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독 사용방법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예수님의 말씀 중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씀 중 하나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며 설교문의 첫 문장을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언뜻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본문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설교문을 다 작성하고서 두 번째 문장을 뒤늦게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열심히 자세히 읽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본문입니다.” 참 어려운 본문입니다.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오늘 이 시간 함께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섭니다.
개정개역성경은 오늘 본문에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새번역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라고 붙여 놓았습니다. 공동번역은 “약은 청지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최근 번역된 새한글성경은 좀 길게 “올바르지 않은 살림지기의 영리한 재물 관리 비유”라고 붙여 놓았습니다. 새한글성경이 조금 더 친절하고 자세한 제목을 붙여 놓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에게 청지기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청지기가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 책망하면서 이렇게 말하죠.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눅 16:2)
청지기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주인에게 장부를 넘겨주면 자기 자신은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듯합니다.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눅 16:3)
그리고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눅 16:4)
그리고는 이제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그들에게 묻습니다. “너는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느냐?” “기름 100말입니다.” “그러면 증서에 50으로 바꿔 써라.”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 묻습니다. “너는 얼마나 빚을 졌느냐?” “밀 100석입니다.” “그럼 증서에 80이라고 바꾸어 써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듯 청지기가 증서를 다시 쓰게 해서 문서를 위조하여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비유의 내용입니다. 만약 주인이 이것을 알게 되었다면 주인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요? 재산을 지금 낭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아마 크게 화를 내고 바로 그 청지기를 내쫓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조금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결말과 다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주인이 사실을 알고서도 이 청지기를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이해하기가 많이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주인이 청지기에게 ‘지혜롭게 행하였다, 슬기롭게 행하였다’라고 평가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분들이 이 이상한 전개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해 왔습니다. 정말 다양한 이론들이 나왔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고 싶은 많은 분이 나름의 이론들을 펼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모든 것을 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는 악한 행동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아들들의 반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말씀입니다.>
청지기가 처음에 빚 문서를 쓸 때, 자신이 받아야 할 몫까지 이자로 계산해서 증서를 쓰도록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이자를 자신이 받을 상황이 되지 않자, 자신이 받아야 할 몫을 제하여 줌으로써 빚진 사람들에게 환심을 샀다는 해석입니다. 또한 주인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주인에게는 그다지 큰 손해가 아니었기 때문에 청지기의 행동을 지혜롭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봅니다.
그럴듯한 해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떠한 단서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상일 뿐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며 청지기에게 주인이 감탄한 것을 강조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매우 영민하게 대처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닥칠 미래를 예견하고 그가 매우 영민하고도 교활하게 그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약삭빠른 영리함에 대한 칭찬입니다. 사실 이것은 주인의 재산을 더 낭비하게 되는 결론으로 치닫습니다. 나쁜 것이죠. 큰 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이야기를 예수님의 말씀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청지기의 행동을 칭찬하고 있는 주인을 보며, 우리도 이렇게 교활하게 살아도 된다는 말씀일까요? 이와 같은 행동을 격려하는 말씀일까요? 이 비유를 조금 더 분명하고 바르게 해석하려면, 이 비유에 관한 예수님의 다른 말씀을 해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눅 16:8b)
예수님은 이 세대의 아들들과 빛의 아들들을 비교하셨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이 세대를 향해 누가복음 9장에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눅 9:41)라고 말씀하셨고, 11장에서는 “악한 세대”(눅 11:29)라고 규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대의 아들들은 믿음이 없고 패악하고 악한 세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빛의 아들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 앞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제자들, 앞으로 주님을 따라갈 많은 사람들, 주님의 백성들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약삭빠른 청지기에 대한 비유는 불의한 청지기가 보여 준 지혜에 대한 칭찬이 아닙니다. 이 비유는 빛의 아들들을 향한 책망의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악한 행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약삭빠르게 행동하고 있는데, 빛의 아들들은 무엇을 하고 있냐는 주님의 책망의 말씀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지혜롭고 교활하게 자신의 재물과 권한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빛의 아들인 너희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재물과 권한을 도대체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이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눅 16:9)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잠시 다시 멈추어 서게 됩니다. 불의한 재물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앞에 나오는 이 세대의 아들들인 불의한 청지기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재물을 모아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일까요? 거짓말이나 사기 등 불의하게 얻은 재물도 괜찮으니 어떤 나쁜 짓을 해서라도 친구를 사귀고 사회 활동을 하라는 말씀일까요? 불의한 재물에 대해서 조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재물은 모두 이 땅에 속해 있는 불의한 재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의 속성을 불의한 것으로 정의하십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가진 모든 재물이 불의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언뜻 생각하면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의 속성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나는 절대로 불의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열심히 일하여 정당하게 벌고 저축했습니다. 내가 모은 재산은 불의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사업을 하는 동안에 정말 정의롭게 부를 축적하였다고 하더라도,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선조로부터 받아 누렸던 모든 것들이 과연 정의롭게 얻어진 것들이었을까요? 혹시나 그중에서 빼앗거나 부당하게 얻게 된 것은 없었을까요?
성경 속 아브라함의 부가 모두 정의로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야곱의 부, 이삭의 부는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이 부를 획득해 가는 과정에 애굽에서 사래를 자기의 아내라고 말하지 못하고 누이라고 속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래의 아름다움에 반한 바로가 그를 아내로 삼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많은 재물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죠. 바로는 깜짝 놀라 아브라함에게 왜 당신의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진노를 피하기 위해 사래를 돌려보내며 많은 재물을 줍니다. 과연 이 재물이 정당하게 얻은 재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봅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부와 재산은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된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 속 우리가 말하는 정당함이라는 가치 안에서 무엇인가를 받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정말 원초적, 본질적으로 정당한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커피 농장이나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불한 비용에 대한 논의가 많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과거에는 노예를 잡아다가 사람들을 부리면서 카카오나 커피를 생산했던 기록들이 있습니다. 노예들이 일정한 분량의 일을 하지 못하면 그들의 팔을 잘라 버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공정무역이라는 화두가 늘 대두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업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내가 싼값에 잘 계약을 맺고 그것을 정당하게 받았는데, 무엇이 잘못입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정말 그것이 본질적으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요즘 연예인들이 한 번 방송하면 회당 많은 개런티를 받는다고 합니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같은 연예인이 그만큼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무엇이 정의로운 가치일까요? 유명한 스포츠 선수가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다고 하죠. 그런데 함께 뛰는 선수들 중에는 똑같은 시간 함께 연습하고 운동장을 누비는데, 유명 선수 연봉의 100분의 1도 받지 못한다고도 합니다. 이것이 정의로운 가치체계라곤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받은 것, 내가 취한 모든 재물이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기업을 운영하다가 세무조사를 받게 된 어느 분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은 사실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합니다. 세무 관계에 있어서 조세를 회피하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탈세를 했다며 세무서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탈세 명목으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범법자로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건전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기업인으로 살아왔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이 그에게 너무나도 억울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사실 이런 분들을 여러 번 만나 보았습니다.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이 취득한 모든 재산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세무조사를 하는 공무원조차도 거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이 세상의 재물을 불의한 재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100% 정의롭지 못합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께서 재물을 불의하다고 정의하시는 데에 이유가 더 있습니다. 재물은 이 세상에서만 소통되는 물건입니다. 저 세상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성질의 것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만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두고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은 이 세상의 것입니다. 불의하고 불완전한 세상입니다. 허물과 모순이 많은 이 세상에서만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 이것은 불의의 재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불의한 재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십니다.>
불의한 재물의 의미를 정의했다면, 주님께서 그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물은 불의한 재물이지만, 은혜로 받은 재물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신 말씀은 일차적으로 이웃을 섬기고 자선을 베풀고 구제하여 그들을 친구로 삼으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비슷한 말씀들이 성경 여기저기에 나타나죠. 누가복음 12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3)
성경은 우리의 재물을 하늘에 옮겨 놓는 방법으로 구제와 자선을 말합니다.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죠. 구제와 자선을 베풀며 친구를 사귐으로써 하늘나라의 재산을 옮겨 놓으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 데에는 뒤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눅 16:9)
이 말씀에 ‘영주할 처소’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선과 구제로 친구를 사귀면 하늘나라의 영원한 나라의 영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가 재물을 잘 활용하여 친구를 사귀고 자선을 베풀면, 이 세상을 마감할 때 하늘나라에서 큰 상을 받을 것이라는 말로 해석되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라는 말씀은 일반적인 내용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재물을 잘 사용하여서 친구를 사귀면, 재물이 없어졌을 때 그 친구가 도와줄 것이라는 해석이 보다 더 적절합니다. 신학적으로도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이유는 우리의 구제나 자산이 결코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지, 우리가 행하는 구제와 자선 같은 선행으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이 말씀의 본뜻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열쇠가 되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 16:13b)
우리에게 주신 재물은 우리가 숭배하고 섬겨야 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도리어 불의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 도구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쫓겨날 위기에 처한 청지기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의 기회 속에서 빚을 탕감해 줌으로써 그들을 이웃과 친구로 만들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친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는 너희가 가지고 있는 재물과 권한을 가지고 어떻게 하고 싶으냐?”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닫힌 결론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무조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정답을 제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다면, 너희는 너희가 가지고 있는 재물로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주님의 열린 질문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기회의 한계 안에서 재물을 빛의 자녀답게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나옵니다. 12장에는 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소출을 풍성하게 거두자 홀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곡식이 많아졌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내가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 둬야겠다. 그리고 만족하며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
자기의 재산을 자신만을 위한 재물로 남겨 둔 사람의 끝이 어떻습니까? 세상을 떠날 뿐입니다. 자신의 재물을 신처럼 모셔두고 떠받들다가 적절하게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나 지금 곧 쫓겨날 위기에 있는 청지기나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재물은 시간적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단테 신곡 지옥편 17곡에는 고리대금업자들에 관한 내용이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불꽃이 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앉아 있는 곳은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로 가득했다.
그들은 뜨거운 모래 위서 펄쩍펄쩍 뛰면서
날아오는 불꽃을 쳐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통스러운 불꽃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 목에는
돈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특정한 색깔과 표시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들은 돈주머니를 흡족하게 여기는 듯했다.”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지옥편』 제17곡)
지옥에서는 모래가 너무 뜨거워서 팔짝팔짝 뛰어야만 합니다. 하늘에서는 불이 떨어져 내려옵니다. 불을 피하고, 막고, 다시 펄쩍펄쩍 뛸 수밖에 없는 지옥의 영원한 형벌 속에 고리대금업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영원한 형벌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돈주머니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청지기가 그렇게 하였다면, 너는 너의 재물로 어떻게 할 것이냐? 주어진 기회 안에서 너는 재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비단 재물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격 등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성도 여러분 중에서 아마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그것, 내가 가지고 있던 그 힘,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재물, 내가 가지고 있던 그 권력, 내가 그때 청지기답게 조금 더 지혜롭게 사용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후회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 내게 남겨진 것, 아직 내가 쓸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기회입니다.
주님께서 묻습니다. “청지기가 자신의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기회를 활용해 재물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재물,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Make Friends for Yourselves by Means of Unrighteous Wealth
Luke 16:1-9
Today’s Scripture is not easy to understand at first sight.
The title that the New Korean Revised Version gives the parable in today’s passage can be translated to English as “The Parable of the Unrighteous Manager.” The Revised New Korean Standard Version’s title in English would be something like “The Parable of the Unjust Manager.” The Common Translation Bible’s title in English would be “The Shrewd Manager.” Finally, the title given by the New Korean Translation (NKT), which was published recently, can be translated as “The Parable of the Unrighteous Manager who Cleverly Managed Wealth.” I think the NKT conveys the meaning of the parable clearly and kindly.
Then let’s look at the parable.
Once there was a rich man whose manager managed his wealth. But the rich man happened to hear some bad rumors about his manager. So he called him in and rebuked him:
“What is this that I hear about you? Turn in the account of your management, for you can no longer be manager.” (Luke 16:2 ESV)
The manager seems to have known what he was doing wrong. He understands that once he gives the books over to his master, he will no longer be able to work for him.
So the manager thinks to himself:
“What shall I do, since my master is taking the management away from me? I am not strong enough to dig, and I am ashamed to beg.” (Luke 16:3 ESV)
After much contemplation, he finds a way:
“I have decided what to do, so that when I am removed from management, people may receive me into their houses.” (Luke 16:4 ESV)
Then he starts calling in his master’s debtors.
He asks each one. “How much do you owe my master?” One debtor replies, “Nine hundred gallons of olive oil.” The manager says, “Take your bill, sit down quickly, and make it four hundred and fifty.” Then he asks another debtor, “And how much do you owe?” He replies, “A thousand bushels of wheat.” The manager says, “Take your bill and make it eight hundred.”
In such a manner, the manager reduces and erases the debts of his master’s debtors by rewriting their IOUs. Now if the master finds out about this, what would be his reaction? Of course, he’d be mad, wouldn’t he? Since his manager squandered his wealth, it would only be right to call him in and rebuke him. This was the ending expected by the parable’s audience.
However, the story takes a strange twist. After finding out about the manager’s actions, the master commends him instead! The master praises his wisdom.
Many biblical scholars have tried to explain this peculiar ending. Diverse theories have been put forth. One of them is the interpretation that, when the manager first wrote the loan agreements, he added his own share to the interest. Accordingly, when he was about to lose his job, he erased his share from the interest in order to curry favor with the debtors.
Although it sounds persuasive, the Bible doesn’t mention anything about this. All that the Bible tells us is that Jesus found the manager’s clever response stunning. Jesus praised his shrewdness and cunning, because he tried to win the hearts of the people by doing them a last favor, upon finding out he would no longer manage his master’s assets.
Yes, he did waste his master’s wealth. He did something very bad. What he did was a sin. But he did his very best to use his last opportunity to benefit himself. In short, he was extremely shrewd.
Then can the manager’s action be praised?
To understand this parable correctly, we need to consider Jesus’ words right after the parable and His interpretation:
“For the sons of this world are more shrewd in dealing with their own generation than the sons of light.” (Luke 16:8b ESV)
Jesus is contrasting the sons of this world with the sons of light.
Who are the sons of this world? Jesus calls them a “faithless and twisted generation.” (Luke 9:41 ESV) He also defines them as “a wicked generation.”
Then who are the sons of light? They will refer to the disciples and Jesus’ followers listening to His story.
Therefore, we must understand this parable of our Lord very carefully. Our Lord’s purpose in telling it is neither to commend the shrewdness of the unjust manager nor to teach His disciples and followers to emulate the manger; Jesus is actually rebuking the sons of light.
This, therefore, is Jesus’ rebuke to the people of the light: “Even the people of this world prepare for the future shrewdly. If this is so, how should you, the people of the light, live? Even the people of this world use their money in wise ways. Then how should you, children of the light, use your money?” This is Jesus’ rebuke.
Then how can His disciples use their money and wealth wisely? What must we do to use our money and wealth wisely?
This is what our Lord teaches us:
“And I tell you, make friends for yourselves by means of unrighteous wealth, so that when it fails they may receive you into the eternal dwellings.” (Luke 16:9 ESV)
Let’s pause for a moment here. What does Jesus mean by “make friends for yourselves by means of unrighteous wealth”? Does He mean that we must make money in any way we can and make friends with it, like the unjust manager who belongs to the sons of this world? Is He saying that we should use any means possible, including lies, crimes, and fraud, to accumulate assets and make friends with those since ill-gotten wealth is okay?
We must take a moment to consider the meaning of “unrighteous wealth.” In this part of the story, Jesus characterizes all our wealth as “unrighteous.” All wealth is unrighteous? This may be hard to understand. But, in fact, all wealth on earth is unrighteous.
You may protest, “I never did anything unrighteous; I earned all my money through just means and saved up. This is how I accumulated my wealth.” But we must think more deeply. Even if you used only righteous means to accumulate your wealth during the time you did business, what about the assets you have been enjoying from birth that had been given to you by your parents, grandparents, and ancestors before that? Were they all gained justly? Isn’t there a chance that some of them were unrighteously gained or ill-gotten?
Furthermore, you may say your possessions are legitimate, seen from the values of today. However, despite their legitimacy within the framework of today’s society, we still need to examine whether their exchange values are truly just.
Were the compensations given to laborers at coffee and cacao farms truly just? Such questions are why fair trade has become a topic of debate. These days Korean actors are known to receive staggering amounts of appearance fees per episode. But decades ago, celebrities did not receive that much guarantee. Then what is the just value? Star athletes also receive mind-blowing yearly salaries. But some of their colleagues on the same team who practice and run in games as much as they receive only a hundredth of that salary. Is this a just value system?
A business owner whom I know became subject to tax investigation. He said that the tax authorities imposed an enormous amount of tax on him, even though he had never violated the law or evaded taxes. More shocking and upsetting than the tax itself was the unfair assessment he had received, for he had prided himself on having lived a righteous and honest life. He was deeply frustrated and hurt. I see such things often.
There may be tax officials here, but when a tax investigation begins, the officials never just go away. They always find a problem. Who on earth will be able say that every penny earned was perfectly just and without stain? Not even the tax official himself will be able to say that.
That is why our Lord describes wealth as “unrighteous.” Our wealth is not 100% just. But there is another reason that Jesus defines all wealth unrighteous.
Wealth is valid only in this world. It cannot be taken to the other world. It has meaning only as long as we live. When we die, we have to leave it all behind on earth. Therefore, all the wealth we have is unrighteous. It belongs to this unjust world. Wealth cannot be taken to the Kingdom of God. This is why it is unrighteous.
Now, if we have clarified “unrighteous wealth,” what does Jesus mean by “make friends for yourselves by means of unrighteous wealth”?
Let’s go back to the Parable of the Shrewd Manager. The manager knows that his access to his master’s assets will soon cease. So during that time remaining, he uses his master’s wealth to prepare for his own future.
How must we Christians interpret the fact that this action was commended as shrewd and wise? We may think, ‘We must prepare for the future with our wealth. To do this, we must store our treasure in heaven. Then how can I store assets in heaven? I will have to help and perform charity to those in need in this world.’ Such may be our interpretation.
This interpretation is, of course, not without grounds in the Bible:
“Sell your possessions, and give to the needy. Provide yourselves with moneybags that do not grow old, with a treasure in the heavens that does not fail, where no thief approaches and no moth destroys.” (Luke 12:33 ESV)
The Bible talks about charity and helping the poor as ways to store our treasure in heaven. Therefore, the above interpretation is not wrong, but today’s passage provides another perspective.
As our Lord speaks the Parable of the Shrewd Manager to His disciples, He adds:
“And I tell you, make friends for yourselves by means of unrighteous wealth, so that when it fails they may receive you into the eternal dwellings.” (Luke 16:9 ESV)
The expression “eternal dwellings” gives us the wrong impression that by making friends we will be welcomed into heaven. The appropriate interpretation would be that if we use our wealth well and make friends with it, those friends will help us when our wealth is gone.
This interpretation is also theologically valid because charity or helping the poor cannot serve as a basis for entering heaven. We are saved and admitted to heaven only by the grace of our Lord, not by our good works or charity.
Then what does our Lord mean by telling us to use our unrighteous wealth to gain friends?
The key to the correct understanding of these words lies in verse 13:
“You cannot serve God and money.” (Luke 16:13b ESV)
The wealth God gave us must not become a god to us or an object of worship. Our wealth is only a tool to be used in this unrighteous world.
Then what must we do with that tool? We must make friends. We must give to and share with others in our life’s journey. Of course, this includes charity and helping the poor. Jesus is saying that this is how wealth must be used. However, we are allowed to use our wealth only in this world. Our authority over it will one day cease. Until then, how must we use our wealth?
You may ask, “Do you know how hard I worked for my wealth?” But the fact is, it has been gained by grace; your wealth is just something you possess temporarily during your life in this unrighteous world.
In Luke we see many stories about the rich. Chapter 12 introduces a story about a foolish rich man. After gaining an abundant harvest, he thinks, “What will I do since I don’t have enough room to store all my grain? Now this is what I will do. I will tear down my old barn and build a bigger one and store all my grains and possessions there.” Satisfied after doing all this, the foolish rich man says to himself, “I have stored up plenty for many years to come. So why don’t I just relax, eat, and drink in peace?”
This rich man stored his treasure only for himself. He did not make friends with it. He set it aside as his own wealth, only to leave it all behind upon his death. All he did was worship his wealth like a god; he didn’t even have a chance to use it properly during his lifetime.
But our Lord says: “Fool! This night your soul is required of you, and the things you have prepared, whose will they be?” (Luke 12:20 ESV)
Luke 16, from which today’s passage is taken, records another story about a rich man.
“There was a rich man who was clothed in purple and fine linen and who feasted sumptuously every day.” (Luke 16:19 ESV)
One day, at this rich man’s gate, a beggar called Lazarus dies. But the Bible mentions only the beggar’s name, Lazarus, making no mention of the rich man’s name at all.
In the story, the rich man goes to hell and Lazarus to heaven.
Although the two had lived next to each other, with only a gate between them, there was no friendship or sharing between them.
In Canto 17 of Inferno, the first part of The Divine Comedy, Dante vividly describes the usurers in hell:
Noting the visages of some, who lay
Beneath the pelting of that dolorous fire,
One of them all I knew not; but perceiv’d,
That pendent from his neck each bore a pouch
With colours and with emblems various mark’d,
On which it seem’d as if their eye did feed.
(Dante Alighieri, Canto 17, The Divine Comedy: Inferno)
Dante’s description of moneylenders whose eyes feed on pouches of money even in hell is striking.
This is a depiction of our lives too. There are those who increase their wealth by lying, cheating, scheming, and stealing. On their necks there is always a pouch of money hanging. And their eyes feed on their pouches. Those pouches may be their god. But aren’t we, perhaps, like these usurers, who crave money even if it leads them to hell and continue to hold on to their money pouches even in hell, expecting them to hold power?
Today, our Lord says to His disciples: “make friends for yourselves by means of unrighteous wealth.”
The time given to us is not very long. Just as the manager in today’s parable did not have much time. But, like this shrewd manager who used his assets as a tool to prepare for his future and to make friends who would help him, can’t we too use our unrighteous wealth well?
This applies not just to our wealth. It applies to everything we have—power, authority, position, and qualifications.
We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But how wonderful it would be if we could build beautiful relationships in this world by using our wealth well! May we make this world beautiful by using our wealth wisely in the short time and small opportunities given to us.
How unfortunate would it be if brothers and sisters and family members fought over money? How unfortunate would it be if all our wealth went into someone else’s hands because we just clung to it and never used it properly? How regrettable! This goes for our businesses too. Profit and performance are important, but if we can share the company’s wealth with the employees and members, wouldn’t that be fulfilling the company’s true values?
Our Lord tells us to make friends with our wealth and possessions. If we use what we have to build beautiful relationships and make the world more beautiful, our wealth will become a truly blessed tool in this world. When we do this, we will not be slaves to wealth but will rule it well.
When we see anyone in need, let’s help them. Let’s also care for our brothers and sisters with a willing heart. We will become happy. Let’s not cling to what we have but share it. We will have abundant joy. When we do so, our purses in the Kingdom of Heaven will gradually be filled with treasure.
누가복음 16:1~9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예수님의 말씀 중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씀 중 하나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며 설교문의 첫 문장을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언뜻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본문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설교문을 다 작성하고서 두 번째 문장을 뒤늦게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열심히 자세히 읽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본문입니다.” 참 어려운 본문입니다.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오늘 이 시간 함께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섭니다.
개정개역성경은 오늘 본문에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새번역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라고 붙여 놓았습니다. 공동번역은 “약은 청지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최근 번역된 새한글성경은 좀 길게 “올바르지 않은 살림지기의 영리한 재물 관리 비유”라고 붙여 놓았습니다. 새한글성경이 조금 더 친절하고 자세한 제목을 붙여 놓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에게 청지기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청지기가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 책망하면서 이렇게 말하죠.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눅 16:2)
청지기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주인에게 장부를 넘겨주면 자기 자신은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듯합니다.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눅 16:3)
그리고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눅 16:4)
그리고는 이제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그들에게 묻습니다. “너는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느냐?” “기름 100말입니다.” “그러면 증서에 50으로 바꿔 써라.”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 묻습니다. “너는 얼마나 빚을 졌느냐?” “밀 100석입니다.” “그럼 증서에 80이라고 바꾸어 써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듯 청지기가 증서를 다시 쓰게 해서 문서를 위조하여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비유의 내용입니다. 만약 주인이 이것을 알게 되었다면 주인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요? 재산을 지금 낭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아마 크게 화를 내고 바로 그 청지기를 내쫓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조금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결말과 다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주인이 사실을 알고서도 이 청지기를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이해하기가 많이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주인이 청지기에게 ‘지혜롭게 행하였다, 슬기롭게 행하였다’라고 평가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분들이 이 이상한 전개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해 왔습니다. 정말 다양한 이론들이 나왔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고 싶은 많은 분이 나름의 이론들을 펼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모든 것을 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는 악한 행동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아들들의 반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말씀입니다.>
청지기가 처음에 빚 문서를 쓸 때, 자신이 받아야 할 몫까지 이자로 계산해서 증서를 쓰도록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이자를 자신이 받을 상황이 되지 않자, 자신이 받아야 할 몫을 제하여 줌으로써 빚진 사람들에게 환심을 샀다는 해석입니다. 또한 주인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주인에게는 그다지 큰 손해가 아니었기 때문에 청지기의 행동을 지혜롭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봅니다.
그럴듯한 해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떠한 단서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상일 뿐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며 청지기에게 주인이 감탄한 것을 강조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매우 영민하게 대처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닥칠 미래를 예견하고 그가 매우 영민하고도 교활하게 그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약삭빠른 영리함에 대한 칭찬입니다. 사실 이것은 주인의 재산을 더 낭비하게 되는 결론으로 치닫습니다. 나쁜 것이죠. 큰 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이야기를 예수님의 말씀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청지기의 행동을 칭찬하고 있는 주인을 보며, 우리도 이렇게 교활하게 살아도 된다는 말씀일까요? 이와 같은 행동을 격려하는 말씀일까요? 이 비유를 조금 더 분명하고 바르게 해석하려면, 이 비유에 관한 예수님의 다른 말씀을 해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눅 16:8b)
예수님은 이 세대의 아들들과 빛의 아들들을 비교하셨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이 세대를 향해 누가복음 9장에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눅 9:41)라고 말씀하셨고, 11장에서는 “악한 세대”(눅 11:29)라고 규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대의 아들들은 믿음이 없고 패악하고 악한 세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빛의 아들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 앞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제자들, 앞으로 주님을 따라갈 많은 사람들, 주님의 백성들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약삭빠른 청지기에 대한 비유는 불의한 청지기가 보여 준 지혜에 대한 칭찬이 아닙니다. 이 비유는 빛의 아들들을 향한 책망의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악한 행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약삭빠르게 행동하고 있는데, 빛의 아들들은 무엇을 하고 있냐는 주님의 책망의 말씀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지혜롭고 교활하게 자신의 재물과 권한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빛의 아들인 너희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재물과 권한을 도대체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이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눅 16:9)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잠시 다시 멈추어 서게 됩니다. 불의한 재물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앞에 나오는 이 세대의 아들들인 불의한 청지기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재물을 모아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일까요? 거짓말이나 사기 등 불의하게 얻은 재물도 괜찮으니 어떤 나쁜 짓을 해서라도 친구를 사귀고 사회 활동을 하라는 말씀일까요? 불의한 재물에 대해서 조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재물은 모두 이 땅에 속해 있는 불의한 재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의 속성을 불의한 것으로 정의하십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가진 모든 재물이 불의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언뜻 생각하면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의 속성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나는 절대로 불의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열심히 일하여 정당하게 벌고 저축했습니다. 내가 모은 재산은 불의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사업을 하는 동안에 정말 정의롭게 부를 축적하였다고 하더라도,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선조로부터 받아 누렸던 모든 것들이 과연 정의롭게 얻어진 것들이었을까요? 혹시나 그중에서 빼앗거나 부당하게 얻게 된 것은 없었을까요?
성경 속 아브라함의 부가 모두 정의로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야곱의 부, 이삭의 부는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이 부를 획득해 가는 과정에 애굽에서 사래를 자기의 아내라고 말하지 못하고 누이라고 속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래의 아름다움에 반한 바로가 그를 아내로 삼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많은 재물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죠. 바로는 깜짝 놀라 아브라함에게 왜 당신의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진노를 피하기 위해 사래를 돌려보내며 많은 재물을 줍니다. 과연 이 재물이 정당하게 얻은 재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봅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부와 재산은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된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 속 우리가 말하는 정당함이라는 가치 안에서 무엇인가를 받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정말 원초적, 본질적으로 정당한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커피 농장이나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불한 비용에 대한 논의가 많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과거에는 노예를 잡아다가 사람들을 부리면서 카카오나 커피를 생산했던 기록들이 있습니다. 노예들이 일정한 분량의 일을 하지 못하면 그들의 팔을 잘라 버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공정무역이라는 화두가 늘 대두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업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내가 싼값에 잘 계약을 맺고 그것을 정당하게 받았는데, 무엇이 잘못입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정말 그것이 본질적으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요즘 연예인들이 한 번 방송하면 회당 많은 개런티를 받는다고 합니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같은 연예인이 그만큼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무엇이 정의로운 가치일까요? 유명한 스포츠 선수가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다고 하죠. 그런데 함께 뛰는 선수들 중에는 똑같은 시간 함께 연습하고 운동장을 누비는데, 유명 선수 연봉의 100분의 1도 받지 못한다고도 합니다. 이것이 정의로운 가치체계라곤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받은 것, 내가 취한 모든 재물이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기업을 운영하다가 세무조사를 받게 된 어느 분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은 사실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합니다. 세무 관계에 있어서 조세를 회피하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탈세를 했다며 세무서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탈세 명목으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범법자로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건전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기업인으로 살아왔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이 그에게 너무나도 억울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사실 이런 분들을 여러 번 만나 보았습니다.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이 취득한 모든 재산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세무조사를 하는 공무원조차도 거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이 세상의 재물을 불의한 재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100% 정의롭지 못합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께서 재물을 불의하다고 정의하시는 데에 이유가 더 있습니다. 재물은 이 세상에서만 소통되는 물건입니다. 저 세상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성질의 것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만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두고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은 이 세상의 것입니다. 불의하고 불완전한 세상입니다. 허물과 모순이 많은 이 세상에서만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 이것은 불의의 재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불의한 재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십니다.>
불의한 재물의 의미를 정의했다면, 주님께서 그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물은 불의한 재물이지만, 은혜로 받은 재물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신 말씀은 일차적으로 이웃을 섬기고 자선을 베풀고 구제하여 그들을 친구로 삼으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비슷한 말씀들이 성경 여기저기에 나타나죠. 누가복음 12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3)
성경은 우리의 재물을 하늘에 옮겨 놓는 방법으로 구제와 자선을 말합니다.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죠. 구제와 자선을 베풀며 친구를 사귐으로써 하늘나라의 재산을 옮겨 놓으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 데에는 뒤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눅 16:9)
이 말씀에 ‘영주할 처소’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선과 구제로 친구를 사귀면 하늘나라의 영원한 나라의 영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가 재물을 잘 활용하여 친구를 사귀고 자선을 베풀면, 이 세상을 마감할 때 하늘나라에서 큰 상을 받을 것이라는 말로 해석되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라는 말씀은 일반적인 내용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재물을 잘 사용하여서 친구를 사귀면, 재물이 없어졌을 때 그 친구가 도와줄 것이라는 해석이 보다 더 적절합니다. 신학적으로도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이유는 우리의 구제나 자산이 결코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지, 우리가 행하는 구제와 자선 같은 선행으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이 말씀의 본뜻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열쇠가 되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 16:13b)
우리에게 주신 재물은 우리가 숭배하고 섬겨야 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도리어 불의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 도구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쫓겨날 위기에 처한 청지기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의 기회 속에서 빚을 탕감해 줌으로써 그들을 이웃과 친구로 만들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친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는 너희가 가지고 있는 재물과 권한을 가지고 어떻게 하고 싶으냐?”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닫힌 결론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무조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정답을 제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다면, 너희는 너희가 가지고 있는 재물로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주님의 열린 질문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기회의 한계 안에서 재물을 빛의 자녀답게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나옵니다. 12장에는 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소출을 풍성하게 거두자 홀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곡식이 많아졌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내가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 둬야겠다. 그리고 만족하며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
자기의 재산을 자신만을 위한 재물로 남겨 둔 사람의 끝이 어떻습니까? 세상을 떠날 뿐입니다. 자신의 재물을 신처럼 모셔두고 떠받들다가 적절하게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나 지금 곧 쫓겨날 위기에 있는 청지기나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재물은 시간적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단테 신곡 지옥편 17곡에는 고리대금업자들에 관한 내용이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불꽃이 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앉아 있는 곳은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로 가득했다.
그들은 뜨거운 모래 위서 펄쩍펄쩍 뛰면서
날아오는 불꽃을 쳐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통스러운 불꽃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 목에는
돈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특정한 색깔과 표시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들은 돈주머니를 흡족하게 여기는 듯했다.”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지옥편』 제17곡)
지옥에서는 모래가 너무 뜨거워서 팔짝팔짝 뛰어야만 합니다. 하늘에서는 불이 떨어져 내려옵니다. 불을 피하고, 막고, 다시 펄쩍펄쩍 뛸 수밖에 없는 지옥의 영원한 형벌 속에 고리대금업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영원한 형벌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돈주머니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청지기가 그렇게 하였다면, 너는 너의 재물로 어떻게 할 것이냐? 주어진 기회 안에서 너는 재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비단 재물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격 등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성도 여러분 중에서 아마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그것, 내가 가지고 있던 그 힘,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재물, 내가 가지고 있던 그 권력, 내가 그때 청지기답게 조금 더 지혜롭게 사용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후회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 내게 남겨진 것, 아직 내가 쓸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기회입니다.
주님께서 묻습니다. “청지기가 자신의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기회를 활용해 재물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재물,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