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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마련하라

빌레몬 1:22

김경진 목사

2026.02.15

<지나치기 쉬운 말씀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은혜가 있습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몬 1:22)

 

여러분은 오늘의 본문인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짧다는 생각이 드셨습니까? 얼마 전 새벽 기도 시간에 빌레몬서를 읽으면서 이 문장을 보았을 때, 저는 왜 이런 본문이 성경에 들어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문장에도 영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을지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바울 서신 중에 가장 짧은 서신인 빌레몬서는 총 1장과 25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 마지막 인사 부분은 23절부터 시작합니다. 바울과 함께 에바브라,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의 문안과 더불어서 이와 같은 인사로 마무리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몬 1:25)

 

이 마지막 인사 앞에 있는 절이 오늘의 본문인 22절입니다. 즉, 본론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이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몬 1:22)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서에 남긴 이 문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언뜻 보면 서신의 마지막에 사족처럼 붙은 ‘숙박 예약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런 의미일까요?

오늘 설교 제목이 “숙소를 마련하라”입니다. 여러분은 이 제목을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부동산을 사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단순한 문장이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는 오로지 성령님의 몫입니다. 오늘은 제가 이 본문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영적인 교훈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그 뜻을 밝히 드러내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선 이 문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빌레몬서 전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쓴 서신입니다. 발신자는 바울과 디모데이며, 수신자는 빌레몬입니다. 그렇다면 빌레몬은 누구일까요? 그는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이자 재력가이며,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인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예배 처소로 내놓을 만큼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향하여 이런 인사말로 서신을 시작합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주 예수에 대한 그대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그대의 사랑에 관하여 듣고 있습니다. (몬 1:4~5, 새번역)

 

바울은 이렇게 인사하며 빌레몬에 대한 칭찬을 이어 갑니다.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그대로 말미암아 마음에 생기를 얻었습니다. (몬 1:7, 새번역)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빌레몬에게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무슨 이유로 서신을 보냈을까요? 바울은 감옥에서 어떤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로 오네시모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골로새 지역의 빌레몬 집에 살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몰래 주인의 재산을 빼돌려서 도망하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도망친 노예는 사형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종이 주인의 재산을 몰래 훔쳐서 달아났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였습니다. 언제 죽어도 마땅할 만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오네시모는 도망자로 지내면서 날마다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로마로 숨어들었던 오네시모가 감옥에 있던 바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노예이자 도망자였던 그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바울은 오네시모를 매우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보내는 서신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아들 오네시모를 두고 그대에게 간청합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는 바로 내 마음입니다. (몬 1:10~12, 새번역)

 

바울에게 오네시모가 얼마나 귀한 사람이 되었는지, 바울은 그를 가리켜서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정은 이 부분을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라고 표현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바울은 그를 가리켜서 ‘내 마음’(새번역)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내 심복’(개역개정)이라고도 번역되어 있는데, 이 단어는 원어적으로 ‘나의 심장’이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표현 속에 바울의 오네시모를 향한 애정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변화된 종 오네시모가 형제로 영접받기를 바라며 빌레몬에게 믿음의 요청을 건넵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오네시모의 이름 뜻을 유머러스하게 사용하면서 오네시모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오네시모’라는 헬라어 이름은 ‘쓸모 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당시 로마 지역에 속한 종들에게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름을 붙여 줄 때 ‘너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쓸 만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아 ‘오네시오(쓸모 있다)’라는 이름을 붙여 주곤 하였습니다.

빌레몬 역시 그러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을 붙여 줄 때 그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도망하였습니다. 주인에게 해를 끼쳤으니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거듭난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바울은 그가 쓸모없던 자에서 쓸모 있는 자로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몬 1:11, 새번역)

 

이제 그야말로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이름처럼 유용한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변화된 오네시모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종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거듭났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이 대두됩니다.

이 주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못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제 하나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서신이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은 도망 나온 오네시모가 다시 거듭난 후에 주인에게로 돌아가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가야 할 마땅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을 때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빌레몬이 주인으로서 그를 엄하게 처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형을 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안전을 생각하면서 오네시모를 위한 서신인 빌레몬서를 써 줍니다.

바울은 빌레몬으로부터 도망쳤다가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죄를 깨닫고 다시 돌아가려는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를 기쁘게 맞아 달라고 청원합니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청원이 그 당시 상황 속에서는 매우 어려운 부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이 요청에 더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도망쳐 나왔던 오네시모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빌레몬에게 바울은 이렇게 부탁합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몬 1:16~18)

 

그리고 바울은 빌레몬이 기꺼이 이 부탁을 들어줄 것을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몬 1:20~21)

 

바울은 빌레몬이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 후에 바울은 주제의 흐름에서 살짝 빗나간 것 같은 한 문장을 마지막으로 덧붙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몬 1:22a)

 

우리는 이 문장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앞의 이야기를 길게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전체적인 빌레몬서의 흐름 속에서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바울이 끝인사에서 덧붙인 당부는 빌레몬의 순종을 요청하는 암묵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여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이런 뜻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이런 뜻이 아닐까요? “빌레몬, 내가 이제 조만간 너의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눈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 너는 내가 부탁한 숙제, 즉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이는 실천을 다 마친 상태로 나를 맞이해 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내 숙소를 마련하라’라는 바울의 명령 속에 담긴 속뜻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구절이 있으므로 바울의 권면은 그저 좋은 말의 나열이 아닌, 아주 실제적인 삶의 자리까지 나아감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부탁은 이 지점에서 매우 실감 나는 현실로 바뀝니다. 상상해 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나서 빌레몬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빌레몬이 반갑게 문을 열어 줍니다. 그리고 그가 묵을 방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때 빌레몬의 등 뒤에 누가 서 있어야 하겠습니까? 빌레몬의 돈을 훔쳐 달아났다가 다시 예수를 믿고 돌아온 종, 오네시모가 함께 바울을 맞이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이런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내용입니다.

만약 빌레몬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도 여전히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않고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면, 바울이 도착할 때 그 숙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곳은 환대의 장소가 아니라 숨 막히는 고통스러운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는 바울의 말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여기며 함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다가 내가 너에게 갈 때 오네시모와 함께 나를 환영해 달라”라는 부탁일 것입니다. 바울을 만나는 날이 축제의 날이 되게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훔쳐서 도망갔던 종이 돌아왔을 때,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선뜻 용서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갈등을 이겨 내고 오네시모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순간, 비로소 바울을 위한 숙소는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숙소는 빌레몬이 바울에게 보여 줄 ‘순종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 봅니다. 오늘 우리에게 빌레몬서와 같은 서신이 도착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나를 망치고 떠난 사람, 나를 속이고 도망간 사람, 나에게 큰 상처를 주고 도망간 사람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서신이 들려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보내 주시는 서신이었습니다. “그를 용서하여라. 그는 나에게 심장과도 같은 사람이니, 그를 받아 주되 나를 대하듯이 깍듯하게 대해 주어라. 그를 형제자매로 받아 주어라.” 그리고 마지막 말미에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라는 말씀이 붙어 있다면, 그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때, 나에게 부탁하신 일을 내가 과연 잘 해냈는지 확인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 삶의 자리를 흔들어 놓을 만한 말씀입니다. “내 말을 잘 실천하다가 나를 만날 그날이 기쁘고 즐거운 날이 되게 하라”라는 메시지가 ‘내 숙소를 마련하라’는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질문해 봅니다. 과연 빌레몬은 바울이 말한 대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였을까요? 그 결과는 성경이 알려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빌레몬은 바울의 권면대로 오네시모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과거 노예 신분에서 해방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서기 107년경, 이그나티우스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곳에 ‘오네시모’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름 옆에는 ‘감독’이라는 호칭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이 편지에서 오네시모 감독의 사랑과 영성을 극찬합니다. 많은 학자는 이 인물이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도망쳤던 노예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서 한 시대의 교회를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빌레몬서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놀라운 역전의 사건이자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기도에는 준비하고 실천하는 믿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빌레몬서의 전체적인 흐름의 틀 속에서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몬 1:22)

 

이제부터는 이 문장만 따로 떼어서 함축된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매우 평범해 보이는 문장 속에 실은 놀라운 기도의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언제 석방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더 오래 갇혀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그곳에서 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이 석방되어 그곳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바울은 석방되는 대로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의 집으로 가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부탁 앞에 놀라운 한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계속 읽어 왔던 오늘의 본문입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지금 기도의 능력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도를 부탁하면서 이미 석방될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숙소를 마련하라고 이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아직 석방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석방된 줄로 믿고 숙소부터 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하면서 그 기도가 말이나 생각 안에만 머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석방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하며, 동시에 자신이 머물 숙소 준비를 함께 부탁합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바울은 우리에게 이 한 문장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줍니다. “기도는 그냥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도가 실제적인 준비와 함께 만날 때 기적을 일으켰던 사례를 여러 곳에서 알려 줍니다.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 모압과의 전쟁에서 물이 없어서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군대의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명령하십니다.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왕하 3:16)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습니다. 바람도 불지 않았습니다. 비가 올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마른 땅에서 삽을 들고 땅을 파는 것은 어찌 보면 미친 짓같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사들은 순종하며 삽을 들고 마른 땅에 개천을 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물이 흘러 들어옵니다. 그 물이 개천을 가득 채웁니다. 만약 그들이 귀찮아서 개천을 작게 팠다면, 하나님이 비를 쏟아부어 주셨어도 그 물은 다 흘러가고 없어졌을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영역이지만, 기적을 담을 개천을 파는 것은 인간의 책임입니다.

선지자 생도의 아내였던 과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름 한 그릇밖에 남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엘리사는 말합니다.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왕하 4:3)

 

과부와 아들들이 믿음으로 빈 그릇을 모아 왔을 때, 기름은 그 그릇이 다 찰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왕하 4:6)

 

기름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멈춘 것이 아닙니다. 담을 그릇이 이제 없어서 멈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멈추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한 숙소, 우리가 준비한 그릇이 부족함 때문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뭄이 심한 어느 마을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교회당에 모였습니다. 예배당이 떠나갈 듯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성도 중에 오직 한 소녀만이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나왔습니다. 말에만 갇힌 기도가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진짜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기도가 끝나고 비가 올 것을 예견하고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나오는 사람이야말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22절 말씀은 없어도 되는 사족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매우 귀중한 지혜의 말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떠넘기고 나는 소파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행동이며 동시에 실천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주님 나의 길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길이 열릴 때 뛰쳐나갈 운동화 끈은 묶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과연 제대로 기도하는 것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주님 병을 고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건강해진 후에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하지 않는다면, 숙소를 마련하지 않는 기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취업의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어떤 청년은 매일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저의 길을 선하게 인도해 주십시오.”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도록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그 기도는 영적이고 거룩한 기도입니다. 하지만 기도가 끝난 후에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을 쌓고,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 내는 ‘숙소 마련’의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에 그것이 없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떠맡기는 방종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기도하면서도 준비가 부족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기도한다면 실천도 함께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석방을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가 묵을 방도 함께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고, 동시에 머물 숙소를 함께 준비하는 행위입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이 사도의 음성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간절한 말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Prepare a Guest Room

Philemon 1:22

“And one thing mor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because I hope to be restored to you in answer to your prayers.” (Philemon 1:22 NIV)

Not long ago, during an early morning prayer meeting, I read Philemon and when I saw this sentence in the Bible my first reaction was ‘Why is a passage like this included in Scripture?’

Philemon, the shortest of Paul’s epistles, consists of a single chapter of 25 verses. Its final greetings begin from verse 23. After mentioning that Epaphras, Mark, Aristarchus, Demas, and Luke also send their greetings, Paul closes the letter with these final words: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r spirit.” (Philemon 1:25 NIV)

Verse 22, which sits just above this final greeting, is therefore the very last part of the letter’s body. Our Scripture for today is this very verse: “And one thing mor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because I hope to be restored to you in answer to your prayers.” (Philemon 1:22 NIV)

What on earth does this sentence Paul left in Philemon mean? At first glance it appears like a trivial, unnecessary note about accommodation attached to the end of the letter, as if Paul were casually asking someone to reserve him a room. Is that really all it is?

When I first read this passage, I doubted whether it contained any spiritual message from God. Could there be spiritual truth in such a line? No matter how I thought or meditated on it, this short sentence did not seem to contain God’s will. It appeared to me merely as Paul’s personal request. My initial conclusion was that this text would be difficult to preach on.

But a thought kept coming back to me. ‘If this text is Scripture and is included in the Word of God, then wouldn’t even this personal and seemingly meaningless sentence contain God’s hidden will?’ This sentence kept returning to my mind—perhaps because at first it had seemed so oddly out of place. So I began to look at it more deeply. And, wit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I began to realize God’s intended meaning in this verse. Today I want to share the spiritual lessons of God that I found in this text. May the Spirit, the Author of the Word, reveal its meaning clearly.

“Prepare a Guest Room” is the title of today’s sermon. Some might see this title and consider it a revelation to buy a piece of real estate. Of course, how this simple sentence stirs your heart is entirel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How does this sentence strike you?

First, understanding the overall flow of Philemon will help us grasp the text.

Philemon is a letter Paul wrote from prison. The senders are Paul and Timothy, and the recipient is Philemon.

Who was Philemon? Philemon was a leader and a wealthy man in the Colossian church who had received the Gospel through Paul. He was so devoted that he offered his own house as a place of worship.

Paul begins his letter to Philemon with this greeting:

“I always thank my God as I remember you in my prayers, because I hear about your love for all his holy people and your faith in the Lord Jesus.” (Philemon 1:4–5 NIV)

And he goes on to praise Philemon.

“Your love has given me great joy and encouragement, because you, brother, have refreshed the hearts of the Lord’s people.” (Philemon 1:7 NIV)

Paul is writing to Philemon, who is living an exemplary Christian life.

So why did Paul write to Philemon?

While imprisoned, Paul came to know a man named Onesimus. He had originally been a slave belonging to Philemon in the Colossian area. Apparently he ran away, perhaps stealing his master’s property. Under Roman law a runaway slave could be put to death immediately. Moreover, having stolen his master’s goods and fled, he had committed a grave, unforgivable sin. Onesimus likely lived in fear every night as a fugitive.

But then something remarkable happened. Onesimus, hiding in Rome, met Paul in prison and heard the Gospel. And his life was completely transformed. Amazing things happened to this slave on the run. We do not know exactly what kind of changes occurred in him. But we know that Paul came to care for and love Onesimus deeply. Paul writes this to Philemon:

“that I appeal to you for my son Onesimus, who became my son while I was in chains. Formerly he was useless to you, but now he has become useful both to you and to me. I am sending him—who is my very heart—back to you.” (Philemon 1:10–12 NIV)

Onesimus has become so precious to Paul that Paul calls him “my son.” The New King James Version translation renders this as “my son Onesimus, whom I have begotten while in my chains.” The New International Version above refers to Onesimus as “my very heart.” The New Korean Revised Version uses a word that means “my right-hand man.” The meaning of the original Greek word is “my heart” as in our vital organ.

We do not know exactly how Onesimus became like a son to Paul or how he came to be Paul’s “heart,” but these expressions reveal Paul’s deep affection for him.

Interestingly, Paul puns on Onesimus’s name to describe his transformation.

The Greek name Onesimus means “useful.” It was one of the most common names among slaves in Roman regions. Masters often named slaves Onesimus with the wish that the slave be useful to them.

Philemon likely gave him that name with that expectation. But Onesimus did not prove useful—instead he ran off with his master’s property and harmed his owner. After his conversion, however, his life changed. Paul says that he has been transformed from being useless to being useful.

“Formerly he was useless to you, but now he has become useful both to you and to me.” (Philemon 1:11 NIV)

So what should this transformed Onesimus do now? If a runaway slave becomes a Christian through the Gospel, how should he live?

This question is very important for us today as well. When someone with a sinful past becomes a Christian, what should be their first step?

Paul knew that Onesimus, the runaway, should return to his master. He understood this was the path for someone saved by the Gospel. So Paul intended to send Onesimus back to Philemon.

And he wrote a letter on his behalf — this is the Epistle to Philemon.

Paul asks Philemon to receive Onesimus gladly now that he is returning to his master after becoming a Christian and having repented his sins.

Paul’s request is radical. To Philemon, who had the right to even kill this runaway slave, Paul asks something extraordinary:

“no longer as a slave, but better than a slave, as a dear brother. […] So if you consider me a partner, welcome him as you would welcome me. If he has done you any wrong or owes you anything, charge it to me.” (Philemon 1:16, 17–18 NIV)

Finally, expecting Philemon to consent willingly to his request, Paul writes once more as he closes the letter:

“I do wish, brother, that I may have some benefit from you in the Lord; refresh my heart in Christ. Confident of your obedience, I write to you, knowing that you will do even more than I ask.” (Philemon 1:20–21 NIV)

Paul is confident that Philemon will comply with his request. In fact, he expects him to do even more.

After saying this, Paul adds a somewhat off-topic line, which is our text for today:

“And one thing mor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Philemon 1:22a NIV)

We reviewed the preceding story at length to find the meaning of this single sentence.

In the context of what Paul has written so far, what does “And one thing mor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mean?

Wouldn’t it mean something like this? “Philemon, I will soon come to your house and see you in person. Will you receive me after having completed the task I asked of you — that is, forgiven Onesimus and received him as a brother?”

Wouldn’t this be the true intent of Paul’s command to “prepare a guest room for me”?

Because of this line, Paul’s appeal does not end as mere “good advice,” but becomes a very real command grounded in the concrete reality of Philemon’s house.

Imagine. Paul is released from prison and arrives at Philemon’s house. Philemon gladly opens the door to welcome him. But who should be standing behind Philemon? None other than Onesimus, the slave who stole Philemon’s money and ran away. So by writing this line Paul is, in effect, declaring that while he now sends Onesimus ahead with this letter, he will later come and see for himself the result.

If Philemon receives Paul’s letter but refuses to forgive Onesimus and still hates and imprisons him, what meaning would that guest room have for Paul when he finally arrives at Philemon’s house? It would not be a place of hospitality but of suffocating pain.

Therefore, “And one thing mor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Philemon 1:22a NIV) is Paul’s request to Philemon that he forgive Onesimus, accept him as his brother and companion in Christ, and be ready to welcome Paul joyfully when Paul comes.

It would not have been easy for Philemon to readily forgive Onesimus and receive him as a brother when Onesimus, a slave who had stolen his property and run away, returned to him. However, only when he overcomes that conflict and reaches out to Onesimus in reconciliation will the guest room for Paul be ready.

Therefore, this guest room was a sort of “obedience report” that Philemon would have to show Paul.

What if the Lord were to send us a letter like Paul’s Epistle to Philemon? Say someone who ruined my life and ran away returns to me. He is holding a letter—a letter to me from God. “Forgive him. He is my very heart; receive him and treat him as you would treat Me. Receive him as a brother/sister. I am sure you will do this. I am confident you will do even more than I ask.”

Then the Lord adds, “And one thing mor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If the Lord sent such a letter, what would you think when you read this line? Wouldn’t you feel that when the Lord comes, he will check whether you have carried out what He asked of you? Wouldn’t this line shake our lives? After receiving such a letter, how should we treat our enemies?

Let me ask some questions. Did Philemon receive Onesimus as Paul asked? Did he forgive him? The Bible does not tell us the outcome. But wouldn’t Philemon have accepted Paul’s appeal and gladly forgiven Onesimus? Perhaps he even went beyond merely sparing him punishment and freed him from slavery.

Around AD 107, Ignatius, in a letter to the church in Ephesus, mentions a bishop named Onesimus. In the letter Ignatius greatly praises Bishop Onesimus’s love and spirituality, and many scholars believe this Onesimus was the same man who had been Philemon’s slave. A runaway slave, transformed by God’s grace, became one of the greatest leaders of the church of his day. This is the astonishing reversal—the divine turnaround—shown in Philemon.

We have already found the meaning of “And one thing mor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Yet there is more to consider.

“And one thing mor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because I hope to be restored to you in answer to your prayers.” (Philemon 1:22 NIV)

If we take this single sentence alone, separated from the preceding narrative, what lesson can we draw? In this seemingly ordinary sentence there is a remarkable secret of prayer.

Think more deeply. Paul says, “I hope to be restored to you in answer to your prayers.” Currently, Paul is in prison. His fate is uncertain. Yet Paul wants to come to Philemon’s house in Colossae as soon as he is released. So he asks Philemon and the Colossian believers to pray for his release.

But he adds an astonishing line before mentioning his hope for release: “And one thing mor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What does this mean?

Paul has confidence in the power of prayer. As he makes his prayer request, he already expects to be released. This is why he asks Philemon to prepare a guest room for him.

As we pray, our prayers often remain only words or thoughts. But Paul was different. While asking for prayer for his release, he simultaneously commands, “Prepare a guest room for me.”

How should we pray? Paul teaches us by this one sentence how we should pray. Prayer is not merely speaking words. Prayer must be accompanied by action based on our belief that it will be answered. This is what Paul is teaching us.

The Bible gives many examples where prayer meets practical preparation and miracles follow.

Remember the story in the time of Elisha when Israel’s army faced destruction in the war with Moab for lack of water? God commanded through Elisha, “Make this valley full of ditches.” (2 Kings 3:16 NKJV)

There was not a cloud in the sky and no wind. Digging ditches in parched land looked foolish. Yet when the soldiers obeyed and dug ditches, water filled them the next morning. If they had dug only small ditches out of laziness, the water would only have flowed over even if God had poured down rain. Miracles are God’s domain, but digging the ditches to receive the miracle is human responsibility.

The story of the widow of a man from the company of prophets is also the same. When she was in a desperate state with only one jar of oil left, Elisha said, “Go, borrow vessels from everywhere, from all your neighbors—empty vessels.” (2 Kings 4:3 NKJV)

When the widow and her sons brought empty vessels in faith, the oil kept flowing until every vessel was filled. The Bible states, “‘There is not another vessel.’ So the oil ceased.” (2 Kings 4:3 NKJV) The oil did not stop because there was no more oil to give. It stopped because there were no more containers. Answers to our prayers stop not because God’s power is lacking, but because the “guest room” or the “vessels” we prepared are lacking.

In a drought-stricken town, believers held a prayer meeting asking for rain. The church was filled with their fervent cries. Yet among all those church members only one little girl came carrying an umbrella. People laughed: “The sky is so clear—why an umbrella?” The girl replied, “Aren’t we going to pray for rain?”

Who was truly praying? The girl who brought an umbrella, believing that rain would come. How are our prayers today? When we pray, “Lord, open a way,” do we also tie our shoelaces to run through the way God will open for us? When we pray, “Lord, heal this disease,” do we also plan how we will live for the Lord after recovery? Prayer without preparing a “guest room” is just a spell that does not believe in getting answered.

So far we have examined the meaning of today’s text. Verse 22 is not a mere addendum. It shows how prayer is made complete.

Prayer is not dumping everything on God while you lie on the sofa. Prayer is action and practice.

My friends, we often pray, “God, please open a way for me. Give me a good job, and help me meet the right people.” But when God actually opens the door, we sometimes are not ready to run through it.

Take job seeking as an example. A young man prays every night, “Lord, lead me to a good position.” Prayer is spiritual and holy. But if, after praying, he does not build skill in his field, polish his portfolio, and live each day faithfully—that is, if he does not go through the process of “preparing a guest room”—then that prayer can become a form of self-indulgence that shifts all the responsibility to God.

God opens doors; He does not take tests for us. If God miraculously gives us a chance for a job interview but we lose that opportunity because we failed to prepare a “guest room” (that is, failed to build our skills), then whose fault is it? Prayer is not a spell that forces God to act; it is the process of aligning ourselves so we can respond immediately when God acts.

There is a story about a poor woman who waited for the English missionary Hudson Taylor. Every morning she cleaned the best room in her house and polished the floor until it shone. People mocked her: “Why work so hard every day for a missionary who may never come?” She answered, “I believe God will answer. If God’s servant arrives today but he cannot rest comfortably because the room is dirty, that would be no courtesy from one who prays.” Finally, one day, that room is known to have became Hudson Taylor’s lodging and the missionary base for evangelizing the whole village.

Whether this is strictly historical or not, the message of the story is clear.

When you pray, act as well.

If you are seeking reconciliation with someone, write today a letter of apology or prepare your heart to embrace that person. If you are seeking revival in ministry, prepare today a table of love to welcome a soul.

If you are praying for a new door to open in life, prepare the skills so you can run through it without delay when it opens.

As Philemon embraced Onesimus and prepared Paul’s room, may we practice the Lord’s Word today and prepare the “guest room” of prayer. Prayer begins on our knees and is completed by the labor of hands and feet.

“And one thing mor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Philemon 1:22 NIV)

May this apostolic voice become the Lord’s voice to you and m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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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 1:22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지나치기 쉬운 말씀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은혜가 있습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몬 1:22)

 

여러분은 오늘의 본문인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짧다는 생각이 드셨습니까? 얼마 전 새벽 기도 시간에 빌레몬서를 읽으면서 이 문장을 보았을 때, 저는 왜 이런 본문이 성경에 들어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문장에도 영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을지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바울 서신 중에 가장 짧은 서신인 빌레몬서는 총 1장과 25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 마지막 인사 부분은 23절부터 시작합니다. 바울과 함께 에바브라,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의 문안과 더불어서 이와 같은 인사로 마무리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몬 1:25)

 

이 마지막 인사 앞에 있는 절이 오늘의 본문인 22절입니다. 즉, 본론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이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몬 1:22)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서에 남긴 이 문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언뜻 보면 서신의 마지막에 사족처럼 붙은 ‘숙박 예약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런 의미일까요?

오늘 설교 제목이 “숙소를 마련하라”입니다. 여러분은 이 제목을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부동산을 사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단순한 문장이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는 오로지 성령님의 몫입니다. 오늘은 제가 이 본문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영적인 교훈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그 뜻을 밝히 드러내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선 이 문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빌레몬서 전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쓴 서신입니다. 발신자는 바울과 디모데이며, 수신자는 빌레몬입니다. 그렇다면 빌레몬은 누구일까요? 그는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이자 재력가이며,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인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예배 처소로 내놓을 만큼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향하여 이런 인사말로 서신을 시작합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주 예수에 대한 그대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그대의 사랑에 관하여 듣고 있습니다. (몬 1:4~5, 새번역)

 

바울은 이렇게 인사하며 빌레몬에 대한 칭찬을 이어 갑니다.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그대로 말미암아 마음에 생기를 얻었습니다. (몬 1:7, 새번역)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빌레몬에게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무슨 이유로 서신을 보냈을까요? 바울은 감옥에서 어떤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로 오네시모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골로새 지역의 빌레몬 집에 살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몰래 주인의 재산을 빼돌려서 도망하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도망친 노예는 사형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종이 주인의 재산을 몰래 훔쳐서 달아났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였습니다. 언제 죽어도 마땅할 만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오네시모는 도망자로 지내면서 날마다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로마로 숨어들었던 오네시모가 감옥에 있던 바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노예이자 도망자였던 그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바울은 오네시모를 매우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보내는 서신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아들 오네시모를 두고 그대에게 간청합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는 바로 내 마음입니다. (몬 1:10~12, 새번역)

 

바울에게 오네시모가 얼마나 귀한 사람이 되었는지, 바울은 그를 가리켜서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정은 이 부분을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라고 표현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바울은 그를 가리켜서 ‘내 마음’(새번역)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내 심복’(개역개정)이라고도 번역되어 있는데, 이 단어는 원어적으로 ‘나의 심장’이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표현 속에 바울의 오네시모를 향한 애정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변화된 종 오네시모가 형제로 영접받기를 바라며 빌레몬에게 믿음의 요청을 건넵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오네시모의 이름 뜻을 유머러스하게 사용하면서 오네시모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오네시모’라는 헬라어 이름은 ‘쓸모 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당시 로마 지역에 속한 종들에게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름을 붙여 줄 때 ‘너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쓸 만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아 ‘오네시오(쓸모 있다)’라는 이름을 붙여 주곤 하였습니다.

빌레몬 역시 그러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을 붙여 줄 때 그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도망하였습니다. 주인에게 해를 끼쳤으니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거듭난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바울은 그가 쓸모없던 자에서 쓸모 있는 자로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몬 1:11, 새번역)

 

이제 그야말로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이름처럼 유용한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변화된 오네시모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종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거듭났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이 대두됩니다.

이 주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못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제 하나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서신이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은 도망 나온 오네시모가 다시 거듭난 후에 주인에게로 돌아가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가야 할 마땅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을 때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빌레몬이 주인으로서 그를 엄하게 처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형을 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안전을 생각하면서 오네시모를 위한 서신인 빌레몬서를 써 줍니다.

바울은 빌레몬으로부터 도망쳤다가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죄를 깨닫고 다시 돌아가려는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를 기쁘게 맞아 달라고 청원합니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청원이 그 당시 상황 속에서는 매우 어려운 부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이 요청에 더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도망쳐 나왔던 오네시모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빌레몬에게 바울은 이렇게 부탁합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몬 1:16~18)

 

그리고 바울은 빌레몬이 기꺼이 이 부탁을 들어줄 것을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몬 1:20~21)

 

바울은 빌레몬이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 후에 바울은 주제의 흐름에서 살짝 빗나간 것 같은 한 문장을 마지막으로 덧붙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몬 1:22a)

 

우리는 이 문장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앞의 이야기를 길게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전체적인 빌레몬서의 흐름 속에서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바울이 끝인사에서 덧붙인 당부는 빌레몬의 순종을 요청하는 암묵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여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이런 뜻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이런 뜻이 아닐까요? “빌레몬, 내가 이제 조만간 너의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눈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 너는 내가 부탁한 숙제, 즉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이는 실천을 다 마친 상태로 나를 맞이해 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내 숙소를 마련하라’라는 바울의 명령 속에 담긴 속뜻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구절이 있으므로 바울의 권면은 그저 좋은 말의 나열이 아닌, 아주 실제적인 삶의 자리까지 나아감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부탁은 이 지점에서 매우 실감 나는 현실로 바뀝니다. 상상해 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나서 빌레몬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빌레몬이 반갑게 문을 열어 줍니다. 그리고 그가 묵을 방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때 빌레몬의 등 뒤에 누가 서 있어야 하겠습니까? 빌레몬의 돈을 훔쳐 달아났다가 다시 예수를 믿고 돌아온 종, 오네시모가 함께 바울을 맞이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이런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내용입니다.

만약 빌레몬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도 여전히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않고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면, 바울이 도착할 때 그 숙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곳은 환대의 장소가 아니라 숨 막히는 고통스러운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는 바울의 말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여기며 함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다가 내가 너에게 갈 때 오네시모와 함께 나를 환영해 달라”라는 부탁일 것입니다. 바울을 만나는 날이 축제의 날이 되게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훔쳐서 도망갔던 종이 돌아왔을 때,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선뜻 용서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갈등을 이겨 내고 오네시모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순간, 비로소 바울을 위한 숙소는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숙소는 빌레몬이 바울에게 보여 줄 ‘순종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 봅니다. 오늘 우리에게 빌레몬서와 같은 서신이 도착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나를 망치고 떠난 사람, 나를 속이고 도망간 사람, 나에게 큰 상처를 주고 도망간 사람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서신이 들려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보내 주시는 서신이었습니다. “그를 용서하여라. 그는 나에게 심장과도 같은 사람이니, 그를 받아 주되 나를 대하듯이 깍듯하게 대해 주어라. 그를 형제자매로 받아 주어라.” 그리고 마지막 말미에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라는 말씀이 붙어 있다면, 그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때, 나에게 부탁하신 일을 내가 과연 잘 해냈는지 확인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 삶의 자리를 흔들어 놓을 만한 말씀입니다. “내 말을 잘 실천하다가 나를 만날 그날이 기쁘고 즐거운 날이 되게 하라”라는 메시지가 ‘내 숙소를 마련하라’는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질문해 봅니다. 과연 빌레몬은 바울이 말한 대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였을까요? 그 결과는 성경이 알려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빌레몬은 바울의 권면대로 오네시모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과거 노예 신분에서 해방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서기 107년경, 이그나티우스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곳에 ‘오네시모’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름 옆에는 ‘감독’이라는 호칭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이 편지에서 오네시모 감독의 사랑과 영성을 극찬합니다. 많은 학자는 이 인물이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도망쳤던 노예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서 한 시대의 교회를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빌레몬서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놀라운 역전의 사건이자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기도에는 준비하고 실천하는 믿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빌레몬서의 전체적인 흐름의 틀 속에서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몬 1:22)

 

이제부터는 이 문장만 따로 떼어서 함축된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매우 평범해 보이는 문장 속에 실은 놀라운 기도의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언제 석방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더 오래 갇혀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그곳에서 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이 석방되어 그곳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바울은 석방되는 대로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의 집으로 가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부탁 앞에 놀라운 한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계속 읽어 왔던 오늘의 본문입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지금 기도의 능력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도를 부탁하면서 이미 석방될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숙소를 마련하라고 이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아직 석방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석방된 줄로 믿고 숙소부터 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하면서 그 기도가 말이나 생각 안에만 머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석방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하며, 동시에 자신이 머물 숙소 준비를 함께 부탁합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바울은 우리에게 이 한 문장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줍니다. “기도는 그냥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도가 실제적인 준비와 함께 만날 때 기적을 일으켰던 사례를 여러 곳에서 알려 줍니다.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 모압과의 전쟁에서 물이 없어서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군대의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명령하십니다.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왕하 3:16)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습니다. 바람도 불지 않았습니다. 비가 올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마른 땅에서 삽을 들고 땅을 파는 것은 어찌 보면 미친 짓같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사들은 순종하며 삽을 들고 마른 땅에 개천을 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물이 흘러 들어옵니다. 그 물이 개천을 가득 채웁니다. 만약 그들이 귀찮아서 개천을 작게 팠다면, 하나님이 비를 쏟아부어 주셨어도 그 물은 다 흘러가고 없어졌을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영역이지만, 기적을 담을 개천을 파는 것은 인간의 책임입니다.

선지자 생도의 아내였던 과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름 한 그릇밖에 남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엘리사는 말합니다.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왕하 4:3)

 

과부와 아들들이 믿음으로 빈 그릇을 모아 왔을 때, 기름은 그 그릇이 다 찰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왕하 4:6)

 

기름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멈춘 것이 아닙니다. 담을 그릇이 이제 없어서 멈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멈추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한 숙소, 우리가 준비한 그릇이 부족함 때문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뭄이 심한 어느 마을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교회당에 모였습니다. 예배당이 떠나갈 듯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성도 중에 오직 한 소녀만이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나왔습니다. 말에만 갇힌 기도가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진짜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기도가 끝나고 비가 올 것을 예견하고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나오는 사람이야말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22절 말씀은 없어도 되는 사족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매우 귀중한 지혜의 말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떠넘기고 나는 소파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행동이며 동시에 실천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주님 나의 길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길이 열릴 때 뛰쳐나갈 운동화 끈은 묶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과연 제대로 기도하는 것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주님 병을 고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건강해진 후에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하지 않는다면, 숙소를 마련하지 않는 기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취업의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어떤 청년은 매일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저의 길을 선하게 인도해 주십시오.”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도록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그 기도는 영적이고 거룩한 기도입니다. 하지만 기도가 끝난 후에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을 쌓고,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 내는 ‘숙소 마련’의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에 그것이 없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떠맡기는 방종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기도하면서도 준비가 부족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기도한다면 실천도 함께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석방을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가 묵을 방도 함께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고, 동시에 머물 숙소를 함께 준비하는 행위입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이 사도의 음성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간절한 말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숙소를 마련하라” (몬1:22)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86, 347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용서하기 어려웠던 사람을 받아들였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바울은 옥중에서 빌레몬에게 편지를 씁니다. 빌레몬은 골로새교회 지도자이자 재력가로, 자신의 집을 예배 처소로 내놓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쓴 이유는 오네시모 때문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으나 주인의 재산을 훔쳐 도망쳤습니다. 당시 로마법으로는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중죄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감옥에 갇힌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나의 심장”이라 부를 만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쓸모있다”는 뜻인데, “전에는 쓸모없었으나 이제는 쓸모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파격적인 부탁을 합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리고 덧붙입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이 말씀은 단순한 숙박 예약이 아닙니다. “빌레몬, 내가 조만간 너의 집에 도착해 너를 만날 것이다. 그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이는 실천을 다 마친 상태로 나를 맞이하겠는가?”라는 뜻입니다. 숙소는 빌레몬이 바울에게 보여줄 순종의 보고서였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기도의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석방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며 동시에 “숙소를 마련하라”고 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확신하며 이미 석방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행동하는 것과 함께 가야 합니다. 엘리사 시대에 물이 없어 위기에 처한 군대에게 하나님은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고 하셨습니다. 구름 한 점 없었지만 순종하여 개천을 팠을 때 다음 날 물이 가득 채웠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영역이지만, 그 기적을 담을 개천을 파는 것은 인간의 책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떠넘기는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는 행동이고 실천입니다. 하나님은 길을 여시는 분이지만, 우리 대신 시험을 치러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관계 회복을 구한다면 오늘 당장 사과의 편지를 쓰고 용서할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생의 새로운 문이 열리기를 기도한다면 그 문이 열렸을 때 지체 없이 달려나갈 실력을 준비해야 합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품으며 바울의 방을 준비했듯이,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기도의 숙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기도는 무릎으로 시작하여 손과 발의 수고로 완성됩니다.

  

<나누기>

1. 내가 기도하면서도 실천이 부족했던 부분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2. 이번 한 주간 기도와 함께 실천할 구체적인 한 가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 빌레몬에게 주신 바울의 명령을 통해 우리의 기도를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실 때 담을 수 있는 개천을 파게 하시고, 기름을 부어주실 때 담을 수 있는 빈 그 릇을 예비하게 하옵소서. 바울의 석방을 기도하며 동시에 그가 머물 숙소를 마련했던 골로새교인들의 영성을 우리가 갖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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