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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세상이지만 그 안에는 죽음의 문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2022년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병의 확산세가 여전한 가운데 맞이하는 새해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달력을 받아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인플레이션 발생으로 화폐 가치가 하락했다는 경제 뉴스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하여 월급을 제외한 모든 게 다 올랐다는 뉴스도 전해집니다. 그 말이 실감날 정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앞에 놓인 큰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면서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힌다는 사실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전염병으로 신음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형국입니다. 의학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왔고 발전된 의학으로 사람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허망하구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021년 말까지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53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세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죽음의 그림자는 코로나 이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코로나 발생 이후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약 5천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지난 2년 동안 누적된 숫자이겠죠. 하지만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숫자는 1만 3천여 명 이상입니다. 그러니까 코로나로 인해 5천 명이 죽어 가던 2년여의 기간을 합산해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목숨을 스스로 끊은 사람의 숫자가 2만 6천여 명에 이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우주로 로켓을 발사하고 민간 사업자들이 우주여행 꿈을 부추기는 상황입니다. 끊임없는 의학 발전, 생명 공학의 발전, 인간의 비밀을 풀어내는 과학적 지식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늘을 날고 자동으로 자율 주행하는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들이 들리며 기쁨을 주기도 하고 또 희망을 주기도 하지요.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여러분?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과는 달리 오늘날 우리는 생명이 사라지고 약해지는 위기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전염병으로 신음하는 모습이 바로 적확한 예입니다. 전염병 뿐 아닙니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경쟁이라도 하듯이 희귀병이 등장하고 있고,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들마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36명의 자살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죠. 지난 3분기에는 0.82, 4분기에는 0.86의 출산율을 기록하며 2년이 넘도록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가 출산한 아이의 숫자를 앞서는 상황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비혼족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만일에 이 나라가 살 만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기에, 아기에게 행복을 줄 수 없을 것 같기에, 부모 자신도 행복하지 못할 것 같기에 아기 낳는 일을 포기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멋진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멋진 세상이 만들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생명을 낳지 않는 우리 모습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땅에 드리워진 죽음의 문화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폭행을 당하고 우울증을 앓다가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근로 현장에서 험한 노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여 죽게 된 안타까운 청년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SNS에 퍼져 있는 악플을 견디다 못해 죽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너무나도 흔합니다. 묻지마 폭행, 가족 간의 폭력, 살인 등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만큼의 이야기들이 우리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노사가 대결을 하고 남녀가 대결을 하고 이념이 충돌하고, 서로 원수처럼 싸우며 죽이려 드는 문화가 오늘 우리의 문화입니다. 편을 가르고 증오를 부추기며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모습이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문화는 기후 변화나 환경 오염으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발생한 홍수, 가뭄 등으로 작년만 해도 유럽에서는 수만 명이 수해로 죽거나 피해를 보는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생명이 약해지고 사라지는 현실입니다. 생명이 경시되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문명, 의학, 과학이 발전하며 생활은 점점 편리해지는데 생명들은 도리어 약해지고 사라지고 죽어 가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의 상황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죽음의 문화 반대편에는 생명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첫 주일부터 너무나 무거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랜만에 이와 같은 설교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우리는 죽음의 문화가 가득한 오늘의 세상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생명이 죽어 가는 문화, 생명을 죽이는 문화, 생명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 문화로 가득 차 있죠. 그렇다면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죽음의 문화에 우리는 어떻게 맞설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문화 속에서 휩쓸려 살다가 때로는 죽음의 위용에 유린당하며 죽어 가야 하는 것입니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일이니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만 잘하면 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죽음의 문화가 다가와서 우리를 가만 두지 않고 삼켜 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이 온통 죽음의 문화로 채워져 있다면, 반대편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생명을 만드시는 분이시요,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시요, 생명을 분여하시고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질서가 없고 생명이 없던 곳에 하나님께서 질서를 만드시고 생명을 창조하신 일을 증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건이죠. 하나님은 빛을 만드시고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곳에 숨 쉬는 동물들을 만드시고 바다의 물고기들을 만드셨습니다. 생명을 잘 유지토록 하시기 위해 에덴동산 주변에 강을 만드시고, 강가에는 나무들이 자라게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창조의 이야기가 전해 주는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생명을 있게 하시는 분이시며,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창조의 마지막 단계에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기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으로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늘 죽음으로 치닫는 미련한 존재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네가 이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선택한 운명은 죽음이었습니다. 이후로 인간이 살아가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이 함께하였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고, 죽음을 늘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인은 아우 아벨을 돌로 쳐서 죽임으로써 죽음의 문화를 뼛속 깊이 경험합니다. 아담에 이어 일대가 넘어가지 못한 상태에서 죽임이 만연한 세상이 열리고 만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문화는 결국 죽음의 문화가 되었고, 인간을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살리시는 분이시며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유리하는 자가 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표를 주시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죽임당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하갈이 이스마엘과 함께 아브람의 집에서 쫓겨나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 물이 없어 죽어 가던 때에 눈을 열어 주셔서 샘을 발견하게 하시며 살려 주신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살리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인간의 죄로 세상은 점점 죽음의 세상으로 변해 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죽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사랑하시며 살려내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죽음에 둘러싸인 세상에 어떻게 오셨는지를 어둠과 빛의 대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1~4)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9~12)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두움의 대비를 통하여 죽음과 생명의 세상을 비교하시면서 이 땅에 참 생명을 보내 주셨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이 보내신 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즉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특권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이렇듯 성경은 죽음의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참 생명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 생명이시며 그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믿는 자녀에게 주시는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생명이란 어떤 생명입니까? 죽음의 권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지만 주님은 사흘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보다 분명히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죽은 그리스도를 사흘 만에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즉 죽음의 힘이 가둘 수 없는 생명,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가진 사람은 죽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내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떡을 달라는 무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2~35)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잠시 위로를 주는 떡, 잠시 배부르게 하는 떡과 영원한 위로가 되는 떡, 영원히 우리를 배부르게 할 떡을 구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가져오신 생명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이며 결코 주리지 않게 하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세상, 죽음의 문화, 어둠의 문화를 극복하고 다시 살려내는 열쇠는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분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생명이시며, 그 생명을 분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앞서 말씀드린 죽음의 문화는 오직 이 생명으로부터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사회의 운동이나 문화적인 모습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될 때에 죽음의 문화가 물러가고 썩어 가는 세상이 맛을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세상을 살리는 사람들이고 세상을 살릴 유일한 대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사역을 마땅히 감당해 내지 못했습니다. 참다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생명을 낳는 방식으로 살아가지 못하였고, 도리어 죽음의 문화에 동조하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지 못하였습니다. 죽음의 세상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생명을 낳는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자신의 삶을 통하여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생명은 스스로 살아나는 생명이 아닙니다. 스스로 뚫고 일어나는 생명도 아닙니다. 자신을 살리려 하는 생명력은 때로 세상에서 죽음의 세력이 되곤 하였습니다. 가인이 그랬습니다. 아벨을 향한 질투, 자신만이 하나님께 잘 보이려던 태도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낳았고 결국 살인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성공하고 열매를 거두는 성과주의, 이기주의는 언뜻 보면 열매가 있어 보이고 생명력이 있는 것 같지만 도리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사망의 길이며 죽음의 문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여 주신 참 생명은 자신을 낮추며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죽음까지 내려가는 희생이었습니다. 세상의 권세는, 죽음의 권세는 이 희생양을 손쉽게 잡아먹는 듯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를 살려 내심으로써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 생명의 정체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참 생명은 죽음으로 얻게 되는 생명이자, 낮아짐으로 높아지게 되는 생명이며, 섬김으로 올라가게 되는 생명이고, 겸비함으로 영광스럽게 되는 생명입니다. 죽음으로 치닫는 이 세상을 생명의 문화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참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생명을 낳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 전파는 단지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넘어서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세상을 빛으로 밝힘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보다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이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세상에 빛을 비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따라 생명을 낳는 소망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전도를 많이 하면서 교인 수도 늘어났는데, 그럼에도 세상의 비난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과연 해결책입니까?” 참으로 뼈아픈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참 생명을 낳고도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전쟁을 겪은 선배들 세대는 생존이 가장 큰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전쟁 경험 이후에도 죽이고 경쟁하며, 스스로 생존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그와 같은 굴레에서 우리 신앙인들도 살아왔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죽음으로, 비움으로, 낮아짐으로 다시 살아나는 참 생명의 힘과 능력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고 경험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새해 첫 주일, 담임목사로서 저는 이런 소망을 갖습니다. 우리 소망교회가 참 생명을 드러내고 이 생명력으로 세상을 살리는 교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복음으로 생명을 낳고 그 생명들이 세상을 살리는 교회, 세상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사회·정치·경제·문화 다양한 영역에서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람들이 우리 소망교회 교인들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환경 문제, 기후 문제, 지구의 문제 등 젊은이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악플 등 비난과 욕설로 가득한 인터넷 문화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끌어안으며 지구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며 사회를 살리는 교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으로 생명을 낳고 생명을 전할 때, 이 일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생명으로 가정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교회가 살아날 것입니다. 직장이 살아나고 인터넷 문화가 살아나고 사회가 살아나고 대한민국이 살아날 것입니다. 이 일에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이 함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소망교회에 부임한 지 꼭 3년이 지났습니다. 4년차로 들어가는 이 시점에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멋진 꿈을 이루어 가고 싶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교회, 생명이 살아나는 교회, 세상을 살리는 교회, 우리 모두 이런 교회를 만들어 보십시다. 소망생활치료센터에서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에 우리 소망교회가 앞장서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 12:25)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With the Life of the Gospel
John 6:32-35
Today is the first Sunday of 2022. A New Year has begun as Covid-19 continues to spread. Though our future remains unpredictable, we have been given a fresh new calendar.
According to economic newspapers, currencies are losing value due to unprecedented inflations around the globe, and Koreans, too, are feeling the pinch of soaring consumer prices. As Koreans often say, “the price of everything has risen—except for salaries.”
Most of all,our greatest problem is theever-mutating coronavirus.We are living in a “pandemic society.” The whole world is groaning underCovid-19 as the virus continues to take countless lives. Although vaccines have been developed, there is still a risk of adverse effects that may cause incurable diseases or even death.
We are living in a world full of dark shadows of death. We have started a New Year in this dark world.In January 2020, we already accepted that Covid-19 was the result of man’s sins and recklessness, that the pandemic was God’s stern warning and judgement against us.
News of a healthy young man dyingdays after a vaccine jab or a loved one dying alone in an isolation ward are now so common that we are not shocked. The fact that such things can happen to anyone is disturbing, but we all accept this reality matter-of-factly now.
It seems it was just yesterday that people joked about not being able to die even if they wanted to because of medical advancement. Yet here we are coming to grips withman’s inherent weakness and thefutility of life, as countless people around the globe succumb to the virus and the adverse effects of vaccines. As of December 2021, the coronavirus has killed 5.3 million people around the globe. This number reveals the dark reality of the world, a world covered with the dark shadows of death.
However, the truth is that the shadows of deathwere there even “before” the virus. We just didn’t see it so clearly. Covid-19 helped us see, more clearly, the world groaning under the shadows of death.
The coronavirus was like “litmus test” that confirmed the already-existing darks shadows of this world. Perhaps God allowed the pandemic to happen so that people would see the power of death ruling this world.
Thus far,approximately 5,000 Koreans died of Covid-19. This the total number of Covid-19 deaths in Korea ofthe past two years. But did you know that in 2020 alone some 13,000 Koreans committed suicide? To expand this to a two-year timeframe, you may say that suicides were responsible for 26,000 deaths in Korea between 2020-21, while the coronavirus was responsible for 5,000.
So, brothers and sisters, what is your diagnosis of our society today? Is it a highly advanced and attractive world that sends rockets to space and makes grand plans for civilian space travel? It is a world full of hope that unlocks scientific mysteries and makes astonishing medical strides? Do you have high hopes for flying vehicles and autonomous driving? Of course, such aspects are reasons for hope.
Butthe truth is our world today is facing a great crisis. The reality is contrary to such hopeful news of success and development. Life is fading and declining in our world today.
The best example of this would be our current state. The whole world is groaning. This is our reality and condition today. It’s not just the pandemic. The more medicine progressed, the more rare and incurable diseases we found.
Every day, 36 Koreans kill themselves.Making matters worse, fertility rates are plunging, reaching a record low of 0.82-0.86 births per woman. For more than two years now, the number of deaths surpassed that of births. More and more young people are deciding not to get married and, even if they do, couplesdecidenot to have kids. If this world were attractive and Korea livable, who wouldn’t have children? Aren’t these young people giving up on having kids because they are not confident about raising them in this society, because they are uncertain about their baby’s future, because they are unsure of their own happiness?
That’s not all. The culture of death is also found inthe suicides of female soldiers and celebritieswho take their own lives after being sexually assaulted and suffering from depression. Such deaths are not new. A young manwas killed in an occupational accident that occurred under hazardous work conditions, andmany people, including celebrities, are committing suicide because of abusive online comments. A husband ruthlessly killed his wife just because she didn’t respond to his demands for sex, and a young man committed cold-blooded murder of his girlfriend and her whole family because she wouldn’t meet him. These are only a few of the cruel events Korea saw last year.
The culture we see today is confrontational:bitter conflicts plaguethe labor-management relationship,the relationship between men and women, and ideologies fight against each other. Today we draw lines, incite hatred, and attack one another endlessly.
This culture of death is also evident in environmental degradation and climate change, one of the important global issues today. Plastic wastes are contaminating the ocean and killing ocean life. Climate change is melting ice caps in the Arctic and the Antarctic, anomalous weather events are becoming more frequent today, and, as we have seen, tens of thousands of Europeans were killedor affected by floods only last year.
In short, life is declining and disappearing today. Respect for life is dwindling, and life itself is dying.
I have burdened you with heavy news from the start of a New Year. It’s been quite a while since I spoke on this topic.But we must see the world squarely: today, our world is defined by a culture of death, a culture that disrespects life, kills life, and drives people to death. In such a reality, depression, panic disorders, cancer, and all sorts of incurable diseases rise. This is our reality.
Now what can we do under this reality? Can we fight this culture of death? Or will it abuse, overwhelm, and torment us, too? Some feel this culture has nothing to do with them, but they are wrong. If don’t do anything about it, it will swallow us up.
Then what must we do to overcome this culture of death?
If this world is full of the power of death, then at the other end there is God—God who wasLife Itself from the very beginning. He is the One who made life, the Author and Giver of life.
The Bible says that God created life. He ordered life to come into existence at the beginning when there was no life or order. This was the Creation. God made the light and the universe. He filled the world with plants and animals and made the fish in the sea. To make life prosper, He made rivers in the Garden of Eden and trees on the riversides. In a word, the Creation is all about God Himselfwho is the Source of life, the One who made life possible, and the One who saves all life.
In other words, God is the One who gives life, creates with His word, and makes creation come into existence. The climax of His creation was man, whom He made from dust and breathed His life into. We are all such creations of God who were given His life. Our very life comes from God.
But man was foolish and pursued death. Adam and Eve chose death by breaking God’s command and eating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ey chose this fate themselves despite God’s warning “You will certainly die.”
Ever since, death entered every corner of man’s existence. Hewas destined to return to dust and lived in constant fear of death. Cain had a strong encounter with this culture of death when he killed his brother with a stone. So this culture steeped in death is ultimately a man-made culture, a culture of humans.
God, however, is a God who saves and the Source of life. God desired to save all mankind. Even when Cain murdered Abel and became a wanderer, He gave him a mark on his forehead so that others won’t kill him (Genesis 4:15). God desires to save even murderers.
When Haggar was banished from Abraham’s home, and she and baby Ishmael were dying of thirst in the Wilderness of Beersheba, God opened her eyes to see water and saved them. This is only one of the many stories in the Bible about our God who saves.
While the world continued to plunge into death as men continued to sin, God loved men living in the darkness with a desire to save them.
John describes how God savesman,drowning in death, by contrasting light with darkness: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He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all mankind.” (John 1:1-4)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 He was in the world, and though the world was made through him, the world did not recognize him. He came to that which was his own, but his own did not receive him. Yet to all who did receive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John 1:9-12)
Through a contrast between light and darkness, John compares the world of light with the world of death and declares that God sent the True Life into this world. And whoever believes in the One He sent will h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that is, the privilege of being reborn as new a life:
“Yet to all who did receive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John 1: 12)
As such, the Bible testifies to the True Life who came into this world of death to give life. Jesus is the Life that the world does not know, the Son of God who brought life into this world.
What is the Life that this world does not know? Even though the power of death crucified and killed Jesus, our Lord rose from the dead in three days. To be more clear,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In other words, the Life that God gave us cannot be contained by death. Our faith is that anyone who has this Life will be raised by God even after death.
According to today’s passage from John 6, these were Jesus’ wordsto the crowd demanding bread:
“Jesus said to them, ‘Very truly I tell you, it is not Moses who has given you the bread from heaven, but it is my Father who gives you the true bread from heaven. For the bread of God is the bread that comes down from heaven and gives life to the world.’ ‘Sir,’ they said, ‘always give us this bread.’ Then Jesus declared, ‘I am the bread of life. Whoever comes to me will never go hungry, and who believes in me will never be thirsty.’” (John 6:32-35)
Jesus made a distinction between bread that satisfies us only for a while and bread that will make us never go hungry and give us eternal comfort. The life Jesus brought into this world is living water that will make us never be thirsty and never go hungry.
Therefore,Christ is the key to overcoming the culture of death and darkness that haunts this world. We can restore the world’s culture through Jesus Christ. He is the Life that the world did not know, the One who gives life. He gives true life to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Hence, the culture of death can only be overcome by thislifefrom Jesus. The culture of death will be driven back, and this decayed world will become sweetwhen people with this life become the salt and the light of this world. We can save the world. In fact, we Christians are the only ones who can.
Yet we have failed in taking on this ministry of life. We, the ones with the True Life, failed to beget life and shine a light in this dark world because we, too, joined the culture of death.
We can give birth to life in a world of death only when we live according to God’s ways, which Jesus showed us with His own life. Life cannot come to life on its own. Life that tries to save itself only becomes a power of death.This is what happened to Cain. His jealousy for Abel and his desire to receive God’s exclusive praise led to extreme selfishness and, ultimately, murder. A performance-driven, self-centered life may appear to bear fruit and life, but it is a culture a death that leads only to death.
The true life Jesus showed us was full of humility and self-sacrificial love. The true life of Jesuswas a sacrifice that even gave His life. Although it appeared that the power of the world and the authority of death had swallowed up the Sacrificial Lamb, God raised Jesus from the dead. This is the true life the world does not know.
Therefore, the true life is the life we get through death, the life that is raised up by becoming lowly, the life that is raised up by service, the life that is glorified by humility. Therefore, this is what Philippians says:
“In your relationships with one another, have the same mindset as Christ Jesus: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used to his own advantage; rather, he made himself nothing by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by becoming obedient to death—even death on a cross! Therefore God exalted him to the highest place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and every tongue acknowledge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Philippians 2:5-11)
We can change the world’s culture of death into a culture of life by making more people have the true life. In order to do this, we must beget life. Therefore, evangelizing is important not just because we are saving a soul, but because we are shining more light in this world by making that newborn Christian shine his own light.
Through the gospel a new life is born. And that new life comes to serve the world. By evangelizing we are making more Christians shine more light in this world. Some may ask, “Well, if it is true that the Korean Church evangelized, and many Koreans became Christians, why isit scorned by the world today?” These words sting.
The truth is, Christians have been following the ways of the world even after gaining life. Having experienced the War, Christians of the old generation cherishedsurvival. So even after being saved, they continued to compete against each other, criticize one another, and trample onothers, which was the way of survival that they were so accustomed to.Such behavior prevented them from experiencing the power of the true life which comes from self-denial and humility.
On this first Sunday of 2022, this is my wishas Senior Pastor. How grand it would be if we became a church that reveals the True Life and saves the world with the power of the True Life!
A church that begets life with the gospel, a church that leads those saved lives to save the world, a church that fights against the culture of death all around us, a church that breathes life into all areas—including politics, society, economy, culture—and a church that saves everyone and everything around us!
All sorts of problems plague the young generation today, such as environmental issues, climate change, and sustainability. A negative online culture that inundates the Web with abusive comments, contempt, and swear words is another serious issue.Working with these young people, I hope that Somang Church will savethe society, the earth, and the world.
We will never fail if we beget life and share the true life with others according to God’s ways. Families will be restored through this life. The Church will be revived. Workplaces, our online culture, our society, and our nation will be revived.
Dear brothers and sisters, won’t you take part in this work?
Already three years have passed since I became Senior Pastor, and this is my fourth year. It is my deepest wish tofulfill thisvision with all of you. Together as a church and with the help of the Spirit, I hope to build a church that begets life with the gospel and leads those saved lives to save the world.
A church that saves lives, a church that revives life, a church that saves the world. Let’s all build this church together!
Just as the Somang Community Treatment Center cured and rejuvenated many Covid patients, I hope that Somang Church will step up and do this work.
The Lord speaks to us, “Anyone who loves their life will lose it, while anyone who hates their life in this world will keep it for eternal life.”(John 12:25) Amen.
요한복음 6: 32 ~ 35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성공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세상이지만 그 안에는 죽음의 문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2022년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병의 확산세가 여전한 가운데 맞이하는 새해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달력을 받아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인플레이션 발생으로 화폐 가치가 하락했다는 경제 뉴스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하여 월급을 제외한 모든 게 다 올랐다는 뉴스도 전해집니다. 그 말이 실감날 정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앞에 놓인 큰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면서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힌다는 사실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전염병으로 신음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형국입니다. 의학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왔고 발전된 의학으로 사람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허망하구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021년 말까지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53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세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죽음의 그림자는 코로나 이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코로나 발생 이후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약 5천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지난 2년 동안 누적된 숫자이겠죠. 하지만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숫자는 1만 3천여 명 이상입니다. 그러니까 코로나로 인해 5천 명이 죽어 가던 2년여의 기간을 합산해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목숨을 스스로 끊은 사람의 숫자가 2만 6천여 명에 이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우주로 로켓을 발사하고 민간 사업자들이 우주여행 꿈을 부추기는 상황입니다. 끊임없는 의학 발전, 생명 공학의 발전, 인간의 비밀을 풀어내는 과학적 지식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늘을 날고 자동으로 자율 주행하는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들이 들리며 기쁨을 주기도 하고 또 희망을 주기도 하지요.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여러분?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과는 달리 오늘날 우리는 생명이 사라지고 약해지는 위기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전염병으로 신음하는 모습이 바로 적확한 예입니다. 전염병 뿐 아닙니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경쟁이라도 하듯이 희귀병이 등장하고 있고,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들마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36명의 자살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죠. 지난 3분기에는 0.82, 4분기에는 0.86의 출산율을 기록하며 2년이 넘도록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가 출산한 아이의 숫자를 앞서는 상황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비혼족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만일에 이 나라가 살 만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기에, 아기에게 행복을 줄 수 없을 것 같기에, 부모 자신도 행복하지 못할 것 같기에 아기 낳는 일을 포기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멋진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멋진 세상이 만들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생명을 낳지 않는 우리 모습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땅에 드리워진 죽음의 문화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폭행을 당하고 우울증을 앓다가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근로 현장에서 험한 노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여 죽게 된 안타까운 청년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SNS에 퍼져 있는 악플을 견디다 못해 죽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너무나도 흔합니다. 묻지마 폭행, 가족 간의 폭력, 살인 등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만큼의 이야기들이 우리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노사가 대결을 하고 남녀가 대결을 하고 이념이 충돌하고, 서로 원수처럼 싸우며 죽이려 드는 문화가 오늘 우리의 문화입니다. 편을 가르고 증오를 부추기며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모습이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문화는 기후 변화나 환경 오염으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발생한 홍수, 가뭄 등으로 작년만 해도 유럽에서는 수만 명이 수해로 죽거나 피해를 보는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생명이 약해지고 사라지는 현실입니다. 생명이 경시되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문명, 의학, 과학이 발전하며 생활은 점점 편리해지는데 생명들은 도리어 약해지고 사라지고 죽어 가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의 상황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죽음의 문화 반대편에는 생명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첫 주일부터 너무나 무거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랜만에 이와 같은 설교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우리는 죽음의 문화가 가득한 오늘의 세상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생명이 죽어 가는 문화, 생명을 죽이는 문화, 생명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 문화로 가득 차 있죠. 그렇다면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죽음의 문화에 우리는 어떻게 맞설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문화 속에서 휩쓸려 살다가 때로는 죽음의 위용에 유린당하며 죽어 가야 하는 것입니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일이니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만 잘하면 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죽음의 문화가 다가와서 우리를 가만 두지 않고 삼켜 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이 온통 죽음의 문화로 채워져 있다면, 반대편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생명을 만드시는 분이시요,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시요, 생명을 분여하시고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질서가 없고 생명이 없던 곳에 하나님께서 질서를 만드시고 생명을 창조하신 일을 증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건이죠. 하나님은 빛을 만드시고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곳에 숨 쉬는 동물들을 만드시고 바다의 물고기들을 만드셨습니다. 생명을 잘 유지토록 하시기 위해 에덴동산 주변에 강을 만드시고, 강가에는 나무들이 자라게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창조의 이야기가 전해 주는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생명을 있게 하시는 분이시며,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창조의 마지막 단계에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기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으로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늘 죽음으로 치닫는 미련한 존재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네가 이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선택한 운명은 죽음이었습니다. 이후로 인간이 살아가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이 함께하였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고, 죽음을 늘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인은 아우 아벨을 돌로 쳐서 죽임으로써 죽음의 문화를 뼛속 깊이 경험합니다. 아담에 이어 일대가 넘어가지 못한 상태에서 죽임이 만연한 세상이 열리고 만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문화는 결국 죽음의 문화가 되었고, 인간을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살리시는 분이시며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유리하는 자가 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표를 주시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죽임당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하갈이 이스마엘과 함께 아브람의 집에서 쫓겨나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 물이 없어 죽어 가던 때에 눈을 열어 주셔서 샘을 발견하게 하시며 살려 주신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살리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인간의 죄로 세상은 점점 죽음의 세상으로 변해 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죽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사랑하시며 살려내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죽음에 둘러싸인 세상에 어떻게 오셨는지를 어둠과 빛의 대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1~4)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9~12)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두움의 대비를 통하여 죽음과 생명의 세상을 비교하시면서 이 땅에 참 생명을 보내 주셨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이 보내신 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즉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특권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이렇듯 성경은 죽음의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참 생명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 생명이시며 그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믿는 자녀에게 주시는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생명이란 어떤 생명입니까? 죽음의 권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지만 주님은 사흘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보다 분명히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죽은 그리스도를 사흘 만에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즉 죽음의 힘이 가둘 수 없는 생명,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가진 사람은 죽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내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떡을 달라는 무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2~35)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잠시 위로를 주는 떡, 잠시 배부르게 하는 떡과 영원한 위로가 되는 떡, 영원히 우리를 배부르게 할 떡을 구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가져오신 생명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이며 결코 주리지 않게 하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세상, 죽음의 문화, 어둠의 문화를 극복하고 다시 살려내는 열쇠는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분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생명이시며, 그 생명을 분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앞서 말씀드린 죽음의 문화는 오직 이 생명으로부터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사회의 운동이나 문화적인 모습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될 때에 죽음의 문화가 물러가고 썩어 가는 세상이 맛을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세상을 살리는 사람들이고 세상을 살릴 유일한 대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사역을 마땅히 감당해 내지 못했습니다. 참다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생명을 낳는 방식으로 살아가지 못하였고, 도리어 죽음의 문화에 동조하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지 못하였습니다. 죽음의 세상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생명을 낳는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자신의 삶을 통하여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생명은 스스로 살아나는 생명이 아닙니다. 스스로 뚫고 일어나는 생명도 아닙니다. 자신을 살리려 하는 생명력은 때로 세상에서 죽음의 세력이 되곤 하였습니다. 가인이 그랬습니다. 아벨을 향한 질투, 자신만이 하나님께 잘 보이려던 태도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낳았고 결국 살인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성공하고 열매를 거두는 성과주의, 이기주의는 언뜻 보면 열매가 있어 보이고 생명력이 있는 것 같지만 도리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사망의 길이며 죽음의 문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여 주신 참 생명은 자신을 낮추며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죽음까지 내려가는 희생이었습니다. 세상의 권세는, 죽음의 권세는 이 희생양을 손쉽게 잡아먹는 듯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를 살려 내심으로써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 생명의 정체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참 생명은 죽음으로 얻게 되는 생명이자, 낮아짐으로 높아지게 되는 생명이며, 섬김으로 올라가게 되는 생명이고, 겸비함으로 영광스럽게 되는 생명입니다. 죽음으로 치닫는 이 세상을 생명의 문화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참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생명을 낳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 전파는 단지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넘어서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세상을 빛으로 밝힘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보다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이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세상에 빛을 비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따라 생명을 낳는 소망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전도를 많이 하면서 교인 수도 늘어났는데, 그럼에도 세상의 비난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과연 해결책입니까?” 참으로 뼈아픈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참 생명을 낳고도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전쟁을 겪은 선배들 세대는 생존이 가장 큰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전쟁 경험 이후에도 죽이고 경쟁하며, 스스로 생존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그와 같은 굴레에서 우리 신앙인들도 살아왔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죽음으로, 비움으로, 낮아짐으로 다시 살아나는 참 생명의 힘과 능력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고 경험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새해 첫 주일, 담임목사로서 저는 이런 소망을 갖습니다. 우리 소망교회가 참 생명을 드러내고 이 생명력으로 세상을 살리는 교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복음으로 생명을 낳고 그 생명들이 세상을 살리는 교회, 세상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사회·정치·경제·문화 다양한 영역에서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람들이 우리 소망교회 교인들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환경 문제, 기후 문제, 지구의 문제 등 젊은이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악플 등 비난과 욕설로 가득한 인터넷 문화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끌어안으며 지구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며 사회를 살리는 교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으로 생명을 낳고 생명을 전할 때, 이 일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생명으로 가정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교회가 살아날 것입니다. 직장이 살아나고 인터넷 문화가 살아나고 사회가 살아나고 대한민국이 살아날 것입니다. 이 일에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이 함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소망교회에 부임한 지 꼭 3년이 지났습니다. 4년차로 들어가는 이 시점에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멋진 꿈을 이루어 가고 싶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교회, 생명이 살아나는 교회, 세상을 살리는 교회, 우리 모두 이런 교회를 만들어 보십시다. 소망생활치료센터에서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에 우리 소망교회가 앞장서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 12:25)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1월 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복음의 생명으로” (요 6:32-35)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526장, 524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요 6:32-3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월 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2022년 첫 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온 세상이 힘든 가운데 맞이하는 새해입니다.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들려오는 성공의 소식도 있지만 오늘날 세상은 생명이 사라지고 약해지는 큰 위기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생명이 경시되고 죽어가는 이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설교의 요약
세상이 온통 죽음의 세력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가 전해주는 것은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을 있게 하신 분이며 생명을 살리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인간이 선택한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이 만연한 문화는 결국 인간이 초래한 산물입니다.
요한복음은 죽음에 둘러싸인 인간 세상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구하고자 이 땅에 오셨는지 어둠과 빛의 대비로 표현합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로 죽음의 세상과 생명의 세상을 비교하면서, 하나님께서 참 생명을 이 땅에 보내 주셨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참 생명으로 오신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특권을 주셨음을 말합니다. 즉 죽음의 권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지만, 죽음에서 부활하심을 통해 죽음의 힘이 가둘 수 없는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선언하시고 약속하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생명 부지를 위한 떡을 달라는 무리들에게 영원한 배부름과 위로가 될 떡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이니 나에게 오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속 죽음의 문화는 오직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 생명으로만 극복 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을 지닌 사람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때 세상 속 죽음의 문화가 물러가고, 썩어가는 세상이 생명의 냄새나는 세상이 됩니다.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을 생명의 문화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참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을 낳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이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세상을 비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는 이 시대에 우리 소망교회가 참 생명을 드러내고 그 생명력으로 세상을 살리는 교회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으로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을 전할 때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생명으로 가정이 살고, 직장이 살며, 인터넷 문화가 살아나고 교회가 살며 이 사회와 대한민국이 살아날 것입니다. 죽음의 문화에 동조하며 빛을 잃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교회, 생명이 살아나는 교회, 세상을 살리는 교회를 올 한 해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나누기
1.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내가 버려야 할 옛 누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죽음으로 치닫는 세력과 문화를 극복하고자 올 한해 나와 가정, 교회 공동체가 생명의 복음 들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감당해야 할까요?
마무리기도
참 생명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생명으로 올 한해 세상과 이웃을 섬기며 살리는 성도와 소망교회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생명으로 가정이 살고, 우리의 모든 것이 살아나는 은혜를 풍성히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