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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까? >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에 두 번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첫 열매를 딸 때와 마지막 열매를 저장할 때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실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지난 1년을 기억하며, 또 지난 1년간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는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은 2019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감사하십니까? 진심으로 감사하고 계십니까?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할 때, 보통 평안을 누리거나 아무런 걱정이 없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런 병이 없어서 감사하고, 다른 이보다 가난하지 않아서 감사하고, 좋은 가정을 주셔서 감사하고, 똑똑한 아이를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직장을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동료와 이웃을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부모님을 주셔서 감사하고, 이런저런 일들로 감사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런 조건들로만 감사를 표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모든 조건을 채우고 있을지 돌아봅니다. 이 모든 감사 제목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면, 아마 손에 꼽을 정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무엇이 감사합니까?”라고 물으면 피상적인 답변이 들려옵니다. “좋은 가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을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런저런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정말 감사가 있나?’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또 다른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혹시 우리도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 다른 이보다 가난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적절한 재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보다 부자인 사람이 많던데요?’
“좋은 가정, 좋은 배우자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며 감사를 표현하면서도, 속으로는 ‘저보다 행복한 가정이 많던데요? 그런데 이 정도로 만족해야 되겠지요? 그리고 저 옆집 여자는 무슨 복이 많아서 저렇게 좋은 남편을 만났습니까?’라며 가슴 깊이 묻어둔 본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똑똑하고 잘생긴 아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가 물어보면 이렇게 감사의 제목을 올리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지요. ‘그러면 뭐해요. 좋은 학교 못 들어가면 꽝인데…. 우리 아이, 최고 학교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안 그러면 사회에서 뒤처질 거예요.’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니 다시 한 번 묻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의 예배를 온 마음을 다해 드리고 있습니까?
< 감사 시편 107편에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
오늘 본문은 시편 107편입니다. 107편에는 매우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 4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감사 선언으로 시작을 알립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시편 107:1~2 중)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이 시편은 이어 네 종류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구체적인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거할 성읍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길을 찾지도 못합니다. 방향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어디가 길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지점으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 광야의 길, 사막의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목이 마릅니다. 모든 기력이 빠졌습니다. 그의 영혼은 피곤하며 곤핍합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절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의 지경에서 건져 주십니다.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시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 그가 거할만한 장소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것이 첫 번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어 두 번째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의 발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습니다. 아픔을 참고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은 고생의 질곡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쓰러져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홀로 갇혔습니다. 외롭습니다. 일으켜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도와달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외로움에 지친 하소연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죽음의 지경에서 그를 건져 주십니다. 그를 묶고 있던 사슬을 끊어 주시고,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그를 나오게 하십니다. 쇠 빗장을 부러뜨리시고 놋 대문을 부서뜨리십니다.
세 번째 사람의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스스로를 방탕한 곳에 두었던 사람입니다. 쾌락을 찾던 사람입니다. 죄악에 거하다 그만 큰 병에 걸려 죽을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입맛도 떨어졌습니다. 먹는 것조차 지겨워졌습니다.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강한 영혼의 절규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그를 고쳐 주시고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사람의 이야기도 마무리됩니다.
네 번째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대양을 헤치며 고기를 잡아 장사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바다에 돌풍이 입니다. 물결이 치솟기 시작합니다. 그 배는 큰 바다에 나뭇잎만도 못한 존재가 됩니다. 큰 물결에 휩쓸려 조그만 배가 하늘 높이 올랐다 다시 바다 깊숙이 빠지곤 합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곤 넋을 잃었습니다. 배는 술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서 그를 건져 내십니다. 광풍과 물결을 잠재우심으로, 죽음의 지경에서 그를 구원해 내십니다. 사방이 고요해졌고, 평온한 바다로 변화됩니다. 이내 그는 기뻐하며 바라던 항구에 도착합니다.
< 부르짖는 자에게 시인은 감사와 찬송을 올릴 것을 선포합니다. >
시편 107편은 네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편 107:31)
“감사하라.” 그리고 “찬송하라.”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는 어떨 때 감사합니까? 어떤 사람이 감사를 드립니까? 어떤 모습이 진정한 감사의 모습입니까?
시편 107편을 읽다 보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문에 나오는 네 사람은 도저히 감사할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감사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모두가 고통과 고난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모두 한결같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광야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기진하던 사람입니다. 향방을 잃은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어둡고 캄캄한 곳에 갇혔던 사람입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외로움에 갇혔던 사람입니다. 또 한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 이르도록 병에 걸려 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살아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배를 타고 가다 풍랑에 빠진 사람입니다. 이중 어느 누가 하나님께 감사할 만한 조건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시편 107편은 감사할 조건이 없에 보이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서두에서부터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선포를 앞세웁니다.
동시에 이처럼 감사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환란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라는 구절입니다. 본문에서 이 말씀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6절은 이렇습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6) 그는 광야에서 헤매던 사람입니다. 길을 찾지 못하고, 먹을 것을 얻지 못하고, 기진해 목말라하며 향방을 잃은 사람입니다. 이어 감옥에 갇힌 사람도 여호와께 부르짖었음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13절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13) 병에 걸렸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19) 마지막으로 풍랑 속에 있던 자도 똑같습니다. 28절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28)
<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십니다. >
제가 어느 교회에서 목회하던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교회 집사님이신데, 소아과 의사인 분이셨습니다. 초등학생인 조카가 뇌수막염에 걸려 죽게 되었다는 전화였습니다. 자신이 소아과 의사라 잘 알고 있는데, 상당히 안 좋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시누이와 무종교인 오빠의 아들이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으로 조카를 살리고 싶어 저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전화였습니다. 조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처음 보는 어머니와 아버지, 아이의 누나가 절망감 가운데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한 분은 종교가 다르고, 또 한 분은 종교가 없는 분이었지만, 저를 보자마자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데, 제 마음속에 지혜로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과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아이의 부모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다른 종교를 믿고 계신다고 했지요? 하나님 한번 믿어 보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지금 그래도 됩니까? 염치없이 그래도 될까요?”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어머니가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의사인 고모가 그 아이를 살피고 있었지만, 워낙 의사 선생님들이 비관적이라고 했기에 큰 기대는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죽지만 않으면 좋겠다.’라는 게 그분들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살기는 하되 불구가 되어도 좋다.’라는 게 그분들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했고, 아이의 어머니는 열심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아이가 병을 잘 이겨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나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이후엔 후유증도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결국 아이는 많은 시간이 흘러 건강하게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건강해져서 군대까지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가족은 모두 교회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어머니가, 아이의 누나가 수능시험을 보던 날 있었던 일을 교회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올린 글을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 아이가 수능시험 날 아침에 자기 책상에 앉아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니, 참 감격스럽더군요. 엄마이지만 신앙의 시작은 같은 시점이니까요. 우리 가족은 서로 변해 가는 모습에서 서로 격려 받고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 사랑을 알게 되고, 내 능력으로 어쩔 수 없을 때마다 언제나 힘이 되어 주시는 주님을 확인하게 됩니다. 기도해 주시는 교우님들, 목사님, 전도사님, 감사합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 얼마나 좋으실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렇게 기도하던 누나는 지금 목사의 사모가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하나님의 오묘한 손길을 그들의 삶을 통해 느끼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자가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여러분, 누가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누가 감사한 사람입니까? 부자 아버지가 있어서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을까요? 부자라고 감사할 수 있습니까? 좋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 감사할까요? 좋은 이력을 가지고 나이들 때까지 모든 것을 누리는 사람이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오늘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말 가장 감사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여러분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사람일까요? 진정한 감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은 사람’입니다. 부르짖어본 사람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 본 사람만이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부르짖지 않은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닌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누리겠지요. 그러나 간절히 기도한 사람은 내게 허락된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압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본 사람만이 자기 삶에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기도해 본 사람이 오늘 이 시간에도 가장 감사할 것입니다.
한편 오늘 본문에 흥미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말씀은 25절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시편 107:25)
참 이상한 말씀입니다. 107편은 전반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는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네 가지 사례도 알려줍니다. 광야에 있던 사람, 감옥에 갇혔던 사람, 병이 들었던 사람, 풍랑 속에 있던 사람.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만 이어져도 될 것 같은데, 그 중간에 이해할 수 없는 본문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시편 107:25)
풍랑의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 정말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바다에서 열심히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오셔서 큰 물결을 만드시고 어려움을 만들어 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물결을 잠잠하게 해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하라고요? 이것이 과연 맞는 이야기입니까?
우리를 골탕 먹이시는 하나님? 짓궂으신 하나님? 이렇게 이해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종종 어려움을 만날 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나를 광야로 몰고 가신 분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왜 내게 그 길을 잃도록 만드신 것입니까? 왜 나를 병마에 사로잡히도록 하신 것입니까? 내가 감옥에 갇히도록 놔두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아닙니까?”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와 같은 말씀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이 굳이 시편 107편에 나타나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얼마든지 빼놓아도 보기 좋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풍을 명령하셨다는 말을 빼도 이야기의 흐름은 아주 잘 이어집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훨씬 더 잘, 더 많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광풍을 일으키셨다’라는 구절을 삽입해야 합니까?
주석학자들에 의하면, 시편 107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사건을 기념하며 부른 감사의 노래라고 합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바벨론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응답 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포로로 보내신 분이 누구셨습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는 해방의 순간에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돌아오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시편 107편입니다. 포로의 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부른 감사의 노래입니다.
그들의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은 마치 광야에서 길을 잃었던 시간과 같았습니다. 또 갇혀 있던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있던 시간은 풍랑을 마주한 배의 경험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사하라.”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시간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감옥에 있던 시간이 감사하고, 포로의 시간이 감사하며, 병에 걸렸던 시간조차 감사하고, 풍랑 속에 있던 시간도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께 드린 기도를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온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을 때, 긴 안목을 가지고 있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섭리를 바라볼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신명기 8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경험을 하게 하신 이유는, 그들을 주리고 배고프게 하심으로 그들이 진정 먹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와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순간만 바라본다면 결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 생활을 했으나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먼 미래의 모든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게 될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6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 주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에게 상 주기를 원하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라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라도, 광야를 헤매고 있을 때라도, 폭풍과 풍랑 속에 정신을 잃고 있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시며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상 주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마지막은 해피엔딩입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안다면, 우리는 풍랑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말 감사합니까? 감사하지 않았다면, 기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말 애절하게 기도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울부짖고 부르짖음으로 감사를 성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Thanksgiving of Those Who Cry Out
Psalms 107:1-9
Gratitude is a special emotion and gift given by God to man. Let’s thank God for being our help in 2019. Personally, I am deeply grateful to Our Lord for giving such a great mission and dear friends at Somang Church to someone as lacking as myself.
Many of us, including myself, imagine peaceful, worriless situations when we think of conditions of thanksgiving. We are grateful for not being ill, for not being as poor as others, for being able to educate our children, for decent spouses, for a good job, for nice parents, for being in better positions than others, and so on.
But, in fact, these are not thanksgiving in the true sense. Then how can we give true thanksgiving to the Lord?
Psalm 107 tells usfour stories about men in distress. It starts with this verse: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his love endures forever.Let the redeemed of the Lordtell their story.” After this statement, the stories of those who must give thanks are introduced in detail.
First, some men were wandering in the desert, not knowing the way. They couldn’t find their way to a city where they could settle. They were lost, thirsty, and hungry. Their souls were tired and weary. Then, in their distress, they cried out to the Lord. And He delivered them from their trouble, leading them by a straight way to a city where they could settle.
Second, a man was in utter darkness, in chains. This imprisoned man’s heart was full of distress. No one was there to help him when he fell. Then he cried out to the Lord in his trouble. It was a desperate a plea for help. And God delivered him from this deathly state, breaking his chains and leading him out of darkness.
Third, there weresome rebellious men who sought life’s pleasures.Deep in sin, they became fatally ill. But in their sickness, they cried out to the Lord. And He answered them, healing them and rescuing them from the grave.
Fourth, there was a man who went out to sea. He was a merchant who sold fish. One day, however, a fierce storm struck, and his ship was nothing but a mere cork bobbing in raging waters. The man and his crew thought they would surely die, reeling and staggering like drunkards. T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And He calmed the waters, saving them from sure death.
Psalm 107 ordersthese men who have been saved from deep distress to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is unfailing love and his wonderful deeds for mankind.” (Psalms 107:31)
When do we give thanks? Who gives thanks to the Lord? The men in Psalm 107 are not in grateful situations. They are in desperate ones. But w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 He redeemed them. That is why they gave thanks. An important expression in this psalm is “t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 in their trouble.” All of these men, without exception, cried out to the Lord as seen in verses 6, 13, 19, and 28:
“T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in their trouble.” (verse 6)
“T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in their trouble.” (verse 13)
“T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in their trouble.” (verse 19)
“T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in their trouble.” (verse 28)
Psalm107 tells us that the men wandering in the desert gave thanks to the Lord after being safely led to a city. The men who were freed from their chains gave thanks. And in the verses following verse 17, the men gave thanks to the Lord for being saved from death and destruction. And in the verses following verse 23, the men in the ship gave thanks to the Lord after returning safely to land.
Once, when I was ministering at another church, I received an urgent call from a deacon who was a pediatrician. Her young nephew was near death due to cerebromeningitis. As a doctor, she said that the situation was extremely bad. Her brother was agnostic, and her sister-in-law practiced a different religion, so she wanted me to pray for her nephew. When I rushed to the hospital, I was met by the boy’s parents and the deacon, who were anxiously pacing the corridor. The parents asked me to pray for their child, although they were not Christians. At that moment, God gave me wisdom. I suggested to the mother, “Why don’t you believe in Christ?” She asked back, “Would that be all right? It somehow feels wrong.” I said it was okay and that she should pray, for God does not reject desperate cries.
A few days later, the boy’s conditionimproved, even though the situation was extremely bad. We were worried that he would be left with a limp even if he did get better, but the boy recovered fully. I recently heard that he even completed his military service in good health.
After that day in the hospital, the entire family started attending church. Later, the boy’s mother wrote the following about her daughter in our church’s internet bulletin: “As I saw my daughter praying at her desk on the day of her college entrance exam, I was filled with deep gratitude. Although I am her mom, our faith, both hers and mine, started on the same day. Our family are encouraged by one another as we see ourselves change. We have come to know of Christ’s love through this church and we are experiencing a God who helps us whenever our strength is not enough. I want to thank all our friends, pastors, and ministers praying for us.”
As I read her confession, I felt a deep, indescribable joy. The whole family praying together on the day of college entrance exams. How happy God must have been! That daughter is now a pastor’s wife. How wonderfully beautiful His guidance is!
Dear Church, on this Thanksgiving I want to ask you, “Who should give thanks to the Lord? What were your earnest prayers of 2019? For what did you cry out to the Lord this past year? And what would your confession be before those prayers?”
We do not thank the Lord because we have much and have no problems. Even if we had a rich father and could spend all the money we wanted, we might not be grateful toward that father, but rather have complaints. So, who among us today has the deepest gratitude toward God? Who? Dear Church, it is the person who has cried out to the Lord. Only that person who has cried out knows where grace comes from. Only that person who has prayed with deep sorrow knows what to be thankful for.
Verse 25 of today’s psalm is hard to understand: “For he spoke and stirred up a tempest that lifted high the waves.” (Psalms 107:25) If this is true, can we be thankful to God?This verse tells us that God stirred up a storm when the fishermen were out and sea, and later calmed it when they cried out to Him. Accordingly, they should give thanks. But then, does this mean that God deliberately makes us suffer and enjoys it? Whenever we meet trials, we ask, ‘Why does God lead me to the desert? Why does He make me lose my way? Why did He give me this disease? Why did He put me in chains? He knows everything. Yet why does He guide me to this hard place?’ Thinking from this perspective, we often fail to give thanks.
Then why does He stir up a tempest? And why does the Bible record such a verse that, to us, seems unfitting and needless? According to theologians, Psalm 107 was written in celebration of freedom from Babylonia. Who was it that exiled the Israelites to Babylon? God, of course. And this psalm was sung on their way home after a long period of Babylonian captivity.
Let’s look at Deuteronomy chapter 8: “Remember how the Lordyour God led you all the way in the wilderness these forty years, to humble and test you in order to know what was in your heart, whether or not you would keep his commands. He humbled you, causing you to hunger and then feeding you with manna, which neither you nor your ancestors had known, to teach you that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the Lord. (Deuteronomy 8:2-3)
If we can look at the entire God-written story, we can give thanks. When the Israelites were in captivity, they probably could not give thanks. But as they returned home after being freed, they finally gave thanks to the Lord. They thanked God for hearing their cries and delivering them from Babylon. We, too, must not focus only on our current reality, but give thanks to Him.
Lastly, we can give thanks when we understand God’s intention.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Hebrews 11:6) The end is a happy ending: salvation. If we know His intentions, we can give thanks even in a storm. I earnestly pray that we will all be able to give thanks to the Lord by crying out to Him.
시편 107: 1 ~ 9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까? >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에 두 번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첫 열매를 딸 때와 마지막 열매를 저장할 때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실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지난 1년을 기억하며, 또 지난 1년간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는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은 2019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감사하십니까? 진심으로 감사하고 계십니까?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할 때, 보통 평안을 누리거나 아무런 걱정이 없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런 병이 없어서 감사하고, 다른 이보다 가난하지 않아서 감사하고, 좋은 가정을 주셔서 감사하고, 똑똑한 아이를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직장을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동료와 이웃을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부모님을 주셔서 감사하고, 이런저런 일들로 감사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런 조건들로만 감사를 표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모든 조건을 채우고 있을지 돌아봅니다. 이 모든 감사 제목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면, 아마 손에 꼽을 정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무엇이 감사합니까?”라고 물으면 피상적인 답변이 들려옵니다. “좋은 가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을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런저런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정말 감사가 있나?’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또 다른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혹시 우리도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 다른 이보다 가난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적절한 재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보다 부자인 사람이 많던데요?’
“좋은 가정, 좋은 배우자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며 감사를 표현하면서도, 속으로는 ‘저보다 행복한 가정이 많던데요? 그런데 이 정도로 만족해야 되겠지요? 그리고 저 옆집 여자는 무슨 복이 많아서 저렇게 좋은 남편을 만났습니까?’라며 가슴 깊이 묻어둔 본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똑똑하고 잘생긴 아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가 물어보면 이렇게 감사의 제목을 올리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지요. ‘그러면 뭐해요. 좋은 학교 못 들어가면 꽝인데…. 우리 아이, 최고 학교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안 그러면 사회에서 뒤처질 거예요.’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니 다시 한 번 묻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의 예배를 온 마음을 다해 드리고 있습니까?
< 감사 시편 107편에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
오늘 본문은 시편 107편입니다. 107편에는 매우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 4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감사 선언으로 시작을 알립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시편 107:1~2 중)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이 시편은 이어 네 종류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구체적인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거할 성읍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길을 찾지도 못합니다. 방향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어디가 길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지점으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 광야의 길, 사막의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목이 마릅니다. 모든 기력이 빠졌습니다. 그의 영혼은 피곤하며 곤핍합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절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의 지경에서 건져 주십니다.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시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 그가 거할만한 장소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것이 첫 번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어 두 번째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의 발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습니다. 아픔을 참고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은 고생의 질곡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쓰러져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홀로 갇혔습니다. 외롭습니다. 일으켜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도와달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외로움에 지친 하소연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죽음의 지경에서 그를 건져 주십니다. 그를 묶고 있던 사슬을 끊어 주시고,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그를 나오게 하십니다. 쇠 빗장을 부러뜨리시고 놋 대문을 부서뜨리십니다.
세 번째 사람의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스스로를 방탕한 곳에 두었던 사람입니다. 쾌락을 찾던 사람입니다. 죄악에 거하다 그만 큰 병에 걸려 죽을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입맛도 떨어졌습니다. 먹는 것조차 지겨워졌습니다.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강한 영혼의 절규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그를 고쳐 주시고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사람의 이야기도 마무리됩니다.
네 번째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대양을 헤치며 고기를 잡아 장사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바다에 돌풍이 입니다. 물결이 치솟기 시작합니다. 그 배는 큰 바다에 나뭇잎만도 못한 존재가 됩니다. 큰 물결에 휩쓸려 조그만 배가 하늘 높이 올랐다 다시 바다 깊숙이 빠지곤 합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곤 넋을 잃었습니다. 배는 술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서 그를 건져 내십니다. 광풍과 물결을 잠재우심으로, 죽음의 지경에서 그를 구원해 내십니다. 사방이 고요해졌고, 평온한 바다로 변화됩니다. 이내 그는 기뻐하며 바라던 항구에 도착합니다.
< 부르짖는 자에게 시인은 감사와 찬송을 올릴 것을 선포합니다. >
시편 107편은 네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편 107:31)
“감사하라.” 그리고 “찬송하라.”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는 어떨 때 감사합니까? 어떤 사람이 감사를 드립니까? 어떤 모습이 진정한 감사의 모습입니까?
시편 107편을 읽다 보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문에 나오는 네 사람은 도저히 감사할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감사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모두가 고통과 고난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모두 한결같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광야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기진하던 사람입니다. 향방을 잃은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어둡고 캄캄한 곳에 갇혔던 사람입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외로움에 갇혔던 사람입니다. 또 한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 이르도록 병에 걸려 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살아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배를 타고 가다 풍랑에 빠진 사람입니다. 이중 어느 누가 하나님께 감사할 만한 조건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시편 107편은 감사할 조건이 없에 보이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서두에서부터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선포를 앞세웁니다.
동시에 이처럼 감사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환란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라는 구절입니다. 본문에서 이 말씀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6절은 이렇습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6) 그는 광야에서 헤매던 사람입니다. 길을 찾지 못하고, 먹을 것을 얻지 못하고, 기진해 목말라하며 향방을 잃은 사람입니다. 이어 감옥에 갇힌 사람도 여호와께 부르짖었음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13절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13) 병에 걸렸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19) 마지막으로 풍랑 속에 있던 자도 똑같습니다. 28절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28)
<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십니다. >
제가 어느 교회에서 목회하던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교회 집사님이신데, 소아과 의사인 분이셨습니다. 초등학생인 조카가 뇌수막염에 걸려 죽게 되었다는 전화였습니다. 자신이 소아과 의사라 잘 알고 있는데, 상당히 안 좋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시누이와 무종교인 오빠의 아들이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으로 조카를 살리고 싶어 저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전화였습니다. 조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처음 보는 어머니와 아버지, 아이의 누나가 절망감 가운데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한 분은 종교가 다르고, 또 한 분은 종교가 없는 분이었지만, 저를 보자마자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데, 제 마음속에 지혜로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과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아이의 부모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다른 종교를 믿고 계신다고 했지요? 하나님 한번 믿어 보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지금 그래도 됩니까? 염치없이 그래도 될까요?”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어머니가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의사인 고모가 그 아이를 살피고 있었지만, 워낙 의사 선생님들이 비관적이라고 했기에 큰 기대는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죽지만 않으면 좋겠다.’라는 게 그분들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살기는 하되 불구가 되어도 좋다.’라는 게 그분들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했고, 아이의 어머니는 열심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아이가 병을 잘 이겨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나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이후엔 후유증도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결국 아이는 많은 시간이 흘러 건강하게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건강해져서 군대까지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가족은 모두 교회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어머니가, 아이의 누나가 수능시험을 보던 날 있었던 일을 교회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올린 글을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 아이가 수능시험 날 아침에 자기 책상에 앉아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니, 참 감격스럽더군요. 엄마이지만 신앙의 시작은 같은 시점이니까요. 우리 가족은 서로 변해 가는 모습에서 서로 격려 받고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 사랑을 알게 되고, 내 능력으로 어쩔 수 없을 때마다 언제나 힘이 되어 주시는 주님을 확인하게 됩니다. 기도해 주시는 교우님들, 목사님, 전도사님, 감사합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 얼마나 좋으실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렇게 기도하던 누나는 지금 목사의 사모가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하나님의 오묘한 손길을 그들의 삶을 통해 느끼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자가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여러분, 누가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누가 감사한 사람입니까? 부자 아버지가 있어서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을까요? 부자라고 감사할 수 있습니까? 좋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 감사할까요? 좋은 이력을 가지고 나이들 때까지 모든 것을 누리는 사람이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오늘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말 가장 감사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여러분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사람일까요? 진정한 감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은 사람’입니다. 부르짖어본 사람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 본 사람만이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부르짖지 않은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닌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누리겠지요. 그러나 간절히 기도한 사람은 내게 허락된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압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본 사람만이 자기 삶에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기도해 본 사람이 오늘 이 시간에도 가장 감사할 것입니다.
한편 오늘 본문에 흥미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말씀은 25절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시편 107:25)
참 이상한 말씀입니다. 107편은 전반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는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네 가지 사례도 알려줍니다. 광야에 있던 사람, 감옥에 갇혔던 사람, 병이 들었던 사람, 풍랑 속에 있던 사람.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만 이어져도 될 것 같은데, 그 중간에 이해할 수 없는 본문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시편 107:25)
풍랑의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 정말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바다에서 열심히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오셔서 큰 물결을 만드시고 어려움을 만들어 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물결을 잠잠하게 해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하라고요? 이것이 과연 맞는 이야기입니까?
우리를 골탕 먹이시는 하나님? 짓궂으신 하나님? 이렇게 이해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종종 어려움을 만날 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나를 광야로 몰고 가신 분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왜 내게 그 길을 잃도록 만드신 것입니까? 왜 나를 병마에 사로잡히도록 하신 것입니까? 내가 감옥에 갇히도록 놔두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아닙니까?”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와 같은 말씀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이 굳이 시편 107편에 나타나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얼마든지 빼놓아도 보기 좋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풍을 명령하셨다는 말을 빼도 이야기의 흐름은 아주 잘 이어집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훨씬 더 잘, 더 많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광풍을 일으키셨다’라는 구절을 삽입해야 합니까?
주석학자들에 의하면, 시편 107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사건을 기념하며 부른 감사의 노래라고 합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바벨론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응답 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포로로 보내신 분이 누구셨습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는 해방의 순간에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돌아오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시편 107편입니다. 포로의 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부른 감사의 노래입니다.
그들의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은 마치 광야에서 길을 잃었던 시간과 같았습니다. 또 갇혀 있던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있던 시간은 풍랑을 마주한 배의 경험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사하라.”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시간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감옥에 있던 시간이 감사하고, 포로의 시간이 감사하며, 병에 걸렸던 시간조차 감사하고, 풍랑 속에 있던 시간도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께 드린 기도를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온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을 때, 긴 안목을 가지고 있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섭리를 바라볼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신명기 8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경험을 하게 하신 이유는, 그들을 주리고 배고프게 하심으로 그들이 진정 먹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와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순간만 바라본다면 결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 생활을 했으나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먼 미래의 모든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게 될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6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 주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에게 상 주기를 원하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라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라도, 광야를 헤매고 있을 때라도, 폭풍과 풍랑 속에 정신을 잃고 있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시며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상 주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마지막은 해피엔딩입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안다면, 우리는 풍랑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말 감사합니까? 감사하지 않았다면, 기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말 애절하게 기도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울부짖고 부르짖음으로 감사를 성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9년 11월 1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부르짖은 자의 감사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593장, 588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시107:1-9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1월 1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 추수감사 절기를 지켰습니다. 처음 열매를 딸 때, 그리고 마지막 열매를 다 저장할 때입니다. 요즘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실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를 잘 느끼지는 못하는데, 오늘 우리는 정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 시107편 맨 앞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으로 매우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4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들은 ① 광야에 있었던 사람 ② 감옥에 갇혔던 사람 ③ 병이 들었던 사람 ④ 풍랑 속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시편 107편은 이렇게 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시107:31) ‘감사하라, 찬송하라’는 말씀으로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 감사를 하는 것입니까? 누가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까? 어떤 모습이 진정한 감사의 모습입니까? 앞서 이야기했던 네 종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려움 속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서는 결코 감사할 조건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을까? 이 사람들의 이야기 가운데는 ‘그들의 환란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라는 하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6, 13, 19, 28). 누가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감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부르짖어본 사람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주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해 본 사람만이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닌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본문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시107:25) ‘풍랑의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까? 주석학자들에 의하면 시107편은 바벨론 포로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부르는 감사의 노래라고 합니다. 바벨론에서의 포로의 생활은 마치 광야의 길에서 길을 잃었던 시간, 갇혀 있었던 시간,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던 시간, 풍랑을 만나고 있었던 배의 시간과 동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겨운 광야의 경험을 만드셨던 이유는 그들을 주리게 하심으로, 배고프게 하심으로 그들이 진정 먹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 스토리 전체를 바라볼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순간만 바라본다면 결코 감사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게 될 때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안다면 우리는 풍랑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울부짖고 부르짖음으로 감사를 성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누기
1. 올 한해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감사의 제목은 무엇입니까? 서로 함께 나눠보세요.
2.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축복하며 함께 기도하세요.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기에 감사하고, 마침내 우리를 온전한 땅으로 인도하실 분이 주님이시기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던지 우리의 기쁨의 제사를 드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