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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공경하면 오래 사는가

에베소서 6: 1~3

김경진 목사

2023.05.14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어버이 주일에 설교를 시작하면서 안 좋은 소식 하나와 좋은 소식 하나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소식부터 전해 드릴까요? bad news or good news? bad news부터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가 있었답니다. 설문에서 부모가 언제쯤 돌아가시면 가장 적절한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놀랍게도 63세라고 답한 학생들이 가장 많았다고 하네요. 은퇴한 뒤에 퇴직금을 남겨놓고 사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설문 조사를 아시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꽤나 많은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63세를 갓 넘기신 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아직 죽지 못한 죄인이네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참 야박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Bad news를 말씀드렸으니 좋은 소식도 들려드려야겠지요. 좋은 소식은 이것입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가 사실무근이며, 만들어진 괴담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기자가 조사를 했는데 201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내용이 동아일보 2021년 5월 9일에 게재되었다고 하네요. 일종의 엽기 유머로 떠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마음이 놓이시는지요?

서영아 기자라는 분이 취재했다고 합니다. 부모 세대들 가운데서 설문 조사 결과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전파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게 진짜 사실일까?’ 하는 의문을 품으며 조사를 시작한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사가 나온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부모 세대 가운데서는 여전히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래도 설문 조사가 괴담이라니 참 다행입니다. 그러면 그렇지요. 우리 자녀들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도 곧 63살이 되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옛날에는 어머니날이 있어서 어머니 주일로 지킨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 주일이 되면 제가 늘 부른 노래가 있었는데 여러분들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이 노래를 부르신 분들이 꽤 계실 줄 압니다. 벌써 눈물을 훔치시는 분들도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어릴 적 이 노래를 부를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 아버지께 꼭 효도를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게 해 준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노래가 불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득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이 노래 가사는 어떻게 다가갈까?’ 한 중학생 어린아이에게 가사를 보여 주면서 불러볼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반응했다고 합니다. “우웩!”

세상이 많이 바뀌기도 했지만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 아버지를 보면서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요. 정작 제가 아버지가 되고 부모가 되니까 다른 생각이 듭니다. 과연 제가 아이들에게 효도를 강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죠. 그럴 만한 자격이 저에게 있는 건지 마음속에 질문이 생깁니다.

사실 부모에게 아이는 그 자체로 이미 큰 기쁨입니다. 아이로 인해서 우리가 얼마나 위로를 받고 기쁨을 얻습니까?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아이를 향한 사랑이 어떻게 이토록 마음속에서 솟아오를 수 있을까요.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로 내어 줄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에게는 아낌없이 내어 주니 말입니다. 어찌 보면 아이를 사랑하고 키우는 것은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귀한 본성이자 기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아이를 낳은 부모는 자연스럽게 자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도리어 이상할 뿐입니다.

바꾸어 표현하면 부모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생을 강요할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자라면서 부모에게 기쁨을 주었기에 은혜를 다 갚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쩌면 어버이 주일을 지키면서 어버이로서, 자녀로서 이 사실을 서로 인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1~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5계명부터 마지막 계명까지는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지에 관한 계명입니다. 그중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계명이 바로 ‘부모 공경’입니다. 출애굽기 20장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같은 계명을 신명기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 5:16)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께서 인간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자녀에 대한 명령은 십계명에 넣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자녀 사랑에 관한 계명은 율법으로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자녀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본성 속에 강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 사랑은 하나님이 부모님들 안에 본성적으로 심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녀 사랑을 명령하실 이유가 없으셨겠죠.

그러나 부모 공경의 경우는 매우 다릅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공경은 자연적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감사하는 마음은 생겨나지만 그 이상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모 공경과 사랑은 자녀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며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부모 공경은 자녀들의 노력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부모가 인지하고, 자녀들이 인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탓할 일도 아닙니다. 도리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령으로 규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부모 공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오늘 본문 에베소서는 부모 공경에 대한 계명을 전하며 이러한 해석을 덧붙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2~3)

 

에베소서 6장 2~3절 말씀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으로 부모 공경을 일깨워 줍니다. “네가 부모를 공경하면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될 것이다.”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부모 공경을 명령하시며 이러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만큼 부모 공경이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신 것이죠. 그러므로 부모 공경을 계명으로 남겨 두시기도 하셨습니다. 나아가 계명으로 남기는 것만도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으니, 부모를 공경하면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함께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부모를 공경하면 오래 사는가?’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서 의문을 가집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이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정말 그런지 묻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효도를 잘한 아들이 부모보다 이른 나이에 먼저 가게도 됩니다. 반대로 불효자 같은 사람이 오래 장수하는 모습도 보게 되곤 하죠.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듯합니다. 우선 앞서 말씀드린 이유를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부모 공경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공경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상을 함께 약속해 주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된다는 축복의 말씀을 덧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공수표를 날리신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러면 효도하는 사람이 일찍 죽는 경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마가복음 중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한 사람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고백한 내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0:17 ) 그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막 10:18~19)

 

주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을 덧붙이시자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막 10:20)

 

그가 부모님을 공경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 앞에서 주저함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주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마주하곤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같죠. 다 지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전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마 5:21~22 중)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보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살인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을 보면서 노하는 것 자체가 살인죄라고 규정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부모 사랑, 부모 공경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부모 공경을 잘 이루는 자녀일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부모 공경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부모 공경을 통해서 장수하는 축복을 누리기에는 우리가 보이는 공경의 정도나 수준이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따금 놀이터를 지나가다 보면 다섯 발을 쏘아서 표적 다섯 개를 다 맞추면 큰 인형을 준다고 유혹하는 장사꾼을 보게 됩니다. 마침 길을 지나가는 아이는 인형을 보고 가지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하죠. 그러면 아이의 부모는 사격을 시작하고 표적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하나를 쓰러트립니다. 둘을 쓰러트립니다. 그렇게 셋, 넷을 쓰러트리고 마지막 한 발이 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지막 한 발이 그만 빗나가고 맙니다. 그때 장사꾼이 안심한 듯이 말하지 않습니까? “아! 안됐습니다. 다음에 오셔야 되겠습니다.” 결국 아이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요? 부모 공경을 잘하면 삶이 잘되고 장수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에녹과 므두셀라 이야기는 하나님께로 안내하는 부모와 자녀의 삶을 가르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모 공경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우리는 보통 부모 공경을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1. 부모님을 무조건 기쁘시게 해 드린다.
  2. 형제간에 화목하여 마음 편하게 해 드린다.
  3. 몸을 잘 관리해서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는다.
  4. 훌륭한 사람이 되어 부모님께 기쁨을 드린다.
  5. 부모님이 살아가시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도와드린다.
  6. 때마다 넉넉하게 용돈을 드린다.
  7. 몸이 약해지실 때 잘 봉양해 드린다. 병원비나 모든 비용을 잘 감당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부모 공경은 어느 정도일까요? 이 내용을 성경에서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묵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장수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리고 이 말씀이 진리라면, 성경 안에 장수한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그가 부모 공경에 관해서 우리에게 단서를 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이 므두셀라였습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인물이죠. 므두셀라와 관련하여 성경을 읽다 보니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더군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 5:25~27)

 

그러니까 므두셀라는 무려 969살을 살았다는 셈입니다. 그럼 그는 어떻게 죽었을까요? 성경을 읽을수록 흥미롭습니다. 므두셀라의 아들은 라멕입니다.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았다고 하죠. 라멕이 182세에 아들을 낳습니다. 그가 바로 노아입니다. 홍수가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된 사건에 나오는 바로 그 노아입니다. 노아가 600세가 되던 해, 둘째 달에 홍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 7:10~12)

 

그렇다면 홍수가 난 해에 므두살레는 몇 살이었을까요? 문득 궁금해져서 계산을 해 보았습니다.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았습니다.

라멕이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노아 600세에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몇 살입니까?

187 + 182 + 600 = 969 입니다.

 

므두셀라가 세상을 떠난 그 해에 홍수가 일어났다고 성경은 알려 줍니다. 자, 이렇게 므두셀라는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그 해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을 때 모든 사람과 함께 죽었다는 것이겠고요. 두 번째는 므두셀라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그가 죽은 후에 홍수 심판을 내리셨다는 가능성입니다. 여러분 재미있지 않나요? 저만 재미있습니까? 저는 두 가지 경우에서 두 번째 해석이 하나님의 의도를 보여 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만일 그렇다면, 므두셀라가 이 땅에서 가장 장수한 인물이라면, 그에게서 우리는 부모 공경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므두셀라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에녹입니다. 창세기 5장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1~24)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365세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에녹입니다. 27절 말씀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히브리 원어로는 ‘세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그를 데려가심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죽었다’는 내용이 족보에 나오지 않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한마디로 요약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동행’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뜻을 맞추어서 함께 길을 걸어갔다는 의미이겠지요.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서 함께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하나님과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녹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므두셀라가 에녹을 어떻게 공경했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공경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나요? 아버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므두셀라가 에녹에게 한 공경이지 않을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성경은 에녹 한 사람을 등장시키며 강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므두셀라가 부모 공경으로 인하여 장수의 축복을 누린 유일한 인물로 나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일은 마땅한 일입니다. 용돈도 드리고, 불편함도 없게 해 드리고, 형제간에 화목하는 일 모두 부모 공경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에녹과 므두셀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 생각을 덧붙이게 됩니다. 진정한 효도, 진정한 부모 공경은 우리의 부모님이 구원을 얻게 해 드리는 것, 우리 부모님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해 드리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부모님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나아가시도록 돕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부모 공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셔서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여러분이 부모님이시라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스스로 살아내심으로 자녀들이 효도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진정 부모를 공경하게 하는 것. 이것이 또 다른 길이 될 것입니다. 이 귀한 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2~3)

Do You Live Long When You Honor Your Parents?

 

Ephesians 6:1-3

 

On this Parent’s Sunday I will start my message with good news and bad news. Which one would you like to hear first? Good or bad? Let me start with the bad news.

 

Once a survey was conducted on Seoul National University students. The question was “What would be the appropriate age of a parent’s death?” Guess what the answer was. The prevailing response was“63”—because it was the ideal time to leave behind your retirement pay.

 

Theresult of this survey created a lot of buzz. I heard someone mention it even just recently. This person, who had just turned 63, said, “Since I am still alive, I am a sinner to my children.”The survey got me thinking that young people are heartless these days.

 

I gave you the bad news. So, now, the good news.

 

The above survey is totally groundless. A Dong-a Ilbojournalist dug into the matter, searching for data and evidence way back to 2015, but found nothing and published her findings in an article on May 9, 2021. She guessed the story had been made up as a kind of grotesque humor.

 

Do you feel a little relieved now?

 

The journalist,Seo Young-a, started to investigate this matter because the survey result was circulating furiously at the time among the parent generation.

 

It is quite a relief to know that the story is merely a bizarre rumor. Of course. Our children can’t be that heartless. I am turning 63 myself soon, you know.

 

We are celebrating this Sunday as Parent’s Sunday. Decades ago, there was Mother’s Day, so we called the following Sunday Mother’s Sunday, but it has already been quite some time since it was changed to Parent’s Sunday. The song that we used to sing on Mother’s Day is still imbedded in my heart:

 

“Forgetting all the pain of childbirth,

Toiling for us day and night,

Suffering discomfort to give us comfort,

You worked till your hands and feet got rough.

What is greater than your love under the skies?

Mother’s sacrifice is endless.”

 

Whenever I sang this song in middle school, I was moved. I don’t know from when exactly, but the song stopped being sung as often. So I was curious. How would our young generation today feel about the lyrics? Will they feel the same emotions as I did? (FYI, one response I got from a middle schooler was… “Yuck!”)

 

The world has changed a lot, but in my short life this is what I have come to think. When I was little, I was deeply grateful to my mother and father, thinking I would earnestly do my filial duty. But now, as a father, I think somewhat differently:Will I be able to say to my children, “You must do your filial duty to me!” Do I deserve to say this?

 

Children are a parent’s great joy. How much happiness and consolation we get from them! Raising my kids, I often thought, ‘How can such a powerful love surge from within? If it were not my child, such a selfless love that would even give one’s life would not be possible. Where does this heart come from?’

 

In a sense, loving and rearing one’s child are a God-given nature and joy. A parent naturally loves his/her child once he/she is born. The parent that does not love his/her child is the unnatural one.

 

In other words, parents are not justified to say, “I loved you so, but do you know how hard it was for me?” Loving your child is nothing to be proud of. Since children give great joy to their parents as they grow up, they have already repaid all the love and grace they have been bestowed.

 

Although what I am saying may not be an appropriate or respectful message for Parent’s Sunday, I think it is important forus, as parents and children, to acknowledge this fact.

 

We know the Ten Commandments well. The fifth is God’s command on honoring your parents. As you well know, the first four commands are on loving and serving God. But from the fifth command, God teaches us how to love and serve men and our neighbors.

 

The first of the latter group of commands is none other than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Let’s look at Exodus 20: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so that you may live long in the land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 (Exodus 20:12)

 

Writing on the same command, Deuteronomy says: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as the Lord your God has commanded you, so that you may live long and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in the land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Deuteronomy 5:16)

 

What is interesting is that God does not include loving your children in the Ten Commandments in teaching men to love one another in human relationships. “Love your children” is not one of the Ten Commandments.

 

Why didn’t He give such a command? Is it because loving your children is less important than honoring your parents? No. It is because the former is already strongly imbedded in our God-given nature. In other words, you don’t need someone to tell you to love your children to love them. That love naturally flows from our hearts. God created us that way. Therefore, there was no need for God to include such a command in the Ten Commandments.

 

But honoring and loving one’s parents is different. This love is not generated naturally or spontaneously. Children can only love and honor their parents through effort. What I am saying is that children’s love for their parents is not the kind of instinctive and biological love that parents feel for their children.

 

That is why God commands us in the Ten Commandment to honor our parents in the form of a covenant. This means honoring your parents is possible only through effort. Of course, children do have a certain degree of gratitude for their parents, but the easy way to understand this is to see their love and respect for their parents as something that is underdeveloped.

 

Therefore it is critical that both parents and children acknowledge this. When children do not honor their parents, we must not blame them—for this is, in some ways, natural.

 

This is precisely why God commanded us to honor our parents.

 

Today’s Scripture from Ephesians interprets the command on honoring our parents as follows:

 

“‘Honor your father and mother’—which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so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that you may enjoy long life on the earth.’” (Ephesians 6:2-3)

 

The above passage teaches us that the command on honoring our parents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 If you honor your parents, it will go well with you. You will live long on the earth. This is God’s promise, Ephesians says.

 

Why did God say this in this command? I think it is a reflection ofjust how hard it is to honor one’s parents. You will know this only too well. Loving your children is easy. You don’t need a command. But loving and honoring your father and mother is not so. That is why I need to leave a command, God is saying. Even that, however, is not enough, so I will add the very thing that humans desire the most in life. This may be what God was thinking when He inserted a promise in the command to honor our parents.

 

The title of my message today is “Do you live long when you honor your parents?” Many people are curious about the answer. They ask, “The Bibles commands us to honor our parents so that we will live long on the earth, but is this really true? I have seen filial children die at a young age, even before their parents, and unfilial ones live long and good lives. So, pastor, is this promise still valid in this age and day?”

 

The truth is, at first glance, God’s promise does not appear to explicitlycome true in real life. Why is that so? First, as I mentioned, we must first consider God’s intention in giving that promise.

 

God wanted to motivate those who struggled to honor their parents. He is saying, I know it’s hard, but you still must honor your parents. But shouldn’t there be some kind of reward? So God gives the promise that man will live long on earth if he honors his parents.

 

Then did God just issue a bad check? No. I believe God’s Word will surely be fulfilled. Then, how can you explain all the filial children who die young?

 

Dear brothers and sisters, in Mark a man comes to Jesus, kneels before Him, and asks, “Good teacher,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Mark 10:17)

 

Jesus answers, “Why do you call me good?No one is good—except God alone. You know the commandments: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give false testimony, you shall not defraud, honor your father and mother.’”(Mark 10:18-19)

 

Here Jesus mentions the command to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To this, the man replies, “Teacher, all these I have kept since I was a boy.” (Mark 10:20)

 

Then what does Jesus say? He says to the man lovingly, “One thing you lack.” Here we come face to face with man’s fate: he is incapable of wholly keeping God’s commands.

 

Jesus says in the Beatitudes in Matthew 5: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o the people long ago, ‘You shall not murder, and anyone who murders will be subject to judgement.’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is angry with a brother or sister, will be subject to judgment.” (Matthew 5:21-22)

 

Ultimately, we cannot reach the level of love and respect for our parents that God expects from us. We may honor them to a certain degree. But that degree is not up to the level that God wants from us if we are to enjoy the blessing of longevity.

 

Let’s say you are playing a game in the playground. There is a big prize for anyone who gets all five arrows in the bullseye zone. Let’s say you get four arrows in. That does not mean you get the prize. You go home empty-handed.

 

Then what is the level of respect for our parents that God wantsfrom us? What exactly must we do to truly honor them? Generally, we tend to think up the following list:

 

  • Making them happy no matter what.
  • Giving them peace by getting on with siblings.
  • Keeping healthy so as not to worry them.
  • Making them happy by becoming an excellent person.
  • Ensuring a comfortable life for them.
  • Giving them ample allowances on every occasion.
  • Serving them well when they are sick. Paying their medical fees.

 

This is our common list when comes to honoring our parents. But what is the level of respect that God wants from us? Actually, the answer to this question is not easy to find in the Bible. But a thought occurred to my one day, as I was meditating on the Scriptures.

 

If the Bible tells us to honor our parents so that we may enjoy longevity, then who in the Bible lived such a long life? Won’t that person give us a clue on what it means to honor our parents?

 

So I looked up the Bible and found that the man who lived the longest in the Bible was Methuselah in Genesis 5.

 

Reading about him in the Bible revealed several interesting facts. This is what the Bible says about him:

 

“When Methuselah had lived 187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Lamech. After he became the father of Lamech, Methuselah lived 782 years and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Altogether Methuselah lived a total of 969 years, and then he died.” (Genesis 5:25-27)

 

Methuselah’s life on earth was the longest among men—a whopping 969 years. Then how and when did he die? The Bible tells an interesting story.

 

Methuselah’s son was Lamech, whom he got at the age of 187. But the story continues. Lamech had Noah when he was 182 years old. Yes. That very Noah, the protagonist of the Great Flood that killed humanity.

 

The Great Flood happened when Noah was 600 years old. This is what the Bible says:

 

“And after the seven days the floodwaters came on the earth. In the six hundredth year of Noah’s life, on the seventeenth day of the second month—on that day all the springs of the great deep burst forth, and the floodgates of the heavens were opened. And rain fell on the earth forty days and forty nights.”(Genesis 7:10-12)

 

I calculated Methuselah’s age when the Great Flood came based on the Bible’s statements. Methuselah got Lamech at 187 years old; Lamech had Noah at 182 years old; and Noah was 600 years old when the Great Flood came. So:

 

187+ 182+ 600 = 969

 

If we follow the flow of the Bible, this is the equation we get. In other words, Methuselah died in the very year of the Great Flood. There are two possible explanations for this.

 

One, he may have died along with everyone else when the Great Flood came. Two, God may have waited until Methuselah died before punishing world with the Flood. Isn’t it fascinating? We may infer such contexts from the flow of the Bible.

 

If Methuselah was the longestliving person ever on earth, can we not find the secret to honoring our parents in his life?

 

Then who was his father? It was Enoch:

 

“When Enoch had lived 65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Methuselah. After he became the father of Methuselah, Enoch walked faithfully with God 300 years and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Altogether, Enoch lived a total of 365 years. Enoch walked faithfully with God; then he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away.”(Genesis 5:21-24)

 

Methuselah’s father was none other than Enoch, the man who lived a total of 365 years, faithfully walking with God.

 

Although the Korean Bible translates verse 24 to mean “he was no more in this world,” the original Hebrew text does not include “this world.” So a more precise translation would be something like “he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away.” Enoch is the only figure in the Bible whose death is not mentioned in his genealogy.

 

The Bible does not say he “died” but that “he was no more.” Enoch is the sole exception in the genealogy of death.

 

His life can be summed up as one that “walked faithfully with God.” What else can “to walk faithfully with God” mean other than “to follow a life’s path according God’s will”?Walking faithfully with God is to go with Him in an inseparable relationship with Him. That is, Enoch lived his life in the same manner as that of God.

 

If Methuselah was blessed with longevity by honoring his father and mother, what did he do specifically to honor them? Don’t you think his way of honoring them was to help them walk faithfully with God?

 

Since walking faithfully with God is difficult, the Bible mentions only Enoch when it comes to this topic. In this respect, Methuselah may be the only person on earth who enjoyed the blessing of longevity that comes from honoring one’s parents.

 

We are celebrating Parent’s Sunday today. It is fitting that we thank our parents for their love and repay their grace. Providing financial support, ensuring their comfort, and getting along with our siblings are precious ways of honoring our parents.

 

But as we study the genealogies of Methuselah and Enoch, we may add one more important way: that is, to lead our parents to salvation and to help them live a life that walks faithfully with God. Helping our parents to enter a deep relationship with God—this is a most precious way of honoring our parents.

 

God speaks to us:

 

“‘Honor your father and mother’—which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so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that you may enjoy long life on the earth.’” (Ephesians 6:2-3)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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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 1~3

1~3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어버이 주일에 설교를 시작하면서 안 좋은 소식 하나와 좋은 소식 하나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소식부터 전해 드릴까요? bad news or good news? bad news부터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가 있었답니다. 설문에서 부모가 언제쯤 돌아가시면 가장 적절한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놀랍게도 63세라고 답한 학생들이 가장 많았다고 하네요. 은퇴한 뒤에 퇴직금을 남겨놓고 사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설문 조사를 아시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꽤나 많은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63세를 갓 넘기신 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아직 죽지 못한 죄인이네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참 야박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Bad news를 말씀드렸으니 좋은 소식도 들려드려야겠지요. 좋은 소식은 이것입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가 사실무근이며, 만들어진 괴담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기자가 조사를 했는데 201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내용이 동아일보 2021년 5월 9일에 게재되었다고 하네요. 일종의 엽기 유머로 떠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마음이 놓이시는지요?

서영아 기자라는 분이 취재했다고 합니다. 부모 세대들 가운데서 설문 조사 결과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전파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게 진짜 사실일까?’ 하는 의문을 품으며 조사를 시작한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사가 나온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부모 세대 가운데서는 여전히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래도 설문 조사가 괴담이라니 참 다행입니다. 그러면 그렇지요. 우리 자녀들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도 곧 63살이 되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옛날에는 어머니날이 있어서 어머니 주일로 지킨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 주일이 되면 제가 늘 부른 노래가 있었는데 여러분들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이 노래를 부르신 분들이 꽤 계실 줄 압니다. 벌써 눈물을 훔치시는 분들도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어릴 적 이 노래를 부를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 아버지께 꼭 효도를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게 해 준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노래가 불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득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이 노래 가사는 어떻게 다가갈까?’ 한 중학생 어린아이에게 가사를 보여 주면서 불러볼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반응했다고 합니다. “우웩!”

세상이 많이 바뀌기도 했지만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 아버지를 보면서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요. 정작 제가 아버지가 되고 부모가 되니까 다른 생각이 듭니다. 과연 제가 아이들에게 효도를 강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죠. 그럴 만한 자격이 저에게 있는 건지 마음속에 질문이 생깁니다.

사실 부모에게 아이는 그 자체로 이미 큰 기쁨입니다. 아이로 인해서 우리가 얼마나 위로를 받고 기쁨을 얻습니까?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아이를 향한 사랑이 어떻게 이토록 마음속에서 솟아오를 수 있을까요.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로 내어 줄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에게는 아낌없이 내어 주니 말입니다. 어찌 보면 아이를 사랑하고 키우는 것은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귀한 본성이자 기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아이를 낳은 부모는 자연스럽게 자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도리어 이상할 뿐입니다.

바꾸어 표현하면 부모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생을 강요할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자라면서 부모에게 기쁨을 주었기에 은혜를 다 갚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쩌면 어버이 주일을 지키면서 어버이로서, 자녀로서 이 사실을 서로 인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1~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5계명부터 마지막 계명까지는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지에 관한 계명입니다. 그중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계명이 바로 ‘부모 공경’입니다. 출애굽기 20장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같은 계명을 신명기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 5:16)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께서 인간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자녀에 대한 명령은 십계명에 넣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자녀 사랑에 관한 계명은 율법으로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자녀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본성 속에 강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 사랑은 하나님이 부모님들 안에 본성적으로 심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녀 사랑을 명령하실 이유가 없으셨겠죠.

그러나 부모 공경의 경우는 매우 다릅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공경은 자연적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감사하는 마음은 생겨나지만 그 이상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모 공경과 사랑은 자녀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며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부모 공경은 자녀들의 노력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부모가 인지하고, 자녀들이 인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탓할 일도 아닙니다. 도리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령으로 규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부모 공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오늘 본문 에베소서는 부모 공경에 대한 계명을 전하며 이러한 해석을 덧붙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2~3)

 

에베소서 6장 2~3절 말씀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으로 부모 공경을 일깨워 줍니다. “네가 부모를 공경하면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될 것이다.”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부모 공경을 명령하시며 이러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만큼 부모 공경이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신 것이죠. 그러므로 부모 공경을 계명으로 남겨 두시기도 하셨습니다. 나아가 계명으로 남기는 것만도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으니, 부모를 공경하면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함께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부모를 공경하면 오래 사는가?’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서 의문을 가집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이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정말 그런지 묻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효도를 잘한 아들이 부모보다 이른 나이에 먼저 가게도 됩니다. 반대로 불효자 같은 사람이 오래 장수하는 모습도 보게 되곤 하죠.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듯합니다. 우선 앞서 말씀드린 이유를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부모 공경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공경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상을 함께 약속해 주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된다는 축복의 말씀을 덧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공수표를 날리신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러면 효도하는 사람이 일찍 죽는 경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마가복음 중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한 사람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고백한 내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0:17 ) 그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막 10:18~19)

 

주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을 덧붙이시자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막 10:20)

 

그가 부모님을 공경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 앞에서 주저함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주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마주하곤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같죠. 다 지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전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마 5:21~22 중)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보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살인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을 보면서 노하는 것 자체가 살인죄라고 규정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부모 사랑, 부모 공경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부모 공경을 잘 이루는 자녀일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부모 공경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부모 공경을 통해서 장수하는 축복을 누리기에는 우리가 보이는 공경의 정도나 수준이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따금 놀이터를 지나가다 보면 다섯 발을 쏘아서 표적 다섯 개를 다 맞추면 큰 인형을 준다고 유혹하는 장사꾼을 보게 됩니다. 마침 길을 지나가는 아이는 인형을 보고 가지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하죠. 그러면 아이의 부모는 사격을 시작하고 표적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하나를 쓰러트립니다. 둘을 쓰러트립니다. 그렇게 셋, 넷을 쓰러트리고 마지막 한 발이 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지막 한 발이 그만 빗나가고 맙니다. 그때 장사꾼이 안심한 듯이 말하지 않습니까? “아! 안됐습니다. 다음에 오셔야 되겠습니다.” 결국 아이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요? 부모 공경을 잘하면 삶이 잘되고 장수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에녹과 므두셀라 이야기는 하나님께로 안내하는 부모와 자녀의 삶을 가르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모 공경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우리는 보통 부모 공경을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1. 부모님을 무조건 기쁘시게 해 드린다.
  2. 형제간에 화목하여 마음 편하게 해 드린다.
  3. 몸을 잘 관리해서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는다.
  4. 훌륭한 사람이 되어 부모님께 기쁨을 드린다.
  5. 부모님이 살아가시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도와드린다.
  6. 때마다 넉넉하게 용돈을 드린다.
  7. 몸이 약해지실 때 잘 봉양해 드린다. 병원비나 모든 비용을 잘 감당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부모 공경은 어느 정도일까요? 이 내용을 성경에서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묵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장수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리고 이 말씀이 진리라면, 성경 안에 장수한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그가 부모 공경에 관해서 우리에게 단서를 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이 므두셀라였습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인물이죠. 므두셀라와 관련하여 성경을 읽다 보니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더군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 5:25~27)

 

그러니까 므두셀라는 무려 969살을 살았다는 셈입니다. 그럼 그는 어떻게 죽었을까요? 성경을 읽을수록 흥미롭습니다. 므두셀라의 아들은 라멕입니다.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았다고 하죠. 라멕이 182세에 아들을 낳습니다. 그가 바로 노아입니다. 홍수가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된 사건에 나오는 바로 그 노아입니다. 노아가 600세가 되던 해, 둘째 달에 홍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 7:10~12)

 

그렇다면 홍수가 난 해에 므두살레는 몇 살이었을까요? 문득 궁금해져서 계산을 해 보았습니다.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았습니다.

라멕이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노아 600세에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몇 살입니까?

187 + 182 + 600 = 969 입니다.

 

므두셀라가 세상을 떠난 그 해에 홍수가 일어났다고 성경은 알려 줍니다. 자, 이렇게 므두셀라는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그 해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을 때 모든 사람과 함께 죽었다는 것이겠고요. 두 번째는 므두셀라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그가 죽은 후에 홍수 심판을 내리셨다는 가능성입니다. 여러분 재미있지 않나요? 저만 재미있습니까? 저는 두 가지 경우에서 두 번째 해석이 하나님의 의도를 보여 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만일 그렇다면, 므두셀라가 이 땅에서 가장 장수한 인물이라면, 그에게서 우리는 부모 공경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므두셀라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에녹입니다. 창세기 5장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1~24)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365세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에녹입니다. 27절 말씀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히브리 원어로는 ‘세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그를 데려가심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죽었다’는 내용이 족보에 나오지 않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한마디로 요약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동행’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뜻을 맞추어서 함께 길을 걸어갔다는 의미이겠지요.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서 함께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하나님과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녹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므두셀라가 에녹을 어떻게 공경했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공경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나요? 아버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므두셀라가 에녹에게 한 공경이지 않을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성경은 에녹 한 사람을 등장시키며 강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므두셀라가 부모 공경으로 인하여 장수의 축복을 누린 유일한 인물로 나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일은 마땅한 일입니다. 용돈도 드리고, 불편함도 없게 해 드리고, 형제간에 화목하는 일 모두 부모 공경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에녹과 므두셀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 생각을 덧붙이게 됩니다. 진정한 효도, 진정한 부모 공경은 우리의 부모님이 구원을 얻게 해 드리는 것, 우리 부모님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해 드리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부모님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나아가시도록 돕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부모 공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셔서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여러분이 부모님이시라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스스로 살아내심으로 자녀들이 효도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진정 부모를 공경하게 하는 것. 이것이 또 다른 길이 될 것입니다. 이 귀한 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2~3)

2023514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부모를 공경하면 오래 사는가 (6:1~3)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99장, 579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엡 6:1-3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5월 14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보면서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나중에 커서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부모가 되고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부모가 과연 자녀들에게 “너희는 나에게 효도해야해!”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성이고 기쁨입니다. 그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도리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에게 이미 큰 기쁨을 주었기 때문에, 이미 자녀들은 그 은혜를 다 갚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설교의 요약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은 부모공경에 관한 말씀입니다. 십계명의 1-4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길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고, 5-10계명은 인간과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중 인간과 이웃의 관계에서 첫 번째로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관계를 말씀하실 때, ‘네 자녀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녀사랑이 부모공경보다 못해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도와 공경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부모공경의 계명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엡 6:2-3) 그것은 그만큼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공경에는 장수라는 복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효자가 꼭 장수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효도를 잘 하던 이들이 이른 나이에 부모보다 먼저 죽기도 하고, 불효자가 장수하는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부모 공경이 어려운 자녀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일차적으로 그 동기부여의 차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장수한 인물인 므두셀라를 보면, 그의 아버지가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가 부모를 공경하여 장수의 복을 누렸다면, 그가 부모를 공경한 내용은 무엇일까요? 아버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은 아닐까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즉 부모님을 전도하고 부모님의 신앙을 돕는 것이어야 말로 최고의 효도이자, 가장 귀한 부모공경입니다.

나누기

  1.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나눠봅시다.
  2.  아직 믿지 않으시는 부모님을 어떻게 전도할지에 대해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귀한 부모님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보살핌, 섬김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실 수 있도록 돕고 공경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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