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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에서 받은 새 계명

마가복음 9: 2~7

김경진 목사

2023.08.27

<예수님이 경험하신 변화산 사건은 모세의 시내산 사건과 매우 유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시는 내용입니다. 높은 산에 오르셨을 때 예수님의 옷이 광채와 같이 빛나고, 그곳에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성경은 알려 줍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특별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막 9:7)

 

이 이야기가 과연 실제로 일어난 것일지, 아니면 의미를 담은 하나의 이야기일지 의문을 품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세상의 고전과 신화들을 많이 읽은 분들이라면 예수님을 신격화하려는 하나의 문학적 시도가 아닌지 질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 기적과 치유의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변화산 사건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죠. 초대 교회가 성장해 가는 시기에도 이러한 생각과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의 서신 베드로후서 서두 부분에서 이와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더없이 영광스러운 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좋아하는 아들이다하실 때에,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을 때에 우리는 이 말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벧후 1:16~18, 새번역)

 

사도 베드로는 분명 그의 서신에서 자신을 포함한 제자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변화산에서 경험한 사건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경험의 실체를 전해 주고 있죠.

그렇다면 왜 이토록 믿기 어려운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여 주셨을까요? 변화산의 경험이 예수님의 사역과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변화산에서의 사건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가 경험한 시내산 사건입니다.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두 사건 사이에 유사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변화산 사건을 의도적으로 일으키셨다면, 이 사건은 구약의 모세 시대 있었던 시내산 사건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 점을 여러 방면에서 보여 줍니다.

우선, 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유사합니다. 출애굽기 24장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산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시며 십계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모세 옆에 여호수아라는 인물이 함께 오릅니다. 오늘 본문 속에도 예수님께서 산을 오르시는데 함께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모세 그리고 예수님의 뒤를 이을 후계자들이 함께 산을 올랐다는 것입니다. 모세 곁에는 여호수아가, 예수님 곁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사도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대대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이들의 경험이 단지 한 개인의 경험에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경험으로 나아간다는 차원을 가집니다.

두 본문 가운데 ‘구름’이 나오고, ‘엿새 후’라는 표현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점 또한 두 번째 공통점입니다. 출애굽기 24장 15~16절입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24:15~16)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에도 구름이 와서 덮었는데, 놀랍게도 ‘엿새 후’라는 표현이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마가복음 9장 2절 앞부분입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9:2)

 

시내산 사건과 변화산 사건의 세 번째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형되신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9:3)

 

이 말씀이 마태복음에는 조금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17:2)

 

성경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내려올 때도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말씀합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34:30)

 

예수님의 얼굴에도 광채가 있었고, 모세의 얼굴에도 광채가 났다는 것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변화산 사건을 경험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산 아래로 내려오셨을 때, 남아 있는 자들의 실패가 모세의 이야기와도 잘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남아 있는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경우도 그러하죠.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산 아래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주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놀라운 계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며 내려온 모세 앞에 펼쳐진 것은 백성의 배반과 불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결국 스스로 금송아지 형상의 신을 만들어 섬기고 맙니다.

변화산 사건을 경험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부족한 신앙, 불신앙의 시대를 한탄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내산 아래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변화산 아래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믿음 없음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변화산 사건과 시내산 사건은 분명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부르셔서 모세와 유사한 경험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통해서 대대로 전달되도록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의도를 가지시고 변화산 사건을 일으키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사건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신 메시지가 무엇이겠습니까?

<매우 유사한 두 사건이지만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두 사건 속에 나타난 공통점뿐만 아니라 차이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먼저는 등장인물이 다릅니다. 시내산에는 모세가 서 있지만, 변화산에는 예수님께서 서 계십니다. 둘의 차이는 매우 극명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율법을 받아드는 순간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율법을 손수 돌판에 써 주시며 모세에게 전달해 주셨습니다. 율법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오신 분이십니까?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5:17)

 

율법이 모세와 더불어 시작되었다면, 예수님과 함께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시작점이 모세의 시대에 있었다면, 율법의 완성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경험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명령과 규례, 율법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들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놓고 춤을 추며,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때 화가 난 모세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손수 율법을 새겨 주신 돌판을 내동댕이쳐 버립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계약이 끝날 법도 했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부르십니다. 출애굽기 34장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판 두 개를 처음 것과 같이 깎아라. 그러면, 네가 깨뜨려 버린 처음 돌판 위에 쓴 그 말을, 내가 새 돌 판에 다시 새겨 주겠다. (출 34:1, 새번역)

 

은혜롭게도 깨어진 돌판을 다시 만들어 주시며, 같은 계명을 새 돌판에 새겨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다시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그 후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의 돌판을 가지고 산에서 다시 내려옵니다. 그의 얼굴에는 광채가 가득합니다. 그렇게 전달된 것이 하나님의 두 번째 언약의 돌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어떠합니까?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언약을 성실하게 지켜내지 못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또다시 반역하였고, 불신하였고, 불순종하였습니다. 다시 바알을 섬기고, 아세라를 섬기고,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명령하신 첫 번째 계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굴레요, 한계입니다. 이스라엘의 한계이며,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 사건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 주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도저히 지켜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첫 번째 돌판이 깨어졌습니다. 두 번째 돌판도 이스라엘 마음속에서 깨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릅니다. 이스라엘은 도저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참으로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전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율법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더 정교하게, 더 세밀하게 다듬고 만드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율법의 기능을 해결하고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오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 주는 통로가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끊임없이 반역하자, 율법의 기능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시게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변화산 사건은 하나님께서 세 번째로 말씀을 새겨 주신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판에 새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심비에 새겨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을 올랐듯, 예수님이 높은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모되셨을 때에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9:7)

 

놀라운 음성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은 이전에 일찍이 들려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던 자리에서 하늘로부터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1:11)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너에게 맡겨 준 일을 잘 감당하라.” 이 말씀이 다시 전해지는데, 그 자리가 바로 변화산이었던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께서 수난의 길로 들어서시는 지점에 자리합니다. 마가복음 8장 이후부터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예고하시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고자 하셨습니다. 그 지점에서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격려해 주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시내산에서의 모세와 변화산에서의 예수님의 차이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지만, 예수님은 주인이십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인간과 언약을 세우는 자리에 서 계신 것입니다. 모세는 인간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받고 내려왔다면, 변화산의 경험은 반대로 나타납니다. 인간을 대표해서 누군가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인간을 대신하셔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대상이 달라졌습니다. 시내산에서는 인간을 대표해서 인간이 올라가고 있었다면, 변화산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을 향해 직접 내려오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말씀이 이어집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9:7)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새로운 약속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의 입으로 전달되는 희망의 소식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을 대신하여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 안에서 율법이 완성되고, 인간에게는 복음이 선포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들으라고 말씀하신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직접적으로 살펴본다면 예수님의 수난, 부활, 죽음과 관련된 말씀이겠습니다. 변화산 사건 앞과 뒤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관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시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때에 주님이 수난에 관하여 예고해 주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8:31)

 

그리고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 제자들에게 수난에 관하여 두 번째로 예고하십니다. “이제 내가 수난을 당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9장 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면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하신 말씀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다시 말하면 변화산 위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말, 곧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 시내산에서 받은 모든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 따라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변화산에서 주신 말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의 내용이 가리키는 바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변화산에서 주신 말씀의 핵심이입니다.

너희는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와 같은 말씀은 이제 덮으시고, 새로운 말씀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제 나 예수가 수난당할 것이고, 죽임당할 것이고, 말씀대로 부활할 것이다. 이것을 믿으라!” 주님은 구원의 계획을 말씀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복음입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율법 아래 놓인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주님 주신 새 계명을 듣고 믿으면 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주옥과도 같은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

 

구약의 말씀은 어떠합니까? 도둑질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 …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들을 덮으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또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7:37~38)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서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는 모든 말씀을 덮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힘든 자들, 모두 다 내게로 나와오라. 내게 와서 마시라. 너희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가도록 만들어 주겠다.” 주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주님이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십니다. 이러한 말씀은 변화산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시켜 줍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9:7)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변화산에서 세우신 새 돌판이요, 새 계명입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9:7)

 

여러분,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미 모든 것을 완성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 주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십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he New Comman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Mark 9:2-7

 

Today’s passage from Mark tells a special story—the story of Jesus going up ahigh mountain and communicating deeply with God. It tells us that on the mountain Jesus’ clothes shone like the light and Jesus conversed with Moses and Elijah. Peter, James, and John were there with Jesus on the mountain; and they testify that they heard a special voice from heaven: “This is my Son, whom I love. Listen to him!” (Mark 9:7)

 

Did this actually happen? Or is it just one of those stories made up to convey a message? Those of you well versed in non-biblical classics and legends may question the veracity of this story in the Bible, viewing it as a literary attempt to deify Jesus. Suchskepticswill find it difficult toaccept the many biblical stories about miracles and healing as facts. They may have the same difficulty about today’s passageon Jesus’ transfiguration. They mayregard it as a myth of some sort. Even during the time of the Early Church, however, such skeptics seem to have existed.

 

Accordingly, Peter writes the following in the first part of his letter, 2 Peter,for the benefit of these skeptics who doubted the transfiguration of Jesus:

 

“For we did not follow cleverly devised stories when we told you abou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in power, but we were eyewitnesses of his majesty. He received honor and glory from God the Father when the voice came to him from the Majestic Glory, saying,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I am well pleased.’” (2 Peter 1:16-18)

 

The apostle Peter clearly states in this letter that a number of disciples, including himself, heard God say, “This is my Son, whom I love,” when He glorified Jesus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Furthermore, Peter states that this is not a “cleverly devised story.” He testifies that the incident was an actual event he experienced.

 

Based on this testimony of Peter, we may assess that the incident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were events that Jesus clearly and actually experienced with Peter, James, and John.

 

Then what is the significance of this incident in Jesus’ life and ministry? Why did God make such a special event take place? And what are its lessons and meaning for us today?

 

Tounderstand Jesus’ experience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properly we must first look at Moses’ experience on Mount Sinai. Comparing the two is important because theBible describes them as two parallel experiences.

 

First, the two scenes of climbing the mountain are similar.

 

Look at Exodus 24:13. When God commands Moses to come up Mount Sinai for the Ten Commandments, he goes up the mountain with Joshua. What about Matthew 17:1?Jesus climbs the mountain with Peter, John, and James, calling them aside.

 

There is an important parallel here. Moses and Jesus both take their successorsup the mountain. Joshua would be Israel’s next leader. Peter, John, and James would become the leaders of the Early Church after the death of Jesus, preaching the gospel of Christ and edifying the Church. So their experience on the mountain meant something greater than a personal experience—a special experience that had to be passed down to future generations.

 

Let’s look at Exodus 24:15-16 again:

 

“When Moses went up on the mountain, the cloud covered it, and the glory of the Lord settled on Mount Sinai. For six days the cloud covered the mountain, and on the seventh day the Lord called to Moses from within the cloud.” (Exodus 24:15-16)

 

When Jesus went up the mountain with His disciples, a cloud covered them too. Moresurprisingly, both texts, that is, Exodus and Mark, use the expression “six days.” A striking parallel can be found between“for six days […] and on the seventh day” in Exodus 24:16 and “after six days” in Mark 9:2.

 

“After six days Jesus took Peter, James, and John with him and led them up a high mountain, […]”(Mark 9:2)

 

In both stories, that of Mount Sinai and that of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six days” is mentioned.

 

Further parallels can be found between the two stories.

 

Today’s passage from Mark describes Jesus’ transfiguration as follows:

 

“and his clothes became dazzling white, far whiter than any earthly bleach could ever make them.” (Mark 9:3)

 

Matthew also writes that “his face shone like the sun, and his clothes became as white as light.” (Matthew 17:2)

 

The Bible says something similar about Moses when he came down Mount Sinai with the stone tablets: his face was radiant.

 

“So when Aaron and the people of Israel saw the radiance of Moses’ face, they were afraid to come near him.” (Exodus 34:30)

 

More interestingly, there is a parallel between the people left behind at the bottom of the mountain in both stories: the failure of the people that Jesus faced after His incredible transfiguration resembles the unfaithfulness of the Israelites that Moses saw when he came down Mount Sinai.

 

When Jesus descended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He found that the disciples who hadn’t accompanied Him were utterly powerlessto cast out an evil spirit from a little boy. Likewise, when Moses came down Mount Sinai, he found the Israelites worshiping and dancing around a golden calf.

 

Moses had just made an awesome covenant with God on Mount Sinai and was determined to live faithfully as God’s people. However, what confronted him at the bottom of the mountain was the betrayal and distrust of the Israelites. The Israelites had distrusted God… Even though Aaron had been there with them, he couldn’t prevent their distrust. They waited for God—but not to the end. They ended up craftinga golden calf, worshipping an idol instead of God and dancing before it.

 

The sin of the Israelites at the bottom of the mountain was distrust in God. They failed to trust God wholly. The sin of the disciples at the bottom of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was also distrust. Jesus called them “you faithless people.”

 

Now we can spot the clear connection between Jesus’ transfiguration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and Moses’ experience on Mount Sinai. God invited Peter, John, and James to experience something similar to what Moses had experienced on Mount Sinai. Furthermore God ensured that the experience was pass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hrough the three.

 

Then what is the message God conveys to us through Jesus’ transfiguration? Why did God make Jesus and the three disciples experience a similar incident to that of Moses on Mount Sinai, and what is God’s message through it?

 

To answer this we must now look at th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incidents. How are Jesus’ transfiguration and Moses’ experience on Mount Sinai different?

 

First, the characters. On Mount Sinai we have Moses.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we have Jesus. Moses was the one who received the law from God. Jesus was the One who came to fulfill it.

 

This is what Jesus said:

 

“Don’t misunderstand why I have come. I did not come to abolish the law of Moses or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No, I came to accomplish their purpose.” (Matthew 5:17)

 

First, let’s have a look at Moses’ experience in Exodus. He goes up Mount Sinaiin order to receive God’s commands and law. There, he receives God’s commandments. Then he descends the mountain, carrying the Ten Commandments in his arms. But he is confronted by a shocking sight at the bottom of the mountain. He finds the very people, who ought to be serving and worshipping God, dancing around a golden calf in utter chaos and frenzy.

 

Moses becomes so infuriated that he throws down the tablets. AndGod punishes the Israelites.

 

Then God calls Moses again. Let’s look at Exodus 34:1:

 

“Then the Lord told Moses, ‘Chisel out two stone tablets like the first ones. I will write on them the same words that were on the tablets you smashed.’” (Exodus 34:1)

 

How gracious is our God to write the same words again for Moses. After receiving them a second time, Moses descends from the mountain with the new tablets of God’s covenant in his arms. The Bible states that Moses’ face had become radiant, and so he covered his face with a veil. (Exodus 34:35)

 

These were the second stone tablets on which God’s terms of the covenant were inscribed. But… studying Israel’s history, we find that even that covenant was not kept by the Israelites.

 

They rebelled against God again and distrusted and disobeyed Him. They served Baal and foreign gods again. They syncretized again… They failed to live the life that God wanted them to live.

 

God inscribed His covenant on the first stone tablets, but these had to be smashed due to the Israelites’ distrust in Him as seen in their worship of the golden calf. Consequently, God gave them the second tablets, on which the same words were inscribed again, but they continued to distrust God and refused to follow God and Him only.

 

This is man’s yoke, his limit. This story is a clear reminder of who man is—a creature incapable of keeping God’s laws and commands.

 

The first stone tablets were physically smashed, but the second ones were also smashed in the hearts of the Israelites. And a long time passed. The Israelites were simply incapable of keeping God’s law.

 

Then Jesus came to earth. As He Himself said, the Son of Man came to fulfill the law. In other words, Jesus came to solve the problem of the law.

 

Therefore, the Jesus’ transfiguration isprecisely the story of God giving anew His people the third stone tablets. But this time, God would not inscribe His covenant on stone, but on the hearts of the disciples, on our hearts.

 

Jesus climbed up the mountain, as if he were Moses going up Mount Sinai to receive the law from God. Then Jesus was transfigured with God’s glory. Then a voice came from heaven: “This is my Son, whom I love. Listen to him.” (Mark 9:7)

 

First of all, the expression “my Son whom I love” is astonishing. These same words were heard from heaven earlier too when Jesus was being baptized:

 

“You are my dearly loved Son, and you bring me great joy.” (Mark 1:11)

 

Before Jesus started His public ministry, God encouraged Him with these words at His baptism.

 

But now, atop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God speaks to, and about, His Son again: “This is my Son, whom I love.” At the turning point of Jesus’ ministry, after which He would suffer, God encourages Jesus again.

 

We must note that the Bible clearly distinguishes Jesus from Moses. Moses was a servant of God, but Jesus wasthe Son of God. Moses was God’s worker, but Jesus is our Lord. In Mark, it is not a servant of God climbing the mountain, but the Son of God going up the mountain Himself with His men to receive the covenant of God. This is the essence of what happene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Here we discover God’s amazing grace. He did not send His servant. Nor His agent. God Himself sent His Son to the very scene of His covenant.

 

And an incredible word of God is heard: “Listen to him.” (Mark 9:7)

 

God is telling the people to listen to the new covenant spoken by Jesus. God is saying, “Listen to the news of hope spoken by My Son. It is no longer the law. Now it is the gospel.”

 

Then what words of Jesus did God want us to hear? It was Jesus’ words about His suffering and resurrection.

 

Interestingly, both the preceding and succeeding verses of today’s text record Jesus’ words. Both tell the same contents—that Jesus must suffer and will be raised again.

 

In the passage that comes right before Jesus’ transfiguration, Jesus asks His disciples, “Who do people say I am?” And Peter answers, “You are the Messiah.” After this confession by Peter, Jesus finally tells His disciples that He will suffer, die, and be resurrected:

 

“He then began to teach them that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at he must be killed and after three days rise again.”(Mark 8:31)

 

After descending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and healing the demon-possessed boy, Jesus again tells His disciples that He must suffer but will be raised from the dead. This is Jesus’ second prediction of His passion in Mark.

 

Why are these words of Jesus so important? Think about what happened after Moses received the Ten Commandments at Mount Sinai. Although God gave the Israelites His law, they failed to keep it. Consequently, God, knowing their weakness too well, sends Jesus to earth to make a new covenant. This new covenant would not be a law inscribed on a stone tablet; it would be shown through a special incident—the suffering, death, and resurrection of His Son. From now on, this would replace the stone tablets.

 

This is why God commands the disciples to “listen to him.” (Mark 9:7)

 

Now the law will be replaced and perfected by the suffering, death, and resurrection of His Son. Jesus spoke about this salvation plan of God; and indeed His words came true.

 

The broader meaning of God’s command to “listen to him” in Mark 9:7 is this: from now on all that Jesus says on earth will be the new law that must be received and observed.

 

Listen to him. Jesus’ words, all His words will now replace the words and the law on the stone tablets. No, they will replace every letter of the law. Jesus will rewrite the law.

 

What did Jesus say? He said,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Matthew 11:28)

 

He also said,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John 14:27)

 

“Let anyone who is thirsty come to me and drink. Whoever believes in me, as Scripture has said, rivers of living water will flow from within them.” (John 7:37-38)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John 14:6)

 

These words of Jesus perfect the commands that Moses received at Mount Sinai.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give false testimony against your neighbor.”(Exodus 20:13-16)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God confirms that now we must listen to Jesus’ words spoken on earth, not the commands given in Exodus.

 

This is grace. Therefore, we can approach our Lord. We,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thirsty, can go to Him.

 

This is the very law, the new command, that God newly establishe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Listen to him.” (Mark 9:7)

 

This word is an amazing grace to us. It is not the law, but the Good News. We are men and women who have grasped this Good News.

 

It is my hope that we will all be renewed and transformed by holding steadfastly to this word of our Lord—the word of hope, life, and the Good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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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 2~7

2~7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예수님이 경험하신 변화산 사건은 모세의 시내산 사건과 매우 유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시는 내용입니다. 높은 산에 오르셨을 때 예수님의 옷이 광채와 같이 빛나고, 그곳에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성경은 알려 줍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특별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막 9:7)

 

이 이야기가 과연 실제로 일어난 것일지, 아니면 의미를 담은 하나의 이야기일지 의문을 품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세상의 고전과 신화들을 많이 읽은 분들이라면 예수님을 신격화하려는 하나의 문학적 시도가 아닌지 질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 기적과 치유의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변화산 사건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죠. 초대 교회가 성장해 가는 시기에도 이러한 생각과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의 서신 베드로후서 서두 부분에서 이와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더없이 영광스러운 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좋아하는 아들이다하실 때에,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을 때에 우리는 이 말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벧후 1:16~18, 새번역)

 

사도 베드로는 분명 그의 서신에서 자신을 포함한 제자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변화산에서 경험한 사건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경험의 실체를 전해 주고 있죠.

그렇다면 왜 이토록 믿기 어려운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여 주셨을까요? 변화산의 경험이 예수님의 사역과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변화산에서의 사건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가 경험한 시내산 사건입니다.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두 사건 사이에 유사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변화산 사건을 의도적으로 일으키셨다면, 이 사건은 구약의 모세 시대 있었던 시내산 사건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 점을 여러 방면에서 보여 줍니다.

우선, 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유사합니다. 출애굽기 24장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산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시며 십계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모세 옆에 여호수아라는 인물이 함께 오릅니다. 오늘 본문 속에도 예수님께서 산을 오르시는데 함께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모세 그리고 예수님의 뒤를 이을 후계자들이 함께 산을 올랐다는 것입니다. 모세 곁에는 여호수아가, 예수님 곁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사도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대대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이들의 경험이 단지 한 개인의 경험에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경험으로 나아간다는 차원을 가집니다.

두 본문 가운데 ‘구름’이 나오고, ‘엿새 후’라는 표현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점 또한 두 번째 공통점입니다. 출애굽기 24장 15~16절입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24:15~16)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에도 구름이 와서 덮었는데, 놀랍게도 ‘엿새 후’라는 표현이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마가복음 9장 2절 앞부분입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9:2)

 

시내산 사건과 변화산 사건의 세 번째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형되신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9:3)

 

이 말씀이 마태복음에는 조금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17:2)

 

성경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내려올 때도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말씀합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34:30)

 

예수님의 얼굴에도 광채가 있었고, 모세의 얼굴에도 광채가 났다는 것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변화산 사건을 경험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산 아래로 내려오셨을 때, 남아 있는 자들의 실패가 모세의 이야기와도 잘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남아 있는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경우도 그러하죠.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산 아래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주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놀라운 계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며 내려온 모세 앞에 펼쳐진 것은 백성의 배반과 불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결국 스스로 금송아지 형상의 신을 만들어 섬기고 맙니다.

변화산 사건을 경험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부족한 신앙, 불신앙의 시대를 한탄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내산 아래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변화산 아래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믿음 없음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변화산 사건과 시내산 사건은 분명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부르셔서 모세와 유사한 경험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통해서 대대로 전달되도록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의도를 가지시고 변화산 사건을 일으키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사건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신 메시지가 무엇이겠습니까?

<매우 유사한 두 사건이지만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두 사건 속에 나타난 공통점뿐만 아니라 차이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먼저는 등장인물이 다릅니다. 시내산에는 모세가 서 있지만, 변화산에는 예수님께서 서 계십니다. 둘의 차이는 매우 극명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율법을 받아드는 순간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율법을 손수 돌판에 써 주시며 모세에게 전달해 주셨습니다. 율법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오신 분이십니까?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5:17)

 

율법이 모세와 더불어 시작되었다면, 예수님과 함께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시작점이 모세의 시대에 있었다면, 율법의 완성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경험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명령과 규례, 율법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들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놓고 춤을 추며,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때 화가 난 모세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손수 율법을 새겨 주신 돌판을 내동댕이쳐 버립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계약이 끝날 법도 했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부르십니다. 출애굽기 34장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판 두 개를 처음 것과 같이 깎아라. 그러면, 네가 깨뜨려 버린 처음 돌판 위에 쓴 그 말을, 내가 새 돌 판에 다시 새겨 주겠다. (출 34:1, 새번역)

 

은혜롭게도 깨어진 돌판을 다시 만들어 주시며, 같은 계명을 새 돌판에 새겨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다시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그 후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의 돌판을 가지고 산에서 다시 내려옵니다. 그의 얼굴에는 광채가 가득합니다. 그렇게 전달된 것이 하나님의 두 번째 언약의 돌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어떠합니까?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언약을 성실하게 지켜내지 못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또다시 반역하였고, 불신하였고, 불순종하였습니다. 다시 바알을 섬기고, 아세라를 섬기고,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명령하신 첫 번째 계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굴레요, 한계입니다. 이스라엘의 한계이며,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 사건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 주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도저히 지켜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첫 번째 돌판이 깨어졌습니다. 두 번째 돌판도 이스라엘 마음속에서 깨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릅니다. 이스라엘은 도저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참으로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전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율법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더 정교하게, 더 세밀하게 다듬고 만드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율법의 기능을 해결하고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오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 주는 통로가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끊임없이 반역하자, 율법의 기능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시게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변화산 사건은 하나님께서 세 번째로 말씀을 새겨 주신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판에 새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심비에 새겨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을 올랐듯, 예수님이 높은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모되셨을 때에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9:7)

 

놀라운 음성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은 이전에 일찍이 들려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던 자리에서 하늘로부터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1:11)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너에게 맡겨 준 일을 잘 감당하라.” 이 말씀이 다시 전해지는데, 그 자리가 바로 변화산이었던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께서 수난의 길로 들어서시는 지점에 자리합니다. 마가복음 8장 이후부터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예고하시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고자 하셨습니다. 그 지점에서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격려해 주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시내산에서의 모세와 변화산에서의 예수님의 차이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지만, 예수님은 주인이십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인간과 언약을 세우는 자리에 서 계신 것입니다. 모세는 인간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받고 내려왔다면, 변화산의 경험은 반대로 나타납니다. 인간을 대표해서 누군가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인간을 대신하셔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대상이 달라졌습니다. 시내산에서는 인간을 대표해서 인간이 올라가고 있었다면, 변화산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을 향해 직접 내려오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말씀이 이어집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9:7)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새로운 약속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의 입으로 전달되는 희망의 소식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을 대신하여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 안에서 율법이 완성되고, 인간에게는 복음이 선포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들으라고 말씀하신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직접적으로 살펴본다면 예수님의 수난, 부활, 죽음과 관련된 말씀이겠습니다. 변화산 사건 앞과 뒤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관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시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때에 주님이 수난에 관하여 예고해 주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8:31)

 

그리고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 제자들에게 수난에 관하여 두 번째로 예고하십니다. “이제 내가 수난을 당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9장 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면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하신 말씀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다시 말하면 변화산 위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말, 곧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 시내산에서 받은 모든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 따라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변화산에서 주신 말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의 내용이 가리키는 바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변화산에서 주신 말씀의 핵심이입니다.

너희는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와 같은 말씀은 이제 덮으시고, 새로운 말씀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제 나 예수가 수난당할 것이고, 죽임당할 것이고, 말씀대로 부활할 것이다. 이것을 믿으라!” 주님은 구원의 계획을 말씀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복음입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율법 아래 놓인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주님 주신 새 계명을 듣고 믿으면 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주옥과도 같은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

 

구약의 말씀은 어떠합니까? 도둑질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 …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들을 덮으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또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7:37~38)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서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는 모든 말씀을 덮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힘든 자들, 모두 다 내게로 나와오라. 내게 와서 마시라. 너희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가도록 만들어 주겠다.” 주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주님이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십니다. 이러한 말씀은 변화산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시켜 줍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9:7)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변화산에서 세우신 새 돌판이요, 새 계명입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9:7)

 

여러분,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미 모든 것을 완성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 주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십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3년 8월 2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변화산에서 받은 새 계명 (막 9장 2~7)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539장, 528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막 9장 2~7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8월 2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변화산에서의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과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이러한 특별한 사건을 일으키셨을까요? 그리고 이 사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과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한 번 묵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명령과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계명을 받았고, 그 율법을 들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가운데 놓고 춤을 추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참으로 은혜롭게도 하나님께서 다시 새로운 돌판 위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겨 주셨습니다. 모세는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의 돌판을 가지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 언약조차도 성실하게 지켜지지 못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반역하였고 하나님을 불신하였고 순종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돌판에 언약을 적어 주셨지만, 금송아지를 만들어 춤을 추고 있는 그들의 불신 앞에서 돌판은 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두 번째 돌판을 만들어 그들에게 똑같이 적어 주었지만, 그들은 또다시 여전히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굴레요 인간의 한계입니다. 첫 번째 돌판도 깨어졌고, 두 번째 돌판도 이스라엘의 마음 속에서 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도저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긴 시간이 흘러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이 율법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변화산에서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써주시는 돌판의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돌판에 새겨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마음 판에 새겨 주십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예수님의 입으로 나오는 새로운 약속을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입으로 전달되는 희망의 소식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율법이 아닙니다. 이제는 복음입니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수난과 부활에 관한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이제 돌판을 대신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붙잡은 사람들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 위로의 말씀, 생명의 말씀, 복음을 붙잡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누기

 

  1. 변화산에서의 사건과 같이 우리 인생에 큰 이정표가 되었던 사건은 무엇이 있나요?
  2.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요즘 우리 인생에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이 있을까요?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보잘 것 없는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사랑의 하나님! 돌판에 새겨진 율법을 깨뜨리고 두 번째 돌판도 결국은 우리의 마음에서 깨뜨려 버린 불충하고 믿음이 없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약속으로 다가와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헛된 것에 매임 없이, 주님의 은총 가운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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