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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지쳐 있습니다. >
오늘 이 예배당에는 여덟 분 정도의 목사님과 순서 담당자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텅 비어 보이는 예배당입니다. 가정에서 모여 앉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계실 여러분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모두 건강하시지요? 우리 모두 이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3월 1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예배당 문을 닫았을 때, 저는 정말 격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비슷하셨을 것입니다. 예배당 문을 닫는다는 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그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쫓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죄악 된 모습,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모습에 더는 참으실 수 없어 나가라고 호통치시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예배당을 비웠습니다. 그렇게 한없이 슬퍼하며 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예배당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처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분들도 많겠지만, 오늘 우리의 마음에는 또 다른 감정이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 감정이 무엇일까요? ‘분노’가 아닐까요? 많은 사람이 무언가에 화나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무언가를 향해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참 많아 보입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또 정부로부터 핍박받고 있다고 분노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했다고 힘들어하고 절망하면서 분노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감염병의 상황에서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향해 비난하거나 분노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가정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처음에 우리가 온라인으로 예배드릴 때는, 그리고 코로나19가 시작될 때는 많은 사람이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정에서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면서 가정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다른 소식들도 들려옵니다. 자녀와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부부 사이에 이혼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참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그렇습니다. 얼마 전 20대 청년 4,4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약 70%가 ‘코로나 블루’를 겪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왜 이렇게 분노가 일어나고, 왜 이토록 우울함이 생기며, 왜 이렇게 절망스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까? 누군가 무엇을 잘못한 까닭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많이 지쳤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광야 길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 양식이 없어 난동을 부리던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과 난동을 부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많이 지쳤습니다. 정부도 지쳤고, 공무원도 지쳤으며, 방역 당국도, 교회도, 일반인도, 청년도, 우리 모두가 지쳤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쳤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혐오 표현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회입니다. 혐오 표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조사한 내용을 살펴보니, 2015년에 나타난 온라인상 혐오 표현이 407만여 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3년 후인 2018년에는 온라인상 혐오 표현이 약 1,176만 건으로 급상승했다고 합니다. 아마 코로나19의 상황 속에서 이런 혐오 표현은 더욱 늘어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신천지를 향해 혐오 표현이 쏟아지는 것 같더니, 이후에는 국가와 정부를 향해, 그리고 지금은 또다시 교회를 향해 혐오 표현이 쏟아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나름대로 여러 교회가 사회에 봉사하며 방역 지침에 협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는 현실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지친 많은 사람이 교회를 향해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현실에 여러분의 마음도 참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
한 신도가 목사님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사람 중 하나가 저인 듯합니다. 제가 이 과정을 다투지 않고 이겨 나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믿지 않는 친정 식구들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의 화살이 다 저에게 날아오고 있네요. 이단이 뭔지 모르는 아버지는 신문에 난 사랑제일교회 광고를 보고, 이제 교회는 나가지 말라는 억지까지 부리고 계십니다. 언니, 동생들은 ‘기독교, 예배 포기 못 한다’라는 교계의 반응 뉴스 사진을 저에게 날리며, 과연 하나님이 계신 것이냐고, 이기주의 아니냐며 난리입니다. 제가 무슨 기독교 대표도 아니고, 한국 기독교 대표도 아닌데…. 조금 다투다 기도하고는 미안하다고, 그리고 부끄럽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주위에서 흔히 경험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누군가 뒤에서 달려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더니 멈칫하고는 뒤로 물러선 후 먼저 올라가라고 양보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 들려져 있는 성경책이 보였습니다. ‘아, 교회에 다녀온다는 게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위협이 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참으로 놀랐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를 향한 비난과 혐오의 시선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때론 참 황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보면서 도리어 세상을 향한 반감이 생기기도 하고, 정부를 향한 반감이 생기기도 하고, 우리 안에서 서로의 잘못을 비난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오늘의 상황을 교회의 위기로 진단합니다. 교회가 정부로부터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제부터는 전도도 잘되지 않을 것 같다고, 교회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던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이제는 예배당에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온라인예배에 익숙해진 성도들이 예배당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고, 기독교의 쇠퇴가 점쳐진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기독교의 쇄락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일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탈출하여 기독교가 다시 살아나고 교회가 부흥하는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겠습니까?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 박해하지 말라고 투쟁하면 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의 참 모습을 알리기 위해 강연이나 포럼을 개최하면 되겠습니까?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면 가능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지 않도록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들을 골라서 하면 되겠습니까? 성도들이 흩어지기 전에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해야만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해결될 수 있을까요?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민이자 기도 제목입니다.
< 오직 ‘사랑’만이 기독교의 기독교 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하나의 해결의 길을 찾게 되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중 8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 15:8)
오늘의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오늘의 상황은 한마디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제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참 제자가 되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형국이 바로 오늘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벌어지는 많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만한 일들만 하고 있을까?’ 하는 한탄이 터질 지경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과연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입니까? 왜 우리가 믿음이 좋은지를 증명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교회의 존재 이유조차 세상에 바르게 증거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요?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하십니다. 조금 전에 읽은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 15:8)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시고, 우리가 주님의 참 제자가 되지 못한 것은,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열매입니까? 한마디로 이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열매이자 우리가 하나님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열매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열매이겠습니까? 9절 이후의 말씀에서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9~12)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맺어야 하는 열매란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는 열매가 무엇이며, 우리로 하여금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열매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 희생하는 ‘사랑’, 인내하는 ‘사랑’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며, 우리의 제자 됨을 증명합니다. 주님께서 바로 이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위기 속에서 자칫 사랑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자칫 투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분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 위기 가운데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사랑’만이 기독교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위기 속에서도 지켜야 하고, 어려울수록 더욱 강해져야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칼이나 권력이나 어떤 재물이나 다른 무엇으로도 기독교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교회를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제자 됨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기독교 됨을, 교회 됨을, 제자 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 주님께 붙어 있을 때, 우리에게 사랑의 열매가 맺힙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그저 감정으로 솟아나는 ‘사랑’이 아닌 조건 없는 ‘사랑’,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이 땅에 보이신 깊은 ‘사랑’, 희생의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열매로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복음 15:4)
우리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붙어 있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드시며, 둘이 서로 꼭 붙어 있어야 가지가 나무로부터 오는 영양분과 수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내가 주님께 붙어 있을 때 열리는 열매일 뿐입니다.
다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께 붙어 있습니까? 주님께 영양분을 얻어 자라나고 있습니까? 그 관계 안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 가고 있습니까? 교회에 붙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교회 생활에 붙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붙어 있고, 교회 생활에 붙어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주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나왔던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교회 자체에 붙어 있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께 붙어 있기 위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다시 돌아봅니다. ‘나는 과연 주님 안에 있는가? 주님께 붙어 있는 존재인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에 붙어 있었으며, 무엇에 붙어서 살고 있었는가? 무엇으로부터 양분을 얻고 있었는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봅시다. 만약 교회에만 붙어 있는 삶이었다면, 오늘과 같은 분리가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었다면, 교회 밖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 현실, 이 분리가 결코 두려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내 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내 말 안에 거하는 것이다.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다.”라고 풀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듯이, 우리가 말씀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양분을 얻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열매를 선물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켜서 열매를 얻도록 해 줄 것입니다. 이 열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 우리의 제자 됨을 증명할 것입니다. 이 열매를 세상 사람들이 먹게 되면 그들도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되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고, 하나님을 향해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부동산 문제로 정부가 많은 조치를 내놓았습니다. 도리어 이 조치 때문에 부동산 시세가 올랐다는 보도도 들립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집에 사십니까? 얼마짜리 집에 사시나요? 어떤 동네에 사십니까? 이것이 과연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까? 그 집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까? 좋은 집에 사는 것만이 행복의 기준은 아닙니다. 큰 집에 살면서도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 가득한 집이라야 합니다. 사랑이 가득한 가정 말입니다. 그런 집은 어디에 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조금 작은 집에 살더라도 사랑이 있으면 행복한 집이 되고, 기쁨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가정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많은 분이 교회가 박해당하고 있다며 교회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교회가 쇄락할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우리가 믿는다면,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면 됩니다.
< 교회의 존재 이유는 사랑의 구현에 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패싸움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까?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가 있는 것일까요?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입니까? 초대 교회가 형성되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기독교는 세상에서는 알려지지도 않은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교인이라는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교회라는 곳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교회가 탄생했고 성장했습니다. 교회는 정복을 통해 이 땅에 기독교를 전파한 게 아닙니다. 로마라는 엄청난 나라, 이방 신이 가득한 그 나라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선포했으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며, 사랑으로 섬기고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기독교를 만들었으며, 온 땅에 기독교를 퍼지게 한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코로나19의 상황 속에서 세상을 향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이 예배, 정말 경건하게 드리고 싶어 하는 이 예배, 한 번도 빠짐없이 드리고 싶어 하는 이 예배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잠시 양보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이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위기에 처했다고 많은 분이 이야기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초대 교회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교회를 알아줬습니까? 믿는 사람들을 존중해 주었습니까? 믿음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초대 교회가 어떠했습니까? 열두 명, 오십 명, 오백 명, 그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믿음을 증거 하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초대 교회를 형성해 가지 않았습니까? 초대 교회 교인들은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집에 사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교회에 출석하고 계신가요? 그러나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계십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주님 안에 거하고 계십니까?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고, 그 말씀으로부터 생명을 얻고, 그것으로부터 열매를 얻는 순환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18~19)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반응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또다시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2~14)
사랑입니다. 여전히 사랑입니다. 투쟁이 아닙니다. 분노가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늘도 그것을 당부하십니다.
What Kind of Home Are You Living In?
John 15:4-8
Dear Somang Church, we have closed our church doors again. Although I cannot see you in person, I can imagine you all worshipping at home.
When we were first forced to close our church doors on March 1 at the start of the pandemic, I felt a deep remorse. I could feel God’s grief and His rebuke. It was as if He had cast us out from the church because of our sins. As countless past sins of the Korean church flashed through my mind, I repented and reflected on why we had to close our doors.
Today, we are faced with that same, hard situation again.
How do you feel? Many of us still have a repentant and mourning heart. But, this time, some of us are feeling differently. I can sense some anger and irritation among us. Some are upset over the “persecution” of the Church. Some are angry. Some are anxious to save this nation from a desperately dangerous situation. Some are mad at certain Christians for gathering senselessly in large groups.
This frustration is seen in our homes, too. When Covid-19 first broke out, we all returned to our homes and some family time. Some were even glad because the virus had healed their homes. But what about now? Parents are distressed because of their deteriorating relationship with their children. Some couples are on the verge of divorce. Generational conflicts are growing.
This is happening in our society, too. Yesterday’s news reported that 70% of people in their twenties were suffering from the coronavirus blues.
Why is this happening? Well, there are those to blame, but the truth is, we are all tired. The Israelites felt this same exhaustion when they complained about a lack of food and water in the wilderness. The long journey had worn them out.
As you may be aware, the problem of hate speech is quite serious in Korea. And, sadly, it is getting worse. According to a recent survey by Ministry Data Institute, the number of online hate expression spiked from 4,074,000 in 2015 to 11,761,000 in 2018. This worrying trend only seems to be getting worse in the midst of the coronavirus. Not long ago, much of the hate speech in Korean society was directed at Shincheonji, but now is aimed at Christians. People tired from the pandemic are lashing out against the Church.
A church member sent this message to her pastor:
“I am one of those Christians worn out by the coronavirus. Pastor, please pray that I will be able to overcome my trials in gentleness. Everyone in my family, who are not Christians except myself, are dumping all their anger against the Church on me. My father who does not know the difference between orthodoxy and heresy has ordered me not to go to church after seeing an advertisement of the Sarang Jeil Church in the newspaper. My sisters are criticizing churches for being selfish, sending me news articles on Christians crying ‘we can’t give up worship.’ They are placing all their anger on me, as if I were the head of the Christian Association. At first, I argued with them, but after some praying, I apologized and said I was embarrassed.”
The following also happened to another church member. She was on an elevator when the doors were about to close. A man, who wanted to get in, suddenly stepped back and told her to go up alone. On the way up, she realized that he had probably stepped back because of the Bible in her hand.
The situation is frustrating. Christians are going through difficult times these days. And this has made some of us angry at the world for misunderstanding the Church, while some of us are pointing fingers at other Christians.
Many Christians take this current situation as a crisis of the Church. They say the government is persecuting the Church. They are worried that the world is turning away from the Church, that evangelizing will be more difficult in the future. They are anxious about Christians leaving the Church and getting so used to online worship that they will not come back to church once this is all over. They concerned about a decline of the Church.
Yes. This may be true. We may diagnose the current situation as a crisis. Then what must be done? What must we do to overcome this crisis?
Shall we protest against the government and its persecution? Shall we hold conferences and forums to tell the world that we are not who they think we are? Shall we distribute pamphlets? Or shall we do as the world wants us to, so that it won’t turn against us? Shall we develop a program to unite our congregants so they won’t scatter? Shall we create a plan that deters people from becoming too accustomed to online worship?
Dear Church, what must we do in the days ahead and how must we overcome this situation? I hope to gain heavenly wisdom from today’s Scripture.
First, let’s look at verse 8: “This is to my Father’s glory, that you bear much fruit, showing yourselves to be my disciples.” (John 15: 8)
This verse explains our crisis. How can we describe our current situation? Our Father God is not receiving the glory. We are blocking His glory by failing to be His true disciples.
Recent events grieve us and make us think, ‘How can Christian do such abominable things that veil His glory?’ Christians are failing to prove to the world the goodness of our faith and the reason why the Church exists. They are not showing what it means to have faith and what sets them apart from unbelievers.
How has it come to this? Our Lord says it is because we failed to bear fruit. We have no fruit. “This is to my Father’s glory, that you bear much fruit, showing yourselves to be my disciples.” (John 15: 8) In other words, God isn’t getting the glory and we have not shown ourselves to be true disciples because we have failed to bear fruit. Then what is this fruit? It is that which gives glory to God and identifies us as disciples of Christ.
In the verses following verse 8, we find God’s clues. Let’s look at verses 9 to 12: “As the Father has loved me, so have I loved you. Now remain in my love.10If you keep my commands, you will remain in my love, just as I have kept my Father’s commands and remain in his love.11I have told you this so that my joy may be in you and that your joy may be complete.12My command is this: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you.” (John 15: 9-12)
We learn from these verses that the fruit God wants is love. Dear Somang Church, what glorifies God and makes us His true disciples? Love. Unconditional, endless, sacrificial, and persevering love is what glorifies God and makes us His true disciples.
Our Lord speaks to us very clearly about this through today’s passage. Sometimes, in crises, we forget love. But love is the alpha and omega of the Christian faith. Particularly in hard times, love must be guarded and strengthened.
Then how can we bear this fruit of love? How can we gain and share this unconditional love that God showed us through His son? Our Lord teaches us: “Remain in me, as I also remain in you. No branch can bear fruit by itself; it must remain in the vine. Neither can you bear fruit unless you remain in me.” (John 15: 4)
Our Lord is telling us to remain in Him, that is, to stick to Him. He is speaking to us through the parable of the vine. A branch gets the water and nutrition it needs only by sticking to the vine. Likewise, we must remain in Jesus if we are to bear the fruit of love.
Let’s look back on ourselves. Did we really remain in Him? Was our faith like a branch that stuck to the vine, getting all the water and nutrition we need from our Lord?
We may have remained in church. Some of us were active in it. Of course, this is important, but the fundamental reason for an active church life and service is to belong to and remain in Him.
Now, we must look back on ourselves. Did I truly remain in Him? Did I stick to Him? Where did I stick to and get my nutrients?
Our Lord also said,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done for you.” (John 15: 7) Through this verse, Jesus is telling us that “remaining in Him” is “to remain in His words.” In other words, remaining in Him is to have His words remain in us. If we set His words in our heart, we are in Christ. As the branch sticks to the vine, we bear fruit through His words which give us the nutrients we need.
His words transform us, making us bear the fruit of love. This fruit gives glory to God and shows that we are His disciples. Seeing this fruit, the world will return to God and give Him glory.
This goes for our homes, too. Recently, the government announced a host of real estate measures. We hear news of rising housing prices, despite the authorities’ efforts to curb them. What kind of house are you living in now? How much is it worth? In which district do you live?
Does your apartment make you happy? Aren’t you rather distressed due to spikes in real estate taxes? A luxurious house does not give us happiness. Some people go through hell in their spacious, fancy homes. The important ingredient for a happy home is love. It doesn’t matter where you live. As long as there is love, you will be happy in your home—even if it is cramped and uncomfortable. There is joy in a house full of love.
When family members love one another, you finally have a home—not a house. This is the kind of home that others envy. This is the kind of home that gives its members happiness and pride.
These days, a lot of people worry for the future of the Korean church, which they say is being persecuted. They are worried that the Church will decline.
Dear brothers and sisters, when did we ever need the Church for our turf wars? When was the Church ever necessary for our political gains? Why does the Church exist?
Think about the early church. Christians were just a small minority in those times. Only a handful of people knew the name of Jesus, and almost no one was interested in Christ. Most people didn’t even know what a church was.
The Church started and grew in such a context. It did not expand through crusades and wars. It started to grow in a great empire called Rome—a region that worshipped countless foreign gods and did not even know the name of God—by loving, serving, and keeping their faith to the end, even when it was persecuted. Through this way of life the early church overcame the Rome Empire.
Therefore, it is ironical that today we are disappointed by the fact that many people in the world do not believe in God and are turning away from the Church. What has changed from the past? Actually, Christianity was less known in the past. More people criticized and persecuted it. The number of people who did not know God was greater in those times, too. But think of how the early church spread the gospel and built churches in their situation.
From the very beginning, the early church never criticized or attacked other religions. Early Christians did not advocate a certain political idea. They declared and lived out the love of Christ in all their circumstances. They sacrificed. This was the driving force that made Christianity what it is today.
This is our faith. What kind of house do you live in? What church do you attend? There are more important questions than these. Is your home a truly happy one? Do you remain in Christ? These are the critical questions we are faced with.
Dear Church, the Lord speaks to us today: “If the world hates you, keep in mind that it hated me first. If you belonged to the world, it would love you as its own. As it is, you do not belong to the world, but I have chosen you out of the world. That is why the world hates you.” (John 15: 18-19)
“My command is this: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you.13Greater love has no one than this: to lay down one’s life for one’s friends.14You are my friends if you do what I command.” (John 15: 12-14)
요한복음 15: 4 ~ 8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지쳐 있습니다. >
오늘 이 예배당에는 여덟 분 정도의 목사님과 순서 담당자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텅 비어 보이는 예배당입니다. 가정에서 모여 앉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계실 여러분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모두 건강하시지요? 우리 모두 이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3월 1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예배당 문을 닫았을 때, 저는 정말 격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비슷하셨을 것입니다. 예배당 문을 닫는다는 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그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쫓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죄악 된 모습,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모습에 더는 참으실 수 없어 나가라고 호통치시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예배당을 비웠습니다. 그렇게 한없이 슬퍼하며 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예배당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처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분들도 많겠지만, 오늘 우리의 마음에는 또 다른 감정이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 감정이 무엇일까요? ‘분노’가 아닐까요? 많은 사람이 무언가에 화나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무언가를 향해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참 많아 보입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또 정부로부터 핍박받고 있다고 분노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했다고 힘들어하고 절망하면서 분노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감염병의 상황에서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향해 비난하거나 분노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가정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처음에 우리가 온라인으로 예배드릴 때는, 그리고 코로나19가 시작될 때는 많은 사람이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정에서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면서 가정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다른 소식들도 들려옵니다. 자녀와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부부 사이에 이혼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참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그렇습니다. 얼마 전 20대 청년 4,4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약 70%가 ‘코로나 블루’를 겪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왜 이렇게 분노가 일어나고, 왜 이토록 우울함이 생기며, 왜 이렇게 절망스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까? 누군가 무엇을 잘못한 까닭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많이 지쳤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광야 길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 양식이 없어 난동을 부리던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과 난동을 부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많이 지쳤습니다. 정부도 지쳤고, 공무원도 지쳤으며, 방역 당국도, 교회도, 일반인도, 청년도, 우리 모두가 지쳤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쳤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혐오 표현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회입니다. 혐오 표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조사한 내용을 살펴보니, 2015년에 나타난 온라인상 혐오 표현이 407만여 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3년 후인 2018년에는 온라인상 혐오 표현이 약 1,176만 건으로 급상승했다고 합니다. 아마 코로나19의 상황 속에서 이런 혐오 표현은 더욱 늘어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신천지를 향해 혐오 표현이 쏟아지는 것 같더니, 이후에는 국가와 정부를 향해, 그리고 지금은 또다시 교회를 향해 혐오 표현이 쏟아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나름대로 여러 교회가 사회에 봉사하며 방역 지침에 협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는 현실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지친 많은 사람이 교회를 향해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현실에 여러분의 마음도 참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
한 신도가 목사님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사람 중 하나가 저인 듯합니다. 제가 이 과정을 다투지 않고 이겨 나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믿지 않는 친정 식구들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의 화살이 다 저에게 날아오고 있네요. 이단이 뭔지 모르는 아버지는 신문에 난 사랑제일교회 광고를 보고, 이제 교회는 나가지 말라는 억지까지 부리고 계십니다. 언니, 동생들은 ‘기독교, 예배 포기 못 한다’라는 교계의 반응 뉴스 사진을 저에게 날리며, 과연 하나님이 계신 것이냐고, 이기주의 아니냐며 난리입니다. 제가 무슨 기독교 대표도 아니고, 한국 기독교 대표도 아닌데…. 조금 다투다 기도하고는 미안하다고, 그리고 부끄럽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주위에서 흔히 경험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누군가 뒤에서 달려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더니 멈칫하고는 뒤로 물러선 후 먼저 올라가라고 양보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 들려져 있는 성경책이 보였습니다. ‘아, 교회에 다녀온다는 게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위협이 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참으로 놀랐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를 향한 비난과 혐오의 시선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때론 참 황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보면서 도리어 세상을 향한 반감이 생기기도 하고, 정부를 향한 반감이 생기기도 하고, 우리 안에서 서로의 잘못을 비난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오늘의 상황을 교회의 위기로 진단합니다. 교회가 정부로부터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제부터는 전도도 잘되지 않을 것 같다고, 교회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던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이제는 예배당에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온라인예배에 익숙해진 성도들이 예배당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고, 기독교의 쇠퇴가 점쳐진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기독교의 쇄락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일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탈출하여 기독교가 다시 살아나고 교회가 부흥하는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겠습니까?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 박해하지 말라고 투쟁하면 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의 참 모습을 알리기 위해 강연이나 포럼을 개최하면 되겠습니까?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면 가능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지 않도록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들을 골라서 하면 되겠습니까? 성도들이 흩어지기 전에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해야만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해결될 수 있을까요?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민이자 기도 제목입니다.
< 오직 ‘사랑’만이 기독교의 기독교 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하나의 해결의 길을 찾게 되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중 8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 15:8)
오늘의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오늘의 상황은 한마디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제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참 제자가 되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형국이 바로 오늘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벌어지는 많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만한 일들만 하고 있을까?’ 하는 한탄이 터질 지경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과연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입니까? 왜 우리가 믿음이 좋은지를 증명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교회의 존재 이유조차 세상에 바르게 증거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요?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하십니다. 조금 전에 읽은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 15:8)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시고, 우리가 주님의 참 제자가 되지 못한 것은,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열매입니까? 한마디로 이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열매이자 우리가 하나님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열매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열매이겠습니까? 9절 이후의 말씀에서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9~12)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맺어야 하는 열매란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는 열매가 무엇이며, 우리로 하여금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열매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 희생하는 ‘사랑’, 인내하는 ‘사랑’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며, 우리의 제자 됨을 증명합니다. 주님께서 바로 이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위기 속에서 자칫 사랑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자칫 투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분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 위기 가운데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사랑’만이 기독교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위기 속에서도 지켜야 하고, 어려울수록 더욱 강해져야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칼이나 권력이나 어떤 재물이나 다른 무엇으로도 기독교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교회를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제자 됨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기독교 됨을, 교회 됨을, 제자 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 주님께 붙어 있을 때, 우리에게 사랑의 열매가 맺힙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그저 감정으로 솟아나는 ‘사랑’이 아닌 조건 없는 ‘사랑’,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이 땅에 보이신 깊은 ‘사랑’, 희생의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열매로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복음 15:4)
우리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붙어 있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드시며, 둘이 서로 꼭 붙어 있어야 가지가 나무로부터 오는 영양분과 수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내가 주님께 붙어 있을 때 열리는 열매일 뿐입니다.
다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께 붙어 있습니까? 주님께 영양분을 얻어 자라나고 있습니까? 그 관계 안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 가고 있습니까? 교회에 붙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교회 생활에 붙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붙어 있고, 교회 생활에 붙어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주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나왔던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교회 자체에 붙어 있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께 붙어 있기 위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다시 돌아봅니다. ‘나는 과연 주님 안에 있는가? 주님께 붙어 있는 존재인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에 붙어 있었으며, 무엇에 붙어서 살고 있었는가? 무엇으로부터 양분을 얻고 있었는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봅시다. 만약 교회에만 붙어 있는 삶이었다면, 오늘과 같은 분리가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었다면, 교회 밖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 현실, 이 분리가 결코 두려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내 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내 말 안에 거하는 것이다.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다.”라고 풀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듯이, 우리가 말씀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양분을 얻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열매를 선물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켜서 열매를 얻도록 해 줄 것입니다. 이 열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 우리의 제자 됨을 증명할 것입니다. 이 열매를 세상 사람들이 먹게 되면 그들도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되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고, 하나님을 향해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부동산 문제로 정부가 많은 조치를 내놓았습니다. 도리어 이 조치 때문에 부동산 시세가 올랐다는 보도도 들립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집에 사십니까? 얼마짜리 집에 사시나요? 어떤 동네에 사십니까? 이것이 과연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까? 그 집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까? 좋은 집에 사는 것만이 행복의 기준은 아닙니다. 큰 집에 살면서도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 가득한 집이라야 합니다. 사랑이 가득한 가정 말입니다. 그런 집은 어디에 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조금 작은 집에 살더라도 사랑이 있으면 행복한 집이 되고, 기쁨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가정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많은 분이 교회가 박해당하고 있다며 교회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교회가 쇄락할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우리가 믿는다면,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면 됩니다.
< 교회의 존재 이유는 사랑의 구현에 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패싸움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까?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가 있는 것일까요?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입니까? 초대 교회가 형성되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기독교는 세상에서는 알려지지도 않은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교인이라는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교회라는 곳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교회가 탄생했고 성장했습니다. 교회는 정복을 통해 이 땅에 기독교를 전파한 게 아닙니다. 로마라는 엄청난 나라, 이방 신이 가득한 그 나라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선포했으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며, 사랑으로 섬기고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기독교를 만들었으며, 온 땅에 기독교를 퍼지게 한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코로나19의 상황 속에서 세상을 향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이 예배, 정말 경건하게 드리고 싶어 하는 이 예배, 한 번도 빠짐없이 드리고 싶어 하는 이 예배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잠시 양보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이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위기에 처했다고 많은 분이 이야기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초대 교회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교회를 알아줬습니까? 믿는 사람들을 존중해 주었습니까? 믿음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초대 교회가 어떠했습니까? 열두 명, 오십 명, 오백 명, 그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믿음을 증거 하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초대 교회를 형성해 가지 않았습니까? 초대 교회 교인들은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집에 사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교회에 출석하고 계신가요? 그러나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계십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주님 안에 거하고 계십니까?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고, 그 말씀으로부터 생명을 얻고, 그것으로부터 열매를 얻는 순환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18~19)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반응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또다시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2~14)
사랑입니다. 여전히 사랑입니다. 투쟁이 아닙니다. 분노가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늘도 그것을 당부하십니다.
2020년 8월 23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어떤 집에 사십니까” (요 15:4-8)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03장, 37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요 15:4-8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8월 2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요? 믿음이 왜 좋은 것인지 증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것이 어떠한 것인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나요?
설교의 요약
열매를 맺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8). 무슨 열매일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열매는 ‘사랑’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2). 무엇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제자답게 합니까? 사랑이 그러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 희생하는 사랑이 우리를 제자답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열매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 15:4). 그런데 우리가 정말 주님께 붙어 있었습니까? 교회에 붙어 있었던 것은 맞을 수 있지요. 교회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주님께 속하고 그 안에 거하기 위함입니다. 주님께 속할 때, 사랑의 열매를 만들어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가득할 때 ‘집’이 아닌 ‘가정’이 만들어 지는 겁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정은 바로 이런 가정이지요. 가족의 구성원들이 행복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런 가정입니다. 요즈음 많이 분들이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십니다. 교회가 왜 필요할까요? 우리가 패싸움을 하기 위해 교회가 필요할까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교회가 필요할까요? 교회의 존재가 무엇일까요?
과거 초대교회가 생겨나던 그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기독교는 세상에 가장 작은 사람들의 모임이었고, 예수의 이름을 아는 자도 적었고, 예수의 이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교회가 탄생했고 교회는 성장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사랑하며 섬기며 살았던 그 삶이 로마를 정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실망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옛날에는 오늘 날보다 기독교를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교회를 비판하거나 박해하는 이들도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나갔습니까? 다른 종교를 비난하거나 공격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정치적 이념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를 선포하며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를 오늘의 자리까지 오게 한 동력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어떤 집에 사십니까? 사랑으로 가득한 행복한 집을 만드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나누기
1. 교회는 늘 세상에 외면당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와 지금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2. 예수님의 제자로써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지금까지 우리가 참된 제자가 되지 못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였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교회들이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주님의 교회를 다시 바로 세우는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