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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눅17:5) 그저 지나가는 듯한 말씀입니다. 평범한 이야기의 흐름 같지만, 이 짧은 요청에는 주님을 따르는 수많은 제자의 로망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실 때 사도들이 이 질문을 던져준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로써 주님께 믿음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종종 교인들을 만날 때면, 저에게 이런 요청을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남편의 믿음이 아직 작습니다. 우리 남편의 믿음이 더 좋아지면 좋겠어요. 기도해 주세요.” 또는 “우리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도록 꼭 기도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유창하게 기도하시는 권사님이나 장로님을 보면서 ‘나도 저분처럼 믿음이 좋아지면 좋겠다.’라고 부러워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남들이 감당할 수 없는 봉사를 지속적으로 잘 감당하시는 분을 보고 감탄하면서 ‘나도 저분처럼 믿음이 깊어지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큰 헌금을 하시는 분을 보거나 새벽기도회를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신앙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소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마 ‘믿는 사람으로서 조금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믿음이 좀 더 좋아지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더 능력 있는 믿음, 더 깊은 믿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첫 절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누가복음 17:5)
이 말씀에 아주 중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더 큰 믿음을 주십시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이 요청은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 아무리 봐도 내 속에는 믿음을 만들어 낼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믿음을 허락해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큰 믿음을 선물로 주십시오. 예수님을 더 잘 믿고 싶고 잘 따르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적어서입니다. 주님, 그러니 우리에게 더 많은 믿음을 주십시오.”
사실 사도들은 제대로 찾았습니다. 제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동일한 말씀을 듣고 같은 자리에 앉아 말씀을 읽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기는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경우를 확인하곤 합니다. 같은 봉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끝까지 주님께 봉사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끝까지 봉사하긴 하는데 인간적인 노력과 계산으로 봉사하다 마무리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도저히 믿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급격히 변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경우도 마주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믿음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러 나가지 않습니까? 좀 더 강하게, 힘 있게 전도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아, 내가 이 사람을 설득해야지. 반드시 설복시켜야지. 그러면 예수님을 믿겠지?’ 혹시 이런 마음으로 나가셨습니까? 사실 전도는 그렇게 한다고 잘 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전도하러 나가서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전할 때, 이미 모든 게 준비돼 있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시켜 주시고 믿음을 허락해 주셔서 복음의 초청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주도권 아래 있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주님께서 믿음의 생명력과 종의 교훈을 전하십니다. >
제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아주 적절한 요청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참 흥미롭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누가복음 17:6)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주님께서는 ‘겨자씨 비유’를 들어 믿음에 관한 답변을 하십니다. 한글 성경에는 ‘겨자씨 한 알만한’이라고 기록돼 있지만, 원어를 살펴보면 ‘겨자씨와 같은’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즉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 있다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께 큰 믿음을 원했습니다. “주님,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더 큰 믿음을 주십시오.” 믿음의 크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가장 작은 겨자씨를 가지고 오십니다. 그리고 ‘겨자씨 같은 믿음이 있다면’이라고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큰 믿음이 중요한 것도 아니요, 믿음이 커져 가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님을 겨자씨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 비유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겨자씨 비유로 말씀하신 또 다른 본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겨자씨와 같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겨자씨가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정도가 된다고 이르셨습니다. 이는 ‘생명력’에 관한 말씀입니다. 겨자씨의 생명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입니다. 이로써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는데, 바로 생명력이다.”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생명력이 있습니다. 더해지는 믿음이 아닙니다. 덧붙여지는 믿음도 아닙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도, 생명력 있는 믿음은 점점 자라나는 나무처럼 무성해져서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누가복음 17장 6절에서 주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들이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믿음은 겨자씨와 같아서 자라고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결국은 큰 믿음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이 다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잘 이어지던 말씀이 뭔가 어색해집니다. 누가복음 17장 7~9절입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누가복음 17:7~9)
여러분, 이 말씀의 흐름이 잘 연결됩니까? 사도들은 예수님에게 믿음을 더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뒤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믿음’이란 단어는 나타나지도 않고, 도리어 ‘종’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종들이 밖에서 일하고 돌아왔다 해서 주인이 쉬라고 말하겠느냐고, 집에 돌아온 종은 또다시 집안일을 하며 시중들지 않겠느냐고, 그것이 당연한 게 아니냐는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또 종들이 명한 대로 다 했다 해서 그 종에게 감사하겠느냐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믿음에 관한 말씀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10절은 엉뚱한 결론에 이르는 듯한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10)
이 본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종’, ‘무익한 종’, ‘명령’이란 단어입니다. 7절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종’, ‘무익한 종’, 그리고 ‘명령한 것을 다 행한 후에’라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라, ‘명령’에 따라 행하는 ‘종’, ‘무익한 종’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시작했는데, 마지막은 종입니다. 마지막은 명령입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 종의 의식을 가질 때, 생명력 있는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이 말씀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복음 17장 앞부분의 말씀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7장 1절 이후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7:1~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로는 “사람들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누구든지 회개하여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말씀은 강한 어조였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예를 드시면서 강력하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실 때는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에 관한 말씀에서도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요? 아마 제자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일곱 번씩 용서할 수 있을까? 소자들을 실족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주님의 이 말씀 후에 이렇게 요청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눅17:5)
이와 같은 배경에서 오늘 본문이 등장한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작은 자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요?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줘야 한다고요? 엄청나군요! 정말입니까? 과연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그러니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은 다음과 같은 말로도 들립니다. “예수님, 그 정도라면 지금의 저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제 믿음이 작습니다. 그러니 지금 내 모습, 내 상황으로는 주님께서 요청하시는 바를 해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커지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그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사실 우리도 종종 하나님께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주님의 명령을 들을 때마다 종종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요? 원수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요? 엄청나네요. 그 정도까지 하라는 말씀입니까? 마음을 바치라고요? 십일조를 바치라고요? 항상 기뻐하라고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요? 주일성수를 잘 하라고요? 정말 그 모든 것을 다 해야 합니까? 그 정도라면 지금 제 모습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믿음이 작거든요. 만약 제게 그것을 요구하시려면, 주님께서 제게 믿음을 더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린 사람들 혹은 작은 자들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 그리고 사람들을 용서하여라.” 그러자 제자들이 말합니다.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믿음을 더해 달라고? 더 큰 믿음을 달라는 말이냐? 그렇게 하면 너희가 다른 사람을 실족하지 않게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렇게 해 주면 용서할 수 있단 말이냐? 너희에게 믿음을 조금 더 주면, 너희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냐?’라는 마음이 드시지 않았을까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바가 이런 내용입니다. “너희는 지금 잘못 알고 있다. 믿음은 크기가 아니다. 믿음은 ‘생명’이다. 믿음에 생명력이 있을 때 능력이 있는 것이다. 생명이 있으면 자라나게 되고, 생명만 있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 타령을 하고 있구나. 더 큰 믿음을 달라고? 더 좋은 믿음을 달라고? 지금은 믿음이 약해서 못한다고? 그렇게 변명을 하고 있지. 그러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믿음이 약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믿음이 작아서 못 하는 게 아니라, 믿음의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떻겠니? 너희 자신을 선택권 있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겠니? 너희 스스로를 ‘종’이라고 생각해 보렴. 하나님의 명령이 너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해 보렴. 종이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니? 밭에서 일했다고 집에 와서 생색내는 종이 어디 있겠니? 다시 옷깃을 여미고 집안일을 하지 않겠니? 모든 일을 한 후에라도 종이 해야 할 말은 무엇이겠니? 바로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런 내용입니다. “믿음을 더해 달라는 말로 핑계 대지 말아라. 도망가려 하지 말아라. 내 명령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하지 말아라. 선택권이 있는 듯 이야기하지 말아라. 능력의 문제로 내 명령을 회피하려 하지 말아라. 나는 너에게 명령한다. 용서하여라. 작은 자들을 실족하게 하지 말아라. 이것은 나의 명령이다. 결코 믿음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됩니다. >
믿음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종의 의식이 없기에 못 할 뿐입니다. 순종이 없어서 못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에게 믿음을 더 달라고 요구한다. 믿음을 더 주시면, 내가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다. 도리어 나는 너희에게 요구한다. 나의 말에 순종하라. 내 명령에 순복하라. 무익한 종의 의식을 가지고 명령대로 행하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적어서 성수주일을 못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을 더해 주셔야 성수주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을 더해 주셔야만 헌금 생활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커져야만 봉사할 수 있겠습니까? 내 믿음을 하나님께서 더 크게 만들어 주셔야만 십자가를 질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더 많아져야, 더 커져야만 우리가 주님의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이 부족해서 사랑하지 못 하는 것입니까? 믿음이 작아서 용서하지 못 하는 것입니까? 믿음이 부족해서 막말하고, 행실이 엉망인 것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누가복음 17:7~9)
종의 의식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크기를 운운하며 주저하지 말고, 겨자씨 같은 믿음만 갖고 있어도 역사가 바뀐다는 의식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바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는 또 다른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결국 종의 의식을 가진 순종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새겨들어야만 합니다. 믿음을 키워 가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이 커지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믿음이 더해지는 방식은 어디서 나타날까요? 상상으로부터 올까요? 우리의 어떤 감각기관을 하나님께서 자극해 주셔야 믿음이 갑자기 불어나게 되는 것일까요? 믿음은 어디서 어떻게 자라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 주고 계십니다. 믿음은 말씀을 순종함으로, 종의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함으로 성장한다고 말입니다. 행동으로 옮길 때, 순종으로 이어질 때, 우리의 믿음은 자라납니다. 믿음은 행위를 통해, 순종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행위와 믿음은 결코 나눌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큰 믿음이 필요하십니까? 더 큰 믿음을 얻기 원하신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믿음이 자라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말씀 앞에 나아갑시다. 말씀을 붙잡고, 순종해 봅시다.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나씩 용서하라는 말씀을 따라 용서하고, 실족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을 따라 실족시키지 않도록 노력하며,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길입니다. 큰 믿음은 ‘순종’을 통해 형성됩니다. 믿음은 행동입니다.
Do You Need to Increase Your Faith?
Luke 17:5~10
Today’s Scripture starts with thisverse:“The apostles said to the Lord, ‘Increase our faith!’”(Luke 17: 5)This short request reflects the romantic ideas of the disciples who could not emulate Jesus. I am grateful that they asked Jesus this question for theyleft a precious lesson to all generations that followed.
Many of our congregants whom I meet say they want their husband’s or their family’s faith to grow. They ask me to pray for them. Some people envyelders who pray long, faithful prayers and wish they had a good faith like them. Some yearn for a deeper faith when they see someone at churchserve happily even when the work is extremely harsh. Some feel that their faith is inferior to that of others when they see other people at church make a great amount of offering or never miss a morning prayer meeting. If a Christian had one wish, I think it would be to have a better, greater faith.
Dear brothers and sisters, do you also wish for a greater faith? If so, how is this gained? I hope we will be able to hear the Lord’s voice through Today’s Scripture.
Let’s look at the first verse of the passage again: “The apostles said to the Lord, ‘Increase our faith!’” (Luke 17: 5) Here we learn a critical point. The apostles asked Jesus for a greater faith, for their faith to be increased.
This request means something like this: ‘Jesus, no matter how hard I look within myself, I cannot see how I myself can make my faith grow. So, Lord, increase my faith. Give me a greater faith as a gift. I want to have faith, but it’s hard. Lord, increase my faith.’
The apostles knew that faith was a gift from God. A Christian who follows the Lord knows this. This is why we, too, often pray, ‘Lord, increase my faith.’
Thus, the apostles told Jesus their wish for a greater faith. Jesus, however, replied in a most interesting way. First, He said, “If you have faith as small as a mustard seed, you can say to this mulberry tree, ‘Be uprooted and planted in the sea,’ and it will obey you.”(Luke 17:6)
While the disciples wanted a greater faith, Jesus started His reply with, “If you had a faith as small as this mustard seed…” By talking about a mustard seed, Jesus is saying that “increasing” one’s faith is not what is important. The mustard seed signifies something else, something more important: Life. Jesus is saying that what matters is whether your faith has life.
A mustard seed is tiny, but holds life within. What is important is a faith full of life, not an increase of or an extension of faith. Such a living faith will see a mulberry tree planted in the sea (Luke 17:6) and mountains move (Matthew 17:20). Jesus is saying that a faith that has life is like a mustard seed. Just as the seed grows into a great big tree, where birds build their nest, such a faith grows and becomes a great faith.
So far, Jesus’ words are easy to understand. But what follows is not. Let’ take a deeper look at the verses that follow: “Suppose one of you has a servant plowing or looking after the sheep. Will he say to the servant when he comes in from the field, ‘Come along now and sit down to eat’?Won’t he rather say, ‘Prepare my supper, get yourself ready and wait on me while I eat and drink; after that you may eat and drink’?Will he thank the servant because he did what he was told to do?”(Luke 17: 7-9)
Is this reply easy to understand? Doesn’t it seem out of context? The disciples asked for a greater faith, to which Jesus first replied that even a faith as small as a mustard seed will see a mulberry tree planted in the sea. But then He talks about completely different topic, a servant.
If your servant came back after plowing the field, would you praise him and tell him to rest? No. You would still expect him to do his household chores. You wouldn’t thank him for doing as he was ordered.
Furthermore, verse 10 seems like an odd conclusion: “So you also, when you have done everything you were told to do, should say, ‘We are unworthy servants; we have only done our duty.’”(Luke 17: 10)
What is Jesus trying to say? How can we interpret His reply to the disciples’ request to increase their faith? What is the correlation between the parable of the servant and faith?
Some expressions and words that stand out in the verses following verse 7 are: “servant”; “he did what he was told to do”; and “when you have done everything you were told to do.”
In other words, the topic of Jesus’ answer is a servant who does everything that he was told to do. Why has the subject changed? The topic was originally faith, but now Jesus is talking about a servant. Why?
How does this subject fit in? What is the link? To answer these questions we must read the passages that precede Today’s Scripture.
Luke 17 starts with Jesus’ teaching: “Jesus said to his disciples: ‘Things that cause people to stumble are bound to come, but woe to anyone through whom they come.It would be better for them to be thrown into the sea with a millstone tied around their neck than to cause one of these little ones to stumble.So watch yourselves.If your brother or sister sins against you, rebuke them; and if they repent, forgive them.Even if they sin against you seven times in a day and seven times come back to you saying, I repent, you must forgive them.’”(Luke 17:1-4)
Jesus asks largely two things of his disciples: First, do not make others stumble. Second, forgive anyone who repents.
Jesus stresses these two points. He says it is better to be thrown into the sea with a millstone around one’s neck than to make a little one stumble. He emphasizes that we should forgive seven times a day if a brother repents.
Hearing these teachings, the disciples would have felt a great weight on their shoulders. ‘Would wereally be able to do what Jesus says?’ They weren’t sure. They lacked confidence, which is why they said, “Increase our faith!” (Luke 17: 5)
Thus, the reason they asked for more faith was because of Jesus’ earlier teachings. This is probably what the disciples thought: ‘I must not even let one little soul stumble? Forgive seven times a day? Whew! That’s tall order, Jesus. It’s impossible. My faith is not that strong. I cannot possible do as You say. Not unless my faith grows. So, Jesus, if this is what You ask of us, give us a greater faith. Increase it!’
Isn’t this what we often say to God too? ‘Lord, You want me to love my neighbor? My enemies? That’s too much. You want my heart? Tithes? You want me to be joyful always? Never stop praying? You’re asking too much. I simply cannot do it with my small faith. I’ll do it when my faith grows. So, Lord increase my faith. Then I’ll give it a try.’
This was what the disciples were thinking when they asked for more faith. Let’s go back to the earlier verses with this perspective in mind.
Jesus talked about a faith as small as a mustard seed. ‘You want me to increase your faith, do you? Then do you think you will not make others fall? Will you be able to forgive seven times a day? No, you have it wrong. Faith is not about its size. It’s about life. If a faith holds life within, then it has power. If a faith has life, then it will naturally grow.’
We can interpret Jesus’ words as follows: ‘You talk about faith. You use your weak faith as an excuse for not doing what I ask of you. Weak faith is not why you failed to do as I say. It’s not because your faith is small.’
‘Think about it this way. You don’t have a choice in this matter. You are servants who have been told by God to carry out an order. Isn’t it the servant’s duty to do as he is told? Have you ever heard of a servant feeling proud of himself for working in the field as he was told? And doesn’t he have to get back to work after returning to the house? He must carry on with his household chores. And even after finishing them, what should he say? Shouldn’t he just say that it was only his duty?’
‘Don’t use small faith as an excuse. Don’t try to run from your duty. Don’t speak as if you have a choice. Don’t shirk from your duties using lack of ability as an excuse. I command you: Forgive! Don’t ever let a little one stumble. This is an order. This is not an issue of faith.Lack of faith is not the problem. The problem is that you don’t think or act like a servant. It’s because you lack obedience.’
This is what the Lord is trying to say to His disciples.
‘You ask me to increase your faith. But I ask you to obey me. Obey my words. Just do as you have been told to do, as the unworthy servant.’
Dear Church, do you occasionally miss Sunday services because of your small faith? Are you not tithing because of a small faith? Will you serve only after your faith grows? Will you bear the cross only after your faith has increased? Do you think you will be able to keep His commands only after you possess a greater faith? Are you not able to forgive and love others because your faith is small? Are your speech and actions reckless because your faith is weak?
Our Lord speaks to us: “Suppose one of you has a servant plowing or looking after the sheep. Will he say to the servant when he comes in from the field, ‘Come along now and sit down to eat’?Won’t he rather say, ‘Prepare my supper, get yourself ready and wait on me while I eat and drink; after that you may eat and drink’?Will he thank the servant because he did what he was told to do?”(Luke 17: 7-9)
All that is asked of us is to obey His commands—like the unworthy servant. Don’t procrastinate, usingthe size of your faith as an excuse. All that is required is to obey His words with a belief that even a faith as small as a mustard seed will change history. This is what the Lord wants from us.
Another secret lies in today’s passage. When the disciples asked for more faith, Jesus asked for obedience. We must take this to heart.
How does our faith grow? How can it be increased? Not by imagining it. Faith doesn’t grow by praying and stimulating a certain bodily organ. Then how does it grow?
Today, our Lord speaks to us: Faith grows by obeying HisWord and His commands.
Do you want a greater faith? First, obey. Do you want your faith to grow? Obey the Word. Obey the Lord like the unworthy servant who said, ‘I only did what I was told to do. It was my duty.’
누가복음 17: 5 ~ 10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눅17:5) 그저 지나가는 듯한 말씀입니다. 평범한 이야기의 흐름 같지만, 이 짧은 요청에는 주님을 따르는 수많은 제자의 로망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실 때 사도들이 이 질문을 던져준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로써 주님께 믿음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종종 교인들을 만날 때면, 저에게 이런 요청을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남편의 믿음이 아직 작습니다. 우리 남편의 믿음이 더 좋아지면 좋겠어요. 기도해 주세요.” 또는 “우리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도록 꼭 기도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유창하게 기도하시는 권사님이나 장로님을 보면서 ‘나도 저분처럼 믿음이 좋아지면 좋겠다.’라고 부러워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남들이 감당할 수 없는 봉사를 지속적으로 잘 감당하시는 분을 보고 감탄하면서 ‘나도 저분처럼 믿음이 깊어지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큰 헌금을 하시는 분을 보거나 새벽기도회를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신앙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소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마 ‘믿는 사람으로서 조금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믿음이 좀 더 좋아지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더 능력 있는 믿음, 더 깊은 믿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첫 절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누가복음 17:5)
이 말씀에 아주 중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더 큰 믿음을 주십시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이 요청은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 아무리 봐도 내 속에는 믿음을 만들어 낼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믿음을 허락해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큰 믿음을 선물로 주십시오. 예수님을 더 잘 믿고 싶고 잘 따르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적어서입니다. 주님, 그러니 우리에게 더 많은 믿음을 주십시오.”
사실 사도들은 제대로 찾았습니다. 제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동일한 말씀을 듣고 같은 자리에 앉아 말씀을 읽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기는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경우를 확인하곤 합니다. 같은 봉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끝까지 주님께 봉사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끝까지 봉사하긴 하는데 인간적인 노력과 계산으로 봉사하다 마무리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도저히 믿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급격히 변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경우도 마주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믿음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러 나가지 않습니까? 좀 더 강하게, 힘 있게 전도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아, 내가 이 사람을 설득해야지. 반드시 설복시켜야지. 그러면 예수님을 믿겠지?’ 혹시 이런 마음으로 나가셨습니까? 사실 전도는 그렇게 한다고 잘 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전도하러 나가서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전할 때, 이미 모든 게 준비돼 있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시켜 주시고 믿음을 허락해 주셔서 복음의 초청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주도권 아래 있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주님께서 믿음의 생명력과 종의 교훈을 전하십니다. >
제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아주 적절한 요청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참 흥미롭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누가복음 17:6)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주님께서는 ‘겨자씨 비유’를 들어 믿음에 관한 답변을 하십니다. 한글 성경에는 ‘겨자씨 한 알만한’이라고 기록돼 있지만, 원어를 살펴보면 ‘겨자씨와 같은’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즉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 있다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께 큰 믿음을 원했습니다. “주님,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더 큰 믿음을 주십시오.” 믿음의 크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가장 작은 겨자씨를 가지고 오십니다. 그리고 ‘겨자씨 같은 믿음이 있다면’이라고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큰 믿음이 중요한 것도 아니요, 믿음이 커져 가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님을 겨자씨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 비유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겨자씨 비유로 말씀하신 또 다른 본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겨자씨와 같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겨자씨가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정도가 된다고 이르셨습니다. 이는 ‘생명력’에 관한 말씀입니다. 겨자씨의 생명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입니다. 이로써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는데, 바로 생명력이다.”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생명력이 있습니다. 더해지는 믿음이 아닙니다. 덧붙여지는 믿음도 아닙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도, 생명력 있는 믿음은 점점 자라나는 나무처럼 무성해져서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누가복음 17장 6절에서 주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들이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믿음은 겨자씨와 같아서 자라고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결국은 큰 믿음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이 다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잘 이어지던 말씀이 뭔가 어색해집니다. 누가복음 17장 7~9절입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누가복음 17:7~9)
여러분, 이 말씀의 흐름이 잘 연결됩니까? 사도들은 예수님에게 믿음을 더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뒤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믿음’이란 단어는 나타나지도 않고, 도리어 ‘종’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종들이 밖에서 일하고 돌아왔다 해서 주인이 쉬라고 말하겠느냐고, 집에 돌아온 종은 또다시 집안일을 하며 시중들지 않겠느냐고, 그것이 당연한 게 아니냐는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또 종들이 명한 대로 다 했다 해서 그 종에게 감사하겠느냐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믿음에 관한 말씀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10절은 엉뚱한 결론에 이르는 듯한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10)
이 본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종’, ‘무익한 종’, ‘명령’이란 단어입니다. 7절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종’, ‘무익한 종’, 그리고 ‘명령한 것을 다 행한 후에’라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라, ‘명령’에 따라 행하는 ‘종’, ‘무익한 종’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시작했는데, 마지막은 종입니다. 마지막은 명령입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 종의 의식을 가질 때, 생명력 있는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이 말씀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복음 17장 앞부분의 말씀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7장 1절 이후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7:1~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로는 “사람들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누구든지 회개하여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말씀은 강한 어조였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예를 드시면서 강력하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실 때는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에 관한 말씀에서도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요? 아마 제자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일곱 번씩 용서할 수 있을까? 소자들을 실족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주님의 이 말씀 후에 이렇게 요청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눅17:5)
이와 같은 배경에서 오늘 본문이 등장한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작은 자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요?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줘야 한다고요? 엄청나군요! 정말입니까? 과연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그러니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은 다음과 같은 말로도 들립니다. “예수님, 그 정도라면 지금의 저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제 믿음이 작습니다. 그러니 지금 내 모습, 내 상황으로는 주님께서 요청하시는 바를 해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커지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그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사실 우리도 종종 하나님께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주님의 명령을 들을 때마다 종종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요? 원수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요? 엄청나네요. 그 정도까지 하라는 말씀입니까? 마음을 바치라고요? 십일조를 바치라고요? 항상 기뻐하라고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요? 주일성수를 잘 하라고요? 정말 그 모든 것을 다 해야 합니까? 그 정도라면 지금 제 모습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믿음이 작거든요. 만약 제게 그것을 요구하시려면, 주님께서 제게 믿음을 더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린 사람들 혹은 작은 자들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 그리고 사람들을 용서하여라.” 그러자 제자들이 말합니다.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믿음을 더해 달라고? 더 큰 믿음을 달라는 말이냐? 그렇게 하면 너희가 다른 사람을 실족하지 않게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렇게 해 주면 용서할 수 있단 말이냐? 너희에게 믿음을 조금 더 주면, 너희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냐?’라는 마음이 드시지 않았을까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바가 이런 내용입니다. “너희는 지금 잘못 알고 있다. 믿음은 크기가 아니다. 믿음은 ‘생명’이다. 믿음에 생명력이 있을 때 능력이 있는 것이다. 생명이 있으면 자라나게 되고, 생명만 있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 타령을 하고 있구나. 더 큰 믿음을 달라고? 더 좋은 믿음을 달라고? 지금은 믿음이 약해서 못한다고? 그렇게 변명을 하고 있지. 그러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믿음이 약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믿음이 작아서 못 하는 게 아니라, 믿음의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떻겠니? 너희 자신을 선택권 있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겠니? 너희 스스로를 ‘종’이라고 생각해 보렴. 하나님의 명령이 너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해 보렴. 종이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니? 밭에서 일했다고 집에 와서 생색내는 종이 어디 있겠니? 다시 옷깃을 여미고 집안일을 하지 않겠니? 모든 일을 한 후에라도 종이 해야 할 말은 무엇이겠니? 바로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런 내용입니다. “믿음을 더해 달라는 말로 핑계 대지 말아라. 도망가려 하지 말아라. 내 명령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하지 말아라. 선택권이 있는 듯 이야기하지 말아라. 능력의 문제로 내 명령을 회피하려 하지 말아라. 나는 너에게 명령한다. 용서하여라. 작은 자들을 실족하게 하지 말아라. 이것은 나의 명령이다. 결코 믿음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됩니다. >
믿음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종의 의식이 없기에 못 할 뿐입니다. 순종이 없어서 못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에게 믿음을 더 달라고 요구한다. 믿음을 더 주시면, 내가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다. 도리어 나는 너희에게 요구한다. 나의 말에 순종하라. 내 명령에 순복하라. 무익한 종의 의식을 가지고 명령대로 행하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적어서 성수주일을 못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을 더해 주셔야 성수주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을 더해 주셔야만 헌금 생활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커져야만 봉사할 수 있겠습니까? 내 믿음을 하나님께서 더 크게 만들어 주셔야만 십자가를 질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더 많아져야, 더 커져야만 우리가 주님의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이 부족해서 사랑하지 못 하는 것입니까? 믿음이 작아서 용서하지 못 하는 것입니까? 믿음이 부족해서 막말하고, 행실이 엉망인 것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누가복음 17:7~9)
종의 의식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크기를 운운하며 주저하지 말고, 겨자씨 같은 믿음만 갖고 있어도 역사가 바뀐다는 의식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바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는 또 다른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결국 종의 의식을 가진 순종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새겨들어야만 합니다. 믿음을 키워 가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이 커지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믿음이 더해지는 방식은 어디서 나타날까요? 상상으로부터 올까요? 우리의 어떤 감각기관을 하나님께서 자극해 주셔야 믿음이 갑자기 불어나게 되는 것일까요? 믿음은 어디서 어떻게 자라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 주고 계십니다. 믿음은 말씀을 순종함으로, 종의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함으로 성장한다고 말입니다. 행동으로 옮길 때, 순종으로 이어질 때, 우리의 믿음은 자라납니다. 믿음은 행위를 통해, 순종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행위와 믿음은 결코 나눌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큰 믿음이 필요하십니까? 더 큰 믿음을 얻기 원하신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믿음이 자라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말씀 앞에 나아갑시다. 말씀을 붙잡고, 순종해 봅시다.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나씩 용서하라는 말씀을 따라 용서하고, 실족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을 따라 실족시키지 않도록 노력하며,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길입니다. 큰 믿음은 ‘순종’을 통해 형성됩니다. 믿음은 행동입니다.
2020년 9월 2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믿음이 더 필요하십니까” (눅 17:5-10)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93장, 44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눅 17:5-10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9월 20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 본문에서 사도들은 큰 믿음을 원하는데,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비록 겨자씨가 작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갑자기 무익한 종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의 맥락이 잘 이해가 되시나요? 믿음과 종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을 해석하려면 먼저 눅 17:1절부터 5절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실족하게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용서해야 한다’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아마도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작은 자 중에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안된다고요?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요? 엄청나네요.. 그 정도까지요? 지금 저로서는 불가능해요. 저는 믿음이 적거든요. 더 큰 믿음을 주세요.’ 그리고 5절의 청원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17:5).
이때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더해달라고? 더 큰 믿음을 달라고? 그러면 네가 사람을 실족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할 수 있을거라고? 너희는 지금 잘 못 알고 있다. 믿음은 ‘크기’가 아니다. 믿음은 ‘생명’이다.’ 믿음에 생명이 있으면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생명이 있다면, 그 믿음은 자연히 자라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종의 의식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순종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너희는 나에게 믿음을 더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요구한다. 순종하라. 나의 말에 순종하라. 무익한 종의 의식을 가지고 명한대로 행하라.’
성도 여러분! 믿음이 적어서 주일 성수를 못하시나요? 헌금생활을 잘 못하십니까? 믿음이 더 커져야만 봉사하시겠습니까? 믿음이 더 깊어져야 십자가를 지시겠습니까? 믿음이 부족해서 사랑하지 못하고, 믿음이 부족해서 용서하지 못하고, 믿음이 부족해서 막말을 하고 행실이 엉망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은, 믿음의 크기를 말하면서 주저하지 말고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키워 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더 큰 믿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상상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만 해서 어떤 장기 부분에 자극이 와서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어떻게 자라납니까?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실족시키지 말라,’ ‘용서하라’ 등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믿음은 성장합니다. 더 큰 믿음은 순종을 통해 만들어 집니다. 믿음은 행동입니다.
나누기
1. 나의 믿음의 롤-모델(role model)은 누구인가요? 나에게는 어느 정도 더 믿음이 필요할까요?
2.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보다 ‘종의 의식’ 즉 순종의 마음을 더 강조하십니다. 요즘 나에게 주시는 ‘순종의 마음’은 무엇인가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늘 믿음이 적다는 핑계로 주님의 명령,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 붙잡고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며, 봉사와 섬김을 실천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