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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인 시편 23편은 아마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다윗의 시편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는 언제 어디서 읽어도 참 좋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백일이 될 때, 이 시편 23편을 읽어주면 그렇게 은혜가 되고 좋습니다. 또 아이가 자라서 결혼할 때, 이 시편 23편을 읽고 축복하면 그렇게 귀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생의 모든 삶을 누리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장례식장에서도 이 시편의 말씀은 잘 어울리면서도 큰 은혜가 됩니다. 함께 읽어도 귀하고, 혼자 묵상해도 언제나 심금을 울리는 시편 23편입니다.
왜 이 시편이 이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힘이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이 시편에 내재된 ‘삶의 고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라는 한 사람의 진솔한 삶의 고백이 이 시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훌륭한 시에 설교랍시고 첨언하는 것은 사족이 되거나 덧칠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이 고백을 다윗의 고백이 아닌 ‘나의 고백’으로 받아 주시기를 원하면서, 또 그와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3편 1절 첫 부분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내 목자가 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목자가 아니고, 저희들의 목자도 아니고, ‘나의 목자’가 되신다고 말합니다. 시편 23편을 읽어보니, 이 짧은 6절까지의 말씀에 ‘나’, ‘내’라는 1인칭 대명사가 무려 14번이나 나옵니다. 영어 성경도 찾아봤더니 ‘I’ 혹은 ‘me’라는 1인칭이 17번이나 나옵니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오늘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나의 고백’을 드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목자가 되신다니 다른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시고, 하나님이 내 친구가 되시고,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시며,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데,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우리 인생의 목자로 삼지 않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만 저와 여러분의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명예나 체면이 우리를 이끄는 목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질적 풍요나 여유가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조차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목자요, 내 삶의 목표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돈도, 명예도, 사람도 우리의 목자일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나의 목자로 삼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은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목자’ 되신 여호와, 곧 ‘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까? 오늘 본문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1~2)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을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양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만 있다면,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풀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피곤하면 풀밭에 누워서 자면 그뿐입니다. 더이상 양에게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고백을 하지 못할까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쩌면 우리의 욕심이 우리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실 깨끗한 옷 한 벌이면 충분하지만, 우리는 명품 옷을 욕심냅니다. 구두도 명품이면 좋겠고, 핸드백도, 지갑도, 시계도,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도 더 좋은 것이면 좋겠습니다. 더 큰 회사면 좋겠고, 더 월급이 많으면 좋겠고, 더 큰 차면 좋겠고, 더 넓은 집이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욕심은 우리를 늘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다윗처럼, “여호와가 내 목자시니 저는 부족하지 않습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없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가 없고, 매일 달라는 기도와 불평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꼭 필요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주셨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다른 욕심으로 끊임없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UN 산하에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라는 기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 기관에서 매년 150개 이상의 국가를 대상으로 삶의 질 조사, 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2016년에는 10점 만점에 5.83으로, 58위를 기록했습니다. 2017년에도 5.83으로, 55위, 작년 2018년에는 조금 올라서 5.87이었지만, 순위는 오히려 내려가서 57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 심리학회가 모 일간지 신문사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의 평균 행복지수가 100점 만점에 63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행복지수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사실 한국의 행복지수가 63점이나 될 수 있었던 것은 강원도 거주자들이 자신들은 71점 행복하다고 답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서울과 수도권의 거주자들이 점수를 다 깎아 먹어서 59점 행복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서울이 훨씬 더 편하고 좋을 것 같은데, 왜 서울에 있는 분들의 행복지수가 더 낮은 것일까요?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는 이제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데, 왜 행복지수는 거의 50위권 후반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저는 경제학 전공도 아니고, 행복을 어떻게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마 내가 갖고 싶은 것, 우리의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10가지가 욕심나는데, 10가지를 다 갖고 있다면 100점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인간이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10가지를 갖게 되면 20가지를 욕심내는 게 우리이지 않습니까? 20가지를 갖게 되면 100가지가 욕심이 납니다. 우리 인간의 욕심은 밑도 끝도 없는 구덩이와 같습니다. 결코 채울 수 없는 구덩이와 같지요. 오늘 우리의 욕심을 줄인다면, 어쩌면 우리가 좀 더 행복에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나의 죄를 씻어 주시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나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복에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음송 가운데 ‘얼마나 아프실까’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 가슴은 독생자 주셨건만 인간들 부족하다 원망할 때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심령은 자신을 주셨건만 사람들 부인하며 욕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주셨건만, 주님이 내 친구가 되셨건만, 나는 계속 이런저런 욕심으로 다른 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또 다른 은혜가 없을까요?”라고 구했던 것이 우리의 못난 모습입니다.
또 다른 복음송에 이런 가사도 있습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이제 정말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은혜를 구하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좋으신 내 목자이신 것을 알기에, 그 한 분만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34편 9~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9~10)
오늘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 나의 필요를 따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허락해 주시는 그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은 나와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이 또 어떤 분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까? 오늘 본문 3~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3~4)
오늘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분이라고, 함께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이 늘 햇살만 비치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쩌면 오히려 비가 오고 어두운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랍의 속담에 “해만 밝게 비치고 비가 오지 않으면 사막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씨줄과 날줄처럼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함께 허락해 주셨습니다. 산을 오를 때도 언덕이 있으면 골짜기가 분명히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 어두운 터널과 같은 골짜기가 밝은 날보다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통곡의 골짜기, 재난의 골짜기, 눈물의 골짜기, 오늘 본문이 말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힘이 들어서 눈물을 흘릴 수는 있겠지만, 절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양들이 다니다 보면 웅덩이에 빠질 때가 있지요. 그때는 목자가 지팡이를 웅덩이에 내려 주어 양이 지팡이를 타고 올라오게 해 줍니다. 또 어떤 때는 사나운 짐승이 양을 해치려고 노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목자의 지팡이가 막대기가 되어 사나운 짐승을 물리치고 양들을 안위해 줍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해 주며, 함께해 주고, 사망의 골짜기에서 동행해 주는 한,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분께 감사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사야 43:2)
오늘 하나님께서 물 가운데, 불꽃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켜 주시고 함께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내 목자 되신 그분께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찬송 하나가 생각나서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그 찬송이 새찬송가에서는 빠졌습니다. 예전 찬송가에 있던 찬송인데요. 그래서 그 찬송을 찾아서 집에서 찬양하며 다시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전 찬송가 494장에 있던 찬송인데, 1절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나 죄 중에 헤매며 다녔지만 날 버리지 않으심 믿습니다 나 가는 길 주께서 지키시며 늘 동행해 주시네 주 언제나 나 함께 늘 동행해 주시네 주 날마다 내게 이김 주고 늘 동행해 주시네” 오늘 나와 동행하시는 목자 되신 하나님 손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굉장히 큰 회사를 경영하는 회장님이 업무가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잠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잠을 자지 못하니 밥맛도 떨어져서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적인 노이로제가 너무 심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의사에게 찾아가 이야기했더니, 그 의사가 이야기를 다 듣고는 자신이 잘 아는 목사님을 소개해 드릴 테니 그분과 상담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목사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하는 말이 “제가 처방을 해 드리겠습니다. 시편 23편을 하루에 다섯 번 복용해 보십시오. 식후 30분은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1번, 자기 전에 1번, 이렇게 총 다섯 번씩 시편 23편을 복용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처방이라고 생각했지만, 속는 셈 치고 매일 다섯 번씩 시편을 암송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사일 지나니까 졸리는 거예요. 그러다 일주일이 지났더니, 잘 먹고 잘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저 믿기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회복시키며, 우리를 다시금 살아나게 하는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힘들고 어려운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는 분이 계시다면, 이 시편 23편의 말씀을 매일 묵상함으로 회복되는 기적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본문 가운데 4절 말씀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습니다. 1절, 2절, 3절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을 가리킬 때 3인칭 단수로, 즉 ‘그가 나를 푸른 풀밭’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그’라고 칭합니다. 영어 성경에도 ‘He’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절부터는 갑자기 2인칭으로 바뀝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라고, 즉 ‘주께서’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인칭이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영어 성경을 보니 ‘You’라고 되어 있습니다. ‘He’에서 ‘You’로, 3인칭에서 2인칭으로,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다윗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고난을 통해 오히려 더 영적인 사람으로,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져 갔다는 것이지요. 그곳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이제는 당신이라고,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라고 말했을 때는, 그 고난이 오히려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도구요, 축복의 통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며,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는 목자 되신 하나님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감사’일 것입니다.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분께 특별한 존재입니다.>
세 번째로,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고백합니까? 오늘 본문 5절을 같이 볼까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5)
하나님은 나를 인정해 주시는 분입니다. 중동의 관습 가운데 정말 반가운 사람이 오면 차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손님이 차를 마시자마자 찻잔이 비지 않도록 계속 차를 따라준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과 더 이야기하고 싶고, 더 교제하고 싶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오면, 그가 차를 한 잔 마시면 따라주지 않고 빈 잔으로 가만히 놔둔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돌아가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이 나에게 부어 주십니다. 어떻게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왜 넘치도록 잔을 부어 주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손님이 아닙니다. ‘자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실수하고 넘어지고 못났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아들이요 딸이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오늘 우리에게 넘치도록 잔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 그분이 바로 나의 목자이십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시편 23:5, 새번역)
저는 귀한 손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입니다. 나를 아들딸로 맞아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실제로 중동 지역에서 목자들이 양에게 기름을 사용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양에 대해 잘 모르는데, 양이 정말 바보 같은가 봅니다. 양의 가장 큰 적 중의 하나가 파리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파리가 양의 코끝에 앉아 알을 낳기도 한다고 합니다. 파리가 앉으면 양이 앞발이라도 들어 코를 치든지 하면 될 텐데, 쫓아내면 될 텐데, 이 바보 같은 양은 그것도 못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 보니, 그 위에 파리가 알을 낳아서 가려워 견디지 못한다고 해요. 돌에 가서, 또 나무에 가서 코를 찍고 비벼서 피가 나고 다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들이 그 위에 기름을 좀 발라 두면 파리가 앉지 못하고, 혹시 그랬다 하더라도 치료하는 방편도 되기 때문에 실제로 기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기름을 발라 주는 것을 넘어 부어 주신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을 세워 구별할 때, 특히 제사장, 선지자, 왕을 세울 때 기름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오늘 분명 하나님은 우리의 잔이 계속 찰 수 있도록, 또 기름을 넘치게 부어 주시는 좋으신 분으로 묘사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시며, 아무리 내가 실수해도 끝까지 붙들어 주시며 동행하시는 내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오늘도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 굽이굽이 인생길마다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23편 6절, 이 마지막 말씀을 우리가 같은 목소리로, 정말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고백’으로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6)
이 고백이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평생의 감사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Psalm 23 is perhaps the poem most loved by people around the world. It can be read on any occasion—at a funeral or at a wedding, together or alone. It comforts us whenever and wherever we read it. I believe it touches everyone so deeply because it is a genuine confession based on the poet’s life. It reverberates in people’s hearts because it is David’s honest confession. I am afraid I might add unnecessary comments to this perfect song in my sermon today. But I pray that God, my shepherd, will help me turn “David’s confession” into “my own confession” as I share the message with you.
The first verse sings, “The Lord is my shepherd.” The poet does not say the Lord is “their” shepherd or “our” shepherd. He sings that the Lord is “my shepherd.” In the NIV Bible, the first-person singular pronouns—I, my, and me—appear 17 times in this passage. This tells us that Psalm 23 is a strictly personal confession to God. If the Lord is my shepherd, what more needs to be said? Nothing can beat God on my side. This alone makes the poet satisfied and grateful. Dear Somang Church, I pray that nothing and no one will ever come in the place of God, your shepherd. Only God must lead us. Honor or reputation must not be our shepherd. Material abundance or wealth must not be our life’s goals, either. Even the most precious things in life must not be the reason we live. Only God is our life’s goal, the reason we live, and our shepherd. Dear brothers and sisters, money, honor, and people cannot be our shepherds. I earnestly pray that only God will be “my shepherd.” Nothing in this world surpasses that.
God, my shepherd. Who is he? It says in verses 1 and 2, “The LORD is my shepherd, I lack nothing.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First, God is my shepherd who satisfies my needs. Sheep need “green pastures” and “quiet waters.” With these, they don’t worry. When they are hungry, they will eat grass, and when they are thirsty, they will drink from streams. This is enough for them. Likewise, God has given us “green pastures” and “quiet waters.” But why do we feel we are lacking something? It’s because of desire. Human desire and greed know no end, like a bottomless pit. We must remember that when desire has conceived, it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grown, gives birth to death. All we need is clean clothes, but people want luxury clothes. They desire better things such as high-end bags, expensive shoes, luxury watches, and the latest laptops and smartphones. They want a higher salary, bigger cars, more spacious apartments, higher positions, and so on. Our desire makes us feel as if we are always in need. Accordingly, we are incapable of saying, “The Lord is my shepherd, I lack nothing.” Our prayers are filled with complaints and “Give me, Lord!” instead of thanksgiving. God has already given us the “green pastures” and “quiet waters” that we need, but our desire has made us this way.
The United Nations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publishes a happiness index based on a survey of about 150 nations. Korea ranked 58th in 2016 with a score of 5.83 out of 10, 55th in 2017 with the same score, and 57th in 2018 with 5.87. According to the Korean Psychological Association, the average happiness index of Koreans is 63.22 out of 100. Although Korea is one of the top 20 economies in the world, it ranks below 50 in terms of happiness. Although I am not an expert, I believe a happiness index can be drawn with a simple formula: Happiness Index = What we have (environment) / What we want (Desire) * 100. If we cannot have all we want, we will be happier if we reduce our desire.
God gave us his only son, Jesus Christ. He cleansed our sins and gave us a new life by crucifying his son on the cross. Yet, we complain to God, saying that it’s not enough. How ungrateful we are. God became our shepherd and friend, but we ask for more—a different grace—because of our desire. We seek his blessings, not him. The lyrics of Heart and Soul go like this: “I never want anything else in my life to take your place.” From now on, let’s not seek any other grace than our Lord. We will be satisfied with him alone because we know that he is my shepherd who fills me with all that I need. David sings in Psalm 34, “Fear the Lord, you his holy people,for those who fear him lack nothing.The lions may grow weak and hungry,but those who seek the Lord lack no good thing.” (Psalm 34:9-10) Thank you, Lord that you satisfy me with what I need.
Who is my shepherd? Let’s look at verses 3 and 4 of today’s scripture: “He refreshes my soul.He guides me along the right pathsfor his name’s sake.Even though I walkthrough the darkest valley,I will fear no evil,for you are with me;your rod and your staff,they comfort me.” Second, God walks with us and guides us. Life is not always rosy. In fact, there are more cloudy days than sunny ones. As an Arabic proverb goes, “All sunshine and no rain make a desert.” There are deep, dark valleys in life. But even when we pass through valleys of tears and tribulations, we do not despair. It is because even in that moment God my shepherd is with me. When I fall into a pit, he pulls me up with his rod. When I am threatened by evil forces, he protects me with his staff. This is what God says in Isaiah 43:2: “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I will be with you;and when you pass through the rivers,they will not sweep over you.When you walk through the fire,you will not be burned;the flames will not set you ablaze.” As long as my shepherd is with me, I will not despair even in hard times.
There was once a CEO of a big company who was always stressed and anxious. He was so stressed that he had trouble sleeping. He lost his appetite, too. His had to go to a psychiatrist because of his paranoia. His doctor, who was Christian, introduced him to a pastor for consultations. After hearing his problems, the pastor prescribed the following: “Read Psalm 23 five times a day with faith. Read it from the bottom of your heart five times a day—when you get up, after every meal, and before going to bed.” The pastor told him that he would see the results within a week. The CEO who was at the end of his rope followed this instruction. To his surprise, it worked. After a week, he could eat, sleep, and felt at peace. How was this possible? You know the answer. I believe it was because of the power of the Word: “For the word of God is alive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 If any one of you is going throughtimes of tears and tribulations, try reading Psalm 23 five times a day. I am sure you will see the effects, too.
We should note that in verse 4 the poet calls God “you” instead of “he” as seen in verse 2. The poet changes the way he calls out to God—from the third person to the second person. Why? I believe this is because man meets God on a personal level when he goes through tribulations. “Even though I walkthrough the darkest valley,I will fear no evil,for you are with me;your rod and your staff,they comfort me.” (Psalm 23:4) Thank you, God, that you are with me even when I walk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and life’s darkest tunnels. I hope that you believe that tribulations build us up, making us more spiritually awake. Thank you, Lord, that you, my shepherd, lead me in the path of righteousness and walk with me even in the valley of death.
Who is my shepherd? Let’s read verse 5 together: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in the presence of my enemies.You anoint my head with oil;my cup overflows.” Third, God acknowledges me. Psalm 23 says that God prepares a table for me and anoints my head with oil. According to Arab customs, a cup is continuously filled only when a guest is welcomed. So, if your cup is not filled, you would excuse yourself quietly. But today’s scripture says that “my cup overflows.” It meansI am very special to God. Let’s look at different translation of this verse: “You treat me to a feast,while my enemies watch.You honor me as your guest,and you fill my cupuntil it overflows.” (Psalm 23:5 CEV)
Furthermore, in the Middle East, shepherds really put oil on their sheep. Flies are the sheep’s worst enemy because it can’t chase them away. It goes crazy when a fly lays eggs inside its nose and the larvae start crawling around. Sometimes the sheep bangsits head on a rock until it bleeds. That is whythe shepherd applies oil on his sheep—to cure it and to keep the flies away. However, the meaning of anointing someone with oil in the Bible is even more special in the spiritual sense. When God appointed a priest, prophet, or king, he anointed him with oil. God chose you and me “for his very own” (Psalm 135:4). God says in Isaiah, “I have rescued you.I have called you by name;now you belong to me.” (Isaiah 43:1) Even though the world may not know who I am, God says he does. God says he loves me. He acknowledges us. Dear Church, have confidence and a high self-esteem because you are “his very own,” acknowledged by him.
Even though we are weak and keep on sinning, God anoints us with oil. It is because we are his sheep and children. He loves us no matter what because we are his. When we fall in love, we love even the weaknesses of that person. We fall head over heels in love. This is how God sees us. He treats us as someone special even when we are weak and full of mistakes. He prepares a feast for us. We are precious children whom God loves and acknowledges. So, square your shoulders and have confidence!
The utmost we can do for our Lord, our shepherd, is to thank him. Then how can we express our gratitude to him? How should we thank him? First, we must thank him from the bottom of our hearts. God sees our hearts. There was once a farmer who grew turnips.When he saw a good harvest, he went to the village chief and presented him with the finest turnip,thanking him for his leadership and protection. The chief who was very pleased asked his servants, “What is the best thing I can give him from my barn?”When the servants answered it was a strong ox, he told them to give it to the farmer. Hearing what had happened, another farmer came to the chief a few days later with a big calf. He said he was grateful for the chief’s leadership and gave him the calf. He thought that he would receive something greater than the ox—perhaps a house or land—because his calf was better than the turnip. But the chief only thanked him and gave him the turnip he received earlier. Dear Church, we are blessed only when we give thanks unconditionally.
Second, we should give thanks first. In John chapter 11, Jesus raises Lazarus from the dead. Upon reading it carefully, we find something amazing in this story. Does Jesus thank God before or after raising Lazarus? It is before. Isn’t this amazing? Don’t we thank God and give offerings only after something happens? But our Lord thanked God before Lazarus was raised. Why? It was because he believed that God would answer his prayers. Faith must not come after something happens, but before. It is faith that makes things happen. When we thank and trust God first, miracles happen. But do we have that faith? We believe only when we see miracles. We believe when business prospers, our children do well, diseases are cured, and all is well. This is not faith. A man of faith considers the future as the present. Therefore, he gives thanks first. We must give thanks in advance. Dear Church, what are your most earnest prayers? Remember what Jesus said about prayer: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Don’t beg when you pray but give thanks first. Thanksgiving is the fruit and essence of faith.
Third, we must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This is obeying God’s will. Anyonewould give thanks when heis blessed, and all is well. But it is hard to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Giving thanks in all circumstances means to thank God, and not complain, even in difficult times. You and I have become God’s children after being saved by the blood of Jesus. What more do we need? What is there to complain about? Listen to God’s words. “So then, just as you received Christ Jesus as Lord, continue to live your lives in him, rooted and built up in him, strengthened in the faith as you were taught, and overflowing with thankfulness.” (Colossians 2:6-7) “And whatever you do, whether in word or deed, do it all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through him.” (Colossians 3:17)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 situation,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And the peace of God,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Philippians 4:6-7)
God is my shepherd who leads me to “green pastures” and “quiet waters.” He fills my needs. He is by my sideat every turn of my life. He acknowledges me and anoints me with oil. All we can do is to thank him. I want Psalm 23:6 to be my personal confession: “Surely your goodness and love will follow meall the days of my life,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forever.” I pray that this heartfelt confession will be yours and mine.
시편 23: 1 ~ 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인 시편 23편은 아마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다윗의 시편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는 언제 어디서 읽어도 참 좋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백일이 될 때, 이 시편 23편을 읽어주면 그렇게 은혜가 되고 좋습니다. 또 아이가 자라서 결혼할 때, 이 시편 23편을 읽고 축복하면 그렇게 귀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생의 모든 삶을 누리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장례식장에서도 이 시편의 말씀은 잘 어울리면서도 큰 은혜가 됩니다. 함께 읽어도 귀하고, 혼자 묵상해도 언제나 심금을 울리는 시편 23편입니다.
왜 이 시편이 이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힘이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이 시편에 내재된 ‘삶의 고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라는 한 사람의 진솔한 삶의 고백이 이 시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훌륭한 시에 설교랍시고 첨언하는 것은 사족이 되거나 덧칠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이 고백을 다윗의 고백이 아닌 ‘나의 고백’으로 받아 주시기를 원하면서, 또 그와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3편 1절 첫 부분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내 목자가 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목자가 아니고, 저희들의 목자도 아니고, ‘나의 목자’가 되신다고 말합니다. 시편 23편을 읽어보니, 이 짧은 6절까지의 말씀에 ‘나’, ‘내’라는 1인칭 대명사가 무려 14번이나 나옵니다. 영어 성경도 찾아봤더니 ‘I’ 혹은 ‘me’라는 1인칭이 17번이나 나옵니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오늘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나의 고백’을 드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목자가 되신다니 다른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시고, 하나님이 내 친구가 되시고,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시며,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데,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우리 인생의 목자로 삼지 않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만 저와 여러분의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명예나 체면이 우리를 이끄는 목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질적 풍요나 여유가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조차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목자요, 내 삶의 목표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돈도, 명예도, 사람도 우리의 목자일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나의 목자로 삼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은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목자’ 되신 여호와, 곧 ‘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까? 오늘 본문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1~2)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을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양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만 있다면,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풀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피곤하면 풀밭에 누워서 자면 그뿐입니다. 더이상 양에게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고백을 하지 못할까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쩌면 우리의 욕심이 우리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실 깨끗한 옷 한 벌이면 충분하지만, 우리는 명품 옷을 욕심냅니다. 구두도 명품이면 좋겠고, 핸드백도, 지갑도, 시계도,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도 더 좋은 것이면 좋겠습니다. 더 큰 회사면 좋겠고, 더 월급이 많으면 좋겠고, 더 큰 차면 좋겠고, 더 넓은 집이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욕심은 우리를 늘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다윗처럼, “여호와가 내 목자시니 저는 부족하지 않습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없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가 없고, 매일 달라는 기도와 불평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꼭 필요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주셨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다른 욕심으로 끊임없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UN 산하에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라는 기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 기관에서 매년 150개 이상의 국가를 대상으로 삶의 질 조사, 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2016년에는 10점 만점에 5.83으로, 58위를 기록했습니다. 2017년에도 5.83으로, 55위, 작년 2018년에는 조금 올라서 5.87이었지만, 순위는 오히려 내려가서 57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 심리학회가 모 일간지 신문사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의 평균 행복지수가 100점 만점에 63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행복지수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사실 한국의 행복지수가 63점이나 될 수 있었던 것은 강원도 거주자들이 자신들은 71점 행복하다고 답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서울과 수도권의 거주자들이 점수를 다 깎아 먹어서 59점 행복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서울이 훨씬 더 편하고 좋을 것 같은데, 왜 서울에 있는 분들의 행복지수가 더 낮은 것일까요?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는 이제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데, 왜 행복지수는 거의 50위권 후반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저는 경제학 전공도 아니고, 행복을 어떻게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마 내가 갖고 싶은 것, 우리의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10가지가 욕심나는데, 10가지를 다 갖고 있다면 100점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인간이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10가지를 갖게 되면 20가지를 욕심내는 게 우리이지 않습니까? 20가지를 갖게 되면 100가지가 욕심이 납니다. 우리 인간의 욕심은 밑도 끝도 없는 구덩이와 같습니다. 결코 채울 수 없는 구덩이와 같지요. 오늘 우리의 욕심을 줄인다면, 어쩌면 우리가 좀 더 행복에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나의 죄를 씻어 주시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나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복에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음송 가운데 ‘얼마나 아프실까’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 가슴은 독생자 주셨건만 인간들 부족하다 원망할 때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심령은 자신을 주셨건만 사람들 부인하며 욕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주셨건만, 주님이 내 친구가 되셨건만, 나는 계속 이런저런 욕심으로 다른 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또 다른 은혜가 없을까요?”라고 구했던 것이 우리의 못난 모습입니다.
또 다른 복음송에 이런 가사도 있습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이제 정말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은혜를 구하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좋으신 내 목자이신 것을 알기에, 그 한 분만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34편 9~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9~10)
오늘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 나의 필요를 따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허락해 주시는 그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은 나와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이 또 어떤 분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까? 오늘 본문 3~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3~4)
오늘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분이라고, 함께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이 늘 햇살만 비치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쩌면 오히려 비가 오고 어두운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랍의 속담에 “해만 밝게 비치고 비가 오지 않으면 사막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씨줄과 날줄처럼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함께 허락해 주셨습니다. 산을 오를 때도 언덕이 있으면 골짜기가 분명히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 어두운 터널과 같은 골짜기가 밝은 날보다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통곡의 골짜기, 재난의 골짜기, 눈물의 골짜기, 오늘 본문이 말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힘이 들어서 눈물을 흘릴 수는 있겠지만, 절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양들이 다니다 보면 웅덩이에 빠질 때가 있지요. 그때는 목자가 지팡이를 웅덩이에 내려 주어 양이 지팡이를 타고 올라오게 해 줍니다. 또 어떤 때는 사나운 짐승이 양을 해치려고 노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목자의 지팡이가 막대기가 되어 사나운 짐승을 물리치고 양들을 안위해 줍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해 주며, 함께해 주고, 사망의 골짜기에서 동행해 주는 한,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분께 감사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사야 43:2)
오늘 하나님께서 물 가운데, 불꽃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켜 주시고 함께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내 목자 되신 그분께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찬송 하나가 생각나서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그 찬송이 새찬송가에서는 빠졌습니다. 예전 찬송가에 있던 찬송인데요. 그래서 그 찬송을 찾아서 집에서 찬양하며 다시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전 찬송가 494장에 있던 찬송인데, 1절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나 죄 중에 헤매며 다녔지만 날 버리지 않으심 믿습니다 나 가는 길 주께서 지키시며 늘 동행해 주시네 주 언제나 나 함께 늘 동행해 주시네 주 날마다 내게 이김 주고 늘 동행해 주시네” 오늘 나와 동행하시는 목자 되신 하나님 손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굉장히 큰 회사를 경영하는 회장님이 업무가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잠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잠을 자지 못하니 밥맛도 떨어져서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적인 노이로제가 너무 심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의사에게 찾아가 이야기했더니, 그 의사가 이야기를 다 듣고는 자신이 잘 아는 목사님을 소개해 드릴 테니 그분과 상담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목사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하는 말이 “제가 처방을 해 드리겠습니다. 시편 23편을 하루에 다섯 번 복용해 보십시오. 식후 30분은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1번, 자기 전에 1번, 이렇게 총 다섯 번씩 시편 23편을 복용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처방이라고 생각했지만, 속는 셈 치고 매일 다섯 번씩 시편을 암송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사일 지나니까 졸리는 거예요. 그러다 일주일이 지났더니, 잘 먹고 잘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저 믿기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회복시키며, 우리를 다시금 살아나게 하는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힘들고 어려운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는 분이 계시다면, 이 시편 23편의 말씀을 매일 묵상함으로 회복되는 기적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본문 가운데 4절 말씀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습니다. 1절, 2절, 3절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을 가리킬 때 3인칭 단수로, 즉 ‘그가 나를 푸른 풀밭’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그’라고 칭합니다. 영어 성경에도 ‘He’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절부터는 갑자기 2인칭으로 바뀝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라고, 즉 ‘주께서’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인칭이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영어 성경을 보니 ‘You’라고 되어 있습니다. ‘He’에서 ‘You’로, 3인칭에서 2인칭으로,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다윗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고난을 통해 오히려 더 영적인 사람으로,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져 갔다는 것이지요. 그곳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이제는 당신이라고,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라고 말했을 때는, 그 고난이 오히려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도구요, 축복의 통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며,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는 목자 되신 하나님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감사’일 것입니다.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분께 특별한 존재입니다.>
세 번째로,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고백합니까? 오늘 본문 5절을 같이 볼까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5)
하나님은 나를 인정해 주시는 분입니다. 중동의 관습 가운데 정말 반가운 사람이 오면 차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손님이 차를 마시자마자 찻잔이 비지 않도록 계속 차를 따라준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과 더 이야기하고 싶고, 더 교제하고 싶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오면, 그가 차를 한 잔 마시면 따라주지 않고 빈 잔으로 가만히 놔둔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돌아가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이 나에게 부어 주십니다. 어떻게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왜 넘치도록 잔을 부어 주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손님이 아닙니다. ‘자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실수하고 넘어지고 못났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아들이요 딸이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오늘 우리에게 넘치도록 잔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 그분이 바로 나의 목자이십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시편 23:5, 새번역)
저는 귀한 손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입니다. 나를 아들딸로 맞아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실제로 중동 지역에서 목자들이 양에게 기름을 사용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양에 대해 잘 모르는데, 양이 정말 바보 같은가 봅니다. 양의 가장 큰 적 중의 하나가 파리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파리가 양의 코끝에 앉아 알을 낳기도 한다고 합니다. 파리가 앉으면 양이 앞발이라도 들어 코를 치든지 하면 될 텐데, 쫓아내면 될 텐데, 이 바보 같은 양은 그것도 못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 보니, 그 위에 파리가 알을 낳아서 가려워 견디지 못한다고 해요. 돌에 가서, 또 나무에 가서 코를 찍고 비벼서 피가 나고 다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들이 그 위에 기름을 좀 발라 두면 파리가 앉지 못하고, 혹시 그랬다 하더라도 치료하는 방편도 되기 때문에 실제로 기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기름을 발라 주는 것을 넘어 부어 주신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을 세워 구별할 때, 특히 제사장, 선지자, 왕을 세울 때 기름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오늘 분명 하나님은 우리의 잔이 계속 찰 수 있도록, 또 기름을 넘치게 부어 주시는 좋으신 분으로 묘사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시며, 아무리 내가 실수해도 끝까지 붙들어 주시며 동행하시는 내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오늘도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 굽이굽이 인생길마다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23편 6절, 이 마지막 말씀을 우리가 같은 목소리로, 정말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고백’으로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6)
이 고백이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평생의 감사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