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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은 자는 이렇게 살라

베드로전서 3:8~9

김경진 목사

2024.11.10

<사회로부터의 기독교 박해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지난 시간 설교를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고, 또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누리는 평안에 대해서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실 이 질문은 매우 큰 질문입니다. 너무 방대해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조금 축소하여 오늘 말씀과 연결해서 대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유 없이 기독교가 박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또 기독교에 대한 폄하와 올바른 이해가 없는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낮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마치 제대로 사고할 줄 모르는 사람이 갖는 미신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인을 이기적이고 다른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사람들로 여기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보편적인 가치가 추구되는 사회에 기독교 신앙을 과학적 사고를 도리어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향한 강력한 비난이나 성도들을 공격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런데 세상에서 기독교인을 향한 이런 공격과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천 년 동안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베드로전서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서의 배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이 합당한 이유 없이 로마의 박해를 받으며 앞으로 있을 대 박해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서는 이런 박해와 비난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두 절의 아주 짧은 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중요한 중심 구절이지만 큰 단락의 일부분입니다. 큰 단락으로 나누면 베드로전서 2장 11절부터 3장 17절까지 한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고 박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말하는 내용입니다. 앞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벧전 2:12b)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돌출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도 같은 내용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벧전 3:16)

 

2장 11절부터 3장 17절까지는 앞뒤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비방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안에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도 사실 있습니다. 사환들에게 주시는 말씀과 남편 및 아내들에게 주시는 교훈도 있습니다. 박해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루는 내용들 속에 종들과 아내 및 남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조금 더 깊이 구조적, 내용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박해받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명하신 삶은 선한 양심을 갖고 선한 행동을 하는 삶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서 악행을 한다고 비난하는 현실을 반영한 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사실 특별한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고 박해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베드로전서 2장 12절 앞부분에서 이미 답이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대답입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벧전 2:12a)

 

이렇게 비난받는 상황 속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행실을 선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베드로전서 3장 16절 앞부분에도 “선한 양심을 가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박해당하고 환대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세상에 선한 행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선한 양심을 가진 선한 행실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 속에 축약된 5가지 삶의 태도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벧전 3:8)

 

매우 중요한 단어 5개가 나열되며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단어는 ‘마음을 같이 하여’라는 단어입니다. ‘호모프론(ὁμόφρων[homophrón], of one mind, be harmonious)’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흩어지면 안 되겠죠. 이 말씀은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서 보면 다양한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다른 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선 안에서 서로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박해하고 환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흩어지거나 나누어지고 서로 싸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세상 사람들로부터 더 비난을 받고 그 비난을 극복하기 어렵겠죠.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한마음, 한 신앙을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단어는 ‘동정하며’라는 단어입니다. ‘숨파데스(συμπαθής[sumpathés], sympathizing, compassionate)’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공감하는 능력’을 말씀합니다. 공감은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알고 느끼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선한 능력이며, 세상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능력입니다. 사실 요즘 사람들에게 공감의 능력은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렇지만 2천 년 전에 공감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까?’ 도리어 이런 생각이 만연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쌍한 사람들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세상으로부터의 반대와 비난을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공감의 능력은 ‘이웃을 향한 사랑’과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필라델포스(φιλάδελφος[philadelphos], loving like a brother, loving one’s brethren)’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그저 나에게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는 개념을 넘어 인류를 사랑하는 정신을 나타내죠. ‘박애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합니다. 사람, 곧 인류를 사랑하는 일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모범입니다.

넷째로 이어지는 단어는 ‘불쌍히 여기다’라는 단어입니다. ‘유스플라크노스(εὔσπλαγχνος[eusplagchnos], tender-hearted, merciful)’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라는 뜻도 있지만,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딱딱하고 경직된 마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너그럽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성품 중 하나입니다.

다섯 번째 성품이 있습니다. ‘겸손하다’라는 단어입니다. ‘타페이노프로수네(ταπεινοφροσύνη[tapeinophrosune], humility, lowliness of mind)’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어 낮은 곳으로 자리 잡는 것이죠.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신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레코로만 시대에 겸손도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가치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겸손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비굴하고 나약하며 힘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꼽히지 않던 것이 겸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을 그들의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이 다섯 가지 내용을 새한글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끝으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모두 같은 생각을 품으며, 공감하며, 우애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자기를 낮추십시오. (벧전 3:8, 새한글성경)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삶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모습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선한 양심과 행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벧전 3:9)

 

이 말씀이 참 절묘하게 느껴집니다. 앞서 5가지의 삶의 모델, 삶의 어떤 방식을 이야기한 다음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고 계시는 삶의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삶을 너희가 살도록 너희를 선택했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마음을 품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서로 불쌍히 여기면서 우애하고 사랑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자기를 낮추어 겸손하게 살기를 바라며 너희를 선택했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즉,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감으로 우리를 비난하고 환대하지 않는 세상에 대응하고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요?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벧전 3:16, 새번역)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내용 속에 앞서 말씀드린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세상의 비방과 박해에 대처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과 아내에 대한 내용을 말할까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벧전 3:1a)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a)

 

종종 논란이 되기도 하는 이 본문은 남편과 아내 중 누가 더 우월한가를 이야기하는 본문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해와 비난, 박해에 대응하며 선한 행실과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삶의 자리의 출발점이 ‘가족’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안에서 이와 같은 성품과 삶의 방식이 시작되고 드러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부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다른 마음을 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예로, 교회가 만약 서로 다른 마음을 품으면 교인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부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하죠. 그래야 부부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또, 부부가 서로 공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의 삶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부드러운 마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드럽고 너그러운 마음이 있어야 가정이 행복하고 바르게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 안에서 자녀들도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라. 서로 낮은 데 자리를 두라”라는 이 말씀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잘 적용된다면 그 가정은 매우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마음을 품고 공감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겸손히 살아가라”라는 말씀은 가정에서부터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직장과 사회, 교회와 우리나라로 번져 가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입니다.

이렇게 이웃과의 관계가 열리고 부부간의 관계, 사람들 간의 관계들이 열리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열립니다. 그래서 “너희의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이 덧붙여집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며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관계로 발전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도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그 관계가 막히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막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관계를 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은 부부와 가족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이 질문은 “나는 나의 아내에게, 나의 남편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복을 이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속에는 사환들에게 주시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이어집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19~20)

 

언뜻 보면 사환, 곧 종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부당하게 박해받고 환대는 받지 못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할 만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시 종들은 주인에게 쉽게 학대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종의 고난의 자리에서 주어진 교훈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이유 없는 박해나 고난을 받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중요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벧전 3:17)

 

너희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으라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견디라고 나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고난과 박해를 받고 이유 없이 환대를 받지 못할 때, 또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과 폄하, 비난을 받을 때, 그것을 우리가 마땅히 져야 할 주님의 십자가로 여기며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 말씀은 놀랍기도 하고 역설적이기도 한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박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을 빌라라는 말씀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9)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받을 때 그 고난을 달게 받으라 말씀하시며 이것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이유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말씀하시기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 곧 박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을 빌어 주기 위해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새한글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악을 악으로 또는 욕을 욕으로 갚지 마십시오. 반대로 복을 빌어 주십시오. 이 일을 위해 여러분이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복을 물려받도록 말입니다. (벧전 3:9, 새한글성경)

 

여러분, 박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짜증이 나기 마련인데, 짜증을 내지 말라는 말씀도 아니고 도리어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복을 빌어 주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신앙의 신비를 하나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복을 빌어 주기만 하면 너희에게 그 복이 이어지게 된다.” 복을 연결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을 빌어 주는 일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는 놀라운 축복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수처럼 우리를 정말 잡아먹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또 기독교를 비난하고 환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고난이 올 때 ‘이것은 마땅히 내가 부르심을 받은 일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다. 십자가의 길이다. 당연히 져야 할 길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리어 복을 빌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행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믿음의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살면서 억울한 오해나 누명을 쓰게 되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또 부당한 대우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도, 인간관계 안에서도 그런 일들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나에게 고난이 온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같은 고난을 겪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온 고난을 마땅한 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도리어 나를 비난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줌으로써 하나님의 복을 이어 가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참 어려울 것 같지만 이 삶의 방식에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장로 임직 예식이 있는 날입니다. 또한 이후로 권사 임직 예식과 집사 임직 예식도 이어질 것입니다. 아마 우리 성도님들 중에 받을 임직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나는 직분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 모두 오늘 본문 말씀을 깊이 기억하면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분명하게 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is is How the Called Must Live

 

1 Peter 3:8-9

 

How must Christians live in this world? This is such a vast question that it would be hard to answer in a word. The question maybecome clearer by narrowing its scope.

 

For example, we may ask, “How should Christians live in this world full of falsehood, evil, and evildoers?”Or we may ask, “How must Christians live in this atheistic society and in our workplacessurrounded byunbelievers?” Or “How must Christians live in this world that persecutesanddenigrates Christianity groundlessly?”

 

Today, I wantus to seek out the answer to the third question, “How should Christians live in a world that persecutes and denigrates Christianity groundlessly?”

 

An apposite passage that gives us an answer to this question is found in 1 Peter. First Peter is a book that teachesChristians how they ought to live overcoming unwarranted persecution and criticism, as Peter anticipates the forthcoming Great Persecution of Christians in the Roman Empire and as Christians were already experiencing many persecutions.

 

Today, we Christians are pursuing faith in a world whose sympathy for Christianity is extremely low. Some people view Christianity as a shamanistic belief followed by senseless people incapable of thinking properly. Others think that Christians are a selfish and rude lot seeking only their own prosperity and having no respect forother religions and beliefs. Still others strongly criticize the church and attack Christians, viewing the Christian faith as a sort of evil in today’s society which prizes scientific and universal values.

 

Then how must we live in such a world? This is our theme for today. Today’s Scripture, 1 Peter 3:8-9, is the last section of a very long passage. If we see today’s textin connection to a bigger passage, that passage would start from 2:11 and end in 3:12.

 

In other words, 1 Peter 2:11-3:17 talks about how Christians must live in a world that accuses and persecutes them. Let’s look at a phrase in 2:12:

 

“though they accuse you of doing wrong” (1 Peter 2:12 NIV)

 

This reflects the Christian’s reality where the world unfairly accuses him/her of doing wrong. Indeed the world criticizes and persecutesChristians even though we have not done anything particularly wrong. This is a reality Christians have faced for a long time.

 

Then what must we do in the face of sucha reality? There is an unjust side to it. How should we respond to it then? As the Bible starts talking about this theme, it presents an alternative:

 

“Live such good lives among pagans that”(1 Peter 2:12a NIV)

 

The Bible’s advice is to live good lives. This theme of good deeds ends with the following words:

 

“keeping a clear conscience, so that those who speak maliciously against your good behavior in Christ may be ashamed of their slander.”(1 Peter 3:16 NIV)

 

First, how must we live among people who accuse Christians of being evil and in a world that slanders the life and faith of Christians? The short answer is this:“Respond with a clear conscience and good deeds. Resist.”

 

What then is a clear conscience and good deeds? Today’s Scripture gives us a good explanation. Through this text the Lord teaches us about a clear conscience and good deeds:

 

“Finally, all of you, be like-minded, be sympathetic, love one another, be compassionate and humble.”(1 Peter 3:8 NIV)

 

First, “like-minded” in the original Greek is “ὁμόφρων (homophrón),” which means “of one mind, to be harmonious.”

 

The New Korean Translation’s translation of homophrón may be translated into English as “having the same thought.” This means that we must have one heart in faith. We cannot have both the world and God in our hearts. Therefore, this means we must focus only on God. Our hearts must not scatter.

 

Second, the Greek for “sympathetic” is “συμπαθής, (sumpathés)”, which means“to be sympathizing, compassionate.” This is an ability to sympathize. It is to feel and understand others’ pain as ours. This is a good ability and an attribute that can make the people of this world feel ashamed of their evil. This ability to sympathize leads us to love others.

 

Third, “love one another”in Greek is “φιλάδελφος, (philadelphus)” which means “to love like a brother, to love one’s brethren.” This is to love someone with a brotherly love.

 

Fourth, “compassionate” in Greek is “εὔσπλαγχνος (eusplagchnos),”whichmeans“to be tender-hearted and merciful.” This is a gentle and tender heart.

 

Fifth, “humble” in Greek is “ταπεινοφροσύνη (tapeinophrosune),” which refers to having “humility and lowliness of mind.”

 

This is how the New Living Translation (NLT) translates 1 Peter 3:8:

 

“Finally, all of you should be of one mind. Sympathize with each other. Love each other as brothers and sisters. Be tenderhearted, and keep a humble attitude.”(1 Peter 3:8 NLT)

 

So this is how the Christian with a clear conscience and good deeds lives.

 

Then the Bible says:

 

“because to this you were called…”(1 Peter 3:9 NIV)

 

How should those who have been called live? The Bible tells us that they must be like-minded, be sympathizing, love their brothers, be compassionate, and be humble.

 

Then what is the result when we live with a good conscience?

 

“keeping a clear conscience, so that those who speak maliciously against your good behavior in Christ may be ashamed of their slander.”(1 Peter 3:16 NIV)

 

The Christian’s weapons that silence the world’s slander is none other than a clear conscience and good deeds. We must never repay evil with evil or repay insult with insult. This is the way of life of those who have been called, those who have been saved.

 

In short, we must defeat evil with good.

 

Interestingly, Peter continues to talk about this theme in term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husband and wife. Why does he start talking about spousal relationships as he touches upon the subject of slander and persecution of the world? His advice may be summed up as such:

 

“Wives, in the same way submit yourselves to your own husbands”(1 Peter 3:1a NIV)

 

“Husbands, in the same way be considerate as you live with your wives, and treat them with respect as the weaker partner and as heirs with you of the gracious gift of life, so that nothing will hinder your prayers.”(1 Peter 3:7a NIV)

 

This text, often a topic of controversy, are not verses on who is more superior—wife or husband. They are verses teaching us about the attitude that Christians must show in the face of unwarrantedmisunderstanding and persecution in this world, advising us to build families that can set an example in this world.

 

To respond to and resist the world’s accusations against Christianity, Christian wives and husbands must love and submit to each other, treat their wives as the weaker vessel, and value them as heirs of the gracious gift of life. In other words, the Bible tells us to make the world be ashamed by fostering families thatit would envy.

 

But this text does not stop there. The Bible goes further.

 

This passage goes further. The bigger passage that I mentioned earlier, which includes today’s text, addresses slaves as well as husbands and wives. Why does the passage suddenlydiscuss such people in talking aboutthe themes of persecution, tribulation, and accusation that Christians face in this world?

 

The advice given to slaves is this:

 

“For it is commendable if someone bears up under the pain of unjust suffering because they are conscious of God. But how is it to your credit if you receive a beating for doing wrong and endure it? But if you suffer for doing good and you endure it, this is commendable before God.”(1 Peter 2:19-20 NIV)

 

It appears masters sometimes abused their slaves at the time. The above verses are lessons to slaves who wereafflicted in such a way.

 

Then how should we view and respond to unwarranted hardship or persecution in this world?

 

Peter clearly says:

 

“To this you were called, because Christ suffered for you, leaving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follow in his steps.”(1 Peter 2:21 NIV)

 

“For it is better, if it is God’s will, to suffer for doing good than for doing evil.”(1 Peter 3:17 NIV)

 

We Christians ought not to be dejected or think it unfair when persecution and criticism come our way; rather, we must think we have been called to face such slander and hardship.

 

This is precisely the path that Jesus took, the path that we must take if we are to follow Him and bear the Cross. Therefore, if we come across undue hardships, disadvantages becauseof our faith, denigration, criticism, or persecution, we ought towithstand them, regarding them as our Lord’s Cross that we too must bear.

 

Then comes today’s text finally. To sum up, it advises Christians to bless the world and those who persecute them:

 

“Do not repay evil with evil or insult with insult. On the contrary, repay evil with blessing, because to this you were called so that you may inherit a blessing.”(1 Peter 3:9 NIV)

 

What is interesting is that the Bible tells us not to repay insult with insult but to bless those who insult us so that we may be blessed. The NLT translates this as follows:

 

“Don’t repay evil for evil. Don’t retaliate with insults when people insult you. Instead, pay them back with a blessing. That is what God has called you to do, and he will grant you his blessing.” (2 Peter 3:9 NLT)

 

When we bless those who insult or persecute us, we will be blessed instead. This is the mystery of faith.

 

Therefore, we may sum up as follows. When the world accuses or persecutes us, this is how we should respond.

 

First, we must set an example to the people of this world with a clear conscience and good deeds. We can do this by being like-minded, being sympathetic, showing brotherly love, and being compassionate and humble. Furthermore, by building loving families we can serve as a model to the people of this world.

 

We must prove ourselves not just with our lives in the above ways, but we must also think as follows when we face tribulations.

 

First, we must think that going through hardships is to suffer like our Lord; we have been called to this. Therefore, hardship is only natural.

 

Second, our hardship is an opportunity from God for us to be blessed. Therefore, hardship, persecution, and accusations are actually blessings in disguise. This is how we must think.

 

This happens not just in the realm of faith, but also often in our real lives.

 

We may face misunderstandings, unfair accusations, and unjust circumstances. Like slaves who were abused by their masters in biblical times, we too may experience abuses or difficulties in our society todayand in our workplaces.

 

How must Christians regard such circumstances?

 

First, we must consider our difficulties and trials as nothing out of the ordinary. If Jesus had suffered so, it is only natural that we too should suffer so.We must think that wehave been called to this hardship in order to bear the Cross and to follow in the Lord’s footsteps.

 

Second, we must think that thishardship is a blessing in disguise. I will instead bless the one who insults and persecutes me. By doing so, I will be blessed by God. This is how we ought to think.

 

Furthermore, we must set an example to the people of this world bydoing our best to do good deeds in our lives and in our families. This is what Christians ought to do, the life Christians ought to lead in response to the world that accuses us.

 

Today, we will ordain elders. After this, we will also ordain senior deaconesses and deacons. How should the called live?

 

As we remember the Scriptures given to us today, may the leaders of Somang Church set an example in our society with a clear conscience andgood deeds, build beautiful families, guard their faith unwaveringly, be sympathetic, loveothers, be tender-hearted, and become the light and salt of this world with a humble heart. And may they be holy managers of God who pile up blessings in heaven by not repaying evil with evil, but by praying for and blessing evildo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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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3:8~9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회로부터의 기독교 박해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지난 시간 설교를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고, 또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누리는 평안에 대해서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실 이 질문은 매우 큰 질문입니다. 너무 방대해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조금 축소하여 오늘 말씀과 연결해서 대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유 없이 기독교가 박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또 기독교에 대한 폄하와 올바른 이해가 없는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낮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마치 제대로 사고할 줄 모르는 사람이 갖는 미신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인을 이기적이고 다른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사람들로 여기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보편적인 가치가 추구되는 사회에 기독교 신앙을 과학적 사고를 도리어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향한 강력한 비난이나 성도들을 공격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런데 세상에서 기독교인을 향한 이런 공격과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천 년 동안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베드로전서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서의 배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이 합당한 이유 없이 로마의 박해를 받으며 앞으로 있을 대 박해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서는 이런 박해와 비난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두 절의 아주 짧은 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중요한 중심 구절이지만 큰 단락의 일부분입니다. 큰 단락으로 나누면 베드로전서 2장 11절부터 3장 17절까지 한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고 박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말하는 내용입니다. 앞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벧전 2:12b)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돌출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도 같은 내용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벧전 3:16)

 

2장 11절부터 3장 17절까지는 앞뒤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비방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안에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도 사실 있습니다. 사환들에게 주시는 말씀과 남편 및 아내들에게 주시는 교훈도 있습니다. 박해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루는 내용들 속에 종들과 아내 및 남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조금 더 깊이 구조적, 내용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박해받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명하신 삶은 선한 양심을 갖고 선한 행동을 하는 삶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서 악행을 한다고 비난하는 현실을 반영한 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사실 특별한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고 박해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베드로전서 2장 12절 앞부분에서 이미 답이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대답입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벧전 2:12a)

 

이렇게 비난받는 상황 속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행실을 선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베드로전서 3장 16절 앞부분에도 “선한 양심을 가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박해당하고 환대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세상에 선한 행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선한 양심을 가진 선한 행실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 속에 축약된 5가지 삶의 태도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벧전 3:8)

 

매우 중요한 단어 5개가 나열되며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단어는 ‘마음을 같이 하여’라는 단어입니다. ‘호모프론(ὁμόφρων[homophrón], of one mind, be harmonious)’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흩어지면 안 되겠죠. 이 말씀은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서 보면 다양한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다른 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선 안에서 서로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박해하고 환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흩어지거나 나누어지고 서로 싸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세상 사람들로부터 더 비난을 받고 그 비난을 극복하기 어렵겠죠.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한마음, 한 신앙을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단어는 ‘동정하며’라는 단어입니다. ‘숨파데스(συμπαθής[sumpathés], sympathizing, compassionate)’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공감하는 능력’을 말씀합니다. 공감은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알고 느끼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선한 능력이며, 세상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능력입니다. 사실 요즘 사람들에게 공감의 능력은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렇지만 2천 년 전에 공감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까?’ 도리어 이런 생각이 만연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쌍한 사람들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세상으로부터의 반대와 비난을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공감의 능력은 ‘이웃을 향한 사랑’과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필라델포스(φιλάδελφος[philadelphos], loving like a brother, loving one’s brethren)’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그저 나에게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는 개념을 넘어 인류를 사랑하는 정신을 나타내죠. ‘박애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합니다. 사람, 곧 인류를 사랑하는 일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모범입니다.

넷째로 이어지는 단어는 ‘불쌍히 여기다’라는 단어입니다. ‘유스플라크노스(εὔσπλαγχνος[eusplagchnos], tender-hearted, merciful)’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라는 뜻도 있지만,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딱딱하고 경직된 마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너그럽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성품 중 하나입니다.

다섯 번째 성품이 있습니다. ‘겸손하다’라는 단어입니다. ‘타페이노프로수네(ταπεινοφροσύνη[tapeinophrosune], humility, lowliness of mind)’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어 낮은 곳으로 자리 잡는 것이죠.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신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레코로만 시대에 겸손도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가치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겸손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비굴하고 나약하며 힘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꼽히지 않던 것이 겸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을 그들의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이 다섯 가지 내용을 새한글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끝으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모두 같은 생각을 품으며, 공감하며, 우애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자기를 낮추십시오. (벧전 3:8, 새한글성경)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삶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모습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선한 양심과 행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벧전 3:9)

 

이 말씀이 참 절묘하게 느껴집니다. 앞서 5가지의 삶의 모델, 삶의 어떤 방식을 이야기한 다음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고 계시는 삶의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삶을 너희가 살도록 너희를 선택했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마음을 품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서로 불쌍히 여기면서 우애하고 사랑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자기를 낮추어 겸손하게 살기를 바라며 너희를 선택했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즉,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감으로 우리를 비난하고 환대하지 않는 세상에 대응하고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요?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벧전 3:16, 새번역)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내용 속에 앞서 말씀드린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세상의 비방과 박해에 대처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과 아내에 대한 내용을 말할까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벧전 3:1a)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a)

 

종종 논란이 되기도 하는 이 본문은 남편과 아내 중 누가 더 우월한가를 이야기하는 본문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해와 비난, 박해에 대응하며 선한 행실과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삶의 자리의 출발점이 ‘가족’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안에서 이와 같은 성품과 삶의 방식이 시작되고 드러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부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다른 마음을 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예로, 교회가 만약 서로 다른 마음을 품으면 교인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부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하죠. 그래야 부부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또, 부부가 서로 공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의 삶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부드러운 마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드럽고 너그러운 마음이 있어야 가정이 행복하고 바르게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 안에서 자녀들도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라. 서로 낮은 데 자리를 두라”라는 이 말씀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잘 적용된다면 그 가정은 매우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마음을 품고 공감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겸손히 살아가라”라는 말씀은 가정에서부터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직장과 사회, 교회와 우리나라로 번져 가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입니다.

이렇게 이웃과의 관계가 열리고 부부간의 관계, 사람들 간의 관계들이 열리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열립니다. 그래서 “너희의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이 덧붙여집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며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관계로 발전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도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그 관계가 막히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막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관계를 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은 부부와 가족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이 질문은 “나는 나의 아내에게, 나의 남편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복을 이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속에는 사환들에게 주시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이어집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19~20)

 

언뜻 보면 사환, 곧 종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부당하게 박해받고 환대는 받지 못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할 만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시 종들은 주인에게 쉽게 학대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종의 고난의 자리에서 주어진 교훈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이유 없는 박해나 고난을 받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중요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벧전 3:17)

 

너희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으라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견디라고 나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고난과 박해를 받고 이유 없이 환대를 받지 못할 때, 또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과 폄하, 비난을 받을 때, 그것을 우리가 마땅히 져야 할 주님의 십자가로 여기며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 말씀은 놀랍기도 하고 역설적이기도 한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박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을 빌라라는 말씀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9)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받을 때 그 고난을 달게 받으라 말씀하시며 이것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이유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말씀하시기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 곧 박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을 빌어 주기 위해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새한글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악을 악으로 또는 욕을 욕으로 갚지 마십시오. 반대로 복을 빌어 주십시오. 이 일을 위해 여러분이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복을 물려받도록 말입니다. (벧전 3:9, 새한글성경)

 

여러분, 박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짜증이 나기 마련인데, 짜증을 내지 말라는 말씀도 아니고 도리어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복을 빌어 주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신앙의 신비를 하나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복을 빌어 주기만 하면 너희에게 그 복이 이어지게 된다.” 복을 연결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을 빌어 주는 일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는 놀라운 축복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수처럼 우리를 정말 잡아먹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또 기독교를 비난하고 환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고난이 올 때 ‘이것은 마땅히 내가 부르심을 받은 일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다. 십자가의 길이다. 당연히 져야 할 길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리어 복을 빌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행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믿음의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살면서 억울한 오해나 누명을 쓰게 되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또 부당한 대우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도, 인간관계 안에서도 그런 일들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나에게 고난이 온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같은 고난을 겪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온 고난을 마땅한 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도리어 나를 비난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줌으로써 하나님의 복을 이어 가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참 어려울 것 같지만 이 삶의 방식에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장로 임직 예식이 있는 날입니다. 또한 이후로 권사 임직 예식과 집사 임직 예식도 이어질 것입니다. 아마 우리 성도님들 중에 받을 임직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나는 직분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 모두 오늘 본문 말씀을 깊이 기억하면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분명하게 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11월 10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부르심을 받은 자는 이렇게 살라” (벧전 3장 8~9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16장, 311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벧전 3장 8~9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1월 10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리고 악한 짓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설교의 요약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비난이 올 때, 그리고 박해와 어려움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통해 박해와 비난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선한 양심과 행실로 세상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게 살아감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삶으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스러운 가정을 만들어감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으로 무엇인가를 증명해 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난을 당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 고난은 주님의 고난을 따라가는 것이며, 우리가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니 당연한 것이다” 라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난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려는 기회다” 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고난과 박해, 그리고 비난은 도리어 우리에게는 변장한 축복입니다” 라고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 세계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살면서 오해를 받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또한 사환들이나 종이 주인으로부터 부당하게 고난을 받듯이 사회에서, 회사에서 그런 대우나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첫째, “나에게 어려움과 고난이 온 것은 절대로 이상하지 않다, 예수님도 그렇게 고난을 당하셨는데, 나에게 고난이 오는 것이 당연하며, 이것은 내가 주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따르도록 부르시는 소명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 “나에게 온 그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다, 내가 도리어 그를 축복하면, 나를 박해하고 나를 어렵게 하는 이를 축복하리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복을 얻으리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가정에서 최선을 다해 행하며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호감이 극도로 낮아진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비난하는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해야 할 일이고, 마땅히 살아가야 할 신앙인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나누기

1. 쓸데없이 고난을 받거나 박해를 받았던 적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2.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여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도전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답게 바르고 선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지고 따르게 하시고, 주님께 받을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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