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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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내주로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세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도 부활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옆에 있는 식구 혹은 친구에게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우리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주일부터 예배당 문이 열리는데, 물론 다 모이지는 못하겠지만 함께 모여 예배드릴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또 새벽기도회는 5월 1일부터 예배당에서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마음의 준비를 하시되, 건강도 잘 살피시면서 나오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주간 기쁨의 50일을 보내면서 우리도 부활하는 마음으로 예배당에서 만날 날을 기대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부활 소식을 찬양합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복음이자 지혜며, 환호이자 감탄입니다. 지난 부활절 아침에 ‘우리는 어떻게 부활에 참여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가 죽음 이후, 즉 마지막 날에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현장에서도 일어나는 일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부활 신앙이다.’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내 존재를 의의 도구로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라는 말씀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 ‘부활하신 주님, 살리시는 주님’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부활의 은총은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그 예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시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환호가 그저 이천 년 전 한 사건에 대한 정보 전달의 차원이 아니란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환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나주셨다는 선언이자 그 주님이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만나주신다는 환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 나아가 우리를 만나주신 첫 자리로 다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부활의 주님, 그리고 숯불을 피워 놓으시듯이 참으로 부끄러운 자리로, 정말 주님과 대면하고 싶지 않은 그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부활의 주님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용서하시고 새로운 소명을 허락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주까지 함께 살펴본 내용입니다.
<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존재는 ‘서로 연결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 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부활에 동참하게 되어 현재의 삶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만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만 만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도 만나셨습니다.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도 만나셨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도 만나셨습니다.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 도마도 만나셨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새로운 존재, 곧 부활체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아가 비록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에게도 성령을 통해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활절의 마지막 지점에 있는 성령 강림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성령 강림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변화를 얻고 새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령 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맞닿아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모든 제자를 다시 살리신 것처럼, 성령께서도 많은 사람을 다시 살리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증하시며 우리에게 부활의 능력을 부여해 주십니다.
이렇듯 부활하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성령님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우리는, 이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질문 안에는 이미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존재 곧 홀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 존재로 서로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즉 ‘관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우리가 육적인 생명을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육적인 생명을 얻고 이 땅에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관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후에도, 우리는 또 다른 관계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주제는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미 성경이 여러 번 증언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후, 그를 돕는 배필인 하와를 지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8)
그리고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24)
사람은 처음부터 누군가와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육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원리이기도 하고,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의 삶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새롭게 창조된 사람들 역시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하나님, 가정, 성도, 세상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빚어집니다. >
그렇다면, 그 관계란 어떤 관계들일까요? 첫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전에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후에는 또 다른 관계가 맺어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자녀 된 인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부활 생명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범주가 있는데, 바로 ‘가정’입니다. 물론 먼저 육적인 가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고, 이후 결혼을 통해 부부의 관계를 맺으며, 자녀를 낳아 가정을 형성합니다. 이것을 육적인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나 부활 생명을 경험하게 되면, 가정의 관계도 달라져야 합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관계로,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빚어져야 합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어 새 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새롭게 연결해야 할 또 다른 관계는 ‘성도’ 사이의 관계입니다. 부활의 증인 된 사람들이 함께 새로운 존재로 빚어져야 합니다. 하나로 연결된 성도로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그 관계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연결해야 할 또 다른 범주가 있다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입니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존재들이지만, 그렇다고 이 땅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결코 홀로 고립되어 살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이 민족과 함께, 이 나라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이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자, 우리가 소명을 받은 사역자인 까닭입니다.
오늘 설교로 이 네 범주를 다 정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성도 간의 연결에 관한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 새롭게 부활의 증인이 된 사람들, 바로 우리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대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 주제를 살펴보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 주일부터 예배당 문이 열릴 텐데, 우리가 돌아올 때 ‘그저 몸만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옛 모습 그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저 몸만 돌아오기보다는 ‘새로운 정신과 관계’로 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똑같은 태도와 관계의 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성도 간에 새로운 관계를 맺어 새로운 교제 속으로 들어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예배당 문이 열리고 모든 성도가 돌아올 때, 부활의 증인 된 우리 성도 모두가 서로 연결된 관계를 맺음으로써 보다 나은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건물로 지어져 갑니다. >
그렇다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관계와 연결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성경에는 성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세 가지 유비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며 설명하므로, 이 세 가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듯합니다.
첫 번째 유비는 에베소서 2장에 나타납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연결된 관계를 건물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에베소서 2장 20~22절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에베소서 2:20~22, 새번역)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예수를 모퉁잇돌로 하는 하나의 건물, 하나의 성전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즉 성도 간의 관계가 하나의 건물로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이 건물의 유비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여러분 중에 건물을 지어보셨거나 그 과정을 지켜보신 분들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는 여러 재료가 필요합니다. 철근도 필요하고, 시멘트도 필요하며, 나무와 벽돌도 필요합니다. 전등도, 스위치도 필요합니다. 전선도 필요하고, 문짝도 필요하며, 창문도 필요하고, 지붕재도 필요합니다. 문고리도 필요하고, 장판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 모든 재료가 서로 맞추어져야 합니다. 많은 조각이 서로 합해진 뒤에야 한 건물을 이룹니다. 그런데 그 조각들이 아무리 많아도 서로 맞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서로 정확하게 연결되어 틈 없이 맞추어져야 좋은 집을 만들 수 있습니다. 틈을 메우는 조그만 조각들도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건물에 쓰일 적절한 재료가 되기 위해 나무는 대패로 깎여야 합니다. 돌은 정으로 쪼개져야 합니다. 철사는 잘린 후 적절한 모습으로 변형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멋진 집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건물의 유비로써의 그리스도인의 관계는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서로 깎여야 합니다. 조각과 조각이 맞추어져서 틈 없이 연결될 때, 비로소 건물은 튼튼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든든한 교회, 흔들림 없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 성도들이 서로 깎이는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희생해야만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나는 깎이지 않겠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이들이 스스로를 깎아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나는 깎이지 않겠다.”라고 한다면, 그 건물은 제대로 지어질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깎여야 하고, 누군가는 양보해야 하며, 누군가는 희생해야만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사실 신앙적인 풍성함이 가득하며, 신령한 성령의 은사로 가득 찬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혼란스러웠고, 싸움이 그치지 않는 교회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를 서로 양보하지 않았고, 깎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은 한 가지 처방을 내립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타난 ‘사랑’입니다. 사랑과 희생과 양보야말로 교회를 아름답게 하는 미덕임을 사도 바울이 증언했습니다.
우리 각자는 이미 부활의 증인으로, 새로운 생명체로, 귀한 의의 도구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서로 깎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다. 나는 부활 생명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깎이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함께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재료들이 건물에 사용됩니다. 그러나 재료가 많다고 좋은 건 아닙니다. 문고리가 많으면 좋겠지만, 문의 숫자 이상으로 필요한 건 아닙니다. 그럴 때 남은 문고리는 창고에 보관용으로 쌓일 뿐입니다. 창고에서 오랜 기간을 기다린 후에야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 희생이 있어야만 아름다운 문이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문고리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건물의 비유는 우리가 서로 연결될 때, 그리고 그 연결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희생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나를 깎아내는 희생과 나눔, 비움이 없이는 결코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 수 없습니다. 부활 생명을 가진 우리가 희생과 나눔, 비움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성도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요, 가족입니다. >
두 번째로, 성경에 나타난 연결의 유비는 오늘 본문인 로마서 12장 4~5절의 내용입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로마서 12:4~5, 새번역)
두 번째 유비는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부활의 증인인 우리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우리가 각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 건물의 비유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내용을 담습니다. 건물은 스스로 자신의 모양을 약간 변형하고 희생하여 붙어 있으면 되지만, 몸의 비유는 그 이상을 주문합니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가진 능력과 소명을 감당함으로써 서로에게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붙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의 영양분을 주고받으면서 서로가 함께 커 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건물은 그저 그 모습을 유지하는 데 국한되지만, 몸은 성장하고, 발달하며, 건강해지고, 근육이 붙는 과정을 거칩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부분은 서로가 각자 자신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지체는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서로에게 봉사합니다. 심장은 심장의 역할을, 폐는 폐의 임무를, 다리는 다리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몸 전체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나의 건강한 역할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고, 상대방을 살립니다. 심장이 심장 자신을 살릴 뿐만 아니라 다리도 살리고, 폐도 살리고, 다른 모든 기관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법칙이 바로 부활의 공동체, 새로운 공동체의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살리는 생명의 구조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성경이 전하는 연결의 유비는 ‘가족’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가운데서 사람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그대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가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디모데전서 3:15 중, 새번역)
우리는 한 가족으로 연결된 공동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의 개념이 우리 교회와 공동체에 넘치면 좋겠습니다. 우리 소망교회에 넘치면 좋겠습니다.
가족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가족은 서로 ‘용납’합니다. 서로를 수용하고 받아들입니다. 가족은 내 아이가 무슨 일을 해도 받아들여 주는 공동체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물론 교육이나 가르침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족은 절대로 구성원을 버리지 않습니다.
언젠가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18살 난 유학생이 자기 아버지와 형을 살해해 달라고 살인 청부업자에게 300만 원의 선수금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인 청부업자가 사기 혐의로 잡히는 바람에 모든 범죄가 들통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유학생은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가족들이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이것이 가족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을 죽이려고 한 아이조차 받아들여 주는 것이 가족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 가지 유비를 통해 교우 간에 어떻게 지내야 하고,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우리는 서로 자신을 깎는 희생과 자신을 변형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자신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서로를 살려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교우들을 서로 용납하고, 서로 받아들이는 한 가족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예배당 문이 열려 성도님들이 들어올 때, 바로 이와 같은 각오로 들어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변화된 교회, 변화된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실 이 원리는 교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에도, 우리의 사업장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서로 한 가족으로서, 우리의 사업체가 한 가족원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서로를 살리는 기능을 감당하며 서로 연결되어 살아갈 때, 우리의 가정과 사업체도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예배당 문이 열리면, 바로 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가 예배당에 들어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부활 생명으로, 새로운 존재로 다시 이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Resurrection Faith, A New Being
Romans 12:4-8
This is the third Sunday since Easter. What a joy!Let’s say this to each other: “He has risen! He truly has!” Christ’s resurrection is the gospel, the wisdom, and an exclamation mark to us who believe in Him.
Two weeks ago, I started preaching on“resurrection faith.”Resurrection faith goes beyond having an eschatological belief that we will rise like Jesus on the last day. It is to crucify oneself on the cross and to be reborn as a new being with Christ in the very present, that is, in the reality that we are now living in. Therefore, participating in His resurrection means to transform one’s whole being and character so that they become tools for righteousness.
Furthermore, last week I stressed that this cannot be done by our own might, but by His alone. A good example was Peter who met Jesus after His resurrection. Jesus came to Peter after His resurrection when Peter wasdowncast and miserable because he had denied Christ three times. And Jesus asked him this same question three times: “Peter, do you love me?”Then Jesus forgave, received, and revived Peter, and gave him a new calling: “Feed my lamb.”
Likewise, Jesus comes to us when we are dispirited and crestfallen, and revives us with His love. He gives us a new calling. Even now, our resurrected Lordcomes to us and calls to us.Resurrection faith is to receive a new calling from God, obtain a new life by His might, and be reborn. This was a brief summary my message of the last two weeks.
Today, I want to talk about what we must look like after being transformed into a new being by His power.
After being raised, Jesus met Peter at the shore of Lake Tiberius, makingPeter a witness of His resurrection. But Peter wasn’t the only one He met.He met other disciples, too, on the road to Emmaus. He met Mary at the grave. They were all transformed into new beings. And those who did not meet the resurrected Jesus in person were transformed by the Holy Spirit.
Therefore, the climax of resurrection faith is Pentecost, that is,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Through Pentecost, countless people were changed and renewed. Accordingly,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is very closely linked to Jesus’ resurrection. The Spirit is the guarantee of Christ’s resurrection.
So, today I ask this question: After encounteringour risen Lord and being transformed into new beings through the Spirit, how should we live in relation to each other?
An important thing to note is that, as new beings, we do not exist “alone.” The above question actually spells this out.As Christians, we are linked to each other. After we are transformed by the Spirit, we live in relationships.So, today my message is on “Christians who live in connection to each other.”
The Bible tells us from the very beginning that man cannot live alone. God made Eve for Adam because He was not pleased with the man being alone: “The Lord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Genesis 2:18)Then in verse 24 God says, “That is why a man leaves his father and mother and is united to his wife, and they become one flesh.” (Genesis 2:24)
From the very beginning, man was created to live with another. He was made to live in connection to someone else. This was God’s principle in creation. This rule also applies to all those who become new beings in Christ.
First, our primary relationship is with our almighty God. We must have a good, healthy relationship, a connection, and a communication with God. Second, as new beings with a resurrection faith we must have family relationships. Mothers and fathers, husbands and wives, and sons and daughters must live in connection to each other and communicate with each other, as new beings in Christ.Third, we must be connected to other believers, that is congregants of the church. Another important task for us is to live together as witnesses of His resurrection.Finally, we must be connected to the world, the society that we live in. As newly transformed beings, we cannot live in isolation because the world that we live in is not only our everyday reality but also our mission field.
Since I can’t deal with all four connections today, I will focus on the relationship among believers. How should we, believers, be connected to one another? What kind of relationship must we build with one another?
Ichose this message because we will soon be gathering again. And I want us to be prepared when we do. I want us to returnwith a fresh mindset, with a renewed acknowledgement on what it means for believers to be connected with one other. I don’t want us to come back with the old paradigm of church relationships, but to start a new order of Godly relationships. Then what does the Bible say about relationshipsamong believers?
There are three major analogie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Christians in the Bible. Since each explains it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it’s useful to study the three analogies together.
First, Ephesians chapter 2 explains how Christians are connected to each other. And Pauldoes this by comparingthe congregants to a building:
“[You are] …built on the foundation of the apostles and prophets, with Christ Jesus himself as the chief cornerstone. In him the whole building is joined together and rises to become a holy temple in the Lord. And in him you too are being built together to become a dwelling in which God lives by his Spirit.” (Ephesians 2:20-22)
Paul says that a Christian community is like “a holy temple” with “Christ Jesus himself as the chief cornerstone.” This means that its members are linked together as one like a building in terms of their relationship.This analogy provides much food for thought. If you have everconstructed a building or have seen one being built, you will understand the depth of this analogy.
Building a building requires all kinds of parts and materials such as steel, cement, wood, bricks, doors, doorknobs, windows, wires, lights, carpets, and so on. Yet, most importantly, all these parts must come together. They must be fittedprecisely with nocracks or errors. Or else, the building will fall apart. It is the little parts and pieces that count.
Raw materials must be cut, shaped, and smoothed. Wood must be planed, stones chipped, and wires cut and twisted. So,this building analogy reveals a lot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Christians. We must be cut, shaped, and smoothed to be connected to each other. A building is strong and beautiful only when each piece fits perfectly.
So, to build a stronger and firmer church, we must cut, shape, and smooth each another. We must make sacrifices. We must be fitted. You can’t build a house without fitting the pieces together. You don’t get a building by just connecting all the pieces.
All sorts of parts and materials are needed, but excess is not desirable. Yes, you need doorknobs, but you don’t need more doorknobs than the number of doors. If you have an excess of doorknobs, some of them may have to spend quite a long time in the shed. Such sacrifices make a building beautiful and strong. This building analogy tells us what is required of Christiansto bejoined. Without being fitted and cut, without self-sacrifice and sharing, we cannot be linked beautifully.
The second analogy that the Bible uses for explaining the relationship of Christians is the body. This is introduced in today’s scripture: “For just as each of us has one body with many members, and these members do not all have the same function, so in Christ we, though many, form one body, and each member belongs to all the others.”So, the second analogy is the body. We, the witnesses of resurrection, are connected as one body. Each of us has a function in that body whose head is Christ.
This is a stronger, more proactive analogy than the building analogy. While building parts only have to be shaped and fitted, body parts must do much more. This means that church members, each with their ability and calling, not only impact one another, but also help each other sustain their lives. They are not just joined with each other, but they feed each other nutrients and grow together. Buildings only have to be built and maintained, but a human body must grow, develop, maintain its health, and gain muscle.
The important thing here is that each part hasa function. And all members serve each other by doing their part. For example, the heart makes the whole body healthy by doing its part. The lungs do this, too. Each organ affects and sustains the life of other organs. In this way, all parts live and grow. As a church community, this rule applies to us, too.
Third, the analogy of the family.First Timothy 3:15 says, “If I am delayed, you will know how people ought to conduct themselves in God’s household,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the pillar and foundation of the truth.”We are connected as God’s household. It means we are family.
What does it mean to be part of a family? It means to be accepted. We receiveand condone our children no matter what they do. We understand and receive them regardless of the circumstances. Of course, we teach and discipline them. But we never abandon them.
I once read an article about a teenager who tried to have his brother and dad killed. This 18-year-old gave 3 million won as an advance payment to a hitman. It turned out that the hitman was a fraud and the murder did not take place. Still, the boy was arrested for conspiracy to commit murder. His family, however, pled for a favorable handling of the case. This is what a family does. It accepts and condones even a child who tries to murder his family.
Let’ssum up these three analogies that teach u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Christians and how we should be connected to each other. First, we must strive to shape, transform, and sacrifice ourselves. Second, we must impact each other positively by performing our tasks and functions as best we can. Third, we must accept, condone, and love each other as a family.
If we do this, we willbuild a good, healthy Christian community, a Godly church. These principles should also be applied to our homes and workplacesfor them to become beautiful communities.
Dear Church, we will gather again soon. When we do, I hope that we will all be renewed so that we will build up a beautiful church, an amazing Christian community. I can’t wait to meet you in person. When I do, I pray that we will all be new beingsby the power and life of His resurrection.
로마서 12: 4 ~ 8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내주로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세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도 부활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옆에 있는 식구 혹은 친구에게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우리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주일부터 예배당 문이 열리는데, 물론 다 모이지는 못하겠지만 함께 모여 예배드릴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또 새벽기도회는 5월 1일부터 예배당에서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마음의 준비를 하시되, 건강도 잘 살피시면서 나오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주간 기쁨의 50일을 보내면서 우리도 부활하는 마음으로 예배당에서 만날 날을 기대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부활 소식을 찬양합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복음이자 지혜며, 환호이자 감탄입니다. 지난 부활절 아침에 ‘우리는 어떻게 부활에 참여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가 죽음 이후, 즉 마지막 날에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현장에서도 일어나는 일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부활 신앙이다.’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내 존재를 의의 도구로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라는 말씀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 ‘부활하신 주님, 살리시는 주님’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부활의 은총은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그 예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시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환호가 그저 이천 년 전 한 사건에 대한 정보 전달의 차원이 아니란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환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나주셨다는 선언이자 그 주님이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만나주신다는 환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 나아가 우리를 만나주신 첫 자리로 다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부활의 주님, 그리고 숯불을 피워 놓으시듯이 참으로 부끄러운 자리로, 정말 주님과 대면하고 싶지 않은 그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부활의 주님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용서하시고 새로운 소명을 허락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주까지 함께 살펴본 내용입니다.
<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존재는 ‘서로 연결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 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부활에 동참하게 되어 현재의 삶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만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만 만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도 만나셨습니다.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도 만나셨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도 만나셨습니다.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 도마도 만나셨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새로운 존재, 곧 부활체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아가 비록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에게도 성령을 통해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활절의 마지막 지점에 있는 성령 강림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성령 강림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변화를 얻고 새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령 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맞닿아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모든 제자를 다시 살리신 것처럼, 성령께서도 많은 사람을 다시 살리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증하시며 우리에게 부활의 능력을 부여해 주십니다.
이렇듯 부활하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성령님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우리는, 이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질문 안에는 이미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존재 곧 홀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 존재로 서로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즉 ‘관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우리가 육적인 생명을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육적인 생명을 얻고 이 땅에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관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후에도, 우리는 또 다른 관계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주제는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미 성경이 여러 번 증언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후, 그를 돕는 배필인 하와를 지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8)
그리고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24)
사람은 처음부터 누군가와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육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원리이기도 하고,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의 삶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새롭게 창조된 사람들 역시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하나님, 가정, 성도, 세상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빚어집니다. >
그렇다면, 그 관계란 어떤 관계들일까요? 첫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전에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후에는 또 다른 관계가 맺어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자녀 된 인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부활 생명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범주가 있는데, 바로 ‘가정’입니다. 물론 먼저 육적인 가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고, 이후 결혼을 통해 부부의 관계를 맺으며, 자녀를 낳아 가정을 형성합니다. 이것을 육적인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나 부활 생명을 경험하게 되면, 가정의 관계도 달라져야 합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관계로,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빚어져야 합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어 새 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새롭게 연결해야 할 또 다른 관계는 ‘성도’ 사이의 관계입니다. 부활의 증인 된 사람들이 함께 새로운 존재로 빚어져야 합니다. 하나로 연결된 성도로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그 관계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연결해야 할 또 다른 범주가 있다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입니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존재들이지만, 그렇다고 이 땅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결코 홀로 고립되어 살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이 민족과 함께, 이 나라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이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자, 우리가 소명을 받은 사역자인 까닭입니다.
오늘 설교로 이 네 범주를 다 정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성도 간의 연결에 관한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 새롭게 부활의 증인이 된 사람들, 바로 우리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대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 주제를 살펴보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 주일부터 예배당 문이 열릴 텐데, 우리가 돌아올 때 ‘그저 몸만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옛 모습 그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저 몸만 돌아오기보다는 ‘새로운 정신과 관계’로 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똑같은 태도와 관계의 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성도 간에 새로운 관계를 맺어 새로운 교제 속으로 들어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예배당 문이 열리고 모든 성도가 돌아올 때, 부활의 증인 된 우리 성도 모두가 서로 연결된 관계를 맺음으로써 보다 나은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건물로 지어져 갑니다. >
그렇다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관계와 연결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성경에는 성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세 가지 유비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며 설명하므로, 이 세 가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듯합니다.
첫 번째 유비는 에베소서 2장에 나타납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연결된 관계를 건물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에베소서 2장 20~22절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에베소서 2:20~22, 새번역)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예수를 모퉁잇돌로 하는 하나의 건물, 하나의 성전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즉 성도 간의 관계가 하나의 건물로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이 건물의 유비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여러분 중에 건물을 지어보셨거나 그 과정을 지켜보신 분들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는 여러 재료가 필요합니다. 철근도 필요하고, 시멘트도 필요하며, 나무와 벽돌도 필요합니다. 전등도, 스위치도 필요합니다. 전선도 필요하고, 문짝도 필요하며, 창문도 필요하고, 지붕재도 필요합니다. 문고리도 필요하고, 장판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 모든 재료가 서로 맞추어져야 합니다. 많은 조각이 서로 합해진 뒤에야 한 건물을 이룹니다. 그런데 그 조각들이 아무리 많아도 서로 맞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서로 정확하게 연결되어 틈 없이 맞추어져야 좋은 집을 만들 수 있습니다. 틈을 메우는 조그만 조각들도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건물에 쓰일 적절한 재료가 되기 위해 나무는 대패로 깎여야 합니다. 돌은 정으로 쪼개져야 합니다. 철사는 잘린 후 적절한 모습으로 변형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멋진 집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건물의 유비로써의 그리스도인의 관계는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서로 깎여야 합니다. 조각과 조각이 맞추어져서 틈 없이 연결될 때, 비로소 건물은 튼튼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든든한 교회, 흔들림 없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 성도들이 서로 깎이는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희생해야만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나는 깎이지 않겠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이들이 스스로를 깎아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나는 깎이지 않겠다.”라고 한다면, 그 건물은 제대로 지어질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깎여야 하고, 누군가는 양보해야 하며, 누군가는 희생해야만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사실 신앙적인 풍성함이 가득하며, 신령한 성령의 은사로 가득 찬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혼란스러웠고, 싸움이 그치지 않는 교회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를 서로 양보하지 않았고, 깎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은 한 가지 처방을 내립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타난 ‘사랑’입니다. 사랑과 희생과 양보야말로 교회를 아름답게 하는 미덕임을 사도 바울이 증언했습니다.
우리 각자는 이미 부활의 증인으로, 새로운 생명체로, 귀한 의의 도구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서로 깎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다. 나는 부활 생명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깎이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함께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재료들이 건물에 사용됩니다. 그러나 재료가 많다고 좋은 건 아닙니다. 문고리가 많으면 좋겠지만, 문의 숫자 이상으로 필요한 건 아닙니다. 그럴 때 남은 문고리는 창고에 보관용으로 쌓일 뿐입니다. 창고에서 오랜 기간을 기다린 후에야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 희생이 있어야만 아름다운 문이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문고리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건물의 비유는 우리가 서로 연결될 때, 그리고 그 연결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희생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나를 깎아내는 희생과 나눔, 비움이 없이는 결코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 수 없습니다. 부활 생명을 가진 우리가 희생과 나눔, 비움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성도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요, 가족입니다. >
두 번째로, 성경에 나타난 연결의 유비는 오늘 본문인 로마서 12장 4~5절의 내용입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로마서 12:4~5, 새번역)
두 번째 유비는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부활의 증인인 우리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우리가 각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 건물의 비유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내용을 담습니다. 건물은 스스로 자신의 모양을 약간 변형하고 희생하여 붙어 있으면 되지만, 몸의 비유는 그 이상을 주문합니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가진 능력과 소명을 감당함으로써 서로에게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붙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의 영양분을 주고받으면서 서로가 함께 커 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건물은 그저 그 모습을 유지하는 데 국한되지만, 몸은 성장하고, 발달하며, 건강해지고, 근육이 붙는 과정을 거칩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부분은 서로가 각자 자신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지체는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서로에게 봉사합니다. 심장은 심장의 역할을, 폐는 폐의 임무를, 다리는 다리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몸 전체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나의 건강한 역할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고, 상대방을 살립니다. 심장이 심장 자신을 살릴 뿐만 아니라 다리도 살리고, 폐도 살리고, 다른 모든 기관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법칙이 바로 부활의 공동체, 새로운 공동체의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살리는 생명의 구조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성경이 전하는 연결의 유비는 ‘가족’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가운데서 사람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그대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가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디모데전서 3:15 중, 새번역)
우리는 한 가족으로 연결된 공동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의 개념이 우리 교회와 공동체에 넘치면 좋겠습니다. 우리 소망교회에 넘치면 좋겠습니다.
가족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가족은 서로 ‘용납’합니다. 서로를 수용하고 받아들입니다. 가족은 내 아이가 무슨 일을 해도 받아들여 주는 공동체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물론 교육이나 가르침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족은 절대로 구성원을 버리지 않습니다.
언젠가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18살 난 유학생이 자기 아버지와 형을 살해해 달라고 살인 청부업자에게 300만 원의 선수금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인 청부업자가 사기 혐의로 잡히는 바람에 모든 범죄가 들통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유학생은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가족들이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이것이 가족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을 죽이려고 한 아이조차 받아들여 주는 것이 가족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 가지 유비를 통해 교우 간에 어떻게 지내야 하고,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우리는 서로 자신을 깎는 희생과 자신을 변형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자신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서로를 살려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교우들을 서로 용납하고, 서로 받아들이는 한 가족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예배당 문이 열려 성도님들이 들어올 때, 바로 이와 같은 각오로 들어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변화된 교회, 변화된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실 이 원리는 교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에도, 우리의 사업장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서로 한 가족으로서, 우리의 사업체가 한 가족원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서로를 살리는 기능을 감당하며 서로 연결되어 살아갈 때, 우리의 가정과 사업체도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예배당 문이 열리면, 바로 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가 예배당에 들어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부활 생명으로, 새로운 존재로 다시 이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2020년 4월 26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부활신앙, 새 사람” (롬 12:4-8)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95장, 436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롬 12:4-8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4월 2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우리는 지난 부활절 아침에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는가?”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부활신앙의 모습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일 말씀으로, 이러한 존재의 변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부활의 경험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새로운 존재가 된 우리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나요?
설교의 요약
우리는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서로 연결이 되어 살게 됩니다. 성경은 창 2:18과 2:24에서 사람은 처음부터 누군가와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크게 네 가지 범주의 관계가 있습니다. 첫째 범주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이고, 둘째 범주는 우리의 가정이고, 셋째 범주는 우리 믿는 성도들과의 연결이며, 넷째 범주는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사회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셋째 범주인) 성도들과 성도간의 연결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이제 우리는 곧 예배당으로 돌아오게 될 터인데, 우리가 돌아 올 때에는 그냥 몸만 돌아오기 보다는 새로운 정신과 태도와 마음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관계에 대하여 말하는 유비가 셋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건물의 유비’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엡 2:20-21, 새번역). 우리가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서로 깎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각과 조각이 맞추어 져서 틈이 없이 연결될 때에만 건물은 튼튼해지고 아름다워 지는 것입니다. 보다 튼튼한 교회, 흔들림이 없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희생해야 합니다.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 째는 ‘몸의 유비’입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롬 12:4-5, 새번역). 이 몸은 단순히 붙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의 영양분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함께 커간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건물은 그것을 유지하는 데 국한되지만, 몸은 성장하고, 발달하고 건강해 지고 근육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건강한 역할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상대방을 살리게 됩니다.
세 번 째는 ‘가족의 유비’입니다: “이 가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딤전 3:15, 새번역). 이 유비가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용납’입니다. 가족은 내 아이가 무슨 일을 하여도 받아 들여 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해하려고 합니다. 물론 교육이나 가르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족을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 곧, 예배당의 문이 열리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성도님들이 함께 모여 이 아름다운 성도의 공동체, 교회를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새로운 존재로 다시 이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날을 기다립니다.
나누기
1. 예배당에 와서 제일 먼저 기도하실 내용은 무엇입니까?
2. 오늘,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유비 중에 제일 와 닿는 유비는 무엇입니까? 그 비유가 어떤 의미에서 새롭게 다가오게 되었나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새롭게 교회를 이루어 갈지 생각합니다. 서로를 희생하며, 활력을 주며, 받아들이는 귀한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