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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 20 ~ 21
김경진 목사
2022.03.27
<한 구도자의 이야기는 상실감을 가지며 살아가는 인간 실존을 보여 줍니다.>
옛날에 한 구도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늘 도를 깨우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자녀들, 이웃들 때문에 도를 깨우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상심하며 살았죠. 그러다 어느 날 마음의 큰 결심을 내립니다. ‘이제 정말 도를 깨우쳐야 하겠다.’ 생각하며 결국 길을 나서게 된 것입니다. 가족을 떠나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소위 속세를 떠나서 도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한낮에 길을 가는 중에 어떤 사람이 길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찾고 있길래 구도자가 묻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찾고 계십니까?” 그러자 대답합니다. “아주 중요한 열쇠를 잃어버렸습니다. 열심히 찾는데 잘 보이지 않네요.” 그의 대답에 구도자도 길을 멈추고 함께 열쇠를 찾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생긴 열쇠입니까?” “아주 작은 열쇠인데 금으로 만든 열쇠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찾아도 열쇠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친 구도자가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언제쯤 잃어버리셨나요?” “언제인지 알 수가 없네요.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이 말을 듣자 구도자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잃어버린 것이 확실합니까?” 그러자 열쇠를 찾던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아니오. 열쇠를 잃어버린 장소는 우리 집입니다. “아니, 그러면 집에서 찾으셔야지 왜 여기서 찾고 계십니까?”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구도자는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 내가 정말 무엇을 찾고 있었는가?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생각하면서 ‘내가 정말 찾아야 할 것은, 내가 살던 바로 그 자리에 있었구나. 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구나.’ 깨달음을 얻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두 번쯤은 들어보셨을 법합니다.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기도 하죠. “왜 여기서 찾고 있습니까?”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왜 여기서 찾고 계십니까?” “여기서 찾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할 것 같아서요.”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게 어리석은 대답을 하곤 합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린 그곳에서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다면 집에서부터 찾아야지요. 자동차에 지갑을 놓고 내렸다면 자동차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입니다. 보석을 장롱에 숨겨 두었다가 잃어버렸다면 장롱에서부터 찾아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어두워도, 힘들어서 잘 보이지 않아도 잃어버린 그곳에서부터 찾아야 하는 법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늘 지갑을 잃어버립니다. 여기저기 시계를 벗어놓고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산을 들고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잃어버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잃어버리지 않는 꼼꼼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와이셔츠 단추 하나도 잃어버린 적이 없다.”고 자랑하시는 분도 제 주변엔 계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완벽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내면에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분들 중에도 상실감을 경험하지 않으신 분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상실감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이방인같이 느껴지고 때로는 무엇인가 뒤떨어진 것같이 느껴지고 허탈한 마음이 들고 우울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더러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생각이 들 만큼 압도하는 상실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놓친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지독한 상실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상실감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살아가고는 있는데 행복하진 않습니다. 부족함은 없는데 존재적인 불안감이 늘 맴돕니다. 근사한 이력도 있고 아이들도 열심히 키워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지면서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산속 깊은 사찰에 들어가서 명상하기도 하죠. 용하다는 예언자나 점술가, 무속인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유명한 작가의 글이나 명철한 지식인의 책을 읽으면서 ‘혹시 내가 잃어버린 것은 없는가?’ 점검할 때가 꽤 있습니다.
<구도자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성경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의 상실감을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안에 본능적으로 숨어 있는 잃어버림의 감각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어날까요? 인간 실존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대답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인간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 3:23~24)
성경은 무엇을 잃었다고 증언합니까? 바로 ‘실낙원’입니다. 인간이 잃어버린 첫 번째는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마련하신 땅, 에덴동산입니다. 그러나 그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 낙원에서 말이죠.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린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를 더 잃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잃어버렸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됨으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전해 주는 인간의 첫 번째 상실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또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귀한 동산으로부터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낙원을 떠나 방황하게 된 이방인, 그야말로 에트랑제(etranger) 신세입니다.
지난 주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신 낙원,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방황하며 사는 이방인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화려한 잔치를 벌여도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외로움과 상실감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과 멋진 남성과 매일 같이 있어도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고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멋진 집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유명한 정치가가 되고 학자가 되어도, 심지어 대통령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상실감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실낙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들어 두신 낙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 에덴동산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어리석게도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길가에서 열심히 찾는 사람처럼 우리 중에도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형상을 엉뚱한 데에서 찾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과학의 증명과 이론 속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으려고 합니다. 에덴동산을 그곳에서 발견하려고 하죠. “왜 여기서 찾으십니까?” 묻는다면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대답할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현상 속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곤 합니다. “왜 여기서 찾습니까?” 묻는다면 그들 역시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대답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에서 찾고자 합니다. 정의롭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의 모습을 교회 안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찾습니다. 그들 역시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대답합니다. 배우자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이러한 모습은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길가에서 열쇠를 찾겠다고 나서는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교회에서, 심지어 가족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주체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한 주체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가 잃어버렸고 그것이 또한 우리의 실존입니다.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바로 내가, 나의 실존이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하나님의 나라가 명료하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자신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곳을 열심히 찾고자 노력하죠. 그러나 어디를 돌아보아도 완전한 에덴동산을 발견할 순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 나라의 임재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실존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도 불리한 일이 생기거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생기거나, 섭섭한 일이 생기거나, 직분자가 교회 일을 잘 못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신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즉시 실족합니다. 그래서 이리저리로 떠돌아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타당한 이유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중 일부는 자신 안에 문제가 있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이 교회는 사랑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다.’ 비판은 하지만 정작 자신 안의 문제는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설교를 찾아 떠나기도 하고 모범적인 교회를 찾아 돌아다니기도 하고, 은혜로운 교회를 찾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들어도 자신 안에 있는 갈급함은 해결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감각, 하나님의 실존이 자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성경은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도록 이끌며 인간을 참되게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전합니다.>
본문 말씀 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올지를 질문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중)
하나님의 나라는 목사의 바람직한 생활 태도나 모습 안에서 발견되지도, 건강한 교회의 모습 속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나라는 이곳에 앉아 계신 여러분, 또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회복할 때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구속의 기쁨으로 가득할 때에 모든 곳에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에 부족한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도 되고, 부족한 직분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되고, 문제가 많다고 여겨지는 교회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과 현존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 주시고 죄를 도말하셨다는 엄청난 고백이 우리 마음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것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구원의 감격 없이, 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살다보면 자존심을 내세우고 명예를 내세우고 일의 순서만을 따지기 쉽습니다. 헌금 설교를 들으면서 상처받기도 하고 교인들끼리 서로 다투고 용서하지도 않고,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원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향하여 “당신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없으니 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 말할 게 아니라 내 안에 솟아오르는 구원의 감격, 내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실존을 누리고 느끼고 경험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박국은 원래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하박국 1~2장을 보면 ‘어찌하여’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구원의 감격을 소유하지 못한 채로는 사회를 보아도, 교회를 보아도 그저 불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어찌하여, 또 어찌하여…” 그런데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자 생각이 달라집니다. 고백 역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화과나무의 무성함이 아닙니다, 포도나무에 열린 탐스러운 열매도 아닙니다. 교회의 멋진 모습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구원의 감격이요, 마음속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에덴동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순간에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매우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있을 그때에 하나님께서도 잃어버린 것이 있으셨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실 만큼 그토록 아끼시던 인간, 바로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 역시 잃어버린 인간을 찾기를 원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렘 50:6)
잃어버린 양떼와 같은 인간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시는 하나님이 구약성경에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인간을 찾고자 큰 결단을 하십니다. 이 땅에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훗날에 주님께서 고백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마 15:24)”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38~40)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시는 목자같이 주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잃어버린 영생을 다시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잃은 자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바로 그분이 우리 가까이에 오셨습니다. 계시록은 주님께서 우리 문 앞에 오셔서 두드리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우리를 찾아서 먼 길을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우리를 얻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영생하는 생명을 얻게 하시고자 죽음을 짊어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찾아오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 주님을 만날 때에 잃었던 모든 것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공동체도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도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증명해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과학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지도 않습니다. 마음속에 잃어버린 하나님이 다시 발견될 때에, 아니 나를 찾으시는 하나님을 내가 경험할 때에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임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서야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진정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찬송가의 가사처럼 우리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고백할 수 있고,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내려주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그런 값지고 귀한 사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he story of a seeker shows the existence of a human being who lives with a sense of loss.>
It is said that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seeker. He always wanted to awaken the Tao. But because of his wife, children, and neighbors, he did not get the opportunity to enlighten himself. So he was always heartbroken. Then one day he makes a big decision in his heart. I finally set out on the road, thinking, ‘Now I really need to learn the Way.’ Leaving his family, severing ties with everyone, leaving the so-called secular world, he sets out on a journey in search of the island. As I was walking down the street in the middle of the day, a man was eagerly searching for something by the side of the road. He’s seriously looking, so the seeker asks. “What are you looking so hard for?” Then he answers. “I have lost a very important key. I’m looking for it, but I can’t find it.” At his answer, the seeker also stops and begins to search for the key together. “What does the key look like?” “It is a very small key, but it is a key made of gold.” “Oh, I see.”
But no matter how much I looked around, I couldn’t find the key. The exhausted investigator asks the question again. “When did you lose it?” “I don’t know when. It may have been lost a long time ago, or it may have been lost a little while ago.” Upon hearing this, the investigator began to doubt. “Then are you sure you lost something here?” Then the man looking for the key speaks. “no. The place where we lost our keys is our house. “No, then you have to find it at home. Why are you looking here?” “Because it’s brighter here.” Hearing the story, the investigator said that he was shocked. ‘Oh, what was I really looking for? What have I lost?’ I thought, ‘What I really need to find is that it was right where I lived. I have to go back to my place.’ This is the story of returning home after attaining enlightenment.
You’ve probably heard it once or twice. It also contains the wisdom of life. “Why are you looking here?” “Because it’s brighter here.” “Why are you looking here?” “I think it will be a little easier to find here.” In fact, millions of people have similar stupid answers. If you’ve lost something, shouldn’t you be looking for it from where you lost it? Isn’t this normal? However, people tend to forget this fact more than they think. If you lose your keys at home, you have to find them at home. If you leave your wallet in the car, you will probably have to find it in the car first. If you hid a jewel in a closet and lost it, wouldn’t it be appropriate to find it from the closet? Even if it is dark or difficult to see, you have to find it from where you lost it. This is important.
On the one hand, it also matters what we have lost. Some people lose their wallet all the time. Some people take their watches off everywhere. There are some people who simply lose their umbrellas when they go out. On the other hand, there are meticulous people who do not lose. There were people around me who boasted, “I have never lost a button on a shirt until now.” But the problem is that even a person who seems perfect has a sense of loss inside that something is missing. I don’t think there is anyone who has not experienced a sense of loss among those who worship together here.
I grew up with a lot of love from my parents. Even those who seem to lack nothing will feel a sense of loss. Sometimes I feel like a stranger, sometimes I feel like I’m behind something, and I feel depressed and depressed. Others experience an overwhelming sense of loss that makes them think, ‘Why do I have to live?’ In life like this, there are many times when you feel like you have lost something and missed something. Humans inherently live with a terrible sense of loss.
So, what is the root of the feeling of loss? I am living, but I am not happy. There is no shortage, but existential anxiety always lingers. He has a wonderful history and hard work raising children to form a harmonious family. It seems that he lacks nothing, but as he feels the emptiness of life, he feels thirsty as if he has lost something. So many people go on pilgrimage. I go to a temple deep in the mountains to meditate. He also visits prophets, fortune tellers, and shamans. While reading the writings of famous writers or the books of brilliant intellectuals, there are quite a few times when I check ‘Is there anything I have lost?’
<Similar to the story of the seeker, the Bible testifies to the loss of man who has lost God.>
What do you think you have lost? What is it that causes the sense of loss that is instinctively hidden within us? What has human existence lost? There are many ways to answer this, but the Bible clearly answers what man has lost.
The Lord God sent him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plow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born. So God drove out the man, and on the east side of the garden of Eden he placed cherubs and a fiery sword that turned every way to guard the way to the tree of life (Genesis 3:23). ~24)
What does the Bible testify of lost? It is ‘Paradise Lost’. The first thing that humans lost is the Garden of Eden, the land that God originally provided for humans. However, Adam and Eve are expelled from the Garden of Eden. In a paradise that God has made so beautiful. Humans who have lost the kingdom of God will lose two more things at the same time. He lost his close relationship with God and lost eternal life because he could not eat the fruit of the tree of life. This is the first loss of mankind that the Bible tells us about. Because of the sins of Adam and Eve, and because of our sins, we have been cast out of the precious garden that God has prepared for us. A stranger who has left paradise and wandered, he is truly an etranger.
Last week, I said, “The most beautiful scenery is when everything returns to its original place.” In that context, we are like strangers who wander and live without entering the paradise that God has made, the kingdom of God. So, even after earning a lot of money and having a fancy feast, there is no peace in my heart and there are times when I feel loneliness and loss. Even if you are with a beautiful woman and a wonderful man every day, you feel like you have lost something and feel insecure. No matter how nice a house he has, no matter how good he writes, no matter how famous he becomes a politician, a scholar, or even a president, his heart still lives with a sense of loss and insecurity. In a word, we have lost our ‘Paradise Lost’, the paradise that God has made for us.
Then, how can we regain the lost kingdom of God, the Garden of Eden? Where in the world can we find the lost God? Indeed, just like people who foolishly lose their keys at home and diligently search for them by the roadside, there are quite a few of us who search for the lost kingdom of God, the image of God, in the wrong place. Some people try to find the lost God in the proofs and theories of science. They try to find the Garden of Eden there. “Why are you looking here?” If you ask, “Because it’s brighter here.” I will answer. Some people find the lost God in the social phenomenon in which humans live. “Why are you looking here?” If you ask, they will also say, “Because it’s brighter here.” will answer Others want to find the lost kingdom of God in the church. I look forward to seeing the just and beautiful Garden of Eden in the church. They also say, “Because it’s brighter here.” Answer. Some of you may be trying to find the kingdom of God in your spouse. This is like a person who loses his key at home and sets out on the road to find it.
However, if there is a reason why you cannot find God in society, in the church, or even in your family, it is because you have lost God in your heart. The subject who has lost God, the subject who has lost the kingdom of God is not in any other place. That is what I lost, and that is also our existence. It is not that the church and society have lost God, but that I, my existence, have lost God, so I cannot find it anywhere else. Those who do not have God in their heart are looking for God’s kingdom to appear clearly. Because there is no kingdom of God that arises within us, we try hard to find another place because there is no God to be found within us. But no matter where you look, you cannot find the perfect Garden of Eden. The kingdom of God is invisible. Because there is no sense of the presence of the kingdom of God in them. His existence is because he lives without God.
A person who has lost God in his heart suffers from disadvantages, loss of honor, disappointment, even if he/she goes to church diligently, or an official shows that he or she is not good at church work, When it seems that things are not going the way you want them to, you immediately stumble. So there are people wandering around. Of course, there must be good reasons for this. However, some of them often have problems within themselves. “It seems that this church lacks love and does not live according to God’s will.” He criticizes, but he does not know the problems within himself. That is why some leave in search of good sermons, some wander around looking for exemplary churches, and some leave in search of gracious churches. However, no matter how good the sermons are, they cannot satisfy the thirst within themselves. Why? This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the sense of God, and the existence of God do not exist in it.
<At the same time, the Bible tells us about God who truly restores mankind by leading us to see the kingdom of God in our hearts.>
This story appears in the text of the text. The Pharisees ask when the kingdom of God will come. Then the Lord speaks.
can see the kingdom of God
누가복음 17: 20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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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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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한 구도자의 이야기는 상실감을 가지며 살아가는 인간 실존을 보여 줍니다.>
옛날에 한 구도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늘 도를 깨우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자녀들, 이웃들 때문에 도를 깨우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상심하며 살았죠. 그러다 어느 날 마음의 큰 결심을 내립니다. ‘이제 정말 도를 깨우쳐야 하겠다.’ 생각하며 결국 길을 나서게 된 것입니다. 가족을 떠나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소위 속세를 떠나서 도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한낮에 길을 가는 중에 어떤 사람이 길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찾고 있길래 구도자가 묻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찾고 계십니까?” 그러자 대답합니다. “아주 중요한 열쇠를 잃어버렸습니다. 열심히 찾는데 잘 보이지 않네요.” 그의 대답에 구도자도 길을 멈추고 함께 열쇠를 찾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생긴 열쇠입니까?” “아주 작은 열쇠인데 금으로 만든 열쇠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찾아도 열쇠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친 구도자가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언제쯤 잃어버리셨나요?” “언제인지 알 수가 없네요.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이 말을 듣자 구도자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잃어버린 것이 확실합니까?” 그러자 열쇠를 찾던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아니오. 열쇠를 잃어버린 장소는 우리 집입니다. “아니, 그러면 집에서 찾으셔야지 왜 여기서 찾고 계십니까?”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구도자는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 내가 정말 무엇을 찾고 있었는가?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생각하면서 ‘내가 정말 찾아야 할 것은, 내가 살던 바로 그 자리에 있었구나. 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구나.’ 깨달음을 얻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두 번쯤은 들어보셨을 법합니다.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기도 하죠. “왜 여기서 찾고 있습니까?”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왜 여기서 찾고 계십니까?” “여기서 찾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할 것 같아서요.”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게 어리석은 대답을 하곤 합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린 그곳에서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다면 집에서부터 찾아야지요. 자동차에 지갑을 놓고 내렸다면 자동차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입니다. 보석을 장롱에 숨겨 두었다가 잃어버렸다면 장롱에서부터 찾아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어두워도, 힘들어서 잘 보이지 않아도 잃어버린 그곳에서부터 찾아야 하는 법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늘 지갑을 잃어버립니다. 여기저기 시계를 벗어놓고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산을 들고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잃어버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잃어버리지 않는 꼼꼼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와이셔츠 단추 하나도 잃어버린 적이 없다.”고 자랑하시는 분도 제 주변엔 계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완벽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내면에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분들 중에도 상실감을 경험하지 않으신 분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상실감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이방인같이 느껴지고 때로는 무엇인가 뒤떨어진 것같이 느껴지고 허탈한 마음이 들고 우울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더러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생각이 들 만큼 압도하는 상실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놓친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지독한 상실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상실감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살아가고는 있는데 행복하진 않습니다. 부족함은 없는데 존재적인 불안감이 늘 맴돕니다. 근사한 이력도 있고 아이들도 열심히 키워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지면서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산속 깊은 사찰에 들어가서 명상하기도 하죠. 용하다는 예언자나 점술가, 무속인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유명한 작가의 글이나 명철한 지식인의 책을 읽으면서 ‘혹시 내가 잃어버린 것은 없는가?’ 점검할 때가 꽤 있습니다.
<구도자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성경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의 상실감을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안에 본능적으로 숨어 있는 잃어버림의 감각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어날까요? 인간 실존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대답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인간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 3:23~24)
성경은 무엇을 잃었다고 증언합니까? 바로 ‘실낙원’입니다. 인간이 잃어버린 첫 번째는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마련하신 땅, 에덴동산입니다. 그러나 그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 낙원에서 말이죠.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린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를 더 잃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잃어버렸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됨으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전해 주는 인간의 첫 번째 상실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또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귀한 동산으로부터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낙원을 떠나 방황하게 된 이방인, 그야말로 에트랑제(etranger) 신세입니다.
지난 주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신 낙원,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방황하며 사는 이방인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화려한 잔치를 벌여도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외로움과 상실감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과 멋진 남성과 매일 같이 있어도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고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멋진 집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유명한 정치가가 되고 학자가 되어도, 심지어 대통령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상실감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실낙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들어 두신 낙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 에덴동산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어리석게도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길가에서 열심히 찾는 사람처럼 우리 중에도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형상을 엉뚱한 데에서 찾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과학의 증명과 이론 속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으려고 합니다. 에덴동산을 그곳에서 발견하려고 하죠. “왜 여기서 찾으십니까?” 묻는다면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대답할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현상 속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곤 합니다. “왜 여기서 찾습니까?” 묻는다면 그들 역시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대답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에서 찾고자 합니다. 정의롭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의 모습을 교회 안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찾습니다. 그들 역시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대답합니다. 배우자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이러한 모습은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길가에서 열쇠를 찾겠다고 나서는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교회에서, 심지어 가족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주체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한 주체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가 잃어버렸고 그것이 또한 우리의 실존입니다.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바로 내가, 나의 실존이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하나님의 나라가 명료하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자신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곳을 열심히 찾고자 노력하죠. 그러나 어디를 돌아보아도 완전한 에덴동산을 발견할 순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 나라의 임재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실존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도 불리한 일이 생기거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생기거나, 섭섭한 일이 생기거나, 직분자가 교회 일을 잘 못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신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즉시 실족합니다. 그래서 이리저리로 떠돌아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타당한 이유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중 일부는 자신 안에 문제가 있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이 교회는 사랑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다.’ 비판은 하지만 정작 자신 안의 문제는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설교를 찾아 떠나기도 하고 모범적인 교회를 찾아 돌아다니기도 하고, 은혜로운 교회를 찾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들어도 자신 안에 있는 갈급함은 해결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감각, 하나님의 실존이 자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성경은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도록 이끌며 인간을 참되게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전합니다.>
본문 말씀 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올지를 질문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중)
하나님의 나라는 목사의 바람직한 생활 태도나 모습 안에서 발견되지도, 건강한 교회의 모습 속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나라는 이곳에 앉아 계신 여러분, 또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회복할 때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구속의 기쁨으로 가득할 때에 모든 곳에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에 부족한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도 되고, 부족한 직분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되고, 문제가 많다고 여겨지는 교회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과 현존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 주시고 죄를 도말하셨다는 엄청난 고백이 우리 마음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것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구원의 감격 없이, 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살다보면 자존심을 내세우고 명예를 내세우고 일의 순서만을 따지기 쉽습니다. 헌금 설교를 들으면서 상처받기도 하고 교인들끼리 서로 다투고 용서하지도 않고,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원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향하여 “당신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없으니 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 말할 게 아니라 내 안에 솟아오르는 구원의 감격, 내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실존을 누리고 느끼고 경험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박국은 원래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하박국 1~2장을 보면 ‘어찌하여’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구원의 감격을 소유하지 못한 채로는 사회를 보아도, 교회를 보아도 그저 불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어찌하여, 또 어찌하여…” 그런데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자 생각이 달라집니다. 고백 역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화과나무의 무성함이 아닙니다, 포도나무에 열린 탐스러운 열매도 아닙니다. 교회의 멋진 모습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구원의 감격이요, 마음속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에덴동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순간에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매우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있을 그때에 하나님께서도 잃어버린 것이 있으셨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실 만큼 그토록 아끼시던 인간, 바로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 역시 잃어버린 인간을 찾기를 원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렘 50:6)
잃어버린 양떼와 같은 인간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시는 하나님이 구약성경에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인간을 찾고자 큰 결단을 하십니다. 이 땅에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훗날에 주님께서 고백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마 15:24)”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38~40)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시는 목자같이 주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잃어버린 영생을 다시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잃은 자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바로 그분이 우리 가까이에 오셨습니다. 계시록은 주님께서 우리 문 앞에 오셔서 두드리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우리를 찾아서 먼 길을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우리를 얻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영생하는 생명을 얻게 하시고자 죽음을 짊어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찾아오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 주님을 만날 때에 잃었던 모든 것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공동체도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도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증명해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과학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지도 않습니다. 마음속에 잃어버린 하나님이 다시 발견될 때에, 아니 나를 찾으시는 하나님을 내가 경험할 때에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임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서야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진정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찬송가의 가사처럼 우리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고백할 수 있고,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내려주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그런 값지고 귀한 사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3월 2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어리석은 구도자” (눅 17:20-21)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94장, 483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눅 17:20-21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3월 2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옛날에 한 구도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낮에 어떤 사람이 열쇠를 열심히 찾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구도자는 그 사람을 도와 함께 잃어버린 열쇠를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열쇠는 나오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찾다가 구도자가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열쇠를 이곳에서 잊어버린 것이 맞습니까?”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막혔습니다. “아니요. 열쇠를 잃어버린 곳은 우리 집이에요.” 구도자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럼 집에서 찾아야지, 왜 여기에서 열쇠를 찾나요?”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설교의 요약
모든 것은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 당연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한 무엇을 잃어 버렸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상실감이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이방인 같고, 무언가 대열에서 이탈한 것만 같은 그런 지독한 상실감이 우리 모두의 가슴 한켠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그 상실감과 허무함의 근저에는 바로 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만드신 땅인 에덴동산에서 범죄로 인해 추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인간은 두 가지를 잃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잃어버렸고, 둘째는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그곳에서 쫓겨나, 영원히 방황하는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곧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인데, 인간은 제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에트랑제(etranger)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성공을 해도, 아무리 절세미남이나 미인과 매일 뜨거운 사랑을 해도, 아무리 권력과 지식을 많이 쌓고 위대한 업적을 남겨도, 이 상실감과 허무감을 떨쳐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이제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어리석게도,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려놓고는 길가에서 열심히 찾는 사람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엉뚱한 데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과 사회에서 유토피아를 찾습니다. 어떤 이는 교회와 가정에서 이상적인 모습을 찾다가 금새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완전한 에덴동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지요.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는 바람직하고 윤리적인 완결성에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한 교회나 가정, 합리적인 과학과 사회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안에 있으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회복할 때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이 구속의 기쁨으로 가득할 때 우리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누기
1. 나의 상실감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관점으로는 이해받지 못하는, 나의 상실감과 허무함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나아가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인격적이고 실존적으로 경험했던 사건 또는 과정을 진솔히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우리를 다시 찾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곧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찾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다시 발견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주님과 동행하는 그 어디나 하늘나라로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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