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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교회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빈방을 제공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미디어를 통해 소망교회에 관한 소식을 접하셨을 줄 압니다. 저희 교회가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게 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부분에 관해 설명을 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소망교회 당회가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시설로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를 시작한 것이 지난 3월경이었습니다. 당시 대구를 비롯한 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속출했는데, 만약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면 소망수양관도 생활치료시설로 사용될 수 있겠다고 판단해 당회에서 위원들을 선정한 후 검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여러 상황을 고려하며 의견을 모아왔습니다. 사실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시설로 제공할 때 발생되는 여러 문제와 장애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시설 유지와 보수, 직원 배치, 주변 이웃의 정서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요소가 산적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수양관을 생활치료시설로 내어놓기가 어렵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급속도로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났고, 치료 시설이 모자라면서 서울시에서 저희 교회에 치료 시설에 관한 요청을 해 왔습니다. 마치 그 부탁은 하나님의 요구처럼 들렸고, 다시 한번 저희 당회원들이 논의를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는 데 당회원 모두가 만장일치로 동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소망교회가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시설로 제공할 수 있게 된 데는 앞서 수고하신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훌륭한 소망수양관을 세워 주신 곽선희 원로 목사님과 소망수양관을 멋지게 리모델링해 주신 김지철 은퇴 목사님, 또 이 모든 사역에 헌신해 주신 원로 장로님들과 은퇴 장로님들, 은퇴 권사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많은 분께서 차곡차곡 헌신해 주신 덕분에 소망교회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이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결과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나아가 국가적인 비상사태 속에서 소망수양관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시설로 사용할 수 있어서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감격하게 됩니다.
특히 대림절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면서 마태복음 25장의 이 땅에 심판주로 오셔서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우리의 삶과 행실에 따라 심판하실 주님을 기억해 봅니다. 주님은 오른편에 선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복음 25:34~26 중)
이처럼 주님께, 또 헐벗은 이웃에게 우리의 빈방을 내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내어놓는 ‘빈방’이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헌물이 된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감사를 고백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에 동참해 주신 성도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주님을 위해 빈방을 내어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제목은 ‘빈방 있습니다’입니다. 소망교회가 세상에 빈방을 내어놓게 된 데 감사하는 의미도 있고, 성탄을 맞이하며 드리는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또한 ‘빈방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연극을 아시는 분들도 꽤 있으실 것입니다. 1980년대부터 성탄절이 되면 늘 입에 오르내리는 연극입니다. ‘덕구’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연극이라고 합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덕구라는 학생이 연극에서 여관 주인 역할을 맡게 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집집을 돌아다니며 “빈방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덕구는 “빈방 없습니다.”라고만 대답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역할이었습니다. 당시 덕구는 지체 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이 정도쯤은 소화할 수 있는 상태로 그에게 이러한 역할을 제공하는 것도 의미 있는 연극이 되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연극이 진행되면서 각본에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빈방 없습니까?”라고 물었는데, 덕구가 각본대로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마리아와 요셉을 붙잡으며 “사실 우리 집에 방이 있어요.”라고 말하며 “하나님, 아시지요? 예수님이 정말 우리 집에서 태어나셨으면 좋겠어요!”라며 간절하게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연극은 의외의 결말로 맺어지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많은 배우와 관객이 큰 감동을 받았고, 이후 계속해서 본 연극이 이와 같은 결말로 맺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림절 마지막 주일에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시설로 제공하면서 “우리 집에 빈방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마치 덕구의 대사를 우리 소망교회가 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또한 대림절을 보내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영적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 안에 예수님을 모실 만한 빈방이 있는지 질문을 던져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예수님을 모실 만한 빈방이 있습니까? 혹시 우리 안에 나쁜 생각과 불손한 마음, 정욕, 거짓, 분노, 태만, 교만과 같은 것들이 가득 차 예수님을 모실 만한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하덕규라는 가수가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러분도 이 노래를 잘 아실 것입니다. 제가 그 가사를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 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이 노랫말처럼 우리 안에는 정말 많은 것이 있습니다. 대림절을 보내며 우리 안에 가득 찬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모실 만한 귀한 공간이 되도록, 우리 안의 더러운 것들을 정리하고 주님께 빈방을 내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내 안에 빈방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빌립보서에는 ‘비움’에 관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자신을 비우시며 낮추셨는가를 알게 하는 결정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에서 빈방을 만드는 방식, 곧 비움의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이 말씀에 비움의 원리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비우시고 낮추셨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비움이란 ‘하나님을 향한 복종’이었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된 자격을 내려놓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성육신하셨습니다. 이 땅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시며 사신 예수님입니다. 바로 그 모습을 성경은 ‘비움’이라고 묘사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 안에 비움이 형성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마리아도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와 대화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합니다. 당시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누가복음 1:30~31)
놀라운 말씀입니다. 수용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까? 마리아 역시 이렇게 물었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누가복음 1:34)
천사가 대답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누가복음 1:35)
하나님의 약속이 마리아에게 전해졌고,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누가복음 1:38 중)
마리아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기에 제 안은 너무 누추합니다. 제 마음속에는 시기와 불신, 잘못된 생각들이 많습니다.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 안에 모실 수 없습니다.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지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누가복음 1:38 중)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아갑니다. 순종이 빈방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품는 순결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몸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 바로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뜻이 역사하는 공간이 생성되는 것입니다.
< 주님의 부름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마리아의 순종에서 그 가능성을 살펴보게 됩니다. 마리아 역시 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녀 역시 죄 된 본성을 가진 인간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 줄 아는 비움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자신의 태에 예수 그리스도를 품는 복 받은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죄가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오실 때 문을 열어 드릴 수 있다면 주님께서 직접 우리의 방을 정돈하시며 은혜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최근 매체를 통해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에도 제주도와 강원도 지역에 연말연시 숙소 예약이 찼다는 보도를 접합니다. 시내 호텔에도 빈방이 없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돌이켜 보니, 그동안 우리가 참 바쁘게 성탄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도 성탄절 칸타타 준비와 각종 행사 준비로 바빴습니다. 성탄절 예배도 드리고, 각종 모임을 하며 바쁘게 보내왔습니다. 연말연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회식도 잦고, 축하와 격려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그동안 성탄절을 빈방이 없는 채로 보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2020년 성탄절에 특별히 우리에게 빈 공간을 만들어 주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소망교회 예배당도 빈 공간으로 만들어 주셨고, 소망교회 주차장도 빈 공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번 2020년 성탄절에는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내가 만드는 빈방이 아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만들어지는 빈방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우리의 눈으로 목도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We Have a Room
Luke 1:30-38
Last week, you may have heard Somang Church and our Retreat Center being mentioned in the media. Many media outlets reported thatour Retreat Center will be used as a residential treatment center for Covid-19 patients. You may be wondering how this came about.
Last March, thesession explored the idea of providing our Retreat Center as a residential treatment centerfor coronavirus patients and started preparations. When the coronavirus was spreading rapidly in Daegu at the time, some of our leaders thought that we needed to prepare for a possible nationwide outbreak. The session then created a committee and looked into this matter for the following 10 months. At first, we thought that taking in patients would be easy, but it wasn’t. There were many complicated issues involved in turning our Retreat Center into a coronavirus treatment center. Many of our work done through the Center would stop. Furthermore, a host of other problems remained,including what to do with the Center’s staff, how we would maintain and repair it, and how the residents in the area would respond. After a long deliberation and taking into all the needs and diverse demands of our church, we concluded that giving up the Retreat Center was difficult.
Ironically, however, this decision was overturned almost immediately. Recently, as the number of infections skyrocketed and hospital beds became dangerously scarce, our elders reviewed this matter. Despite the many complicated issues involved, we could not ignore the suffering of coronavirus patients. Everyone in the session and all of our leadership had the same heart. I am grateful that the session and our leaders became one in making this decision.
During months of deliberation, we came to know that turning the Retreatment Center into a coronavirus treatment center was realistically very tricky. Even if our Church were willing, many conditions had to be met. We—as well as the Seoul Metropolitan City and related agencies—knew that Somang’s Retreat Center met those conditions.
I would like to take this opportunity to thank Pastor Kwak Sun-hee and Pastor Kim Ji-chul for building and later remodeling this facility, respectively. Without their efforts, our Retreat Center could not have been used so preciously in this time of need. I would also like to thank all our sitting and retired elders and church members who gave their hearts, energy, and resources to the Retreat Center.
I received much praise for this recent decision. But I have only been at Somang Church for 2 years. Somang’s members, who have served this church longer than I, deserve the praise.
How precious it is that our Retreat Center is serving this nation in an unprecedented crisis? Thank God that it was ready to be used. I realized that a time of preparation is needed to be used. Our Retreat Center could be used because it was clean and empty. Converting it to a coronavirus treatment center would have been difficult if many events had been scheduled there.
How important it is to be well prepared! Especially, in this season of Advent, as we meditate on our Lord’s words in Matthew 25 that say we serve Him by serving thehungry and thirsty, I am so glad that we have honored Him by giving up our empty room for the needy. Somang Church, being well prepared for this disaster, pleased our Lord. We glorified God, and we too received joy by doing so. Praise and thanksgiving be to God!
The title of today’s message is “We Have a Room.” One reason for choosing it has to do with our church’s decision to give up our Retreat Center.
“Any Room?” is a play that has been staged in Korea around Christmas every year since 1980. I wonder if it will be on this year. It is also known for one of its actors, elder Park Jae-ryun, principle of the Seoul Performing Arts High School, who has played the leading role Deukgu for the last 30 years. The play is based on a true story about an American boy named Wally.
Wally, a mentally disabled boy, is preparing for a Christmas play at Sunday school. As the innkeeper his role is simple. All he has to say when Mary and Joseph come knocking at his door is “We have no room.” However, when the day of the performance arrives and it is finally time for Wally to say his line, he issuddenly silent. The audience and the other children on stage are at a loss. But, after a moment, Wally says, “We have no room for you at the inn, but I have plenty of rooms for you at my house. God knows this. I really wish Jesus were born in my home!”Although the play took an unexpected twist, it left many people deeply moved. This story of Wally is a true one.
I believe what we did with our Retreat Center is like what Deukgu(or Wally) said in the play, “I have a room for you at my house.” I pray that our Retreat Center will serve coronavirus patients just as we serve Jesus.I am thankful that we had an empty room.
In this season of Advent, I would like to ask you this question: “Do you have an empty room for Jesus?”
How is an empty room made? How can we make room for Jesus in us? Is this done by casting out each and every sin, evils thought, and impurity? By abandoning lust, falsehood, sadness, aggression, anger, laziness, pride, and so on?
I want to read to you the lyrics of “Thorn Tree,” a Korean pop song:
“There’s so much of me inside of myself,
There’s no place for you to rest
There are so many vain expectations in me,
There’s no comfortable place for you
There’s a darkness that I can’t help but have in me
Which takes away the place of rest for you
There’s a sadness that I can’t win over in me
Like a thick thorn tree forest
Whenever the wind blows, the dried-up branches harrass each other and cry
The young birds that fly over to find a place of rest,
Get prickled by the thorns and fly away
There’s so much of me inside of myself,
There’s no place for you to rest”
Exactly how much do we have to throw away to empty our hearts? And how does one “throw away” what is in his heart anyway? By repenting? How can we make an empty room for Jesus in our hearts?
There is a verse in Philippians that we often meditate on regarding Christ’s incarnation. The early church also sung it as a hymn: “Who, being in very nature God,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used to his own advantage;rather, he made himself nothingby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being made in human likeness.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he humbled himselfby becoming obedient to death—even death on a cross!” (Philippians 2:6-8)
The Bible says that Jesus made himself nothing. Here we find the perfect example of emptying oneself. You might think that Jesus had nothing to throw away since He had no sin. But Jesus’ emptied himself by beingobedient to God. The Bible tells us that He took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and humbled himself by becoming obedient to death—even death on a cross. He gave himself up to God so that God would use him according to His will. He decided to obey God’s will and gave his heart and body to Him. This was how Jesus became nothing. This was how Jesus made an empty room.
The very essence of Christ’s incarnation is self-emptying (or kenosis). Self-emptying is to abandon oneself or give oneself up. Jesus, the Prince, gave up his status, identity, and privilege. The Prince of heaven came to earth not only as a Prince of obedience and humility, but as a servant and a human being just like us. He was even born in a stable. He humbled himself. Self-emptying is to entrust oneself to God. It is to depend on His promise.
In today’s passage, Mary shows such self-emptying.
After asking a question to the angel who came to tell her about what is to happen, Mary believes and obediently accepts her calling: “But the angel said to her, ‘Do not be afraid, Mary; you have found favor with God. You will conceive and give birth to a son, and you are to call him Jesus.’” (Luke 1: 30-31)
Mary asks the angel in verse 34,“How will this be, […] since I am a virgin?” (Luke 1: 34)The angel replies, “The Holy Spirit will come on you, and the power of the Most High will overshadow you. So the holy one to be born will be called the Son of God.” (Luke 1: 35)
Finally Mary says, “I am the Lord’s servant. May your word to me be fulfilled.”(Luke 1: 38)
This is how an empty room is made. May was able to conceive Jesus by obeying God’s word, by total obedience, by giving herself up completely to God’s will.
Emptying leads to filling. An empty room is filled with grace.
How can we sinners participate in God’s history? We find our potential in Mary. Was Mary without sin? No. Catholics try to present her as sinless, but this is not biblical. Mary was a human being, too. But by complete obedience to God’s will, she was blessed with conceiving the Holy One.
Even if we are with sin, our rooms can become empty if we open our doors to our Lord and surrender to His will. Then our Lord will come and work in that room. He will fill it with His grace. He will fill it with Jesus Christ. Receiving Him and opening our doors to Him is to make an empty room.
Recently, I saw on the news that accommodations in Gangwon Province and Jeju Island were fully bookedeven in this pandemic.No rooms are available at the hotels in central Seoul, either.
Do we have room for Jesus in our hearts? Christmastime has always been busy. We had no room for Him. Our schedules were usually full of dinner dates, parties, and year-end events. There was always lots to eat—too much, really, that we had to worry about gaining weight—and our schedules were hectic. On Christmas, churches would be full and busy with all kinds of events.
But, looking back on our past Christmases, I ask myself this year, ‘Did we have room for Him?’
At this very moment—when all our halls at Somang Church and our parking lots are empty and the minimized Christmas decorations seem deserted—I can more deeply mediate on the meaning of making room for Jesus.
“I am the Lord’s servant. May your word to me be fulfilled.” This attitude of Mary is the special mantra that creates an empty room. May your word be fulfilled. We must entrust ourselves to God and depend on His word.
The Lord speaks to us in Revelation: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that person, and they with me.”(Revelation 3: 20)
누가복음 1: 30 ~ 38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 소망교회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빈방을 제공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미디어를 통해 소망교회에 관한 소식을 접하셨을 줄 압니다. 저희 교회가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게 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부분에 관해 설명을 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소망교회 당회가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시설로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를 시작한 것이 지난 3월경이었습니다. 당시 대구를 비롯한 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속출했는데, 만약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면 소망수양관도 생활치료시설로 사용될 수 있겠다고 판단해 당회에서 위원들을 선정한 후 검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여러 상황을 고려하며 의견을 모아왔습니다. 사실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시설로 제공할 때 발생되는 여러 문제와 장애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시설 유지와 보수, 직원 배치, 주변 이웃의 정서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요소가 산적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수양관을 생활치료시설로 내어놓기가 어렵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급속도로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났고, 치료 시설이 모자라면서 서울시에서 저희 교회에 치료 시설에 관한 요청을 해 왔습니다. 마치 그 부탁은 하나님의 요구처럼 들렸고, 다시 한번 저희 당회원들이 논의를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는 데 당회원 모두가 만장일치로 동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소망교회가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시설로 제공할 수 있게 된 데는 앞서 수고하신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훌륭한 소망수양관을 세워 주신 곽선희 원로 목사님과 소망수양관을 멋지게 리모델링해 주신 김지철 은퇴 목사님, 또 이 모든 사역에 헌신해 주신 원로 장로님들과 은퇴 장로님들, 은퇴 권사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많은 분께서 차곡차곡 헌신해 주신 덕분에 소망교회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이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결과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나아가 국가적인 비상사태 속에서 소망수양관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시설로 사용할 수 있어서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감격하게 됩니다.
특히 대림절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면서 마태복음 25장의 이 땅에 심판주로 오셔서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우리의 삶과 행실에 따라 심판하실 주님을 기억해 봅니다. 주님은 오른편에 선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복음 25:34~26 중)
이처럼 주님께, 또 헐벗은 이웃에게 우리의 빈방을 내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내어놓는 ‘빈방’이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헌물이 된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감사를 고백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에 동참해 주신 성도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주님을 위해 빈방을 내어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제목은 ‘빈방 있습니다’입니다. 소망교회가 세상에 빈방을 내어놓게 된 데 감사하는 의미도 있고, 성탄을 맞이하며 드리는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또한 ‘빈방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연극을 아시는 분들도 꽤 있으실 것입니다. 1980년대부터 성탄절이 되면 늘 입에 오르내리는 연극입니다. ‘덕구’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연극이라고 합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덕구라는 학생이 연극에서 여관 주인 역할을 맡게 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집집을 돌아다니며 “빈방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덕구는 “빈방 없습니다.”라고만 대답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역할이었습니다. 당시 덕구는 지체 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이 정도쯤은 소화할 수 있는 상태로 그에게 이러한 역할을 제공하는 것도 의미 있는 연극이 되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연극이 진행되면서 각본에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빈방 없습니까?”라고 물었는데, 덕구가 각본대로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마리아와 요셉을 붙잡으며 “사실 우리 집에 방이 있어요.”라고 말하며 “하나님, 아시지요? 예수님이 정말 우리 집에서 태어나셨으면 좋겠어요!”라며 간절하게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연극은 의외의 결말로 맺어지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많은 배우와 관객이 큰 감동을 받았고, 이후 계속해서 본 연극이 이와 같은 결말로 맺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림절 마지막 주일에 소망수양관을 생활치료시설로 제공하면서 “우리 집에 빈방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마치 덕구의 대사를 우리 소망교회가 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또한 대림절을 보내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영적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 안에 예수님을 모실 만한 빈방이 있는지 질문을 던져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예수님을 모실 만한 빈방이 있습니까? 혹시 우리 안에 나쁜 생각과 불손한 마음, 정욕, 거짓, 분노, 태만, 교만과 같은 것들이 가득 차 예수님을 모실 만한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하덕규라는 가수가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러분도 이 노래를 잘 아실 것입니다. 제가 그 가사를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 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이 노랫말처럼 우리 안에는 정말 많은 것이 있습니다. 대림절을 보내며 우리 안에 가득 찬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모실 만한 귀한 공간이 되도록, 우리 안의 더러운 것들을 정리하고 주님께 빈방을 내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내 안에 빈방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빌립보서에는 ‘비움’에 관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자신을 비우시며 낮추셨는가를 알게 하는 결정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에서 빈방을 만드는 방식, 곧 비움의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이 말씀에 비움의 원리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비우시고 낮추셨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비움이란 ‘하나님을 향한 복종’이었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된 자격을 내려놓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성육신하셨습니다. 이 땅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시며 사신 예수님입니다. 바로 그 모습을 성경은 ‘비움’이라고 묘사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 안에 비움이 형성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마리아도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와 대화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합니다. 당시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누가복음 1:30~31)
놀라운 말씀입니다. 수용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까? 마리아 역시 이렇게 물었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누가복음 1:34)
천사가 대답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누가복음 1:35)
하나님의 약속이 마리아에게 전해졌고,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누가복음 1:38 중)
마리아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기에 제 안은 너무 누추합니다. 제 마음속에는 시기와 불신, 잘못된 생각들이 많습니다.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 안에 모실 수 없습니다.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지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누가복음 1:38 중)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아갑니다. 순종이 빈방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품는 순결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몸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 바로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뜻이 역사하는 공간이 생성되는 것입니다.
< 주님의 부름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마리아의 순종에서 그 가능성을 살펴보게 됩니다. 마리아 역시 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녀 역시 죄 된 본성을 가진 인간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 줄 아는 비움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자신의 태에 예수 그리스도를 품는 복 받은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죄가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오실 때 문을 열어 드릴 수 있다면 주님께서 직접 우리의 방을 정돈하시며 은혜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최근 매체를 통해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에도 제주도와 강원도 지역에 연말연시 숙소 예약이 찼다는 보도를 접합니다. 시내 호텔에도 빈방이 없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돌이켜 보니, 그동안 우리가 참 바쁘게 성탄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도 성탄절 칸타타 준비와 각종 행사 준비로 바빴습니다. 성탄절 예배도 드리고, 각종 모임을 하며 바쁘게 보내왔습니다. 연말연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회식도 잦고, 축하와 격려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그동안 성탄절을 빈방이 없는 채로 보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2020년 성탄절에 특별히 우리에게 빈 공간을 만들어 주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소망교회 예배당도 빈 공간으로 만들어 주셨고, 소망교회 주차장도 빈 공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번 2020년 성탄절에는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내가 만드는 빈방이 아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만들어지는 빈방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우리의 눈으로 목도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2020년 12월 2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빈 방 있습니다” (눅 1:30-38)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105장, 97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눅 1:30-38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2월 20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지난 주 교회는 소망수양관을 코로나 19 경증환자 치료를 위한 생활치료센터로 내어놓는 결정을 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 국가적인 방역의 비상사태 속에서 교회는 국가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망 수양관이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깨끗한 상태로 방이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수양관을 깨끗하게 잘 만들고 리모델링한 원로, 은퇴 목사님들과 성도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 오늘 설교 제목처럼 – 세상을 향해 빈방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설교의 요약
이 대림절 마지막 주일에 우리가 수양관의 문을 열고 “빈 방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또한 그런 빈 방이 우리에게 있어서 또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 공간의 빈 방 말고 – 마음의 빈 방, 예수님을 모실 빈 방이 있습니까? 이 빈 방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우리 안의 죄와 나쁜 생각들(정욕, 거짓, 슬픔, 반항, 적대감, 분노, 게으름, 살의, 교만, 태만 등)을 버리면 내 마음의 빈 방은 만들어질까요?
바울은 예수님의 비움을 소개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기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예수님 성육신의 본질은 자기 비움(케노시스)에 있습니다. 자기비움이란 ‘나를 포기하거나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낮아지는 것이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의 모습 속에도 자기 비움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순종을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내어 놓았을 때, 하나님은 마리아의 몸에 예수를 품게 하셨습니다. 비움은 채움으로 나아갑니다. 빈 방은 은혜로 채워집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묵상하지 않고 하나님께 문을 열고 그분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길 때, 그리고 그 빈 방을 주님께 내어 드릴 때, 주님은 그 빈 방에 오셔서 은혜로 그 방을 가득 채우십니다.
예년의 성탄절은 늘 분주했습니다. 모든 일정은 식사 약속, 만남 약속, 행사들로 꽉 찼었습니다. 먹을 것도 풍성했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예배당도 여러 행사로 분주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그 때에는 우리에게 빈방이 있었는가, 다시 묻게 됩니다. 도리어 지금, 예배당이 비어 있는 이 시간, 예배당 마당에 즐비하게 주차된 자동차가 아니라 빈 공간에 들어 서 있는 작은 성탄 트리와 장식이 있는 이 시간이 빈방의 의미를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마리아처럼 고백합시다: ‘주님, 내게 빈방이 있습니다.’
나누기
1. 잠시 멈춘 연말, 분주함이 사라진 연말, 그 빈 공간에 무엇을 채우십니까?
2. 지금,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마무리 기도
하나님, 오실 주님을 맞이할 빈방을 마련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비우고 하나님을 구할 때, 하나님이 채워지고, 내 힘을 빼고 하나님을 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을 믿습니다. 비움의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