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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의 번짐 : 이것들을 생각하라
<새해를 시작하며 ‘선함의 번짐’의 출발점이 되는 ‘생각’을 점검해야 합니다.>
신년 예배를 드린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새해의 며칠이 지났습니다. 신년 예배를 드리면서 에베소서 4장 16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소망교회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살아 있는 유기체’임을 배웠습니다. 숲의 나무들이 땅속에서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으로 연결되어 서로 자원을 나누고 위기를 알리는 것처럼, 우리 소망교회도 영적인 신경망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 거대한 연결망 속에 무엇을 흐르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이 각각 따로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함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는 무엇이 흐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결되어 있는 것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한 마디에서 오염된 물질이 흘러 들어온다면 온몸이 병들 수도 있습니다. 소망교회 혈류 속에 ‘선함’이라는 수액이 가득 흐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우리는 2026년을 함께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빌립보서 4장 말씀입니다. 지난 내용과 연결해서 오늘 본문을 본다면,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선함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과 사회, 교회, 나라 안에 선함이 번져 가게 해야 한다고 함께 다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선함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그 근원지를 ‘생각’이라고 알려 줍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빌립보 성도들과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이것들을 생각하라!”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8)
사도 바울은 왜 ‘행동하라’라는 말보다 먼저 ‘생각하라’라는 말을 강조하였을까요? 최근 뇌 과학 분야가 많이 발전하였습니다. 주목받는 뇌 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뇌가 생각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상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라고 합니다. 즉, 뇌의 목표는 신체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살아남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 뇌는 끊임없이 외부 세계를 예측하고, 그 예측은 현실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그는 저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예를 하나 듭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숲을 걷다가 어디선가 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땅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생각은 먼저 근처에 뱀이 있다고 예측합니다. 그리고 몸은 도망갈 준비를 하고 심박수는 증가하는 등, 예측은 신체 변화로 이어집니다. 이후 신체 변화는 자연스럽게 감정으로 변환됩니다. 실제로 뱀이 있든 없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뇌가 어떤 예측을 하면 몸이 반응하고, 감정도 동조하며, 그것에 행동까지도 이어진다는 내용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내 마음이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불신,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면 나의 뇌는 상대방의 평범한 눈빛조차도 나를 무시하는 공격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즉각적으로 싸울 준비를 하고 감정은 격해지며 자연스럽게 거친 말이 솟아날 것입니다. 객관적인 진실이 어떻고 그의 눈길에 어떤 의미가 있었든지 상관없이 내 생각의 예측이 나의 현실을 전쟁터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들을 자주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나 어떤 사물을 경험할 때 생각했던 예측이 나의 현실에 반영됩니다. 심지어 감정까지도 동조되는 경험을 겪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섯 가지를 생각하라고 전합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이라는 최악의 현실 속에서도 “이것들을 생각하라”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결국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비난을 생각하면 비난하는 현실을 살게 될 것이고, 온전한 그리스도의 성품을 생각하면 우리는 감옥 안에서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 속에 우리는 무엇을 담아내야 할까요? 우리가 선함을 이루기 위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우리가 채워야 할 덕목을 6가지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바울은 “무엇에든지 참되며”라고 말합니다. ‘참되다’는 말은 ‘진실되다’, ‘거짓이 없다’, ‘가면을 쓰지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무엇에든지 경건하며”라고 말합니다. ‘경건’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즉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로는 “무엇에든지 옳으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옳다’는 말은 세상 속에서 말하는 정의를 넘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지 생각하는 것이 옳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는 “무엇에든지 정결하며”라고 말합니다. 순수함입니다.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사랑받을 만하며”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곁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시 만나고 싶게 만드는, 따뜻하고 친절한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로는 “칭찬받을 만하며”라고 말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6가지를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와 연결해서 본다면 “‘선함의 번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너희는 먼저 이 6가지를 생각하라”라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여섯 가지 생각을 한 해 동안 생각의 필터로 삼고 점검하기 바랍니다.>
저는 2026년 새해 첫 주일에 성도 여러분께 이 6가지 주제를 1년 동안 생각의 필터로 사용하기를 제안합니다. 생각할 때마다 항상 이 6가지 필터를 통해 판단하고 결정해 보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하거나 사안을 받아들였을 때, 또는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전할 때,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필터는 “이것이 참된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내 생각이나 판단이 확인되지 않는 소문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진실에 근거한 것인지 생각한 후에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또 어떤 생각을 할 때 두 번째 필터로 “이것이 경건한가?”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경건하다’라는 말씀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도 괜찮은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도 깨끗한 일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가려는 길이나 하려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도 떳떳한 일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한 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서도 할 수 있는 경건한 말인지 물어보는 필터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 질문은 “내 생각이 옳은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말씀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첫째 질문인 ‘참되다’는 말과 다른 의미로서 ‘옳다’라는 필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인가?’, ‘내가 하는 행동이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말하실 수 있는 일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내 생각이 정결한가?”입니다. ‘나의 행동이 나의 욕망과 욕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는 연습입니다. 나의 이기심과 시기심, 경쟁심, 미움으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나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것을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인지, 공동체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할 만한 일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일이 정말 사랑받을 만한 일인지 점검해 보는 필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필터는 “내 생각이 칭찬받을 만한 일일까?”입니다. 사랑받는다는 말과 칭찬받는다는 말이 비슷한 느낌처럼 들리긴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은 다르구나’라고 칭찬해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공동체를 세우는 일인지, 혹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인지,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칭찬받을 만한 일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 6개의 필터를 가지고 올 한 해 동안 나의 생각의 흐름을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책상 위에 6개의 덕목을 올려놓고 생각날 때마다 필터링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마 여러분의 행동과 언어와 삶이 훨씬 더 선함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악함으로 번져 가는 세상 속에서 교회는 선함을 전하는 진원지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흔히 통용되는 말 중에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통사고 현장에 누구보다 빨리 달려가는 견인차(Wrecker, 레커)에서 온 말입니다. 온라인상에서 어떤 논란이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재빨리 관련 영상을 올려서 조회수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유적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이버 레커로 인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습니다.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추측에 불과한 것들을 사실처럼 올리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추측 정도가 아니라 사건을 왜곡해서 자기의 목적대로 영상을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비열해 보이는 일들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무엇이 참인가’라는 질문은 그다지 중요한 질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그것을 통해 얻는 이익만이 그들의 관심사뿐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선동이 대부분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옳음도, 경건함도 없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려도 되는지 반성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으냐?’라는 질문은 그들에게는 식상한 질문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과거에는 ‘천벌이 무섭지도 않으냐?’라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은 잊힌 지 오래인 것처럼 보입니다.
종종 인터넷에 올라오는 영상을 보면 속아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방금 터진 손흥민 골”이라는 기사를 보면 갑자기 손이 갑니다. 알고 보면 ‘방금’이라는 말이 삼사 년 전의 ‘방금’인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의 축구 게임에서 일어난 일들을 마치 현실인 것처럼 만들어서 올리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참됨’이라는 필터가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옳음’과 ‘순수함’, ‘정결함’이라는 필터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악함이 점점 더 번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악함이 상식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악함이 번져 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삶의 방식으로 응전하며 대응해야 할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거짓으로 뒤덮인 세상, 생명 존중이 상실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며 악함이 번져 가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선함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선함의 진원지가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선함이 번져 가는 전초 기지가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끊임없이 악함으로 번져 가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믿을 만하다.’, ‘그들이 하는 말이라면 진실되다.’, ‘그들이 하는 사업이라면 정직하다.’, ‘그들이 하는 정치라면 희망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정치 지도자, 기업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함의 번짐은 생각에서 나아가 선한 행동과 삶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 4:1)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바울이야말로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에 의해 고난을 겪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평생 엄청난 고난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바울을 공격했던 사람들은 그가 직접 예수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가짜 사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늘 가짜 사도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바울이 서신을 쓸 때마다 자신의 사도성을 증명하는 말을 먼저 써야만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교회로부터 받은 헌금을 전도에 사용하는 것을 탐욕으로 착복한다고 덮어씌워지기도 하였습니다. 반대로 어떤 교회에서는 바울이 천막을 만들어 스스로 비용을 감당하며 전도 활동을 한 것으로 그를 비방했습니다. ‘만약 진짜 사도라면 왜 당당하게 지원받지 않고 일을 하느냐, 그것은 자신이 사도보다 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면서 자신감 없는 사도라고 깎아내리기도 했습니다.
전도 헌금을 받고 열심히 전도 활동을 하면 착복했다고 비난하고, 돈을 받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면 자격이 없어서 돈을 요구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던 것이 당시에 바울이 받던 대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도 비방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거짓을 주장하며 모함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경쟁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기심으로 가득 찬 그들은 거짓으로 행동하며 바울의 외모를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글을 잘 쓰기는 하지만 말은 어눌하고 사도로서의 자격이 없다고까지 비난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거짓된 세상에서 박해를 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빌립보의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8)
바울은 거짓말로 악한 일을 일으키는 사람 때문에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 4:9a)
생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바울은 “내가 이렇게 살았던 것처럼 너희도 이렇게 살기를 바란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선함의 번짐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나아가 행동과 삶으로도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생각에만 머무는 선함은 고여 있는 물과 같습니다. 그 생각이 마디를 타고 옆 사람에게 전해지려면 행동이라는 펌프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번 한 주간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정직한 거래,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섬김이 선함을 번져 가게 하는 실제적인 행동이 될 것입니다. 그때 주어지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 4:9b)
‘평안한 기분’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삶에 직접 개입하시고 동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속에서 선함을 번져 가는 사람들에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이러한 덕목을 온전하게 이루어 낸 사람이 누가 있는지 성경에서 생각해 보니,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요셉이야말로 여섯 가지 덕목을 늘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먼저 ‘참됨’과 ‘경건함’이라는 생각의 필터를 장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노예로 팔려 간 보디발의 집에서 주인의 아내가 유혹할 때, 요셉은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면서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억울한 상황에도 그는 자신의 필터로 참됨과 경건함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옳음’과 ‘정결함’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형들에 의해서 구덩이에 던져지고 감옥에 갇히는 억울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복수와 증오를 마음에 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억울함, 배신감, 미움 같은 더러운 찌꺼기를 정결함의 필터로 걸러 냅니다. 훗날 총리가 되어 얼마든지 복수할 기회가 왔음에도 그는 개인적 원한을 푸는 데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뜻만을 찾았습니다. 요셉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고,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사랑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애굽의 바로조차도 “이처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어찌 찾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조차도 “저 사람을 보니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라는 인정과 칭찬을 할 정도였습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성경은 이와 같은 문장을 반복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창 39:2a)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3b)
바울 역시 말합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 4:9b)
선함을 생각하고 선함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은 환경이 좋아서 위대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들어오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여섯 가지의 선함의 필터로 걸러내며 살았습니다. 선함의 번짐은 거창한 구호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품은 하나의 생각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며, 사랑받을 만하며, 칭찬받을 만한 생각에서부터 선함이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 사회, 교회도 그렇습니다. 선함이 번져 가는 일에 열심을 내는 소망의 모든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e Spread of Goodness: Think About Such Things
Philippians 4:8-9
Beloved friends of Somang Church, on January 1, 2026, we gathered for our New Year’s service, and today we are celebrating the first Sunday worship of the New Year. During our New Year’s service, we learned through Ephesians 4:16 that Somang Church is a living organism bound by the blood of Christ. Just as the trees in a forest are connected underground by a “wood wide web,” sharing resources and signaling each other in times of crisis, we confirmed that our church is interconnected by an invisible spiritual network.
However, the fact that we are closely connected in Christ raises a very important question for us: What will flow through that vast network?
Being connected is a blessing, but it also comes with responsibility. If even a small amount of contaminated water flows through one part, the entire body can become sick. We resolved that in 2026, as we prepare for our 50th anniversary in 2027, we would make the sap of “goodness” flow abundantly through the bloodstream of our community.
Today’s message continues from what I talked about in my New Year’s sermon. Today’s Scripture is from Philippians 4. To give you an idea of how it connects to my previous message, the Apostle Paul is teaching us today that the sap of goodness begins in our thoughts. Even when he is imprisoned and trapped in an extremely dire situation, he proclaims to the saints in Philippi, and to us today, “Think about such things!”
“Finally, brothers and sisters, whatever is true, whatever is noble, whatever is right, whatever is pure, whatever is lovely, whatever is admirable—if anything is excellent or praiseworthy—think about such things.” (Philippians 4:8 NIV)
Why does the Apostle Paul emphasize thoughts before actions?
A notable scholar in the field of neuroscience, Lisa Feldman Barrett, shares an interesting perspective. Many people believe that the brain exists to think, but she argues that the brain’s most important job is allostasis, meaning managing bodily resources efficiently to ensure survival. To do this, the brain constantly predicts the external world, and those predictions shape our reality.
In her book How Emotions are Made, she explains that if someone is walking in the forest and hears rustling leaves or sees something moving in the ground, the brain may predict, “There is a snake nearby,” leading the body to prepare to flee, resulting in increased heart rate and other physical changes, which ultimately become feelings and emotions.
Whether or not there is a snake, our brains make predictions first, leading to physical changes and the creation of emotions, which in turn drive our actions.
Can we not apply this to our lives?
If my heart is filled with accusations and distrust towards someone, my brain will predict their ordinary glance as an attack meant to dismiss me. Consequently, my body will prepare to fight, and my emotions will escalate, leading to sharp words. Regardless of the objective truth, my filters of thought can turn my reality into a battlefield.
We experience such situations easily in our daily lives.
The reason Paul teaches us to “think about such things” even in the worst situations, which in his case was incarceration, is that our thoughts ultimately shape the reality we live in. If we think of criticisms, we will live in a world of criticisms, but if we think of Christ’s character, we will experience heaven even within a prison.
So, what specifically should we fill our thoughts with?
Paul presents six virtues that we must think about.
First, he says we must think about “whatever is true.” To be true means to be sincere. It means to not wear a mask, to not fabricate lies, and to not portray something nonexistent as real for our personal gain.
Second, Paul tells us to think about “whatever is noble.” This reflects a dignified character, acting in a way that honors God as if He were present, even in unseen places.
Third, we must think about “whatever is right.” This pertains to righteousness and seeking God’s will.
Fourth, “whatever is pure.” This signifies purity, a heart free from corruption.
Fifth, “whatever is lovely.” This can simply be described as charm—having a warm and kind character that makes others feel good and want to be around you.
Sixth, “whatever is admirable.” Perhaps this will may be translated as good influence.
When a thought arises your heart, how about passing it through these six filters?
Is this thought true? Is it factual, or is it a speculation? Is my thought and judgment based on unverified rumors, or grounded in the truth?
When a thought enters our mind, we must also ask ourselves: Is this thought noble? Is it something I would be ashamed of before God? Is this thought acceptable to God?
Let’s ask these questions too. Is this thought right? Will it bring justice and life to everyone? The meaning of “right” as distinct from “true” asks if it is something that pleases God. When we ask whether a thought is right, we are asking if it will please God.
Let’s ask ourselves, Is my thought pure? Is it coming from my desires and greed? Does it arise from selfishness, jealousy, competitiveness, or hatred? We must reexamine ourselves.
We must also ask, Is my thought lovely? If I put this thought into words or action, will other people like it? Will it bring them joy? Will it benefit all? Will it create a warm and happy community?
And let’s consider this: Is my thought admirable? Can it serve as a good example to non-believers? Can it exert a good influence? Does it serve to build the community or to tear it down? Am I possibly hurting others with this thought?
A term gaining wide usage these days in Korea is “cyber wrecker.” It refers to sensationalist online influencers or YouTubers who rush to post videos when controversies or incidents arise, much like wrecker trucks that speed to traffic accidents. However, these cyber wreckers contribute to various social problems. Certain YouTubers create videos based on unverified tips or using strange, old photos to boost views. Their content is based not on fact but on speculation. Sometimes they even include falsehood to draw viewers’ attention. People who see such videos post a deluge of malicious comments, such as “I knew it.”
The question “Is this true?” is lost to such cyber wreckers. Their only concern is the profit they gain. Even in the recent conflicts between political parties in Korea, we see how rampant fake news is. There is no truth, only incitement.
In such a world, there is no righteousness or holiness. Is it just to ruin a person’s life? Are they not ashamed before God? Are they not afraid of divine punishment? These considerations do not exist.
There is also no purity. The information created is not even genuine; it simply reflects a vulgar attempt to profit from others’ misfortunes.
Increasingly more people are creating videos based on speculation, even falsehood, confusing others.
Many of you may have clicked on videos with titles like “Son Heung-min Scores 5 Goals Against Japan,” “Son Just Scored!”, or “Japan Silenced by Son’s Goal.” I too have fallen for such titles. The thumbnails often showcase provocative photos such as Son Heung-min crying or the opposing team’s coach holding his head in frustration. Yet, when you click the video, it turns out to be from a match three or four years ago or even footage from a video game.
Why does this happen? It is because the filter of truth is not functioning. The creators of such videos ignore that taking up viewers’ time and causing confusion is not just. The filter of righteousness does not operate either. Furthermore, instead of sharing truthful information, they instead manipulate hearts and pursue profit through mixed, confusing data. They aim to politically sabotage others or lead them to make erroneous judgments.
How can we respond in such a world? Should we allow this world to go on like this unchecked? As Christians, what should we do in response to such a world?
In a world where lies and fakes abound, where respect for life and goodness seeking truth are absent, and where people pursue only their own profit while creating confusion, what should we Christians do? Paul commands us:
“Therefore, my brothers and sisters, you whom I love and long for, my joy and crown, stand firm in the Lord in this way, dear friends!” (Philippians 4:1 NIV)
Where was Paul when he wrote this letter? He was in prison. In reality, Paul himself was suffering due to actions similar to those of cyber wreckers.
Paul endured immense pain due to those who slandered him. Using the fact that Paul was not a disciple of Jesus who learned directly from Him, those envious of Paul claimed, “he is a false apostle.” Paul constantly had to prove his apostleship, and that put him through difficult times.
That was not all. He was also criticized as a greedy embezzler for receiving donations.
Moreover, when he did evangelistic work without receiving money, they argued that if he were a true apostle, he should be honored and not be “stooping low” by making tents himself. They implied that because he didn’t receive money, he was of lesser status than other apostles, denigrating him as an insecure false apostle.
As a result, Paul found himself imprisoned due to these slanderers, people spreading lies, and those who envied him. It was indeed unfair.
They acted out of envy, competing with Paul and trying to bring him down by spreading false rumors. They even degraded Paul’s appearance, suggesting that while he wrote well, he was inept at speaking, implying that he lacked apostolic authority.
Despite being persecuted in such a false world, Paul writes to his beloved Philippian church:
“Finally, brothers and sisters, whatever is true, whatever is noble, whatever is right, whatever is pure, whatever is lovely, whatever is admirable—if anything is excellent or praiseworthy—think about such things.” (Philippians 4:8 NIV)
We can see that even while suffering because of falsehood and lies and slanderers scheming evil and impure acts, Paul strove to guard his heart and mind. Even in an unjust situation, Paul desired to choose what was true, noble, and right and to think about what was pure, lovely, and admirable.
Paul’s command goes a step further than just thinking such thoughts:
“Whatever you have learned or received or heard from me, or seen in me—put it into practice.” (Philippians 4:9a NIV)
The spread of goodness begins with thoughts and is revealed through actions in life.
Goodness that remains only in thoughts is like stagnant water. For that thought to flow to others, action is needed—just as a pump is needed to make water flow through pipes. A warm word you share with someone this week, an honest transaction, and service done in secret are practical pathways for goodness to spread.
In return, there is an amazing reward promised to us: “And the God of peace will be with you.” (Philippians 4:9b NIV) This promise goes beyond just feeling peaceful; it promises that “the God of peace” will directly intervene and walk alongside our community and individual lives.
There is a person in the Bible who perfectly lived out these virtues; his name is Joseph. While Jesus Christ is the ultimate example, Joseph’s story in the Old Testament serves as an excellent illustration of Paul’s teachings.
First, Joseph had the filters of ‘truth’ and ‘nobility’ in his thoughts. When he was sold as a slave to Potiphar’s house and was tempted by his master’s wife, he didn’t resort to lies or compromise to evade his crisis. Instead, he cried out, “How then could I do such a wicked thing and sin against God?” Even when no one was watching, he maintained dignity as he filtered his thoughts through the lens of nobility.
Moreover, he had the virtues of ‘righteousness’ and ‘purity.’ If thrown into a pit by siblings and wrongfully imprisoned, most people would harbor thoughts of revenge and hatred. Yet, Joseph filtered out the garbage of personal revenge and hatred through the lens of ‘purity.’ Even when he had the chance to take revenge later on as Egypt’s prime minister, he chose the ‘right path’ of “God’s good purpose to save lives,” instead of acting on personal grievances.
Additionally, Joseph was ‘lovely’ and ‘admirable.’ Even as a slave brought to Potiphar’s home, he was loved for taking care of the household. In the desperate prison, he was also loved by those around him, becoming someone who cared for the needs of fellow prisoners. Even Pharaoh, seeing Joseph, marveled, saying, “Can we find anyone like this man, one in whom is the Spirit of God?” He was recognized by the unbelieving world as someone in whom God was present.
The Bible repeatedly tells Joseph’s story:
“The Lord was with Joseph so that he prospered” (Genesis 39:2a NIV)
“because the Lord was with Joseph and gave him success in whatever he did.” (Genesis 39:23b NIV)
Paul states,
“And the God of peace will be with you” (Philippians 4:9b NIV)
This is a blessing from God to those who think about goodness and live it out.
Dear friends, Joseph did not become great because of favorable circumstances, but because he filtered every thought and feeling through these six criteria.
My dear congregants, 2026 will be a very important year for Somang Church. As we approach our 50th anniversary next year, we need to improve the spiritual health of our community.
The spread of goodness does not come from grand slogans. It begins with ‘one thought’ that you hold in your heart today. Paul says we must have Christ’s thoughts and heart. This starts with thoughts that are true, noble, right, pure, lovely, and admirable.
When you see something to criticize, look for something to praise. When you hear false rumors, prick up your ears to listen to the genuine truth. When you find yourself prioritizing your own gains, think first of God’s righteousness.
As we live our lives “thinking about such things,” the invisible spiritual network of Somang Church will overflow with the living water of Christ. That sap of goodness will revive all the members of Somang Church and ultimately manifest as a holy outpouring that heals our community and the world.
빌립보서 4:8~9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새해를 시작하며 ‘선함의 번짐’의 출발점이 되는 ‘생각’을 점검해야 합니다.>
신년 예배를 드린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새해의 며칠이 지났습니다. 신년 예배를 드리면서 에베소서 4장 16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소망교회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살아 있는 유기체’임을 배웠습니다. 숲의 나무들이 땅속에서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으로 연결되어 서로 자원을 나누고 위기를 알리는 것처럼, 우리 소망교회도 영적인 신경망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 거대한 연결망 속에 무엇을 흐르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이 각각 따로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함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는 무엇이 흐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결되어 있는 것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한 마디에서 오염된 물질이 흘러 들어온다면 온몸이 병들 수도 있습니다. 소망교회 혈류 속에 ‘선함’이라는 수액이 가득 흐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우리는 2026년을 함께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빌립보서 4장 말씀입니다. 지난 내용과 연결해서 오늘 본문을 본다면,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선함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과 사회, 교회, 나라 안에 선함이 번져 가게 해야 한다고 함께 다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선함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그 근원지를 ‘생각’이라고 알려 줍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빌립보 성도들과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이것들을 생각하라!”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8)
사도 바울은 왜 ‘행동하라’라는 말보다 먼저 ‘생각하라’라는 말을 강조하였을까요? 최근 뇌 과학 분야가 많이 발전하였습니다. 주목받는 뇌 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뇌가 생각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상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라고 합니다. 즉, 뇌의 목표는 신체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살아남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 뇌는 끊임없이 외부 세계를 예측하고, 그 예측은 현실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그는 저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예를 하나 듭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숲을 걷다가 어디선가 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땅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생각은 먼저 근처에 뱀이 있다고 예측합니다. 그리고 몸은 도망갈 준비를 하고 심박수는 증가하는 등, 예측은 신체 변화로 이어집니다. 이후 신체 변화는 자연스럽게 감정으로 변환됩니다. 실제로 뱀이 있든 없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뇌가 어떤 예측을 하면 몸이 반응하고, 감정도 동조하며, 그것에 행동까지도 이어진다는 내용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내 마음이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불신,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면 나의 뇌는 상대방의 평범한 눈빛조차도 나를 무시하는 공격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즉각적으로 싸울 준비를 하고 감정은 격해지며 자연스럽게 거친 말이 솟아날 것입니다. 객관적인 진실이 어떻고 그의 눈길에 어떤 의미가 있었든지 상관없이 내 생각의 예측이 나의 현실을 전쟁터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들을 자주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나 어떤 사물을 경험할 때 생각했던 예측이 나의 현실에 반영됩니다. 심지어 감정까지도 동조되는 경험을 겪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섯 가지를 생각하라고 전합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이라는 최악의 현실 속에서도 “이것들을 생각하라”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결국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비난을 생각하면 비난하는 현실을 살게 될 것이고, 온전한 그리스도의 성품을 생각하면 우리는 감옥 안에서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 속에 우리는 무엇을 담아내야 할까요? 우리가 선함을 이루기 위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우리가 채워야 할 덕목을 6가지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바울은 “무엇에든지 참되며”라고 말합니다. ‘참되다’는 말은 ‘진실되다’, ‘거짓이 없다’, ‘가면을 쓰지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무엇에든지 경건하며”라고 말합니다. ‘경건’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즉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로는 “무엇에든지 옳으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옳다’는 말은 세상 속에서 말하는 정의를 넘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지 생각하는 것이 옳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는 “무엇에든지 정결하며”라고 말합니다. 순수함입니다.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사랑받을 만하며”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곁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시 만나고 싶게 만드는, 따뜻하고 친절한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로는 “칭찬받을 만하며”라고 말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6가지를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와 연결해서 본다면 “‘선함의 번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너희는 먼저 이 6가지를 생각하라”라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여섯 가지 생각을 한 해 동안 생각의 필터로 삼고 점검하기 바랍니다.>
저는 2026년 새해 첫 주일에 성도 여러분께 이 6가지 주제를 1년 동안 생각의 필터로 사용하기를 제안합니다. 생각할 때마다 항상 이 6가지 필터를 통해 판단하고 결정해 보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하거나 사안을 받아들였을 때, 또는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전할 때,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필터는 “이것이 참된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내 생각이나 판단이 확인되지 않는 소문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진실에 근거한 것인지 생각한 후에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또 어떤 생각을 할 때 두 번째 필터로 “이것이 경건한가?”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경건하다’라는 말씀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도 괜찮은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도 깨끗한 일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가려는 길이나 하려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도 떳떳한 일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한 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서도 할 수 있는 경건한 말인지 물어보는 필터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 질문은 “내 생각이 옳은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말씀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첫째 질문인 ‘참되다’는 말과 다른 의미로서 ‘옳다’라는 필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인가?’, ‘내가 하는 행동이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말하실 수 있는 일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내 생각이 정결한가?”입니다. ‘나의 행동이 나의 욕망과 욕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는 연습입니다. 나의 이기심과 시기심, 경쟁심, 미움으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나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것을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인지, 공동체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할 만한 일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일이 정말 사랑받을 만한 일인지 점검해 보는 필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필터는 “내 생각이 칭찬받을 만한 일일까?”입니다. 사랑받는다는 말과 칭찬받는다는 말이 비슷한 느낌처럼 들리긴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은 다르구나’라고 칭찬해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공동체를 세우는 일인지, 혹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인지,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칭찬받을 만한 일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 6개의 필터를 가지고 올 한 해 동안 나의 생각의 흐름을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책상 위에 6개의 덕목을 올려놓고 생각날 때마다 필터링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마 여러분의 행동과 언어와 삶이 훨씬 더 선함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악함으로 번져 가는 세상 속에서 교회는 선함을 전하는 진원지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흔히 통용되는 말 중에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통사고 현장에 누구보다 빨리 달려가는 견인차(Wrecker, 레커)에서 온 말입니다. 온라인상에서 어떤 논란이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재빨리 관련 영상을 올려서 조회수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유적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이버 레커로 인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습니다.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추측에 불과한 것들을 사실처럼 올리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추측 정도가 아니라 사건을 왜곡해서 자기의 목적대로 영상을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비열해 보이는 일들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무엇이 참인가’라는 질문은 그다지 중요한 질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그것을 통해 얻는 이익만이 그들의 관심사뿐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선동이 대부분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옳음도, 경건함도 없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려도 되는지 반성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으냐?’라는 질문은 그들에게는 식상한 질문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과거에는 ‘천벌이 무섭지도 않으냐?’라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은 잊힌 지 오래인 것처럼 보입니다.
종종 인터넷에 올라오는 영상을 보면 속아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방금 터진 손흥민 골”이라는 기사를 보면 갑자기 손이 갑니다. 알고 보면 ‘방금’이라는 말이 삼사 년 전의 ‘방금’인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의 축구 게임에서 일어난 일들을 마치 현실인 것처럼 만들어서 올리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참됨’이라는 필터가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옳음’과 ‘순수함’, ‘정결함’이라는 필터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악함이 점점 더 번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악함이 상식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악함이 번져 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삶의 방식으로 응전하며 대응해야 할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거짓으로 뒤덮인 세상, 생명 존중이 상실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며 악함이 번져 가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선함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선함의 진원지가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선함이 번져 가는 전초 기지가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끊임없이 악함으로 번져 가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믿을 만하다.’, ‘그들이 하는 말이라면 진실되다.’, ‘그들이 하는 사업이라면 정직하다.’, ‘그들이 하는 정치라면 희망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정치 지도자, 기업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함의 번짐은 생각에서 나아가 선한 행동과 삶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 4:1)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바울이야말로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에 의해 고난을 겪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평생 엄청난 고난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바울을 공격했던 사람들은 그가 직접 예수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가짜 사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늘 가짜 사도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바울이 서신을 쓸 때마다 자신의 사도성을 증명하는 말을 먼저 써야만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교회로부터 받은 헌금을 전도에 사용하는 것을 탐욕으로 착복한다고 덮어씌워지기도 하였습니다. 반대로 어떤 교회에서는 바울이 천막을 만들어 스스로 비용을 감당하며 전도 활동을 한 것으로 그를 비방했습니다. ‘만약 진짜 사도라면 왜 당당하게 지원받지 않고 일을 하느냐, 그것은 자신이 사도보다 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면서 자신감 없는 사도라고 깎아내리기도 했습니다.
전도 헌금을 받고 열심히 전도 활동을 하면 착복했다고 비난하고, 돈을 받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면 자격이 없어서 돈을 요구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던 것이 당시에 바울이 받던 대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도 비방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거짓을 주장하며 모함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경쟁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기심으로 가득 찬 그들은 거짓으로 행동하며 바울의 외모를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글을 잘 쓰기는 하지만 말은 어눌하고 사도로서의 자격이 없다고까지 비난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거짓된 세상에서 박해를 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빌립보의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8)
바울은 거짓말로 악한 일을 일으키는 사람 때문에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 4:9a)
생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바울은 “내가 이렇게 살았던 것처럼 너희도 이렇게 살기를 바란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선함의 번짐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나아가 행동과 삶으로도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생각에만 머무는 선함은 고여 있는 물과 같습니다. 그 생각이 마디를 타고 옆 사람에게 전해지려면 행동이라는 펌프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번 한 주간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정직한 거래,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섬김이 선함을 번져 가게 하는 실제적인 행동이 될 것입니다. 그때 주어지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 4:9b)
‘평안한 기분’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삶에 직접 개입하시고 동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속에서 선함을 번져 가는 사람들에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이러한 덕목을 온전하게 이루어 낸 사람이 누가 있는지 성경에서 생각해 보니,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요셉이야말로 여섯 가지 덕목을 늘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먼저 ‘참됨’과 ‘경건함’이라는 생각의 필터를 장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노예로 팔려 간 보디발의 집에서 주인의 아내가 유혹할 때, 요셉은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면서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억울한 상황에도 그는 자신의 필터로 참됨과 경건함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옳음’과 ‘정결함’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형들에 의해서 구덩이에 던져지고 감옥에 갇히는 억울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복수와 증오를 마음에 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억울함, 배신감, 미움 같은 더러운 찌꺼기를 정결함의 필터로 걸러 냅니다. 훗날 총리가 되어 얼마든지 복수할 기회가 왔음에도 그는 개인적 원한을 푸는 데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뜻만을 찾았습니다. 요셉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고,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사랑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애굽의 바로조차도 “이처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어찌 찾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조차도 “저 사람을 보니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라는 인정과 칭찬을 할 정도였습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성경은 이와 같은 문장을 반복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창 39:2a)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3b)
바울 역시 말합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 4:9b)
선함을 생각하고 선함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은 환경이 좋아서 위대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들어오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여섯 가지의 선함의 필터로 걸러내며 살았습니다. 선함의 번짐은 거창한 구호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품은 하나의 생각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며, 사랑받을 만하며, 칭찬받을 만한 생각에서부터 선함이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 사회, 교회도 그렇습니다. 선함이 번져 가는 일에 열심을 내는 소망의 모든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선함의 번짐 :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4:8~9)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552, 286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최근에 어떤 생각이 나의 감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창립 50주년을 준비하는 2026년, 우리 공동체의 혈류 속에 ‘선함’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 선함이 우리의 생각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며, 감옥 속에서도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외칩니다. 뇌과학자들은 뇌가 외부 세계를 예측하고, 그 예측이 현실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내 생각의 필터가 내 현실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채워야 할 생각의 덕목을 6가지로 제시합니다. ‘참됨’은 가면을 쓰지 않는 진실한 태도입니다. ‘경건’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품격입니다. ‘옳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른 길을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정결함’은 계산이나 사심 없는 순수함입니다. ‘사랑받을 만함’은 곁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따뜻함입니다. ‘칭찬받을 만함’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 하나님을 느끼게 하는 영향력입니다.
요즘은 진실보다 선동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바울도 비방과 거짓으로 감옥에 갇혔지만,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참됨과 경건과 옳음을 선택했습니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말합니다. 선함은 생각에서 시작되어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정직한 거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섬김이 바로 선함이 번져가는 통로입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러한 덕목들을 삶으로 살아낸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는 유혹 앞에서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외쳤고, 억울한 세월 속에서도 복수 대신 옳음을 선택했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선함을 생각하고 선함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선함의 번짐은 오늘 여러분이 마음속에 품는 ‘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비난할 거리가 보일 때 칭찬할 것을 찾으십시오. 거짓된 소문이 들릴 때 참된 진실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이것들을 생각하며’ 살아갈 때, 우리 소망교회의 영적 신경망에는 그리스도의 생명수가 가득 흐르게 될 것입니다.
<나누기>
1. 6가지 생각의 덕목 중에서, 내게 가장 필요하거나 도전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한 주간 어떤 생각의 필터를 사용하여 선함을 실천할 수 있을지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에게 ‘생각’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어두운 소식과 부정적인 생각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게 하시고, 오직 참되고, 경건하며, 사랑받을 만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우리 소망교회 성도들의 생각이 선함의 발원지가 되어, 우리 사이의 모든 마디마다 생명의 수액이 흐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2026년 한 해 동안 우리가 선한 것을 생각하고 행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