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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는 교회의 성도로서 첫발을 내딛는 기독교의 중요한 예식입니다.>
오늘 세례와 입교를 받으신 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세례는 거룩한 소명이다”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자리에 세례와 입교 받으시는 분들의 마음속에는 아마 무언가 큰 결심과 생각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오늘 어쩌면 설교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아마 모든 사람의 마음이 감동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례는 기독교의 입문 예식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교회의 대답은 ‘세례’입니다. 많은 분이 “내가 예배에 출석하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내가 등록한 교회에 나의 적(籍)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분들은 “나는 교회에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를 믿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하며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기독교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교회가 견제하고 있는 일관된 공식적인 대답은 “세례를 통하여”라는 답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지 않고서는 공적으로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장로교인 우리 소망교회도 그렇듯이 가장 많은 교인과 공동체가 참여하는 교인 총회가 있습니다. 그 총회를 우리는 ‘공동의회’라고 부릅니다. 이 공동의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세례 교인’입니다. 세례 교인이 교인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예식은 교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이 세례 예식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흥미롭게도 세례는 ‘세례 요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례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였던 의식은 아니었습니다. 구약에서도 물을 사용하는 정결 예식은 있었지만, 단 일회적인 의미로 행해지는 세례와 같은 의식은 없었습니다. 구약에서 일회적으로 행하는 의식은 ‘할례’가 있었지만, 그것은 물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남성들에게만 국한되었던 의식이었습니다. 물을 사용하면서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받는 이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세례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하며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의 세례를 친히 받으시죠. 그렇게 하심으로써 세례는 기독교 예전의 입문 예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받으신 세례이므로 우리는 이 세례를 받으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는 내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첫 번째 단계이며 기독교의 입문예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의 두 가지 차원 중 한 가지를 베풀며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가르칩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면 세례는 무엇인가? 오늘 본문과 이어지는 내용들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례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요한이 베푸는 세례’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이 베푸시는 세례’입니다. 복음서는 이 둘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러면서도 이 둘을 분명하게 구분하며 서로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우리는 ‘물세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세례를 ‘불세례’ 혹은 ‘성령 세례’라고 말하죠. 오늘 우리가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물세례를 베푸는 현장에 성령 세례가 임하는지 또는 그 전과 후에 성령 세례가 임하는지에 대한 관점은 교단과 교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물세례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두 가지 세례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눅 3:16)
세례 요한은 자신이 베푸는 물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실 성령 세례를 준비하는 단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물로 베푸는 세례, 요한의 세례는 어떤 세례입니까? 성경은 이 세례의 성격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눅 3:3)
성경은 세례 요한이 베푸는 물세례를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이라는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회개의 세례”라는 표현입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교회는 어떤 한 부분을 조금 더 강조하며 지금까지 이해해 왔습니다.
과거 오랫동안 고대와 중세 교회는 이 표현들 중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왔습니다. 그리고 물로 주는 세례가 죄 사함의 능력이 있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특별히 중세 초기로 넘어오면서 교회는 세례가 인간의 원죄를 제거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여러 전통의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관점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세례 요한의 세례에서 중요한 점은 ‘회개의 세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죄 사함의 세례’라는 관점을 가진 교회들에는 세례를 베풀기만 하면 자동으로 죄 사함을 얻는다는 오해가 여러 번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뒤에 있는 ‘회개의 세례’를 잊어버린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개란 어떤 것입니까? 변화되는 것이죠. 스스로 결단하며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서야 죄 사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죄 사함은 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자칫 간과해 왔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눅 3:7~9)
세례 요한이 요단강 강가에 나와 물로 세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종말과 심판을 준비하라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세례 요한이 선포하는 회개의 세례는 단지 요단강물에 죄를 씻고 나오는 신비로운 의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돌아서는 것, 회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회개한 열매가 드러나는 것, 돌아섰다는 증거가 삶으로 보이는 것. 이것을 세례 요한은 이야기합니다.
<세례받은 사람들은 나를 위했던 관계의 방향을 바꾸어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세례를 받은 분들, 그리고 이미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내가 세례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례받은 자의 삶은 이 세상의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질문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은 예루살렘 도성을 나와 광야를 지나서 요단강까지 내려왔을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요단강까지 나오는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단강에서 다른 삶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너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음성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제부터는 광야에서 살아라. 지금까지 예루살렘 도성에서 편하게 세상을 즐기고 살았다면, 이제 촉박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구별된 삶을 살아라”라는 말씀이었을까요? 이제 수도원으로 들어가 세상과 결별하며 회개의 삶을 살고, 가족과 직업도 다 버리고 하늘만을 바라보며 다른 삶을 살라는 말씀이었을까요? 그런데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세례받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눅 3:10)
“회개의 열매가 있는 삶은 어떻게 사는 삶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이 답합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눅 3:11)
어느 광야나 도시 같은 장소로 가라 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다른 관점을 말합니다. 그는 회개의 삶을 ‘사람들과의 관계’로 말합니다. “네가 지금까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느냐?”라는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를 위하여 맺어 왔던 모든 관계들을 새롭게 정돈하고 회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인간관계를 내가 잘되려는 방편으로 사용합니다.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을 찾고, 누군가에게 내가 얻을 것이 있을 때 우리는 열심히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를 위하여 있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내가 저 사람을 통하여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우리가 흔히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회개의 세례는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요청합니다. 완전히 뒤바꿔서 “내가 저 사람을 향하여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어떤 것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옷이 없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무엇이 그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 방식으로 완전히 사고를 전환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세례입니다.
그러나 회개의 세례를 받은 자의 삶의 현장은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 그곳으로 돌아가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세례입니다. 옷이 없는 자에게 내가 무엇을 할까,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위한 타자가 아니라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나의 삶을 바꾸어 내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받은 사람의 삶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향입니다.
<세례받은 사람들은 공감의 능력으로 자기 삶의 자리에서 정의를 회복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회개의 세례는 주변 사람들의 곤경과 처지를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살라는 초청입니다. 옷이 없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나 스스로가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공감의 능력, 긍휼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른 이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세례를 받은 사람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아는 것이 회개의 세례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또 이렇게 이어집니다.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눅 3:12~14)
세례 요한에게 세리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세례를 받고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또 군인들도 와서 묻습니다. “이제 나는 세례를 받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흥미롭게도 세례 요한이 세리에게는 “회개하고 세리라는 나쁜 직업을 버려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합당한 회개의 열매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군인에게는 그들의 직업이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는 좋지 않은 직업이니 그 직업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물세례, 곧 회개의 세례를 받고자 하는 그들에게 광야에 머무르라거나 직업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지, 너의 직업이 어떠하든지, 네 삶의 장이 어디이든지 그 자리를 바르게 펴라”라고 말합니다.
당시 세리들은 국가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거두어서 자신을 위해 착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군인들에게는 무기가 들려 있고 권한도 주어졌기에 얼마든지 사람들의 소유를 강탈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세례를 받은 세리와 군인들에게 이제 주어진 것 외에는 거두지 말고, 약한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며 권한과 능력을 정의롭게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의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정의롭고 바르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세례받은 사람이 살아가야 할 회개의 세례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네가 무엇을 하든지, 너의 직업이 어떤 것이든지, 네 삶의 자리에서 정의를 회복하여라. 너에게 주어진 권한과 능력을 너를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삶을 바르게 펴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날 수 있게 하라.” 이것이 회개의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진정 회개했다면 이웃과의 관계가 달라지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자녀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 세상 및 자연과의 관계도 달라져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동물과 자연의 모든 피조물을 볼 수 있고, 모든 것들을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가면서 그에게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공감의 능력과 긍휼의 마음으로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정의가 흘러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세례는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물로 세례를 받을 때 그냥 물에 닿기만 하면 나의 모든 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물세례를 받을 때 회개가 동반해야 합니다. 이 회개의 동반은 그저 감정적으로 복받쳐 눈물을 흘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내 삶의 틀을 완전히 바꿔 내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물로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신 분들에게 이러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미 받은 세례를 받은 모두에게도 회개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가득 맺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Baptism Is A Holy Calling
Luke3:7-14
We joyfully welcomed our brothers and sisters who were baptized today. Why did we performbaptism today and what is its significance to us?
Baptism is a sacrament of admission to Christianity performed by the church.
If you ask, “How did I become a Christian?”, the church’s official answer will be, “Through baptism.”
Many people believe that they have become a Christian by attending Sunday service. Some think they have become a Christian bybecoming a registered member of a church. Still some claim they are a Christianbecause they believe in Jesus in their hearts,evenif they do not attend church.
But ever since the start of Christianity the church’s answer to the question“How does one become a Christian?” has been the same:“through baptism.”
Therefore without baptism one is not officially a Christian.
In this sense, today’s baptism is a very importantsacrament for the church too since the church is a communitymade up of Christians.
Then how did this sacrament of baptism begin? Its origin traces all the way back to the Scripture we just read.
The ceremony of baptism goes all the way back to the name John the Baptist.
Interestingly, baptism was not a ceremony performed by the Israelites in the Old Testament. In the Old Testament there is a purification ceremony performed with water but not a baptism done on a one-time basis. The Old Testament ceremony whose concept is similar to that of baptism would be circumcision; but circumcision did not use water and was performed only on men.
Baptisms using water started from John the Baptism. It became the ceremony of admission to Christianity as Jesus received it Himself.
Since Jesus also received baptism, we take our first step in following Christ by being baptized. In this sense, baptism is the first act inbecoming a disciple of Christ.
When we follow Jesus, who said,“Follow Me,” we first receive baptism just as Jesus first received baptism.
Now let’s delve deeper. What is baptism? Although it cannot be fully explained in this sermon, several things may be learned in today’s passage.
First, thefollowing may be confirmedin apassage connected to today’s Scripture:baptism involves two dimensions/stages.
The first is the baptism performed by John, that is, the baptism of John; and the second is the baptism of Jesus.
The Gospels make a clear distinction between the two, explaining that they are connected but of different dimensions.
The baptism of John is one of water, while the baptism of Jesus is one of the Holy Spirit.
This is what John the Baptist says about the two baptisms:
“John answered them all, ‘I baptize you with water. But one more powerful than I will come, the thongs of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untie.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fire.’”(Luke3:16)
As such John makes it clear that his baptism with water is a preparation for Jesus’baptism of the Holy Spirit.
Then what is John’s baptism of water? This is how the Bible explains it:
“He went into all the country around the Jordan, preaching a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forgiveness of sins.”(Luke3:3)
The Bible says that John’s baptism of water was one of repentance for the forgiveness of sins.
Here we must pay careful attention to two expressions: “for the forgiveness of sins” and “a baptism of repentance.”
For centuries in ancient times and in the church ofthe Middle Ages, the emphasis was on the phrase “for the forgiveness of sins.” Thus,it was believed that the baptism of water had the power to forgive sins. In the early Middle Ages, in particular, the churchtaught that baptism even had the effect of erasing man’s original sin. Churches today continue to holda perspective based on this medievalthought.
However, the true emphasis of John’s baptism is on“a baptism of repentance.” Repentance is to stop taking one’s current path and to turn back. Therefore it means to turn to God, to reverse one’s direction toward God. This is the baptism of repentance.
However, John the Baptist says that this baptism of repentance can never be gained by cleansing oneself with water, but can be reached through a changed life.
He urges the crowd who has come to see him to repent and rebukes them in a harsh language:
“John said to the crowds coming out to be baptized by him, ‘You brood of vipers! Who warned you to flee from the coming wrath?Produce fruit in keeping with repentance. And do not begin to say to yourselves,We have Abraham as our father. For I tell you that out of these stones God can raise up children for Abraham.The axe is already at the root of the trees, and every tree that does not produce good fruit will be cut down and thrown into the fire.’”(Luke3:7-9)
However, this baptism of repentance proclaimed by John does not mean to just dip oneself in the Jordan, but to live a changed life.
In short, John is urging those who have come to be baptized to live a completely different life. He speaks of a way of life that is wholly different from their previous lives, a new way. He demands that they live a life proving their repentance.
This is preciselywhat our Lord is asking of you who are being baptized today—as well as of all of us who have been baptized.
Then how can we live a renewed life? John the Baptist gavebaptisms of repentance,living in the wilderness and going about the regions adjacent to the Jordan River. Accordingly, those in Jerusalem who wished to be baptized by him had to leave the city, make their way across the wilderness, and travel all the away to the Jordan in order to be baptized by him. People living in other areas also had to do the same. They had to make the effort of traveling all the way to the Jordan.
The baptism of water was not given with the water in some well in the Temple of Jerusalem. One had to go out into the wilderness and travel all the way to the Jordan. In other words, those who wished to be baptized had to make an effort, a decision, a resolution.
And they received their baptisms there. There they heard the voice of God telling them to live a completely different life. “Now produce fruit that is consistent with yourrepentance.”
Those who were baptized asked John:
“‘What should we do then?’ the crowd asked.”(Luke3:10)
They are in effect asking, “What is the life that bears the fruit of repentance?” John answers:
“The man with two tunics should share with him who has none, and the one who has food should do the same.”(Luke3:11)
First, John explains the life of repentance in terms of “human relationships.” He is questioningthe crowd on how they have lived till then in terms of their relationship with others. Renew your selfish and self-centered relationships. Repent!
In general, we tend to use relationships for ourgain. We seek out and become connected to people who we think will be helpful to us and forge relationships when there is something to gain. In short, others exist for me.
But the baptism of repentance requires a new relationship. We must now think, ‘What can I do for others? If someone is without clothes, what can I do for him/her? If someone is hungry, what can I do for him that will help him the most?’
Interestingly, as John talks about the fruit of repentance and a baptism of repentance, he does not teachpeople to go into a monastery, or to remain in the wilderness with him eating locusts and honey.
He tells them to go to where the people in this world are and to see their pain and hurt. This is the baptism of repentance. What must I do for the onewithout clothes? What must I do for the hungry? Thinking these thoughtsandacting upon them is the way of life of the baptized Christian.
Furthermore, this baptism of repentance is, therefore, an invitation to a life thatempathizes with the pain and plight of our neighbors. We need to have compassion for our neighbors without clothes. We toomust feel the pain of people who go hungry. We must have the ability to empathize, a heart of compassion.
We need to feel other people’s pain as if it were ours. This is the way of life of the baptized. This is the baptism of repentance.
But today’s passage also contains these words:
“Tax collectors also came to be baptized. ‘Teacher,’ they asked, ‘what should we do?’‘Don’t collect any more than you are required to,’ he told them.Then some soldiers asked him, ‘And what should we do?’ He replied, ‘Don’t extort money and don’t accuse people falsely–be content with your pay.’”(Luke3:12-14)
Tax collectors came to John and asked, “How should we live?” Soldiers also came asking the same question.
Interestingly, John does not say, “Therefore, repent and leave your tax-collecting job. Since it is a dirty profession, find a new job. This is to produce fruit worthy of repentance.”
Neither does he say to soldiers, “Since a soldier kills, it is not a good occupation that pleases God. Sofind another job. This is the fruit of repentance.”
He does not say to those who have come to him to receive a baptism of water and repentance, “Stay in the wilderness, enter a monastery.” Nor does he tell them to change their jobs.
He is telling them to live a righteous life in whatever they do.
At the time, tax collectors collected more than what the state dictated, confiscatinga large sum for themselves. Soldiers with weapons and power could easily take by force what they wanted from the people.
But John says to them. Don’t takewhat is not rightfully yours to take, don’t use violence against the weak, and don’t accuse people falsely.
In short, live justly. Live righteously. This is the baptism of repentance.
Today we had a baptism ceremony. May we remember well what the baptismI received today means to me.
This baptism is a baptism for the forgiveness of sins. But that forgiveness of sins does not come automatically from a mysterious ceremony of sprinkling water. It happens when we repent.
Then how do we repent? We can repent by praying in tears. But for that prayer of repentance to be a true one, fruit that is consistent with repentance must be demonstrated.
If we have truly repented, our relationship with our neighbors, with our spouse, with our children, and even with others must change. Our hearts must be changed into a heart of compassion through empathy, and justice must flow where we are. This is the way of life of the baptized. This is the baptism that leads to repentance.
I don’t usually preach in a series, but in my next message I will preach about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The baptism of water, of repentance demands our resolution. Through this baptism of repentance we can advance toward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that God has prepared for us.
May those of you being baptized today make a small resolution to produce fruit worthy of your repentance. May all of us here who have been baptized also bear abundant fruit of repentance.
누가복음 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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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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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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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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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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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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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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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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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세례는 교회의 성도로서 첫발을 내딛는 기독교의 중요한 예식입니다.>
오늘 세례와 입교를 받으신 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세례는 거룩한 소명이다”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자리에 세례와 입교 받으시는 분들의 마음속에는 아마 무언가 큰 결심과 생각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오늘 어쩌면 설교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아마 모든 사람의 마음이 감동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례는 기독교의 입문 예식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교회의 대답은 ‘세례’입니다. 많은 분이 “내가 예배에 출석하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내가 등록한 교회에 나의 적(籍)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분들은 “나는 교회에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를 믿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하며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기독교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교회가 견제하고 있는 일관된 공식적인 대답은 “세례를 통하여”라는 답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지 않고서는 공적으로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장로교인 우리 소망교회도 그렇듯이 가장 많은 교인과 공동체가 참여하는 교인 총회가 있습니다. 그 총회를 우리는 ‘공동의회’라고 부릅니다. 이 공동의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세례 교인’입니다. 세례 교인이 교인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예식은 교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이 세례 예식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흥미롭게도 세례는 ‘세례 요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례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였던 의식은 아니었습니다. 구약에서도 물을 사용하는 정결 예식은 있었지만, 단 일회적인 의미로 행해지는 세례와 같은 의식은 없었습니다. 구약에서 일회적으로 행하는 의식은 ‘할례’가 있었지만, 그것은 물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남성들에게만 국한되었던 의식이었습니다. 물을 사용하면서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받는 이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세례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하며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의 세례를 친히 받으시죠. 그렇게 하심으로써 세례는 기독교 예전의 입문 예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받으신 세례이므로 우리는 이 세례를 받으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는 내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첫 번째 단계이며 기독교의 입문예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의 두 가지 차원 중 한 가지를 베풀며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가르칩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면 세례는 무엇인가? 오늘 본문과 이어지는 내용들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례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요한이 베푸는 세례’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이 베푸시는 세례’입니다. 복음서는 이 둘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러면서도 이 둘을 분명하게 구분하며 서로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우리는 ‘물세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세례를 ‘불세례’ 혹은 ‘성령 세례’라고 말하죠. 오늘 우리가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물세례를 베푸는 현장에 성령 세례가 임하는지 또는 그 전과 후에 성령 세례가 임하는지에 대한 관점은 교단과 교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물세례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두 가지 세례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눅 3:16)
세례 요한은 자신이 베푸는 물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실 성령 세례를 준비하는 단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물로 베푸는 세례, 요한의 세례는 어떤 세례입니까? 성경은 이 세례의 성격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눅 3:3)
성경은 세례 요한이 베푸는 물세례를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이라는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회개의 세례”라는 표현입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교회는 어떤 한 부분을 조금 더 강조하며 지금까지 이해해 왔습니다.
과거 오랫동안 고대와 중세 교회는 이 표현들 중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왔습니다. 그리고 물로 주는 세례가 죄 사함의 능력이 있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특별히 중세 초기로 넘어오면서 교회는 세례가 인간의 원죄를 제거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여러 전통의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관점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세례 요한의 세례에서 중요한 점은 ‘회개의 세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죄 사함의 세례’라는 관점을 가진 교회들에는 세례를 베풀기만 하면 자동으로 죄 사함을 얻는다는 오해가 여러 번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뒤에 있는 ‘회개의 세례’를 잊어버린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개란 어떤 것입니까? 변화되는 것이죠. 스스로 결단하며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서야 죄 사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죄 사함은 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자칫 간과해 왔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눅 3:7~9)
세례 요한이 요단강 강가에 나와 물로 세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종말과 심판을 준비하라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세례 요한이 선포하는 회개의 세례는 단지 요단강물에 죄를 씻고 나오는 신비로운 의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돌아서는 것, 회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회개한 열매가 드러나는 것, 돌아섰다는 증거가 삶으로 보이는 것. 이것을 세례 요한은 이야기합니다.
<세례받은 사람들은 나를 위했던 관계의 방향을 바꾸어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세례를 받은 분들, 그리고 이미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내가 세례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례받은 자의 삶은 이 세상의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질문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은 예루살렘 도성을 나와 광야를 지나서 요단강까지 내려왔을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요단강까지 나오는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단강에서 다른 삶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너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음성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제부터는 광야에서 살아라. 지금까지 예루살렘 도성에서 편하게 세상을 즐기고 살았다면, 이제 촉박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구별된 삶을 살아라”라는 말씀이었을까요? 이제 수도원으로 들어가 세상과 결별하며 회개의 삶을 살고, 가족과 직업도 다 버리고 하늘만을 바라보며 다른 삶을 살라는 말씀이었을까요? 그런데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세례받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눅 3:10)
“회개의 열매가 있는 삶은 어떻게 사는 삶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이 답합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눅 3:11)
어느 광야나 도시 같은 장소로 가라 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다른 관점을 말합니다. 그는 회개의 삶을 ‘사람들과의 관계’로 말합니다. “네가 지금까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느냐?”라는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를 위하여 맺어 왔던 모든 관계들을 새롭게 정돈하고 회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인간관계를 내가 잘되려는 방편으로 사용합니다.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을 찾고, 누군가에게 내가 얻을 것이 있을 때 우리는 열심히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를 위하여 있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내가 저 사람을 통하여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우리가 흔히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회개의 세례는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요청합니다. 완전히 뒤바꿔서 “내가 저 사람을 향하여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어떤 것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옷이 없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무엇이 그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 방식으로 완전히 사고를 전환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세례입니다.
그러나 회개의 세례를 받은 자의 삶의 현장은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 그곳으로 돌아가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세례입니다. 옷이 없는 자에게 내가 무엇을 할까,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위한 타자가 아니라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나의 삶을 바꾸어 내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받은 사람의 삶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향입니다.
<세례받은 사람들은 공감의 능력으로 자기 삶의 자리에서 정의를 회복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회개의 세례는 주변 사람들의 곤경과 처지를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살라는 초청입니다. 옷이 없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나 스스로가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공감의 능력, 긍휼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른 이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세례를 받은 사람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아는 것이 회개의 세례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또 이렇게 이어집니다.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눅 3:12~14)
세례 요한에게 세리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세례를 받고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또 군인들도 와서 묻습니다. “이제 나는 세례를 받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흥미롭게도 세례 요한이 세리에게는 “회개하고 세리라는 나쁜 직업을 버려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합당한 회개의 열매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군인에게는 그들의 직업이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는 좋지 않은 직업이니 그 직업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물세례, 곧 회개의 세례를 받고자 하는 그들에게 광야에 머무르라거나 직업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지, 너의 직업이 어떠하든지, 네 삶의 장이 어디이든지 그 자리를 바르게 펴라”라고 말합니다.
당시 세리들은 국가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거두어서 자신을 위해 착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군인들에게는 무기가 들려 있고 권한도 주어졌기에 얼마든지 사람들의 소유를 강탈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세례를 받은 세리와 군인들에게 이제 주어진 것 외에는 거두지 말고, 약한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며 권한과 능력을 정의롭게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의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정의롭고 바르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세례받은 사람이 살아가야 할 회개의 세례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네가 무엇을 하든지, 너의 직업이 어떤 것이든지, 네 삶의 자리에서 정의를 회복하여라. 너에게 주어진 권한과 능력을 너를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삶을 바르게 펴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날 수 있게 하라.” 이것이 회개의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진정 회개했다면 이웃과의 관계가 달라지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자녀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 세상 및 자연과의 관계도 달라져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동물과 자연의 모든 피조물을 볼 수 있고, 모든 것들을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가면서 그에게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공감의 능력과 긍휼의 마음으로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정의가 흘러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세례는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물로 세례를 받을 때 그냥 물에 닿기만 하면 나의 모든 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물세례를 받을 때 회개가 동반해야 합니다. 이 회개의 동반은 그저 감정적으로 복받쳐 눈물을 흘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내 삶의 틀을 완전히 바꿔 내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물로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신 분들에게 이러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미 받은 세례를 받은 모두에게도 회개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가득 맺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10월 13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세례는 거룩한 소명입니다” (눅 3장 7-14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73장, 426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눅 3장 7-14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0월 1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정식으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어떠한 의미를 지닌 예식일까요? 기독교의 세례예식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요? 세례가 나의 삶에 가져오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설교의 요약
세례는 교회가 행하는 기독교 입문예식입니다.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대답이 ‘세례’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예식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요? 흥미롭게도 세례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였던 의식이 아닙니다. 물을 사용하는 세례는 세례요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세례를 친히 받으셨기 때문에 기독교 예전의 입문예식이 되었습니다.
세례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요한의 물세례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성령세례입니다. 세례요한의 물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실 성령세례를 준비하는 세례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물세례는 어떤 세례일까요? 세례요한의 세례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세례가 ‘회개의 세례’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선포하는 이 회개의 세례는 단지 요단강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삶이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회개의 열매가 있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우선 요한은 회개의 삶을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야기합니다. 회개한 사람은 인간관계를 내가 잘 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회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곤경과 처지를 공감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직업을 바꾸거나 수도원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바르게 살아갑니다. 즉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는 물을 묻힘으로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예식이 아니라 회개와 새로운 삶을 통해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나타나는 예식인 셈입니다.
진정 회개했다면, 우리의 관계가 달라지고 다른 사람을 공감하며 나의 삶의 자리에서 정의가 흘러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받은 자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회개에 이르는 세례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는 분들과 이미 세례를 받은 분들 모두에게 이러한 회개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 세례를 받기로 결단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세례를 받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소중한 기억이 있나요? 각자의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 세례가 하나의 예식으로 끝나지 않고 세례를 받은 이후에 나의 삶에서 경험한 변화가 있었나요?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가 세례를 베풀며, 우리가 받은 세례가 어떠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물세례, 회개에 이르는 세례를 우리가 받음으로 성령세례를 준비합니다. 삶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며 새롭게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