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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라는 이름의 악령

사무엘상 18: 6 ~ 9

김경진 목사

2022.01.30

<현대 시대에 비교 의식은 인간을 유혹하는 강한 힘입니다.>

언젠가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모두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분들이었는데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려운 과정을 거쳐 가는 듯 보였습니다. 서울에서 목회하는 이도 있었고, 지방에서 목회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조금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이, 또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제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회 참 어렵지요? 무엇이 가장 어렵던가요?” 새벽기도? 생활고의 문제? 혹은 설교 준비나 외로움? 아마도 이런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질문을 던졌는데 뜻밖에도 첫 번째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목회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다른 목회자와 저를 비교할 때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잘 하는 것 같은데 제 자신만 뒤처지는 기분이 들 때 이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런 마음이 어찌 목회자들의 마음뿐이겠습니까? 비교 의식은 사실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하고 마음을 때로 힘들게 만듭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잘난 것 하나 없어 보이는데 왜 저렇게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가?’ ‘저 사람은 나보다 훨씬 못생겼는데 어떻게 저런 좋은 남편을 만나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을까?’ ‘저 집 아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훌륭하게 자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남이 가진 게 더 커 보일 때 의기소침해지고, 부러워하고, 시기하며 불행함을 느끼는 게 인간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하죠. “현대의 마귀는 비교 의식을 가지고 인간을 유혹한다. 이 비교 의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기도 하며 절망에 빠트리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 ‘비교’라는 것은 매우 가치중립적인 방법론입니다. 우리는 비교를 통해서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며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교를 창조적으로 사용하면 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교는 소비자의 권력이자 덕목입니다. 가격을 낱낱이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가장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소비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비교가 사람을 향할 때입니다. 비교의 대상이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경우입니다. 비교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절망에 빠지거나 때로는 교만에 빠집니다. 비교 의식은 그 자체로서 우리 마음이 시기와 질투, 교만과 욕망의 노예가 되도록 이끕니다.
어느 도시에 장사꾼 두 사람이 경쟁하는 관계에 있었다고 합니다. W. R. 화이트가 쓴 『진짜 이야기를 찾아서』(서울: 성바오로출판사, 1993)에 나오는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두 사람의 가게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기까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망하게 할까 고민하는 데 마음을 쓰며 가게를 운영했다죠. 결국 보다 못하신 하나님께서 두 사람에게 교훈을 주시고 화해시키시고자 한쪽 상인에게 천사를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큰 선물을 내리실 것이요. 그대가 재물을 원하면 재물을, 장수를 원하면 장수를, 자녀를 원하면 자녀를 주실 것이오. 단 조건 하나가 있소.” 하더니 천사가 이어서 말했답니다. “그대가 무엇을 요구하든지 당신의 경쟁자는 두 배를 얻게 될 것이오. 그대가 금화 10개를 원하면 경쟁자는 금화 20개를 가지게 된다오.” 그러자 상점의 주인이 한참 고민하더니 다시 묻더랍니다. “제가 구하는 모든 것을 정말 그대로 주십니까? 상대방은 두 배로 갖고요?” “그렇습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상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고 합니다. “그럼 제 한쪽 눈을 멀게 해 주십시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이 잘 안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 얼마든지 좋은 것을 구할 수도 있었는데 남이 안되는 방법만을 찾은 상점 주인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 안에 숨겨진 내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 뱀이 나타나죠. 뱀이 하와를 속이며 유혹합니다. “네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사탄의 첫 번째 유혹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통하여 만물을 다스리며 살도록 배려해 주셨죠. 그런데 사탄이 뱀을 통해 유혹합니다. “너 하나님과 경쟁해 보지 않을래? 하나님과 비교해 보지 않을래?” 하나님과 경쟁하는 마음을 불어넣으면서 인간이 죄의 길로 들어서도록 만들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지만 가인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는 걸 보고 분개합니다. 아우 아벨과 스스로를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결국 가인의 마음에 분노와 시기가 일어나고 맙니다. 이 일로 아벨을 죽이죠. 비교를 통한 시기와 경쟁심으로부터 인류 역사 가운데 최초의 살인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 속 사울 역시 끊임없는 비교 의식을 통해 실패하고 만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 준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울입니다. 성경은 그의 용모가 출중하였다고 말합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삼상 9:2)

사울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큰 키에 용모가 출중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이스라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서 권력을 가지며 백성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러워할 사람은 당연 사울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본문에 따르면 다윗을 향하여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의 마음에 경쟁심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다윗을 향한 백성들의 찬가에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배경은 이렇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이 40여 일이나 이스라엘 군사들을 앞에 두고 매일 같이 위협하고 기를 죽이던 때에 다윗이 자원하여 싸우면서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자 골리앗을 무찌르고 성읍으로 당당하게 들어오는 이스라엘 군사를 환영하며 여인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삼상 18:6~7)

여인들의 노래가 들리던 바로 그때 사울이 말합니다.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삼상 18:8~9)

그날 이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다는 표현이 참 흥미롭습니다. 한마디로 다윗이 사울의 비교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를 경쟁자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는 말이고, 그를 시기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사건이 앞의 사건과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 역시 흥미롭습니다.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삼상 18:10 중)

비교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사울에게 들어오자,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악령을 내리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그는 정신없이 떠들며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다윗을 향하여 던집니다. 사무엘상 18장 10~11절 말씀입니다.

…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삼상 18:10~11)

물론 앞선 16장부터 사울은 이미 악령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8장에서 다윗과 비교하며 시기하는 사울과 악령이 임재한 사건이 서로 연결되는 것 또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날 이후로 사울은 본격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19장에서는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죠. 그때 요나단과 미갈이 다윗을 도와 도망치도록 합니다. 21장에서는 도망치던 다윗이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식량을 얻고 골리앗의 칼을 받아 도망의 길로 나서는 모습이 나옵니다. 22장에서는 이 이야기를 들은 사울이 아히멜렉과 그의 온 집안을 몰살시키는 장면이 이어지죠.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 가문을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24장에서는 엔게디에 머무는 다윗을 잡으러 달려가고, 26장에서는 십 광야에 숨은 다윗을 잡으러 또다시 나아가는 사울이 나타납니다. 이렇듯 사울이 다윗을 죽이는 일에 몰두하는 동안 정작 왕의 역할은 충실하게 감당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운 이유로 백성을 죽이는 악한 왕이 됩니다. 비교의 악령, 시기심의 악령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이 되어 죽고 만 것입니다. 비교의 마음, 시기와 경쟁의 마음이 그를 실패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비교의 악령에 시달리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린 형제가 있습니다. 형과 동생이 함께 앉아서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그러다 형이 동생의 장난감을 빼앗으려고 달려듭니다. 빼앗기지 않으려는 동생과 한참 싸우다가 결국 힘으로 동생의 장난감을 빼앗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다른 편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놀이를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형은 동생이 가진 장난감을 탐내며 빼앗기 시작합니다. 형은 왜 이렇게 동생이 가진 장난감을 뺏고 싶었을까요? 동생과 함께 놀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동생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저 장난감을 빼앗으면 나도 재미있게 놀 수 있겠다.’ 생각하며 장난감을 뺏고 또 빼앗은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만큼 재미있지 않은 게 문제였죠. 왜 그렇습니까? 형은 노는 법을 몰랐던 아이였습니다. 홀로 재미있게 노는 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동생의 장난감을 계속 빼앗기는 하지만 흥미를 금세 잃고 맙니다. 한마디로 형은 충일한 삶을 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비교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것을 시기하게 된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가인과 아벨의 사건도 그렇습니다. 가인이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게 아닙니다. 다만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정성스런 제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충일한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제사가 아니었던 것이죠.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인은 자신에게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신 하나님을 보면서 분노하고 또 분노하다가 동생에게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처럼 비교 의식, 시기, 경쟁심은 자신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을 때, 충분히 살아 있지 않을 때 나타납니다.
사울도 동일합니다. 골리앗이 블레셋 군대를 이끌고 왔을 때 나가서 싸웠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골리앗의 도전에 꼼짝하지 못하고 도리어 이스라엘 군과 함께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왕 답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사실 왕이라면 지도자답게 나가서 싸워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왕의 직무에 충실하지 못했던 사울이었기에 다윗의 등장은 그만큼 두려웠고, 비교와 경쟁심은 급속도로 번져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충일하게 살아가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드리네요. 어느 전래 동화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름날 석수장이가 돌을 열심히 깎다가 한 귀족이 행차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는 ‘아, 나도 귀족으로 태어났다면 이렇게 힘든 일 안 하고 평생 놀고먹을 수 있었을 텐데…’ 생각했답니다. 바로 그 순간 석수장이가 귀족이 되었다죠. 귀족이 되자 기뻐서 행차를 하던 중에 그날따라 태양이 너무 강렬하게 내리쬐다 보니 꼼짝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태양이 되면 좋겠구나. 나보다 힘이 세구나.” 하고 불평하자 순식간에 태양이 되었답니다. 태양이 되고 나니 모든 것을 다 힘세게 물리칠 줄 알았는데 구름에 그만 가려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름이 더 힘세구나’ 생각하는 순간에 구름으로 변하여 힘을 자랑하려고 했는데, 바람이 불어서 구름을 저 멀리 밀어 버렸다는 것이죠. “이야 바람이 더 세구나.” 말하는 순간에 바람이 되어서 이곳저곳을 다 불어 댔는데 아니, 산 위에 바위는 도저히 꿈쩍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야, 바위가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존재구나.’ 생각하자 바위가 되었는데 어느새 석수장이가 와서 그 바위를 하나씩 하나씩 깎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나 보니 석수장이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는 동화입니다.
이 이야기가 전해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바람도, 태양도, 구름도, 어떤 면에서는 부러워할 만한 점이 있지만 약하고 부족한 면도 있다는 교훈이죠. 이것이 우리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바라보면서 비교하고 시기하고 스스로 주눅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어느 한 면만을 보면서 부러워하기 마련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부럽지만 그 아이의 괴팍한 성격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겁니다. 아름답고 멋진 사람을 보면서 감탄하지만 매일 같이 위장염으로 고생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멋진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나온 부잣집 사모님 같은 분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비교하지만 그분이 가정 안에서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과거에 누린 인기, 젊음, 활력을 돌아보면서 지금의 초라한 모습에 절망하고 슬퍼하기도 합니다. 결국 오늘을 충일하게 살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비교라는 이름의 악령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일부터 설 명절이 시작됩니다. 가족이 모이면 때로는 비교하는 일이 생겨납니다. 비교라는 이름의 악령에 사로잡히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한 부분만을 보고서 자신을 비교하는 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시기하고 미워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일은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셈이죠. 인간에 대한 질투는 결국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하여 반항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이 뜻을 가지고 만드신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강점도 있지만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세상을 살아갈 뿐입니다.
참으로 사람들에게 비교당하고 비난받았던 사람 중에 특별히 고린도 교회로부터 비난받은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도들과 비교당하며 거짓 사도들과도 비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말이 어눌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고, 외모가 초라하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그러한 평가를 받으면서까지 목회와 사역을 감당했던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향해 비교 의식을 가지거나, 약한 부분을 스스로 비하하면서 절망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그가 자신이 가진 비밀 곧 육체의 가시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고 약하게 보는 모습에 더해서 자신 안에 숨은 또 다른 가시를 고백한 셈입니다. 육체의 가시를 두고 세 번이나 하나님께 없애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9~10)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의 약함을 나는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불평하고 시기하기보다, 부족한 것 많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능력이 되신다면 그것보다 큰 기쁨과 행복이 있겠습니까? 로마서 8장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사도 바울은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래를 향합니다. 비록 부족한 점이 있고 약한 점 또한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모습은 장차 나타날 주님의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며 미래를 향하여 시선을 열어 둡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부족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심입니다. 우리가 힘들지만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이유 역시 장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영광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교하지 마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감사함으로, 기뻐함으로, 찬양함으로 주님께로 나아가십니다. 우리 주님은 기쁨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이들을 기뻐하십니다.

The Evil Spirit of Comparison

1 Samuel 18:6-9

I once had a talk with a group of young pastors. They were all senior pastors of their church—some ministering in Seoul, some in other provinces, some in big churches, and some in small churches. As our conversation touched upon diverse subjects related to ministry, I asked, “Ministry is hard, isn’t it? What is the most difficult for you? Early morning prayer? Economic hardship? Writing sermons? Loneliness? What?”

I was met with an unexpected answer: “Pastor, the hardest thing is comparing myself to other pastors. I feel I’m doing poorly, while other pastors are doing a great job. ‘How can that pastor, whose grades in seminary were way lower than mine, do so well in such a big church?’ ‘Why are people crazy about that pastor when I speak better than him?’ Such thoughts of envy and comparison are what torment me most. It’s so hard to control these surging feelings.”

Brothers and sisters, are these feelings confined to this young pastor? Don’t they silently enter and exit our hearts, too, tormenting us? Although comparison may appear “secular,” even pastors are affected by it. It makes us endlessly unhappy and miserable.

‘How can that person who is not special at all live in such grand house?’ ‘How can such an ugly woman receive so much love from her husband?’ ‘How can those kids do so well in school?’ Regardless of how much we have, we become depressed, envious, jealous, and desperately unhappy when we believe others have it better.

Christian dialectician C.S. Lewis said that the devil in modern times uses comparison to tempt man. He said, “It is the comparison that makes you proud.” He also labeled comparison as “the thief of joy,” stressing that comparison makes us despair.

Yet comparison is originally a neutral methodology.

Comparison helps us analyze the pros and cons of something. It enables progress and development. In this sense, comparison, used creatively, is beneficial in that it creates a better result.

In today’s capitalist society, comparison is a virtue and a power of the consumer. In a consumption society, choosing the best product by comparing the price and specifications of diverse products in the market is a much needed virtue.

The problem, however, is comparing “people.” Comparison becomes a problem when the object of comparison becomes man, not products. It becomes a problem when we fall into despair and pride because of such comparison. The problem gets bigger when we become slaves to envy, jealousy, and pride caused by comparison.

Let me tell you a story written in a book by W.R. White. There were once two rival merchants in a town. Their shops faced each other across the street. From the moment they awoke until they went to bed, all they thought of was making their opponent run out of business. So one day God sent an angel to one of them to teach them a lesson and to offer reconciliation. The angel said, “God will give you a great gift. He will give you whatever you desire—be it riches, children, or longevity. But on one condition: Whatever you get, your rival will receive twofold. If you ask for 10 pieces of gold, your rival will get 20.” After listening to this, the man thought for a long time. “You mean I will get whatever I wish?” “Yes,” the angel replied. The man finally gave his answer: “Then make one of my eyes go blind.”

This may be the naked face of man. We constantly compare ourselves to others, compete with them, envy them, and want to be better than them. Deep down, we may even be hiding a murderous intent.

In the story of Adam and Eve in Genesis, the serpent tricked Eve with these words: ‘You will become like God if you eat from this forbidden tree.’ The enemy placed in Eve’s heart a desire to become like God. Man fell into sin by comparing himself to God. Satan lured man into the path of sin by making him compare himself to God.

The same thing happened in Cain’s murder of Abel. Cain was furious that God received Abel’s sacrifice, while He refused his. This eventually led him to kill his brother. This awful fratricide was brought about by Cain’s comparison with and envy for his brother. The first murder in history was caused by the competition and envy arising from comparison.

Today’s passage also talks about such a man: Saul. Saul was handsome and already highly regarded. This is what the Bible says about his appearance:

“Kish had a son named Saul, as handsome a young man as could be found anywhere in Israel, and he was a head taller than anyone else.” (1 Samuel 9:2)

Furthermore, Saul was already Israel’s king. He had all the power for God had already anointed him king over Israel. He was probably the most envied person in all of Israel.

But according to today’s passage, Saul started to feel competitive toward David after hearing songs about him. He was bothered by the songs sung in praise of David.

The story goes like this. The infamous Goliath had been goading and threatening the Israelite army for 40 days when David brought food to his brothers on the battlefield. David, angry for God, volunteered to fight against the giant. And with only a sling and five stones, he defeated him. By killing Goliath, David also defeated the Philistines. He probably held high Goliath’s severed head in victory. After this incident, people sung praises about David, the giant-slayer, and about King Saul’s victory against the Philistines:

“When the men were returning home after David had killed the Philistine, the women came out from all the towns of Israel to meet King Saul with singing and dancing, with joyful songs and with timbrels and lyres. As they danced, they sang: ‘Saul has slain his thousands, and David his tens of thousands.’” (1 Samuel 18:6-7)

And this was Saul’s response to the women’s singing:

“Saul was very angry; this refrain displeased him greatly. ‘They have credited David with tens of thousands,’ he thought, ‘but me with only thousands. What more can he get but the kingdom?’ And from that time on Saul kept a close eye on David.” (1 Samuel 18:8-9)

The fact that Saul started to keep a close eye on David since the incident is interesting. This signals that from then on David became Saul’s object of comparison. Saul started to think of David as his rival and envied him.

Interestingly, Saul’s envious thoughts and the incident that followed such thoughts seem to be closely related.

“The next day an evil spirit from God came forcefully on Saul. […]” (1 Samuel 18:10)

The Bible writes that God sent an evil spirit to Saul when he started to compare himself to David and have jealous thoughts. Later, Saul, who was out of his mind, threw a spear at David:

“He was prophesying in his house, while David was playing the lyre, as he usually did. Saul had a spear in his hand and he hurled it, saying to himself, ‘I’ll pin David to the wall.’ But David eluded him twice.” (1 Samuel 18:10-11)

Although 1 Samuel 16 also describes Saul being tormented by an evil spirit, this scene in Chapter 18 which connects the evil spirit with Saul’s comparison and envy is extremely meaningful. From this day on Saul continuously tried to get rid of David. In Chapter 19 Saul ordered his men to kill David, but Jonathan and Michal helped him escape. In Chapter 21 the fugitive David met Ahimelek the priest who gave him Goliath’s sword. In Chapter 22 Saul, hearing this, ordered the whole house of Ahimelek to be killed. In Chapter 24 Saul went to the Desert of En Gedi to capture David, and in Chapter 26 he went again to the Desert of Ziph in pursuit of him.

Eventually, Saul got so obsessed with killing David that he failed to carry out his duties as king. He became an evil king, killing his people for helping David. In short, Saul became a man possessed by an evil spirit of comparison and envy, was abandoned by God, and died a miserable death.

Comparison, envy, and competition turned Saul into a failure.

Then how did he come to be tormented by this evil spirit of comparison?

Let’s say there are two toddlers who are brothers. The little one is having fun playing with a toy. Then the big one tries to take the toy. The little one tries with all his might to keep it, but in vain. But the thing is the big brother only plays with the toy for a few minutes and discards it. Why? What he really wanted was to have fun like his little brother. That was his hidden intent. He thought he would he happy if he took the toy and played with it, so he took it, but it wasn’t so. That is why he just discarded it.

What is happening with the big kid? Because he didn’t know how to have fun playing with the toy, he became envious of his little brother and took his toy away. In other words, the big brother is not satisfied with his state. This was what happened with Cain, too. Cain was envious of his brother receiving God’s praise, while he did not have a satisfying relationship with God. He failed to give God a perfect sacrifice. He failed to give a sacrifice that pleased Him.

Comparison, competition, and envy occur when we are not satisfied with who we are. The problem lies in our discontent with our life and the dissatisfied way we live it.

This was Saul’s problem, too. When Goliath and the Philistines came, he should have gone out and fought himself. But he did nothing about Goliath’s taunts, only trembling in fear like the rest of the Israelite army. Saul was not a kingly king. He was not the brave, proper general that he ought to be. He was not living the life of a leader. That is why his comparison and competition with David worsened rapidly.

Let me tell you a Korean folk tale. One hot summer day, a mason was cutting stone in the scorching heat when he saw a nobleman pass by in a carriage. “Oh, how I wish I were a nobleman who didn’t have to toil in the heat.” Hearing this sigh, the gods made him a nobleman. After he became a nobleman, he went out with his entourage on a cold winter day and became envious of the warm sun. So the gods turned him into the sun. As the sun, he thought he would be above all people, but this time the clouds got in his way. So he sighed again, wishing he was a cloud. So the gods turned him into a cloud. As a cloud, he blocked the sun all he wanted, but this time the winds pushed him away. So the gods made him the wind. The wind could push away everything—except for the sturdy rocks on the mountain. So he became a rock. When he became a rock, masons came and pounded at him. Then when he finally awoke from his dream, he was a mason again.

We tend to see only one aspect of something or someone and endlessly compare ourselves to it, competing with and envying that one aspect. For example, we compare ourselves to a person prettier than me, or someone more popular than me. But when do this, we are comparing ourselves to just one aspect of that person, not the whole person.

We see a kid’s good grades but not his appalling manners. We see a pretty woman, but not her painful gastritis. We see a rich woman in her designer clothes and luxury car, but have no way of knowing the hurt and pain caused by her abusive husband.

If we do not live today to the fullest, we easily fall prey to the evil spirit of comparison. Comparing myself with someone more successful, someone with better looks, someone with more money, someone younger, someone with more stability will only lead to misery and despair.

Some people compare themselves with their past self. They grovel in misery and unhappiness, thinking of their glorious past. If we live today unhappily by comparing our present with our past—in terms of youth, popularity, or vigor—we will never live today to the fullest.

A person who cannot accept himself/herself as he/she is will be unhappy. Comparing myself to others makes us miserable.

The Korean New Year holidays begin tomorrow. Family gatherings always accompany comparison. We compare our kids with their cousins and so on. I pray you will not be possessed by the evil spirit of comparison this holiday. Please do not compare yourself or your family with others just by looking at one part or one moment of their lives.

Some people feel miserable after looking at other people’s photos and posts on Facebook or Instagram. Don’t you know that these pictures are their best pictures taken at their best moments? Lying in bed in your PJs, how can you ever compete with them? Don’t let the evil spirit of comparison get to you.

When we compare ourselves to others, envy them, compete with them, and hate them, we ultimately despise God. Coveting what others have is rejecting God Himself who gave such good things to that person. When we covet, we don’t just envy a person, but rebel against God.

Every man is God’s creation made according to His will. God is perfect, although we are not. We have strengths and weaknesses. We have our weak points, but also our strong points, too. All men have received something from God. It is critical that we acknowledge this. Man only lives the best he can with his God-given talents.

If someone has received excellence or a special ability, then it means God wants him/her to serve more. If one has received less, it means God wants him/her to serve in that limited capacity.

The road to misery starts by comparing what I have with what others have. The secret to happiness lies in accepting and being grateful for what each person, including others and myself, has been given from God as a creative gift.

This was Paul’s confession as he listed all his weaknesses:

“Therefore, in order to keep me from becoming conceited, I was given a thorn in my flesh, a messenger of Satan, to torment me. Three times I pleaded with the Lord to take it away from me. But he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Therefore I will boast all the more gladly about my weaknesses, so that Christ’s power may rest on me. That is why for Christ’s sake, I delight in weaknesses, in insults, in hardships, in persecutions, in difficulties. 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2 Corinthians 12:7-10)

Even in suffering, Paul dreamed of the bright future that God would finally bring him:

“I consider that our present sufferings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in us.” (Romans 8:18)

God allowed weaknesses in us so that we may depend on Him. We are made weak because we must become strong with His strength—because we can never become strong with our own strength. We can bear our present sufferings and hardships because we desire the glory that God will finally reveal in us.

Don’t compare. God made you the way you are. He takes pleasure in the way He created you. Turn to the Lord with thanksgiving, joy, and praise. Our Lord is pleased with those who bloom and bear fruit as they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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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8: 6 ~ 9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현대 시대에 비교 의식은 인간을 유혹하는 강한 힘입니다.>

언젠가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모두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분들이었는데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려운 과정을 거쳐 가는 듯 보였습니다. 서울에서 목회하는 이도 있었고, 지방에서 목회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조금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이, 또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제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회 참 어렵지요? 무엇이 가장 어렵던가요?” 새벽기도? 생활고의 문제? 혹은 설교 준비나 외로움? 아마도 이런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질문을 던졌는데 뜻밖에도 첫 번째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목회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다른 목회자와 저를 비교할 때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잘 하는 것 같은데 제 자신만 뒤처지는 기분이 들 때 이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런 마음이 어찌 목회자들의 마음뿐이겠습니까? 비교 의식은 사실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하고 마음을 때로 힘들게 만듭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잘난 것 하나 없어 보이는데 왜 저렇게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가?’ ‘저 사람은 나보다 훨씬 못생겼는데 어떻게 저런 좋은 남편을 만나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을까?’ ‘저 집 아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훌륭하게 자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남이 가진 게 더 커 보일 때 의기소침해지고, 부러워하고, 시기하며 불행함을 느끼는 게 인간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하죠. “현대의 마귀는 비교 의식을 가지고 인간을 유혹한다. 이 비교 의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기도 하며 절망에 빠트리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 ‘비교’라는 것은 매우 가치중립적인 방법론입니다. 우리는 비교를 통해서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며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교를 창조적으로 사용하면 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교는 소비자의 권력이자 덕목입니다. 가격을 낱낱이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가장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소비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비교가 사람을 향할 때입니다. 비교의 대상이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경우입니다. 비교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절망에 빠지거나 때로는 교만에 빠집니다. 비교 의식은 그 자체로서 우리 마음이 시기와 질투, 교만과 욕망의 노예가 되도록 이끕니다.
어느 도시에 장사꾼 두 사람이 경쟁하는 관계에 있었다고 합니다. W. R. 화이트가 쓴 『진짜 이야기를 찾아서』(서울: 성바오로출판사, 1993)에 나오는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두 사람의 가게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기까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망하게 할까 고민하는 데 마음을 쓰며 가게를 운영했다죠. 결국 보다 못하신 하나님께서 두 사람에게 교훈을 주시고 화해시키시고자 한쪽 상인에게 천사를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큰 선물을 내리실 것이요. 그대가 재물을 원하면 재물을, 장수를 원하면 장수를, 자녀를 원하면 자녀를 주실 것이오. 단 조건 하나가 있소.” 하더니 천사가 이어서 말했답니다. “그대가 무엇을 요구하든지 당신의 경쟁자는 두 배를 얻게 될 것이오. 그대가 금화 10개를 원하면 경쟁자는 금화 20개를 가지게 된다오.” 그러자 상점의 주인이 한참 고민하더니 다시 묻더랍니다. “제가 구하는 모든 것을 정말 그대로 주십니까? 상대방은 두 배로 갖고요?” “그렇습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상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고 합니다. “그럼 제 한쪽 눈을 멀게 해 주십시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이 잘 안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 얼마든지 좋은 것을 구할 수도 있었는데 남이 안되는 방법만을 찾은 상점 주인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 안에 숨겨진 내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 뱀이 나타나죠. 뱀이 하와를 속이며 유혹합니다. “네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사탄의 첫 번째 유혹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통하여 만물을 다스리며 살도록 배려해 주셨죠. 그런데 사탄이 뱀을 통해 유혹합니다. “너 하나님과 경쟁해 보지 않을래? 하나님과 비교해 보지 않을래?” 하나님과 경쟁하는 마음을 불어넣으면서 인간이 죄의 길로 들어서도록 만들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지만 가인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는 걸 보고 분개합니다. 아우 아벨과 스스로를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결국 가인의 마음에 분노와 시기가 일어나고 맙니다. 이 일로 아벨을 죽이죠. 비교를 통한 시기와 경쟁심으로부터 인류 역사 가운데 최초의 살인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 속 사울 역시 끊임없는 비교 의식을 통해 실패하고 만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 준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울입니다. 성경은 그의 용모가 출중하였다고 말합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삼상 9:2)

사울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큰 키에 용모가 출중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이스라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서 권력을 가지며 백성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러워할 사람은 당연 사울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본문에 따르면 다윗을 향하여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의 마음에 경쟁심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다윗을 향한 백성들의 찬가에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배경은 이렇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이 40여 일이나 이스라엘 군사들을 앞에 두고 매일 같이 위협하고 기를 죽이던 때에 다윗이 자원하여 싸우면서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자 골리앗을 무찌르고 성읍으로 당당하게 들어오는 이스라엘 군사를 환영하며 여인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삼상 18:6~7)

여인들의 노래가 들리던 바로 그때 사울이 말합니다.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삼상 18:8~9)

그날 이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다는 표현이 참 흥미롭습니다. 한마디로 다윗이 사울의 비교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를 경쟁자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는 말이고, 그를 시기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사건이 앞의 사건과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 역시 흥미롭습니다.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삼상 18:10 중)

비교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사울에게 들어오자,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악령을 내리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그는 정신없이 떠들며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다윗을 향하여 던집니다. 사무엘상 18장 10~11절 말씀입니다.

…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삼상 18:10~11)

물론 앞선 16장부터 사울은 이미 악령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8장에서 다윗과 비교하며 시기하는 사울과 악령이 임재한 사건이 서로 연결되는 것 또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날 이후로 사울은 본격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19장에서는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죠. 그때 요나단과 미갈이 다윗을 도와 도망치도록 합니다. 21장에서는 도망치던 다윗이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식량을 얻고 골리앗의 칼을 받아 도망의 길로 나서는 모습이 나옵니다. 22장에서는 이 이야기를 들은 사울이 아히멜렉과 그의 온 집안을 몰살시키는 장면이 이어지죠.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 가문을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24장에서는 엔게디에 머무는 다윗을 잡으러 달려가고, 26장에서는 십 광야에 숨은 다윗을 잡으러 또다시 나아가는 사울이 나타납니다. 이렇듯 사울이 다윗을 죽이는 일에 몰두하는 동안 정작 왕의 역할은 충실하게 감당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운 이유로 백성을 죽이는 악한 왕이 됩니다. 비교의 악령, 시기심의 악령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이 되어 죽고 만 것입니다. 비교의 마음, 시기와 경쟁의 마음이 그를 실패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비교의 악령에 시달리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린 형제가 있습니다. 형과 동생이 함께 앉아서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그러다 형이 동생의 장난감을 빼앗으려고 달려듭니다. 빼앗기지 않으려는 동생과 한참 싸우다가 결국 힘으로 동생의 장난감을 빼앗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다른 편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놀이를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형은 동생이 가진 장난감을 탐내며 빼앗기 시작합니다. 형은 왜 이렇게 동생이 가진 장난감을 뺏고 싶었을까요? 동생과 함께 놀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동생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저 장난감을 빼앗으면 나도 재미있게 놀 수 있겠다.’ 생각하며 장난감을 뺏고 또 빼앗은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만큼 재미있지 않은 게 문제였죠. 왜 그렇습니까? 형은 노는 법을 몰랐던 아이였습니다. 홀로 재미있게 노는 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동생의 장난감을 계속 빼앗기는 하지만 흥미를 금세 잃고 맙니다. 한마디로 형은 충일한 삶을 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비교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것을 시기하게 된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가인과 아벨의 사건도 그렇습니다. 가인이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게 아닙니다. 다만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정성스런 제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충일한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제사가 아니었던 것이죠.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인은 자신에게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신 하나님을 보면서 분노하고 또 분노하다가 동생에게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처럼 비교 의식, 시기, 경쟁심은 자신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을 때, 충분히 살아 있지 않을 때 나타납니다.
사울도 동일합니다. 골리앗이 블레셋 군대를 이끌고 왔을 때 나가서 싸웠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골리앗의 도전에 꼼짝하지 못하고 도리어 이스라엘 군과 함께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왕 답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사실 왕이라면 지도자답게 나가서 싸워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왕의 직무에 충실하지 못했던 사울이었기에 다윗의 등장은 그만큼 두려웠고, 비교와 경쟁심은 급속도로 번져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충일하게 살아가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드리네요. 어느 전래 동화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름날 석수장이가 돌을 열심히 깎다가 한 귀족이 행차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는 ‘아, 나도 귀족으로 태어났다면 이렇게 힘든 일 안 하고 평생 놀고먹을 수 있었을 텐데…’ 생각했답니다. 바로 그 순간 석수장이가 귀족이 되었다죠. 귀족이 되자 기뻐서 행차를 하던 중에 그날따라 태양이 너무 강렬하게 내리쬐다 보니 꼼짝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태양이 되면 좋겠구나. 나보다 힘이 세구나.” 하고 불평하자 순식간에 태양이 되었답니다. 태양이 되고 나니 모든 것을 다 힘세게 물리칠 줄 알았는데 구름에 그만 가려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름이 더 힘세구나’ 생각하는 순간에 구름으로 변하여 힘을 자랑하려고 했는데, 바람이 불어서 구름을 저 멀리 밀어 버렸다는 것이죠. “이야 바람이 더 세구나.” 말하는 순간에 바람이 되어서 이곳저곳을 다 불어 댔는데 아니, 산 위에 바위는 도저히 꿈쩍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야, 바위가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존재구나.’ 생각하자 바위가 되었는데 어느새 석수장이가 와서 그 바위를 하나씩 하나씩 깎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나 보니 석수장이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는 동화입니다.
이 이야기가 전해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바람도, 태양도, 구름도, 어떤 면에서는 부러워할 만한 점이 있지만 약하고 부족한 면도 있다는 교훈이죠. 이것이 우리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바라보면서 비교하고 시기하고 스스로 주눅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어느 한 면만을 보면서 부러워하기 마련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부럽지만 그 아이의 괴팍한 성격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겁니다. 아름답고 멋진 사람을 보면서 감탄하지만 매일 같이 위장염으로 고생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멋진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나온 부잣집 사모님 같은 분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비교하지만 그분이 가정 안에서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과거에 누린 인기, 젊음, 활력을 돌아보면서 지금의 초라한 모습에 절망하고 슬퍼하기도 합니다. 결국 오늘을 충일하게 살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비교라는 이름의 악령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일부터 설 명절이 시작됩니다. 가족이 모이면 때로는 비교하는 일이 생겨납니다. 비교라는 이름의 악령에 사로잡히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한 부분만을 보고서 자신을 비교하는 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시기하고 미워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일은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셈이죠. 인간에 대한 질투는 결국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하여 반항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이 뜻을 가지고 만드신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강점도 있지만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세상을 살아갈 뿐입니다.
참으로 사람들에게 비교당하고 비난받았던 사람 중에 특별히 고린도 교회로부터 비난받은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도들과 비교당하며 거짓 사도들과도 비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말이 어눌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고, 외모가 초라하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그러한 평가를 받으면서까지 목회와 사역을 감당했던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향해 비교 의식을 가지거나, 약한 부분을 스스로 비하하면서 절망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그가 자신이 가진 비밀 곧 육체의 가시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고 약하게 보는 모습에 더해서 자신 안에 숨은 또 다른 가시를 고백한 셈입니다. 육체의 가시를 두고 세 번이나 하나님께 없애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9~10)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의 약함을 나는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불평하고 시기하기보다, 부족한 것 많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능력이 되신다면 그것보다 큰 기쁨과 행복이 있겠습니까? 로마서 8장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사도 바울은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래를 향합니다. 비록 부족한 점이 있고 약한 점 또한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모습은 장차 나타날 주님의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며 미래를 향하여 시선을 열어 둡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부족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심입니다. 우리가 힘들지만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이유 역시 장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영광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교하지 마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감사함으로, 기뻐함으로, 찬양함으로 주님께로 나아가십니다. 우리 주님은 기쁨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이들을 기뻐하십니다.

202213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비교라는 이름의 악령” (삼상 18:6-9)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93, 39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삼상 18:6-9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30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C.S루이스는 현대의 마귀는 비교의식을 가지고 인간을 유혹하며 이 비교의식이 교만하게 만들기도 하며 절망에 빠트리기도 한다라고 말합니다. 비교를 통해서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이 비교가 사람을 향할 땐 절망과 교만을 불러오며 시기와 질투,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교의식에서 자유롭습니까?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그 노예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 속 사울은 출중한 용모와 왕으로서의 권력, 누가 봐도 부러워 할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울에게 비교의식이 생겨납니다. 바로 다윗을 향한 백성들의 찬가로부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교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들어오자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악령을 내리셨다(삼상 18:10)고 말합니다. 비교의 악령에 사로잡힌 바울은 이후 다윗을 죽이려는 일에만 몰두면서 정작 왕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합니다.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은 불쌍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왜 사울은 이런 비교의 악령에 시달리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충일함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 충실하지 못하다보니 시기와 경쟁심에 붙들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면의 한쪽만 보고 그것과 나를 비교하며 경쟁과 시기에 붙들릴 때가 있습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내 결핍만 바라보기에 없는 것에 슬퍼하고 절망합니다. 내게 주어진 것을 먼저 보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다보면 내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낼 수 없습니다. 결국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께서 뜻을 두고 만드신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완전하신 하나님과 달리 완전하지 않습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부족한 점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받은 것이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은 좋은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질투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반항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달란트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불행을 향한 지름길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내게 있는 것을 비교함에 있습니다. 반면 행복을 향한 지름길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 모두 다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로 인식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그 연약함을 통해 도리어 그것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였다고 고백합니다.(고후 12:7~10, 8:18) 나는 약하지만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실 큰 영광을 사모하며 그리스도의 능력을 더욱 붙들게 됨이 기쁨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비교하여 교만하거나 마음 상하며 절망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그 말씀 붙들며 각자의 자리에서 충일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 때, 하나님은 이 모습을 온전히 기뻐하십니다.

   

나누기

1. 남과 비교하면서 마음 상하거나 교만하였던 그런 적이 있습니까?

2. 비교의 악령에 지배받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하겠습니까? 내 안에 먼저 떠올려야 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좋은 것들은 무엇입니까?

마무리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내 모습을 먼저 보기 원합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마음 상하거나 교만하지 않게 하시며, 주님과의 충일한 관계 속에서 내게 주신 좋은 것들을 바라보며 참 기쁨과 감사와 찬양함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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