. 교회 안에도 수많은 봉사의 자리가 있습니다. 봉사의 직분을 가진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수천 명의 집사님들이 있습니다. 1,400여 명의 권사님들이 봉사의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직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설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며,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집사의 자격에 대한 내용입니다. 원어로 집사라는 단어는 ‘봉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 diakonos)입니다. ‘디아코노스’는 ‘종’이라는 뜻입니다. 웨이터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디아코노스라고 부르죠. 봉사하는 사람, 서비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집사라는 뜻입니다. 현대적인 의미로 본다면 교회 안에서 집사 혹은 권사와 같은 평신도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성경적인 단어입니다.

디모데전서를 쓰고 있을 당시, 에베소 교회를 포함한 초대 교회는 기독교의 부활 신앙이라는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전에 없었던 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전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당시에는 기독교 신앙이 신자의 삶에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마치 절에 나간 사람이 교회 나오면서 겪는 시행착오라고 할까요? 문화적으로, 교리적으로, 사회적으로 해결될 문제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거짓 교사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철학적인 토대를 가지고 기독교를 나름대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유혹에 빠져들곤 하였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나아가야 하는데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혼란스러워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씁니다. 교회를 바르게 이끌어 갈 일꾼이 필요하였고, 이 일을 위해서 직분자들이 세워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사도 바울은 크게 두 가지 사역을 이야기합니다. 기독교 교리를 어떻게 바르게 세워 갈 수 있을지, 어떻게 교회를 바르게 치리하고 이끌어 갈 수 있을지에 관해서 말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직분을 맡은 자들을 ‘감독’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다양한 섬김과 봉사를 담당하는 자들을 가리켜 ‘집사’라고 칭하였습니다. 교회의 직분을 두 가지로 구분한 바울이 특별히 봉사와 섬김을 위한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딤전 3:14~15a)

 

디모데가 머문 곳에 빨리 가서 가르치고 싶지만 그보다 급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바울이 지금 디모데전서를 쓰고 있습니다.

 

<직분자의 섬김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구원의 비밀을 받아들이는 믿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자, 바울이 먼저는 하나님의 집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해 줍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딤전 3:15b)

 

교회는 어떤 자리인가? 교회는 어떤 곳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이라는 말이 참 귀합니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며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 이곳이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원어로 ‘집’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단순히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라기보다는 일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성격이 강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경찰서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경찰들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보다는 경찰들이 일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죠. 또 소방서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소방관들이 대기하며 일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드시죠. 이것처럼 사역과 관련된 의미가 ‘집’이라는 표현에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은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교회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일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도 바울이 이것에 대하여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진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사역을 하는 곳입니다. 사교적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자기 계발을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의 터입니다. 진리가 머무르는 곳이고, 진리를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진리가 온 세상을 향하여 퍼져나가도록 하는 터전이자 기둥이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진리가 존재합니다. 교회에서 진리를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집사요, 권사요, 또한 감독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일을 하는 집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이 말은 어떤 사람이 집사로 선출될 수 있는지 그 자격에 관한 말이면서 동시에 집사 혹은 권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여섯 가지를 말합니다. 앞의 네 가지는 앞과 뒤를 감싸면서 중복해서 나타나고, 중간에 두 가지 중요한 자격 요건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8,9절과 11절 말씀이 그러합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딤전 3:8)

 

여기 네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정중하고, 둘째 일구이언하지 아니하고, 셋째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넷째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를 말한 후에 바울은 직분자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자격을 말해 줍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딤전 3:9)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자의 경우를 이야기하며 앞서 말한 네 가지 자격 조건을 반복하는데 조금은 다른 표현입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딤전 3:11)

 

정숙, 모함하지 아니함, 절제, 충성됨이 자격 조건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특히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는 표현입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여기서 ‘비밀’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뮈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 mustérion)인데 참으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사실 ‘비밀’이라기보다는 ‘신비’라는 말로 해석할 때 보다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비밀은 감추어져서 도저히 풀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뮈스테리온’은 비밀인 것이 드러나서 우리에게 나타나 알려지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지개를 볼 때 신비로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산에 올라가서 가득한 구름을 보며 신비를 느끼곤 합니다. 무지개를 통해, 구름을 통해 숨겨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신비는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 주실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뮈스테리온이라는 단어가 성찬과 세례를 통칭하는 성례를 의미할 때도 동일하게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말했을 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열어 주셔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이라는 뜻이겠죠. 그 믿음의 비밀이 무엇인지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딤전 3:16)

 

바울은 믿음의 비밀을 ‘경건의 비밀’로 고쳐 말하면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다고 말씀합니다.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부활하시고(의롭다 함을 받으시고), 전파되시고,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다시 올려지신(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분 안에 경건의 비밀, 경건의 신비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깨닫게 된 사람입니다. 예수만이 참된 소망이며, 주님이 유일한 희망이 되심을 아는 사람이 곧 믿음의 비밀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파하시고, 영원한 나라를 약속해 주신 능력이자 힘이신 주님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나에게 어떤 달란트가 있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사교를 목적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역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믿음의 비밀을 가졌느냐의 여부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의 교회에서 집사로, 권사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뮈스테리온은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셔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입니다.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 주님의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다면, 이어서 또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깨끗한 양심’이라는 표현입니다. 원어적으로 보면 깨끗한 양심과 더불어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비를 알게 된 사람, 그와 더불어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자격이 필요한데 바로 ‘깨끗한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믿음은 깨끗한 양심에 토대를 두며 선한 행실로 이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여러 곳에서 깨끗한 양심에 대해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서두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죠.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딤전 1:5~6)

 

“청결하고, 선한, 거짓이 없는”이라는 표현이 서신의 의도를 잘 드러내어 줍니다. 그 반대편에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선생이 되려 하지만 자신이 말하는 것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거짓사도들이 책망되고 있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교회 안에 다툼이 일어나고, 변론이 일어나고, 헛된 신화나 이념에 빠지는 자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믿음의 비밀, 구원의 신비는 깨끗한 양심과 더불어 아름답게 빛나게 됩니다. 둘은 서로 보완적이고, 또 함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비밀은 가지고 있어도 더러운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사역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동시에 아무리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있어도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 또한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며 동시적으로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깨끗한 양심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깨끗한 양심과 더불어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됩니까? 사도 바울은 깨끗한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행실을 네 가지로 말해 줍니다. 첫 번째로는 ‘정중하다’라는 표현입니다. 원어로는 셈노스(σεμνός, semnos)입니다. 품위가 있고, 행동이 진지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이 단어는 여자 집사의 경우를 말하는 11절에서도 똑같이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라는 표현에서 ‘정숙’이라는 표현이 역시 셈노스(σεμνός, semnos)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태도, 항상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 품위가 있는 모습. 이 모습 속에서 믿음의 비밀을 가진 모습이 들어 있고 깨끗한 양심이 함께 드러납니다.

두 번째로 디아로고스라는 단어인데,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δίλογος, dilogos)라고 번역된 단어입니다. 여자 집사의 경우에는 “모함하지 아니하며”(διάβολος, diabolos)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의미가 조금 다르지만 같은 맥락 안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 것, 앞에서는 칭찬하고 뒤돌아서서는 욕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깨끗한 양심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겠죠. 무언가 혼탁한 생각이 그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앞에서는 아부하면서 뒤에서는 비난하는 태도. 거짓이 배어 있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은 깨끗한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행실로 봉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을 여성의 경우에는 ‘네팔리오스’(νηφαλέος, néphalios) 곧 ‘절제하다’라는 단어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의 깨끗한 정신 상태를 말합니다. 차분하고, 침착하고, 절제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이것이 사역자의 자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자격 요건은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아이스크로 케르데스’(αἰσχροκερδής, aischrokerdés)라는 단어는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피스토스’(πιστός, pistos)라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충성되다, 신뢰할 만하다, 믿을 만하다는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말씀드려서 여러분의 정신이 깨끗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진리의 기둥과 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경건의 비밀, 믿음의 신비를 깨닫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정중하고, 모함하거나 악한 말을 하지 아니하며,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정신을 바르게 하여 침착하고, 절제할 줄 알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이러한 일꾼들을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주님의 일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지 생각하게 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씀을 듣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어떤 종이 되시겠습니까? 어떻게 충성된 종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집사의 자격 조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해 봅니다. 권사임직식이 4부 예배에 있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 권사님들, 또 소망교회의 모든 제직 한 분, 한분이 믿음의 비밀과 더불어 깨끗한 양심을 따라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귀한 청지기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3년 12월 1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딤전 3:8~11)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91장, 335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딤전 3:8~11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2월 10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사회단체 혹은 자선단체에서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주며,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의 섬김과 봉사는 사회에서의 섬김과 봉사와 무엇이 다를까요?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교회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 다양한 봉사들과 섬김들은 다른 종교나 다른 사회단체에서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 걸까요? 물론 섬김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으니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서 열심히 섬김과 봉사의 일을 하시는 분들로 인해 때로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열심히 교회생활은 하지만, 신앙생활이 아닌 사회생활, 봉사생활, 친교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 다양한 봉사들과 섬김들은 다른 종교나 다른 사회 단체에서의 그것과 다릅니다. 엄연한 치아가 존재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읽은 디모데전서 본문 말씀은 집사의 자격에 대한 내용입니다. 디모데전서를 쓰고 있는 당시에 에베소 교회를 포함한 초대교회는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된 것이기에,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종교적 경험들, 그러니까 다른 신을 섬기던 문화에서 어떻게 이 새로운 신앙으로 전환해야 하는지가 큰 과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르게 교회를 이끌어갈 일꾼들이 많이 필요하였고, 그 일을 위해 직분자들이 세워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일을 하는 집사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가?” 이 말은 “어떤 사람을 집사로 혹은 권사로 뽑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내가 집사요 권사라면 어떤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진리의 기둥과 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경건의 비밀, 믿음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정중하고, 정숙하고, 모함하거나 악한 말을 하지 아니하며,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정신을 바르게 하여 침착하고 절제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아 믿을 만하고 충성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일꾼을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시며, 그들을 통해 주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우리 주님은 믿음의 비밀을 깨끗한 양심 속에 품은 사람을 부르십니다.

 

 

나누기

 

  1.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 봉사생활, 친교생활을 하는 것이다”라는 말에 대해 무엇을 느끼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2.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하나님께서 나를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신다면?

 

 

마무리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이 땅에 귀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어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원의 신비, 믿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주님의 일꾼으로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깨끗한 양심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를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Connection Car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