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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이 된 어떤 곳

창세기 28: 10 ~ 19

김경진 목사

2019.09.01

< 도망자 신세가 된 야곱의 현실이 애처롭습니다. >

야곱의 이야기는 늘 우리의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그 가운데 야곱이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산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후 야곱은 형이 사냥 나간 틈을 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당시 눈이 잘 보이지 않던 아버지 이삭까지 속이며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사냥하고 돌아온 에서가 이 사실을 알고는 야곱을 미워하게 되고, 마음 깊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겠다.’라는 결심을 품게 됩니다. 그 내용이 창세기 27장 4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창세기 27:41)

야곱과 에서의 갈등을 바라보며, 아버지 이삭은 야곱에게 고향인 밧단아람에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들 가운데 아내를 맞이하라고 합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야곱이 아내를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었으며,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당시 야곱을 죽이려는 에서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탈출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경우는,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종을 보내 리브가를 맞아 오도록 했습니다. 당시 많은 종과 사환뿐만 아니라 짐승과 재산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야곱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는 종들과 함께 떠나지도 않았고, 복장은 단출했으며, 더욱이 몸만 가지고서, 참으로 불쌍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세기 28:10)

이후 11절 앞부분에서는 흥미로운 단어도 눈에 띕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창세기 28:11 중)

당시 야곱이 잠을 자게 된 땅은 ‘루스’라는 곳이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루스까지는 약 90km 떨어진 거리입니다. 아마 당시 야곱은 하루 혹은 이틀을 걷고 또 걸으며 그곳을 지나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여정 가운데 밤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때 “한 곳에 이르러”라고 개역성경은 담담히 야곱의 여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길을 가다 한 곳에 이르러 밤을 보내게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새번역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창세기 28:11 중, 새번역)

처량한 느낌이 물씬 나는 장면입니다. 더욱 안쓰러운 장면은 이후의 내용입니다.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세기 28:11 중)

땅바닥의 돌을 베개로 삼아 잠을 청하는 야곱입니다. 얼마나 애처롭습니까? 에서에게 장자권을 사고,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챈 야곱의 현실은 사실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마치 도망자처럼 홀로 광야에 섰습니다. 홀로 겉옷을 담요 삼아 돌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하늘엔 별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야곱은 밖에 나다니기를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머니를 도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던 아들이었고, 조용한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밖에 있습니다. 그것도 홀로 광야에 있습니다. 홀로 여행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입니다.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맹수에 대한 두려움, 강도의 위협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앞으로 내 미래가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 속에서 그는 밤새 뒤척였을 것입니다.

< 야곱에게 벧엘은 지나쳐 가는 ‘어떤 곳’일 뿐이었습니다. >

그런데 야곱이 그곳에서 놀라운 꿈을 꿉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게다가 또렷하게 하나님의 음성도 들려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창세기 28:13 중)

야곱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그리곤 감동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중)

또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창세기 28:17 중)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로 삼은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칭합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 벧엘에서 하나님께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나의 가는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이후 야곱에게 이 장소, ‘벧엘’이란 이 자리는 더 이상 ‘어떠한 곳’, ‘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벧엘은 야곱에게 ‘그 장소’, ‘바로 그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서약한 바로 그 자리,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 하나님을 만난 바로 그 자리가 되었습니다.
아마 이 사건은 야곱에게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신앙적 사고의 지평이 확장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이삭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니 야곱에게 하나님은 브엘세바에만 계시는 하나님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브엘세바가 어디입니까?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암양 일곱 마리를 주고 맹세하며 산 우물이 있던 곳입니다. 맹세의 우물이 있던 곳, 즉 물이 있었던 곳입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풍족한 물과 더불어 아버지 이삭과 함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도망자 신세입니다. 광야 같은 곳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지던 시간, 그는 ‘어떤 곳’에 머물게 됩니다. 야곱에게 그곳은 그저 지나치는 곳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풍경이나 환경을 살펴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곳을 지나쳐 가고 있었고, 그저 밤이 되어 잠시 머물렀을 뿐입니다. 당시 하란으로 향하고 있었고, 잠시 머문 그곳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 돌베개를 베고 누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로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마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시는구나!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는 이곳, 바로 이곳에도 하나님께서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나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구나!’
야곱에게는 놀라운 도약이었습니다. 본문의 흐름상, 결코 야곱이 의도를 가지고 벧엘을 찾아왔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16절에 나오는 감탄사가 그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기대를 하지 않았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야곱의 여정은 분명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약 800km 정도 되는 길을 완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능한 빨리 가려 했을 것입니다. 혼자임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빨리 가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종착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중간에 머무는 어떤 곳들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지나치는 곳이었습니다. 그저 빨리 지나가야 하는 곳, 의미 없는 어떤 곳일 뿐이었습니다. 야곱에게 그곳은 ‘어떤 곳’입니다.

< 야곱에게 벧엘이 ‘어떤 곳’에서 ‘바로 그곳’으로 변화됩니다. >

우리도 때때로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야곱처럼 ‘어떤 곳’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어떤 곳, 그저 지나쳐 가는 곳일 뿐인 어떤 곳, 그래서 별 가치가 없어 보이는 어떤 곳이라고 느껴지는 장소 혹은 시간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교환 교수로 오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6개월 혹은 1년 정도 머무는 그분들을 볼 때, 그분들의 마음속에는 여기가 ‘그곳’이 아니라 ‘어떤 곳’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랬고, 삶도 그랬습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어떤 곳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병에 걸려 투병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병이 낫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지입니다. 그리고 병이 낫기까지의 시간은 그저 잠시 지나가는 시간이며, 견뎌야 하는 중간의 시간일 뿐입니다. 어떤 시간일 뿐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사람에게 돈이 많이 벌릴 때까지의 기간은 의미 없는 기간이며 어떤 기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삶의 자리가 단순히 어떤 곳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 ‘어떤 곳’에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야곱을 만나신 것처럼 바로 그 지나치는 자리, 우리가 의미 없이 지나가고자 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할 때,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약속의 땅 가나안 말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 빨리 그곳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곧장 그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광야는 어떤 곳이었습니다. 빨리 지나치길 원했던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의 시간을 40년으로 늘리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광야, 그 어떤 곳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려 주시는 분입니다.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불안한 자리에서도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야곱이 바로 그 경험을 한 것입니다.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구나. 내가 생각했던 어떤 곳이, 그냥 지나쳐 가는 그곳이 바로 하늘의 문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후에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자리’로 돌아옵니다. 먼 훗날,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 사람 하몰에게 강간당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은 디나와 하몰의 결혼을 허락한 것처럼 위장합니다. 그래서 히위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할례를 받게 하지요. 그리곤 그들이 움직이기 어려울 때 그들을 몰살시켰습니다. 그 일로 인해 주변 가나안 족속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위기였습니다. 모든 야곱의 가족이 멸절될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야곱은 가족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바로 그 자리, 하나님을 만났던 바로 그 자리로 올라갑니다. 야곱에게 벧엘이 ‘그 자리’, ‘바로 그곳’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그 자리가 있습니까? 바로 그 자리, 내가 하나님을 만났던 그 자리, 내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바로 그 시간이 있습니까? 그 벧엘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벧엘에서 아브라함을 만나신 하나님이 ‘바로 그곳’에서 야곱을 만나 주십니다. >

참으로 놀랍고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연구하면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곳’, ‘어떤 곳’이라는 표현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문법적으로 이 표현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던 표현이 아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국어 성경은 ‘한곳’, ‘어떤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으로 살펴보니, ‘바마콤’입니다. 정관사와 명사가 함께 붙어 있는 ‘브하마콤’, ‘바마콤’, ‘함마콤’입니다. 이를 문법적으로 정확히 번역하면, ‘그 장소’, ‘바로 그 장소’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에서 어떤 곳이란 단어보다 ‘그 장소’, ‘바로 그 장소’라는 단어가 처음부터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1절에서 ‘한곳에 이르러’ 그리고 ‘거기서’, ‘그곳의’, ‘거기 누워’라고 하는 이 모든 단어가 정관사와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이미 그 장소를 다녀온 것입니까? 아니면 그 전에 누군가가 그 장소를 다녀온 것입니까? 아니면 야곱이 의도를 가지고 벧엘을 찾아온 것입니까? 이미 살펴본 대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야곱이 벧엘이라는 곳을 일부러 찾아온 정황은 본문의 흐름상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벧엘에 찾아왔다면, 그는 그곳에 오자마자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또 꿈을 꾼 후 “하나님이 과연 여기에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이 이야기의 첫 부분에서 ‘그 장소에 이르러’라는 표현을 쓰고 있을까요? 사실 이러한 질문은 평신도나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심각한 질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의 궁금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 장소’라는 말 속에 ‘이미 갔던 장소’, ‘이미 언급된 그 장소’라는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또는 ‘이미 준비 되어 있는’, ‘정해져 있는 그 장소’라는 뜻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에게 그 장소는 그냥 지나가던 ‘어떤’ 장소였습니다. 처음 지나가는 ‘어떤’ 장소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이 어떻게 ‘그’ 장소가 될 수 있었을까요?
너무 복잡하지요? 별 흥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 궁금증을 가지고 성경을 살펴봅시다. 벧엘이 어떤 곳입니까? 혹시 이곳을 누군가 이미 지나간 것은 아닙니까? ‘그 장소’라고 말하려면 앞서 적어도 한 번은 이곳이 언급되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창세기 13장 3~4절을 보니, 먼저 벧엘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13:3~4)

여기서 그는 아브라함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전율했습니다. 얼마 전 “지나쳐 간 가나안”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미 그때 살펴본 본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가나안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리곤 가나안에 이르렀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남으로 내려갑니다. 그때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벧엘’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곤 남방으로, 더 남방으로 내려갔지요. 그렇게 애굽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어려움을 당한 후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가나안으로 올라갑니다. 올라갈 때 그는 다시 벧엘을 들리게 됩니다. ‘바로 그 장소’로 갑니다. 그 장소에서 아브라함은 또다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금방 살펴본 13장 말씀은, 아브라함이 두 번째로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면입니다. 그 본문을 보면 ‘하마콤’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바로 그 장소에서’, ‘바로 그곳에서’라는 구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처음 제사를 드렸고, 이후 애굽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서 그 장소에서 또 제사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벧엘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였는데, 어떻게 먼저 벧엘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모세오경, 즉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세 시대에 쓰인 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명은 사실 후대에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혼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벧엘의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처음으로 제사 드린 자리가 당시 ‘루스’로 불리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언약을 맺은 그 자리입니다.
그런데 먼 훗날 야곱이 그곳을 지나갑니다. 야곱에게 그곳은 ‘어떤 곳’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야곱이 그 장소에 이르러”라고 말합니다. 그 장소,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장소,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바로 그 장소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야곱 입장에서는 얼떨결에 지나치던 자리였습니다. 야곱에게는 어떤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이미 하나님이 그의 조부 아브라함과 만났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어떤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였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사드린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바로 그 벧엘에서 하나님은 또다시 그의 손자 야곱을 만나 주십니다.

<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바로 그곳’에서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오늘 본문 13절 이후에 나오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 즉 야곱이 꿈에서 보고 들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28:13~15 중)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 그대로 야곱에게 또다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그 약속을 손자인 야곱과 맺고 계십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이제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이 됩니다. 야곱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할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으로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과 약속도 맺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연구하면서 마음에 엄청난 감동이 일었습니다. ‘한곳’, ‘어떤 곳’이 아니라, ‘그곳’, ‘그 장소’라는 이 한 단어, 이 한 표현이 이렇게 놀랍고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아브라함과 만나신 그 자리, 그 장소에서 다시 야곱과 대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그곳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에게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 안에도 대대로 이어지는 신앙의 가정이 많습니다. 그들 중에 자녀들이 잘 믿지 않아서 고민하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분명히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 언약을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께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약속하신 그 약속도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기도한 그 기도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걷고 있는 어떤 일상에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시간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 어떤 장소는 사실은 어떤 장소가 아닙니다. ‘그 장소’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그리고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던 그 자리,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얼마 후면 추석입니다. 조상들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를 누리는 절기입니다. 복이 어디에서부터 옵니까? 자손들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그 복을 전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아버지와 어머니, 신앙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그들의 신앙이 벧엘의 야곱을 만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신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걱정하기 전에 우리가 좋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후손을 기억하시고, ‘그 장소’, 우리가 주님을 섬겼던 ‘바로 그 장소’에서 그들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 장소를 예비하고 계실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A Certain Place Becomes Bethel

Genesis28:10-19

Jacob’s story is always intriguing. Everyone knows the story of Jacob buying Esau’s birthright with a bowl of lentil stew. After this incident, Jacob took Esau’s blessing by tricking his father who could not see well inhis old age. When conflict between the two brothers grew, Isaac told Jacob to go to Paddan Aram where his uncle Laban lived and take a wife for himself there. So, to escape being murdered by his brother, Jacob made an eight-hundred-kilometer journey to Paddan Aram or Haran. This is almost as far as the distance between Busan and Shinuiju. While Isaac had his wife brought to him by Abraham’s servant, Jacob had to travel this long distance alone with almost no possessions. It was a pitiful journey. In short, he had become a fugitive.

After leaving his home Beersheba, he had been traveling for 2-3 days when he came to “a certain place.” Today’s scripture is about what happened there: “Jacob left Beersheba and set out for Harran.” (Genesis 28:10) But, in the first part of verse 11, an interesting word appears: “When he reached a certain place, he stopped for the night because the sun had set.” (Genesis 28:11a)

The name of the place that he spent the night was actually Luz, as described in succeeding verses. But the Bible calmly tells us that Jacob stopped for the night at “a certain place.” The New Living Translation says, “At sundown he arrived at a good place to set up camp and stopped there for the night.” (Genesis 28:11 NLT) The atmosphere is lonely. It gets even more dismal in the next scene where he gets a stone and uses it as a pillow: “Taking one of the stones there, he put it under his head and lay down to sleep.” (Genesis 28:11)

Stars were shining in the sky, but Jacob probably didn’t find this beautiful since he liked to stay home with his mother and cook. He was a quiet person. But, now, he was out here in the wilderness. Alone. It was probably dangerous with wild beasts and robbers out on the prowl. He would have been afraid. He would have fallen asleepamidst all these fears and anxieties.

However, right there, Jacob had an astounding dream. He saw a stairway to heaven and angels ascending and descending on it. In this dream, he heard God’s voice: “There above it stood the Lord, and he said: ‘I am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 Abraham and the God of Isaac. I will give you and your descendants the land on which you are lying. Your descendants will be like the dust of the earth, and you will spread out to the west and to the east, to the north and to the south.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you and your offspring. I am with you and will watch over you wherever you go, and I will bring you back to this land.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done what I have promised you.’” (Genesis 28:13-15)

Astounded, Jacob wokeup and thought, “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and I was not aware of it.” (Genesis 28:16) He continued to say, “How awesome is this place! This is none other than the house of God; this is the gate of heaven.” (Genesis 28:17)

The next morning, he set up a stone pillar, anointed it with oil, and called it Bethel, which means “God’s house.” There, at God’s house, he promised God that he would give God a tenth of all that was given to him. This place, Bethel, became “the place,” “God’s house,” or “the place where he made a vow to God.” It was not just any place or a certain place. Bethel became a place where God dwelled, a place where Jacob met God.

Through this experience, Jacob realized how a concept could be expanded in the most astounding way. At Beersheba, where he lived with his father, God was there. It was a rich land. But, now, Jacob the fugitive was passing through a wilderness. He was just passing by unknown land. This place was meaningless to him. His destination was Haran. When night fell, he had to sleep, and it just so happened that he slept there, a place whose name he did not know. But, right there, he met God. What’s more, God spoke to him there, saying that he was the God of his father Isaac and grandfather Abraham. It was an awesome experience for Jacob. He realized that God was there, at that unknown place. He also experienced that God was with him. This experience catapulted Jacob to the next level in his faith.

It appears that Jacob did not intend on sleeping at Bethel. Neither did he expect to meet God there: “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and I was not aware of it.” (Genesis 28:16) His destination was clear. He was leaving Beersheba for Haran. He was making haste because it was a dangerous journey. So, all the stops in between had no significance to him. That is why that place was just “a certain place” for him at first.

We are like Jacob, too. We make many meaningless stops in our lives. When I was ministering in Boston, there were many visiting professors at our church. They would not commit themselves fully. They probably thought that Boston was just a brief stopover. It’s the same for people fighting illnesses. Their goal is to get well. All their days trying to get well is just a process. Those whose goal is to become wealthy consider life meaningless until they become rich.

After fleeing Egypt, the Israelites’ goal was to reach Canaan, the promised land. But God did not take them their immediately. He made them wander in the wilderness for 40 years. For them, the wilderness was just a sojourn, a certain place. Yet, God was right there with them, and it was in the wilderness that they met God.

Dear Church, God blesses us even in our sleep. We consider sleep as a means to an end or an unnecessary journey. But God is with us even there. This was what happened to Jacob. He realized that “a certain place” was God’s house. God was even there.

Therefore, Jacob experienced that “a certain place” could become “the place.” And, later on, whenever he met hardships, he came to this place. Indeed, Jacob was faced with a crisis. His daughter Dinah was raped by a Hivite, and his sons killed all the Hivite men after tricking them to have circumcision. Because of this, Jacob was on the verge of being attacked by the peoples surrounding him. So, he went to Bethel.

To Jacob, Bethel was not just “any place” but “the place.” Dear Church, do you have “the place” like Jacob? I pray that by God’s grace “a certain place” will become “the place.”

However, there is something even more amazing and interesting about today’s scripture than what we have studied so far. Upon studying this passage deeply, I found that the original Hebrew word for “a certain place” was different from what I had understood and expected it to be. It was “bamakom,” which means “the place.” In the Hebrew Bible, “a certain place” (NIV) was recorded as “the place” from the very beginning.

This is not because Jacob had come intentionally to a special place.The place, Bethel, was unknown to Jacob when he first arrived there. Then, why did the Hebrew Bible use the expression “the place” from the very beginning? How can an unknown, insignificant place for Jacob be “the place” from the very start? This may be a question that only biblical scholars raise and may not interest you. Still, bear with me, and let’s solve this puzzle together.

Let’s read Genesis 13:3-4: “From the Negev he went from place to place until he came to Bethel, to the place between Bethel and Ai where his tent had been earlier and where he had first built an altar. There Abram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I felt electrified when I read this verse. You may not feel so yet, so let me explain.Abraham worshipped God in Bethel on his journey back to Canaan, the place that God ordered him to go to. Bethel was the place that Abraham, Jacob’s grandfather, first worshipped God. It was also the place where God first made a covenant with Abraham.

Decades later, Jacob was traveling through that same place without knowing what had happened between Abraham and God there. Therefore, for Jacob, when he first arrived at Bethel, that place was just “a certain place.” But, the Bible, tells us very carefully and intentionally that this was “the place.”

God had prepared that place. It would be proper to say that God was waiting to meet Jacob at that place. Jacob happened to pass by that area, but it was actually “the place” where his grandfather Abraham had worshipped God and God had made a covenant with Abraham. Jacob was traveling through this very place. And God met him there—not just at any place, but “the place.” Jacob encountered God there—the place where God promised Abraham that he would make his offspring like the dust of the earth.

Let’s look at God’s blessing toward Jacob again. “I am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 Abraham and the God of Isaac. I will give you and your descendants the land on which you are lying. Your descendants will be like the dust of the earth, and you will spread out to the west and to the east, to the north and to the south.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you and your offspring. I am with you and will watch over you wherever you go, and I will bring you back to this land.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done what I have promised you.” (Genesis 28:13-15)

God made a covenant with Abraham. And he is now repeating that covenant to Jacob. Therefore, God is now not just Abraham’s God, but Jacob’s God as well. At “the place,” Jacob met his God, my God, instead of the God of his father or grandfather. And he made a promise to God. So, this place was “the place” where Jacob entered the next level in his faith, where he met his own God. The place became a significant, historical place for him.

Isn’t this amazing? I was astounded by the fact that sucha short phrase in the Bible, “the place,” had such a profound meaning.

The Lord is my God. But he is also the God of my father, my grandfather, my mother, and grandmother. Our parent’s faith does not automatically become ours. Yet, as we have seen in Jacob’s story, God does not forget his promises with our parents and grandparents. He waits eagerly for us at a place that seems to be just “a certain place” for us. He waits to meet us there. In fact, our God who walks with us wants to meet us there in the most dramatic way possible.

In Korea today, there are many Christian families with a long heritage of faith. Among them, however, many parents worry about their children whose faith is not strong. But God is faithful and keeps his promises. He did not forget his covenant with Abraham, and he will not forget his promises with our grandparents. He will not forget our prayers for our children. He will meet our children wherever they are, in their daily lives, in “a certain place.” And they will be astounded when “a certain place” becomes “the place.”

Chuseok is just around the corner. In this season of harvest, we honor our ancestors and thank God for his abundant blessings. Where do blessings come from? God, of course. Our children receive blessings from God. But there are messengers who deliver those blessings to them: fathers, mothers, and grandparents of faith. Remember that the faith of Abraham and Isaac was the foundation of Jacob’s faith at Bethel. Don’t be anxious about your children’s weak faith. Instead, become Godly people yourselves. Then God will remember your children and grandchildren and meet them in “the place.” Praise God who prepares that plac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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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 10 ~ 19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 도망자 신세가 된 야곱의 현실이 애처롭습니다. >

야곱의 이야기는 늘 우리의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그 가운데 야곱이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산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후 야곱은 형이 사냥 나간 틈을 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당시 눈이 잘 보이지 않던 아버지 이삭까지 속이며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사냥하고 돌아온 에서가 이 사실을 알고는 야곱을 미워하게 되고, 마음 깊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겠다.’라는 결심을 품게 됩니다. 그 내용이 창세기 27장 4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창세기 27:41)

야곱과 에서의 갈등을 바라보며, 아버지 이삭은 야곱에게 고향인 밧단아람에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들 가운데 아내를 맞이하라고 합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야곱이 아내를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었으며,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당시 야곱을 죽이려는 에서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탈출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경우는,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종을 보내 리브가를 맞아 오도록 했습니다. 당시 많은 종과 사환뿐만 아니라 짐승과 재산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야곱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는 종들과 함께 떠나지도 않았고, 복장은 단출했으며, 더욱이 몸만 가지고서, 참으로 불쌍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세기 28:10)

이후 11절 앞부분에서는 흥미로운 단어도 눈에 띕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창세기 28:11 중)

당시 야곱이 잠을 자게 된 땅은 ‘루스’라는 곳이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루스까지는 약 90km 떨어진 거리입니다. 아마 당시 야곱은 하루 혹은 이틀을 걷고 또 걸으며 그곳을 지나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여정 가운데 밤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때 “한 곳에 이르러”라고 개역성경은 담담히 야곱의 여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길을 가다 한 곳에 이르러 밤을 보내게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새번역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창세기 28:11 중, 새번역)

처량한 느낌이 물씬 나는 장면입니다. 더욱 안쓰러운 장면은 이후의 내용입니다.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세기 28:11 중)

땅바닥의 돌을 베개로 삼아 잠을 청하는 야곱입니다. 얼마나 애처롭습니까? 에서에게 장자권을 사고,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챈 야곱의 현실은 사실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마치 도망자처럼 홀로 광야에 섰습니다. 홀로 겉옷을 담요 삼아 돌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하늘엔 별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야곱은 밖에 나다니기를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머니를 도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던 아들이었고, 조용한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밖에 있습니다. 그것도 홀로 광야에 있습니다. 홀로 여행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입니다.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맹수에 대한 두려움, 강도의 위협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앞으로 내 미래가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 속에서 그는 밤새 뒤척였을 것입니다.

< 야곱에게 벧엘은 지나쳐 가는 ‘어떤 곳’일 뿐이었습니다. >

그런데 야곱이 그곳에서 놀라운 꿈을 꿉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게다가 또렷하게 하나님의 음성도 들려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창세기 28:13 중)

야곱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그리곤 감동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중)

또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창세기 28:17 중)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로 삼은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칭합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 벧엘에서 하나님께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나의 가는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이후 야곱에게 이 장소, ‘벧엘’이란 이 자리는 더 이상 ‘어떠한 곳’, ‘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벧엘은 야곱에게 ‘그 장소’, ‘바로 그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서약한 바로 그 자리,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 하나님을 만난 바로 그 자리가 되었습니다.
아마 이 사건은 야곱에게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신앙적 사고의 지평이 확장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이삭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니 야곱에게 하나님은 브엘세바에만 계시는 하나님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브엘세바가 어디입니까?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암양 일곱 마리를 주고 맹세하며 산 우물이 있던 곳입니다. 맹세의 우물이 있던 곳, 즉 물이 있었던 곳입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풍족한 물과 더불어 아버지 이삭과 함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도망자 신세입니다. 광야 같은 곳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지던 시간, 그는 ‘어떤 곳’에 머물게 됩니다. 야곱에게 그곳은 그저 지나치는 곳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풍경이나 환경을 살펴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곳을 지나쳐 가고 있었고, 그저 밤이 되어 잠시 머물렀을 뿐입니다. 당시 하란으로 향하고 있었고, 잠시 머문 그곳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 돌베개를 베고 누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로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마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시는구나!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는 이곳, 바로 이곳에도 하나님께서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나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구나!’
야곱에게는 놀라운 도약이었습니다. 본문의 흐름상, 결코 야곱이 의도를 가지고 벧엘을 찾아왔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16절에 나오는 감탄사가 그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기대를 하지 않았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야곱의 여정은 분명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약 800km 정도 되는 길을 완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능한 빨리 가려 했을 것입니다. 혼자임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빨리 가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종착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중간에 머무는 어떤 곳들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지나치는 곳이었습니다. 그저 빨리 지나가야 하는 곳, 의미 없는 어떤 곳일 뿐이었습니다. 야곱에게 그곳은 ‘어떤 곳’입니다.

< 야곱에게 벧엘이 ‘어떤 곳’에서 ‘바로 그곳’으로 변화됩니다. >

우리도 때때로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야곱처럼 ‘어떤 곳’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어떤 곳, 그저 지나쳐 가는 곳일 뿐인 어떤 곳, 그래서 별 가치가 없어 보이는 어떤 곳이라고 느껴지는 장소 혹은 시간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교환 교수로 오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6개월 혹은 1년 정도 머무는 그분들을 볼 때, 그분들의 마음속에는 여기가 ‘그곳’이 아니라 ‘어떤 곳’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랬고, 삶도 그랬습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어떤 곳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병에 걸려 투병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병이 낫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지입니다. 그리고 병이 낫기까지의 시간은 그저 잠시 지나가는 시간이며, 견뎌야 하는 중간의 시간일 뿐입니다. 어떤 시간일 뿐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사람에게 돈이 많이 벌릴 때까지의 기간은 의미 없는 기간이며 어떤 기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삶의 자리가 단순히 어떤 곳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 ‘어떤 곳’에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야곱을 만나신 것처럼 바로 그 지나치는 자리, 우리가 의미 없이 지나가고자 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할 때,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약속의 땅 가나안 말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 빨리 그곳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곧장 그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광야는 어떤 곳이었습니다. 빨리 지나치길 원했던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의 시간을 40년으로 늘리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광야, 그 어떤 곳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려 주시는 분입니다.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불안한 자리에서도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야곱이 바로 그 경험을 한 것입니다.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구나. 내가 생각했던 어떤 곳이, 그냥 지나쳐 가는 그곳이 바로 하늘의 문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후에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자리’로 돌아옵니다. 먼 훗날,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 사람 하몰에게 강간당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은 디나와 하몰의 결혼을 허락한 것처럼 위장합니다. 그래서 히위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할례를 받게 하지요. 그리곤 그들이 움직이기 어려울 때 그들을 몰살시켰습니다. 그 일로 인해 주변 가나안 족속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위기였습니다. 모든 야곱의 가족이 멸절될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야곱은 가족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바로 그 자리, 하나님을 만났던 바로 그 자리로 올라갑니다. 야곱에게 벧엘이 ‘그 자리’, ‘바로 그곳’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그 자리가 있습니까? 바로 그 자리, 내가 하나님을 만났던 그 자리, 내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바로 그 시간이 있습니까? 그 벧엘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벧엘에서 아브라함을 만나신 하나님이 ‘바로 그곳’에서 야곱을 만나 주십니다. >

참으로 놀랍고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연구하면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곳’, ‘어떤 곳’이라는 표현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문법적으로 이 표현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던 표현이 아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국어 성경은 ‘한곳’, ‘어떤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으로 살펴보니, ‘바마콤’입니다. 정관사와 명사가 함께 붙어 있는 ‘브하마콤’, ‘바마콤’, ‘함마콤’입니다. 이를 문법적으로 정확히 번역하면, ‘그 장소’, ‘바로 그 장소’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에서 어떤 곳이란 단어보다 ‘그 장소’, ‘바로 그 장소’라는 단어가 처음부터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1절에서 ‘한곳에 이르러’ 그리고 ‘거기서’, ‘그곳의’, ‘거기 누워’라고 하는 이 모든 단어가 정관사와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이미 그 장소를 다녀온 것입니까? 아니면 그 전에 누군가가 그 장소를 다녀온 것입니까? 아니면 야곱이 의도를 가지고 벧엘을 찾아온 것입니까? 이미 살펴본 대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야곱이 벧엘이라는 곳을 일부러 찾아온 정황은 본문의 흐름상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벧엘에 찾아왔다면, 그는 그곳에 오자마자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또 꿈을 꾼 후 “하나님이 과연 여기에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이 이야기의 첫 부분에서 ‘그 장소에 이르러’라는 표현을 쓰고 있을까요? 사실 이러한 질문은 평신도나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심각한 질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의 궁금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 장소’라는 말 속에 ‘이미 갔던 장소’, ‘이미 언급된 그 장소’라는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또는 ‘이미 준비 되어 있는’, ‘정해져 있는 그 장소’라는 뜻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에게 그 장소는 그냥 지나가던 ‘어떤’ 장소였습니다. 처음 지나가는 ‘어떤’ 장소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이 어떻게 ‘그’ 장소가 될 수 있었을까요?
너무 복잡하지요? 별 흥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 궁금증을 가지고 성경을 살펴봅시다. 벧엘이 어떤 곳입니까? 혹시 이곳을 누군가 이미 지나간 것은 아닙니까? ‘그 장소’라고 말하려면 앞서 적어도 한 번은 이곳이 언급되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창세기 13장 3~4절을 보니, 먼저 벧엘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13:3~4)

여기서 그는 아브라함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전율했습니다. 얼마 전 “지나쳐 간 가나안”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미 그때 살펴본 본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가나안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리곤 가나안에 이르렀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남으로 내려갑니다. 그때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벧엘’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곤 남방으로, 더 남방으로 내려갔지요. 그렇게 애굽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어려움을 당한 후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가나안으로 올라갑니다. 올라갈 때 그는 다시 벧엘을 들리게 됩니다. ‘바로 그 장소’로 갑니다. 그 장소에서 아브라함은 또다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금방 살펴본 13장 말씀은, 아브라함이 두 번째로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면입니다. 그 본문을 보면 ‘하마콤’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바로 그 장소에서’, ‘바로 그곳에서’라는 구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처음 제사를 드렸고, 이후 애굽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서 그 장소에서 또 제사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벧엘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였는데, 어떻게 먼저 벧엘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모세오경, 즉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세 시대에 쓰인 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명은 사실 후대에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혼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벧엘의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처음으로 제사 드린 자리가 당시 ‘루스’로 불리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언약을 맺은 그 자리입니다.
그런데 먼 훗날 야곱이 그곳을 지나갑니다. 야곱에게 그곳은 ‘어떤 곳’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야곱이 그 장소에 이르러”라고 말합니다. 그 장소,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장소,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바로 그 장소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야곱 입장에서는 얼떨결에 지나치던 자리였습니다. 야곱에게는 어떤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이미 하나님이 그의 조부 아브라함과 만났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어떤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였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사드린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바로 그 벧엘에서 하나님은 또다시 그의 손자 야곱을 만나 주십니다.

<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바로 그곳’에서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오늘 본문 13절 이후에 나오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 즉 야곱이 꿈에서 보고 들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28:13~15 중)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 그대로 야곱에게 또다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그 약속을 손자인 야곱과 맺고 계십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이제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이 됩니다. 야곱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할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으로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과 약속도 맺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연구하면서 마음에 엄청난 감동이 일었습니다. ‘한곳’, ‘어떤 곳’이 아니라, ‘그곳’, ‘그 장소’라는 이 한 단어, 이 한 표현이 이렇게 놀랍고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아브라함과 만나신 그 자리, 그 장소에서 다시 야곱과 대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그곳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에게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 안에도 대대로 이어지는 신앙의 가정이 많습니다. 그들 중에 자녀들이 잘 믿지 않아서 고민하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분명히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 언약을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께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약속하신 그 약속도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기도한 그 기도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걷고 있는 어떤 일상에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시간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 어떤 장소는 사실은 어떤 장소가 아닙니다. ‘그 장소’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그리고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던 그 자리,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얼마 후면 추석입니다. 조상들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를 누리는 절기입니다. 복이 어디에서부터 옵니까? 자손들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그 복을 전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아버지와 어머니, 신앙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그들의 신앙이 벧엘의 야곱을 만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신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걱정하기 전에 우리가 좋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후손을 기억하시고, ‘그 장소’, 우리가 주님을 섬겼던 ‘바로 그 장소’에서 그들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 장소를 예비하고 계실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2019년 9월 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벧엘이 된 어떤 곳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51장, 39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창28:10-19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9월 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야곱과 에서의 갈등 상황 속에서 아버지 이삭은 외조부 라반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야곱을 보내며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서 2~3일쯤 지나 어떤 지역을 통과하였고, 본문은 그 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창28:10). 그런데 11절 앞부분에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창28:11a)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설교의 요약

“한 곳에 이르러”… 성경은 야곱이 길을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밤을 보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것은 새번역 성경은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창28:11)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곳에서 놀라운 꿈을 꿉니다. 사닥다리가 땅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이었습니다.(창28:13-15) 잠이 깬 야곱을 그곳은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명명하며, 하나님께 십일조에 대한 약속을 하게 됩니다. 야곱에게 ‘벧엘’은 더 이상 어떤 자리 혹은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하나님의 집, 하나님과 서약한 자리, 하나님께서 계시는 자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됩니다.

야곱은 그곳(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느 곳에도 계시며,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놀라운 신앙의 도약입니다. 야곱이 벧엘을 의도적으로 찾아왔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두려운 마음으로 도망쳐 왔기에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던 곳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야곱은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께서 여기에도 계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곳에서 어떤 곳이 그 곳이 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이후, 야곱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자리로 나아옵니다. 야곱에게 벧엘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그 장소가 있습니까? 어떤 장소가, 어떤 곳이 그곳, 그 장소가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 장소”라고 표현하고 있는 장소는 어떤 곳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처음 제사를 드렸던 바로 그 자리, 그 장소가 당시 루스로 불리던 ‘벧엘’이었습니다. 야곱이 얼떨결에 지나가고 있었던 그 곳, 바로 그곳은 이미 오래전 자신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약속을 받았던 그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지나가는 야곱을 만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넘어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만나기 위하여서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이 걷고 있는 어떤 일상에서, 어떤 장소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어떤 곳이 그곳이 되는 놀라운 경험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나누기

1. 힘들고 어려울 때에 방문하면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장소가 있습니까? 함께 나눠보세요.

2. 어떻게 하면 오늘 내가 머물러 있는 곳이 그 곳(벧엘)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머물러 있는 곳(가정, 삶의 자리)이 벧엘이 되도록 서로를 축복하며 함께 기도하세요.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가 가는 길에서 어떤 장소가 그 장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세운 언약을 변치 않고 믿고 지키게 하시고, 우리의 후손들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그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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