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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반 동안 도망자 신세였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아합’, ‘엘리야’는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이라면 들어보셨을 법한 이름입니다. 아합이라는 이름은 열왕기상 16장 28절에 처음 소개됩니다.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왕상 16:29)
아합은 북 이스라엘 왕으로서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남 유다에는 아사 왕이 치리하고 있었습니다. 아합 왕의 치세 동안 이스라엘은 상당히 강력한 나라를 이루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왕이었습니다. 성경이 전합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서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였다. 또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세우고,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 (왕상 16:30~33, 새번역)
이것이 바로 아합 왕의 모습입니다. 이 악한 아합 왕과 더불어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야였습니다. 아합 왕의 악행을 다룬 열왕기상 16장에 이어서 17장에 엘리야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왕상 17:1)
엘리야는 아합 왕의 악행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아합 왕의 악행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으실 거라고 전합니다. 야고보서에 따르면 이후 삼 년 육 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를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예언에 이어 바로 다음 구절인 17장 2절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숨도록 명령하십니다. 단 한마디,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임하리라는 예언을 전했을 뿐인데 그를 숨기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만큼 아합 왕의 위세가 대단했던 걸로 보입니다. 저주의 말 한마디로 엘리야의 목숨이 위태해진 것이죠. 그때부터 엘리야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맙니다. 우선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몸을 숨깁니다. 그곳의 시냇물을 마시면서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으며 생존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다시 임합니다. 이번에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시돈 지역은 이방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까지 엘리야를 보내신 걸 보면 당시 그가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와 오바댜가 만나는 장면에서 이 사실은 보다 분명해집니다(왕상 18장).특별히 열왕기상 18장 10절은 아합이 엘리야를 찾기 위해 모든 나라와 왕국에 사람을 풀어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아합은 엘리야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먼 이국 땅인 사르밧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그곳의 한 과부의 집에서 숨어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삼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가서, 아합을 만나거라. 내가 땅 위에 비를 내리겠다. (왕상 18:1 중, 새번역)
엘리야의 상황이 어떠하였습니까? 아합 왕을 피해서 삼 년 반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심판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 왕을 만나라고 하시면서 비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를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다가 숨어 살며 겨우 생존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달라진 게 있었습니까? 삼 년 반 동안 아합 왕이 회개했나요? 이세벨이 죽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간구가 지금 응답된 것일까요? 사실 어떤 조건도 변한 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거두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엘리야로 하여금 전하도록 하십니다.
그 땅에는 여전히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우상을 섬길 뿐입니다. 그럼에도 나라의 위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죠. 비만 내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마저 허락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어땠을까요?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시겠다고 하시는가?’ 못마땅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순종합니다. 그리고는 아합 왕을 만나서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걸로 보아 아마도 엘리야 자신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갈멜산의 제사입니다.
그가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이 갈멜산으로 나아오도록 제안합니다. 그곳에서 과연 어느 신이 진짜인지 시험하자고 하죠.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이 함께 서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제사의 결말은 하나님의 승리, 엘리야의 승리였습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와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심지어 도랑의 물까지 핥았다고 전합니다. 그때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기손 시냇가로 끌고 가게 하여 죽이도록 명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죠.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왕상 18:41)
아마도 그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멸하면서 아합 왕과 이세벨도 함께 처단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합 왕에게 비 소식을 전합니다.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야말로 진짜 신이라는 사실을 온 천하에 드러내며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스스로 그분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다시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엘리야와 아합 왕의 마지막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엘리야가 다시 도망가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이 엘리야의 목숨을 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엘리야는 또다시 도망자 신세로 전락합니다. 성경은 당시 엘리야의 절박한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왕상 19:3~4, 새번역)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있던 그가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왕상 19:10)
그렇게 엘리야가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며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사람 나봇에게 포도원이 있었는데 아합의 궁과 가까웠습니다. 아합은 그 포도원을 자기 밭으로 사용하려고 요청하죠. 하지만 나봇은 이것이 조상의 유산이므로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며 거절합니다. 근심에 차 있는 아합을 보자 이세벨이 모함을 꾀하기 시작합니다. 불량자 두 사람을 시켜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계략을 꾸밉니다. 결국 나봇은 무리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고, 아합은 포도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숨어 있던 엘리야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왕상 21:17~19)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엘리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 드디어 왔구나. 드디어 하나님께서 결단하셨구나! 하나님께서 아합 왕을 치시기로 결정하셨구나! 이세벨을 확실하게 징벌하시기로 결정하셨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드디어 정의가 도래하는구나.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나는구나.’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자,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이제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달려갑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아합이 말합니다.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왕상 21:20 중)
새번역은 보다 실감나게 번역합니다.
내 원수야, 네가 또 나를 찾아왔느냐 (왕상 21:20 중, 새번역)
아합 왕은 원수 대하듯 그렇게 엘리야를 대합니다. 마치 석양에서의 전투와 같은 흥미진진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이 전투에서 악한 왕 아합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아합 왕과 이세벨의 파멸을 보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보자! 악한 아합 왕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 그가 어떻게 죽는지 보자! 그가 어떻게 심판당하는지 보자! 드디어 악의 섬멸이구나. 악의 심판이구나.’ 이런 마음으로 아합 왕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이후의 상황은 엘리야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됩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엘리야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며 하나님의 뜻을 보입니다.>
아합은 이 말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고 맨몸에 굵은 베 옷을 걸치고 금식하였으며, 누울 때에도 굵은 베옷을 입은 채로 눕고, 또 일어나서 거닐 때에도 슬픈 표정으로 힘없이 걸었다. (왕상 21: 27, 새번역)
성경은 우리에게 아합 왕의 모습을 증언해 줍니다. 그런데 그가 정말 애통하며 회개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가식적이었는지도 모르죠. 슬픈 척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엘리야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가증스럽지 않았을까요? 엘리야의 눈에는 아합 왕이 참으로 보기 싫었을 겁니다. 죄 없는 나봇을 죽이고 재산을 하나라도 더 얻고자 사람들을 동원해서 모함하고 죽여야만 했던 왕과 왕비가 얼마나 가증스러웠겠습니까? 참으로 큰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또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렸습니까? 게다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이방 신을 가져다가 신전을 만들고 절하고 춤추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니 당연히 벌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왕상 21:29)
제가 만약 하나님이라면 아합 왕을 보면서 “네가 과연 제대로 회개하고 있느냐?” 되물을 법한데,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이 슬픈 표정으로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는 마음을 누그러트리셨습니다. 아합 왕에 대한 심판을 연기하시겠다고까지 선언하시죠. 사실 이 장면은 엘리야와 아합이 마지막으로 조우한 장면입니다. 그런 점에서 엘리야의 입장에서는 아합과의 조우가 허탈하게 끝나는 게 좋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엘리야와 아합의 만남은 참으로 파란만장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수없이 쫓기며 살았습니다. 때로는 멀리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아 보입니다. 만일에 엘리야가 아합 왕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는 마지막 모습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도리어 하나님은 회개하는 척하는 아합 왕을 향하여 진노를 누그러트리십니다. 멋진 결론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사뭇 생각지도 못한 결론이 던져진 소설과도 같아 보입니다.
악한 사람이 죄의 대가를 치르는 일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심판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멋진 결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결정을 바꾸셨을까요?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뜻을 바꾸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나봇의 죽음으로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아합 왕을 심판하시겠다고 엘리야를 다시 불러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합 왕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걷고 있는 모습을 보자 도리어 엘리야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손해진 것을 보았느냐?” 그러시면서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겠다고 뜻을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변화시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엘리야가 상대한 아합과 하나님께서 상대하신 아합이 서로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야가 생각한 아합은 악의 축입니다. 그 사람만 없으면 무고한 사람이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 사람만 없으면 세상이 달라졌겠죠. 그러니 엘리야에게 아합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행위만 골라서 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정의롭지 않은 자입니다. 반드시 쓰러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살 만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아합은 다릅니다. 악행을 저지르고 하나님 보시기에 나쁜 일만 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를 불쌍히 여기시며 어떻게 하면 구원할 수 있을까 생각하십니다. 그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는 듯 보입니다. 요나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니느웨의 구원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많은 사람들이 구원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는 악의 패배와 선의 승리를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악인이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루 속히 구원받기를 원하며 그날을 기다리지만, 하나님은 문을 열어 놓으시며 구원받는 자가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사야서 55장 8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그러면서 앞선 7절에서는 악한 자가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가 그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생각은 악한 자의 징벌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악한 자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사야서 56장입니다.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사 56:8)
여러분, 이 안에는 참으로 악했던 아합 왕도, 예수님 우편에서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너무나도 폐쇄적이었고 세상을 향해 공격적이지 않았는가 반성하게 됩니다. 엘리야처럼 아합과 이세벨을 대항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 천하에 보이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승리를 보이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그러나 그토록 악한 아합조차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범주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우리 삶 속에서 긍휼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알고, 함께 품기를 원하십니다.
Elijah, Ahab and God
1 Kings 21: 16-19, 27-29
Ahab’s name first appears in the Bible in 1 Kings 16:28.
“Ahab son of Omri began to rule over Israel in the thirty-eighth year of King Asa’s reign in Judah. He reigned in Samaria twenty-two years.”(1 Kings 16:29 NLT)
Ahab, king of the Kingdom of Israel in the north, ruled over Samaria. At the time, King Asa ruled over the Kingdom of Judah in the south.
Israel seemed to have grown into a powerful nation during Ahab’s reign. Yet in the Lord’s sight Ahab was an evil king. This is how the Bible sums him up:
“But Ahab son of Omri did what was evil in the Lord’s sight, even more than any of the kings before him. And as though it were not enough to follow the sinful example of Jeroboam, he married Jezebel, the daughter of King Ethbaal of the Sidonians, and he began to bow down in worship of Baal. First Ahab built a temple and an altar for Baal in Samaria. Then he set up an Asherah pole. He did more to provoke the anger of the Lord, the God of Israel, than any of the other kings of Israel before him.” (1 Kings 16:30-33 NLT)
The prophet who ministered during the reign of this infamous king was none other than Elijah. Elijah’s name first comes up in 1 Kings 17:1, immediately after the record of Ahab’s evil deeds in 1 Kings 16:
“Now Elijah, who was from Tishbe in Gilead, told King Ahab, ‘As surely as the Lord, the God of Israel, lives—the God I serve—there will be no dew or rain during the next few years until I give the word!’”(1 Kings 17:1 NLT)
Elijah was called to prophesy God’s judgement against Ahab and his evil deeds. Elijahprophesied that God would withhold all rain and dew from Israel due to Ahab’s wickedness. According to the book of James, Israel saw no rain for three and a half years after this prophesy.
After Elijah declared this message, however, God urgently commanded Elijah to go and hide by Kerith Brook. Why did God have Elijah hide himself when all he did was declare a famine? I believe it was because Ahab was overwhelmingly powerful.Elijah’s life was in danger due to that single message. After giving his prophesy in 1 Kings 17:1, Elijah became a fugitive.
First, Elijah hid by Kerith Brook. He drank from the brook and survived on the food brought to him by the ravens.
Then God’s word came upon him. The Lord told him to go to Zarephath, a village near the city of Sidon. Sidon was notin Israel, but in a foreign land. The fact that God sent His prophet to such a distant land reveals the grave danger he was in. Elijah’s precarious situation becomes clearer in Obadiah’s words spoken to Elijah in 1 Kings 18:10. When Obadiah came to meet Elijah, he mentioned that Ahab “has searched every nation and kingdom on earth from end to end” to find him. Ahab was determined to capture Elijah, which was why Elijah had to go all the way to Zarephath to hide in a widow’s house for a considerably long period of time.
Three years passed. And in 1 Kings 18 God spoke to Elijah again. This time He told him to go and present himself to Ahab. What a difficult and unacceptable command for Elijah!This is what the Lord commanded him:
“Go and present yourself to King Ahab. Tell him that I will soon send rain!” (1 Kings 18:1 NLT)
Three years earlier, Elijah faithfully followed God’s command and delivered His message to the king. He prophesied that there would be no rain or dew for the next few years. He spoke of judgement. And he became a fugitive because of these words. For three and half years, he lived under a constant threat, hiding himselfin a widow’s house in a foreign country.
Now God was telling him to present himself to Ahab. God was saying that He would bring rain.
What changed during those years? Did Ahab repent? Did Jezebel die? Did the people of Israel turn to the Lord and pray? No. Nothing had changed. Yet God told Elijah that He would ease His judgment on Israel. This was the message Elijah had to deliver.
Israel was still full of priests of Baal and Asherah who served their repulsive gods with greater fervor. In spite of this, Israel only grew stronger as a nation. The only problem was the drought. But God was saying that He would now end that drought.
Why did God decide to give Israel rain? I can imagine Elijah’s discontent at God’s decision. Yet he obeyed the Lord’s command and met with Ahab, giving him a proposal. As you well know, Elijah proposed that he and the priests of Baal each give their sacrifices at Mount Carmel to see whose God will answer.
He demanded that 450 priests of Baal and 400 priests of Asherah gather on Mount Carmel to compete with him, to see whose God/god would answer. It appears that many prophets of God were killed when Elijah as in hiding. So on Mount Carmel only Elijah stood before God, while a total of 850 priests of Baal and Asherah gathered. As we know well, the result was the complete victory of God and Elijah. The Bible says that God’s fire flashed down from heaven and burned up not just Elijah’s sacrifice, the wood, the stones, and the dust, but even licked up all the water in the trench.
After his victory, Elijah seized all the prophets of Baal and Asherah, took them to the Kishon Valley, and killed them all. Then he delivered God’s message:
“Then Elijah said to Ahab, ‘Go get something to eat and drink, for I hear a mighty rainstorm coming!’”(1 Kings 18:41 NLT)
Don’t you think Elijah would have wanted to judge Ahab as well when he killed all the prophets of Baal and Asherah? Don’t you think he wanted to execute Jezebel, too? But he didn’t. Instead of judging them, he proclaimed God’s news of rain.
Even though Israel had not repented, Elijah displayed to the world that God was the true God, showing Ahab and Jezebel thatthe Lord sends rain. Even though they had not repented, God gave them rain to prove He is alive.
Then what happened to Elijah after this incident? He was on the run again. Jezebel, hearing that the prophets of Baal and Asherah were murdered, set out to kill the one responsible for their deaths.
So Elijah became a fugitive once again. The Bible describes the urgency with which he fled:
“Elijah was afraid and fled for his life. He went to Beersheba, a town in Judah, and he left his servant there. Then he went on alone into the wilderness, traveling all day. He sat down under a solitary broom tree and prayed that he might die. ‘I have had enough, Lord,’ he said. ‘Take my life, for I am no better than my ancestors who have already died.’” (1 Kings 19:3-4 NLT)
Can you imagine Elijah’s state of mind when he was forced to flee again? He cried out in misery under the broom tree.
“Elijah replied, ‘I have zealously served the Lord God Almighty. But the people of Israel have broken their covenant with you, torn down your altars, and killed every one of your prophets. I am the only one left, and now they are trying to kill me, too.’” (1 Kings 19:10 NLT)
Whenthis embittered prophetwas on the run again, something happened in Israel. There was a man in Israel named Naboth who owned a vineyard close to the king’s palace. Ahab, upon seeing it, asked Naboth to sell it to him. But Naboth refused, saying that God forbade him to sell the inheritance of his ancestors. So, Jezebel, seeing the crestfallen Ahab, sent two scoundrels to falsely accuse Naboth of cursing God and the king. Naboth ended up being stoned to death, and Ahab got his vineyard.
After this incident, God spoke to Elijah again, who was in hiding:
“But the Lord said to Elijah, ‘Go down to meet King Ahab of Israel, who rules in Samaria. He will be at Naboth’s vineyard in Jezreel, claiming it for himself. Give him this message: ‘This is what the Lord says: Wasn’t it enough that you killed Naboth? Must you rob him, too? Because you have done this, dogs will lick your blood at the very place where they licked the blood of Naboth!’” (1 Kings 21:17-19 NLT)
Can you imagine Elijah’s response upon hearing these words? ‘Aha! Finally, I will see the destruction of Ahab and Jezebel! God has finally made His decision!’ Perhaps these were some of his thoughts.He probably couldn’t wait to deliver God’s judgement on King Ahab.
Finally Elijah met Ahab. When Ahab saw Elijah, this is what he said:
“So, my enemy, you have found me!” (1 Kings 21:20 NLT)
The Message Bible translates this more dynamically:
“My enemy! So, you’ve run me down!”(1 Kings 21:20 MSG)
This islike a final duel scene in a movie with the sun setting behind the two protagonists. Now evil will be judged. Ahab will pay his price. Elijah, standing on God’s side, will soon see justice delivered.
At this critical moment, Elijah boldly delivers God’s message of judgement to his enemy:
“‘Yes,’ Elijah answered, ‘I have come because you have sold yourself to what is evil in the Lord’s sight. So now the Lord says, ‘I will bring disaster on you and consume you. I will destroy every one of your male descendants, slave and free alike, anywhere in Israel! I am going to destroy your family as I did the family of Jeroboam son of Nebat and the family of Baasha son of Ahijah, for you have made me very angry and have led Israel into sin.’ ‘And regarding Jezebel,’ the Lord says, ‘Dogs will eat Jezebel’s body at the plot of land in Jezreel.’ ‘The members of Ahab’s family who die in the city will be eaten by dogs, and those who die in the field will be eaten by vultures.’”(1 Kings 21:20-24 NLT)
Elijah would have been excited to finally witness God’s justice be done. ‘Finally!The time has come to punish all evil. Yes, God is just! He cannot withstand evil!’ Perhaps this was what he was thinking as he confidently proclaimed judgement on Ahab and his family.
But the story unravels in an entirely unexpected way:
“But when Ahab heard this message, he tore his clothing, dressed in burlap, and fasted. He even slept in burlap and went about in deep mourning.” (1 Kings 21:27 NLT)
Ahab “pretended” to repent and grieve. How despicable! In Elijah’s eyes, I mean. Ahab was a low-life criminal who murdered an innocent man, a king who maliciously killed all the godly prophets of Israel. Didn’t he deserve the heaviest of punishments?
Yet another message of God came to Elijah:
“Do you see how Ahab has humbled himself before me? Because he has done this, I will not do what I promised during his lifetime. It will happen to his sons; I will destroy his dynasty.”(1 Kings 21:29)
God declared that He would defer His judgement on Ahab.
This was Elijah’s final encounter with Ahab. How would Elijah have felt after hearing these words of God? His relationship with Ahab was a dreadful and dramatic one. Ahab chased him endlessly, forcing him to run far, far away.
But, reading today’s Scripture, we learn that their relationship ends in a dissatisfying way.
Ahab had it coming. He ought to have received God’s full wrath. But, instead, he repented, and God’s wrath diminished. This is what the Bible records.
How could this be? This story of Ahab and Elijah is like an uncanny novel that throws a totally unexpected ending at its readers who had been patiently waiting for a magnificent finish.
Wouldn’t it have been wonderful if the story ended with the evil king getting the judgement he deserved and receiving the full wrath of God?
But in the story of Ahab and Elijah God emergesas One who continues to change His will. First, He was angry at Ahab for murdering Naboth and declared judgement on him. But when He saw Ahab dress in sackcloth, fast, and grieve, He changed His mind. He said to Elijah, ‘Do you see how Ahab has humbled himself? Because of this, I will not do to him what I promised during his lifetime.’
God’s heart changed continuously. What on earth made Him change His mind?
I think the answer lies inthat “the Ahab in Elijah’s eyes” and “the Ahab in God’s eyes” were different.
In Elijah’s sight, Ahab was the axis of evil, a man who deserved to die, a king who did only evil things before God. The world would surely be better off without him. Therefore, Elijah longed to see his fall.
But God saw Ahab differently. Ahab was still an evil man who did only evil before the Lord. Yet God continued to have mercy on him. God waited for him to turn to Him. Wasn’t this exactly how God felt about the people of Nineveh in the book of Jonah?
God’s will is to save more. Even now God wants as many people as possible to come to Him. This is God’s grand plan. This is the principle that God applies to us and the world.
We want a just ending, evil destroyed and good victorious, but God wantseven the wicked to return to Him. We want a certain future. That is, we want His holy people to be saved as soon as possible. But God continues to leave the door open for the evil ones. He desires that one more soul be saved today. This is the unchanging will of God even today.
God declared in the book of Isaiah,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Isaiah 55:8 NIV) He also said in the preceding verse, “Let the wicked forsake their ways and the righteous their thoughts. Let them turn to the Lord, and he will have mercy on them, and to our God, for he will freely pardon.” (Isaiah 55:7 NIV)
And what does it say in Isaiah 56:8? “The Sovereign Lord declares—he who gathers the exiles of Israel: ‘I will gather still others to them beside those already gathered.’” (Isaiah 56:8 NIV)
The “others” include even Ahab, the thief who was crucified next to Jesus, and those who live their entire life in an ungodly way. This is the heart of God. And this is the heart that we ought to have toward the world.
Christianity today seems to have becomeclosed and too aggressive. Christians today resemble Elijah who was bent on showing the world that God is alive by going up against the evil Ahab and Jezebel, the prophet who wanted to put God’s victory on display.
But we must remember that God’s will was different. His mercy extended to even people like Ahab.
We need a heart of mercy. We must have mercy on the world and our family.
God desires that we understand His heart of mercy and possess the same heart as His.
열왕기상 21: 16 ~ 29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17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삼 년 반 동안 도망자 신세였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아합’, ‘엘리야’는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이라면 들어보셨을 법한 이름입니다. 아합이라는 이름은 열왕기상 16장 28절에 처음 소개됩니다.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왕상 16:29)
아합은 북 이스라엘 왕으로서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남 유다에는 아사 왕이 치리하고 있었습니다. 아합 왕의 치세 동안 이스라엘은 상당히 강력한 나라를 이루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왕이었습니다. 성경이 전합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서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였다. 또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세우고,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 (왕상 16:30~33, 새번역)
이것이 바로 아합 왕의 모습입니다. 이 악한 아합 왕과 더불어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야였습니다. 아합 왕의 악행을 다룬 열왕기상 16장에 이어서 17장에 엘리야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왕상 17:1)
엘리야는 아합 왕의 악행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아합 왕의 악행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으실 거라고 전합니다. 야고보서에 따르면 이후 삼 년 육 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를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예언에 이어 바로 다음 구절인 17장 2절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숨도록 명령하십니다. 단 한마디,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임하리라는 예언을 전했을 뿐인데 그를 숨기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만큼 아합 왕의 위세가 대단했던 걸로 보입니다. 저주의 말 한마디로 엘리야의 목숨이 위태해진 것이죠. 그때부터 엘리야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맙니다. 우선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몸을 숨깁니다. 그곳의 시냇물을 마시면서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으며 생존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다시 임합니다. 이번에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시돈 지역은 이방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까지 엘리야를 보내신 걸 보면 당시 그가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와 오바댜가 만나는 장면에서 이 사실은 보다 분명해집니다(왕상 18장).특별히 열왕기상 18장 10절은 아합이 엘리야를 찾기 위해 모든 나라와 왕국에 사람을 풀어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아합은 엘리야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먼 이국 땅인 사르밧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그곳의 한 과부의 집에서 숨어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삼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가서, 아합을 만나거라. 내가 땅 위에 비를 내리겠다. (왕상 18:1 중, 새번역)
엘리야의 상황이 어떠하였습니까? 아합 왕을 피해서 삼 년 반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심판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 왕을 만나라고 하시면서 비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를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다가 숨어 살며 겨우 생존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달라진 게 있었습니까? 삼 년 반 동안 아합 왕이 회개했나요? 이세벨이 죽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간구가 지금 응답된 것일까요? 사실 어떤 조건도 변한 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거두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엘리야로 하여금 전하도록 하십니다.
그 땅에는 여전히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우상을 섬길 뿐입니다. 그럼에도 나라의 위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죠. 비만 내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마저 허락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어땠을까요?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시겠다고 하시는가?’ 못마땅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순종합니다. 그리고는 아합 왕을 만나서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걸로 보아 아마도 엘리야 자신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갈멜산의 제사입니다.
그가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이 갈멜산으로 나아오도록 제안합니다. 그곳에서 과연 어느 신이 진짜인지 시험하자고 하죠.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이 함께 서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제사의 결말은 하나님의 승리, 엘리야의 승리였습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와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심지어 도랑의 물까지 핥았다고 전합니다. 그때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기손 시냇가로 끌고 가게 하여 죽이도록 명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죠.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왕상 18:41)
아마도 그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멸하면서 아합 왕과 이세벨도 함께 처단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합 왕에게 비 소식을 전합니다.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야말로 진짜 신이라는 사실을 온 천하에 드러내며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스스로 그분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다시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엘리야와 아합 왕의 마지막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엘리야가 다시 도망가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이 엘리야의 목숨을 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엘리야는 또다시 도망자 신세로 전락합니다. 성경은 당시 엘리야의 절박한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왕상 19:3~4, 새번역)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있던 그가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왕상 19:10)
그렇게 엘리야가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며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사람 나봇에게 포도원이 있었는데 아합의 궁과 가까웠습니다. 아합은 그 포도원을 자기 밭으로 사용하려고 요청하죠. 하지만 나봇은 이것이 조상의 유산이므로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며 거절합니다. 근심에 차 있는 아합을 보자 이세벨이 모함을 꾀하기 시작합니다. 불량자 두 사람을 시켜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계략을 꾸밉니다. 결국 나봇은 무리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고, 아합은 포도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숨어 있던 엘리야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왕상 21:17~19)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엘리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 드디어 왔구나. 드디어 하나님께서 결단하셨구나! 하나님께서 아합 왕을 치시기로 결정하셨구나! 이세벨을 확실하게 징벌하시기로 결정하셨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드디어 정의가 도래하는구나.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나는구나.’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자,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이제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달려갑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아합이 말합니다.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왕상 21:20 중)
새번역은 보다 실감나게 번역합니다.
내 원수야, 네가 또 나를 찾아왔느냐 (왕상 21:20 중, 새번역)
아합 왕은 원수 대하듯 그렇게 엘리야를 대합니다. 마치 석양에서의 전투와 같은 흥미진진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이 전투에서 악한 왕 아합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아합 왕과 이세벨의 파멸을 보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보자! 악한 아합 왕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 그가 어떻게 죽는지 보자! 그가 어떻게 심판당하는지 보자! 드디어 악의 섬멸이구나. 악의 심판이구나.’ 이런 마음으로 아합 왕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이후의 상황은 엘리야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됩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엘리야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며 하나님의 뜻을 보입니다.>
아합은 이 말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고 맨몸에 굵은 베 옷을 걸치고 금식하였으며, 누울 때에도 굵은 베옷을 입은 채로 눕고, 또 일어나서 거닐 때에도 슬픈 표정으로 힘없이 걸었다. (왕상 21: 27, 새번역)
성경은 우리에게 아합 왕의 모습을 증언해 줍니다. 그런데 그가 정말 애통하며 회개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가식적이었는지도 모르죠. 슬픈 척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엘리야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가증스럽지 않았을까요? 엘리야의 눈에는 아합 왕이 참으로 보기 싫었을 겁니다. 죄 없는 나봇을 죽이고 재산을 하나라도 더 얻고자 사람들을 동원해서 모함하고 죽여야만 했던 왕과 왕비가 얼마나 가증스러웠겠습니까? 참으로 큰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또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렸습니까? 게다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이방 신을 가져다가 신전을 만들고 절하고 춤추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니 당연히 벌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왕상 21:29)
제가 만약 하나님이라면 아합 왕을 보면서 “네가 과연 제대로 회개하고 있느냐?” 되물을 법한데,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이 슬픈 표정으로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는 마음을 누그러트리셨습니다. 아합 왕에 대한 심판을 연기하시겠다고까지 선언하시죠. 사실 이 장면은 엘리야와 아합이 마지막으로 조우한 장면입니다. 그런 점에서 엘리야의 입장에서는 아합과의 조우가 허탈하게 끝나는 게 좋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엘리야와 아합의 만남은 참으로 파란만장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수없이 쫓기며 살았습니다. 때로는 멀리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아 보입니다. 만일에 엘리야가 아합 왕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는 마지막 모습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도리어 하나님은 회개하는 척하는 아합 왕을 향하여 진노를 누그러트리십니다. 멋진 결론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사뭇 생각지도 못한 결론이 던져진 소설과도 같아 보입니다.
악한 사람이 죄의 대가를 치르는 일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심판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멋진 결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결정을 바꾸셨을까요?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뜻을 바꾸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나봇의 죽음으로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아합 왕을 심판하시겠다고 엘리야를 다시 불러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합 왕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걷고 있는 모습을 보자 도리어 엘리야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손해진 것을 보았느냐?” 그러시면서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겠다고 뜻을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변화시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엘리야가 상대한 아합과 하나님께서 상대하신 아합이 서로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야가 생각한 아합은 악의 축입니다. 그 사람만 없으면 무고한 사람이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 사람만 없으면 세상이 달라졌겠죠. 그러니 엘리야에게 아합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행위만 골라서 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정의롭지 않은 자입니다. 반드시 쓰러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살 만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아합은 다릅니다. 악행을 저지르고 하나님 보시기에 나쁜 일만 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를 불쌍히 여기시며 어떻게 하면 구원할 수 있을까 생각하십니다. 그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는 듯 보입니다. 요나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니느웨의 구원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많은 사람들이 구원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는 악의 패배와 선의 승리를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악인이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루 속히 구원받기를 원하며 그날을 기다리지만, 하나님은 문을 열어 놓으시며 구원받는 자가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사야서 55장 8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그러면서 앞선 7절에서는 악한 자가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가 그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생각은 악한 자의 징벌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악한 자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사야서 56장입니다.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사 56:8)
여러분, 이 안에는 참으로 악했던 아합 왕도, 예수님 우편에서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너무나도 폐쇄적이었고 세상을 향해 공격적이지 않았는가 반성하게 됩니다. 엘리야처럼 아합과 이세벨을 대항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 천하에 보이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승리를 보이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그러나 그토록 악한 아합조차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범주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우리 삶 속에서 긍휼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알고, 함께 품기를 원하십니다.
2022년 2월 2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엘리야, 아합 그리고 하나님” (왕상 21:16-19, 27-29)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5장, 368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왕상 21:16-19, 27-29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2월 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본, 벌을 받아야 마땅한 악한 사람들 중 혹시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악한 사람들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야 사회적인 질서가 유지되고 불법을 저지르는 악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누가 보아도 명백한 죄인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설교의 요약
성경에서 북이스라엘의 아합 황은 매우 악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악행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훨씬 더 심한 수준이었으며 오히려 앞질러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악한 왕인 아합의 등장과 더불어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는 바로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의 시대에 아합왕의 악행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합왕의 악행으로 하나님께서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이후 3년 6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삼년 반동안 도망을 다니며 사르밧으로 가서 숨어지는 긴 시간을 지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다시 아합 왕의 앞에 섰습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회개하지도 않았고, 이세벨이 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조건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와 함께 하셨고, 결국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 850명대 엘리야 한 사람의 대결은 엘리야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아합와 이세벨은 끊임없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고, 엘리야는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합 왕은 왕궁 근처에 있는 나봇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포도원이 탐이 났습니다. 아합은 나봇이 이 땅을 팔지 않자, 음모를 꾸며 나봇에게 누명을 씌운 뒤 그를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엘리야는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드디어 아합과 이세벨의 최후를 볼 수 있겠구나!’ 엘리야는 큰 기대를 가지고 아합에게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은 아합이 돌연 옷을 찢으며 금식하고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런 아합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아합 왕에 대한 심판을 뒤로 연기하시겠다고 선포하시는 겁니다. 엘리야는 기가 찰 노릇입니다. 엘리야에게 아합 왕은 악의 축이자, 저 사람만 없어져도 세상이 달라질 것같고, 저 사람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이 회개를 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니느웨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에 달려 있던 강도까지. 우리는 악의 패배와 선의 승리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악인이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는 확정된 미래, 곧 구원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 구원의 수가 더 늘어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나누기
1.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이가 있습니까?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2. 엘리야와 아합이 만나는 이야기는 본문을 마지막으로 성경에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그 뒤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엘리야는 아합을 결국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기도
불의한 아합까지도 품으시는 하나님의 그 넓으신 마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며, 그 마음을 품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정죄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도 닮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그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