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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일을 열심히 하라

디도서 2: 11~14

김경진 목사

2023.08.06

<바울이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장로를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일까?’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 왔지만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 무엇인가 채워져야 할 것이 있지는 않은가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고민을 하시는 분들을 위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인 디도서는 바울이 작성한 서신입니다. 3장으로 구성된 아주 짧은 서신이죠. 바울이 그레데 섬에 남겨진 디도에게 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느 편지와 마찬가지로 디도서 앞부분에는 인사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디도와 그레데 섬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인사를 건넵니다. 디도서 1장 5~9절에는 편지를 쓴 목적이 명시됩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그레데 섬을 떠나면서 각 성에 위치한 교회들에 조속히 장로들을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장로로 세워질 사람들의 자격 요건에 관해서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장로들과 감독들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는 1장 10절 이후부터 설명됩니다. 성경은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대항하고, 바른 교훈을 지켜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그레데 섬에는 잘못된 교훈을 전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각 교회마다 장로들을 세워서 그들의 직무를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자, 그렇다면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디도서 1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1:11)

 

바울 사도는 잘못된 교훈을 말하는 자들의 출발점을 지적합니다. 그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는 목적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득을 얻기 위하여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가정들이 온통 무너지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바울의 진단은 오늘날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하는 이단들에게서 여전히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숨겨져 있는, 아주 비밀스러운 것을 풀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영적으로 우위에 놓으려 합니다. 자신을 섬기도록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교주의 자리에 오르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에 오릅니다. 이것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의 의도라고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이단적 가르침의 결과가 가정의 파탄으로 이어진다는 바울의 진단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삶과 행위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1:16)

 

매우 영적인 것 같고 고매한 듯 보이지만, 잘못된 이단적인 교훈을 전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의 삶에 열매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의 선한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리어 영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다섯 부류의 사람에게 해당되는 바른 교훈이 차례로 전해집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 전해야 할 바른 교훈이 무엇인지 하나씩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바른 교훈의 내용은 다섯 부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형태로 소개됩니다. 이 부분이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바른 교훈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교훈이어야 할 것 같은데 바울은 바른 교훈을 듣는 사람의 상황과 연결하며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늙은 남자, 둘째는 늙은 여자, 셋째는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 넷째는 종들에게 필요한 바른 교훈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른 교훈이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삶의 상황과 연결되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고매한 상태에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바른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는 바울이 말하는 장로와 감독의 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디도서 1장 6~9절입니다.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1:6~9 )

 

그냥 읽으면 당연한 말씀 같지만 바울이 말하는 바는 심오한 내용을 담습니다. 장로는 방언을 유창하게 말해야 한다거나,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속을 꿰뚫으며 영적 상태를 진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망할 것이 없는 한 아내의 남편, 믿는 자녀를 둔 아버지,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고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고 구타하지 않는 사람,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는 사람, 절제하며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지극히 현실적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현실에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이 영적 지도자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진단이었습니다. 다섯 부류의 사람에게 해당되는 바른 교훈 역시 그렇습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2~5)

 

하나도 영적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세속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라고 디도에게 권면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교훈을 말하는 자, 이단들과 다른 점이라고 천명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그저 남편으로, 아버지로, 절약하면서 착하게 사는 정도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무료함이 신앙을 부추기며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만, 때로는 잘못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단으로 넘어가는 경우입니다. 이단으로 넘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큰 영적인 경험, 신비한 체험 같은 것이 있어야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잘 믿으려고 했다가 도리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초대 교회 역시 그러했습니다. 복음이 처음 전파되는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은 분명합니다. 이 땅에 철저하게 뿌리를 내리라고 하십니다. 가정을 돌보고,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고, 모함하지 말고,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않고, 집안일을 잘 감당하고, 종은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른 교훈이 추구하는 삶이자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삶의 모습입니다.

 

<바른 교훈을 따르는 삶이 가능한 원천에 관하여 바울은 나타난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합니다.>

 

자, 가르침을 이어 오던 바울이 오늘 본문인 2장 11~14절에서는 복음의 진수를 설명합니다. 이 본문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내용이지만 디도서의 핵심 구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디도서 2장 11절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2:11)

 

바울의 선언 이면에는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죄의 종으로, 죄의 삯인 사망의 형벌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2)

 

그런데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나타났다’는 단어에 ‘에피파이노’(πιφαίνω, epiphainó)가 문장의 맨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강조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세상이 처음 창조될 때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피조 세계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시작이자 역사의 시초입니다. 온 세상이 만들어지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을 또다시 기대합니다. 종말에 있을 심판의 자리를 기대합니다. 성경은 세상이 창조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바로 그 사이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고 증언합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운명에 속해 있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신음하고, 사망의 굴레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죄인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사망에서 견져 주시는 역사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역사를 한마디로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은혜의 첫 번째 차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믿는 자를 양육해 갑니다.>

 

그렇다면 은혜의 두 번째 차원은 무엇일까요? 이 부분이 흥미롭고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2:11~12a)

 

자,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단어를 주어로 두면서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한다’는 것입니다. 문법적으로 ‘양육하다’는 분사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나타나다’에 부속되어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시는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양육한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양육한다’는 ‘파이데우오’(παιδεύω, paideuó)인데, ‘훈련시킨다’, ‘바로잡는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바로잡으십니까? 어떻게 훈련시키시나요? 버려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마지막으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에 대해서 훈련시켜 주십니다.

첫 번째는 버려야 할 것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딛 2:12b)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서 우리를 양육하는데 경건하지 않은 것, 세상의 모든 정욕을 버릴 수 있도록 교육하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할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구절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2:12c)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하는데 신중하게 살도록, 의롭게 살도록, 경건하게 살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중함은 자신에 대하여, 의로움은 이웃을 향하여, 경건함은 하나님을 향하여 서 있는 자세입니다.

세 번째는 어떤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2:13) 헬라어로 ‘기다리다’는 프로스데코마이(προσδέχομαι, prosdechomai)입니다. 차분하게 인내하며 집중해서 기다리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헬라어 문장이 살아나도록, 신학적으로 의미가 보다 분명해지도록 번역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복스러운 소망, 그리고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양육해 가시는데 버릴 것은 버리게 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양육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대하며 기다리게 합니다.

 

<이 땅에서 믿는 자를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합니다.>

 

조금 장황하게 말씀드렸습니다마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첫째로 나타난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양육하시는은혜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의 모든 정욕을 스스로 버릴 수 있도록 양육하십니다. 우리가 신중하게 살도록 양육하십니다. 우리가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양육하십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양육은 복스러운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고대하며 살아갑니까? 부자가 되는 것을 고대하며 살아갑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 성공하는 것을 고대하며 살아갑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기독교인이 고대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 땅에 다시 오실 복스러운 소망, 위대하신 하나님, 그리고 영광스런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와 같이 은혜가 ‘나타나다’와 ‘양육하다’는 차원으로 묶이면서 마지막에는 콤마로 연결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2: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으로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케 하사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습니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양육의 차원으로 이어집니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은혜의 역사는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지며 우리를 양육해 갑니다. 우리 삶의 깊은 부분까지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결혼해서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는 가족의 현실 안으로, 자녀를 사랑으로 키우는 자리로 들어옵니다. 집안일을 순전하게 행하고, 배우자 서로에게 순종하고 사랑하며, 종이 상전에게 복종하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드러납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양육받고 있다는 반증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는 모함하지 아니하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 됨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양육된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해 가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성숙은 남이 하지 못하는 방언을 하거나, 알지 못하는 예언을 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실 때에 그런 사람을 사용하고 능력을 주시겠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은 선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바르고 의롭고 진중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입니다.

목회자로서 저는 소망의 모든 성도님들이 교회 안에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선한 일들을 하기로 결정하시면 좋겠다고 권면해 드립니다. 교사도 좋고, 찬양대도 좋고, 사회 봉사도 좋고, 차량 안내도 좋고, 예배 안내도 좋고, 헌금 위원도 좋습니다. 재정적으로 필요한 일들을 감당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바른 일,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착한 삶을 살아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조금씩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가정에서 남편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예수 믿고 말과 삶의 패턴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선한 일을 원하시는 하나님, 착한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우리들의 삶 속에서 바른 길을 가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Be Zealous of Good Works

 

Titus 2:11-14

 

Am I living well as a Christian? How must I live to live as a true Christian? Sometimes we ask ourselves if we are walking the right path in our faith lives. Today’s message is God’s word for those with such a question.

 

Today we will study Titus. Titus is a short book composed of three chapters.

 

Like most epistles, Paul starts his with greetingsas we see in the first part of chapter 1. Then he states the purpose of writing the letter in Titus 1:5-9. As he leaves Crete, he leaves behind his co-worker, Titus, and instructs him to finish the foundational work of their missionby appointing elders in the churches of every town. Paul alsoexplains the qualifications and duties of elders and overseers.

 

Then in 1:10 and after Paul explains why they must be appointed quickly. It is to resist rebellious people who teach things they ought not to teach and to guard the right teaching.

 

Then what is the problem of such people and why must they be stopped? Verse 11 says:

 

“They must be silenced, because they are disrupting whole households by teaching things they ought not to teach—and that for the sake of dishonest gain.” (Titus 1:11 NIV)

 

Paul says that the motive of these people who teach wrong things is to gain dishonest gain. They teach things they ought not to teach for unjust gain. The result is a disruption of households.

 

In fact,the above diagnosis of Paul is a common traitfound in all heresies and all those teaching wrong teachings even today.

 

They speak as if they are unveiling hidden mysteries in the Bible. But their realmotive is to make their listeners serve them. In the end, the leader of the cult usually takes the place of God. This characteristic of heresies may be defined as a group of people teaching “for the sake of dishonest gain.”

 

Interestingly, such wrong, heretical teachings result in a destruction of families. Paul says that such wrong teachings talk about faith and God, but fail to show them in their real lives through actions:

 

“They profess that they know God; but in works they deny him, being abominable, and disobedient, and unto every good work reprobate.” (Titus 1:16 KJV)

 

In other words, although wrong, hereticalteachings appear extremely spiritual and noble, they show no fruit in this world. They disparage the secular life as something worthless and stress that the end is imminent, all the while only tryingto get dishonest gain.

 

Most of all, they are not interested in any good work in this world. This is the characteristic of wrong teachings.

 

In chapter 2 Paul starts talking about sound doctrine. He explains what sound doctrine is by describing what it means to five categories of people.

 

This is an interesting way of explaining a concept. A right teaching must be something that can be applied to everyone, right? Accordingly Paul links sound doctrine to the context and reality of the people learning it.

 

The five categories of people are: first, older men; second, older women; third, younger women; fourth, young men; and fifth, slaves. Paul talks about what must be taught to each category.

 

Sound doctrine is not some spiritually lofty thing, but a teaching that brings about a change in each person’s life; it is, therefore, closely linked to that person’s life circumstances.

 

From this perspective, the qualities of elders and overseers, according to Paul, must be as follows:

 

“An elder must be blameless, faithful to his wife, a man whose children believe and are not open to the charge of being wild and disobedient. Since an overseer manages God’s household, he must be blameless—not overbearing, not quick-tempered, not given to drunkenness, not violent, not pursuing dishonest gain. Rather, he must be hospitable, one who loves what is good, who is self-controlled, upright, holy and disciplined. He must hold firmly to the trustworthy message as it has been taught, so that he can encourage others by sound doctrine and refute those who oppose it.” (Titus 1:6-9 NIV)

 

A perfunctory read gives the impression that Paul is just stating the obvious, but in fact he is talking about something profound.

 

The qualifications of an elder does not include speaking fluently in tongues, the power of prophecy, or the ability to see through other people’s spiritual condition.

 

An overseer must be a blameless person who isfaithful to his wife and a father whose children believe in God. He must not be obstinate or quick-tempered; he must not drink too much wineor be violent; he must be hospitable andlove to do good; and he must be disciplined and willing to obey to the Word.

 

These are extremely realistic qualities. But these attributes manifested in real life are what defines a true spiritual leader. This is Paul’s diagnosis.

 

This also applies to the first part of chapter 2, where Paul explains sound doctrine through five categories:

 

“Teach the older men to be temperate, worthy of respect, self-controlled, and sound in faith, in love and in endurance. Likewise, teach the older women to be reverent in the way they live, not to be slanderers or addicted to much wine, but to teach what is good. Then they can urge the younger women to love their husbands and children, to be self-controlled and pure, to be busy at home, to be kind, and to be subject to their husbands, so that no one will malign the word of God.” (Titus 2:2-5 NIV)

 

None of the above qualities seem spiritual. Rather they appear secular. Yet Paul is instructing Titus to teach older men to live in such a way. Furthermore he is proclaiming that such a life is what differentiates them from those who teach wrong messages and heresies.

 

At times we wonder if it is okay to live as we do as believers. Can I call myself a Christian when I amjust living as a husband and father, trying to make ends meet and be good?

 

Suchbanality occasionallyspurs us to seek a more passionate and deeper faith; but at times it may also cause us to seek the wrong faith. A prime example of the latter is slipping into heresies.

 

Most people who fall for heresies cannot find satisfaction in their daily, secular lives. In many cases, they feel that “true faith” must involve more powerful and mysterious spiritual experiences. They fall for the wrong teaching out of their desire to have a better faith. This was the same in the Early Church too. It happened too when the gospel was first preached.

 

The gospel God gives us through Paul is clear. It is something firmly rooted in this world. Seeking sound doctrine is to care for your family, to teach your children in the right path, to not speak ill of others, to refrain from drinking too much wine, to keep your household in order, and to obey your master (if you are a slave). These are the real-life traits of people who believe in the gospel.

 

Paul, who starts his letter with the above contents, now explains in 2:11-14 the essence of the gospel in a logical and spiritual way.

 

In fact, today’s passage, 2:11-14, originally written in one sentence, may be said to be the central verse of the Book of Titus. This single sentence may be said to be the overarching and essential message of the whole book. Now let’s delve into it.

 

“For the grace of God that bringeth salvation hath appeared to all men,” (Titus 2:11 KJV)

 

This is how the passage starts.

 

Beneath this statement there lies the premise that man has been seeking for salvation. We already know that man, a slave to sin, is destined to live under the punishment of death, that is, the wages of sin.

 

“Wherefore, as by one man sin entered into the world, and death by sin; and so death passed upon all men, for that all have sinned:”(Romans 5:12 KJV)

 

What Paul is saying in Titus is that God’s grace appeared to man destined to die.

 

In the original Greek text,the sentence starts with “ἐπιφαίνω (epiphainó),” which means “to appear”—as if to emphasize the word.

 

God’s grace, the grace of God that brings salvation to all, has appeared. And what is that grace?

 

“Who gave himself for us, that he might redeem us from all iniquity, and purify unto himself a peculiar people […]” (Titus 2:14 KJV)

 

Paul makes it clear that the grace of God that brings salvation to all people appeared in Christ Jesus. Jesus redeemed us from all iniquity. He paid the price for us. He purified us from sin and iniquity.

 

This is the first grace of God that Paul proclaims. We have been saved by faith through Jesus Christ. This is our faith and confession.

 

Paul however talks about another grace of God, an interesting and vital one.

 

“For the grace of God that bringeth salvation hath appeared to all men, Teaching us that, […] (Titus 2:11-12a KJV)

 

Placing the grace of God as the subject, Paul talks about two things. First, he says that the grace of God appeared, and second, it teaches us.

 

Grammatically, “the grace of God” is the subject of both “appeared to” and “teaching” in the above verse.

 

The grace of God has appeared clearly in Jesus Christ. It is the grace that cleanses our sins, purifies us, and saves us.

 

But now that grace “teaches” those who have been saved in Christ. The original Greek word for teach is “παιδεύω (paideuó),” which means “to train children, to correct.”

 

Then how does the grace of God train us?

 

The verses that follow explain this by talking about three things: First, the grace of God helps us deny things that must be abandoned; second, it teaches us what we must strive for in life; third, it causes us to hope for that we must truly wait for.

 

First, it teaches us what we must deny:

 

“denying ungodliness and worldly lusts,”(Titus 2:12b KJV)

 

As such,God’s grace teaches us what we must deny and trains us to do so.

 

Second, what must we strive for?

 

“we should live soberly, righteously, and godly, in this present world;” (Titus 2:12c KJV)

 

This phrase may be said to be the most essential part of the whole sentence. It is the answer to the question “What is the life that the grace of God causes us to live?” It also serves as an answer to the question “How must we live in this world as Christians?”

 

First, we must soberly. This may be an attitude toward oneself.

 

To be sober was an important virtue in Greek philosophy. It means to be self-controlled. By being sober one can live a balanced life and protect oneself from mistakes.

 

Therefore, sobriety was a precious virtue taught to children in the time. It protected them from confusion and destruction, giving them the strength to overcome lust and anger. As such, sobriety has a Hellenistic background.

 

Although Paul mentions sobriety, a Greek virtue, as an important attitude in life, he means to say thatsobriety is gained not by one’s own effort or strength, but by God’s training.

 

That is, when God’s grace comes upon us, we become thoughtful, discerning, and self-controlled.

 

Second, we must live righteously. This means to live in an upright way. This may be explained in terms of our relationship with our neighbors. Third, we must live godly lives. This may be explained in terms of our relationship with God. It means to live as true worshippers, maintaining a close relationship with God.

 

Thirdly, God’s grace teaches us to wait for what is truly important.

 

“Looking for that blessed hope, and the glorious appearing of the great God and our Saviour Jesus Christ;” (Titus 2:13 KJV)

 

The Greek word used for “looking for” here is “προσδέχομαι (prosdechomai),” which means to wait calmly and patiently with a focus. It may be compared to the heart of a parent waiting for his/her child.

 

I have given a long speech, but what does it mean to believe in God and to become a Christian?

 

First, we must accept by faith the grace of God which appeared through Jesus Christ. Second, we must live in the grace of God that teaches us.

 

This teaching of God makes us deny all ungodliness and worldly lusts;leads us to live soberly, righteously, and godly in this world; and causes us to wait for the blessed hope, that is, the glorious appearance of the great God and our Savior Jesus Christ.

 

This is the Christian life that we hope for and rejoice in.

 

Therefore, based on such a premise, Paul now talks about the problem of life and how we must live.

 

“Who gave himself for us, that he might redeem us from all iniquity, and purify unto himself a peculiar people, zealous of good works.” (Titus 2:14 KJV)

 

Jesus died on the Cross to save us. God paid the price of all our sins, redeeming us. He cleansed us wit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nd reconciled us with God.

 

The God who did this—what does He want from us? He wants us to live soberly, righteously, and godly. Today’s passage sums this up in one phrase: to make us His “people, zealous of good works.”

 

The redeeming work of God, the ministry of God’s grace is found not just on the Cross where He forgave our sin. They penetrate into our very lives in aspecific way.

 

They enter the reality of our marriage where we live as husbands and wives. God’s grace penetrates into our parenting. When we love our children, care for our family with purity, obey and love our spouses, and obey our bosses, we show that we are enjoying God’s grace and are being taught by it. When we do not speak ill of others, do not lie, and do not become easily angered in our daily lives, we show that we are children of God.

 

Through Paul God teaches us that this is the desirable life of the Christian.

 

The spiritual growth that God wants from us is not being able to speak in tongues while others can’t, or speaking unfathomable prophecies. When He finds it necessary, God uses people with such gifts and gives them power. But the Christian that God truly wants is the man/woman who lives out a good life.

 

As your pastor, I hope that each of you will do at least one good work in our church. It may be teaching in Sunday school, singing in the choir, doing social work, or serving in the parking team. You may serve as an usher too. You can also use your finances to help execute essential ministries. If you can do such things with joy, it means you are under God’s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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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2: 11~14

11~14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장로를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일까?’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 왔지만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 무엇인가 채워져야 할 것이 있지는 않은가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고민을 하시는 분들을 위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인 디도서는 바울이 작성한 서신입니다. 3장으로 구성된 아주 짧은 서신이죠. 바울이 그레데 섬에 남겨진 디도에게 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느 편지와 마찬가지로 디도서 앞부분에는 인사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디도와 그레데 섬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인사를 건넵니다. 디도서 1장 5~9절에는 편지를 쓴 목적이 명시됩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그레데 섬을 떠나면서 각 성에 위치한 교회들에 조속히 장로들을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장로로 세워질 사람들의 자격 요건에 관해서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장로들과 감독들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는 1장 10절 이후부터 설명됩니다. 성경은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대항하고, 바른 교훈을 지켜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그레데 섬에는 잘못된 교훈을 전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각 교회마다 장로들을 세워서 그들의 직무를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자, 그렇다면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디도서 1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1:11)

 

바울 사도는 잘못된 교훈을 말하는 자들의 출발점을 지적합니다. 그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는 목적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득을 얻기 위하여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가정들이 온통 무너지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바울의 진단은 오늘날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하는 이단들에게서 여전히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숨겨져 있는, 아주 비밀스러운 것을 풀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영적으로 우위에 놓으려 합니다. 자신을 섬기도록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교주의 자리에 오르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에 오릅니다. 이것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의 의도라고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이단적 가르침의 결과가 가정의 파탄으로 이어진다는 바울의 진단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삶과 행위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1:16)

 

매우 영적인 것 같고 고매한 듯 보이지만, 잘못된 이단적인 교훈을 전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의 삶에 열매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의 선한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리어 영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다섯 부류의 사람에게 해당되는 바른 교훈이 차례로 전해집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 전해야 할 바른 교훈이 무엇인지 하나씩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바른 교훈의 내용은 다섯 부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형태로 소개됩니다. 이 부분이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바른 교훈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교훈이어야 할 것 같은데 바울은 바른 교훈을 듣는 사람의 상황과 연결하며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늙은 남자, 둘째는 늙은 여자, 셋째는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 넷째는 종들에게 필요한 바른 교훈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른 교훈이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삶의 상황과 연결되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고매한 상태에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바른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는 바울이 말하는 장로와 감독의 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디도서 1장 6~9절입니다.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1:6~9 )

 

그냥 읽으면 당연한 말씀 같지만 바울이 말하는 바는 심오한 내용을 담습니다. 장로는 방언을 유창하게 말해야 한다거나,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속을 꿰뚫으며 영적 상태를 진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망할 것이 없는 한 아내의 남편, 믿는 자녀를 둔 아버지,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고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고 구타하지 않는 사람,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는 사람, 절제하며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지극히 현실적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현실에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이 영적 지도자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진단이었습니다. 다섯 부류의 사람에게 해당되는 바른 교훈 역시 그렇습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2~5)

 

하나도 영적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세속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라고 디도에게 권면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교훈을 말하는 자, 이단들과 다른 점이라고 천명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그저 남편으로, 아버지로, 절약하면서 착하게 사는 정도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무료함이 신앙을 부추기며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만, 때로는 잘못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단으로 넘어가는 경우입니다. 이단으로 넘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큰 영적인 경험, 신비한 체험 같은 것이 있어야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잘 믿으려고 했다가 도리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초대 교회 역시 그러했습니다. 복음이 처음 전파되는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은 분명합니다. 이 땅에 철저하게 뿌리를 내리라고 하십니다. 가정을 돌보고,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고, 모함하지 말고,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않고, 집안일을 잘 감당하고, 종은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른 교훈이 추구하는 삶이자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삶의 모습입니다.

 

<바른 교훈을 따르는 삶이 가능한 원천에 관하여 바울은 나타난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합니다.>

 

자, 가르침을 이어 오던 바울이 오늘 본문인 2장 11~14절에서는 복음의 진수를 설명합니다. 이 본문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내용이지만 디도서의 핵심 구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디도서 2장 11절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2:11)

 

바울의 선언 이면에는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죄의 종으로, 죄의 삯인 사망의 형벌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2)

 

그런데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나타났다’는 단어에 ‘에피파이노’(πιφαίνω, epiphainó)가 문장의 맨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강조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세상이 처음 창조될 때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피조 세계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시작이자 역사의 시초입니다. 온 세상이 만들어지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을 또다시 기대합니다. 종말에 있을 심판의 자리를 기대합니다. 성경은 세상이 창조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바로 그 사이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고 증언합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운명에 속해 있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신음하고, 사망의 굴레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죄인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사망에서 견져 주시는 역사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역사를 한마디로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은혜의 첫 번째 차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믿는 자를 양육해 갑니다.>

 

그렇다면 은혜의 두 번째 차원은 무엇일까요? 이 부분이 흥미롭고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2:11~12a)

 

자,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단어를 주어로 두면서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한다’는 것입니다. 문법적으로 ‘양육하다’는 분사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나타나다’에 부속되어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시는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양육한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양육한다’는 ‘파이데우오’(παιδεύω, paideuó)인데, ‘훈련시킨다’, ‘바로잡는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바로잡으십니까? 어떻게 훈련시키시나요? 버려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마지막으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에 대해서 훈련시켜 주십니다.

첫 번째는 버려야 할 것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딛 2:12b)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서 우리를 양육하는데 경건하지 않은 것, 세상의 모든 정욕을 버릴 수 있도록 교육하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할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구절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2:12c)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하는데 신중하게 살도록, 의롭게 살도록, 경건하게 살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중함은 자신에 대하여, 의로움은 이웃을 향하여, 경건함은 하나님을 향하여 서 있는 자세입니다.

세 번째는 어떤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2:13) 헬라어로 ‘기다리다’는 프로스데코마이(προσδέχομαι, prosdechomai)입니다. 차분하게 인내하며 집중해서 기다리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헬라어 문장이 살아나도록, 신학적으로 의미가 보다 분명해지도록 번역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복스러운 소망, 그리고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양육해 가시는데 버릴 것은 버리게 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양육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대하며 기다리게 합니다.

 

<이 땅에서 믿는 자를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합니다.>

 

조금 장황하게 말씀드렸습니다마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첫째로 나타난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양육하시는은혜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의 모든 정욕을 스스로 버릴 수 있도록 양육하십니다. 우리가 신중하게 살도록 양육하십니다. 우리가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양육하십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양육은 복스러운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고대하며 살아갑니까? 부자가 되는 것을 고대하며 살아갑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 성공하는 것을 고대하며 살아갑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기독교인이 고대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 땅에 다시 오실 복스러운 소망, 위대하신 하나님, 그리고 영광스런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와 같이 은혜가 ‘나타나다’와 ‘양육하다’는 차원으로 묶이면서 마지막에는 콤마로 연결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2: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으로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케 하사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습니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양육의 차원으로 이어집니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은혜의 역사는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지며 우리를 양육해 갑니다. 우리 삶의 깊은 부분까지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결혼해서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는 가족의 현실 안으로, 자녀를 사랑으로 키우는 자리로 들어옵니다. 집안일을 순전하게 행하고, 배우자 서로에게 순종하고 사랑하며, 종이 상전에게 복종하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드러납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양육받고 있다는 반증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는 모함하지 아니하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 됨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양육된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해 가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성숙은 남이 하지 못하는 방언을 하거나, 알지 못하는 예언을 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실 때에 그런 사람을 사용하고 능력을 주시겠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은 선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바르고 의롭고 진중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입니다.

목회자로서 저는 소망의 모든 성도님들이 교회 안에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선한 일들을 하기로 결정하시면 좋겠다고 권면해 드립니다. 교사도 좋고, 찬양대도 좋고, 사회 봉사도 좋고, 차량 안내도 좋고, 예배 안내도 좋고, 헌금 위원도 좋습니다. 재정적으로 필요한 일들을 감당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바른 일,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착한 삶을 살아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조금씩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가정에서 남편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예수 믿고 말과 삶의 패턴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선한 일을 원하시는 하나님, 착한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우리들의 삶 속에서 바른 길을 가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3년 8월 6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선한 일을 열심히 하라 (딛 2장 11~14)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35장, 326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딛 2:11~14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8월 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그저 아내로, 어머니로, 그저 절약하면서, 그저 착하게 하는 정도만으로 정말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설교의 요약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딛 2:11). 이 문장은 디도서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댓가를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와 불법으로부터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양육합니다 –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딛 2:11~12a).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 안에서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양육합니다. 양육한다는 것은 ‘훈련시키다, 바로 잡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를 훈련시키는가 하면, 버려야 할 것을 버리게 하고, 무엇을 힘쓰며 살아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또한 우리가 진정 기다려야 할 것을 바라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양육하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신중하게 살아가는 것, 의롭게 살아가는 것,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말씀드리면,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성숙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방언을 말하거나, 알지 못하는 예언을 말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필요하실 때 그러한 사람들을 사용하시고, 또 능력을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은 선한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나누기

  1. 잘못된 가르침이나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2.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일까요? 철저하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신앙인의 모습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신앙의 좌료를 다시 보여 주시고, 우리가 버려야 할 것과 기대해야 할 것을 다시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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