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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말라

시편 73:1~9, 16~17

김경진 목사

2024.06.16

<악인의 형통 앞에서 신앙인은 질문을 가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선하게 살려고 애쓰던 한 신앙인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깨달음을 잘 보여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는 그가 자칫 하나님께 실망하여서 시험에 들 뻔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시 73:1~2, 새번역)

 

그는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시고 선을 베푸신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왔지만, 그 믿음을 잃어버릴 뻔했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악인을 보면서 도리어 부러워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시 73:3)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는 신앙인이 악인들이 누리고 있는 평안을 보고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에 대하여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이어서 그가 느낀 악인들의 형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오만은 그들의 목걸이요, 폭력은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며, 마음에는 헛된 상상이 가득하며,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시 73:4~9, 새번역)

 

이렇듯 악한 사람들에게 왜 재앙이 속히 내리지 않을까.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보니 도리어 심지어는 더 잘 되어 가는 것만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시편 73:12, 새번역)

 

그러다 보니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악한 이들의 형통을 보면서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부자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되뇌면서 실망한 어조로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지 못하시는가 보다.’라고 한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시 73:10~11, 새번역)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을 신앙인들이 그대로 받아서 마치 물을 들이켜듯이 똑같이 되뇌고 있습니다. 정말 무신론적 발언들이 신앙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고 토로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러한 악한 사람들을 그대로 놓아두시는가? 왜 그들을 심판하지 아니하시는가? 시편의 기도자는 이 문제를 놓고 깊은 씨름을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문제이죠. 특별히 신앙인으로 악의 본성은 이해하기 어렵고 또 받아들이기 힘든 주제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한 지혜자는 전도서에서 이러한 현상을 이렇게 묘사한 바 있습니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전 8:11)

 

악을 행하는 데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과연 이렇듯 많은 악인들이 설치고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즉각적으로 하나님께서 악이 시행될 때마다 반응하시고 징벌을 내리신다면 무엇인가 이 세상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보게 됩니다. 기도자는 악인들이 속히 심판을 받지 않고 도리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이러한 신앙에 든 회의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시 73:13, 새번역)

 

“악인들이 저렇게 형통한데 나는 왜 바보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살려고 애써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 당위성이 무엇인가? 내가 선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그는 날마다 괴로웠다고 토로합니다.

 

하나님, 주님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시 73:14, 새번역)

 

그러면서도 ‘자신도 차라리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떨까?’라고 고민합니다. 때로는 유혹도 꽤나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렇게 토로합니다.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배신하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시 73:15, 새번역)

 

속에서 여러 번 ‘나도 그들과 똑같이 타협하며 살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악인들처럼 사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 아닐까?’ 불쑥불쑥 올라오는 생각을 다시 다잡곤 했다는 말씀이죠.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저렇게 잘되기만 한다면 누가 선하게 살려고 하겠습니까? 누가 착하게 살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과 제 마음대로 악을 행하며 사는 사람이 차이가 전혀 없다면, 아니 도리어 악인들이 더 승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면 누가 어렵게 하나님을 따르는 길을 가려고 하겠습니까? 사람으로서 당연한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악인들의 운명은 결국 하나님 앞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마 비슷한 경험을 참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정말 악한데 어떻게 아직도 잘살고 있을까? 저렇게도 나쁜 짓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발각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올라올 때가 참 많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상황들을 보시면서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십니까? 신앙인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기도자는 고백합니다.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시 73:16, 새번역)

 

여러분은 이 문제의 해답을 알고 계십니까? 아마 많은 분이 이 고민을 한두 번 이상 해 보셨을 텐데, 결국 결론은 ‘참 어렵다. 이것은 내 영역이 아닌가 보다.’ 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기도자는 이 문제를 놓고 깊이 씨름하고 기도하던 중에 한 가지 실마리를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 73:17, 새번역)

 

“내가 생각하고 판단할 때는 그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악인들의 형통함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면하고 보니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난해한 문제의 해답을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야 드디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해답의 첫 번째는 “이 악한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서 마지막을 맞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확인하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들이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고, 공포에 떨면서 자취를 감추며, 마침내 끝장을 맞이합니다.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님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시 73:18~20, 새번역)

 

‘하나님이 일어나시면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라는 확신이 하나님 앞에서 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그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합니다. 비록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고 정리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때, 심판의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을 성소에서 굳게 붙잡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모두 이 땅에서 번성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되는 모습들만 바라보면서 시기하거나 불평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착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고민을 토로한 시편 37편의 기도자는 악인의 실패를 얼마든지 이 땅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시 37:1~2, 새번역)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기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언뜻 보면 잘나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도자는 이렇게 다시 고백합니다.

 

악인들이 뿌리째 뽑히는 모습을 네가 보게 될 것이다. 악인의 큰 세력을 내가 보니, 본고장에서 자란 나무가 그 무성한 잎을 뽐내듯 하지만, 한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흔적조차 사라져, 아무리 찾아도 그 모습 찾아볼 길 없더라. (시 37:34b-36, 새변역)

 

‘이것이 악인들의 운명이다.’라는 기도자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즘 새벽 기도 본문으로 베드로후서에서 초대교회에 나타난 거짓 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함께 읽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급히 재림하신 후에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이 점점 지연되자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없으니 예수님의 심판도 없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이 초대교회에 많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혼란을 겪고 있었던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강하게 권면하죠.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면서, 여러분을 조롱하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어디 갔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 때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냥 그대로다.” (벧후 3:3~4, 새번역)

 

조롱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언제 오시느냐. 또 심판이 있다고 하는데 언제 심판이 있느냐. 만물은 그대로 지금까지 존속되고 아무런 변화도 없지 않느냐.”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은 없으니 마음껏 즐기며 살라고 말하는 거짓 교사들에게 성경 속에 나타났던 수많은 하나님의 심판의 사례들을 열거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오랜 옛날부터 있었고,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말미암아 형성되었다는 것과, 또 물로 그 때 세계가 홍수에 잠겨 망하여 버렸다는 사실을, 그들이 일부러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있는 하늘과 땅도 불사르기 위하여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경건하지 못한 자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할 날까지 유지됩니다. (벧후 3:5~7, 새번역)

 

노아 시대에 홍수의 심판이 있었던 사건과 소돔과 고모라성이 완전히 멸망했던 사건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셨다고?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물로 온 인류를 심판하신 적이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멸망시키셨던 적도 있었다. 끊임없이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라는 말씀으로 베드로가 거짓 교사들에게 대응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고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 (벧후 3:8,10, 새번역)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게 느껴져서 우리가 조급하게 느껴질 뿐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짧은 시간 안에서 모든 정의와 심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더 길고 영원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우리가 판단할 수 없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죠.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벧후 3:9, 새번역)

 

한 사람의 악인이라도 찾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아직도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악인들이 여전히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은혜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심판 앞에 놓일 수 있습니다.>

 

다시 이와 같은 관점을 뒤로하고 시편 73편으로 돌아가서 기도자가 성서에 들어갈 때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씀에 보다 더 깊은 뜻을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악인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말씀을 읽게 되면 이 의미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나를 향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됩니다.

기도자는 악인의 형통을 분개하면서 성소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악인들이 저렇게 형통할 수 있을까?’라는 억울한 마음과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성소로 들어간 기도자는 하나님 앞에 서자 나 역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리고 악으로 가득 찬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악인의 종말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모든 악한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는 확실한 신앙이 새겨지던 순간, 그 심판의 자리에 나도 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소에 들어가서 한 가지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미련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당신 앞에서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아 당신께서 나의 오른손을 잡아주셨사오니, 나를 타일러 이끌어주시고 마침내 당신 영광에로 받아들여 주소서. (시 73:22~24, 공동번역개정판)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분개하고 안타까워하던 기도자는 도리어 자기 자신이 악인이며 한 마리 짐승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저런 악한 사람들을 그냥 두십니까?’라고 화를 내듯 하나님 앞에 섰던 그 사람은 자신이 짐승과 같은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죠. 그리고 나도, 내가 비난하는 사람도 악한 존재이지만 한 가지 자신에게 있는 은혜가 있다면, “나는 주님 옆에 있어서 주님께서 나의 손을 잡아 주셨을 뿐이다. 내가 은혜를 입었을 뿐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시편 73편 마지막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을 떠난 자 망하리니, 당신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 멸하시리이다. (시 73:27, 공동번역개정판)

 

‘왜 악한 자가 심판을 받지 않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했던 그의 질문은 ‘악한 자가 멸망할 것이다.’라는 대답이 아닌 ‘하나님을 떠난 자가 멸망할 것이다.’라는 해답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고백의 마지막은 악인과 선인의 구별이나 ‘왜 악인은 형통한가’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누가 더 가까이 있는가?’, ‘하나님께 누가 나갈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해답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마지막에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 (시 73:28, 새번역)

 

그렇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왜 악한 이들이 저렇게 형통하는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억울하다.’라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성소 안에 들어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나 자신 또한 참으로 혐오스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나의 손을 잡아 주셨기에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일 뿐입니다.

 

<악에 기울지 말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주님만을 찾아야 합니다.>

 

자, 다시 악인의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잠 24:1)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였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그리고 그 악인들을 따라다니지도 말아라. 악인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라는 말씀이죠. 그리고 악인들을 보면서 분노하거나 분개하지도 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잠 24:19)

 

악인이 형통하는 모습, 악인이 잘나가는 모습 보면서 “야, 참 부럽다. 어떻게 저렇게 잘 나가나.” 부러워하고 따라갈까 하는 마음이 들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악인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화를 내며 하나님께 항의하듯이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잠언 24장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잠 24:20)

 

마지막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악인들은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에서 이미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악인들을 보면서 분개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뿌리가 잘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곧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잠 24:17)

 

원수가 넘어지고 악인이 잘못될 때, 악을 행하던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다고 여겨질 때, “참 잘 됐다.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이 살아 계시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잠 24:18)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지요. 아이에게 매를 들었는데 부모의 마음이 기쁠 리가 있겠습니까? 형제가 매를 맞는다고 다른 형제가 웃고 있고 즐거워한다면 엄마의 마음이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하다는 말씀이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매를 맞고 있지 않아도 나 또한 언제든 매를 맞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만큼의 죄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매가 나에게 올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집니다. 시편 37편 7절로 10절 말씀입니다.

 

잠잠히 주님을 바라고, 주님만을 애타게 찾아라.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하다고 자랑하는 자들과, 악한 계획도 언제나 이룰 수 있다는 자들 때문에 마음 상해 하지 말아라. 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악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진실로 악한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말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아라. 악인은 멸망하고야 만다. 아무리 그 있던 자취를 찾아보아도 그는 이미 없을 것이다. (시 37:7~10, 새번역)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잠잠히 주를 바라고. 주님만을 애타게 찾아라. 악인에게 신경 쓰지 말아라. 악인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악인을 보면서 분개하지도 말고, 악인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서 좋아하지도 말아라. 악인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꺾어 버리고 하나님만을 찾아라. 나를 돌아보아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시편 37편 3절로 6절 말씀입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너의 의를 빛과 같이, 너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다. (시 37:3~6, 새번역)

 

이 말씀을 로마서 12장 말씀은 이렇게 다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롬 12:17~21, 새번역)

 

마지막 말씀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Do Not Envy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Psalm 73:1-9, 16-17

 

 

Today’s Scripture well reveals the painful experience and realization of a man of faith who strives to live a good life. He confesses that he almost slipped because of hisdisappointment in God:

 

“A psalm of Asaph. Surely God is good to Israel, to those who are pure in heart.But as for me, my feet had almost slipped; I had nearly lost my foothold.”(Psalm 73:1-2)

 

The psalmist confesses that although he had lived with the faith that God blesses and is good to those who are honest and pure in heart, he almost lost that faith.

 

Why? It is because he found himself envying the wicked:

 

“For I envied the arrogant when I saw the prosperity of the wicked.”(Psalm 73:3)

 

This man of faith who ought to hate evil and love good found himself having doubts about his faith as he saw the wicked live peacefully. He goes on to describehow the wicked prosper:

 

“They have no struggles; their bodies are healthy and strong.They are free from the burdens common to man; they are not plagued by human ills.Therefore pride is their necklace; they clothe themselves with violence.From their callous hearts comes iniquity; the evil conceits of their minds know no limits.They scoff, and speak with malice; in their arrogance they threaten oppression.Their mouths lay claim to heaven, and their tongues take possession of the earth.”(Psalm73:4-9)

 

Why doesn’t disaster quickly strike the arrogant, the scoffers, those who speak with malice, those who scoff heaven, and the violent? The psalmist observes that disaster never seems to strike the wicked:

 

“This is what the wicked are like– always carefree, they increase in wealth.”(Psalm 73:12)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tests the faithful. The latter sigh indisappointment, ‘God does not see…’

 

“Therefore their people turn to them and drink up waters in abundance.They say, ‘How can God know? Does the Most High have knowledge?’”(Psalm 73:10-11)

 

Why doesn’t God do anything about these evil people? Why doesn’t He judge them? These questions plague the psalmist. As he has already confessed, he almost slippedbecause of them.

 

The Teacher in Ecclesiastes describes this as such:

 

“When the sentence for a crime is not quickly carried out, the hearts of the people are filled with schemes to do wrong.”(Ecclesiastes 8:11)

 

The psalmist of Psalm 73 is shaken when he sees that the sentence for the wicked is delayed and they continue to succeed. He becomes skeptical about keeping his faith:

 

“Surely in vain have I kept my heart pure; in vain have I washed my hands in innocence.”(Psalm 73:13)

 

Why must I strive to keep my heart pure like a fool when the wicked have it so good? This problem torments the psalmist day after day:

 

“All day long I have been plagued; I have been punished every morning.”(Psalm 73:14)

 

He confesses he felt tempted to live like the wicked:

 

“If I had said, ‘I will speak thus,’ I would have betrayed your children.”(Psalm 73:15)

 

Yes. If the wicked are so successful in this world, who would strive to live a blameless life? Who wouldwant to live a good life? If there was no difference between the life of the godly and that of the ungodly, who would strive to keep the word of God? What a conundrum.

 

In fact, as we live our lives, we all have an opinion of some sort about this matter. What do you think about such phenomena, such life experiences? As Christians, what is your take on them?

 

The psalmist of Psalm 73 confesses:

 

“When I tried to understand all this, it was oppressive to me”(Psalm 73:16)

 

Yet in the midst of all his thoughts, he finds a clue to the answer. He confesses:

 

“till I entered the sanctuary of God; then I understood their final destiny.”(Psalm 73:17)

 

He finds the answer to this conundrum in the sanctuary, before God. He says he became confident that the wicked will surely face the end:

 

“Surely you place them on slippery ground; you cast them down to ruin.How suddenly are they destroyed, completely swept away by terrors!As a dream when one awakes, so when you arise, O Lord, you will despise them as fantasies.”(Psalm 73:18-20)

 

In thesanctuary of God, the psalmist becomes confident of God’s judgement. Although it may seem slow in coming, God will surely judge and destroy the wicked. He has come to believe this.

 

In the sanctuary of God,his faith that God’s judgement will surely come at His appointed time is cemented. How true this is. Although the wicked seem to prosper and lead a comfortable life in this world, the truth is far from it. They appear to prosper because people only see the successful aspects of their lives. In short, an optical illusion is at play.

 

This is why Psalm 37, which deals with a similar problem as that of Psalm 73, sings that the failures of the wicked are visible in this world:

 

“Do not fret because of evil men or be envious of those who do wrong;for like the grass they will soon wither, like green plants they will soon die away.”(Psalm 37:1-2)

 

Although at first glance it appears that the wicked are successful, the truth is far from it. The psalmist of Psalm 37states:

 

“[…] when the wicked are cut off, you will see it.I have seen a wicked and ruthless man flourishing like a green tree in its native soil,but he soon passed away and was no more; though I looked for him, he could not be found.”(Psalm 37:34b-36)

 

These mornings we are reading 2 Peter in our early morning prayer services. This book talks about the false teachers that appeared in the Early Church. They seemed to havetaught, among other things, that Christ will not come again, and, therefore, there will be no judgement. When the Second Coming of Christ did not come at the time Early Christians expected it to and was delayed, they were tempted by false teachers who claimedthere will be no Second Coming or judgment. To such confused Christians, Peter teaches:

 

“First of all, you must understand that in the last days scoffers will come, scoffing and following their own evil desires.They will say, ‘Where is this ‘coming’ he promised? Ever since our fathers died, everything goes on as it has since the beginning of creation.’But they deliberately forget that long ago by God’s word the heavens existed and the earth was formed out of water and by water.By these waters also the world of that time was deluged and destroyed.By the same word the present heavens and earth are reserved for fire, being kept for the day of judgment and destruction of ungodly men.”(2 Peter 3:3-7)

 

To the false teachers who denied the Second Coming andthe judgement, teaching people to live as they wish, Peter is saying, “Remember that God judged the world with theGreat Flood in Noah’s time. Remember that He judged Sodom and Gomorrah.” That same God, the One who carried out all these judgements, stands ready even now to judge the present heavens and earths with fire.

 

But there is a reason that judgment seems slow. Peter says:

 

“But do not forget this one thing, dear friends: With the Lord a day is like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re like a day.Bu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like a thief. The heavens will disappear with a roar; the elements will be destroyed by fire, and the earth and everything in it will be laid bare.”(2 Peter 3:8, 10)

 

We cannot judge God’s time with our human concept of time. Therefore, even though God seems slow to judge, He will surely condemn the wicked and establish justice.

 

There is also another reason why God’s judgement of the wicked seems slow. Peter adds: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2 Peter 3:9)

 

God wants to find and save at least one more soul. It is critical that we understand this.

 

Let’s return to Psalm 73, our Scripture for today, and meditate on the psalmist’s words that he found understanding as he entered the sanctuary of God. If we revisit them with the knowledge that God wants even the wicked to return to Him, we will realize that they are God’s message to us.

 

The psalmist, angry that the wicked have it so good in this world, enters the sanctuary only to find that he himself is a sinner, a wicked man before God. The moment he realizes the wicked will meet the end, it dawns on him that he will face it too. He realizes that he too will be subject to judgment.

 

Therefore, he confesses to God:

 

“I was senseless and ignorant; I was a brute beast before you.Yet I am always with you; you hold me by my right hand.You guide me with your counsel, and afterward you will take me into glory.”(Psalm 73:22-24)

 

The psalmist, who was furious and frustratedat first about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now sees that he had been a brute beast. He realizes that the only thing setting him apart from the wicked is not that he is any less wicked or any better than them, but that he has not abandoned God and God has not let go of him—that is, he is under God’s grace.

 

Consequently, he sings at the end of the psalm:

 

“Those who are far from you will perish; you destroy all who are unfaithful to you.”(Psalm 73:27)

 

The last part of his poem is not about the good and the wicked; it evolves into a confession about man’srelationship with God:

 

“But as for me, it is good to be near God. I have made the Sovereign LORD my refuge; I will tell of all your deeds.”(Psalm 73:28)

 

Now let’s return to the matter of the prosperity ofthe wicked.

 

“Do not envy wicked men, do not desire their company;”(Proverbs 24:1)

 

Proverbs 24 tells us not to envy the wicked when they prosper; neither should we follow them. At the same time, it teaches us not to be frustrated about their success:

 

“Do not fret because of evil men or be envious of the wicked,”(Proverbs 24:19)

 

Why should we not fret?

 

“for the evil man has no future hope, and the lamp of the wicked will be snuffed out.”(Proverbs 24:20)

 

The Bible says there is no hope for the wicked. They will eventually be snuffed out. They will stand before the judgment. Our Lord also says:

 

“Do not gloat when your enemy falls; when he stumbles, do not let your heart rejoice,”(Proverbs 24:17)

 

God also teaches us not to rejoice when our enemies, the wicked, fall and are punished. Why?

 

“or the LORD will see and disapprove and turn his wrath away from him.”(Proverbs 24:18)

 

It is because not only is God displeased with our such behavior, but His wrath intended for the wicked may fall on us instead. The reason God does not condemn us is because of His patience—not because we are good or whole.

 

Therefore, it is clear what we must do: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dwell in the land and enjoy safe pasture.Delight yourself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do this:He will make your righteousness shine like the dawn, the justice of your cause like the noonday sun.”(Psalm 37:3-6)

 

“Be still before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do not fret when men succeed in their ways, when they carry out their wicked schemes.Refrain from anger and turn from wrath; do not fret–it leads only to evil.For evil men will be cut off, but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inherit the land.A little while, and the wicked will be no more; though you look for them, they will not be found.”(Psalm 37:7-10)

 

Let’s take these words of God to heart, as we reread them in the words of Paul in Romans of the New Testament:

 

“Do not repay anyone evil for evil. Be careful to do what is right in the eyes of everybody.If it is possible, as far as it depends on you, live at peace with everyone.Do not take revenge, my friends, but leave room for God’s wrath, for it is written: ‘It is mine to avenge; I will repay,’says the Lord.On the contrary: ‘If your enemy is hungry, feed him; if he is thirsty, give him something to drink. In doing this, you will heap burning coals on his head.’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Romans 12:17-21)

 

Yes. Even when it appears that evil prevails and the wicked are successful, don’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it with good. This is God’s command and teaching to us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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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3:1~9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편 73:16~17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악인의 형통 앞에서 신앙인은 질문을 가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선하게 살려고 애쓰던 한 신앙인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깨달음을 잘 보여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는 그가 자칫 하나님께 실망하여서 시험에 들 뻔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시 73:1~2, 새번역)

 

그는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시고 선을 베푸신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왔지만, 그 믿음을 잃어버릴 뻔했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악인을 보면서 도리어 부러워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시 73:3)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는 신앙인이 악인들이 누리고 있는 평안을 보고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에 대하여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이어서 그가 느낀 악인들의 형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오만은 그들의 목걸이요, 폭력은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며, 마음에는 헛된 상상이 가득하며,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시 73:4~9, 새번역)

 

이렇듯 악한 사람들에게 왜 재앙이 속히 내리지 않을까.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보니 도리어 심지어는 더 잘 되어 가는 것만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시편 73:12, 새번역)

 

그러다 보니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악한 이들의 형통을 보면서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부자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되뇌면서 실망한 어조로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지 못하시는가 보다.’라고 한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시 73:10~11, 새번역)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을 신앙인들이 그대로 받아서 마치 물을 들이켜듯이 똑같이 되뇌고 있습니다. 정말 무신론적 발언들이 신앙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고 토로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러한 악한 사람들을 그대로 놓아두시는가? 왜 그들을 심판하지 아니하시는가? 시편의 기도자는 이 문제를 놓고 깊은 씨름을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문제이죠. 특별히 신앙인으로 악의 본성은 이해하기 어렵고 또 받아들이기 힘든 주제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한 지혜자는 전도서에서 이러한 현상을 이렇게 묘사한 바 있습니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전 8:11)

 

악을 행하는 데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과연 이렇듯 많은 악인들이 설치고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즉각적으로 하나님께서 악이 시행될 때마다 반응하시고 징벌을 내리신다면 무엇인가 이 세상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보게 됩니다. 기도자는 악인들이 속히 심판을 받지 않고 도리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이러한 신앙에 든 회의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시 73:13, 새번역)

 

“악인들이 저렇게 형통한데 나는 왜 바보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살려고 애써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 당위성이 무엇인가? 내가 선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그는 날마다 괴로웠다고 토로합니다.

 

하나님, 주님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시 73:14, 새번역)

 

그러면서도 ‘자신도 차라리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떨까?’라고 고민합니다. 때로는 유혹도 꽤나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렇게 토로합니다.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배신하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시 73:15, 새번역)

 

속에서 여러 번 ‘나도 그들과 똑같이 타협하며 살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악인들처럼 사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 아닐까?’ 불쑥불쑥 올라오는 생각을 다시 다잡곤 했다는 말씀이죠.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저렇게 잘되기만 한다면 누가 선하게 살려고 하겠습니까? 누가 착하게 살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과 제 마음대로 악을 행하며 사는 사람이 차이가 전혀 없다면, 아니 도리어 악인들이 더 승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면 누가 어렵게 하나님을 따르는 길을 가려고 하겠습니까? 사람으로서 당연한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악인들의 운명은 결국 하나님 앞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마 비슷한 경험을 참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정말 악한데 어떻게 아직도 잘살고 있을까? 저렇게도 나쁜 짓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발각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올라올 때가 참 많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상황들을 보시면서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십니까? 신앙인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기도자는 고백합니다.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시 73:16, 새번역)

 

여러분은 이 문제의 해답을 알고 계십니까? 아마 많은 분이 이 고민을 한두 번 이상 해 보셨을 텐데, 결국 결론은 ‘참 어렵다. 이것은 내 영역이 아닌가 보다.’ 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기도자는 이 문제를 놓고 깊이 씨름하고 기도하던 중에 한 가지 실마리를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 73:17, 새번역)

 

“내가 생각하고 판단할 때는 그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악인들의 형통함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면하고 보니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난해한 문제의 해답을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야 드디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해답의 첫 번째는 “이 악한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서 마지막을 맞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확인하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들이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고, 공포에 떨면서 자취를 감추며, 마침내 끝장을 맞이합니다.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님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시 73:18~20, 새번역)

 

‘하나님이 일어나시면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라는 확신이 하나님 앞에서 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그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합니다. 비록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고 정리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때, 심판의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을 성소에서 굳게 붙잡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모두 이 땅에서 번성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되는 모습들만 바라보면서 시기하거나 불평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착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고민을 토로한 시편 37편의 기도자는 악인의 실패를 얼마든지 이 땅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시 37:1~2, 새번역)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기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언뜻 보면 잘나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도자는 이렇게 다시 고백합니다.

 

악인들이 뿌리째 뽑히는 모습을 네가 보게 될 것이다. 악인의 큰 세력을 내가 보니, 본고장에서 자란 나무가 그 무성한 잎을 뽐내듯 하지만, 한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흔적조차 사라져, 아무리 찾아도 그 모습 찾아볼 길 없더라. (시 37:34b-36, 새변역)

 

‘이것이 악인들의 운명이다.’라는 기도자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즘 새벽 기도 본문으로 베드로후서에서 초대교회에 나타난 거짓 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함께 읽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급히 재림하신 후에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이 점점 지연되자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없으니 예수님의 심판도 없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이 초대교회에 많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혼란을 겪고 있었던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강하게 권면하죠.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면서, 여러분을 조롱하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어디 갔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 때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냥 그대로다.” (벧후 3:3~4, 새번역)

 

조롱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언제 오시느냐. 또 심판이 있다고 하는데 언제 심판이 있느냐. 만물은 그대로 지금까지 존속되고 아무런 변화도 없지 않느냐.”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은 없으니 마음껏 즐기며 살라고 말하는 거짓 교사들에게 성경 속에 나타났던 수많은 하나님의 심판의 사례들을 열거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오랜 옛날부터 있었고,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말미암아 형성되었다는 것과, 또 물로 그 때 세계가 홍수에 잠겨 망하여 버렸다는 사실을, 그들이 일부러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있는 하늘과 땅도 불사르기 위하여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경건하지 못한 자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할 날까지 유지됩니다. (벧후 3:5~7, 새번역)

 

노아 시대에 홍수의 심판이 있었던 사건과 소돔과 고모라성이 완전히 멸망했던 사건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셨다고?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물로 온 인류를 심판하신 적이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멸망시키셨던 적도 있었다. 끊임없이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라는 말씀으로 베드로가 거짓 교사들에게 대응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고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 (벧후 3:8,10, 새번역)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게 느껴져서 우리가 조급하게 느껴질 뿐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짧은 시간 안에서 모든 정의와 심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더 길고 영원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우리가 판단할 수 없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죠.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벧후 3:9, 새번역)

 

한 사람의 악인이라도 찾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아직도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악인들이 여전히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은혜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심판 앞에 놓일 수 있습니다.>

 

다시 이와 같은 관점을 뒤로하고 시편 73편으로 돌아가서 기도자가 성서에 들어갈 때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씀에 보다 더 깊은 뜻을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악인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말씀을 읽게 되면 이 의미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나를 향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됩니다.

기도자는 악인의 형통을 분개하면서 성소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악인들이 저렇게 형통할 수 있을까?’라는 억울한 마음과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성소로 들어간 기도자는 하나님 앞에 서자 나 역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리고 악으로 가득 찬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악인의 종말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모든 악한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는 확실한 신앙이 새겨지던 순간, 그 심판의 자리에 나도 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소에 들어가서 한 가지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미련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당신 앞에서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아 당신께서 나의 오른손을 잡아주셨사오니, 나를 타일러 이끌어주시고 마침내 당신 영광에로 받아들여 주소서. (시 73:22~24, 공동번역개정판)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분개하고 안타까워하던 기도자는 도리어 자기 자신이 악인이며 한 마리 짐승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저런 악한 사람들을 그냥 두십니까?’라고 화를 내듯 하나님 앞에 섰던 그 사람은 자신이 짐승과 같은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죠. 그리고 나도, 내가 비난하는 사람도 악한 존재이지만 한 가지 자신에게 있는 은혜가 있다면, “나는 주님 옆에 있어서 주님께서 나의 손을 잡아 주셨을 뿐이다. 내가 은혜를 입었을 뿐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시편 73편 마지막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을 떠난 자 망하리니, 당신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 멸하시리이다. (시 73:27, 공동번역개정판)

 

‘왜 악한 자가 심판을 받지 않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했던 그의 질문은 ‘악한 자가 멸망할 것이다.’라는 대답이 아닌 ‘하나님을 떠난 자가 멸망할 것이다.’라는 해답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고백의 마지막은 악인과 선인의 구별이나 ‘왜 악인은 형통한가’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누가 더 가까이 있는가?’, ‘하나님께 누가 나갈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해답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마지막에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 (시 73:28, 새번역)

 

그렇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왜 악한 이들이 저렇게 형통하는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억울하다.’라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성소 안에 들어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나 자신 또한 참으로 혐오스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나의 손을 잡아 주셨기에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일 뿐입니다.

 

<악에 기울지 말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주님만을 찾아야 합니다.>

 

자, 다시 악인의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잠 24:1)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였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그리고 그 악인들을 따라다니지도 말아라. 악인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라는 말씀이죠. 그리고 악인들을 보면서 분노하거나 분개하지도 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잠 24:19)

 

악인이 형통하는 모습, 악인이 잘나가는 모습 보면서 “야, 참 부럽다. 어떻게 저렇게 잘 나가나.” 부러워하고 따라갈까 하는 마음이 들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악인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화를 내며 하나님께 항의하듯이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잠언 24장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잠 24:20)

 

마지막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악인들은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에서 이미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악인들을 보면서 분개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뿌리가 잘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곧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잠 24:17)

 

원수가 넘어지고 악인이 잘못될 때, 악을 행하던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다고 여겨질 때, “참 잘 됐다.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이 살아 계시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잠 24:18)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지요. 아이에게 매를 들었는데 부모의 마음이 기쁠 리가 있겠습니까? 형제가 매를 맞는다고 다른 형제가 웃고 있고 즐거워한다면 엄마의 마음이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하다는 말씀이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매를 맞고 있지 않아도 나 또한 언제든 매를 맞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만큼의 죄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매가 나에게 올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집니다. 시편 37편 7절로 10절 말씀입니다.

 

잠잠히 주님을 바라고, 주님만을 애타게 찾아라.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하다고 자랑하는 자들과, 악한 계획도 언제나 이룰 수 있다는 자들 때문에 마음 상해 하지 말아라. 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악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진실로 악한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말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아라. 악인은 멸망하고야 만다. 아무리 그 있던 자취를 찾아보아도 그는 이미 없을 것이다. (시 37:7~10, 새번역)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잠잠히 주를 바라고. 주님만을 애타게 찾아라. 악인에게 신경 쓰지 말아라. 악인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악인을 보면서 분개하지도 말고, 악인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서 좋아하지도 말아라. 악인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꺾어 버리고 하나님만을 찾아라. 나를 돌아보아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시편 37편 3절로 6절 말씀입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너의 의를 빛과 같이, 너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다. (시 37:3~6, 새번역)

 

이 말씀을 로마서 12장 말씀은 이렇게 다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롬 12:17~21, 새번역)

 

마지막 말씀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6월 16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말라” (시 73편 1~9, 16~17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81장, 484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시 73편 1~9, 16~17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6월 1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악한 사람들이 형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악인들이 속히 심판을 받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러한 현상, 이러한 우리의 경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앙인으로써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설교의 요약

 

오늘의 본문은 선하게 살려고 애쓰는 한 신앙인의 고통스런 경험과 깨달음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가 자칫 하나님에 대한 실망으로 시험에 들 수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악인들을 보면서 도리어 부러워하고 있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는 신앙인이 도리어 악인이 누리는 평안을 보고 자신이 가진 신앙에 대하여 회의감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난해한 문제의 해답을 하나님 앞에서, 성소에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악한 자들의 종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비록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을 심판하시고 정리할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성경에는 노아시대 홍수의 심판도 있고,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도 있으며, 그 심판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불사르기 위하여 지금도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더디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 인간의 시간 속에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심판이 더디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한 사람의 악인이라도 찾으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분개하면서 성소로 들어간 기도자는 하나님 앞에 자신도 죄인이며, 악으로 가득 찬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심판의 자리에 사실은 나도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됩니다.

 

기도자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들을 추종하지도 말며, 그들의 형통을 보며 분개하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사실 그 심판이 나에게도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참고 기다리고 계심이지, 내가 선하고 온전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악이 지배하는 것 같고, 악인이 성공하는 것 같이 보여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권면입니다.

 

 

나누기

 

  1. 우리 주변에는 거만하고, 남을 비웃고, 악의에 찬 말을 쏘아 붙이고, 오만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경험했던 악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가지 나누어 봅시다.
  2. 악인들이 모두 이 땅에서 번성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나요? 정말 그러한가요? 실상은 과연 어떠한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나 자신이 악한 자임을 깨닫지 못한 채, 악한 이들의 심판을 애타게 기다려온 우리의 미련함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내가 구원을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악한 이들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매진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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