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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누가복음 9: 28~36

박경수 목사

2023.02.19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제자를 제자 되게 한 사건입니다.>

 

1983년 여름이었습니다. 40년 전이지만 지금도 얼핏얼핏 기억이 납니다. 저는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여름 방학을 맞아 고향인 진주에 내려갔습니다. 마침 제가 다니던 모(母)교회 고등부에서 가까이에 있는 무학산으로 산 기도를 간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여러 선배와 고등부 후배들과 함께 무학산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무학산은 주기철 목사님이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할 때 산 기도를 자주 했던 장소입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무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먼저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함께 기도한 뒤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미 해가 져서 산은 어둡고 캄캄했습니다. 고등부를 지도하던 선배 한 사람이 “주님을 정말 만나고 은혜를 체험하려면 오늘 적어도 소나무 한 그루는 뽑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무학산에는 크고 작은 소나무가 많았습니다. 나무를 붙들고 그만큼 열심히 기도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산세가 상당히 험하기 때문에 한 가지 당부를 했습니다. “산 기도는 특별히 위험하다. 단지 산이 험해서라기보다는 기도의 열기도 세기 때문에 마귀도 그만큼 세게 역사한다. 기도하다가 뭔가 이상하면 ‘사단아 물러가라’고 고함을 질러라. 그리고 바람 소리나 벌레 소리에 정신을 뺏기지 말고 기도에만 열중해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런 후에 흩어져서 각자 자리를 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크게 혹은 작게 기도하는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한 15분쯤 지났을 때입니다. 고등부에서 골치 덩어리였던 권00이라는 친구가 갑자기 ‘사단아 물러가라,’ ‘사단아 물러가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자기 앞에서 무엇인가가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을 꼭 감고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서 계속 ‘사단아 물러가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조금 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00이는 바위 위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서 이**이라는 고등부 학생이 소나무를 붙들고 흔들면서 기도하자 나무의 가지가 흔들리면서 이상한 소리를 냈던 것입니다. 00이의 ‘사단아 물러가라’가 하도 심상치 않아서 저와 몇 선배들이 결국 00이에게 갔을 때, **이가 소나무를 뽑아들고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야! 진짜 소나무를 뽑아서 올라오는데 섬찟하면서도 아찔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소나무라고는 하지만 소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올라오는데 아연실색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00이와 **이는 교회에서 중직으로 잘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산 기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00이와 **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산 기도를 가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 위에서 예수님은 그 얼굴과 옷이 변화되었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온 산을 뒤덮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구름도 사라지고 모세와 엘리야도 사라지고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라서 서로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이 산을 우리는 보통 변화산이라고 부릅니다. 이 산에서 주님의 얼굴과 옷이 광채가 나면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있는 다볼산이 이 변화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다볼산 정상에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을 기념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정황과 앞뒤의 문맥으로 미루어 보아 이스라엘의 북단에 있는 헐몬산이 변화산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변화산이 다볼산인지 헐몬산인지는 저나 여러분에게 그리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산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은 공관복음서인 마태복음 17장, 마가복음 9장, 누가복음 9장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이 사건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중요한 기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은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곧 주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입니다. 주님이 세례를 받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 중)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직전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공생애 막바지 때, 바로 오늘 변화산 위에서입니다. 구름이 온 산에 덮이더니 하늘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눅 9:35 중)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바로 직전에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따라서 변화산의 사건은 주님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과 확신을 주는 사건이었고, 제자들에게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심을 믿도록 은혜를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변화산의 사건은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하고, 제자들을 제자들 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중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고, 영광스런 용모로 변모되십니다.>

 

먼저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오늘 본문을 살펴봅시다. 누가복음은 마태나 마가의 이야기와 비교할 때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첫째가 누가복음만이 주님이 “기도하실 때에” 변화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장 28,29절을 보면 주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변화를 경험했다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강조는 누가복음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기도의 복음서’라고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고 말하지만,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기도하실 때에”(눅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다고 말합니다. 마태나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그냥 12제자를 세웠다고 말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유독 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시고” 12제자를 택하여 세우셨다고 말합니다(눅 6:12~13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또한 마태나 마가복음과는 달리, 누가복음은 종종 주님께서 한적한 곳에서 따로 “기도하셨다”(눅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야말로 주님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기도야말로 주님의 삶과 사역 저변에 도도히 흐르는 지하수 같은 것이었습니다. 기도할 때 변화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자신의 십자가를 바로 감당하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했다면 하물며 우리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예수님처럼 변화받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합시다. 예수님처럼 사명을 감당하시기 원합니까? 기도합시다. 교회에서는 기도하는 사람만큼 귀한 분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누가복음만이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31절은 주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기록합니다. 우리 성경에 “별세”라고 번역된 단어의 그리스어 원어는 ἐξoδoς(exodus)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단어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세상을 탈출(exodus)하여 하나님 우편으로 가실 것을 보여 주는 단어입니다. 또한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이 세상 죄악과 굴레로부터 탈출(exodus)시켜 새 세계로 이끌어 주실 것임을 보여 주는 단어입니다. 주님의 죽음만이 아니라 주님의 사명까지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모였다면 이것은 보통 회의가 아닙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이요, 엘리야는 구약의 예언자를 대표하는 사람이요, 예수님은 신약 시대의 대표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모임은 신구약 합동회의입니다. 이 회의에 모세와 엘리야가 참석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구약의 율법과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음성까지 들렸으니 십자가가 곧 하나님의 뜻임을 확증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따라서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 공생애의 절정이었다고 할 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옷만이 변화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누가와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얼굴’과 옷이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누가 복음에 “용모”라는 단어는 정확하게 번역하면 “얼굴”(face)이라는 단어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절에서는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우리말 단어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많은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얼굴이라는 단어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신, 넋을 말합니다. 그래서 정신이 없는 사람이나 넋을 잃고 있는 사람을 보고 “얼빠졌다”고 합니다. “얼빠졌다”고 하면 “정신이 빠졌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리고 ‘굴’이라는 것은 동굴을 말합니다. 따라서 얼굴이라는 것은 사람의 얼이 서려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 됩니다. 얼이 내용이라면 굴은 형식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을 보려면 손이나 발이나 배를 보아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아야 그 사람의 마음 상태나 기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얼이 나타나는 장소가 바로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4장 29~35절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도한 후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말합니다. 오늘 신약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한 후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말합니다. 은혜로 충만한 사람은 그 얼굴을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과 얼이 그 얼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나이 40에는 자기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 성도님들 얼굴을 보니 세월만큼이나 주님과 동고동락한 흔적이 보입니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우리가 우리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얼을 바꾸면 우리의 굴도 바뀌어집니다. 우리의 얼이 말씀과 기도로 충만하면 모세처럼, 예수님처럼 얼굴에 광채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뒤바뀌면 안 됩니다. 얼을 바뀌면 굴이 변화되는 것이지, 굴을 바꾸어서 얼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기도로 얼을 바꾸고 자신의 얼굴에 책임질 수 있는 미남 미녀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광스런 변화산 경험 이후 제자들은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와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제 조금 관점을 바꾸어서 제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군대에서는 줄을 잘 서면 잘 풀린다고 말합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소위 행세한다 하는 집 아들 옆에 있다 보면 덩달아서 좋은 보직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만 쏙 뽑아서 좋은 곳으로 보낼 수가 없으니까 그 친구가 있는 줄이 통째로 좋은 곳으로 갔던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던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옛날에 어른들이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정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자다가 떡이 생겼습니다.

본문 9장 32절을 보면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라갔다가 곤하여 깊이 졸다가 깨어서 예수님의 변화하신 모습과 모세와 엘리야를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산을 뒤덮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구름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으니 정말 예기치 않은 은혜요 복입니다.

저는 베드로의 일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신비로운 체험이 있다면 바로 이 변화산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후에 베드로후서 1:16~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에게는 변화산의 체험이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떡이 생기는 법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주님과 함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저는 예배 시간이나 성경공부 시간에 졸거나 주무시는 분들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이나 감정이 없으니까 안심하고 조셔도 됩니다. 아니 이렇게 나와서 앉아계신 것만 해도 어딥니까?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잤는데 우리라고 무슨 통뼈 있습니까? 졸아도 좋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졸다가도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졸다가 은혜 받은 베드로는 비몽사몽간에 “주님! 주님의 얼굴과 옷이 광채가 납니다. 모세와 엘리야 선지자를 뵙게 되다니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저는 여기가 좋사오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튿날 주님은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산 위와 산 아래는 얼마나 달랐습니까? 산 위는 은혜의 장소였지만, 산 아래는 고통의 세상이었습니다. 산 아래 세상은 귀신에 사로잡힌 아들을 구해 달라는 부모의 울부짖음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산 위에서의 은혜 체험은 산 아래에서의 사명을 위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도 변화산에서의 은혜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변화산의 체험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세상을 섬기기 위한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교회의 소금이라고 말하지 않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교회의 빛이라고 말하지 않고,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세상을 살리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에서 은혜 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은혜를 가지고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산 아래 동네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삶의 현장으로 나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락방에서 주님을 만나고 시장에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변화산 없이 세상만 추구하는 것은 세속주의입니다. 하지만 변화산에만 머물고 세상으로 나가지 않는 것은 영적 이기주의이며 책임회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매일 변화산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은혜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는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저는 우리가 섬기는 이 소망교회가 변화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장소, 얼굴을 변화시키는 장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장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문다면 영적으로 이기적인 성도, 책임을 유기하는 교회가 될 뿐입니다. 오히려 세상 속으로 나아가 복음의 진리를 전하고, 세상 안에서 믿음의 역사를 보여 주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사랑의 인내를 나타내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흩어지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더욱 바랍니다.

소망교회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이와 같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그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와 교회가 됩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자, 이런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이 찾는 제자가 되고, 우리가 사랑하며 섬기는 이 교회가 바로 하나님이 찾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As He Was Praying On a Mountain

 

Luke9:28-36

 

It was the summer of 1983. Even after four decades,I remember bits and pieces of what happened that day. That summer, I went to Jinju, my hometown, from Seoul where I was attending university. During my stay there, the youth group ofmy hometown church was planning a trip to a nearby mountain, Mt. Muhak, for mountain prayer to which I was invited. So I went to a prayer house in Mt. Muhak withthe youth group, including my seniors and juniors. Mt. Muhak was the mountain that Pastor Ju Gi-cheol would often visit to pray when he was ministering at Moonchang Church in Masan. We went up the mountain late in the evening. After gathering for worship and prayer, we scattered for personal prayer. The sun had already set, and it was dark, pitch-black. My senior and leader of the youth group said, “If you really want to meet God and experience His grace, you must at least pull out a pine tree as you pray.” In fact, there weremany pine trees, big and small, in Mt. Muhak. What he meant was that we should pray hard. Then he added a warning since the mountain was rough. “Mountain prayer is especially dangerous. It’s not just the rough terrain; when people pray hard, the devil works more furiously. So if you feel something strange during your prayer, shout, ‘Satan, be gone!’ And don’t be distracted by the sounds of the wind or insects; concentrated only on prayer.”

 

After all the announcements, we scattered; each found his/her spot and started to pray. The sound of praying, loud and soft, could be heard here and there. Fifteen minutes or so had passed. A student of the youth group surnamed Kwon, a troublemaker, suddenly cried out, “Satan, be gone! Satan, be gone!” He had heard some strange noises and had seen something move continuously in front of him. To overcome his fear, he shut his eyes andrepeatedly cried, “Satan, be gone!” A while later, we found out what was making those sounds. While this boy surnamed Kwon was sitting on a rock as he prayed, another student surnamed Lee was below him, holding and shaking a pine tree as he prayed; and whenever he shook the tree, the branches would make strange sounds. Since his cries casting out Satan sounded so desperate, a few of my seniors and I went to check on him. When we did, we saw the other student appear with a pine tree in his hand. Wow! How shocked and awed I was to see himcarry a real pine tree. Even though it was a small one, we were utterly shocked. The two main characters of this story are currently serving their church as prominent leaders. Whenever I think of mountain prayer, I cannot forget these two boys.

 

In today’s passage from Luke Jesus takes Peter, James, and John to a mountain to pray. On the mountain Jesus’ face and clothes aretransfigured and He talksto Moses and Elijah. Clouds cover the whole mountain. And at that moment, a voice is heard from heaven, saying, “This is my Son, whom I have chosen; listen to him.” (Luke 9:35) Then the clouds vanish; Moses and Elijah disappear; and only Jesus is left. The disciples are shocked and left speechless. This mountain is usually called the “Mount of Transfiguration”—because it is where our Lord’s appearance and clothes were changed, shining like light. Since the early church, many Christians believed it to be Mt. Tabor. This is why on Mt. Tabor there still stands a church built in celebration of Jesus’ transfiguration. However, recently many scholars have come to believe that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was actually Mt. Hermon, located in the northern part of Israel, considering the various circumstances and context of the story of Jesus’ transfiguration. Whether it is Mt. Tabor or Mt. Hermon does not matter so much. What matters is what Jesus’ transfiguration means to us.

 

The transfiguration is recorded in all of the Synoptic Gospels—in Matthew 17, Mark 9, and Luke 9. This signals the importance of the event which marked a turning point for Jesus and the disciples. According to the Synoptic Gospels, God’s voice came from heaven twice during the life of Jesus. (If we expand our scope to the four Gospels, God’s voice came three times, including when Jesus raised Lazarus from the dead in John 12:28.)First, it came when Jesus started His public ministry, that is, when He was baptized. As Jesus was baptized and prayed, the Spirit descended from heaven like a dove and a voice said,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Luke 3:22) This was the voice of God given just before Jesus started His public ministry. The second voice came at the end of Jesus’ public life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as we read just now. After clouds covered the mountain, a voice came from heaven: “This is my Son, whom I have chosen; listen to him.” (Luke 9:35) This was the voice God gave right before our Lord went up to Jerusalem to bear the cross and to suffer. Therefore, the transfiguration was an event that gave Jesus the strength and confidence to bear the cross according to God’s will; and for the disciples it was an event that gave them the grace to believe that Jesus was the Messiah, the Son of God. In other words, the transfiguration made Jesus truly Jesus and turned His disciples into true disciples.

 

First, let’s study the passage focusing on Jesus. The story of the transfiguration in Luke has some distinct characteristics compared to Matthew and Mark. To begin with, only Luke mentions that Jesus was changed “as he was praying.” Luke 9:28-29 clearly states that Jesus was changed “as he was praying” when He “went up onto a mountain to pray.” Emphasis on prayer is a characteristic of Luke. Accordingly, it is often dubbed “The Gospel of Prayer.” For example, while Matthew and Mark just state that a voice came from heaven as Jesus was baptized and coming out of the water, Luke says that a voice was heard “as he was praying” after the baptism. (“When all the people were being baptized, Jesus was baptized too. And as he was praying, heaven was opened” (Luke 3:21)) In Matthew and Mark it just says Jesus appointed the Twelve, but Luke records that Jesus “spent the night praying” and in the morning appointed them. (“One of those days Jesus went out to a mountainside to pray, and spent the night praying to God. When morning came, he called his disciples to him and chose twelve of them, whom he also designated apostles:” (Luke 6:12-13)) Furthermore, unlike Matthew and Mark, Luke records that Jesus often went to a solitary place “and prayed.” (“But Jesus often withdrew to lonely places and prayed.” (Luke 5:16)) Indeed, prayer was Jesus’ driving force in carrying out His calling. It was like an underground water gushingbeneath His life and ministry. When He prayed, He experienced change, heard God’s voice, and was able to bear the cross. If Jesus prayed, what more needs to be said about us? Do you want to be changed like Jesus? Pray. Do you want to fulfill your calling like our Lord? Pray. No one is more precious in church than the one who prays.

 

Second, only Luke records what was spoken among Jesus, Moses, and Elijah. Luke 9:31 says that Jesus talked with the two prophets about His departure. While the Korean Bible translates this as “death,” the original Greek is ἐξoδoς(exodus)—a highly symbolic word. It is a word that points to the coming exodus of Jesus, that is, His departure from the world and arrival at the right hand of God after bearing the cross. Also, it contains the meaning that Jesus’ cross willallow us to make an exodus from the sins and yoke of this world and enter a new world. This word, therefore, symbolizes not just the Lord’s death but also His mission. Indeed, if Moses, Elijah, and Jesus got together, this is hardly your regular meeting. Moses represents the law of the Old Testament; Elijah represents the prophets of the Old Testament; and Jesus represents the age of the New Testament. In other words, it was a joint meeting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The fact that Moses and Elijah were present at the meeting clearly shows that Jesus’ crucifixion in Jerusalem would be the fulfillment of the law and the prophecies of the Old Testament. On top of this, God’s voice was heard, confirming at that very moment that Jesus’ crucifixion is God’s will. Therefore, Jesus’ 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 holds great significance. It may be called the climax of His public life.

 

Third, while Mark just says that Jesus’ clothes were changed, Luke and Matthew describethat the appearance of “his face” and his clothes changed. Although the Korean translation of Luke in the New Korean Revised Version says that His “appearance” changed, a more accurate translation would be the “appearance of his face.” The Korean translation of Matthew 17:2 says, “his face shone like the sun and his clothes became white like light.”Sometimes a scrutiny of Korean words makes me realize many things. Carefully consider the word ulgul, which means “face.”Ul means man’s “spirit” or “soul.” That is why when Koreans say,“He has lost his ul,” it means that one has lost his wits or mind. To lose your ul means to lose your mind, right? And gul means “cave.” Therefore, ulgul means “a cave where a man’s soul resides.” If ul is the content, gul is the form. We cannot read a man’s heart or soul by looking at his hands, feet, or stomach. We must study his face to know his state of mind or feeling. It is because our face reflects our soul.

 

Exodus 34: 29-35 says that Moses’ face shone after he prayed on Mt. Sinai. In today’s passage from the New Testament, Jesus’ face shone after He praye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We can tell if a person is full of God’s grace by his face. A man’s heart and spirit show on his face. His facereflects his personality and character. That is why our ancestors wisely said thatwhen one becomes forty, he must take responsibility for his face. Dear members of Somang Church, I see in your faces the traces of your walk with the Lord through the years. That we should be responsible for our face also means that we can change the appearance of our face. When we change our soul, we can change our face too. When our souls are full of the Word and prayer, our face will also shine—like Moses and Jesus. But this must not be reversed. The gul(cave) changes by changing the ul (soul); not the other way round. It is my hope that all your faces will be changed through prayer and that you will become beautiful women and handsome men who take accountability for their looks.

 

Now let’s shift the focus to the disciples. In Korea, they say you have to “line up well” in the military to fare well. This may not be the case today, but it was in the past. If you stand next in line to a guy from a rich and famous family, you maygeta good position. This is because the military just can’t single out one person and send him to a good place; to avoid appearing too obvious, it sends his entire line to that place. In today’s passage, Peter, James, and John receive a truly unexpected grace and blessing for following Jesus. Didn’t our ancestors say, “You get rice cakes even in your sleep if you listen to your elders”? This was exactly what happened to Peter, James, and John. In Luke 9:32, it says they followed Jesus to the mountain and saw Jesus’ transfiguration and Jesus talking with Moses and Elijah as they awoke from their sleep. Then they experienced something amazing: the clouds completely covered the mountain. Clouds symbolize God’s presence. And they heard the voice of God. Indeed,they experienced an unexpected grace and blessing.

 

I think what happene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was for Peter the most unforgettable and mysterious experience of his life. In 2 Peter 1:16-18, he confesses, “For we did not follow cleverly devised stories when we told you abou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in power, but we were eyewitnesses of his majesty. He received honor and glory from God the Father when the voice came to him from the Majestic Glory, saying,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I am well pleased.’ We ourselves heard this voice that came from heaven when we were with him on the sacred mountain.” To Peter, this experience was the most stunning. To those who walk with Jesus, unexpected “rice cakes” are given. Those who walk with the Lord experience grace. Those who follow Him get blessings. What matters is whether I am really in Him or not. John 15:7 clearly states,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done for you.” I have no hard feelings toward congregants who sleep or doze during service or Bible study; so feel free to do so. How grandit is that you are sitting here at all! Even Peter, James, and John dozed; why would we be any different? It’s okay to doze. When we walk with the Lord, we receive grace even when we doze. See how Peter, half asleep, receives grace and says, “Lord! Your face and clothes are shining. Am I in a dream to see the prophets Moses and Elijah? I love it here! So let’s build a picturesque house on top of these green hills and live together—You, Moses, Elijah, and us.”

 

But let us remember this: the next day our Lord came down the mountain. How different were the world on top of the mountain and the one below? On the mountain grace abounded, but below there was only pain. The world below was filled with desperate cries of parents begging for their children to be saved from evil spirits. What is important is that the graceful experience on top of the mountain was given for the fulfillment of the mission below it. Even our Lord carried out His mission after receiving grace on top of the mountain by entering Jerusalem and carrying the cross. You and I, followers of Jesus, absolutely need an experience like Jesus’ transfiguration. But the purpose of this experienceis to receive the grace we need to serve the world. Our Lord did not call us the salt of the “church” but of the “world.” He did not call us the light of the “church” but of the “world.” The church must be a community that saves the world. It is vital that we receive grace at church. But what is more important is that we take this grace into the world and change it. After meeting Go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we must go down to the village below. After receiving grace at church, we must go out to the world where life takes place and live as the light and salt of this world. We must meet our Lord in our room behind closed doors and then go out and meet people in the streets. Pursuing only the world without a “transfiguration experience” is just secularism. On the other hand, remaining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and not going out into the world is spiritual selfishness and evasion of responsibility.

 

Dear Church, I earnestly hope that you and I will experience our own 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 every day. But it is my hope that this will not just end in receiving grace, but that we will carry out our mission with that grace given us, becoming the light and salt of this world. I hope that this church that we serve, Somang Church, will become our “Mount of Transfiguration.” It is my desire that it becomes the place of our prayer, the place where our faces are changed, the place where we experience the grace of God, and the place where we hear God’s voice. But if we remain here, we will only become spiritually selfish Christians and a church that abandons its responsibility. Instead, it is my hope that Somang Church will become a “scattering church” that penetrates into the world and shares the truth of the gospel, manifests the work of faith in the world, shows a persevering love to those in pain, and builds the kingdom of God on earth. I hope that Somang Church will continue to take on these ministries in the future, as it did in the past. Let us be a church anddisciples of Jesuswho experience God’s deep grace and fulfill our mission through that grace. God is seeking for such disciples, such a church. It is my earnest desire that you and I will become those disciples that God is looking for, that this church we so love and serve will become that church God w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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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 28~36

28~36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제자를 제자 되게 한 사건입니다.>

 

1983년 여름이었습니다. 40년 전이지만 지금도 얼핏얼핏 기억이 납니다. 저는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여름 방학을 맞아 고향인 진주에 내려갔습니다. 마침 제가 다니던 모(母)교회 고등부에서 가까이에 있는 무학산으로 산 기도를 간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여러 선배와 고등부 후배들과 함께 무학산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무학산은 주기철 목사님이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할 때 산 기도를 자주 했던 장소입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무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먼저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함께 기도한 뒤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미 해가 져서 산은 어둡고 캄캄했습니다. 고등부를 지도하던 선배 한 사람이 “주님을 정말 만나고 은혜를 체험하려면 오늘 적어도 소나무 한 그루는 뽑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무학산에는 크고 작은 소나무가 많았습니다. 나무를 붙들고 그만큼 열심히 기도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산세가 상당히 험하기 때문에 한 가지 당부를 했습니다. “산 기도는 특별히 위험하다. 단지 산이 험해서라기보다는 기도의 열기도 세기 때문에 마귀도 그만큼 세게 역사한다. 기도하다가 뭔가 이상하면 ‘사단아 물러가라’고 고함을 질러라. 그리고 바람 소리나 벌레 소리에 정신을 뺏기지 말고 기도에만 열중해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런 후에 흩어져서 각자 자리를 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크게 혹은 작게 기도하는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한 15분쯤 지났을 때입니다. 고등부에서 골치 덩어리였던 권00이라는 친구가 갑자기 ‘사단아 물러가라,’ ‘사단아 물러가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자기 앞에서 무엇인가가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을 꼭 감고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서 계속 ‘사단아 물러가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조금 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00이는 바위 위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서 이**이라는 고등부 학생이 소나무를 붙들고 흔들면서 기도하자 나무의 가지가 흔들리면서 이상한 소리를 냈던 것입니다. 00이의 ‘사단아 물러가라’가 하도 심상치 않아서 저와 몇 선배들이 결국 00이에게 갔을 때, **이가 소나무를 뽑아들고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야! 진짜 소나무를 뽑아서 올라오는데 섬찟하면서도 아찔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소나무라고는 하지만 소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올라오는데 아연실색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00이와 **이는 교회에서 중직으로 잘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산 기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00이와 **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산 기도를 가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 위에서 예수님은 그 얼굴과 옷이 변화되었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온 산을 뒤덮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구름도 사라지고 모세와 엘리야도 사라지고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라서 서로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이 산을 우리는 보통 변화산이라고 부릅니다. 이 산에서 주님의 얼굴과 옷이 광채가 나면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있는 다볼산이 이 변화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다볼산 정상에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을 기념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정황과 앞뒤의 문맥으로 미루어 보아 이스라엘의 북단에 있는 헐몬산이 변화산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변화산이 다볼산인지 헐몬산인지는 저나 여러분에게 그리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산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은 공관복음서인 마태복음 17장, 마가복음 9장, 누가복음 9장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이 사건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중요한 기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은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곧 주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입니다. 주님이 세례를 받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 중)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직전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공생애 막바지 때, 바로 오늘 변화산 위에서입니다. 구름이 온 산에 덮이더니 하늘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눅 9:35 중)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바로 직전에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따라서 변화산의 사건은 주님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과 확신을 주는 사건이었고, 제자들에게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심을 믿도록 은혜를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변화산의 사건은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하고, 제자들을 제자들 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중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고, 영광스런 용모로 변모되십니다.>

 

먼저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오늘 본문을 살펴봅시다. 누가복음은 마태나 마가의 이야기와 비교할 때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첫째가 누가복음만이 주님이 “기도하실 때에” 변화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장 28,29절을 보면 주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변화를 경험했다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강조는 누가복음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기도의 복음서’라고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고 말하지만,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기도하실 때에”(눅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다고 말합니다. 마태나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그냥 12제자를 세웠다고 말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유독 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시고” 12제자를 택하여 세우셨다고 말합니다(눅 6:12~13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또한 마태나 마가복음과는 달리, 누가복음은 종종 주님께서 한적한 곳에서 따로 “기도하셨다”(눅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야말로 주님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기도야말로 주님의 삶과 사역 저변에 도도히 흐르는 지하수 같은 것이었습니다. 기도할 때 변화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자신의 십자가를 바로 감당하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했다면 하물며 우리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예수님처럼 변화받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합시다. 예수님처럼 사명을 감당하시기 원합니까? 기도합시다. 교회에서는 기도하는 사람만큼 귀한 분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누가복음만이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31절은 주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기록합니다. 우리 성경에 “별세”라고 번역된 단어의 그리스어 원어는 ἐξoδoς(exodus)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단어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세상을 탈출(exodus)하여 하나님 우편으로 가실 것을 보여 주는 단어입니다. 또한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이 세상 죄악과 굴레로부터 탈출(exodus)시켜 새 세계로 이끌어 주실 것임을 보여 주는 단어입니다. 주님의 죽음만이 아니라 주님의 사명까지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모였다면 이것은 보통 회의가 아닙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이요, 엘리야는 구약의 예언자를 대표하는 사람이요, 예수님은 신약 시대의 대표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모임은 신구약 합동회의입니다. 이 회의에 모세와 엘리야가 참석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구약의 율법과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음성까지 들렸으니 십자가가 곧 하나님의 뜻임을 확증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따라서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 공생애의 절정이었다고 할 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옷만이 변화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누가와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얼굴’과 옷이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누가 복음에 “용모”라는 단어는 정확하게 번역하면 “얼굴”(face)이라는 단어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절에서는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우리말 단어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많은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얼굴이라는 단어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신, 넋을 말합니다. 그래서 정신이 없는 사람이나 넋을 잃고 있는 사람을 보고 “얼빠졌다”고 합니다. “얼빠졌다”고 하면 “정신이 빠졌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리고 ‘굴’이라는 것은 동굴을 말합니다. 따라서 얼굴이라는 것은 사람의 얼이 서려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 됩니다. 얼이 내용이라면 굴은 형식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을 보려면 손이나 발이나 배를 보아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아야 그 사람의 마음 상태나 기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얼이 나타나는 장소가 바로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4장 29~35절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도한 후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말합니다. 오늘 신약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한 후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말합니다. 은혜로 충만한 사람은 그 얼굴을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과 얼이 그 얼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나이 40에는 자기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 성도님들 얼굴을 보니 세월만큼이나 주님과 동고동락한 흔적이 보입니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우리가 우리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얼을 바꾸면 우리의 굴도 바뀌어집니다. 우리의 얼이 말씀과 기도로 충만하면 모세처럼, 예수님처럼 얼굴에 광채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뒤바뀌면 안 됩니다. 얼을 바뀌면 굴이 변화되는 것이지, 굴을 바꾸어서 얼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기도로 얼을 바꾸고 자신의 얼굴에 책임질 수 있는 미남 미녀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광스런 변화산 경험 이후 제자들은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와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제 조금 관점을 바꾸어서 제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군대에서는 줄을 잘 서면 잘 풀린다고 말합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소위 행세한다 하는 집 아들 옆에 있다 보면 덩달아서 좋은 보직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만 쏙 뽑아서 좋은 곳으로 보낼 수가 없으니까 그 친구가 있는 줄이 통째로 좋은 곳으로 갔던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던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옛날에 어른들이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정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자다가 떡이 생겼습니다.

본문 9장 32절을 보면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라갔다가 곤하여 깊이 졸다가 깨어서 예수님의 변화하신 모습과 모세와 엘리야를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산을 뒤덮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구름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으니 정말 예기치 않은 은혜요 복입니다.

저는 베드로의 일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신비로운 체험이 있다면 바로 이 변화산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후에 베드로후서 1:16~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에게는 변화산의 체험이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떡이 생기는 법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주님과 함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저는 예배 시간이나 성경공부 시간에 졸거나 주무시는 분들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이나 감정이 없으니까 안심하고 조셔도 됩니다. 아니 이렇게 나와서 앉아계신 것만 해도 어딥니까?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잤는데 우리라고 무슨 통뼈 있습니까? 졸아도 좋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졸다가도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졸다가 은혜 받은 베드로는 비몽사몽간에 “주님! 주님의 얼굴과 옷이 광채가 납니다. 모세와 엘리야 선지자를 뵙게 되다니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저는 여기가 좋사오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튿날 주님은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산 위와 산 아래는 얼마나 달랐습니까? 산 위는 은혜의 장소였지만, 산 아래는 고통의 세상이었습니다. 산 아래 세상은 귀신에 사로잡힌 아들을 구해 달라는 부모의 울부짖음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산 위에서의 은혜 체험은 산 아래에서의 사명을 위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도 변화산에서의 은혜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변화산의 체험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세상을 섬기기 위한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교회의 소금이라고 말하지 않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교회의 빛이라고 말하지 않고,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세상을 살리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에서 은혜 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은혜를 가지고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산 아래 동네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삶의 현장으로 나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락방에서 주님을 만나고 시장에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변화산 없이 세상만 추구하는 것은 세속주의입니다. 하지만 변화산에만 머물고 세상으로 나가지 않는 것은 영적 이기주의이며 책임회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매일 변화산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은혜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는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저는 우리가 섬기는 이 소망교회가 변화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장소, 얼굴을 변화시키는 장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장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문다면 영적으로 이기적인 성도, 책임을 유기하는 교회가 될 뿐입니다. 오히려 세상 속으로 나아가 복음의 진리를 전하고, 세상 안에서 믿음의 역사를 보여 주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사랑의 인내를 나타내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흩어지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더욱 바랍니다.

소망교회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이와 같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그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와 교회가 됩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자, 이런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이 찾는 제자가 되고, 우리가 사랑하며 섬기는 이 교회가 바로 하나님이 찾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2023년 2월 19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눅 9장 28~36)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9장, 364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눅 9장 28-36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2월 19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산에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체험하려면 적어도 소나무 한 그루씩 뽑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면, 그 경험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변화산 사건은 먼저 예수님에게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첫째, 기도하실 때에 변화를 경험했다 라고 누가복음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야말로 주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기도할 때 변화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자신의 십자가를 바로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 변화산에서 주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이요 엘리야는 구약의 예언자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신약 시대의 대표이니, 신구약의 대표자들이 다함께 모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구약의 율법과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얼굴과 옷이 변화되었습니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과 그 얼굴에 나타납니다. 말씀과 기도가 충만하면, 예수님처럼 얼굴에 광채가 나게 됩니다.

 

변화산 경험은 제자들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다가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은혜와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산을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변화하신 경험과 모세와 엘리야를 목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복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주님과 함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산 위에서의 은혜 체험은 산 아래에서의 사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변화산의 체험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은 세상을 섬기기 위한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산 아래 동네로 가야 합니다.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과 확신을 주는 사건이었고, 제자들에게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믿도록 은혜를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변화산의 사건은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하고, 제자들을 제자들 되게 만든 사건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산에서의 경험을 매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은혜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는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누기

  1. 하나님의 은혜를 강렬하게 체험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언제, 어디서였나요?
  2. 그 때의 은혜 경험은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마무리 기도

하나님,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며 은혜를 체험했을 때, 은혜를 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명 감당하는 이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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