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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는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
2020년 출간된 문학 작품 중에서 『복수를 합시다』라는 특이한 제목의 장편 소설이 있습니다.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배상민 작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황토색 표지 안에는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 한쪽에는 문이 있고 맞은편에는 한 사람이 케이크에 머리를 처박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복수를 당한 것 같은 모습입니다. 책 하단에는 파란색 띠지가 있는데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가장 보통의 복수를 상상하다.” 이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복수를 하려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모이는 내용인데요. 모여서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복수를 도와주는 내용이 전개됩니다. 생색내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보기 좋게 복수하고, 친구와 바람을 피운 약혼녀를 보기 좋게 복수합니다. 과거 사진을 가지고 협박하는 친구를 멋지게 복수하는 장면들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모든 복수가 시원하게 전개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그것 때문에 덫에 걸려서 어려움에 빠지는 이야기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뒷장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쓰디쓴 농담처럼 공허하지만 통쾌한 복수의 맛”
두 가지 단어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통쾌’라고 하는 단어와 ‘공허’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두 단어가 ‘복수’라는 단어에 잘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통 복수를 하면 처음에는 통쾌함이 있죠. 그런데 통쾌함은 잠시, 이내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복수의 속성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에 운동선수들이 과거에 행한 학교 폭력이 이슈가 되면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을 맞고 있는 것을 봅니다. 연예인들 중에도 비슷한 일들이 꽤 있었고요. 인기가 올라갈 상황이 되었을 때, 지나간 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오면서 도리어 인생이 망하게 되는 사람들을 종종 보기도 합니다. 지금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서울 시장이 그랬고, 부산 시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슷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을 알리고 밝히는 사람들이야말로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겠습니까? 그동안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습니까?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고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이제야 그에게 나타나서 처벌을 원하는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피해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로 억울하고 힘든 시간이 계속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이러한 흐름을 보면서 ‘보다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는 하나의 신호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몸가짐을 다시 주의하게 되는, 그래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악은 드러나야 하고 정죄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 보다 자신의 삶을 주의해서 살게 될 것이고, 보다 나은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복수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하나의 상황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가기 전 같기도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굉장히 야단을 맞았는지 아니면 제가 하려던 것을 어머니께서 막으셨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무 아래에 가서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결심했던 것만큼은 생각납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어머님께 말도 잘 안 듣고, 한동안 못되게 굴었던 기억이 아주 조심스럽게 납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지금 복수의 마음을 갖고 있을지, 여러분의 남편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질 때가 참 많습니다. 너무 가까워서 함부로 대하다가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그러나 복수는 고통의 악순환이기에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습니다. >
복수는 때로 우리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숨겼던 마음을 폭발시켜서 건강한 심리 상태로 돌아가도록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즉 나에게 힘들었던 사건이 복수를 함으로써 한 번 더 생겨났다고 생각한다면, 사실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또 다른 괴로움이 탄생하는 것이고요, 내가 복수를 함으로써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고통의 악순환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복수를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래서 내가 가해자에게 복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당한 복수를 또 복수하기 위해서 칼을 갈 것입니다. 복수를 하고 나서도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 되겠죠. 이처럼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악은 또다시 악을 낳습니다. 복수는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필요하지만 부작용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꽤 가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은 복수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실까요? 우리는 어떻게 악에 대해 처신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악인들에 대해서 어떤 모습으로 대처해야 할까요? 레위기 24장입니다. 말씀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레위기 24장 19~20절)
많이 들었던 말씀이죠? 이 말씀을 읽다 보면 ‘아, 하나님께서 원수 갚는 것을 허용하셨구나. 그것도 아주 제대로 갚아주라고 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흐름을 놓고 말씀을 자세히 본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우선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법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법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즉 이 말씀은 사적으로 복수를 해도 된다고 허용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법 제도를 통해서도 동일한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법적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인죄를 지었다고 해서 직접 다가가 그를 죽일 순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 또한 살인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법에 맡겨서 그가 합당한 형벌을 받게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적법한 일이고,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의 말씀을 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법체계를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이 법체계를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약에 개인적으로 보복을 할 수 있거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도 과도한 보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이것을 충분히 증명해 주죠. 그러므로 법을 통해서 저지른 죄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하고, 이에 대한 마땅한 처벌을 함으로써 과도한 보복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억울함은 해소하되, 또다시 억울할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법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악인의 심판을 그분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한 사람의 감정에 근거해서 보복할 수 있도록 열어 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공정하게 판단 받아 악인이 처벌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이 율법의 말씀인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포함해서 신약의 말씀까지 악인을 처벌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에게 맡긴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악인을 직접 처벌하도록 하는 이야기도 많지 않습니다. 도리어 시편 10편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 악인에 대한 처벌을 탄원하고 기도하는 내용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시편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 손을 들어 악인을 벌하여 주십시오. 고난받는 사람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 악하고 못된 자의 팔을 꺾어 주십시오. 그 악함을 샅샅이 살펴 벌하여 주십시오. (시편 10장 12,15절 새번역)
이 말씀 외에도 성경에는 “하나님, 이렇게 벌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기도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 악인들을 놓고 말씀을 드리면서 이 사람들을 벌하여 달라는 탄원의 기도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악인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셨을까요?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마태복음 5장은 이렇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마태복음 5장 38~39절 중)
레위기 24장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인데, “이는 이로 그리고 눈은 눈으로 보상하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가 알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을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여기에는 악인에 대한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 악인을 대적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한마디로 악인에 대해서 관심을 끊으라는 말씀입니다. 악인을 바라보지도 말고, 악인에 대해 생각하지도 말며, 그저 그 문제를 끊어 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도 동일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서 12장 14,17절)
일일이 악에 대하여 맞대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악에 대한 무저항이나 포기가 아닙니다. 사건마다 일일이 맞대응을 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것만큼은 발본색원拔本塞源하겠다. 악의 뿌리를 뽑겠다.’ 마치 내가 심판자가 된 것처럼 결단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유혹입니다. 악한 영이 우리에게 주는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악과 싸우다가 또 다른 악에 접어든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악을 응징하고 정의와 공의를 세운다며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국에는 분을 삼키지 못하고 분노를 분출하고 원수 갚음을 나타내고, 저주와 복수를 키워 내는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을 쳐다보지 말고 대적하지도 말라고 부탁하십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로마서 12장 14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장 21절)
이 말씀이 평범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서 늘 보아 온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세상이 갖지 못한 말씀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추구하지 못한 삶의 방식입니다. 이 말씀은 하늘의 방식이요,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입니다. 어떻게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주님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 성경 속 인물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삶의 방식을 따르며 살아왔습니다. >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어서 8장 1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도행전 8장 1절)
여기서 ‘그’는 스데반입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사울은 박해자였습니다. 그는 한때 악을 행하는 악인이었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였습니다. 만약 그 순간에 스데반이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저주하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저주를 받고 회복의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며 죽어 갑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장 59~60절)
스데반의 용서의 기도는 결국 바울이 있게 만듭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쓸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기다려 주신 하나님께서 또 다른 사역자 바울을 찾아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분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악인을 기다리고 계시고, 살인한 자와 도둑질한 자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 악인들이 주님께로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악인을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
물론 억울한 이들이 있습니다. 스데반과 같은 인물이죠. 복음을 전하던 그가 그토록 참혹하게 죽어 가야 했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지 모릅니다. 열왕기상에는 아합과 이세벨에게 포도원을 빼앗기고 죽음을 당한 나봇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서 우리아를 적진으로 내보내 죽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아, 나봇, 그리고 스데반 모두 피해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피해자들을 어떻게 공의롭게 처리하실지 우리의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분명하게 요청합니다.
그렇다면 “악인에 대해서 관심을 끊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어디로 이어집니까? 우리가 관심을 둘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악인에 대한 관심을 끊고,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관심을 쏟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의 지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언 14장 31절)
우리 주님께서는 산상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악한 자들을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이어서 전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장 39~42절)
주님은 악한 자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고 구하는 자, 꾸고자 하는 자, 가난한 자, 어려운 자, 도움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 관심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 ‘선을 통해 악을 정벌하는 자’ 곧 하나님나라 백성입니다. >
본문 로마서 12장에서 주님은 바울을 통해 동일한 부탁을 하고 계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장 19절)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로마서 12장 20절)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악인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릴 것을 요청하십니다. 심지어 그 이웃이 원수일지라도 먹이고 마시게 하라고 주님께서는 부탁하십니다.
로마서 12장은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시는 주옥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는 말씀 이후에 이어지는 교훈입니다. 하늘나라 백성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삶의 원리요, 원칙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서 악한 자, 박해하는 자, 해를 끼치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 것을 당부하십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복을 빌기를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배고픈 자, 목마른 자, 고통 속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향해 관심을 갖도록 하십니다. 심지어 그들 중에 원수가 있을지라도 그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에 마음을 두기를 권면하십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 사람들이 보이십니까? 악한 사람들이 자꾸 보이시나요? 그래서 ‘저 사람 좀 혼내고 싶다. 바로 세워 주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드시나요? 아니면 불쌍한 사람, 어려운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보이시나요? 오늘 주님께서는 악인들이 보이지 않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고 계십니다.
이것은 악에 대한 방치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악에 대한 포기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악에 대한 무저항을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악에 대한 큰 저항을 말합니다. 악에 대한 보다 큰 전투입니다. 곧 선을 통하여 악을 정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해 주십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장 21절)
신축년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올 한 해 동안 어떤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한 해를 보내시겠습니까?
Do Not Be Overcome By Evil
Romans 12:14-21
“Let’s Take Revenge” is aKorean novel by Bae Sang-min published in 2020. The author won the prize for new writers for this novel. The book’s cover is bright yellow with a man sticking his head in a cake at the bottom.The subtitle of the book, written in white letters against a bright blue background, says, “Imagining the most ordinaryrevenge. Not a brutal one, but one taken in our very brutal lives.” The back cover says, “Astory of a futile, but delightful revenge!”
It is a book about peoplemeeting online for revenge, sharing their stories, and discussing methods of revenge. Their targets include asnobby husband, a cheating fiancé, and friends who bullied them with embarrassing photos.
But not all revenge is satisfying and delightful. Sometimes revenge creates bigger problems.
Recently, some Korean sports stars faced public scorn for being involved in school bullying in their past. Some celebrities, too, have seen their careers collapseafter their past misdeeds were revealed. We have seen what happened to the mayors of Seoul and Busan. In fact, such examples are many.
It is hard to imagine the suffering of the victims who came forward, demanding punishment,after being silent for so long. The injustice and pain would have been great.
Some believe the recent disclosures have, in some ways, a positive effect on society, as perpetrators will be forced to reflect on their past and to be more careful in the future.
Indeed, evil must be exposed and condemned. Only then can we build a better world and a brighter future.
I was a sweet child, but I remember that I was once so angry at my motherthat I carved “REVENGE!” on a tree, promising myself that I would carry it out no matter what. I can’t remember why I was angry, but I do remember making life miserable for my mother for a couple of days. A petty revenge it was.
Who knows? Your wife, husband, daughter, or son may be plotting a revenge against you this very moment!
‘I’m gonna get you for what you did. Get a taste of your own medicine. Then you’ll know.’ This is a vengeful heart.
Sometimes thinking aboutrevengehelps our minds escape. But think about it. Really, is itgood to make someone experience the same excruciating pain as yours? Doesn’titjust create new pain? Doesn’t it start another vicious, vengeful cycle?
Let’s say I took revenge. The moment I do, I will have to live in constant fear because now I will be atarget of revenge.Hence, revenge breeds revenge, and evil creates more evil.Although revenge is, in some respects, a social and psychological necessity, it accompanies many adverse effects.
Then how must we Christians view revenge? What does God say about revenge? How must we react to the evil done to us? How must we treat the evil men who commit evil against us?
First, there is the famous verse from Leviticus: “Anyone who injures their neighbor is to be injured in the same manner: fracture for fracture, eye for eye, tooth for tooth. The one who has inflicted the injury must suffer the same injury.” (Leviticus 24: 19-20)This is the Law that God gave His people. It gives us the impression that God allows revenge against our enemies.
However, a closer look reveals otherwise.
First, these verses are a part of God’s “Law.” In other words, they provide a basis for legal judgment. They do not encourage or allow revenge on the private level.
Our justice system is also the same. A murderer may be put to death according to Korea’s laws. But individuals shall not take matters into their own hands. They must trust the legal system to carry out the punishment. This is the reason that God gave the Israelites the Law.
Furthermore, what is the reason for maintaining and upholding such a system? If individuals were free to take their own revenge, there will be too many revenges. History is proof. Hence, we have the law to judgepeople’s crimes fairly and to determine the appropriate punishment so that we can avoidexcessive revenge and injustice.
God gave us the Law for the same reason. He wanted the evil to be punished according to God’s just laws instead of becoming victims of an individual’s emotional revenge.
In fact, it is hard to find in the Bible—including the Old Testament—verses where God allows an individual to directly punish an evil man. God doesn’t say, “Repay evil for evil. Take revenge and uphold justice.”
Instead, Old Testament figures ask God to punish the wicked in their stead. The psalmist sings in Psalm 10, “Arise, Lord! Lift up your hand, O God.Do not forget the helpless. […] Break the arm of the wicked man;call the evildoer to account for his wickednessthat would not otherwise be found out.”(Psalm 10:12, 15)
And what did Jesus teach us? He said,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Eye for eye, and tooth for tooth.’ But I tell you, do not resist an evil person.” (Matthew 5:38-39)
Our Lord taught the disciples to leave it up to God to punish the evil person. He taught them, “do not resist an evil person.” In short, He is teachingus not to be concerned with evil men. He is saying, “Don’t let them weigh you down.”
Today’s passage from Romans teaches us a similar thing. The Lord says through Paul, “Bless those who persecute you; bless and do not curse. […]Do not repay anyone evil for evil. Be careful to do what is right in the eyes of everyone.” (Romans 12:14, 17)
Our Lord is teaching us to not respond to each and every evil. This does not mean that we should not resist it. It means that we should not counterattack. Sometimes we are just so determined to root out all evil. We resolve to annihilate all evil so it will not rear its ugly head again.
But this is a temptation. A temptation from the evil spirit. We have seen too many people turn into monsters themselves in their fight against evil. They first start out trying to punish evil, to set thigs right, and to uphold justice. However, they later become so consumed by anger and hurt that they lose self-control, become furious, scream, yell, destroy their own souls, and become vengeful.In the name of justice, so many wrongs that fan revenge, hate, and anger happen in this world.
God commands us tosteer our gaze away from evil.
“Bless those who persecute you.”(Romans 12: 14)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Romans 12: 21)
These words of God are simply amazing for they are not the ways of this world, but the ways of heaven. They are kingdom rules.
Let’s read “Bless those who persecute you” from Paul’s perspective. What if we changed these words into “Curse those who persecute you”?
In Acts chapter 7, Stephen is stoned to death. Acts 8:1 says, “And Saul approved of their killing him.” Saul was the persecutor. He was once an evil man. He was a perpetrator of evil.
What would have happened if Stephen had cursed his persecutors? Well, He didn’t. Instead of cursing them, he pleaded with God on their behalf as he was dying: “While they were stoning him, Stephen prayed, ‘Lord Jesus, receive my spirit.’ Then he fell on his knees and cried out, ‘Lord, do not hold this sin against them.’ When he had said this, he fell asleep.” (Acts 7:59-60) Stephen defended his persecutors.
The fruit of this prayer of forgiveness was none other than Paul. God didn’t destroy all the evil men at the scene of Stephen’s death, but continued to write His story by discovering and calling a new servant amongst them, Paul.
This is God’s providence and grace. Even now He desires that the evil return to Him. Therefore, we must leave it up to God when it comes to evil men and persecutors.
Of course, you may feel wronged. Stephen was wronged too, wasn’t he? No one will ever be able to clearly explain why such an innocent man was so cruelly murdered. First Kingsintroduces the story of Naboth, a man who was robbed of his vineyard and murdered by King Ahab and Jezebel. David sent Uriah to the battlefieldto die in order to steal Bathsheba from him. How will God administer justice to such innocent victims as Uriah, Naboth, and Stephen? This we do not know. Our wisdom is too limited. But the Bible clearly tells us that this must all be left to God.
Then what and whom should be our concern? God continuously tells us to care for the weak and the poor. God’s wisdom in Proverbs: “Whoever oppresses the poor shows contempt for their Maker,but whoever is kind to the needy honors God.” (Proverbs 14:31)
When Jesus preached the Beatitudes, He said, “ But I tell you, do not resist an evil person. If anyone slaps you on the right cheek, turn to them the other cheek also.And if anyone wants to sue you and take your shirt, hand over your coat as well.If anyone forces you to go one mile, go with them two miles.Give to the one who asks you, and do not turn away from the one who wants to borrow from you.” (Matthew 5: 39-42)
Our Lord teaches us to stop being concerned with the wicked. Instead, He tells us to care for the poor, the needy, and those who seek our help.
In today’s passage from Romans 12, the Lord asks this of us through Paul: “Do not take revenge, my dear friends, but leave room for God’s wrath, for it is written: ‘It is mine to avenge; I will repay,’ says the Lord.” (Romans 12: 19)
Our Lord’s command continues: “If your enemy is hungry, feed him;if he is thirsty, give him something to drink.In doing this, you will heap burning coals on his head.”(Romans 12:20)
Through Paul, God is telling us to stop being concerned with the wicked and to start focusing on our neighbors in need. Even if that needy neighbor is our enemy, God wants us to feed and help him.
As you may well know, Romans chapter 12 instructs how a Christian born again in the Spirit must live. It includes the principles and rules of a new life, along with this famous verse: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Romans 12:2) Romans 12 teaches us about the life principles of God’s people.
Our Lord asks Christians starting a new life in faith to stop being concerned with evil men or their persecutors. Instead, He asks His people to leave evil men to God and to bless them so thatthe evil may be saved.
God wants His people to be concerned withtheir neighbors in need—the poor, the hungry, the hurting. Even if our enemy is among them, God wants us to serve and care for them.
Yes, it is true. There are all kinds of people around us, and we are living amongst them. There are evil men and weak men. We sometimes get too caught up in the former, trying to punish them and to putall wrongs right.
But our Lord commands us to turn our focus away from the evil and instead concentrate on the weak. This is not turning a blind eye to evil. It is not non-resistance, either. This, in fact, is a stronger resistance to evil, our battle against it.
It means to punish evil with good. That is why our Lord says,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Romans 12: 21)
2021 has begun. Who will you focus on this year?
로마서 12: 14 ~ 21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 복수는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
2020년 출간된 문학 작품 중에서 『복수를 합시다』라는 특이한 제목의 장편 소설이 있습니다.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배상민 작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황토색 표지 안에는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 한쪽에는 문이 있고 맞은편에는 한 사람이 케이크에 머리를 처박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복수를 당한 것 같은 모습입니다. 책 하단에는 파란색 띠지가 있는데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가장 보통의 복수를 상상하다.” 이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복수를 하려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모이는 내용인데요. 모여서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복수를 도와주는 내용이 전개됩니다. 생색내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보기 좋게 복수하고, 친구와 바람을 피운 약혼녀를 보기 좋게 복수합니다. 과거 사진을 가지고 협박하는 친구를 멋지게 복수하는 장면들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모든 복수가 시원하게 전개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그것 때문에 덫에 걸려서 어려움에 빠지는 이야기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뒷장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쓰디쓴 농담처럼 공허하지만 통쾌한 복수의 맛”
두 가지 단어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통쾌’라고 하는 단어와 ‘공허’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두 단어가 ‘복수’라는 단어에 잘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통 복수를 하면 처음에는 통쾌함이 있죠. 그런데 통쾌함은 잠시, 이내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복수의 속성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에 운동선수들이 과거에 행한 학교 폭력이 이슈가 되면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을 맞고 있는 것을 봅니다. 연예인들 중에도 비슷한 일들이 꽤 있었고요. 인기가 올라갈 상황이 되었을 때, 지나간 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오면서 도리어 인생이 망하게 되는 사람들을 종종 보기도 합니다. 지금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서울 시장이 그랬고, 부산 시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슷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을 알리고 밝히는 사람들이야말로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겠습니까? 그동안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습니까?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고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이제야 그에게 나타나서 처벌을 원하는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피해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로 억울하고 힘든 시간이 계속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이러한 흐름을 보면서 ‘보다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는 하나의 신호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몸가짐을 다시 주의하게 되는, 그래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악은 드러나야 하고 정죄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 보다 자신의 삶을 주의해서 살게 될 것이고, 보다 나은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복수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하나의 상황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가기 전 같기도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굉장히 야단을 맞았는지 아니면 제가 하려던 것을 어머니께서 막으셨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무 아래에 가서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결심했던 것만큼은 생각납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어머님께 말도 잘 안 듣고, 한동안 못되게 굴었던 기억이 아주 조심스럽게 납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지금 복수의 마음을 갖고 있을지, 여러분의 남편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질 때가 참 많습니다. 너무 가까워서 함부로 대하다가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그러나 복수는 고통의 악순환이기에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습니다. >
복수는 때로 우리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숨겼던 마음을 폭발시켜서 건강한 심리 상태로 돌아가도록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즉 나에게 힘들었던 사건이 복수를 함으로써 한 번 더 생겨났다고 생각한다면, 사실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또 다른 괴로움이 탄생하는 것이고요, 내가 복수를 함으로써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고통의 악순환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복수를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래서 내가 가해자에게 복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당한 복수를 또 복수하기 위해서 칼을 갈 것입니다. 복수를 하고 나서도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 되겠죠. 이처럼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악은 또다시 악을 낳습니다. 복수는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필요하지만 부작용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꽤 가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은 복수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실까요? 우리는 어떻게 악에 대해 처신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악인들에 대해서 어떤 모습으로 대처해야 할까요? 레위기 24장입니다. 말씀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레위기 24장 19~20절)
많이 들었던 말씀이죠? 이 말씀을 읽다 보면 ‘아, 하나님께서 원수 갚는 것을 허용하셨구나. 그것도 아주 제대로 갚아주라고 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흐름을 놓고 말씀을 자세히 본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우선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법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법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즉 이 말씀은 사적으로 복수를 해도 된다고 허용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법 제도를 통해서도 동일한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법적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인죄를 지었다고 해서 직접 다가가 그를 죽일 순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 또한 살인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법에 맡겨서 그가 합당한 형벌을 받게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적법한 일이고,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의 말씀을 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법체계를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이 법체계를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약에 개인적으로 보복을 할 수 있거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도 과도한 보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이것을 충분히 증명해 주죠. 그러므로 법을 통해서 저지른 죄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하고, 이에 대한 마땅한 처벌을 함으로써 과도한 보복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억울함은 해소하되, 또다시 억울할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법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악인의 심판을 그분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한 사람의 감정에 근거해서 보복할 수 있도록 열어 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공정하게 판단 받아 악인이 처벌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이 율법의 말씀인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포함해서 신약의 말씀까지 악인을 처벌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에게 맡긴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악인을 직접 처벌하도록 하는 이야기도 많지 않습니다. 도리어 시편 10편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 악인에 대한 처벌을 탄원하고 기도하는 내용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시편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 손을 들어 악인을 벌하여 주십시오. 고난받는 사람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 악하고 못된 자의 팔을 꺾어 주십시오. 그 악함을 샅샅이 살펴 벌하여 주십시오. (시편 10장 12,15절 새번역)
이 말씀 외에도 성경에는 “하나님, 이렇게 벌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기도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 악인들을 놓고 말씀을 드리면서 이 사람들을 벌하여 달라는 탄원의 기도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악인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셨을까요?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마태복음 5장은 이렇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마태복음 5장 38~39절 중)
레위기 24장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인데, “이는 이로 그리고 눈은 눈으로 보상하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가 알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을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여기에는 악인에 대한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 악인을 대적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한마디로 악인에 대해서 관심을 끊으라는 말씀입니다. 악인을 바라보지도 말고, 악인에 대해 생각하지도 말며, 그저 그 문제를 끊어 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도 동일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서 12장 14,17절)
일일이 악에 대하여 맞대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악에 대한 무저항이나 포기가 아닙니다. 사건마다 일일이 맞대응을 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것만큼은 발본색원拔本塞源하겠다. 악의 뿌리를 뽑겠다.’ 마치 내가 심판자가 된 것처럼 결단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유혹입니다. 악한 영이 우리에게 주는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악과 싸우다가 또 다른 악에 접어든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악을 응징하고 정의와 공의를 세운다며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국에는 분을 삼키지 못하고 분노를 분출하고 원수 갚음을 나타내고, 저주와 복수를 키워 내는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을 쳐다보지 말고 대적하지도 말라고 부탁하십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로마서 12장 14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장 21절)
이 말씀이 평범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서 늘 보아 온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세상이 갖지 못한 말씀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추구하지 못한 삶의 방식입니다. 이 말씀은 하늘의 방식이요,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입니다. 어떻게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주님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 성경 속 인물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삶의 방식을 따르며 살아왔습니다. >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어서 8장 1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도행전 8장 1절)
여기서 ‘그’는 스데반입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사울은 박해자였습니다. 그는 한때 악을 행하는 악인이었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였습니다. 만약 그 순간에 스데반이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저주하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저주를 받고 회복의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며 죽어 갑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장 59~60절)
스데반의 용서의 기도는 결국 바울이 있게 만듭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쓸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기다려 주신 하나님께서 또 다른 사역자 바울을 찾아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분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악인을 기다리고 계시고, 살인한 자와 도둑질한 자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 악인들이 주님께로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악인을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
물론 억울한 이들이 있습니다. 스데반과 같은 인물이죠. 복음을 전하던 그가 그토록 참혹하게 죽어 가야 했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지 모릅니다. 열왕기상에는 아합과 이세벨에게 포도원을 빼앗기고 죽음을 당한 나봇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서 우리아를 적진으로 내보내 죽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아, 나봇, 그리고 스데반 모두 피해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피해자들을 어떻게 공의롭게 처리하실지 우리의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분명하게 요청합니다.
그렇다면 “악인에 대해서 관심을 끊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어디로 이어집니까? 우리가 관심을 둘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악인에 대한 관심을 끊고,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관심을 쏟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의 지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언 14장 31절)
우리 주님께서는 산상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악한 자들을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이어서 전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장 39~42절)
주님은 악한 자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고 구하는 자, 꾸고자 하는 자, 가난한 자, 어려운 자, 도움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 관심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 ‘선을 통해 악을 정벌하는 자’ 곧 하나님나라 백성입니다. >
본문 로마서 12장에서 주님은 바울을 통해 동일한 부탁을 하고 계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장 19절)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로마서 12장 20절)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악인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릴 것을 요청하십니다. 심지어 그 이웃이 원수일지라도 먹이고 마시게 하라고 주님께서는 부탁하십니다.
로마서 12장은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시는 주옥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는 말씀 이후에 이어지는 교훈입니다. 하늘나라 백성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삶의 원리요, 원칙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서 악한 자, 박해하는 자, 해를 끼치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 것을 당부하십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복을 빌기를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배고픈 자, 목마른 자, 고통 속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향해 관심을 갖도록 하십니다. 심지어 그들 중에 원수가 있을지라도 그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에 마음을 두기를 권면하십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 사람들이 보이십니까? 악한 사람들이 자꾸 보이시나요? 그래서 ‘저 사람 좀 혼내고 싶다. 바로 세워 주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드시나요? 아니면 불쌍한 사람, 어려운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보이시나요? 오늘 주님께서는 악인들이 보이지 않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고 계십니다.
이것은 악에 대한 방치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악에 대한 포기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악에 대한 무저항을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악에 대한 큰 저항을 말합니다. 악에 대한 보다 큰 전투입니다. 곧 선을 통하여 악을 정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해 주십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장 21절)
신축년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올 한 해 동안 어떤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한 해를 보내시겠습니까?
2021년 2월 14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악에게 지지 말라” (롬 12:14~21)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515장, 45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롬 12:14~21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2월 14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복수는 통쾌함과 공허함의 감정을 동시에 갖도록 합니다. 악은 악으로 드러나야 하고 정죄되는 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수한다는 것은 내가 당하면서 그렇게 힘들고 괴로웠던 일을 다른 사람이 당하도록 괴로움을 낳고, 또 다른 복수의 마음을 탄생케 하는 악순환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들은 복수에 대해서, 우리에게 자행 된 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해야 할까요?
설교의 요약
하나님께서 보복에 관한 율법을 주신 이유를 보면 한 개인의 감정에 근거한 보복이 아닌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공정하게 판단하여 악인을 처벌토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사람들은 악을 보면서 하나님께 악에 대한 심판을 탄원하고 맡겼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악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고, 그들을 대적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는 악인들에 대한 복수와 관심에 매여 있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말씀합니다. “일일이 악에 맞대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과 싸우다가 그로 인한 분노가 가득하여 분을 삼키지 못하고, 영혼은 메말라 가며 결국 더 악에 받쳐 저주와 복수를 키우는 그런 악순환에 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희는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의 방식이고,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도 한 때 박해자였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그 순간 스데반이 박해하는 자들을 저주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데반의 용서의 기도가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이고 은혜입니다. 우리가 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주님은 믿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악한 자, 박해하는 자들에 관심을 내려놓고 도리어 고통 속에 있는 자들에게 관심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그들 중에 원수가 있을지라도 그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에 우리 마음을 둘 것을 요청하십니다.
우리 주위에 악한 자들이 있고, 약한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을 악한 자들에게 두지 말고, 약한 자들에게 둘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악함을 방치하는 것도 아니고, 무저항도 아닙니다. 악에 대한 보다 큰 저항이며 전투입니다. 선을 통하여 이루는 악의 정벌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어떤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올 한 해를 사시겠습니까?
나누기
1. 악인에 대한 복수심과 그로 인한 분노와 괴로운 심정을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2. 오늘 나의 관심과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나요? 악한 자들을 향한 앙갚음인가요? 아니면 약한 자들을 향한 관심과 필요인가요?
마무리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우리가 용서하여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주의 품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하나님 마음을 알게 하시고, 원수 갚음이 주님께 있음을 아오니 오직 우리에게 맡기신 약한 자들을 돌보는 일에 우리의 시선과 삶을 드리는 결단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