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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성품을 가진 교회

베드로후서 1: 1 ~ 4

김경진 목사

2019.10.06

<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

여러분에게 만일 연인이 있다면, 어떤 조건을 가진 연인이면 좋겠습니까? 최근 한 연구저널에 실린 내용입니다. 스완지대학에서 연구를 실시했습니다. 세계 59개 국 2400여 명의 젊은이를 대상으로 조사했습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평생 함께할 배우자가 지녔으면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물으며, 한정된 예산을 주고 그것을 구매할 수 있다고 가정한 후에 자신이 원하는 것에 얼마를 투자할지를 결정하게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한정된 예산으로 여덟 가지 조건 가운데 자신이 투자할 만한 것들에 값을 매겼습니다. 신체적인 매력, 재정적인 전망, 다정함, 유머, 순결, 종교, 자녀계획, 창의성이라는 여덟 가지 항목 중에서 우선시되는 게 무엇인지, 또 그것에 얼마를 투자하고 싶은지를 결정하게 한 것입니다.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요? 무엇이 1위를 차지했을까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참가자들이 전체 예산 중 가장 많이 투자하려고 한 항목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동일하게 나왔습니다. 1위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다정함’이었습니다. 22~26%를 차지했습니다. 아마 남성이 26%, 여성이 22%를 투자하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 한편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나온 결과도 있었습니다. 2위가 달랐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신체 매력에 22%를, 여성은 남성의 재정적인 전망에 18%를 투자하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남성은 여전히 여성의 신체적인 매력에 관심이 있고,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재정적인 전망에 관심이 있다는 결과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첫 번째로 꼽은 것입니다. 남녀 모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인생의 동반자가 될 사람에게서 가장 원하고 기대한 것이 바로 상대방의 다정한 성품이었던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지혜로워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질문을 대상을 바꿔 적용해 봅니다. ‘어떤 조건을 가진 교회를 선호할까?’ 하고 말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다양한 일도 감당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이 교회에 원하는 모습은 정말 어떤 모습일까? 만약 투표를 한다면, 혹 투자의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궁금증도 생깁니다.
사실 이러한 질문이 적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감당해야 하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고, 또 달라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적절한 질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교회가 어땠으면 좋겠는가?’ 묻는다면, 아마 나름대로의 생각과 기준, 의견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되면 좋겠는지에 대한 생각도 표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교회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되고 기대될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교회는 어때야 하는가? 교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수많은 대답이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교회는 방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죽어가는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 내는 일이야말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며, 구원을 담당하는 일이 교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회에 나오도록 하고, 세례를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교회의 모습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모습은 얼마나 전도를 많이 하고 있는지, 얼마나 세상 사람들을 구원의 자리로 초청하고 있는지, 세례를 많이 베풀었는지 등으로 평가되곤 합니다.
한편 또 다른 관점에서 교회를 기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병원’의 형태로 교회의 방향성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를 하시는 분들에게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들, 병자들,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마음의 병을 지닌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와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의 고통과 함께하시는 주님에게서 위로를 얻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한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회의 일은 기도, 찬양, 치유의 은사와 각종 성령의 은사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나아가 교회를 ‘학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 좋은 가르침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종교를 찾아다니면서 경전을 읽어 가며 배움을 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교회를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붙잡고,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나가기 위해 하나의 기준점을 발견하고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교회는 귀에 들리는 설교와 좋은 성경공부를 제공하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참 배움을 허락해 바른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해 줘야 할 매우 중요한 사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교회를 적십자사와 같은 세상을 향해 ‘봉사’하는 곳으로 이해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어려운 이들을 돕고, 병자들을 돌아보며, 가난한 자들을 섬기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사명이라고 주장합니다. 작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탄을 나눠 주거나 담요를 나누어 주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사회 제도를 바꾸고 정의롭고 평등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이 땅에 세워 가는 데까지 실현하려는 관점입니다. 이러한 분들에게 교회의 매우 중요한 덕목은 교회의 봉사, 섬김, 선교, 그리고 사회 정의 실현과 같은 덕목입니다.
여러분에게 만약 이와 같은 덕목들 가운데 선택해 투자하라고 한다면, 어디에 더 많이 투자하시겠습니까?

<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는 지체들의 공동체입니다. >

‘우리는 이런 교회가 되면 좋겠다.’ 아마 이런 마음과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소망교회의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만날 때마다 제게 여러 부탁의 말씀도 해 주셨고, 권면의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이런 말씀을 빠뜨리지 않으셨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이렇게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이런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교회관을 말씀하시며, 그런 교회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주셨습니다.
저도 그 모든 부탁을 다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능할지 생각해 보면, 사실 자신은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 연약하고 한계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어느 것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 하나가 모든 교회의 모습을 대체할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한 몸으로서의 교회를 늘 주장해 왔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 12:4~8)
로마서의 이 말씀은 교회에는 다양한 사역들이 있다는 뜻이며, 그것은 한 몸으로서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각 지체처럼 기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당시 교회가 여러 일로 분쟁에 놓인 탓에 주어진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이 일어나는 교회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고린도전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서는 더욱 그러한 정황 가운데 기록된 서신서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고린도전서 12:25~30)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과 교회가 한 몸이 되어 교회의 다양한 기능을 서로 다툼 없이 일사불란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지금까지 교회의 매우 중요한 지침으로 적용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원리가 오늘날까지 잘 이루어져 왔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 교회는 신성한 성품을 드러내는 공동체입니다. >

어느 날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또 다른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앞서 읽어 드린 말씀은 주로 한 몸, 한 지체의 기능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묵상하다 보니, ‘한 몸’이라는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십니까? ‘어, 저 사람은 팔이 기네? 손이 좀 이상하네? 발이 이상하네? 코는 좀 다르네? 코는 이렇게 생겼네? 저렇게 생겼네?’ 하면서 사람을 판단하십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물론 첫인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기능하는지, 무엇을 하는지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게 있습니다. 바로 그의 ‘성품’입니다. 그의 ‘마음’입니다. 그의 ‘인격’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억할 때, 인격과 성품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신체 기능도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가 깊이 느끼게 되는 부분은 그 사람의 성품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많은 일을 해 왔습니다. 소망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도 했고,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위로도 했습니다. 병을 고치기도 했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먹을 것도 나눠 주었고, 학교도 만들어 주었으며, 병원도 세웠고, 예배당도 세웠습니다. 고아원도 설립했고,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인 이슈에도 참여했고, 좋은 법을 만드는 데도 공헌했으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법을 만들려고 할 때는 강하게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교회가 해 온 일들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러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를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리어 교회에 대한 강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면서 얻게 된 하나의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격, 성품으로서의 한 몸이 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한 몸이다.”라고 말해 오는 동안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한 몸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각각의 지체가 감당하는 일과 기능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한 몸이라고 하는 이 말 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인격체, 하나의 성품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와 같은 관점에서 깊이 접근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우리가 그의 지체가 된다면, 교회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야만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6:15)
지체가 있다고 다가 아닙니다. 팔과 다리가 있고, 그것이 기능한다고 해서 전부가 아닙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면 창녀냐?’ 하는 데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품이 중요합니다. 누구의 지체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인격인가? 어떤 성품을 가진 존재인지가 중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신성한 교회가 됩시다. >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교회의 참 기능을 수행하라는 데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 하나님의 아름다운 인격, 그분의 신성한 성품을 드러내는 일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와 같은 아름다운 덕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덕스럽지 못했습니다. ‘맞다, 틀리다’ 혹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닙니다. 덕스럽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인품을 전달하는 통로로서의 교회가 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인품과 성격을 드러내는 통로로서의 우리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새번역으로 봉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는 이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3~4, 새번역)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까지 하나님의 성품을 잘 드러내지 못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야 하는 지체인 우리가 도리어 머리가 되고, 우리의 뜻대로 교회를 세우려 하고, 우리의 마음대로 교회를 만들어 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성품이 드러나야 했습니다. 나의 마음대로, 나의 생각대로 교회를 만들어 가고 꾸려 가려고 하는 사이에 우리의 죄성과 나쁜 품성이 세상적 교회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앞으로 다시 나아가야만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실천해 냄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소망교회가 창립 42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어떤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까? 물론 여러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교회, 신의 성품을 가진 교회,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신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신도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베드로후서 1:5~7, 새번역)

A Church with a Divine Nature
2 Peter1:1-4

What are the characteristics of an ideal spouse? In a recent issue of Journal of Personality, researchers of Swansea University published an interesting finding. They asked 2,400 students from 59 countries what they considered were the most important attributes of an ideal, lifelong partner. They asked students to suppose they had a limited“budget” to “purchase” desirable traits of an ideal spouse. What attributes would they buy? How much would they allocate to each attribute?Using this budget, the respondents had to choose from eight attributes: physical attractiveness, good financial prospects, kindness, humor, chastity, religiosity, the desire for children, and creativity.

The result was interesting. The respondents—both male and female—allocated 22-26% of their budget to kindness, making it the top-priority attribute. In terms of the second-most important trait, however, male respondents chose physical attractiveness, while female students picked financial prospects. Yet, it is very noteworthy that both sexes chose kindness as their top priority. This tells us that men and women alike consider a person’s nature to be the most important in finding a spouse.

Let’s ask this question to ourselves, then. To Christians, what are the important attributes of an ideal church that we would attend for the rest of our lives? If we had a limited “budget” to “purchase” desirable traits of an ideal church, what would we invest in? I am, of course, aware that this question is nonsensical. A church must take on the mission given to it by God. Itmust not berun by the desires of its congregation. Still, I am curious to know what our answers would be to this hypothetical question.

What should a church look like? There have been many answers to this question.

First, some say that a church must be an “Ark of Salvation.” The purpose of the church is to save souls, and, therefore, it must do its utmost to bring people to church, give baptisms, and lead people to salvation. From this perspective, evangelizing, invitation to salvation, baptisms, and communion are critical.

Second, some see the church as a “hospital.” A church is a place where the sick andbroken come to in order to be healed by God and to meet Christ who understands our suffering. From this viewpoint, prayer, worship, healing, and spiritual gifts are important.

Third, a church is a “school.” Some people come to church in pursuit of wisdom and life lessons. They tend tofocus on listening to Biblical teachings and holding on to the words of Christ. Theyplace importance on good sermons and insightful Bible studies.

Fourth, there are those who see the church as an “aid group” like The Red Cross. They believe that the church must serve the world with God’s love. It must help the poor, look after the sick, and ultimately spread God’s love in this world. From this perspective, the church must be involved ingood works, service, volunteer activities, missions, and social justice.

Among these viewpoints, what are important to you? Although all four perspectives are correct, it is hard to say that any one of them wholly represents the church and what it does. In the case of Somang Church, we have continued to emphasize becoming one body in Christ, as we strived to fulfill our God-given mission. Romans chapter 12 reinforces our conviction:

“For just as each of us has one body with many members, and these members do not all have the same function, so in Christ we, though many, form one body, and each member belongs to all the others. We have different gifts, according to the grace given to each of us. If your gift is prophesying, then prophesy in accordance with your faith; if it is serving, then serve; if it is teaching, then teach; if it is to encourage, then give encouragement; if it is giving, then give generously; if it is to lead, do it diligently; if it is to show mercy, do it cheerfully.” (Romans 12:4-8 NIV)

These verses from Romans tell us that, although the church has diverse ministries, they should be understood and performed as different functions of the same body. Paul wrote this letterat a time when different parts of the church in Romewere fighting against each other, each claiming to be right.1 Corinthiansstresses avoiding division, even more:

“But God has put the body together, giving greater honor to the parts that lacked it, so that there should be no division in the body, but that its parts should have equal concern for each other. If one part suffers, every part suffers with it; if one part is honored, every part rejoices with it.Now you are the body of Christ, and each one of you is a part of it. And God has placed in the church first of all apostles, second prophets, third teachers, then miracles, then gifts of healing, of helping, of guidance, and of different kinds of tongues. Are all apostles? Are all prophets? Are all teachers? Do all work miracles?Do all have gifts of healing? Do all speak in tongues? Do all interpret?” (1 Corinthians 12:24-30 NIV)

These words have guided Somang Church, as we strived to become one body—avoiding dissension and seeking harmony—with the aim of performingvarious different functions of our church.

However, one day, as I was studying these words deeply, I came to an important realization.Sofar, I have spoken mostly about our church becoming one body despite its different functions. However, upon a deeper meditation on the Word, I came to interpret the meaning of “one body” in a new, different light.

Think of when we meet a person for the first time. Do we look ata particular part of his body, such as his arms, legs, or hands? No. We take a comprehensive approach, trying to form an overall impression and assessing his character.

From this, I was able to gain a new perspective on the church—that is, becoming one body in terms of its nature. Up to now, when we emphasized the church asone body, we focused mostly on the church’s diverse functions becoming a part of one body, with Christ as its head. However, being one body also means being one, in terms ofcharacter and nature. If Christ is the head of the church and we are its members, the church must reveal the nature of Christ. In other words, the church must first possess Jesus’ character.

Therefore, Paul says,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ies are members of Christ himself? Shall I then take the members of Christ and unite them with a prostitute? Never!” (1 Corinthians 6:15NIV)

This is telling us that the fact that we are a member of Christ is critical. The character that we possess is important. The church should possess the character of Christ. The church should be like Christ in terms of His nature.

“But you are not like that, for you are a chosen people. You are royal priests, a holy nation, God’s very own possession. As a result, you can show others the goodness of God, for he called you out of the darkness into his wonderful light.”(1 Peter 2:9 NLT)

God’s calling toward us goes beyondperforming a particular function. It is to declare and proclaim the goodness of Him who called us out of the darkness. However, we have not been faithful to this calling. We have not shown His goodness well. We have not been good. Our problem today is that the church has failed to be a channel that showsthe character and goodness of Christ.

Therefore, this is what the Lord is telling us through today’s scripture.

“His divine power has given us everything we need for a godly life through our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by his own glory and goodness. Through these he has given us his very great and precious promises, so that through them you may participate in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in the world caused by evil desires.” (2 Peter 1:3-4NIV)

Somang Church is celebrating its 42nd anniversary. What kind of church must we pursue and build? God earnestly wants our church to participate in His divine nature, to possess God’s character, and to declare His goodness. This is the voice of the Lord:

“For this very reason, make every effort to add to your faith goodness; and to goodness, knowledge; and to knowledge, self-control; and to self-control, perseverance; and to perseverance, godliness; and to godliness, mutual affection; and to mutual affection, love.” (2 Peter 1:5-7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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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 1 ~ 4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

여러분에게 만일 연인이 있다면, 어떤 조건을 가진 연인이면 좋겠습니까? 최근 한 연구저널에 실린 내용입니다. 스완지대학에서 연구를 실시했습니다. 세계 59개 국 2400여 명의 젊은이를 대상으로 조사했습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평생 함께할 배우자가 지녔으면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물으며, 한정된 예산을 주고 그것을 구매할 수 있다고 가정한 후에 자신이 원하는 것에 얼마를 투자할지를 결정하게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한정된 예산으로 여덟 가지 조건 가운데 자신이 투자할 만한 것들에 값을 매겼습니다. 신체적인 매력, 재정적인 전망, 다정함, 유머, 순결, 종교, 자녀계획, 창의성이라는 여덟 가지 항목 중에서 우선시되는 게 무엇인지, 또 그것에 얼마를 투자하고 싶은지를 결정하게 한 것입니다.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요? 무엇이 1위를 차지했을까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참가자들이 전체 예산 중 가장 많이 투자하려고 한 항목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동일하게 나왔습니다. 1위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다정함’이었습니다. 22~26%를 차지했습니다. 아마 남성이 26%, 여성이 22%를 투자하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 한편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나온 결과도 있었습니다. 2위가 달랐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신체 매력에 22%를, 여성은 남성의 재정적인 전망에 18%를 투자하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남성은 여전히 여성의 신체적인 매력에 관심이 있고,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재정적인 전망에 관심이 있다는 결과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첫 번째로 꼽은 것입니다. 남녀 모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인생의 동반자가 될 사람에게서 가장 원하고 기대한 것이 바로 상대방의 다정한 성품이었던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지혜로워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질문을 대상을 바꿔 적용해 봅니다. ‘어떤 조건을 가진 교회를 선호할까?’ 하고 말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다양한 일도 감당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이 교회에 원하는 모습은 정말 어떤 모습일까? 만약 투표를 한다면, 혹 투자의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궁금증도 생깁니다.
사실 이러한 질문이 적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감당해야 하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고, 또 달라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적절한 질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교회가 어땠으면 좋겠는가?’ 묻는다면, 아마 나름대로의 생각과 기준, 의견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되면 좋겠는지에 대한 생각도 표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교회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되고 기대될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교회는 어때야 하는가? 교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수많은 대답이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교회는 방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죽어가는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 내는 일이야말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며, 구원을 담당하는 일이 교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회에 나오도록 하고, 세례를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교회의 모습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모습은 얼마나 전도를 많이 하고 있는지, 얼마나 세상 사람들을 구원의 자리로 초청하고 있는지, 세례를 많이 베풀었는지 등으로 평가되곤 합니다.
한편 또 다른 관점에서 교회를 기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병원’의 형태로 교회의 방향성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를 하시는 분들에게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들, 병자들,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마음의 병을 지닌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와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의 고통과 함께하시는 주님에게서 위로를 얻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한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회의 일은 기도, 찬양, 치유의 은사와 각종 성령의 은사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나아가 교회를 ‘학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 좋은 가르침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종교를 찾아다니면서 경전을 읽어 가며 배움을 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교회를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붙잡고,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나가기 위해 하나의 기준점을 발견하고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교회는 귀에 들리는 설교와 좋은 성경공부를 제공하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참 배움을 허락해 바른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해 줘야 할 매우 중요한 사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교회를 적십자사와 같은 세상을 향해 ‘봉사’하는 곳으로 이해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어려운 이들을 돕고, 병자들을 돌아보며, 가난한 자들을 섬기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사명이라고 주장합니다. 작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탄을 나눠 주거나 담요를 나누어 주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사회 제도를 바꾸고 정의롭고 평등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이 땅에 세워 가는 데까지 실현하려는 관점입니다. 이러한 분들에게 교회의 매우 중요한 덕목은 교회의 봉사, 섬김, 선교, 그리고 사회 정의 실현과 같은 덕목입니다.
여러분에게 만약 이와 같은 덕목들 가운데 선택해 투자하라고 한다면, 어디에 더 많이 투자하시겠습니까?

<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는 지체들의 공동체입니다. >

‘우리는 이런 교회가 되면 좋겠다.’ 아마 이런 마음과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소망교회의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만날 때마다 제게 여러 부탁의 말씀도 해 주셨고, 권면의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이런 말씀을 빠뜨리지 않으셨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이렇게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이런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교회관을 말씀하시며, 그런 교회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주셨습니다.
저도 그 모든 부탁을 다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능할지 생각해 보면, 사실 자신은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 연약하고 한계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어느 것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 하나가 모든 교회의 모습을 대체할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한 몸으로서의 교회를 늘 주장해 왔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 12:4~8)
로마서의 이 말씀은 교회에는 다양한 사역들이 있다는 뜻이며, 그것은 한 몸으로서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각 지체처럼 기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당시 교회가 여러 일로 분쟁에 놓인 탓에 주어진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이 일어나는 교회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고린도전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서는 더욱 그러한 정황 가운데 기록된 서신서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고린도전서 12:25~30)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과 교회가 한 몸이 되어 교회의 다양한 기능을 서로 다툼 없이 일사불란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지금까지 교회의 매우 중요한 지침으로 적용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원리가 오늘날까지 잘 이루어져 왔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 교회는 신성한 성품을 드러내는 공동체입니다. >

어느 날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또 다른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앞서 읽어 드린 말씀은 주로 한 몸, 한 지체의 기능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묵상하다 보니, ‘한 몸’이라는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십니까? ‘어, 저 사람은 팔이 기네? 손이 좀 이상하네? 발이 이상하네? 코는 좀 다르네? 코는 이렇게 생겼네? 저렇게 생겼네?’ 하면서 사람을 판단하십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물론 첫인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기능하는지, 무엇을 하는지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게 있습니다. 바로 그의 ‘성품’입니다. 그의 ‘마음’입니다. 그의 ‘인격’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억할 때, 인격과 성품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신체 기능도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가 깊이 느끼게 되는 부분은 그 사람의 성품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많은 일을 해 왔습니다. 소망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도 했고,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위로도 했습니다. 병을 고치기도 했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먹을 것도 나눠 주었고, 학교도 만들어 주었으며, 병원도 세웠고, 예배당도 세웠습니다. 고아원도 설립했고,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인 이슈에도 참여했고, 좋은 법을 만드는 데도 공헌했으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법을 만들려고 할 때는 강하게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교회가 해 온 일들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러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를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리어 교회에 대한 강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면서 얻게 된 하나의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격, 성품으로서의 한 몸이 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한 몸이다.”라고 말해 오는 동안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한 몸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각각의 지체가 감당하는 일과 기능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한 몸이라고 하는 이 말 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인격체, 하나의 성품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와 같은 관점에서 깊이 접근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우리가 그의 지체가 된다면, 교회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야만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6:15)
지체가 있다고 다가 아닙니다. 팔과 다리가 있고, 그것이 기능한다고 해서 전부가 아닙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면 창녀냐?’ 하는 데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품이 중요합니다. 누구의 지체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인격인가? 어떤 성품을 가진 존재인지가 중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신성한 교회가 됩시다. >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교회의 참 기능을 수행하라는 데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 하나님의 아름다운 인격, 그분의 신성한 성품을 드러내는 일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와 같은 아름다운 덕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덕스럽지 못했습니다. ‘맞다, 틀리다’ 혹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닙니다. 덕스럽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인품을 전달하는 통로로서의 교회가 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인품과 성격을 드러내는 통로로서의 우리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새번역으로 봉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는 이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3~4, 새번역)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까지 하나님의 성품을 잘 드러내지 못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야 하는 지체인 우리가 도리어 머리가 되고, 우리의 뜻대로 교회를 세우려 하고, 우리의 마음대로 교회를 만들어 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성품이 드러나야 했습니다. 나의 마음대로, 나의 생각대로 교회를 만들어 가고 꾸려 가려고 하는 사이에 우리의 죄성과 나쁜 품성이 세상적 교회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앞으로 다시 나아가야만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실천해 냄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소망교회가 창립 42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어떤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까? 물론 여러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교회, 신의 성품을 가진 교회,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신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신도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베드로후서 1:5~7, 새번역)

2019년 10월 6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신성한 성품을 가진 교회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08장, 21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벧후1:1-4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0월 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여러분은 여러분의 연인이 어떤 조건을 가진 사람이면 좋을 것 같습니까? 세계 59개국 2400명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는데, 남녀 보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상대방의 다정함, 즉 성품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조건을 가지고 교회를 선호할까요?

설교의 요약

지금까지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작게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서 크게는 사회의 제도를 바꾸고 정의롭고, 평등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이 땅에 세워가는 일까지 확대하여 교회의 모습을 설명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교회의 모습 가운데서 어떠한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러한 교회의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우리는 늘 한 몸으로써의 교회를 강조해 왔습니다(롬12:4-7절). 로마서의 말씀은 교회의 다양한 사역들이 있지만, 그것이 한 몸의 서로 다른 기능이라는 점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실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서로 다른 교회의 기능들이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분쟁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하신 말씀(고전12:25-30절)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주로 한 몸과 지체, 그리고 그것들의 기능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에는 기능적인 모습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인상, 인격과 사람됨, 그런 것들을 기억합니다.

세상은 교회의 다양한 기능적인 활동(영혼구원,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 병원 및 고아원, 장애인 시설 설립, 정치적인 이슈의 참여 등)에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리어 교회에 대한 강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 몸이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지체들의 관점이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몸이라는 말 속에는 한 인격체, 한 성품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한 관점에서 깊이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가 지체가 된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누구의 지체인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6:15절). 어떤 인격, 어떤 성품을 잔진 존재인지가 중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격이며, 성품입니다(벧전2:9).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어떤 기능을 수행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고 선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소망교회가 창립 42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교회, 신의 성품을 가진 교회,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교회,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나누기

1. 창립 42주년을 맞이한 소망교회의 자랑은 무엇일까? 서로 함께 나눠보세요.

2. 교회는 다양한 기능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을 세상에 드러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습니까? 서로 축복하며 함께 기도하세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허락하시어, 우리의 하는 모든 일들이 덕스럽게 하시고, 아름답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귀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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