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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이 없는 사랑의 사람

에베소서 6: 23~24

김경진 목사

2023.11.12

<바울 서신에는 은혜’, ‘평강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면서 에베소서 마지막 말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엡 6:24)

 

바울의 간절한 소망이 느껴지는 동시에 편지를 읽는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풍겨지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어떤 마음으로 말씀이 읽혀지시나요? 이 말씀을 언뜻 보면 이렇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은혜가 있다’라는 말을 ‘복이 있다’라는 말로 바꾸어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또 다르게는 이런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고통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녀의 축복을 받고, 후손이 잘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사업이 잘 될 것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성공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은혜, 인생의 굽이굽이를 함께해 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말씀을 이해한다면 신앙의 동기 부여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에베소서 말씀의 흐름을 놓고 본다면, 적절하지 않은 해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은혜를 빕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 혹은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좋아하는 표현이죠. 여러분은 어떤 의미를 담아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십니까? “다 잘 될 거야. 이런저런 축복을 받을 거야. 복 받을 거야…” 이런 의미로 말씀하실 때가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본문의 흐름을 본다면 적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은혜’, ‘평강’은 매우 중요하고, 자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든 서신서 앞부분에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평안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리스’(Χάρις)인데, 에베소서에만 무려 12번 나오고 있습니다(1:2,6,7; 2:5,7,8; 3:2,7,8; 4:7,29; 6:24). ‘평안’, ‘평강’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이레네’(εἰρήνη)인데 에베소서에서 8번 나옵니다.

자, 에베소서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6:1~2) 그리고 말미에 가서 은혜, 평안이라는 단어가 또다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를 비롯한 그의 모든 서신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평강’ 혹은 ‘하나님의 평안’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겠습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단어가 사용된 용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에베소서 1장 6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는 거저 받는 것이라는 뜻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어지는 7절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 중)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첫 번째 차원은 죄 사함의 은총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이후 2장 8절에서 이렇게 표현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이러한 말씀 속에서 우리는 바울이 말씀하는 은혜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구속하시고 살리시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가 우리에게 선물로서 거저 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3장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엡 3:7 중)

 

바울은 자신에게 사명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도록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선교하도록 불러 주신 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바울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사명의 은혜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장 7절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엡 4:7)

 

사도 바울의 고백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는 은혜의 차원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사명을 주셔서 일할 수 있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은혜와 평안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바울 사도가 서신서를 쓸 때마다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구원의 능력이나 역사가 점점 늘어나고 분명해진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각 사람에게 주시는 사명이 많아진다는 의미일까요? 저는 이 말씀이 이렇게 들립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이 너희 안에 늘 살아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에 충실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은 은혜가 부족해서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우리 안에 늘 살아나고 생동력 있고, 궁극적으로는 감사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 성도를 향한 사도 바울의 부탁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네 분의 장로님을 안수하는 임직 예식을 거행합니다. 임직 예식이야말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잘 보여 주죠.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구원의 은혜에 감사드렸다면, 이제는 더 나아가서 우리 각자를 특별한 일에 사용하시는 은혜의 감격으로 나아가기를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이것이 임직의 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장로의 직분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찬양대원으로 노래하는 것, 지휘하는 것, 예배 안내로 봉사하는 것, 차량부로 봉사하는 것, 식당 봉사하는 것, 교사로서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것 모두 은혜입니다. 꽃꽂이 봉사, 장애인을 돌보는 사역, 새신자 환영, 결혼 봉사, 장례 위로, 헌금 봉사, 선교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또 직원으로,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목사로 직분을 감당케 하심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바울은 사명의 은혜와 평강‧평안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킵니다. 에베소서에서 말씀하는 평강, 평안은 헬라어로 에이레네입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평안은 개별적인 마음의 감정 상태를 가리키기보다는 관계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즉 화평케 함, 평안의 매는 줄 등으로 표현되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이루신 사역과 주로 연결됩니다. 에베소서 2장 14,17절 말씀을 봉독해 드립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였으니 (엡 2:14,17)

 

제가 지금 읽은 이 말씀 속에서 ‘에이레네’ 곧 ‘평안’이라는 단어가 3번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가로막힌 모든 담을 허시고 하나가 되게 하시는 일이 화평이라는 것입니다. 이 평안의 복음은 우리의 사역으로 이어집니다. 에베소서 4장 3절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하나님과 화평케 된 우리가 사명을 받게 되는데, 우리도 또한 평안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조금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이 헐리고, 그 결과 우리는 참된 평강과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평안을 누리게 된 우리는 새로운 사명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사명은 세상에 나가서 평안을 만드는 일 즉 주님이 행하셨듯이 막힌 담을 허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말씀 안에 매우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정말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사십니까? 에베소서 마지막 구절이 한 가지 단서를 전해 줍니다. 평안과 은혜 둘 사이에 들어 있는 새로운 단어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23절에서는 ‘믿음을 겸한 사랑’, 24절에는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믿음을 겸한 사랑은 사랑의 출처를 의미한다면,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는 사랑의 질적인 측면을 다룹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어떤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지를 알려 준다는 것입니다. 누가 은혜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까? 누가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바로 이들이 구원에 감격하며, 사명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일할 때도 그렇습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도 그렇고 신앙생활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너무나도 귀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이 너무나도 귀하고 감사합니다. 그 가치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가치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디베랴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 사랑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향하여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네가 지금 나를 믿겠느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 주시면서 “이제는 믿을 만하지 않느냐? 이 정도면 부활의 소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단 한 가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답하는 베드로를 향해서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말씀하시며 사명의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은 살아 있는 것으로 체험되기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 있다면 바로 사랑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가져야 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사랑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은 이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엡 6:24)

 

이 말씀을 읽으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조금 부담스럽지는 않으신가요? ‘변함없이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이 제법 무게감을 줍니다. 과연 우리는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을 자칫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지만,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다….

여러 이단들이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약점을 공략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당할 미래를 말씀하셨을 때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강력하게 항의하다가 도리어 책망을 받는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의 귀를 베어낸 자도 베드로가 아니었습니까?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셨을 때 물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헬라어로 보면 조금 의미심장합니다. 주님이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아가페) 하느냐?” 그때 베드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필로스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지요.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일관되지 못한,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한 모습을 생각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너는 나를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여전히 그는 필로스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필로스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고, 그때에 베드로는 “필로스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사랑의 깊이, 사랑의 지속성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던 베드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갑니다.>

 

자 그렇다면,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엡 6:24)

 

이 말씀은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하면 은혜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도리어 은혜받은 자로서 변함없이 사랑하기를 노력하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변함없이 사랑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끝까지,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며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고,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일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한 가지 6장 24절 말씀을 다르게 볼 가능성이 함께합니다. 24절을 원어의 어순을 따라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은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변함없이

ἐν ἀφθαρσίᾳ: en aphtharsia (in incorruptibility, 변함없이, 부패함 없이, 영원히)

 

즉 ‘변함없이’라는 단어가 표현하는 수식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 성경은 ‘변함없이’가 ‘사랑’을 수식하는 형태로 번역합니다.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변함없이’를 ‘은혜’와 연결해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독일어 관주성경은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리기를 빕니다.”라는 뜻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번역이 이러한 해석을 따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기를 빕니다.”

개인적으로 이 해석이 저에게는 조금 더 와닿습니다. 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가 끝까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려고 제 나름대로 노력하겠지만, 혹시 그렇지 못할 때라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싸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해석이 보다 바울다운 해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은 마지막 공생애를 보내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라고 증언합니다. 마지막까지, 끝까지 사랑하시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쓰러지고 넘어질 때에라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해 주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랑하십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구원의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이 사랑으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은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변함없이

All Who Love with an Undying Love

 

Ephesians 6:23-24

 

 

The last sentence of Ephesians, also a part of today’s Scripture, goes like this:“Grace to all who love our Lord Jesus Christ with an undying love.”(Ephesians 6:24) This conveys Paul’s earnest hope and love for the recipients of his letter. What is your impression of this sentence? What comes to your mind as you read it?

 

At first glance it may read as follows: “Those who love Christ with an undying love will be blessed by God.” We may think “grace to all” can be substituted with “blessings to all.”

 

If we adopt this interpretation, such thoughts may follow suit: “Those who love Christ with an undying love will not suffer. They will have many children, and their children will prosper. They will succeed in their work and business.”

 

Well. Is this what it is really saying? Is this versetalking about the secret to success in this world? What exactly is the meaning of “grace” in Ephesians 6:24?

 

Today’s text contains two of Paul’s most frequently used words: grace and peace. These two never fail to appear in the greetings of his epistles.

 

His letter to the Ephesians is no exception. It starts with this greeting:

 

“Paul, an apostle of Christ Jesus by the will of God, To the saints in Ephesus, the faithful in Christ Jesus:Grace and peace to you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Ephesians 1:1-2)

 

Ephesians, which starts as such, ends with grace and peace again. Paul wishes his readers peace in 6:23 and grace in 6:24.

 

Then what is the meaning of “grace” and “peace” that Paul mentions in all his epistles, including Ephesians?

 

First, in the original Greek text “grace” is “xάρις (charis),” which appears twelve times in Ephesians alone (1:2, 6, 7; 2:5, 7, 8; 3:2, 7, 8; 4:7, 29; 6:24).The meaning of grace will become clear by studying each usage.

 

In Ephesians 1:6 Paul describes grace as that “which he has freely given us.” Grace, hence, is something God has freely given us.

 

Then in 1:7 Paul elaborates on what we have been freely given: “In hi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sins, in accordance with the riches of God’s grace.” (Ephesians 1:7)

 

In other words, that which has been freely given us is the grace of the forgiveness of sins. Ephesians 2:8 rephrases this as follows: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and th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Ephesians 2:8)

 

Through these words we learn what Paul means by grace. It is the grace of redemption, the grace that saves and delivers us. And Paul says this grace is a gift from God.

 

In Ephesians 3, however,Paul goes on to talk about another dimension of God’s grace: “I became a servant of this gospel by the gift of God’s grace given me through the working of his power.” (Ephesians 3:7)

 

Paul is saying that it was by God’s grace that he was called to be a servant. Paul is talking about the grace that called him to do the work of God. Furthermore, he says that everyone has been given this grace, that is, the grace of calling.

 

This is what 4:7 says: “But to each one of us grace has been given as Christ apportioned it.”(Ephesians 4:7)

 

The second dimension of grace is that it calls us towork for God, for Christ.

 

We may summarize that the grace of God mentioned in Ephesians is first, the grace of salvation, but, at the same time, it is second, the grace of calling.

 

Then let’s ponder this. Whenever Paul writes an epistle, he writes, “Grace to you.” What does this mean then?

 

It first means, “May the joy of having the grace of salvation always be alive in you.” At the same time, it means, “May you live as servants faithful to the calling God has given you, with a passion for your calling.”

 

So the grace of God, the grace of Christ, that Paul talks aboutmeanshavingajoy of salvation and a joy that comes from being called. This is grace.

 

Today we are ordaining four elders. This ordination ceremony is a good manifestation of God’s grace. It lets us move beyond the joy of salvation and reach the joy of being called. This is grace.

 

Not just the ministry of an elder, but all ministries and callings that each of us have are God’s grace. Singing in the choir, leading the choir, and playing the piano are all grace; being an usher, serving in the parking team, serving in the cafeteria, and teaching in Sunday school are all grace. In fact, all that we do for God as a member, a deacon, a deaconess, an elder, a staff, or a pastor of this church is grace.

 

Interestingly, however, Paul connects this grace of calling with peace.

 

In the original Greek text, “peace” is “εἰρήνη (eirēnē),” which is used eight times in Ephesians. But this peace, as used in Ephesians, refers not so much to a personal peace as to a relational one.

 

Paul uses phrases like “to make peace” and “the bond of peace” to connect peace to the work God accomplished through Jesus, that is, the destruction ofbarriers and the restoration of relationships:

 

“For he himself is our peace, who has made the two one and has destroyed the barrier,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 […] He came and preached peace to you who were far away and peace to those who were near.”(Ephesians 2:14, 17)

 

Peace here is “eirēnē.”That is, the Bible is saying that peace is the work of making the two one. The very work Jesus did on earth was to make peace, that is, to destroy the barrier between God and man. Moreover, this gospel of peace continues in our own ministry:

 

“Make every effort to keep the unity of the Spirit through the bond of peace.”(Ephesians 4:3)

 

In Ephesians 4 Paul writes that this very ministry of creating unity is the work God has given him, the work to which God has called every Christian. And he says that this is grace.

 

Now let’s summarize what we have learned. We have been saved by God’s grace. That salvation destroyed the barrier between God and us, and as a result, we have true peace.

 

Furthermore, we, who have received this grace of salvation, can advance to another dimension of grace—the grace of participating in God’s work of peace as His servant. That is, the grace of being called to His work.

 

This is the grace and peace that God teaches us through Paul.

 

Now let’s take a deeper look at today’s passage with such premises in mind. In concluding the entire letter, today’s text mentions God’s grace and peace. But we see another word that appears in between them: love. Ephesians 6:23 mentions “love with faith,” and 6:24 talks about those “with an undying love.”

 

Thisis revealing of who are able to enjoy grace and peace. It is those who love. Those who love Christ, those who love God can enjoy the joy of salvation and the joy of being called to God’s work.

 

This is why our Lord asked Peter to love His lambs at Lake Tiberius after He was resurrected. The question Jesus asked Peter who had denied Him three times was none other than the one on love. He asked Peter, “Do you love me?” He did not ask, “Do you believe in me?” or “Do you have the hope of resurrection?” Instead He asked, “Do you love me?”

 

Then He commanded Peter, “Feed my lambs.”

 

Love is thevery thing those who have receivedGod’s grace ought to have. Since we have been given the grace of salvation, the grace of being freely saved, we ought to love God. And to take on God’s work we must love God. Love enables us to rise to our calling. Without it, we cannot fulfill our calling.

 

Lastly, let’s look at one more thing. The very last words of today’s passage are these:

 

“Grace to all who love our Lord Jesus Christ with an undying love.” (Ephesians 6:24)

 

The expression that weighs heavily on our hearts is “undying love.” The adjective “undying” burdens us. Can we really have an “undying” love?

 

This verse may be mistaken to mean, “only those who have an undying love for Christ will be blessed.” Many heresies have misled people by using this interpretation and attacking our weakness.

 

The fact is, we are incapable of loving Jesus with an “undying” love. Even Peter was incapable of it.

 

Was there ever a person that loved Jesus more than Peter? Peter was furious and objected when Jesus said He would have to suffer. But what happened after this incident? Peter denied the Lord three times. He failed to love Jesus with an undying love.

 

Perhaps this is why Peter replies at Lake Tiberius that he loves Jesus, using “philia” love in all three of his answers, while Jesus asks him if he loves Him, using “agape” love in His question. Peter’s answers may reflect his uncertainty of his ability to love his Lord deeply and continually.

 

Then what does Paul mean by “undying love” in Ephesians 6?

 

“Grace to all who love our Lord Jesus Christ with an undying love.” (Ephesians 6:24 NIV)

 

These words do not mean that those who fail to love Christ with an undying love will not receive grace. Rather,it should be seen as Paul’s encouragement to his readers to strive to love Christ with an undying love, which is fitting for those who have received His grace.

 

Moreover,a different interpretation is also possible.Let me give you a more precise and literal translation of 6:24, faithful to theoriginal sentence structure:

 

“Grace be with all of you who love Christ, eternally/undyingly.”

 

The Greek word for “eternally/undyingly” is “ἐν ἀφθαρσίᾳ (en aphtharsia),” which means “in incorruptibility, without corruption, or forever.”

 

So the question of what exactly“en aphtharsia” is modifying is raised. In terms of common usage, “with an undying love” is the general interpretation. That is why most Bibles translate it as NIV does—“with an undying love.”

 

But“en aphtharsia” may also be seen as modifying “grace” or the entire sentence. The commentaries of the German Bible also leave open this possibility. If we adopt this interpretation, we may translate this verse as follows: “May the undying/eternal grace of God be upon all those who love our Lord Jesus Christ.”

 

In fact the New Living Translation adopts this interpretation: “May God’s grace be eternally upon all who love our Lord Jesus Christ.” (Ephesians 6:24 NLT)

 

This interpretation may be closer to what Paul meant to say.

 

John 13 says that when Jesus loved his own which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unto the end” (John 13:1 KJV). This verse portrays Jesus loving men to the very end, that is, the full extent of His love.

 

Whom must we love? Christ. Loving Christ who loved me, loving that Jesus, is the very thing that we oughtto do.

 

“Grace to all who love our Lord Jesus Christ with an undying love.” (Ephesians 6:24 NIV)

 

“Grace be with all of you who love Christ—eter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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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 23~24

23~24

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바울 서신에는 은혜’, ‘평강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면서 에베소서 마지막 말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엡 6:24)

 

바울의 간절한 소망이 느껴지는 동시에 편지를 읽는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풍겨지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어떤 마음으로 말씀이 읽혀지시나요? 이 말씀을 언뜻 보면 이렇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은혜가 있다’라는 말을 ‘복이 있다’라는 말로 바꾸어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또 다르게는 이런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고통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녀의 축복을 받고, 후손이 잘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사업이 잘 될 것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성공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은혜, 인생의 굽이굽이를 함께해 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말씀을 이해한다면 신앙의 동기 부여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에베소서 말씀의 흐름을 놓고 본다면, 적절하지 않은 해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은혜를 빕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 혹은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좋아하는 표현이죠. 여러분은 어떤 의미를 담아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십니까? “다 잘 될 거야. 이런저런 축복을 받을 거야. 복 받을 거야…” 이런 의미로 말씀하실 때가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본문의 흐름을 본다면 적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은혜’, ‘평강’은 매우 중요하고, 자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든 서신서 앞부분에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평안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리스’(Χάρις)인데, 에베소서에만 무려 12번 나오고 있습니다(1:2,6,7; 2:5,7,8; 3:2,7,8; 4:7,29; 6:24). ‘평안’, ‘평강’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이레네’(εἰρήνη)인데 에베소서에서 8번 나옵니다.

자, 에베소서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6:1~2) 그리고 말미에 가서 은혜, 평안이라는 단어가 또다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를 비롯한 그의 모든 서신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평강’ 혹은 ‘하나님의 평안’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겠습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단어가 사용된 용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에베소서 1장 6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는 거저 받는 것이라는 뜻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어지는 7절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 중)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첫 번째 차원은 죄 사함의 은총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이후 2장 8절에서 이렇게 표현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이러한 말씀 속에서 우리는 바울이 말씀하는 은혜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구속하시고 살리시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가 우리에게 선물로서 거저 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3장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엡 3:7 중)

 

바울은 자신에게 사명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도록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선교하도록 불러 주신 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바울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사명의 은혜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장 7절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엡 4:7)

 

사도 바울의 고백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는 은혜의 차원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사명을 주셔서 일할 수 있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은혜와 평안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바울 사도가 서신서를 쓸 때마다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구원의 능력이나 역사가 점점 늘어나고 분명해진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각 사람에게 주시는 사명이 많아진다는 의미일까요? 저는 이 말씀이 이렇게 들립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이 너희 안에 늘 살아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에 충실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은 은혜가 부족해서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우리 안에 늘 살아나고 생동력 있고, 궁극적으로는 감사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 성도를 향한 사도 바울의 부탁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네 분의 장로님을 안수하는 임직 예식을 거행합니다. 임직 예식이야말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잘 보여 주죠.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구원의 은혜에 감사드렸다면, 이제는 더 나아가서 우리 각자를 특별한 일에 사용하시는 은혜의 감격으로 나아가기를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이것이 임직의 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장로의 직분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찬양대원으로 노래하는 것, 지휘하는 것, 예배 안내로 봉사하는 것, 차량부로 봉사하는 것, 식당 봉사하는 것, 교사로서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것 모두 은혜입니다. 꽃꽂이 봉사, 장애인을 돌보는 사역, 새신자 환영, 결혼 봉사, 장례 위로, 헌금 봉사, 선교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또 직원으로,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목사로 직분을 감당케 하심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바울은 사명의 은혜와 평강‧평안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킵니다. 에베소서에서 말씀하는 평강, 평안은 헬라어로 에이레네입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평안은 개별적인 마음의 감정 상태를 가리키기보다는 관계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즉 화평케 함, 평안의 매는 줄 등으로 표현되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이루신 사역과 주로 연결됩니다. 에베소서 2장 14,17절 말씀을 봉독해 드립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였으니 (엡 2:14,17)

 

제가 지금 읽은 이 말씀 속에서 ‘에이레네’ 곧 ‘평안’이라는 단어가 3번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가로막힌 모든 담을 허시고 하나가 되게 하시는 일이 화평이라는 것입니다. 이 평안의 복음은 우리의 사역으로 이어집니다. 에베소서 4장 3절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하나님과 화평케 된 우리가 사명을 받게 되는데, 우리도 또한 평안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조금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이 헐리고, 그 결과 우리는 참된 평강과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평안을 누리게 된 우리는 새로운 사명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사명은 세상에 나가서 평안을 만드는 일 즉 주님이 행하셨듯이 막힌 담을 허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말씀 안에 매우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정말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사십니까? 에베소서 마지막 구절이 한 가지 단서를 전해 줍니다. 평안과 은혜 둘 사이에 들어 있는 새로운 단어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23절에서는 ‘믿음을 겸한 사랑’, 24절에는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믿음을 겸한 사랑은 사랑의 출처를 의미한다면,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는 사랑의 질적인 측면을 다룹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어떤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지를 알려 준다는 것입니다. 누가 은혜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까? 누가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바로 이들이 구원에 감격하며, 사명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일할 때도 그렇습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도 그렇고 신앙생활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너무나도 귀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이 너무나도 귀하고 감사합니다. 그 가치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가치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디베랴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 사랑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향하여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네가 지금 나를 믿겠느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 주시면서 “이제는 믿을 만하지 않느냐? 이 정도면 부활의 소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단 한 가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답하는 베드로를 향해서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말씀하시며 사명의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은 살아 있는 것으로 체험되기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 있다면 바로 사랑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가져야 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사랑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은 이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엡 6:24)

 

이 말씀을 읽으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조금 부담스럽지는 않으신가요? ‘변함없이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이 제법 무게감을 줍니다. 과연 우리는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을 자칫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지만,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다….

여러 이단들이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약점을 공략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당할 미래를 말씀하셨을 때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강력하게 항의하다가 도리어 책망을 받는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의 귀를 베어낸 자도 베드로가 아니었습니까?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셨을 때 물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헬라어로 보면 조금 의미심장합니다. 주님이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아가페) 하느냐?” 그때 베드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필로스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지요.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일관되지 못한,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한 모습을 생각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너는 나를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여전히 그는 필로스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필로스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고, 그때에 베드로는 “필로스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사랑의 깊이, 사랑의 지속성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던 베드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갑니다.>

 

자 그렇다면,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엡 6:24)

 

이 말씀은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하면 은혜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도리어 은혜받은 자로서 변함없이 사랑하기를 노력하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변함없이 사랑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끝까지,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며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고,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일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한 가지 6장 24절 말씀을 다르게 볼 가능성이 함께합니다. 24절을 원어의 어순을 따라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은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변함없이

ἐν ἀφθαρσίᾳ: en aphtharsia (in incorruptibility, 변함없이, 부패함 없이, 영원히)

 

즉 ‘변함없이’라는 단어가 표현하는 수식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 성경은 ‘변함없이’가 ‘사랑’을 수식하는 형태로 번역합니다.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변함없이’를 ‘은혜’와 연결해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독일어 관주성경은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리기를 빕니다.”라는 뜻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번역이 이러한 해석을 따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기를 빕니다.”

개인적으로 이 해석이 저에게는 조금 더 와닿습니다. 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가 끝까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려고 제 나름대로 노력하겠지만, 혹시 그렇지 못할 때라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싸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해석이 보다 바울다운 해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은 마지막 공생애를 보내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라고 증언합니다. 마지막까지, 끝까지 사랑하시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쓰러지고 넘어질 때에라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해 주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랑하십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구원의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이 사랑으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은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변함없이

20231112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변함이 없는 사랑의 사람 (6:23-24)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12장, 45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엡 6:23-24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1월 1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두 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라는 말이고, 또 하나는 평안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는 바울이 모든 서신의 앞부분에서 인사를 할 때마다 빠짐없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에베소서는 오늘 본문에서 다시 은혜와 평안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와 다른 모든 서신에서 말하고 있는 은혜와 평안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설교의 요약

은혜라는 단어는 ‘카리스’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에베소서에만 12번 나옵니다. 이 구절들을 살펴보면 바울 사도가 말하고 있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은혜는 “우리에게 거저주신 것, 곧 죄사함의 은총”을 뜻합니다.(엡 1:6-7)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어서 은혜에는 또 다른 차원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사명을 주신 은혜”입니다.(엡 3:7)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 또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사명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엡 4:7)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도록 부름받은 것 또한 은혜입니다. 에베소서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첫째로 구원의 은혜이며, 둘째로는 사명의 은혜입니다. 바울 사도가 편지를 쓸 때마다,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인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의 감격이 늘 살아있기를 원한다”는 말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사명에 충실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그 사명의 뜨거움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명의 은혜를 평안 또는 평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평안은 ‘에이레네’라고 하는데, 어떤 마음의 상태라기보다는 관계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담을 허물고 관계를 회복하신 것, 둘을 하나로 만드시는 것이 바로 평안의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은 은혜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평안입니다. 그리고 은혜는 우리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끄십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평안의 일을 감당하는 사명을 받는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를 부담스럽게 하는 표현은 바로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엡 6:24)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24절을 정확하게 원어의 어순을 따라 번역하면 ‘변함없이’라는 표현이 우리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맞닿아 있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은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변함없이”(6:24)

즉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변함없는 것처럼, 우리도 그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이 은혜와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변함없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나의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명의 은혜를 경험했나요?
  2.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관계적 평화를 위해 어떻게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구속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또한 부족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사명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 감격이 늘 살아있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 변함이 없는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는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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