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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믿는 것

사무엘상 3: 16 ~ 18

김경진 목사

2020.05.24

< 엘리 제사장의 실패를 거울삼아 바른 신앙의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

오늘 여러분과 나눌 말씀은 한 불행한 제사장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에게 제사장의 권한을 넘겨주게 된 엘리 제사장의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아들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제사장 직분이었지만 자녀들이 죽음을 맞게 되었고, 엘리 제사장 역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 불행한 사건입니다. 바로 이 엘리 제사장의 삶과 실패를 통해 바른 신앙의 길을 여러분과 함께 찾아보길 원합니다.
그동안 “예배당 문이 열리면, 우리가 새로운 자세로 들어와 함께 예배드립시다.”라는 말씀을 드려왔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의 연속선상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선 자들이 어떤 자세로 새 마음을 품고 예배의 자리로 들어올 것인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먼저 엘리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말씀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쳤고, 백성 가운데는 죽은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제사장님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사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습니다.”그가 하나님의 궤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에 엘리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으로 쓰러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늙은 데다가 몸까지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마흔 해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사무엘상 4:17~18, 새번역)

쓸쓸하고 안타까운 사사이자 제사장인 엘리의 최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당시 3만 명의 보병이 희생당했다는 보고가 성경에 나타납니다. 이러한 비극이 엘리와 그의 자식들의 죄 때문임을 성경은 숨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와 그의 아들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엘리 제사장이 40년 동안이나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했는데, 그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특히 엘리 제사장의 다섯 가지 잘못을 짚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한 영혼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

사무엘서에서 엘리 제사장이 등장하는 첫 장면은 사무엘의 탄생과 연결됩니다.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한나였고, 두 번째는 브닌나입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브닌나가 한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한나가 괴로워하며 주님의 집 곧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곤 했습니다. 보통은 흐느껴 기도할 텐데, 한나는 소리 내어 기도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입술만 움직이며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하고 이렇게 훈계합니다.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사무엘상 1:14)

한나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며 슬픔을 토로합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이 한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무엘상 1:17 중)

엘리 제사장과 관련된 첫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의 일상적인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고 살피며, 혹시나 성전에 술 취한 사람이 들어왔는지 찾아내어 내쫓을 만큼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또 성전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평안히 가라고 하며,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축복의 메시지도 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한탄하며 절망에 빠져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녀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슬퍼하는 상황에 다가가 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윤리적으로만 접근합니다.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겠느냐고 훈계하는데, 사실 이 역시 당시 한나를 오해한 처사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엘리 제사장의 첫 번째 실패를 봅니다. 엘리는 성전에 와서 슬퍼하며 기도하는 한나를 술 취한 것으로 오해할 만큼 성도와 이웃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었습니다. 공명이 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포도주를 끊으라는 명령은 성전을 혼란 없이 지키려는 충성 된 마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찾아와 애통하며 기도하는 한나의 마음에는 닿지 않는 충고일 뿐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가 먼저 보이고, 서로 감싸며 치유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를 유지하는 일이 보이고, 법이 보이고, 윤리가 보입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여러 상황과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직접적인 상황을 외면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신앙의 위기 중 하나는 사람에게 기울여야 할 관심이 교회 유지나 법 준수, 윤리적인 차원으로만 넘어갈 때입니다. 물론 이것들 역시 교회를 위해 필요한 사항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잃어버린 영혼에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것을 바르게 수행하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배당 질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며, 윤리적으로 틈이 없도록 직무를 감당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직분자들에게 그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나 일에 집중하다 자칫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그 사실을 엘리 제사장의 이야기에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의 삶에 공명하지 못할 때, 신앙생활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

두 번째로 엘리 제사장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입니다.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이다. 그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 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사무엘상 3:1, 새번역)

당시 상황을 전해 주는 이 말씀에 엘리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주님을 섬기던 당시,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해 주시는 일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는데, 주님의 말씀은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고, 제사도 드리고, 기도도 드리며, 여러 봉사로 성전을 관리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정작 말씀이 없으십니다. 환상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즉 일방적인 소통의 모습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게 아니라, 엘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음을 전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라는 말씀이 있지만, 그 말씀 전후에도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등장하는 까닭입니다.
먼저 사무엘상 2장에 27절 이후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찾아와 엘리의 집안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 뒤 3장에서 어린 사무엘을 통해 엘리 가문에게 일어날 일을 재차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고 전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으나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엘리 제사장의 모습을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저를 포함한 직분자들에게 큰 위기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엘리가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볼 수 없었다는 구절을 빼놓지 않습니다(삼상3:2). 시들어 가는 인생, 시들어 가는 신앙생활, 죽어 가는 위기의 신앙생활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데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말씀이 귓전을 때리지만, 마음까지는 내려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딘 마음 때문에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직분자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 봉사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신앙적으로 여러 도움을 주고 있는데, 정작 하나님의 말씀이 다가오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엘리 제사장 역시 성전을 찾아와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고는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공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공명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셨지만, 그 말씀과도 공감을 이루지 못합니다. 무뎌진 양심 때문입니다. 무뎌진 감각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엘리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경험하는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

세 번째로 엘리의 또 다른 문제는 신앙을 알고 있었을 뿐 참다운 신앙 경험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다가오시는 장면이 사무엘상 3장의 앞부분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나옵니다. 엘리는 자신이 부르지 않았다고 대답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줍니다. 사무엘상 3장 9절입니다.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사무엘상 3:9)

엘리는 상당히 많은 경험을 가진 제사장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사무엘이 자신을 찾아온 것을 보곤 직감적으로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찾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잘 지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거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자세히 알려 주었습니다. 그 정도로 신앙의 지식이 많은 엘리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하나님과 대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고는 있는데,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엘리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지식은 있어 가르쳐 줄 수는 있으나 실제적인 만남과 경험이 없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앙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앙의 훈수를 둘 수 있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체험한 신앙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누군가의 신앙 경험을 해석해서 전달해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경험이 과거의 경험으로만 머물러 있을 때입니다. 오늘, 지금, 현재에 일어나는 역동적인 신앙 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한 사건에 머물러 있거나 지식적으로만 채워져 있는 경우입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훈수를 두기 위해, 혹은 내가 알고 있는 신앙적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거나 자랑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나의 생활입니다. 나의 경험입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나와 하나님의 은밀한 접촉입니다.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지식적으로 알고는 있으나, 거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신앙적 지식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한마디로 모양과 틀만 있지 ‘생명’이 없습니다.
사무엘상 4장으로 넘어가면,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대항하려는 장면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을 터입니다. 언약궤가 앞서 나가기만 하면 많은 적군이 물러나고 패퇴 된 사건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들고 나갔던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신앙적인 지식을 동원해 상황에 적용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언약궤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셨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 옆에 서 있었는데, 그만 언약궤마저 뺏기게 되고, 그들 역시 그 자리에서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들의 과거의 경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언약궤에 대한 영웅적인 이야기들은 그들의 현재에 아무런 의미가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들이 그 경험을 오늘의 신앙과 사건에 결부되도록 노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잊었습니다. 과거에 멈춰 있었을 뿐입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과거의 경험의 축적도 아닙니다. 현장의 경험이자 현실이 되어야만 합니다.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 신앙의 전수와 회개가 수반될 때, 건강한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

네 번째로 엘리의 실수는 자식들에게 신앙을 바르게 전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생명력 없는 신앙이 자녀들에게도 전가되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물에 손을 댔고, 여인들과 동침합니다. 탐욕을 부립니다. 성전의 물건을 훔치기도 합니다. 엘리 제사장이 타이르고 경고했지만, 아들들을 돌이키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엘리의 또 다른 실수였습니다.
엘리의 분명한 잘못 하나는 자식들을 신앙 안에서 키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자식들을 주님 품에 거하게 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함께하는 사무엘은 신앙적으로 잘 키워냈으면서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신앙적으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엘리의 큰 실패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로 오랫동안 봉사하면서 많은 아이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또 많은 아이에게 주님의 이름을 알려주며 교육했는데,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구원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며 봉사하고 교회 일을 감당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주님의 품에 거하지 못하는 참으로 불행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엘리 제사장의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엘리에게는 ‘회개’라는 게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3장 18절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사무엘상 3:18 중)

이 말씀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 봅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사무엘상 3:18 중, 새번역)

멋진 신앙 고백이 아닙니까? 멋진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게 되면, 다르게 보이실 것입니다. 언뜻 보면 멋진 신앙 고백 같은데, 도리어 이 고백이 엘리 제사장을 패망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가 이런 고백을 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무엘이 엘리를 찾아와서 “나를 부르셨습니까?”라고 세 번 물었을 때, 엘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이니 여호와께 종이 듣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 뒤 밤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엘리는 사무엘을 불렀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이 무엇이었느냐? 나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 이렇게 압박까지 합니다. “네가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저주를 내리시기를 바란다.” 사실 사무엘은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와 그 가문의 패망 소식, 심판 소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모든 내용을 엘리 제사장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전했을 때, 엘리 제사장의 대꾸가 바로 조금 전에 읽은 말씀입니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사무엘상 3:18 중)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사실 이 말씀은 매우 놀라운 신앙의 고백 같지만, 이 대목에서 엘리는 이 말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나아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했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주십시오. 저를 다시 일으켜 주십시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라는 이야기만 남기고 멈출 뿐입니다.

< 아는 것을 넘어 삶으로 경험하고 적용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

사실 이 심판 예고는 엘리가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에게 당신의 사자를 보내 직접 전달한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사무엘상 2장 뒷부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당시 그 이야기를 들은 엘리의 반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엘리는 같은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오늘과 같은 마음으로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라며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사무엘을 통해 엘리를 향한 심판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니다. 또 한 번 기회를 주셨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엘리에게는 회개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사무엘상 3:18 중, 새번역)

이 말을 할 뿐입니다. 고상한 신앙 고백 같지만, 실상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렇듯 화려한 신앙적인 선언과 멋진 고백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회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아서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을 다 아는 것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처럼 말입니다. 신학적인 논쟁을 해도 얼마든지 지지 않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오랫동안 믿어온 사람들, 직분자들 그리고 저를 포함한 사역자들이 그런 태도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회개할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장 고상한 신앙인인 척하지만,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에게는 회개를 적용하지 않는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은 회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회개할 것이 보입니다. 마땅히 회개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회개의 칼날을 들이대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는 회개할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회개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믿는 것처럼 멋진 신앙 고백을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회개를 적용하지 못하는 불쌍한 모습, 이것이 엘리 제사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높은 종교적 위치에 서서 화려한 신앙적인 선언들을 합니다. 신학적이며 신앙적인 지식도 소유했고,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패망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신앙의 거대한 거목이라고 생각되었던 엘리는 그렇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자식들과 함께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새 세대가 도래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모습이 신앙의 구세대, 믿음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이 없는 세대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의 멋진 문장이나 선언은 있지만, 진정한 회개가 없는 건 아닌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마태복음 23장에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마태복음 23:27~28 중, 새번역)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그렇게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Knowing and Believing

1 Samuel 3:16-18

My sermon today is about an unfortunate priest. Eli’s story is a truly unhappy one. He hands his priesthood over to Samuel, hears about the death of his sons, and dies a tragic death himself.

Although Eli serves in the temple in the first part of 1 Samuel, he is spiritually powerless. He fails miserably in teaching his sons to follow God’s ways, is dull to the word of God, cannot see visions, and has no divine power. He represents a powerless, old-generation priest. On the other hand, young Samuel can hear God clearly and does things that please Him, representing a priest for a new generation.

Today, I want to think about the life and failure of Eli. By studying his tragic story, I wish to answer this question: “What should our faith look like—and how should we change—when we return to worship?” This is a question I had asked in my previous sermons. I hope we hear God speaking to us in this time as we study the life of Eli.

First let’s look at his final days and how he died:

“The man who brought the news replied, ‘Israel fled before the Philistines, and the army has suffered heavy losses. Also your two sons, Hophni and Phinehas, are dead, and the ark of God has been captured.’ When he mentioned the ark of God, Eli fell backward off his chair by the side of the gate. His neck was broken and he died, for he was an old man, and he was heavy. He had led Israel forty years.” (1 Samuel 4:17-18)

The above passage tells us that over 30,000 Israelites were killed when the Philistines attacked them, and that this tragedy owes to an incapable and corrupt Eli and his sons. What exactly was the problem with Eli and his sons? What angered God and what made Him set up a new priest, Samuel? As we try to understand why, let’s reflect on our own lives and faith.

First, the first scene of Eli’s appearance has to do with the birth of Samuel. This is very interesting. A man called Elkanah of Ephraim had two wives, one of which was Hannah. Hannah was barren. Hannah, hurt by the other wife, came to the Lord, praying earnestly with tears. She prayed silently, with only her lips moving. When Eli saw this, he thought she was drunk: “How long are you going to stay drunk? Put away your wine.” (1 Samuel 1:14) Hannah defended herself, saying she was not drunk, and told Eli about her grief. Eli replied, “Go in peace, and may the God of Israel grant you what you have asked of him.” (1 Samuel 1: 17)

In this scene, we get a glimpse of Eli’s daily life. It appears he was faithful in carrying out his duties as a priest, searching for people who were drunk in the temple. After hearing about Hannah’s grief, he told her to go in peace, wishing her that God would answer her prayers. This makes us believe that he was a priest who performed his duties well. After Hannah conceived and gave birth to Samuel, she sent him to Eli.

How do you interpret Eli’s faith and behavior in this story? One thing does not seem quite right in this story. When Eli saw Hannah praying in despair and grief, he failed to connect to her. He failed to empathize with her hurt and grief. Instead he takes a moral approach: “How long are you going to stay drunk? Put away your wine.”

I may be expecting too much from him, but it appears he already made his first mistake in this scene. He thought this grieved, praying woman was drunk. He lacked empathy for his congregation and neighbors. By telling her to stay away from wine, he may have wanted to maintain the temple’s order, but failed to sympathize with Hannah.

At first, we see people and their hurts in church life. But as time passes, we tend to focus on the rules and morals that help maintain the church’s order. To protect the church we sometimes turn a blind eye to the people.

A church crisis comes when our focus turns from the people to the management and laws of the church. Rules are needed to preserve the church, but we must never forget that God’s greatest concern is for the lost.

Eli’s second crisis comes in Samuel 3:1: “The boy Samuel ministered before the Lord under Eli. In those days the word of the Lord was rare; there were not many visions.” Here two phrases stand out: “ministered before the Lord” and “the word of the Lord was rare.” These words describe a state in which one is serving the Lord, but is unable to hear Him. Eli was ministering, offering sacrifices, serving God, praying, and doing many other duties for the Lord, but God remained silent, and no visions came to him. This represents a one-way communication—a dead service, a dead sacrifice.

Today’s passage tells us about a believer who lives in isolation from God, serving Him on the outside, but is unable to receive His word or vision. Interestingly, it also offers another perspective. God’s word was not nonexistent. The problem was a generation that was incapable of hearing His word.

The above passage tells us that God’s word was rare in those times, but in the verses preceding and following it, the word of the Lord is actually revealed. First, in 1 Samuel 2:27, a man of God comes to Eli and prophesizes about his destruction. In chapter 3 God tells Eli, again, about His plans to destroy him and his family.

So although today’s passage writes that “the word of the Lord was rare,” it is, in fact, chastising men for not being able to receive His word, even when it is given. Therefore, the phrase “the word of the Lord was rare” actually means to tell us that God spoke, but no one understood it. It does not mean that God didn’t speak to men. No one was listening carefully. It wasn’t that God didn’t speak, but men did not understand or listen.

The most critical crisis in our faith comes when we believe we are serving God, but God doesn’t speak to us. More precisely, it is when we claim to work for the Lord, worshiping Him and offering sacrifices, but fail to receive His word.

God speaks to us, but we do not, and cannot, hear. This is why 1 Samuel chapter 3 poignantly points out that Eli’s eyes were becoming so weak that he could barely see. A withering faith is one incapable of hearing His word. The word of the Lord becomes rare. The word reaches the ear, but does not enter the heart. A dull heart shuts out the word.

It is sadly intriguing that Eli mistakes Hannah for drinking. He lacks empathy for his congregants. God’s word is given to him, but he fails to connect with it. We see a believer with a dull conscience and a dull heart.

Eli was a trained priest. He knew what must be done when God spoke to him. He was knowledgeable enough to teach Samuel what to do when he came to him upon hearing God’s voice. At first, young Samuel thought it was Eli calling him when God called him. So he went to Eli who said he didn’t call him. This happened twice. When this happened a third time, Eli finally realized that it was God calling Samuel: “Go and lie down, and if he calls you, say, ‘Speak, Lord, for your servant is listening.’ ” (1 Samuel 3: 9) So Samuel went and lay down in his place.

We see a pitiful side of Eli. He does not realize that it is God speaking to Samuel the first time. Only after the third time does he think it may be God. He probably guessed this from past spiritual experiences and knowledge. Knowing well how to respond, he tells Samuel what to do.

How sad it is that Eli had a knowledge of God but no real encounters or experiences. In church life, we tend to teach others about faith, when we, in fact, have no powerful spiritual experiences in our own life. Encounters with God remain just a knowledge—sometimes, just second-hand experiences.

Faith is not about teaching. It is a personal experience—a personal, inner life. It is an encounter between me and God, a secret meeting between Him and me. But Eli’s faith stops at knowing. It remains just a knowledge in his head. All it has is an outward frame—no life. Faith must be more than that.

In chapter 4 the Israelites take the ark of the covenant with them in their battle against the Philistines. They knew from past experiences that the ark brought victory. However, God did not bestow power on the ark. The Israelites were defeated, sustaining massive damages, and Eli’s sons who were with the ark were killed.

Faith is not knowledge or an accumulation of past experiences. It is the experience of the present. It is a living reality. It is essential that we experience God who is living and working today. Faith as knowledge is powerless.

Such a powerless faith was passed down to Eli’s sons. They defiled the name of God. They took from the sacrifices given to God and slept around. They were greedy and appropriated the temple’s goods. Eli reprimanded and warned them, but failed to change them. This was Eli’s mistake. His clear fault was failing to raise his children in the faith. This is a common problem in all generations. Still, it is undeniable that Eli failed to raise his sons in God.

However, there is another reason why he and his sons met a tragic end. Eli possessed a greater fault. What was the critical reason for Eli’s demise? The answer is in verse 18 of today’s passage: “So Samuel told him everything, hiding nothing from him. Then Eli said, ‘He is the Lord; let him do what is good in his eyes.’” (1 Samuel 3:18) On the one hand, this seems like a splendid statement of faith, but, surprisingly, it was what destroyed him.

Let’s look at the series of events preceding this statement. On the day following the night on which Eli taught Samuel how to listen to God, Eli called Samuel and asked, “What did the Lord say?” Samuel did not want to tell him what God said because it did not bode well for Eli. But Eli insisted, almost threatening Samuel, and finally heard God’s plans to punish him and his sons. The message probably shook him. But this was his response: “He is the Lord; let him do what is good in his eyes.” On the surface, this statement seems full of faith, but this is hardly what Eli should say.

Instead, he should be repenting, covering himself with ash, and pleading for God’s help. He should be asking God to revoke His will and restore him. Eli should have prayed earnestly for God’s compassion on him and his household. But he didn’t. He just says, “God is the Lord. Let Him do what is good in His eyes.”

This is not the first time that Eli hears this prophecy. In chapter 2 a man of God delivers a similar message. Although the Bible does not tell us about Eli’s response, he may have shown a similar one to that shown to Samuel. God tells Eli, yet again, about His plans to punish him through Samuel. Still, Eli does not repent: “He is the Lord; let him do what is good in his eyes.” (1 Samuel 3:18)

How elegant and faith-filled these words seem! But, in fact, they represent a deep disbelief. Do you know how many people today make such eloquent, seemingly faithful statements? Yet their hearts are not repentant. Although they acknowledge God, they do not ask Him for forgiveness. I would like to call this “the unbelief of believers.” Such people appear extremely pious, when in fact they are unbelieving.

A faith with no repentance, and no turning back… This is unbelief and anti-faith. Just knowing Him is not faith. Faith must be manifested in our lives. True faith is being able to turn away from one’s deeds when God rebukes him. Repentance is the beginning of faith. This is the ABCs of faith.

“We must pray for the salvation of the world. Let’s work for global missions. God’s will will surely come to pass. He is working even today. So let us work, too.” How grandiose these words sound! How splendidly faith-filled they appear!

But before making such statements, we must first think about what God wants from us. We must learn to kneel before Him, however inept we are. ‘Lord, forgive me. Restore me so that I can serve You again.’

As a religious leader, Eli was surrounded by elegant, faith-filled words, possessed spiritual and theological knowledge, and even gave people advice on how to listen to God. Yet, he failed to save himself and entered a path of destruction. As Goliath fell, Eli and his household, a family of great spiritual standing, fell overnight.

We are facing a new generation, a new age. Are we not, by any chance, still an old generation that has religious form but no spiritual power? Are we not, by any chance, a generation that makes eloquent statements on faith but does not repent?

God reprimanded the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in Matthew 23: “Woe to you, hypocrites! You are like whitewashed tombs, looking beautiful on the outside, but dead on the inside. On the outside, you look righteous, but inside you are unlawful hypocrites.”

I pray that today you will realize what a new, living faith that God wants from us looks 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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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 16 ~ 18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17

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8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 엘리 제사장의 실패를 거울삼아 바른 신앙의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

오늘 여러분과 나눌 말씀은 한 불행한 제사장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에게 제사장의 권한을 넘겨주게 된 엘리 제사장의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아들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제사장 직분이었지만 자녀들이 죽음을 맞게 되었고, 엘리 제사장 역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 불행한 사건입니다. 바로 이 엘리 제사장의 삶과 실패를 통해 바른 신앙의 길을 여러분과 함께 찾아보길 원합니다.
그동안 “예배당 문이 열리면, 우리가 새로운 자세로 들어와 함께 예배드립시다.”라는 말씀을 드려왔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의 연속선상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선 자들이 어떤 자세로 새 마음을 품고 예배의 자리로 들어올 것인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먼저 엘리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말씀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쳤고, 백성 가운데는 죽은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제사장님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사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습니다.”그가 하나님의 궤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에 엘리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으로 쓰러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늙은 데다가 몸까지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마흔 해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사무엘상 4:17~18, 새번역)

쓸쓸하고 안타까운 사사이자 제사장인 엘리의 최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당시 3만 명의 보병이 희생당했다는 보고가 성경에 나타납니다. 이러한 비극이 엘리와 그의 자식들의 죄 때문임을 성경은 숨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와 그의 아들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엘리 제사장이 40년 동안이나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했는데, 그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특히 엘리 제사장의 다섯 가지 잘못을 짚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한 영혼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

사무엘서에서 엘리 제사장이 등장하는 첫 장면은 사무엘의 탄생과 연결됩니다.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한나였고, 두 번째는 브닌나입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브닌나가 한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한나가 괴로워하며 주님의 집 곧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곤 했습니다. 보통은 흐느껴 기도할 텐데, 한나는 소리 내어 기도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입술만 움직이며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하고 이렇게 훈계합니다.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사무엘상 1:14)

한나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며 슬픔을 토로합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이 한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무엘상 1:17 중)

엘리 제사장과 관련된 첫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의 일상적인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고 살피며, 혹시나 성전에 술 취한 사람이 들어왔는지 찾아내어 내쫓을 만큼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또 성전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평안히 가라고 하며,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축복의 메시지도 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한탄하며 절망에 빠져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녀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슬퍼하는 상황에 다가가 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윤리적으로만 접근합니다.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겠느냐고 훈계하는데, 사실 이 역시 당시 한나를 오해한 처사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엘리 제사장의 첫 번째 실패를 봅니다. 엘리는 성전에 와서 슬퍼하며 기도하는 한나를 술 취한 것으로 오해할 만큼 성도와 이웃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었습니다. 공명이 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포도주를 끊으라는 명령은 성전을 혼란 없이 지키려는 충성 된 마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찾아와 애통하며 기도하는 한나의 마음에는 닿지 않는 충고일 뿐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가 먼저 보이고, 서로 감싸며 치유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를 유지하는 일이 보이고, 법이 보이고, 윤리가 보입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여러 상황과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직접적인 상황을 외면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신앙의 위기 중 하나는 사람에게 기울여야 할 관심이 교회 유지나 법 준수, 윤리적인 차원으로만 넘어갈 때입니다. 물론 이것들 역시 교회를 위해 필요한 사항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잃어버린 영혼에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것을 바르게 수행하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배당 질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며, 윤리적으로 틈이 없도록 직무를 감당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직분자들에게 그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나 일에 집중하다 자칫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그 사실을 엘리 제사장의 이야기에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의 삶에 공명하지 못할 때, 신앙생활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

두 번째로 엘리 제사장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입니다.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이다. 그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 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사무엘상 3:1, 새번역)

당시 상황을 전해 주는 이 말씀에 엘리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주님을 섬기던 당시,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해 주시는 일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는데, 주님의 말씀은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고, 제사도 드리고, 기도도 드리며, 여러 봉사로 성전을 관리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정작 말씀이 없으십니다. 환상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즉 일방적인 소통의 모습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게 아니라, 엘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음을 전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라는 말씀이 있지만, 그 말씀 전후에도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등장하는 까닭입니다.
먼저 사무엘상 2장에 27절 이후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찾아와 엘리의 집안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 뒤 3장에서 어린 사무엘을 통해 엘리 가문에게 일어날 일을 재차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고 전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으나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엘리 제사장의 모습을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저를 포함한 직분자들에게 큰 위기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엘리가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볼 수 없었다는 구절을 빼놓지 않습니다(삼상3:2). 시들어 가는 인생, 시들어 가는 신앙생활, 죽어 가는 위기의 신앙생활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데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말씀이 귓전을 때리지만, 마음까지는 내려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딘 마음 때문에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직분자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 봉사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신앙적으로 여러 도움을 주고 있는데, 정작 하나님의 말씀이 다가오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엘리 제사장 역시 성전을 찾아와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고는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공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공명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셨지만, 그 말씀과도 공감을 이루지 못합니다. 무뎌진 양심 때문입니다. 무뎌진 감각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엘리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경험하는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

세 번째로 엘리의 또 다른 문제는 신앙을 알고 있었을 뿐 참다운 신앙 경험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다가오시는 장면이 사무엘상 3장의 앞부분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나옵니다. 엘리는 자신이 부르지 않았다고 대답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줍니다. 사무엘상 3장 9절입니다.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사무엘상 3:9)

엘리는 상당히 많은 경험을 가진 제사장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사무엘이 자신을 찾아온 것을 보곤 직감적으로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찾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잘 지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거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자세히 알려 주었습니다. 그 정도로 신앙의 지식이 많은 엘리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하나님과 대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고는 있는데,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엘리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지식은 있어 가르쳐 줄 수는 있으나 실제적인 만남과 경험이 없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앙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앙의 훈수를 둘 수 있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체험한 신앙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누군가의 신앙 경험을 해석해서 전달해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경험이 과거의 경험으로만 머물러 있을 때입니다. 오늘, 지금, 현재에 일어나는 역동적인 신앙 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한 사건에 머물러 있거나 지식적으로만 채워져 있는 경우입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훈수를 두기 위해, 혹은 내가 알고 있는 신앙적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거나 자랑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나의 생활입니다. 나의 경험입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나와 하나님의 은밀한 접촉입니다.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지식적으로 알고는 있으나, 거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신앙적 지식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한마디로 모양과 틀만 있지 ‘생명’이 없습니다.
사무엘상 4장으로 넘어가면,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대항하려는 장면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을 터입니다. 언약궤가 앞서 나가기만 하면 많은 적군이 물러나고 패퇴 된 사건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들고 나갔던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신앙적인 지식을 동원해 상황에 적용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언약궤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셨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 옆에 서 있었는데, 그만 언약궤마저 뺏기게 되고, 그들 역시 그 자리에서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들의 과거의 경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언약궤에 대한 영웅적인 이야기들은 그들의 현재에 아무런 의미가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들이 그 경험을 오늘의 신앙과 사건에 결부되도록 노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잊었습니다. 과거에 멈춰 있었을 뿐입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과거의 경험의 축적도 아닙니다. 현장의 경험이자 현실이 되어야만 합니다.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 신앙의 전수와 회개가 수반될 때, 건강한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

네 번째로 엘리의 실수는 자식들에게 신앙을 바르게 전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생명력 없는 신앙이 자녀들에게도 전가되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물에 손을 댔고, 여인들과 동침합니다. 탐욕을 부립니다. 성전의 물건을 훔치기도 합니다. 엘리 제사장이 타이르고 경고했지만, 아들들을 돌이키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엘리의 또 다른 실수였습니다.
엘리의 분명한 잘못 하나는 자식들을 신앙 안에서 키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자식들을 주님 품에 거하게 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함께하는 사무엘은 신앙적으로 잘 키워냈으면서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신앙적으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엘리의 큰 실패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로 오랫동안 봉사하면서 많은 아이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또 많은 아이에게 주님의 이름을 알려주며 교육했는데,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구원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며 봉사하고 교회 일을 감당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주님의 품에 거하지 못하는 참으로 불행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엘리 제사장의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엘리에게는 ‘회개’라는 게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3장 18절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사무엘상 3:18 중)

이 말씀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 봅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사무엘상 3:18 중, 새번역)

멋진 신앙 고백이 아닙니까? 멋진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게 되면, 다르게 보이실 것입니다. 언뜻 보면 멋진 신앙 고백 같은데, 도리어 이 고백이 엘리 제사장을 패망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가 이런 고백을 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무엘이 엘리를 찾아와서 “나를 부르셨습니까?”라고 세 번 물었을 때, 엘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이니 여호와께 종이 듣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 뒤 밤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엘리는 사무엘을 불렀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이 무엇이었느냐? 나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 이렇게 압박까지 합니다. “네가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저주를 내리시기를 바란다.” 사실 사무엘은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와 그 가문의 패망 소식, 심판 소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모든 내용을 엘리 제사장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전했을 때, 엘리 제사장의 대꾸가 바로 조금 전에 읽은 말씀입니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사무엘상 3:18 중)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사실 이 말씀은 매우 놀라운 신앙의 고백 같지만, 이 대목에서 엘리는 이 말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나아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했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주십시오. 저를 다시 일으켜 주십시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라는 이야기만 남기고 멈출 뿐입니다.

< 아는 것을 넘어 삶으로 경험하고 적용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

사실 이 심판 예고는 엘리가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에게 당신의 사자를 보내 직접 전달한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사무엘상 2장 뒷부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당시 그 이야기를 들은 엘리의 반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엘리는 같은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오늘과 같은 마음으로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라며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사무엘을 통해 엘리를 향한 심판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니다. 또 한 번 기회를 주셨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엘리에게는 회개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사무엘상 3:18 중, 새번역)

이 말을 할 뿐입니다. 고상한 신앙 고백 같지만, 실상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렇듯 화려한 신앙적인 선언과 멋진 고백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회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아서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을 다 아는 것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처럼 말입니다. 신학적인 논쟁을 해도 얼마든지 지지 않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오랫동안 믿어온 사람들, 직분자들 그리고 저를 포함한 사역자들이 그런 태도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회개할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장 고상한 신앙인인 척하지만,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에게는 회개를 적용하지 않는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은 회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회개할 것이 보입니다. 마땅히 회개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회개의 칼날을 들이대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는 회개할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회개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믿는 것처럼 멋진 신앙 고백을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회개를 적용하지 못하는 불쌍한 모습, 이것이 엘리 제사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높은 종교적 위치에 서서 화려한 신앙적인 선언들을 합니다. 신학적이며 신앙적인 지식도 소유했고,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패망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신앙의 거대한 거목이라고 생각되었던 엘리는 그렇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자식들과 함께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새 세대가 도래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모습이 신앙의 구세대, 믿음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이 없는 세대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의 멋진 문장이나 선언은 있지만, 진정한 회개가 없는 건 아닌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마태복음 23장에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마태복음 23:27~28 중, 새번역)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그렇게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0년 5월 24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아는 것과 믿는 것” (삼상 3:16-18)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62장, 53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삼상 3:16-18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5월 24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 우리는 사사였던 엘리의 삶과 실패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은 엘리의 마지막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님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사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습니다. … 엘리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으로 쓰러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삼상 4:17-18, 새번역). 엘리와 그의 아들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설교의 요약

    엘리의 첫 번째 실패는 성전에 와서 슬퍼하며 기도하는 한나를 술 취한 것으로 볼 만큼, 이웃(사람)에 대한 공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삼상 1:14). 엘리는 포도주를 끊으라는 명령으로 성전을 경건하고 충성되게 지키려고 하였지만, 성전을 찾아와 애통하는 한나의 마음에 다가가지는 못했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항상 사람에게 향하여야할 관심이 교회유지와 법, 그리고 윤리로 그 관심이 넘어갈 때입니다. 물론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엘리의 두 번째 실패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삼상 3:1, 새번역).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만, 이 말씀이 있는 앞뒤에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본문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은,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으나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아 들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꼬집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위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예배도 드리고 제사도 드리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들어가는 신앙생활, 죽어가는, 위기의 신앙생활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 집니다. 말씀이 귀에까지 들립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까지 오지 않습니다. 듣는 이의 무딘 마음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엘리가 결정적으로 패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오늘 본문 18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 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삼상 3:18, 새번역). 이 말은 엘리가 사무엘을 협박해서 하나님께 들은 내용이 무엇이냐고 말한 후, 사무엘의 말을 듣고 한 반응입니다. 사무엘이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엘리 자신의 가문의 멸망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런 후 엘리의 반응입니다. 한편으로는 놀라운 신앙의 고백 같지만, 사실 엘리는 여기에서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나아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어야만 합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 돌아섬이 없는 신앙은 불신앙이요, 비신앙인 것입니다. 새롭게 결단하는 지금, 우리는 어떤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진정한 회개의 모습으로 새시대를 준비하시길 축복합니다. 

 나누기

 1. 엘리 제사장의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2. 나의 어떤 모습이 엘리 제사장과 닮아 있습니까? 지금, 그 모습 중에, 꼭 하나님께 다뤄지기 원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마무리 기도

    하나님, 지식으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만 아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신앙,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사람에 공감하며,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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