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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는 절망스러운 현실에 처한 한 가족사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인 룻기는 4장으로 구성된 아주 짧은 책입니다. 종종 성경에서 룻기를 찾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룻기가 앞쪽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오경이 끝나고, 여호수아, 사사기, 그리고 그다음에 이어지는 책이 룻기입니다. ‘왜 이곳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룻이란 인물이 이방 여인이기 때문에 ‘어떻게 성경에 이방 여인의 이름으로 된 책이 있을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합니다.
룻기는 기근을 피해 모압으로 떠난 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들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얻게 되는 조그마한 희망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 안에 특별한 예언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율법도 없습니다. 별반 다른 지혜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저 한 가족사, 흘러가는 이야기가 전개될 뿐입니다.
더구나 룻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들으면 참으로 창피할 만한 문젯거리를 제공합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모압에서 들어온 이방 여인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줍니다.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고, 얼마든지 덮을 수 있는 이야기를 룻기가 알려 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룻기는, 우리가 믿는 이 ‘성경’ 속에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지키며 빛나고 있습니다.
혹시 안산이나 가산, 가리봉동, 구로동 등지나 그 밖의 다른 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만난 경험이 있으십니까? 집도 아닌 컨테이너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남루한 모습의 피부 빛이 다른 노동자들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제대로 될까’ 걱정이 들 만한 작은 식당에서 우리나라 말도 서툰 여인네가 일하는 모습을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룻에 대한 인상을 보다 확실히 가지려면,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연상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것 같은, 피부색이 다른 한 여인이 힘없는 우리 할머니를 모시고 나물을 팔고 있는 모습, 바로 그 모습이 룻입니다.
룻기의 배경은 사사 시대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흉년이 들자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때 함께 건너간 아내의 이름이 ‘나오미’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에게 절망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세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함께 떠나온 나오미가 홀로 남았고, 모압에서 맞이한 두 며느리, 즉 모압의 두 여인이 남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르바’와 ‘룻’입니다. 이제 여인 셋만 남았고, 모두 과부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여성이 자립해 서기에는 너무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여성만으로는 도저히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없던 시대입니다. 안전할 수 없고, 생존하는 일조차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세 여인만 남게 된 것입니다.
룻기의 앞부분은 죽음과 공포로 채워져 있습니다. 슬픔과 비탄, 절망과 혼돈의 그림자가 가득합니다. ‘이렇게 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장면입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자가 되었습니다. 힘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어떻게 안전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자손을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정말 희망 없는 가족사입니다. 그런데 룻기는, 바로 이런 절망스러운 여인들에게 나타난 놀랍고 엄청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이방 여인’ 룻에게서 위대한 ‘이스라엘 왕’ 다윗의 씨가 자라납니다.
룻기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모압 여인 룻도 함께 돌아옵니다. 참으로 처량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은 매우 웅장합니다. 이렇게 비천하고 처량하게 따라온 이방 여인 룻이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릴 위대한 왕 다윗의 증조모가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룻기의 위치입니다. 룻기는 사사기 바로 다음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서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룻도 함께 살았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왕이 없던 시대, 지도자가 없던 시대, 그래서 백성이 이리저리 내몰리고 이방 민족에게 수난당하며 살아가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당시 어느 조그맣고 힘없는 두 여인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사건을 조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릴 위대한 왕, 곧 다윗 왕이 준비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룻기는 매우 중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나오미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룻에게도 불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편을 잃었습니다. 모압 땅까지 가서 만난 사이였으나, 두 사람에게 큰 불행이 닥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나오미에게 그러한 불행이 없었다면, 그리고 룻에게 그와 같은 불행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왕, 미래를 다스릴 위대한 다윗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룻기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며 생로병사와 싸우고, 누구를 만나고, 또 누구와 접촉하며 살아가는 모든 일이 결국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와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장차 있을 위대한 사건들과 연결되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바로 이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바입니다.
성경을 보면, 정말 나오미와 룻, 이후 등장하는 보아스조차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그들 사이에서 위대한 다윗 왕이 태어나리라고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무슨 특별한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오직 생존이었습니다. 그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스럽게 응답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그들이 죽지 않고 삶을 살아냈기에, 그리고 사람들이 그들을 살렸기에, 보아스를 통해 그가 아들을 낳을 수 있었기에, 역사가 바뀌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룻기의 바탕에는 ‘자비에 기초한 나눔’과 ‘생명 존중’ 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룻기는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특별한 절기에 읽던 다섯 권의 책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룻기는 오순절, 즉 추수 후 곡식을 거둬들이던 절기에 읽어 내려간 책입니다. 룻기에서 가장 인상 깊게 묘사되는 장면도 추수 때입니다. 룻기 2장이 그 내용을 자세히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바가 있습니다. 추수하다 곡식을 떨어뜨리게 되면, 그 곡식 단을 다시 집어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주워서 생계를 연명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사회보장책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마 훗날 추수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룻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을 것입니다. 오순절 절기를 보낼 때마다 룻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들이 왜 곡식 단을 밭에 떨어뜨리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을 것입니다. 아마 아이들은 물었겠지요. “왜 추수하면서 아까운 곡식 단을 땅에 버리나요?” 그때 어른들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곡식을 추수할 때 밭에 곡식 단들을 조금씩 남겨 두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가져가 먹고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이란다. 먼 옛날 다윗의 증조할머니인 룻도 그렇게 해서 살아났고, 그래서 위대한 왕 다윗을 낳을 수 있게 되었단다. 그러니까 저기 저렇게 가난한 사람들, 우리가 추수하는 것을 따라오며 곡식 단을 챙겨 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홀대해서는 안 된단다.” 이런 교훈이 그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또 전해졌을 것입니다. 우리도 조금 지나면 추석을 맞이하게 되는데, 룻기는 바로 이러한 풍성한 추수 문화와 어울리면서 너그러움과 나눔, 생명 존중 사상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한번 상상해 봅니다. 베들레헴의 한 농장에서 곡식이 추수되고 있습니다. 여러 일꾼이 한 줄로 서서 낫으로 곡식을 벱니다. 저 멀리 일꾼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 병자들, 고아들, 아마 사회적 약자들이 추수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뒤를 따라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약자들은 일꾼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따라 함께 움직입니다. 그들이 남겨놓은 곡식 다발을 줍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모압 여인 룻도 함께합니다.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어느 성서학자는 룻기를 설명하면서 ‘베들레헴 공동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베들레헴 공동체가 결국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을 만들었다.”라는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고부 사이였습니다.
룻기에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참으로 놀랍고 멋진 사람들,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멋진 사람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입니다. 우선 넓은 마음을 가진 시어머니 나오미가 등장합니다. 아들들이 모두 요절했고, 남편도 죽었는데, 나오미는 정작 며느리들을 걱정합니다. 자기는 나이가 많지만 며느리들은 아직 젊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오미가 무엇을 믿고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녀가 돈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혼자 살아갈 만한 대책이라도 있었습니까? 그에게는 어떤 대책도 없었습니다. 그저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간들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늙은 과부를 어느 누가 돌보아 주겠습니까? 혹시 젊은 과부라면 아이를 낳게 하려는 욕심으로 친족 중 누군가가 데려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 할머니를 데려가려 하겠습니까?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며느리들의 행복을 위해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자 합니다. 그는 한 번도 며느리들이 잘못 들어와서 우리 가문이 망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방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서 벌을 받았다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다.”라고 자책합니다. 그러면서 며느리들을 위로합니다.
첫 번째 며느리 오르바는 결국 나오미를 떠나 제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시어머니를 떠나는 것이 홀가분하겠습니까? 아니면 시어머니를 따라 알지도 못하는, 자기가 이방 여인으로 취급받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이 낫겠습니까?
룻은 이름 그대로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홀로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은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누군가 그녀를 데려가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면, 그것이 룻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룻은 자신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끝까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그야말로 멋진 시어머니, 멋진 며느리입니다.
보아스는 소외된 이들을 살필 줄 아는 멋진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오미와 모압 여인 룻보다 더 멋진 사람들이 베들레헴에 있습니다. 먼저 ‘보아스’라는 멋지고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룻기 2장을 보면, 보아스가 자기 밭에서 일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장면이 참으로 보기에 좋습니다. 2장 4절 말씀입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룻기 2:4)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주인은 “여호와께서 자네들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하고, 일꾼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여호와께서 주인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는 관계, 그야말로 너무 멋진 관계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멋진 노사 간의 관계입니다. 노동자와 기업가의 관계입니다. 그들 사이에는 신뢰와 존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 보아스의 넒은 마음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저 멀리 떨어져 곡식을 줍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을 갖는 보아스입니다. “저기 저 멀리 있는 저 딸은 어느 집 딸인가?” 하고 물은 후, 전후 사정을 알게 된 보아스가 룻에게 다가가 이야기합니다. 흐름을 잘 표현하고 있는 새번역으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여보시오, 새댁,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이삭을 주우려고 다른 밭으로 가지 마시오. 여기를 떠나지 말고, 우리 밭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바싹 따라다니도록 하시오. 우리 일꾼들이 곡식을 거두는 밭에서 눈길을 돌리지 말고, 여자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줍도록 하시오. 젊은 남자 일꾼들에게는 댁을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겠소. 목이 마르거든 주저하지 말고 물 단지에 가서, 젊은 남자 일꾼들이 길어다가 둔 물을 마시도록 하시오. (룻기 2:8~9 중, 새번역)
얼마나 자상하고, 얼마나 배려 있는 태도입니까? 자신을 선대하는 보아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룻입니다. 그때 보아스는 자신이 룻에 대해 들었던 소문을 전하며, 도리어 룻에게 다음과 같이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요.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요. (룻기 2:12, 새번역)
이어 보아스는 일하는 일꾼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합니다.
저 여인이 이삭을 주울 때에는 곡식 단 사이에서도 줍도록 하게. 자네들은 저 여인을 괴롭히지 말게. 그를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단에서 조금씩 이삭을 뽑아 흘려서, 그 여인이 줍도록 해 주게. (룻기 2:15~16 중, 새번역)
너무나 멋진 남자, 멋진 사람입니다. 멋진 기업가요, 멋진 주인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살피고, 그가 부끄럽지 않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집니다. 결국 보아스의 배려로 룻은 보리 한 에바쯤을 거두어 나오미에게 가지고 와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나오미가,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틀림없이 주님께 복 받을 사람이다. 그 사람은 먼저 세상을 뜬 우리 식구들에게도 자비를 베풀더니,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한결같이 자비를 베푸는구나. (룻기 2:20 중, 새번역)
보아스가 이미 나오미와 룻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죽은 가족에게도 큰 선행을 베풀었음을 성경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일들이 시작이 되어 보아스가 기업을 물게 되고, 룻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넉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곳에 또 가득 들어 있습니다.
룻기에는 아름다운 베들레헴 공동체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이방 여인 룻이 보아스와 결혼한 후에 보이는 베들레헴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물기로 약속하고, 나오미와 룻을 자신의 집으로 들이는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그 여인을, 이스라엘 집안을 일으킨 두 여인 곧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그 젊은 부인을 통하여 그대에게 자손을 주셔서, 그대의 집안이 다말과 유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베레스의 집안처럼 되게 하시기를 빕니다. (룻기 4:11~12 중, 새번역)
얼마나 멋진 축복입니까? 룻이 아들을 낳자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한결같은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 주었으니,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룻기 4:15, 새번역)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다. (룻기 4:17 중, 새번역)
베들레헴 사람들은 보아스와 룻의 사랑을 스캔들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부자 앞에서, 주인 앞에서 꼬리 치더니 그럴 줄 알았다.”라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스캔들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축하했습니다. 진심으로 축복하며,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외국인인데요? 이방인인데요?”라고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러한 사랑이 있었기에, 베들레헴 공동체의 배려와 용납이 있었기에, 나오미와 룻이 살 자리가 생겼고, 그 속에서 위대한 왕 다윗이 만들어져 갔습니다.
후에 이스라엘 후손은 이 사건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다윗 왕과 더불어 그 위대한 왕을 있게 한 아름다운 공동체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대대로 추수할 때마다 이 사건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모압 여인 룻의 이름은 당당히 다윗 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더 민족성을 자랑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만큼 선민의식을 강조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족보에 이방 여인의 이름이 빛나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것이 그들의 자랑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너그러움의 표시이고, 그들의 받아들임의 표시입니다.
지방에서 어렵게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방인 엄마, 즉 이방인임이 뚜렷하게 보이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우면서도 이 땅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애쓰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손자가 훗날 이 대한민국을 이끌 위대한 지도자, 대통령, 대장이 되는 꿈이, 바로 오늘 본문 룻기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내용입니다.
살리는 사람, 살리는 공동체가 되어 이 땅에 희망을 키웁시다.
베들레헴에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곳처럼 이 땅에도 아름다운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서로 따뜻하게 배려해 주고, 죽을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너그럽게 대해 주며, 그들을 격려해 주고 살펴 주는 열린 공동체, 살리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 어느 젊은이의 묘지에서 특별한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어느 대학교 미술대학 학생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사과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들은 한민족이었습니다. 같은 한인이었습니다. 같은 피부색이었습니다. 국내 대학을 함께 다녔습니다. 단지 하나 달랐던 점은, 이 청년은 외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청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학교, 외국에서 학부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설 터전을 마련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 기득권을 가진 자들만의 세상이었습니다. 청년은 마침내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닫힌 공동체의 살인이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한 민족의 한인 학생조차 품지 못하는 공동체에는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무슨 생명이 자라며, 무슨 희망이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다행스럽게도 그 후에 학교와 학생들, 교수님들이 함께 이 문제를 직면하고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묘지에 와서 사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이 땅에 외국인으로 들어와 결혼해 우리나라 사람이 된 이들조차 우리가 품지 못한다면, 그들의 자식을 우리가 품어내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저들의 후손 중에서 이 나라의 귀한 일꾼들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들을 선대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다르다고, 스타일이 다르다고, 배척하거나 무시하고 서로를 죽이려는 사회가 된다면, 그 공동체와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베들레헴 공동체는 죽음에 이른, 참으로 비참한 나오미와 이방 여인 룻을 살려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력을 주었고,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살리는 사람이 많으면, 그 공동체는 살아납니다. 죽이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 공동체는 삭막해지고 온갖 비평과 불평, 분으로 가득 차 버리게 됩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사회도 그렇습니다. 회사도 그렇습니다. 나라도 그러합니다. 살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살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살아납니다. 희망이 그곳에 있습니다. 살아난 사람들, 살아난 세상 속에서 우리의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보잘것없고, 부족하고, 죄인이며, 늘 하나님을 떠나려는 우리를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은 늘 그러셨습니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일을 다시 부탁하십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죽은 자를 살리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우리에게 다시 맡겨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베들레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우리 가정, 우리나라, 위대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정신으로 무장된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롭게 회복해야 할 우리의 모습입니다.
With People Who Save, The World Will Live Again
Ruth4:13-17
Ruth is a short book composed of 4 chapters. Sometimes it’s hard to find in the Bible. It is upfront in the Bible, located right after Judges. Why is it located there? Why is it titled after a foreign woman? What does God want to tell us through this story?
The Book of Ruth is a story about a family who fled to Moab to avoid a famine. It talks about its failures, frustrations, and hope. It’s nothing short of a novel. Ruth doesn’t contain prophecies or theMosaic law. It has problematic contents such as a Moabite woman becoming an ancestor of David, the greatest king of Israel. Thus, it seems like an embarrassing story that could have been left out. Instead, it shines like a jewel in the Bible.
Have you ever met foreign workers in the Gasan area or Garibongdong? Or foreign women working in restaurants with limited Korean? Theyusually have darker skin and look shabbier than the average Korean. Ruth was such a person. When you imagine Ruth, picture a foreign lady selling vegetables on the streets of Seoul with an old lady.
Ruth was written when the judges ruled. When there was a famine in Bethlehem, a man took his wife, Naomi, and his two sons to Moab. However, Naomi experienced only despair there. Her husband and two sons died, and all she had left were two Moabite daughters-in-law, Orpah and Ruth. The first part ofRuth is full of death, despair, and confusion. What hope is there for this family? Yet, incredible events take place.After returning to Bethlehem with Naomi, Ruth becomes a great-grandmother of David. What a splendid reversal!
The location of Ruth in the Bible is also interesting. It comes right after Judges and starts with, “In the days when the judges ruled.” There was no king or proper leader at the time. The Israelites were living in hard times, frequently invaded by surrounding countries. But, amidst all this, the Bible focuses on two helpless women, telling us that a great king would come through them.
Therefore, Ruth contains a very important message. If Naomi and Ruth had not gone through such despair and difficulty, Israel would not have seen King David. Thus, the first lesson of Ruth is this: we must have faith that all the ups and downs in our lives—including sickness, pain, and the people we meet—are part of God’s great plan, connected to the amazing events that will come after.
Ruth, Naomi, and Boaz didn’t know anything about God’s great plans. They never imagined that a great king would be born from them. They only respond faithfully to whatever came their way. Who could have known that Naomi and Ruth’s return to Bethlehem would become such an important historical event? By surviving and returning to Bethlehem, the two women changed the course of history.
Ruth is also one of the five books read by Israelites at special seasons. It is read on Pentecost which is in the harvest time. Accordingly, the harvest scene in chapter 2 had a special meaning to the Israelites. God ordered the Israelites to leave the leftover crops in the field after harvest as a“social welfare policy” for the poor. At harvest, the Israelites probably told the story of Ruth to their children, explaining that some crops were left in the field for the poor, that Ruth, David’s great-grandmother, also collected the leftover crops. Pointing to the families gleaning in the field, they would have said, “one day a great king will be born from them.”
Chuseok is just around the corner. Ruth is a fitting book for this season because it teaches us to share, be generous, and value life. If you happen to meet foreign workers or multicultural families in your hometown during Chuseok, why not encourage them?
We see many heroes in today’s passage. First, there is Naomi and Ruth. Naomi was a considerate and loving mother-in-law. After her sons died, she worried for her daughters-in-law. Since she cared for them, she suggested that they return to their home. This was a selfless act. If Naomi returned to Bethlehem alone, who would take care of such an old, helpless woman? Yet, Naomi put her daughters-in-law before herself. She didn’t blame them for the family’s misfortunes. Instead, she comforted them, saying God’s hand has turned against her.
While Orpah returned to her mother’s country, Ruth stubbornly stayed with Naomi. Ruth’s life would have been much easier if she had left. Ruth, young and probably beautiful, would have had better luck without the burden of an old mother-in-law. But Ruth knew that Naomi needed her. So, she stayed. How beautiful!
However, there are other heroes in this story. First, there is Boaz. Boaz was a generous man. Ruth chapter 2 describes a conversation between Boaz and his workers. This scene is quite impressive: “Just then Boaz arrived from Bethlehem and greeted the harvesters, ‘The Lord be with you!’ ‘The Lord bless you!’ they answered.” (Ruth 2:4NIV) How splendid this is! We see a lord blessing his workers and the workers blessing him back. What a great “labor-management relation”! There was trust and respect between Boaz and his workers.
Boaz’s generosity was not limited to his workers. He cared even for the people gleaning his field. He asked who the young woman was. Upon hearing about Ruth’s situation, this is what he said to her. Let’s read it in a contemporary translation: “Listen, my daughter. From now on don’t go to any other field to glean—stay right here in this one. And stay close to my young women. Watch where they are harvesting and follow them. And don’t worry about a thing; I’ve given orders to my servants not to harass you. When you get thirsty, feel free to go and drink from the water buckets that the servants have filled.” (Ruth 2:8-9 MSG)
When Ruth thanked him, Boaz comforted her: “God reward you well for what you’ve done—and with a generous bonus besides from God, to whom you’ve come seeking protection under his wings.” (Ruth 2:12 MSG) Furthermore, he tells his servants to look after her: “Let her glean where there’s still plenty of grain on the ground—make it easy for her. Better yet, pull some of the good stuff out and leave it for her to glean. Give her special treatment.” (Ruth 2:15-16 MSG) Thanks to his kindness, Ruth collected an ephah of barley which she took home to Naomi.After hearing about what happened in the field, Naomi says to Ruth, “The Lord bless him!He has not stopped showing his kindness to the living and the dead.” (Ruth 2:20 MSG)
These events finallylead to Boaz redeeming Naomi’s land and marrying Ruth. We see many benevolent heroes in this story. But it is also interesting how the people of Bethlehem respond to the marriage of Boaz and Ruth. At the scene where Boaz announces that he bought Naomi’s property and acquired Ruth as his wife, this is what the people of Bethlehem say: “May God make this woman who is coming into your household like Rachel and Leah, the two women who built the family of Israel. May God make you a pillar in Ephrathah and famous in Bethlehem! With the children God gives you from this young woman, may your family rival the family of Perez, the son Tamar bore to Judah.” (Ruth 4:11 MSG)
And when Ruth bears a son, the people of Bethlehem say to Naomi, “He’ll make you young again! He’ll take care of you in old age. And this daughter-in-law who has brought him into the world and loves you so much, why, she’s worth more to you than seven sons!” (Ruth 4:15 MSG) They say, “Naomi has a son!” (Ruth 4:17 NIV)
The people of Bethlehem didn’t treat the marriage between Boaz and Ruth as a scandal. Nor did they envy them. They sincerely congratulated and accepted them. Thanks to their consideration, acceptance, and love, Naomi and Ruth could put down their roots in Bethlehem, and David was born. Centuries later, the Israelites remembered this event. They remembered not only King David but also the beautiful community that produced this great king. For generations to come, they talked about what happened to Ruth and thanked God.
Ruth’s name appears proudly in the genealogy of David. Korea boasts of being a homogeneous people, but it’s no match for the Israelites’ pride in being a chosen people. Yet, Israel’s genealogy includes a foreigner. A Moabite’s name shines in that list and the Israelites are proud of it.
In Korea, there are many multicultural families. In rural areas, it is not hard to spot mothers of foreign origin raising their children which can be very difficult especially when their Korean is limited. The message and vision of Ruth is that their children and grandchildren will be the future leaders and presidents of Korea.
For this to happen, we need a beautiful community just like the beautiful communitybehind the story of Ruth. We need to build a community that cares for each other, is kind to the needy and desperate, and encourages its members.
Recently, a special memorial service was held in one of Somang Church’s facilities. It was a service to commemorate a young art student who put an end to his life. His friends from his graduate school delivered an apology at the ceremony. He was Korean by birth. He was one of them. But he came from a foreign university. After finishing his degree abroad, he came to Korea for his graduate studies. However, the people in his graduate school rejected him. The professors and students ostracized him. They held on to their world, their status quo. Finally, the young man took his own life out of despair. This cold, closed community had committed murder. A school that cannot even embrace a Korean who studied abroad has no hope. How can there even be a glimmer of hope or life in such a community?
If we fail to embrace the foreign workers and multicultural families in Korea, there will be no hope for this country. We must be kind to them, believing that great leaders will be born from them. Otherwise, our society will neither become beautiful or healthy.
It was Bethlehem’s community that saved Naomi and Ruth. Ruth was a foreigner and the two women were desperate and destitute.The communityencouraged them and gave them lifeso they could rebuild their lives. If many members of a community save lives, that community will live. If many destroy, then that community will become desolate, filled with criticism, anger, and complaints. This applies to our homes, workplaces, and country. We need people who save lives. If there are many who do that, this world will live again. This is where we find hope. Our bright future lies in the people and the world that have been made to live again.
Sadly, however, our world today seems to be going in the opposite direction. This is even more true in Korean society.
We are worthless, weak, and full of sin, and we continuously reject God. Yet, God saved us. He always does. He sees us with loving eyes. He gave us his only son to save us. He sent Jesus Christ to save. Through Jesus, he wanted to save the world.
God is asking us to do the same. He has entrusted us with Jesus’ ministry—a ministry that saved the poor, the sick, the outcast, and the dead. Now it is our turn to become a community like Bethlehem. This is what we must do in order to build a great future for our church, homes, and country. This will be our first step toward repentance.
룻기 4: 13 ~ 17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기는 절망스러운 현실에 처한 한 가족사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인 룻기는 4장으로 구성된 아주 짧은 책입니다. 종종 성경에서 룻기를 찾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룻기가 앞쪽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오경이 끝나고, 여호수아, 사사기, 그리고 그다음에 이어지는 책이 룻기입니다. ‘왜 이곳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룻이란 인물이 이방 여인이기 때문에 ‘어떻게 성경에 이방 여인의 이름으로 된 책이 있을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합니다.
룻기는 기근을 피해 모압으로 떠난 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들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얻게 되는 조그마한 희망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 안에 특별한 예언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율법도 없습니다. 별반 다른 지혜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저 한 가족사, 흘러가는 이야기가 전개될 뿐입니다.
더구나 룻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들으면 참으로 창피할 만한 문젯거리를 제공합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모압에서 들어온 이방 여인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줍니다.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고, 얼마든지 덮을 수 있는 이야기를 룻기가 알려 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룻기는, 우리가 믿는 이 ‘성경’ 속에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지키며 빛나고 있습니다.
혹시 안산이나 가산, 가리봉동, 구로동 등지나 그 밖의 다른 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만난 경험이 있으십니까? 집도 아닌 컨테이너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남루한 모습의 피부 빛이 다른 노동자들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제대로 될까’ 걱정이 들 만한 작은 식당에서 우리나라 말도 서툰 여인네가 일하는 모습을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룻에 대한 인상을 보다 확실히 가지려면,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연상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것 같은, 피부색이 다른 한 여인이 힘없는 우리 할머니를 모시고 나물을 팔고 있는 모습, 바로 그 모습이 룻입니다.
룻기의 배경은 사사 시대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흉년이 들자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때 함께 건너간 아내의 이름이 ‘나오미’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에게 절망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세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함께 떠나온 나오미가 홀로 남았고, 모압에서 맞이한 두 며느리, 즉 모압의 두 여인이 남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르바’와 ‘룻’입니다. 이제 여인 셋만 남았고, 모두 과부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여성이 자립해 서기에는 너무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여성만으로는 도저히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없던 시대입니다. 안전할 수 없고, 생존하는 일조차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세 여인만 남게 된 것입니다.
룻기의 앞부분은 죽음과 공포로 채워져 있습니다. 슬픔과 비탄, 절망과 혼돈의 그림자가 가득합니다. ‘이렇게 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장면입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자가 되었습니다. 힘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어떻게 안전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자손을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정말 희망 없는 가족사입니다. 그런데 룻기는, 바로 이런 절망스러운 여인들에게 나타난 놀랍고 엄청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이방 여인’ 룻에게서 위대한 ‘이스라엘 왕’ 다윗의 씨가 자라납니다.
룻기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모압 여인 룻도 함께 돌아옵니다. 참으로 처량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은 매우 웅장합니다. 이렇게 비천하고 처량하게 따라온 이방 여인 룻이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릴 위대한 왕 다윗의 증조모가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룻기의 위치입니다. 룻기는 사사기 바로 다음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서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룻도 함께 살았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왕이 없던 시대, 지도자가 없던 시대, 그래서 백성이 이리저리 내몰리고 이방 민족에게 수난당하며 살아가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당시 어느 조그맣고 힘없는 두 여인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사건을 조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릴 위대한 왕, 곧 다윗 왕이 준비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룻기는 매우 중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나오미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룻에게도 불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편을 잃었습니다. 모압 땅까지 가서 만난 사이였으나, 두 사람에게 큰 불행이 닥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나오미에게 그러한 불행이 없었다면, 그리고 룻에게 그와 같은 불행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왕, 미래를 다스릴 위대한 다윗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룻기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며 생로병사와 싸우고, 누구를 만나고, 또 누구와 접촉하며 살아가는 모든 일이 결국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와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장차 있을 위대한 사건들과 연결되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바로 이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바입니다.
성경을 보면, 정말 나오미와 룻, 이후 등장하는 보아스조차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그들 사이에서 위대한 다윗 왕이 태어나리라고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무슨 특별한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오직 생존이었습니다. 그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스럽게 응답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그들이 죽지 않고 삶을 살아냈기에, 그리고 사람들이 그들을 살렸기에, 보아스를 통해 그가 아들을 낳을 수 있었기에, 역사가 바뀌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룻기의 바탕에는 ‘자비에 기초한 나눔’과 ‘생명 존중’ 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룻기는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특별한 절기에 읽던 다섯 권의 책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룻기는 오순절, 즉 추수 후 곡식을 거둬들이던 절기에 읽어 내려간 책입니다. 룻기에서 가장 인상 깊게 묘사되는 장면도 추수 때입니다. 룻기 2장이 그 내용을 자세히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바가 있습니다. 추수하다 곡식을 떨어뜨리게 되면, 그 곡식 단을 다시 집어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주워서 생계를 연명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사회보장책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마 훗날 추수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룻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을 것입니다. 오순절 절기를 보낼 때마다 룻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들이 왜 곡식 단을 밭에 떨어뜨리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을 것입니다. 아마 아이들은 물었겠지요. “왜 추수하면서 아까운 곡식 단을 땅에 버리나요?” 그때 어른들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곡식을 추수할 때 밭에 곡식 단들을 조금씩 남겨 두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가져가 먹고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이란다. 먼 옛날 다윗의 증조할머니인 룻도 그렇게 해서 살아났고, 그래서 위대한 왕 다윗을 낳을 수 있게 되었단다. 그러니까 저기 저렇게 가난한 사람들, 우리가 추수하는 것을 따라오며 곡식 단을 챙겨 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홀대해서는 안 된단다.” 이런 교훈이 그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또 전해졌을 것입니다. 우리도 조금 지나면 추석을 맞이하게 되는데, 룻기는 바로 이러한 풍성한 추수 문화와 어울리면서 너그러움과 나눔, 생명 존중 사상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한번 상상해 봅니다. 베들레헴의 한 농장에서 곡식이 추수되고 있습니다. 여러 일꾼이 한 줄로 서서 낫으로 곡식을 벱니다. 저 멀리 일꾼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 병자들, 고아들, 아마 사회적 약자들이 추수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뒤를 따라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약자들은 일꾼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따라 함께 움직입니다. 그들이 남겨놓은 곡식 다발을 줍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모압 여인 룻도 함께합니다.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어느 성서학자는 룻기를 설명하면서 ‘베들레헴 공동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베들레헴 공동체가 결국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을 만들었다.”라는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고부 사이였습니다.
룻기에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참으로 놀랍고 멋진 사람들,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멋진 사람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입니다. 우선 넓은 마음을 가진 시어머니 나오미가 등장합니다. 아들들이 모두 요절했고, 남편도 죽었는데, 나오미는 정작 며느리들을 걱정합니다. 자기는 나이가 많지만 며느리들은 아직 젊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오미가 무엇을 믿고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녀가 돈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혼자 살아갈 만한 대책이라도 있었습니까? 그에게는 어떤 대책도 없었습니다. 그저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간들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늙은 과부를 어느 누가 돌보아 주겠습니까? 혹시 젊은 과부라면 아이를 낳게 하려는 욕심으로 친족 중 누군가가 데려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 할머니를 데려가려 하겠습니까?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며느리들의 행복을 위해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자 합니다. 그는 한 번도 며느리들이 잘못 들어와서 우리 가문이 망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방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서 벌을 받았다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다.”라고 자책합니다. 그러면서 며느리들을 위로합니다.
첫 번째 며느리 오르바는 결국 나오미를 떠나 제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시어머니를 떠나는 것이 홀가분하겠습니까? 아니면 시어머니를 따라 알지도 못하는, 자기가 이방 여인으로 취급받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이 낫겠습니까?
룻은 이름 그대로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홀로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은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누군가 그녀를 데려가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면, 그것이 룻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룻은 자신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끝까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그야말로 멋진 시어머니, 멋진 며느리입니다.
보아스는 소외된 이들을 살필 줄 아는 멋진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오미와 모압 여인 룻보다 더 멋진 사람들이 베들레헴에 있습니다. 먼저 ‘보아스’라는 멋지고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룻기 2장을 보면, 보아스가 자기 밭에서 일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장면이 참으로 보기에 좋습니다. 2장 4절 말씀입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룻기 2:4)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주인은 “여호와께서 자네들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하고, 일꾼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여호와께서 주인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는 관계, 그야말로 너무 멋진 관계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멋진 노사 간의 관계입니다. 노동자와 기업가의 관계입니다. 그들 사이에는 신뢰와 존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 보아스의 넒은 마음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저 멀리 떨어져 곡식을 줍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을 갖는 보아스입니다. “저기 저 멀리 있는 저 딸은 어느 집 딸인가?” 하고 물은 후, 전후 사정을 알게 된 보아스가 룻에게 다가가 이야기합니다. 흐름을 잘 표현하고 있는 새번역으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여보시오, 새댁,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이삭을 주우려고 다른 밭으로 가지 마시오. 여기를 떠나지 말고, 우리 밭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바싹 따라다니도록 하시오. 우리 일꾼들이 곡식을 거두는 밭에서 눈길을 돌리지 말고, 여자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줍도록 하시오. 젊은 남자 일꾼들에게는 댁을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겠소. 목이 마르거든 주저하지 말고 물 단지에 가서, 젊은 남자 일꾼들이 길어다가 둔 물을 마시도록 하시오. (룻기 2:8~9 중, 새번역)
얼마나 자상하고, 얼마나 배려 있는 태도입니까? 자신을 선대하는 보아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룻입니다. 그때 보아스는 자신이 룻에 대해 들었던 소문을 전하며, 도리어 룻에게 다음과 같이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요.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요. (룻기 2:12, 새번역)
이어 보아스는 일하는 일꾼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합니다.
저 여인이 이삭을 주울 때에는 곡식 단 사이에서도 줍도록 하게. 자네들은 저 여인을 괴롭히지 말게. 그를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단에서 조금씩 이삭을 뽑아 흘려서, 그 여인이 줍도록 해 주게. (룻기 2:15~16 중, 새번역)
너무나 멋진 남자, 멋진 사람입니다. 멋진 기업가요, 멋진 주인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살피고, 그가 부끄럽지 않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집니다. 결국 보아스의 배려로 룻은 보리 한 에바쯤을 거두어 나오미에게 가지고 와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나오미가,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틀림없이 주님께 복 받을 사람이다. 그 사람은 먼저 세상을 뜬 우리 식구들에게도 자비를 베풀더니,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한결같이 자비를 베푸는구나. (룻기 2:20 중, 새번역)
보아스가 이미 나오미와 룻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죽은 가족에게도 큰 선행을 베풀었음을 성경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일들이 시작이 되어 보아스가 기업을 물게 되고, 룻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넉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곳에 또 가득 들어 있습니다.
룻기에는 아름다운 베들레헴 공동체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이방 여인 룻이 보아스와 결혼한 후에 보이는 베들레헴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물기로 약속하고, 나오미와 룻을 자신의 집으로 들이는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그 여인을, 이스라엘 집안을 일으킨 두 여인 곧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그 젊은 부인을 통하여 그대에게 자손을 주셔서, 그대의 집안이 다말과 유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베레스의 집안처럼 되게 하시기를 빕니다. (룻기 4:11~12 중, 새번역)
얼마나 멋진 축복입니까? 룻이 아들을 낳자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한결같은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 주었으니,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룻기 4:15, 새번역)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다. (룻기 4:17 중, 새번역)
베들레헴 사람들은 보아스와 룻의 사랑을 스캔들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부자 앞에서, 주인 앞에서 꼬리 치더니 그럴 줄 알았다.”라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스캔들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축하했습니다. 진심으로 축복하며,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외국인인데요? 이방인인데요?”라고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러한 사랑이 있었기에, 베들레헴 공동체의 배려와 용납이 있었기에, 나오미와 룻이 살 자리가 생겼고, 그 속에서 위대한 왕 다윗이 만들어져 갔습니다.
후에 이스라엘 후손은 이 사건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다윗 왕과 더불어 그 위대한 왕을 있게 한 아름다운 공동체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대대로 추수할 때마다 이 사건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모압 여인 룻의 이름은 당당히 다윗 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더 민족성을 자랑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만큼 선민의식을 강조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족보에 이방 여인의 이름이 빛나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것이 그들의 자랑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너그러움의 표시이고, 그들의 받아들임의 표시입니다.
지방에서 어렵게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방인 엄마, 즉 이방인임이 뚜렷하게 보이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우면서도 이 땅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애쓰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손자가 훗날 이 대한민국을 이끌 위대한 지도자, 대통령, 대장이 되는 꿈이, 바로 오늘 본문 룻기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내용입니다.
살리는 사람, 살리는 공동체가 되어 이 땅에 희망을 키웁시다.
베들레헴에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곳처럼 이 땅에도 아름다운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서로 따뜻하게 배려해 주고, 죽을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너그럽게 대해 주며, 그들을 격려해 주고 살펴 주는 열린 공동체, 살리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 어느 젊은이의 묘지에서 특별한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어느 대학교 미술대학 학생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사과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들은 한민족이었습니다. 같은 한인이었습니다. 같은 피부색이었습니다. 국내 대학을 함께 다녔습니다. 단지 하나 달랐던 점은, 이 청년은 외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청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학교, 외국에서 학부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설 터전을 마련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 기득권을 가진 자들만의 세상이었습니다. 청년은 마침내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닫힌 공동체의 살인이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한 민족의 한인 학생조차 품지 못하는 공동체에는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무슨 생명이 자라며, 무슨 희망이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다행스럽게도 그 후에 학교와 학생들, 교수님들이 함께 이 문제를 직면하고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묘지에 와서 사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이 땅에 외국인으로 들어와 결혼해 우리나라 사람이 된 이들조차 우리가 품지 못한다면, 그들의 자식을 우리가 품어내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저들의 후손 중에서 이 나라의 귀한 일꾼들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들을 선대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다르다고, 스타일이 다르다고, 배척하거나 무시하고 서로를 죽이려는 사회가 된다면, 그 공동체와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베들레헴 공동체는 죽음에 이른, 참으로 비참한 나오미와 이방 여인 룻을 살려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력을 주었고,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살리는 사람이 많으면, 그 공동체는 살아납니다. 죽이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 공동체는 삭막해지고 온갖 비평과 불평, 분으로 가득 차 버리게 됩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사회도 그렇습니다. 회사도 그렇습니다. 나라도 그러합니다. 살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살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살아납니다. 희망이 그곳에 있습니다. 살아난 사람들, 살아난 세상 속에서 우리의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보잘것없고, 부족하고, 죄인이며, 늘 하나님을 떠나려는 우리를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은 늘 그러셨습니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일을 다시 부탁하십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죽은 자를 살리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우리에게 다시 맡겨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베들레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우리 가정, 우리나라, 위대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정신으로 무장된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롭게 회복해야 할 우리의 모습입니다.
2019년 8월 25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살리는 사람, 살아나는 세상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60장, 212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룻4:13-17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8월 2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룻기는 기근을 피해 모압으로 떠났던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실패와 좌절, 그리고 다시 베들레헴에 돌아와 얻은 조그마한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절망스런 여인들에게 일어난 엄청난 일들에 살펴보고자 합니다.
설교의 요약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으며, 며느리 룻은 남편을 일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늙은 시어머니를 따라서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모압 여인 룻… 바로 그 여인이 보아스와 만나 다윗의 증조모가 됩니다. 만약 나오미와 룻에게 있어서 남편들의 죽음(불행)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위대한 왕 다윗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룻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며 생로병사와 싸우면서 누구를 만나면서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와 연결되고 있으며, 장차 있을 위대한 사건들과 연결되고 있다는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룻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훗날 특별한 절기에 읽었던 다섯 개의 책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오순절, 즉 추수를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던 바로 그 절기에 읽었던 책입니다. 룻기는 풍성한 추수의 문화와 어울리며 너그러움과 나눔, 그리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오늘의 이야기 속에는 참으로 놀랍고 멋진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먼저 넓은 마음을 가진 시어머니 나오미와 그녀를 끝까지 보호하려고 했던 며느리 룻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을 도왔던 보아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아는 자신의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마저도 축복하였고(룻2:4), 그 밭에 떨어진 곡식을 줍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보아는 룻의 형편을 알고서 그녀를 선대하였으며(룻2:8-9), 룻이 감사의 말(룻2:12)을 전하자 보아스는 일하는 일꾼들에게 ‘룻을 특별히 부탁한다.’고 당부하였습니다(룻2:15-16). 결국 보아스는 나오미의 기업을 물게 되었고, 룻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베들레헴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축복합니다(룻4:11; 15). 마을 사람들은 질투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축복하며 그들을 받아 들였습니다. 베들레헴 공동체의 배려와 용납으로 나오미와 룻이 살 자리가 생겼고, 그 속에서 위대한 사람, 다윗이 만들어 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모압 여인 룻의 이름은 당당히 다윗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공동체는 죽음에 이른, 참으로 비참한 나오미와 이방여인 룻을 살려내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력을 주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살리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동체는 살아납니다. 가정도, 회사도, 나라도 그렇습니다. 살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살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살아납니다. 희망이 바로 그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살리고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맡겨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베들레헴의 공동체가 될 차례입니다.
나누기
1. 내가 속하여 활동하고 있는 공동체(모임)가 있다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함께 나눠보세요.
2. 오늘 나는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까?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해 나는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지, 서로를 축복하며 함께 기도하세요.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너그러운 마음과 살리는 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비천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나오미를 영접한 사람들처럼, 우리의 낮은 이웃들을 섬기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