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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벗고 받은 소명

출애굽기 3: 1 ~ 5

김경진 목사

2019.11.10

< 현대 문명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만 같습니다. >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이는 영화 제목입니다. 로이스 던칸(Lois Duncan)의 소설을 배경으로, 1997년에 짐 길레스피(Jim Gillespie) 감독이 제작한 할리우드 공포 영화입니다. 어느 날 밤, 술을 마시고 행인을 친 고등학생들이 바다에 시체를 유기하고 진실을 덮습니다. 그러나 1년 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고 적힌 익명의 편지가 그들에게 배달됩니다. 그 사건과 관련된 이들이 하나둘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는 공포 영화입니다. 사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제목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아직도 제목이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신문에서 똑같은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모든 일을 알고 있다.”라고 적힌 제목의 기사를 보니, 오늘날 우리의 삶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다양한 현대 문화와 기술 및 기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우선 우리가 쓰고 있는 핸드폰은 우리가 어디로 전화했는지, 언제 전화했는지를 모두 기록합니다. 요즘 핸드폰에는 GPS 장치가 있어서 어디서 전화를 했는지도 오차 없이 기록해 둡니다.
물론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가진 차량은 대부분 그 차가 어디 있는지, 또 어디로 이동했는지, 분명히 기록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동차가 자율 주행을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접속한 적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차곡차곡 기록으로 남겨집니다. 의료보험조합 컴퓨터에는 우리가 언제 어느 병원에 들렀는지, 어떤 진단을 받고 치료했는지, 어떤 약을 처방받아 어떤 약국에서 구입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시는 분들은 각 항공사의 마일리지 관련 자료에서 자신이 언제, 어디로 여행했는지 모든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로 계산하면 정보가 남지요. 내가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 정확하게 기록이 남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데, 제가 부산을 오갈 때 일입니다. 하루는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로 서울로 오는데, 부산에서 렌트 했던 차에 기름을 넣고 반납한 뒤,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왔습니다. 공항에 와서 공항에 세워두었던 제 차를 몰고 가려는데 기름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방 주요소에 가서 기름을 넣었습니다. 같은 신용카드로 계산했지요. 그런데 조금 뒤에 신용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조금 전 부산에서 기름을 넣었는데, 또다시 서울에서 기름을 넣은 흔적을 보고는 혹시 잘못된 사용은 아닌지 확인하는 전화였습니다. 요즘은 그런 경우 전화 대신 문자로 오는 것 같지만, 그때는 그런 전화가 종종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 섬뜩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종종 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여기저기 감시 카메라들이 전신주나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으슥한 골목에도 카메라들이 있습니다. 수상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경찰서에서 추적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또 무엇을 했는지, 비밀을 알고 있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인데, 현대 사회의 각종 기술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설교도 카메라를 통해 송출되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인지하지 못하셨을 수 있지만, 여러 대의 카메라가 여러분이 설교 시간에 어떤 태도로 경청하고 있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감시당하는 것만 같은 상황이 어떠십니까? 혹시 기분 나쁘지는 않으십니까? 이런 감시와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으십니까?

< 세상에서 내가 다닌 길을 내 신발이 증언합니다. >

언젠가 저도 이런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 감시 카메라로부터의 벗어남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보고 싶은 충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시 카메라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고심하며 나름의 프로젝트를 세우고, ‘감시 카메라 벗어나기’라는 시도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우선 핸드폰 전원을 종료한 뒤 집에 놓아두고, 거리로 나와 무작정 버스를 탔습니다. 타자마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 교통카드로 제 흔적을 남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버스를 타는 순간, 운전석 옆에 있는 카메라에 이미 제가 노출되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습니다. 이렇게 저의 첫 번째 시도는 아주 싱겁고 무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제 무조건 걷되 카메라가 없는 곳을 찾아 움직여 보기로 했습니다. 절대 지하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지하에는 항상 카메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레 움직였지만, 생각보다 카메라가 없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에는 카메라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곳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자유를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지요. ‘아마 내가 산에 다녀온 것은 아무도 모를 거다. 나만 알 거야.’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 즐겁게 샤워하고 기쁜 마음으로 나왔는데, 제 아내가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산에 갔다 왔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놀란 얼굴로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더니, 아내가 대답합니다. “신발에 온통 흙이 묻어 있어서 산에 다녀온 지 알았지요.” 그날 저는 매우 참담했습니다.
현관으로 가 흙이 묻은 제 신발을 보았습니다. 열심히 흙덩어리를 닦았습니다. 도저히 제가 산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가지런히 신발을 놓았습니다. 굽이 많이 달은 구두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저 신발이야말로 내가 어디 있었는지, 어디로 갔는지, 모두 알고 있겠구나. 내 인생의 모든 신발을 모아둘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신발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나는 꼼짝없이 내가 다닌 곳, 내가 다닌 모든 발자취를 들키고 말겠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신고 있는 그 신발로 어디를 다니셨습니까? 어디에 계셨습니까? 혹시 방탕의 길에 있지는 않았습니까? 속이는 현장에 그 신발을 신고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잘못된 길로 신을 신고 들어가지는 않으셨습니까? 혹시 진흙탕은 아니었습니까? 거들먹거리는 장소에서 그 신을 신고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신발이 여러분이 그동안 다녀온 길과 발자취를 증언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저 역시 그날 이 질문과 함께 제 신발 앞에서 처참한 심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가지 않아야 할 곳에 놓였던 신발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둠의 자리, 부끄러움의 자리에 벗어 놓았던 신발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탐욕의 길에 신고 다녔던 신발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내가 거기에 있었는지, 왜 그곳에 갔었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는 저에게 조용히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네가 그 신을 좀 벗었으면 좋겠구나.’ 지금까지 지나왔던 길, 세상의 길에서 헤매고 다녔던 그 신발을 벗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 마음속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의 신을 벗겨 새 신발을 신기십니다. >

수천 년 전에도 똑같은 말씀을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모세입니다. 그는 8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40년 동안 애굽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왕자로 살았습니다. 아마 왕궁을 걸어 다녔을 것입니다. 멋진 자리에 그의 신발들이 옮겨졌을 것입니다. 여러 곳을 다녔을 것입니다. 휴양지도 다녔을지 모릅니다. 당시 그가 어디를 다녔는지, 성경은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걸었던 인생 초반의 40년은 화려함의 기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사실 크게 의미 없는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인에게 매 맞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곤 분을 참지 못해 애굽 사람을 돌로 쳐 죽이게 됩니다. 그는 그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살인의 현장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지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자리, 살인의 현장을 그 신발이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또 다른 사람들도 증언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눈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갑니다. 그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우물가에서 여인들을 괴롭히는 목동들을 쫓아낼 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고, 이드로를 만나고, 또 아내 십보라를 만났을 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을 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고, 광야에서 양 떼를 몰고 다닐 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광야 40년의 발걸음은 정처 없는 발걸음이었습니다. 애굽에서의 발걸음이 화려함의 발걸음이었다면, 미디안 광야에서의 발걸음은 정말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이리저리 다니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40년이 또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호렙산에 올랐다가 놀라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타고 있는데, 그 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신기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호기심이 일어 다가섰을 때,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한 첫 번째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5)

어떤 학자는 신을 벗는 행위를 단순히 존경의 표시라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유대 풍습에 신 한 짝을 상대방에게 주며 맹세하는 관습이 있으므로,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맹세가 이루어지는 장면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장면은 그 이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다녔던 모든 곳, 그가 헤맸던 모든 장소, 모든 길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돌아다녔던 곳, 도피의 길, 헤매고 다녔던 체념의 광야, 살인의 장소, 그 모든 장소를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네가 지금까지 다닌 길을 알고 있는 신발을 이제 벗으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과거를 버리라’는 주님의 초청입니다. 잘못된 모든 기록이 담긴 신발을 벗어 버리라는 주님의 초대입니다. 동시에 그 명령 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내가 너에게 새로운 길을 가도록 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이제 새로운 신발을 신겨주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모세가 그 후에 간 길은 어떤 길이었습니까? 가족을 돌보는 안주의 길에서 벗어나, 광야의 양 떼를 돌보며 인생을 겨우 연명하던 그 길에서 벗어나, 광야를 맴돌던 정처 없는 길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길로 접어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세가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그는 의미상으로 새로운 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홍해 앞에 섰을 때, 그는 새로운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기적을 볼 때, 그는 새로운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기적을 경험할 때도 새로운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애굽에서 그들을 구출하라.”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기 전에, 모세에게 첫 번째로 들렸던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신을 벗으라’라는 초청이었습니다. 자신의 신발을 벗은 후에야 그는 새로운 소명을 받아 새로운 곳, 전혀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인도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인도된 새 길에는 기적이 있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 내 신을 벗어야 하나님의 소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소명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그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모세의 이야기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배웁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에게 요청하십니다. “신을 벗어라.”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가던 길을 멈추고, 신발을 벗을 때입니다. 먼저 내 신을 벗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 결단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진정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엑소더스’라는 말이 있지요? ‘출애굽기’로 번역됩니다. 그런데 엑소더스는 본래 ‘엑스’와 ‘호도스’의 합성어입니다. 엑스는 ‘밖으로’라는 뜻이고, 호도스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길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엑소더스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살던 방식에서 벗어나 광야의 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 엑소더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잘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4절 이후의 말씀입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요한복음 13:4~7)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아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이야기 속에 한 가지 숨겨진 단계가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제자들을 향해 주시는 “신을 벗어라.”라는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까? 신을 벗어야 대야에 발을 담글 수 있고, 주님께 씻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신을 벗어라.”
안 벗겠다고 고집 피우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신을 벗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이 끝나감을 알고 계셨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제자들이 그 뒤를 이어 사역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제자들에게 소명을 주시는 순간입니다. 마지막 유언을 주시는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은 제자들의 신을 벗도록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어부의 흔적이 남았던 그 신발, 세리의 흔적이 남은 그 신발, 남의 등쳐먹던 자리에서 신고 있던 그 신발을 벗게 하시고, 이제 새로운 사역으로 보내기 위하여 새로운 신발을 신겨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예수님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전통은 세족 목요일을 새로운 주님의 명령을 받은 날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 날로 기억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의 신을 벗기신 후에 주신 새로운 명령입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신고 있던 신발을 벗은 후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은 후에야 주님의 소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짧은 결론을 위해 긴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5 중)

< 주님께서 신겨주시는 신을 신고 거룩한 사명의 삶을 삽시다. >

요즘 새벽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성도 여러분과 기도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묵상하면서 신을 벗어야 하는 또 다른 곳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으로 들어가는 제사장들은 물두멍에서 자신의 손과 발을 씻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을 벗은 채 맨발로 성막으로 들어갑니다. 성막의 뜰은 그냥 땅입니다. 어떤 다른 포장이 있는 게 아닙니다. 카펫이 깔린 것도 아닙니다. 그저 땅일 뿐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이 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맨발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어떤 감각 기관으로 하나님을 느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눈으로 성막에 그려진 그룹들, 천사의 모습들을 보았겠지요. 진설병상, 등잔대, 법궤와 속죄소를 보았을 것입니다. 손으로 등잔대의 기름을 채우고, 진설병상에 떡을 교체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세밀하게 느꼈을 또 다른 감각 기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맨발’입니다. 그들은 맨발로 이 땅에 계시는 하나님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밟고 있는 바로 그 땅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바로 그 땅에서 내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소망교회에서 일하실 장로님 세 분을 세우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안수를 받는 세 분만을 위한 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자리는 세 사람 개인이 주님에게서 소망교회를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는 소명의 자리가 아니라, 아니 그것을 넘어, 우리 교우 모두가 한마음으로 소망교회를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는 소명의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걸어왔던 부족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 그 신을 벗기 원합니다. 지금까지 세속적으로 살아왔던 잘못된 자리에서 돌아서 그 신을 벗으면 좋겠습니다. 신을 벗고, 새로운 소명을 받는 자리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길로 들어선 사람들, 과거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전에 매진한 사람들에 의해 교회의 역사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가 루터가 그랬고, 칼뱅이 그랬고, 웨슬리가 그러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5 중)

Take Off Your Sandals and Receive Your Calling

Exodus 3:3-4

Although I have never seen the movie, I vividly remember its catchy title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It’s a Hollywood horror movie about how a group of high school kids tries to cover up a hit-and-run accident only to find themselves being killed one by one after a note saying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arrives.

I read an article in a newspaper titled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once, too. It wrote about how every minute of our lives is recorded and documented through the devices we use today such as smartphones. Indeed, in this high-tech, digitalized world, cars can be traced with their navigation system, people with their smartphones, and personal medical records through digitalized healthcare.

One day, I so desperately wanted to get out this “life under surveillance” that I decided to spend a “day in secret.” First, I turned off my cell phone and left it at home along with my credit card. Then I got on a random bus. But the moment I got on, I realized that I had already made my first mistake: I tagged my transportation card. What is worse, I spotted a surveillance camera propped up next to the driver’s seat staring at me. My attempt at a “day in secret” seemed to be ending in failure, so I got myself together. I started walking, avoiding security cameras. I couldn’t go underground for this is where CCTVs abound. So, I headed toward a hill. There, up on a hill, I finally felt free and alone. ‘No one will ever know I am here.’

I headed home satisfied with my “day in secret.” I happily hit the shower. But what would my wife ask me as I got out of the shower? She asked, “Did you go hiking today?” I was so struck and dismayed that I asked back, “How did you know?” She answered, “Your shoes are muddy!”

I felt so defeated. Can you imagine the defeat I felt? I went to look at my shoes at the porch. They were muddied, so I cleaned them well—so well that no one would ever notice that I went hiking. I lay them neatly on the porch. I noticed that their heels were worn. In that moment I realized that my shoes knew where I had been, wherever that may be. They knew my every whereabouts. If only they could talk, there could be no secret about where I went and what I did. That day, the verse in Job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hit me on a completely different level.

Dear Church, where have you been in the shoes that you are wearing now? Have you by any chance been to a place of sin in those shoes? Or a scene of deception? Or maybe a twisted path or a dirty road? Or a place full of vanity and boasting? If your shoes were to testify today about where you have been, how would you feel?

That day, I stood before my shoes with questions and thoughts running through my head. I felt devastated at having been to places I should not have been to. I thought of how I had taken off those shoes at dark, embarrassing places. I thought of how I had trodden paths of greed in them. Why did I go there? Why? I was filled with shame.

That night, I heard God silently whisper in my ear. “I want you to take off those sandals now.” I heard God commanding me to take off the shoes that had trodden the roads I had traveled that day, the shoes that had wandered the paths of the world.

Thousands of years ago, another man heard the same calling. Moses. He was 80 years old when God called him. For 40 years he lived the life of a prince of Egypt. His sandals probably went to some pretty spectacular places. Then, one day, he saw an Israelite, one of his people, being brutally punished by an Egyptian. Not being able to control hisanger, he killed the Egyptian. Even at this murder scene he thought no one had witnessed, his sandals were present.

After this, Moses fled to Midian. He was still wearing his sandals. He was wearing them when he helped the women by the well, when he met his future father-in-law Jethro, when he met Zipporah his wife, and when he was shepherding in the Midian plains. During the 40 years since escaping Egypt, he would have wandered a lot. And no one knew of all the places that he had been. But his sandals did.

Then, one day, he saw something amazing at Mount Horeb: A burning bush that didn’t burn up. There, he heard God’s voice for the first time: “Do not come any closer. Take off your sandals, for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 ground.” (Exodus 3:5)

Some scholars say that taking off one’s sandals was just a show of respect. However, I believe that in today’s passage it meant something more, something deeper. God knew of all the places that Moses had been to in those sandals, including the scene of murder. He also knew about all the wandering in the Midian desert. He knew about all that Moses had been through. That is why He said to him, “Takes off your sandals, for the place you are standing is holy ground.”

God wanted Moses to take off the very shoes that knew all about his past and the roads he had traveled. He wanted Moses to abandon his past, to do away with the sandals that knew everything about his past. At the same time, His order to take off your sandals meant that He wouldshow a new path, provide a new pair of sandals.

What path did Moses take after this event at Mount Horeb? He became something more than just a father who took care of his family, a shepherd who wandered in the Midian plains, a wanderer who did not know where to go. He went beyond all these and became a redeemer for the Israelites. When he stood before Pharaoh demanding freedom, he was wearing a completely new set of sandals. When he stood at the Red Sea, he was not wearing his old sandals. When he saw the miracles of manna and quail, he was wearing a completely different set of shoes.

Before accepting his calling to “redeem the Israelites,” Moses had to take off his old sandals that were linked to the past. Only then could he receive his new calling and go to new places. This new path held miracles and God’s power and God’s help.

Dear Church, we often think about what we can do for Him. We wonder about the calling He has given us. We try so hard to find it. But, in today’s story of Moses, we learn one very important rule. God first tells us to take off our sandals. Only then does He reveal to us His plans and will. Moses had to take off his sandals to receive His calling and be used by Him.

When do we discover God’s will? We discover it when we stop in our tracks and take off our sandals. First, we must take off our sandals—that is, make a clean break from our worldly past. Only when we make that resolution can we respond to His calling. Exodus means to escape. It means to escape from the path that we have been walking in the past and to enter a new road. God first wanted Moses to make this “Exodus” in order to enter a new path. Only by walking a new path could Moses lead the Israelites to a new path. God knew this well.

Then did God tell just Moses to take off his sandals? Do you know that Jesus told His disciples to take off their sandals, too? Let’s look at John 13.“So he got up from the meal, took off his outer clothing, and wrapped a towel around his waist. After that, he poured water into a basin and began to wash his disciples’ feet, drying them with the towel that was wrapped around him.He came to Simon Peter, who said to him, ‘Lord, are you going to wash my feet?’Jesus replied, ‘You do not realize now what I am doing, but later you will understand.’” (John 13:4-7)Jesus knew that He came from God and would be going back to Him. So, He started washing the feet of His disciples.

Dear Church, do you not hear “the voice of God” whispering to us in this story? “Take off your sandals.” Jesus could wash the disciples’ feet only after their sandals had been taken off. So, “Take off your sandals” whispers He. To Peter who stubbornly refused to take them off, He says, “If I do not wash you, you have nothing to do with me.”

Jesus knew that His ministry was coming to an end. After He went to heaven, it would be up to His disciples to carry on His ministry. So, it was now time to call them. On the very night before His death, He took off their sandals, washed their feet, and had communion with them. He wanted them to take off their old shoes—the ones that had belonged to fishermen and tax collectors—and put on new ones in order to start a new ministry. This was why He washed their feet. Christians commemorate this Holy Thursday as a day of calling, a day of a new covenant. After taking off his sandals at Mount Horeb, Moses received his calling from God. The disciples, too, received their calling from Jesus after taking off their sandals.

I have gone through lengths to convey a short, simple conclusion. Dear Church, God is telling us now to “Take off your sandals, for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 ground.” (Exodus 3:5)

As we read through Exodus in our early morning prayer services these days, I realize that there is yet another place where we must take off our sandals. The tabernacle. Priests had to wash their hands and feet at the basin before entering the tabernacle. They had to go into the tabernacle barefoot. In the tabernacle, a place of God’s presence, priests had to serve Him barefoot.

Today is a special day. New elders of our church will be ordained. You may think that this is a day for only these three new elders. But no. It has a deeper meaning. Today, we are not ordaining just these three individuals, but God is calling all of us in this congregation to serve Somang Church with one heart and mind.

Today, we all receive a new calling from God to take off our sandals and turn back from the old, wrong, sinful, and secular ways of the Church. History testifies that the history of the Church was changed by people who took a new path, abandoned their old ways, and rose to new challenges. Luther and Calvin did this in the Reformation. Wesley did this in therevival of the 18C.

Dear Church, now it is our turn. God is telling us today: “Take off your sandals, for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 ground.” (Exodus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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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 1 ~ 5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현대 문명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만 같습니다. >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이는 영화 제목입니다. 로이스 던칸(Lois Duncan)의 소설을 배경으로, 1997년에 짐 길레스피(Jim Gillespie) 감독이 제작한 할리우드 공포 영화입니다. 어느 날 밤, 술을 마시고 행인을 친 고등학생들이 바다에 시체를 유기하고 진실을 덮습니다. 그러나 1년 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고 적힌 익명의 편지가 그들에게 배달됩니다. 그 사건과 관련된 이들이 하나둘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는 공포 영화입니다. 사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제목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아직도 제목이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신문에서 똑같은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모든 일을 알고 있다.”라고 적힌 제목의 기사를 보니, 오늘날 우리의 삶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다양한 현대 문화와 기술 및 기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우선 우리가 쓰고 있는 핸드폰은 우리가 어디로 전화했는지, 언제 전화했는지를 모두 기록합니다. 요즘 핸드폰에는 GPS 장치가 있어서 어디서 전화를 했는지도 오차 없이 기록해 둡니다.
물론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가진 차량은 대부분 그 차가 어디 있는지, 또 어디로 이동했는지, 분명히 기록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동차가 자율 주행을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접속한 적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차곡차곡 기록으로 남겨집니다. 의료보험조합 컴퓨터에는 우리가 언제 어느 병원에 들렀는지, 어떤 진단을 받고 치료했는지, 어떤 약을 처방받아 어떤 약국에서 구입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시는 분들은 각 항공사의 마일리지 관련 자료에서 자신이 언제, 어디로 여행했는지 모든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로 계산하면 정보가 남지요. 내가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 정확하게 기록이 남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데, 제가 부산을 오갈 때 일입니다. 하루는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로 서울로 오는데, 부산에서 렌트 했던 차에 기름을 넣고 반납한 뒤,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왔습니다. 공항에 와서 공항에 세워두었던 제 차를 몰고 가려는데 기름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방 주요소에 가서 기름을 넣었습니다. 같은 신용카드로 계산했지요. 그런데 조금 뒤에 신용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조금 전 부산에서 기름을 넣었는데, 또다시 서울에서 기름을 넣은 흔적을 보고는 혹시 잘못된 사용은 아닌지 확인하는 전화였습니다. 요즘은 그런 경우 전화 대신 문자로 오는 것 같지만, 그때는 그런 전화가 종종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 섬뜩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종종 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여기저기 감시 카메라들이 전신주나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으슥한 골목에도 카메라들이 있습니다. 수상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경찰서에서 추적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또 무엇을 했는지, 비밀을 알고 있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인데, 현대 사회의 각종 기술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설교도 카메라를 통해 송출되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인지하지 못하셨을 수 있지만, 여러 대의 카메라가 여러분이 설교 시간에 어떤 태도로 경청하고 있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감시당하는 것만 같은 상황이 어떠십니까? 혹시 기분 나쁘지는 않으십니까? 이런 감시와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으십니까?

< 세상에서 내가 다닌 길을 내 신발이 증언합니다. >

언젠가 저도 이런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 감시 카메라로부터의 벗어남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보고 싶은 충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시 카메라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고심하며 나름의 프로젝트를 세우고, ‘감시 카메라 벗어나기’라는 시도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우선 핸드폰 전원을 종료한 뒤 집에 놓아두고, 거리로 나와 무작정 버스를 탔습니다. 타자마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 교통카드로 제 흔적을 남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버스를 타는 순간, 운전석 옆에 있는 카메라에 이미 제가 노출되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습니다. 이렇게 저의 첫 번째 시도는 아주 싱겁고 무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제 무조건 걷되 카메라가 없는 곳을 찾아 움직여 보기로 했습니다. 절대 지하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지하에는 항상 카메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레 움직였지만, 생각보다 카메라가 없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에는 카메라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곳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자유를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지요. ‘아마 내가 산에 다녀온 것은 아무도 모를 거다. 나만 알 거야.’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 즐겁게 샤워하고 기쁜 마음으로 나왔는데, 제 아내가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산에 갔다 왔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놀란 얼굴로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더니, 아내가 대답합니다. “신발에 온통 흙이 묻어 있어서 산에 다녀온 지 알았지요.” 그날 저는 매우 참담했습니다.
현관으로 가 흙이 묻은 제 신발을 보았습니다. 열심히 흙덩어리를 닦았습니다. 도저히 제가 산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가지런히 신발을 놓았습니다. 굽이 많이 달은 구두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저 신발이야말로 내가 어디 있었는지, 어디로 갔는지, 모두 알고 있겠구나. 내 인생의 모든 신발을 모아둘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신발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나는 꼼짝없이 내가 다닌 곳, 내가 다닌 모든 발자취를 들키고 말겠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신고 있는 그 신발로 어디를 다니셨습니까? 어디에 계셨습니까? 혹시 방탕의 길에 있지는 않았습니까? 속이는 현장에 그 신발을 신고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잘못된 길로 신을 신고 들어가지는 않으셨습니까? 혹시 진흙탕은 아니었습니까? 거들먹거리는 장소에서 그 신을 신고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신발이 여러분이 그동안 다녀온 길과 발자취를 증언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저 역시 그날 이 질문과 함께 제 신발 앞에서 처참한 심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가지 않아야 할 곳에 놓였던 신발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둠의 자리, 부끄러움의 자리에 벗어 놓았던 신발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탐욕의 길에 신고 다녔던 신발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내가 거기에 있었는지, 왜 그곳에 갔었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는 저에게 조용히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네가 그 신을 좀 벗었으면 좋겠구나.’ 지금까지 지나왔던 길, 세상의 길에서 헤매고 다녔던 그 신발을 벗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 마음속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의 신을 벗겨 새 신발을 신기십니다. >

수천 년 전에도 똑같은 말씀을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모세입니다. 그는 8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40년 동안 애굽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왕자로 살았습니다. 아마 왕궁을 걸어 다녔을 것입니다. 멋진 자리에 그의 신발들이 옮겨졌을 것입니다. 여러 곳을 다녔을 것입니다. 휴양지도 다녔을지 모릅니다. 당시 그가 어디를 다녔는지, 성경은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걸었던 인생 초반의 40년은 화려함의 기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사실 크게 의미 없는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인에게 매 맞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곤 분을 참지 못해 애굽 사람을 돌로 쳐 죽이게 됩니다. 그는 그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살인의 현장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지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자리, 살인의 현장을 그 신발이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또 다른 사람들도 증언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눈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갑니다. 그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우물가에서 여인들을 괴롭히는 목동들을 쫓아낼 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고, 이드로를 만나고, 또 아내 십보라를 만났을 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을 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고, 광야에서 양 떼를 몰고 다닐 때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광야 40년의 발걸음은 정처 없는 발걸음이었습니다. 애굽에서의 발걸음이 화려함의 발걸음이었다면, 미디안 광야에서의 발걸음은 정말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이리저리 다니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40년이 또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호렙산에 올랐다가 놀라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타고 있는데, 그 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신기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호기심이 일어 다가섰을 때,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한 첫 번째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5)

어떤 학자는 신을 벗는 행위를 단순히 존경의 표시라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유대 풍습에 신 한 짝을 상대방에게 주며 맹세하는 관습이 있으므로,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맹세가 이루어지는 장면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장면은 그 이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다녔던 모든 곳, 그가 헤맸던 모든 장소, 모든 길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돌아다녔던 곳, 도피의 길, 헤매고 다녔던 체념의 광야, 살인의 장소, 그 모든 장소를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네가 지금까지 다닌 길을 알고 있는 신발을 이제 벗으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과거를 버리라’는 주님의 초청입니다. 잘못된 모든 기록이 담긴 신발을 벗어 버리라는 주님의 초대입니다. 동시에 그 명령 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내가 너에게 새로운 길을 가도록 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이제 새로운 신발을 신겨주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모세가 그 후에 간 길은 어떤 길이었습니까? 가족을 돌보는 안주의 길에서 벗어나, 광야의 양 떼를 돌보며 인생을 겨우 연명하던 그 길에서 벗어나, 광야를 맴돌던 정처 없는 길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길로 접어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세가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그는 의미상으로 새로운 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홍해 앞에 섰을 때, 그는 새로운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기적을 볼 때, 그는 새로운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기적을 경험할 때도 새로운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애굽에서 그들을 구출하라.”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기 전에, 모세에게 첫 번째로 들렸던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신을 벗으라’라는 초청이었습니다. 자신의 신발을 벗은 후에야 그는 새로운 소명을 받아 새로운 곳, 전혀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인도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인도된 새 길에는 기적이 있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 내 신을 벗어야 하나님의 소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소명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그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모세의 이야기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배웁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에게 요청하십니다. “신을 벗어라.”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가던 길을 멈추고, 신발을 벗을 때입니다. 먼저 내 신을 벗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 결단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진정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엑소더스’라는 말이 있지요? ‘출애굽기’로 번역됩니다. 그런데 엑소더스는 본래 ‘엑스’와 ‘호도스’의 합성어입니다. 엑스는 ‘밖으로’라는 뜻이고, 호도스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길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엑소더스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살던 방식에서 벗어나 광야의 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 엑소더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잘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4절 이후의 말씀입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요한복음 13:4~7)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아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이야기 속에 한 가지 숨겨진 단계가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제자들을 향해 주시는 “신을 벗어라.”라는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까? 신을 벗어야 대야에 발을 담글 수 있고, 주님께 씻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신을 벗어라.”
안 벗겠다고 고집 피우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신을 벗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이 끝나감을 알고 계셨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제자들이 그 뒤를 이어 사역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제자들에게 소명을 주시는 순간입니다. 마지막 유언을 주시는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은 제자들의 신을 벗도록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어부의 흔적이 남았던 그 신발, 세리의 흔적이 남은 그 신발, 남의 등쳐먹던 자리에서 신고 있던 그 신발을 벗게 하시고, 이제 새로운 사역으로 보내기 위하여 새로운 신발을 신겨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예수님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전통은 세족 목요일을 새로운 주님의 명령을 받은 날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 날로 기억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의 신을 벗기신 후에 주신 새로운 명령입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신고 있던 신발을 벗은 후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은 후에야 주님의 소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짧은 결론을 위해 긴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5 중)

< 주님께서 신겨주시는 신을 신고 거룩한 사명의 삶을 삽시다. >

요즘 새벽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성도 여러분과 기도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묵상하면서 신을 벗어야 하는 또 다른 곳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으로 들어가는 제사장들은 물두멍에서 자신의 손과 발을 씻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을 벗은 채 맨발로 성막으로 들어갑니다. 성막의 뜰은 그냥 땅입니다. 어떤 다른 포장이 있는 게 아닙니다. 카펫이 깔린 것도 아닙니다. 그저 땅일 뿐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이 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맨발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어떤 감각 기관으로 하나님을 느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눈으로 성막에 그려진 그룹들, 천사의 모습들을 보았겠지요. 진설병상, 등잔대, 법궤와 속죄소를 보았을 것입니다. 손으로 등잔대의 기름을 채우고, 진설병상에 떡을 교체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세밀하게 느꼈을 또 다른 감각 기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맨발’입니다. 그들은 맨발로 이 땅에 계시는 하나님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밟고 있는 바로 그 땅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바로 그 땅에서 내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소망교회에서 일하실 장로님 세 분을 세우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안수를 받는 세 분만을 위한 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자리는 세 사람 개인이 주님에게서 소망교회를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는 소명의 자리가 아니라, 아니 그것을 넘어, 우리 교우 모두가 한마음으로 소망교회를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는 소명의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걸어왔던 부족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 그 신을 벗기 원합니다. 지금까지 세속적으로 살아왔던 잘못된 자리에서 돌아서 그 신을 벗으면 좋겠습니다. 신을 벗고, 새로운 소명을 받는 자리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길로 들어선 사람들, 과거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전에 매진한 사람들에 의해 교회의 역사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가 루터가 그랬고, 칼뱅이 그랬고, 웨슬리가 그러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5 중)

2019년 11월 1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신을 벗고 받은 사명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1장, 312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출3:1-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영화제목을 딴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기사에 의하면, 우리의 모든 흔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핸드폰이나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인터넷 방문기록 등이 그것입니다. 그것을 시험하듯 아무도 모르게 산을 다녀온 날,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에 다녀왔어요? 신발에 온통 흙이 묻어있어요”

설교의 요약

우리의 신발이 우리의 길을 증언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수천년 전 모세는 40년 동안 황궁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이후 40년은 광야의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이것은 단순히 경외의 의미를 뛰어 넘어, 그가 다녔던 모든 길(살인의 장소, 체념의 장소, 방황의 장소)을 알고 있는 그 신발을 벗어 버리라는 주님의 초청이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길을 가도록 새로운 신발을 신겨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후 모세는 방황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발(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먹으며,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장소들)을 신게 됩니다. 자신의 신발을 벗은 후에야 그는 새로운 사명을 받아들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신을 벗으라고 요청하십니다. 과거로부터의 단절입니다. 엑소더스(출애굽기)의 의미는 “길 밖으로”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의 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13장에서 세족식을 행하시며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신을 벗어라” 제자들이 신을 벗어야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모든 삶의 흔적들을 벗게 하시고 새로운 신발을 신겨 주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바로 발을 씻겨 주신 예수님 사역의 핵심입니다. 기독교 전통은 세족식이 있던 날을 새로운 사명을 받은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신을 벗어야 하는 곳이 또 한 곳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성막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에서 제사장들은 손과 발을 씻고 맨발로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제사장들이 어떤 감각을 느꼈을까요? 눈으로는 성막의 이러 저러한 모습들을 봅니다. 그룹과 법궤, 속죄소 등을 봅니다. 등잔의 기름을 채우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감각은 자신들이 맨발로 밟고 있는 그 땅이 하나님의 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나누기

1. 지금까지 신었던 신을 살펴봅시다. 그 신발의 흔적 속에서 나의 과거의 잘못들을 확인하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할 수 있다면 서로 나누며 그 결단을 하나님께 올려 봅시다.

2. 새로운 신을 신기 위해 우리의 발을 내밀며, 예수님의 정성 가득한 손길을 느끼기 원합니다. 어떠한 삶으로 나가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삶의 결단을 나눠 봅시다.

마무리 기도

거룩함으로 부르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의 짧은 인생의 길에서 서성이지 않고, 신을 벗고 주님 씻겨 주시는 손에 우리의 발을 내밀어 더욱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세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주님 주시는 사명의 길로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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