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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선하게 살고자 애쓰지만,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현실 속에서 갈등과 영적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두 주 동안 우리는 ‘선함의 번짐’이라는 주제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지난주에는 선함의 번짐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먼저 선함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옳고 바르며, 사랑과 칭찬을 받을 만한 생각을 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또한 두 번째 주일에는 우리가 추구하는 선함은 어떤 보상이나 구원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임을 확인하였습니다.
2026년을 맞으며 여러분 중에는 선함의 다짐을 하신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실천하신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우리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선함의 실천이 녹록지 않습니다. 악이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기 때문에 우리의 선함이 힘없는 손짓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생명윤리, 경제윤리, 인권 문제 등 현대 윤리에 관한 연구가 매우 섬세하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사회는 과거보다 매우 투명한 사회가 되었다고 많은 분이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기적인 사람들이 성공의 사다리를 더 빨리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힘이 빠지고 영적인 피로감을 느낍니다. “하나님, 선하게 사는 것이 정말 의미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선하게만 살다 도태될 것 같습니다.”라는 불안감을 겪기도 합니다.
악인들이 여전히 사회 속에서 판을 치고 역사의 중심에서도 벗어나지 않는 것 같은 것이 두드러질 때가 있습니다. 또한 성공의 맨 꼭대기 위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의 마음에는 조급함과 상대적인 박탈감이 찾아오곤 합니다. 시편 73편에서 아삽은 이러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시 73:1~5, 새번역)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시 73:10~13, 새번역)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해를 당하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별 탈 없이 살아가는 듯한 세상의 현실은 우리를 늘 혼란스럽게 합니다. 특별히 선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이 현실은 너무나도 혹독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본문은 매우 소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에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인생을 길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생의 경험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로는 불의한 자들에게 쫓겨 다니기도 했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으며, 왕으로서 영화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울 왕의 질투 때문에 광야를 오랫동안 떠돌아다니고, 미친 사람 시늉을 내며 생존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아들 압살롬의 배신으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예루살렘성을 떠나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영화와 고통을 겪고 상당한 시간 후에 자신의 인생을 관조합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신앙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들을 하나씩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중 일부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인생의 조언을 이렇게 말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 37:1)
여기서 ‘불평하다’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티트하르(תתחר[Tithar])’, 즉 ‘뜨거워지다’, ‘불타오르다’라는 뜻입니다. 악인이 잘되는 꼴을 보니 속에서 열불이 나서 견딜 수 없는 상태입니다. 분노, 질투 억울함으로 인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열 내지 마라.” “분노로 타오르지 마라.”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7절 이후에 다윗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하다고 자랑하는 자들과, 악한 계획도 언제나 이룰 수 있다는 자들 때문에 마음 상해 하지 말아라. 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악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시 37:7~8, 새번역)
다윗이 말하는 중요한 한 가지 관점은 이것입니다. 악한 사람들 때문에 불평하며 분노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하면 도리어 악으로 치달을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악인의 형통에 관심을 두고 불평, 정죄, 분노하는 것은 결국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악인의 형통을 바라보면서 냉정하게 참고 인내할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시 37:2, 새번역)
조금만 더 참아라. 악인은 멸망하고야 만다. 아무리 그 있던 자취를 찾아보아도 그는 이미 없을 것이다. (시 37:10, 새번역)
다윗은 말합니다. “악인의 형통은 한시적일 뿐이다. 그것을 기억하라. 기다리면 곧 결말을 보게 될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악인의 큰 세력을 내가 보니, 본고장에서 자란 나무가 그 무성한 잎을 뽐내듯 하지만, 한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흔적조차 사라져, 아무리 찾아도 그 모습 찾아볼 길 없더라. (시 37:35~36, 새번역)
이러한 현상은 그냥 보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의 인생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그냥 보면 항상 악인들이 형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악인들은 쉽게 사라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악인이 사라지면 다른 악인이 등장해 또 악을 행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있다가 멸망의 길로 갑니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악인이 악을 행하다가 패망의 길을 가는 것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입장은 다릅니다. 악이 끊임없이 성하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보는 듯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흠 없는 사람을 지켜 보고, 정직한 사람을 눈여겨 보아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으나, (시 37:37, 새번역)
악인의 번영을 보며 부러워할 이유도 분노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들은 무성한 나무처럼 보이지만, 이미 밑동이 잘린 나무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속상해하거나 불평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쇠퇴하는 것 같지만,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대대로 성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에 대한 소극적인 인내를 넘어, 하나님을 신뢰하며 선을 행하고 주님의 성실하심을 에너지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보며 불평하지 말라고 말하는 다윗은 이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는 참고 기다리라는 소극적인 해결책을 넘어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을 알려 줍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시 37:3a)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호와를 의뢰하라”이며, 두 번째는 “선을 행하라”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의미를 전달하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악인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형통하는 것 같아도 참고 인내하라. 그리고 담담히 선을 행하라.” 악인들이 선한 사람들을 짓밟는 현실을 볼지라도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를 의뢰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공의로 심판하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믿으면 가능합니다. 이것이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대응 방식입니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우리의 선함이 악함을 쉽게 제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런 현실을 자주 경험합니다. 우리는 악의 승리와 선의 패배를 절감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이 지는 것 같아도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이 잘 번져 가지 않고 악의 세력이 더 확장하는 것 같아도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은 공로를 쌓거나 구원에 이르기 위한 착한 일을 넘어섭니다. 우리의 선행은 신앙 행위입니다.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영역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요즘 회자되는 뉴스들을 보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곤 합니다. 거짓된 종교들, 이단들이 크게 성장하는 모습과, 진리와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이 축소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옳은지 자괴감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호와만을 의뢰하고 선을 행하며 그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악인들이 성한 모습 속에서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죠. 그럼에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불평하지 말라 시기하지 말라. 여호와를 의뢰하라. 그리고 선을 행하라.” 이 맥락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들이 있습니다.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시 37:3b)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습니다. 개역개정은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먹을거리’로 삼으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새번역은 조금 달리 해석합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시 37:3b, 새번역)
새번역은 우리가 스스로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해석이 더 맞는 해석일까요?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가지가 다 가능한 해석입니다. 여기서 ‘성실’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에무나(אמונה[Emunah])’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원어 문장을 조금 더 실감 나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이 땅에 거하며 ‘에무나’를 먹으라.” 이 문장은 “이 땅에 거하며 성실을 먹으라”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문장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 땅에서 성실하게 살아라”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먹으며 살아라”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먹으며 살라”라는 말씀으로 해석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열심히 성실하게 살라는 도덕적인 훈화가 아닌, 2026년의 무한경쟁 시대 속에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원을 알려 주는 말씀으로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신뢰하며 내 삶의 모든 짐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세상은 부정한 방법과 편법을 에너지원으로 삼습니다. 타인을 짓밟는 삶의 방식을 양식으로 삼아 성장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에너지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에너지원은 다른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Faithfulness)’, ‘에무나’가 그리스도인의 에너지원이자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악이 성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마침내 승리하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모든 것을 바꾸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들이 조금 더 명료해집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 37:4~5)
하나님의 성실하심, 에무나를 먹거리로 삼고 에너지원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맡기다’라는 히브리어 ‘갈랄(גלל[Galal])’은 ‘굴려 보낸다’는 뜻입니다. ‘길갈’이라는 단어가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여호수아 5장에 광야에서 할례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받은 다음, 하나님께서 애굽의 수치를 떠나보내셨다는 의미로 그곳의 이름을 ‘길갈’이라 하신 표현이 나옵니다(수 5:9). 여기서 ‘떠나보내셨다’는 말은 ‘굴려 보냈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길갈’이라는 단어의 각주에 ‘굴러가다’라는 속뜻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단어가 여기 사용된 ‘갈랄’입니다.
이 단어를 명령형으로 사용하면 ‘골(Gôl)’이라는 발음이 됩니다. 시편 37편 5절 원문은 “골 알 야웨 다르케카(Gôl ‘al-Yah·weh dar·ke·ḵā)”라고 되어 있는데, 직역하면 “너의 길을 여호와 위로 굴려 버려라!”라는 생동감 넘치는 선포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개역개정은 ‘맡기다’라는 표현으로 해석합니다. “도저히 네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들을 하나님께로 굴려 보내라! 해결되지 않는 비즈니스의 문제, 자녀의 미래, 억울했던 모든 사건들, 그리고 마음의 모든 상처들을 하나님께로 떠나보내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인생의 경영권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지하면’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타흐(בטח[Batach])’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마음으로 믿는다, 감정적으로 의지한다’라는 뜻을 넘어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던진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높이 서 있다가 부모가 가까이 오면 갑자기 확 뛰어내리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빠 엄마를 완전히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타흐’의 의미입니다. 자신의 방어 기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받아 주는 분을 완전히 믿으면서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믿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에무나, 신실하심을 에너지원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무거운 짐들은 하나님께 모두 떠나보내고 그분께 나를 맡길 뿐입니다. 나를 던져 그분의 품에 안길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불의한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최종 승리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보며 끝까지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또다시 권면합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시 37:27~28)
앞의 3절에서 ‘선을 행하라’ 말했던 다윗은 27절에서 다시 ‘선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악한 세상에서 선함을 추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보상을 얻기 위함도 아니고 구원을 얻기 위함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에 선을 행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합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 (시 37:23~24, 새번역)
이 말씀을 개역개정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 37:24)
여기서 떠오르는 성경 인물이 있습니다. 비틀거리며 넘어질 것 같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의와 선을 행하면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끊임없이 어려움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한 사람, 요셉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하나님께 의뢰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유혹을 물리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처참한 듯 보였습니다. 모함을 받으며 그의 선함은 드러나지도 않고 파묻혀 버렸습니다. 누구도 그의 진심을 믿어 주지 않았고,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의 의로움과 선함은 완전히 묻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둠 속에서 요셉을 다듬고 계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요셉을 역사의 전면으로 다시 끌어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의 의로움은 정오의 빛처럼 빛나게 되었습니다. 자기 민족과 열방을 살리는 구원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말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 37:5~6)
때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악인이 끝까지 승리한 것 같은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선한 사람이 회복하지도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맙시다. 우리 인생의 서사는 이 땅의 죽음으로 마침표가 찍히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법정은 1심과 2심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보좌 앞이라는 ‘최종심’이 남아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판정을 다 받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받을 최종 심판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끝내 밝혀지지 않은 눈물들, 끝내 보상받지 못한 헌신들이 하나님의 장부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억울하셨던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던 것처럼, 이 땅에서 공의를 보지 못하고 눈감은 성도들의 의로움은 영원한 나라에서 정오의 빛보다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선한 길을 포기하지 맙시다. 이 땅에 선한 것이 소멸하는 것 같고, 보상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해서 선한 길을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보상하는 분이시기 이전에, 이 어두운 과정을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보상 여부와 관계없이 당당하게 선함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믿는 자가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야말로 선함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시 37:3). 흔들리지 않는 믿음,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Psalms 37:1-6
Dear brothers and sisters, for the past two weeks I spoke on the theme of “The Spread of Goodness.” First, we learned that to spread goodness, our thoughts must be filled with what is true, noble, right, pure, lovely, and admirable. We also reaffirmed that the goodness we pursue is not about achieving our own salvation, but a gratitude for God’s great grace. In this way, we are committing to live good lives as we start the new year.
However, our determination is severely tested amidst a cold reality. It is because the world in 2026 is still filled with evil and injustice.
In terms of bioethics, economic ethics, and human rights issues, modern research on ethics has become more detailed and advanced, and we pride ourselves on being a more transparent society than in the past. Yet it still appears that selfish people are climbing the ladder of success more quickly, and people who will stop at nothing to steal other people’s efforts seem to make a lot of money and succeed.
Every time we see such things, we feel drained and spiritually fatigued. “God, is it really worthwhile to live righteously? I try to pursue goodness because of the grace You have shown us, but the reality is too harsh. It seems that if I continue to live righteously, I will only fall behind in this society.” Such thoughts may arise.
When it appears that the wicked continue to thrive, dominating history and flourishing at the pinnacle of success, we feel anxious and deprived.
Many people get worn out from trying to do good. When we feel that we have fallen behind because of our efforts to do good, we become anxious and distressed.
In Psalm 73, Asaph openly expresses our such feelings:
“Truly God is good to Israel, to those whose hearts are pure. But as for me, I almost lost my footing; my feet were slipping, and I was almost gone. For I envied the proud when I saw them prosper despite their wickedness. They seem to live such painless lives; their bodies are so healthy and strong. They don’t have troubles like other people; they’re not plagued with problems like everyone else.” (Psalms 73:1-5 NLT)
“And so the people are dismayed and confused, drinking in all their words. ‘What does God know?’ they ask. ‘Does the Most High even know what’s happening?‘ Look at these wicked people — enjoying a life of ease while their riches multiply. Did I keep my heart pure for nothing? Did I keep myself innocent for no reason?” (Psalms 73:10-13 NLT)
We are constantly confused by the reality where the righteous suffer while the wicked enjoy a life of ease. This reality feels especially harsh to those who strive to live well.
Today’s passage provides valuable teaching for believers grappling with such concerns.
The author of today’s passage is David. From his youth to old age, he was chased by unrighteous people. He wandered the wilderness because of Saul’s jealousy and had to leave Jerusalem barefoot due to his son Absalom’s betrayal. David, who lived much of his life in “injustice,” stands at the twilight of his life and shares the essence of life with posterity including us today.
“Do not fret because of those who are evil or be envious of those who do wrong.” (Psalms 37:1 NIV)
The Hebrew word for “fret” here is “tithar (תִּתְחַר),” which means “to become hot” or “to burn.” It describes the intolerable state of becoming angry when seeing the wicked prosper. The Bible firmly warns us, “Do not get upset. Do not burn with anger.”
Why should we do this? David continues to say in verse 7 and after:
“Be still in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to act. Don’t worry about evil people who prosper or fret about their wicked schemes. Stop being angry! Turn from your rage! Do not lose your temper — it only leads to harm.” (Psalms 37:7-8 NLT)
In the end we will only suffer. Ultimately, we will only be led to evil. David understood this. Paying attention to and complaining about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becoming angry at them, and judging them only harm ourselves.
David advises us to remain calm when we see the wicked prosper. He tells us to endure and be patient.
“For like grass, they soon fade away. Like spring flowers, they soon wither.” (Psalms 37:2 NLT)
“Soon the wicked will disappear. Though you look for them, they will be gone.” (Psalms 37:10 NLT)
David says that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is only temporary. Remember this. Just wait, and you will soon see. David reflects on his own life and says:
“I have seen wicked and ruthless people flourishing like a tree in its native soil. But when I looked again, they were gone! Though I searched for them, I could not find them!” (Psalms 37:35-36 NLT)
This phenomenon is not easily seen at first glance; it requires careful observation. At first, it always seems that the wicked are prospering. However, these wicked people will eventually just disappear. Another wicked person will again do evil things fearlessly, and he may appear to be doing well for a while. But he too will quietly disappear.
David wants to impart this wisdom of life to us. Therefore, David speaks again:
“Look at those who are honest and good, for a wonderful future awaits those who love peace. But the rebellious will be destroyed; they have no future.” (Psalms 37:37 NLT)
There’s no reason to envy or feel angry about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They may look like flourishing trees, but they are actually trees that have already been cut at the roots. Therefore, do not fret when you see them. Do not complain.
So where should we direct our attention? David goes beyond the passive solutions of patience and waiting and teaches us what we should actively do and think.
This is what he says in verse 3: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Psalms 37:3a NIV)
This statement seems to tell us to do two things, but, in reality, it is one.
David says, “Even though the wicked seem to prosper and the unjust seem to thrive, be patient and do good.”
He encourages us to do good even as we witness the reality where the wicked and the unrighteous seem to thrive.
How can we do this? By trusting in the Lord. If we believe in God, we can do this. If we trust and believe in our God who will eventually judge in righteousness, we can respond boldly by doing good even when we see the wicked prosper.
This is David’s message to us about how to respond when we see the wicked prosper. This is his guideline for action.
We desire to spread goodness. However, we may encounter a reality where our goodness does not easily prevail over evil. In fact, we might even experience the victory of evil and the defeat of good. Yet, we will still choose to do good. The reason we can do this is that we trust in God. Therefore, our good deeds belong to the dimension of faith and the realm of belief.
Our good deeds are, therefore, a way of living out our faith in a wicked world. Our confession of faith in God is manifested through our good deeds.
In this context, a significant expression must be noted. It comes after David’s advice to do good.
“Dwell in the land, and feed on His faithfulness.” (Psalms 37:3b NKJV)
The interpretation of this verse is intriguing. The above New King James Version translates it as “feed on His faithfulness” suggesting that it means to draw sustenance from God’s faithfulness. However, th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terprets it differently.
“Dwell in the land and cultivate faithfulness.” (Psalms 37:3b NASB)
The NASB encourages us to live faithfully.
Then which interpretation is correct? In truth, both are possible. The word for “faithfulness” here is “emunah (אֱמוּנָה)” in Hebrew.
If we explain the sentence being as true as possible to the original text, it goes like this: “Live in this land and feed on emunah, faithfulness.”
So this sentence can be interpreted both ways. But I would like to accept it as a call to feed on God’s faithfulness.
In other words, this message should not simply be seen as a moral instruction to “live diligently” or to “live faithfully,” but rather a guidance on what we should take as our “source of energy” in this era of infinite competition in 2026.
The world tries to survive by “feeding on,” or using as its energy source, dishonest methods, shortcuts, and ruthless ways that trample on others. However, Christians are different. Truth be told, we must be different.
As Christians, we must make “God’s faithfulness,” or emunah, our survival strategy.
We must endure each day by feeding on His faithfulness, thinking, “No matter how much the world changes, God will never forsake me,” “God’s ways will ultimately win.”
With this understanding, the following verses will come naturally to us.
“Take delight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do this.” (Psalms 37:4-5 NIV)
Those who make God’s faithfulness their sustenance and live by holding onto it can commit everything to the Lord.
The Hebrew word for “commit” here is “galal (גָּלַל),” which means “to roll away.” When this word is used in the Hebrew imperative form, it can be pronounced “gôl.” Thus, the original text of Psalm 37:5 states, “Gôl ‘al-Yah·weh dar·ke·ḵā,” whose word-for-word translation would be “Roll away your way onto the Lord! — a very powerful and vivid declaration.
It means rolling away the heavy burdens that I cannot bear on my own to God, such as unresolved business problems, the future of my children, and a sense of injustice in my heart. It means to completely transfer the control of my life to God — a “transfer of sovereignty.”
Then comes the advice to “trust” in Him. In Hebrew, it is “batach (בָּטַח).” This word goes beyond the level of simply believing in our hearts. It means “to lie extended on the ground” or “to completely throw oneself upon.”
It is like a child throwing himself into his parent’s arms without any worries. It describes a state in which I completely lay down my defensive mechanisms for self-preservation and fully expect the other person to catch me.
Because we believe in God’s faithfulness, we can do this. Because we believe in God’s faithfulness, this is possible.
Those who live on God’s emunah, His faithfulness, have no reason to envy or complain when they see the wicked prosper. They roll every heavy burden onto God and entrust themselves to Him. They throw themselves into His embrace. This is the picture of those who feed on God’s faithfulness.
Therefore, David advises us:
“Turn from evil and do good; then you will dwell in the land forever; For the Lord loves the just and will not forsake his faithful ones.” (Psalms 37:27-28 NIV)
We have returned to the command to do good. The reason we should pursue goodness in this wicked world is precisely because of God’s faithfulness. The person who feeds on God’s faithfulness will not be shaken, no matter how much evil seems to thrive or how long the wicked appear to prosper. God will ultimately lift up those who do good by His faithfulness.
Thus David declares:
“The Lord directs the steps of the godly. He delights in every detail of their lives. Though they stumble, they will never fall, for the Lord holds them by the hand.” (Psalms 37:23-24 NLT)
The person who does good and lives a life that pleases the Lord may stumble, but he does not fall for the faithful Lord holds him by his hand. The NKJV describes this as follows:
“Though he fall, he shall not be utterly cast down; For the Lord upholds him with His hand.” (Psalms 37:24 NKJV)
There was a man whose life shone like the midday sun through God’s help, even though he seemed to stumble and fall: Joseph. He acted righteously in the house of Potiphar and in prison, trusting in the Lord. However, the outcomes were bleak. He was falsely accused and imprisoned, and no one believed his sincerity. His righteousness seemed forever buried in the darkness of the prison. But God was refining Joseph in that darkness. Finally, when the time was right, God brought Joseph to the forefront of history. When he became the prime minister of Egypt, his righteousness shone like the “noonday sun,” becoming a salvation light for his people and the nations.
David says: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do this: He will make your righteous reward shine like the dawn, your vindication like the noonday sun.” (Psalms 37:5-6 NIV)
Thus, the reason we do good is because we believe that God is faithful.
Sometimes we may see the wicked seemingly triumphing until the end. We may witness good people fading into the background of history with no recovery in this world.
However, let us not forget. The narrative of our lives does not end with death on this earth. Our life in this world can be compared to only the first and second trials of a court. We still have the “final court” left when we stand before the throne of God. The tears you shed and the sacrifices you made that were never acknowledged will be recorded in God’s book without a single line missing. Just as Jesus, who suffered to the point of death on the Cross, became the firstfruit of the resurrection, the righteousness of saints who did not see justice in this world will bloom with glory in the eternal kingdom, shining brighter than the noonday sun.
Therefore, do not give up on the path of goodness just because the results are not visible. God not only rewards the results; He is a faithful God who walks with us in the dark journey toward the result. When we have this faith, we can take our paths calmly, regardless of the reward.
Because we believe in God’s faithfulness, we do not participate in evil or envy the victories of the wicked, but do good.
Thus, doing good is an act of faith. The good deeds performed by believers are not just good acts; they are actions of faith that believe in a faithful God. This is all the more true in this wicked world where evil seems to triumph. Some day, our small, silent acts of goodness and the holy time that we kept when no one was watching will be revealed by God like the “noonday sun.”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May this message be a guiding principle for us as we navigate through 2026. May we all do good in our lives with an unwavering faith, a faith that believes in the faithful God.
시편 37:1~6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선하게 살고자 애쓰지만,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현실 속에서 갈등과 영적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두 주 동안 우리는 ‘선함의 번짐’이라는 주제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지난주에는 선함의 번짐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먼저 선함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옳고 바르며, 사랑과 칭찬을 받을 만한 생각을 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또한 두 번째 주일에는 우리가 추구하는 선함은 어떤 보상이나 구원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임을 확인하였습니다.
2026년을 맞으며 여러분 중에는 선함의 다짐을 하신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실천하신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우리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선함의 실천이 녹록지 않습니다. 악이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기 때문에 우리의 선함이 힘없는 손짓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생명윤리, 경제윤리, 인권 문제 등 현대 윤리에 관한 연구가 매우 섬세하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사회는 과거보다 매우 투명한 사회가 되었다고 많은 분이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기적인 사람들이 성공의 사다리를 더 빨리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힘이 빠지고 영적인 피로감을 느낍니다. “하나님, 선하게 사는 것이 정말 의미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선하게만 살다 도태될 것 같습니다.”라는 불안감을 겪기도 합니다.
악인들이 여전히 사회 속에서 판을 치고 역사의 중심에서도 벗어나지 않는 것 같은 것이 두드러질 때가 있습니다. 또한 성공의 맨 꼭대기 위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의 마음에는 조급함과 상대적인 박탈감이 찾아오곤 합니다. 시편 73편에서 아삽은 이러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시 73:1~5, 새번역)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시 73:10~13, 새번역)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해를 당하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별 탈 없이 살아가는 듯한 세상의 현실은 우리를 늘 혼란스럽게 합니다. 특별히 선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이 현실은 너무나도 혹독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본문은 매우 소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에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인생을 길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생의 경험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로는 불의한 자들에게 쫓겨 다니기도 했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으며, 왕으로서 영화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울 왕의 질투 때문에 광야를 오랫동안 떠돌아다니고, 미친 사람 시늉을 내며 생존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아들 압살롬의 배신으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예루살렘성을 떠나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영화와 고통을 겪고 상당한 시간 후에 자신의 인생을 관조합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신앙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들을 하나씩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중 일부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인생의 조언을 이렇게 말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 37:1)
여기서 ‘불평하다’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티트하르(תתחר[Tithar])’, 즉 ‘뜨거워지다’, ‘불타오르다’라는 뜻입니다. 악인이 잘되는 꼴을 보니 속에서 열불이 나서 견딜 수 없는 상태입니다. 분노, 질투 억울함으로 인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열 내지 마라.” “분노로 타오르지 마라.”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7절 이후에 다윗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하다고 자랑하는 자들과, 악한 계획도 언제나 이룰 수 있다는 자들 때문에 마음 상해 하지 말아라. 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악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시 37:7~8, 새번역)
다윗이 말하는 중요한 한 가지 관점은 이것입니다. 악한 사람들 때문에 불평하며 분노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하면 도리어 악으로 치달을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악인의 형통에 관심을 두고 불평, 정죄, 분노하는 것은 결국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악인의 형통을 바라보면서 냉정하게 참고 인내할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시 37:2, 새번역)
조금만 더 참아라. 악인은 멸망하고야 만다. 아무리 그 있던 자취를 찾아보아도 그는 이미 없을 것이다. (시 37:10, 새번역)
다윗은 말합니다. “악인의 형통은 한시적일 뿐이다. 그것을 기억하라. 기다리면 곧 결말을 보게 될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악인의 큰 세력을 내가 보니, 본고장에서 자란 나무가 그 무성한 잎을 뽐내듯 하지만, 한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흔적조차 사라져, 아무리 찾아도 그 모습 찾아볼 길 없더라. (시 37:35~36, 새번역)
이러한 현상은 그냥 보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의 인생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그냥 보면 항상 악인들이 형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악인들은 쉽게 사라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악인이 사라지면 다른 악인이 등장해 또 악을 행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있다가 멸망의 길로 갑니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악인이 악을 행하다가 패망의 길을 가는 것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입장은 다릅니다. 악이 끊임없이 성하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보는 듯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흠 없는 사람을 지켜 보고, 정직한 사람을 눈여겨 보아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으나, (시 37:37, 새번역)
악인의 번영을 보며 부러워할 이유도 분노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들은 무성한 나무처럼 보이지만, 이미 밑동이 잘린 나무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속상해하거나 불평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쇠퇴하는 것 같지만,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대대로 성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에 대한 소극적인 인내를 넘어, 하나님을 신뢰하며 선을 행하고 주님의 성실하심을 에너지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보며 불평하지 말라고 말하는 다윗은 이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는 참고 기다리라는 소극적인 해결책을 넘어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을 알려 줍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시 37:3a)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호와를 의뢰하라”이며, 두 번째는 “선을 행하라”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의미를 전달하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악인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형통하는 것 같아도 참고 인내하라. 그리고 담담히 선을 행하라.” 악인들이 선한 사람들을 짓밟는 현실을 볼지라도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를 의뢰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공의로 심판하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믿으면 가능합니다. 이것이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대응 방식입니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우리의 선함이 악함을 쉽게 제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런 현실을 자주 경험합니다. 우리는 악의 승리와 선의 패배를 절감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이 지는 것 같아도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이 잘 번져 가지 않고 악의 세력이 더 확장하는 것 같아도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은 공로를 쌓거나 구원에 이르기 위한 착한 일을 넘어섭니다. 우리의 선행은 신앙 행위입니다.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영역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요즘 회자되는 뉴스들을 보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곤 합니다. 거짓된 종교들, 이단들이 크게 성장하는 모습과, 진리와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이 축소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옳은지 자괴감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호와만을 의뢰하고 선을 행하며 그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악인들이 성한 모습 속에서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죠. 그럼에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불평하지 말라 시기하지 말라. 여호와를 의뢰하라. 그리고 선을 행하라.” 이 맥락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들이 있습니다.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시 37:3b)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습니다. 개역개정은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먹을거리’로 삼으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새번역은 조금 달리 해석합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시 37:3b, 새번역)
새번역은 우리가 스스로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해석이 더 맞는 해석일까요?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가지가 다 가능한 해석입니다. 여기서 ‘성실’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에무나(אמונה[Emunah])’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원어 문장을 조금 더 실감 나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이 땅에 거하며 ‘에무나’를 먹으라.” 이 문장은 “이 땅에 거하며 성실을 먹으라”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문장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 땅에서 성실하게 살아라”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먹으며 살아라”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먹으며 살라”라는 말씀으로 해석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열심히 성실하게 살라는 도덕적인 훈화가 아닌, 2026년의 무한경쟁 시대 속에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원을 알려 주는 말씀으로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신뢰하며 내 삶의 모든 짐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세상은 부정한 방법과 편법을 에너지원으로 삼습니다. 타인을 짓밟는 삶의 방식을 양식으로 삼아 성장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에너지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에너지원은 다른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Faithfulness)’, ‘에무나’가 그리스도인의 에너지원이자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악이 성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마침내 승리하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모든 것을 바꾸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들이 조금 더 명료해집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 37:4~5)
하나님의 성실하심, 에무나를 먹거리로 삼고 에너지원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맡기다’라는 히브리어 ‘갈랄(גלל[Galal])’은 ‘굴려 보낸다’는 뜻입니다. ‘길갈’이라는 단어가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여호수아 5장에 광야에서 할례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받은 다음, 하나님께서 애굽의 수치를 떠나보내셨다는 의미로 그곳의 이름을 ‘길갈’이라 하신 표현이 나옵니다(수 5:9). 여기서 ‘떠나보내셨다’는 말은 ‘굴려 보냈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길갈’이라는 단어의 각주에 ‘굴러가다’라는 속뜻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단어가 여기 사용된 ‘갈랄’입니다.
이 단어를 명령형으로 사용하면 ‘골(Gôl)’이라는 발음이 됩니다. 시편 37편 5절 원문은 “골 알 야웨 다르케카(Gôl ‘al-Yah·weh dar·ke·ḵā)”라고 되어 있는데, 직역하면 “너의 길을 여호와 위로 굴려 버려라!”라는 생동감 넘치는 선포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개역개정은 ‘맡기다’라는 표현으로 해석합니다. “도저히 네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들을 하나님께로 굴려 보내라! 해결되지 않는 비즈니스의 문제, 자녀의 미래, 억울했던 모든 사건들, 그리고 마음의 모든 상처들을 하나님께로 떠나보내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인생의 경영권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지하면’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타흐(בטח[Batach])’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마음으로 믿는다, 감정적으로 의지한다’라는 뜻을 넘어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던진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높이 서 있다가 부모가 가까이 오면 갑자기 확 뛰어내리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빠 엄마를 완전히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타흐’의 의미입니다. 자신의 방어 기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받아 주는 분을 완전히 믿으면서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믿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에무나, 신실하심을 에너지원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무거운 짐들은 하나님께 모두 떠나보내고 그분께 나를 맡길 뿐입니다. 나를 던져 그분의 품에 안길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불의한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최종 승리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보며 끝까지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또다시 권면합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시 37:27~28)
앞의 3절에서 ‘선을 행하라’ 말했던 다윗은 27절에서 다시 ‘선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악한 세상에서 선함을 추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보상을 얻기 위함도 아니고 구원을 얻기 위함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에 선을 행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합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 (시 37:23~24, 새번역)
이 말씀을 개역개정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 37:24)
여기서 떠오르는 성경 인물이 있습니다. 비틀거리며 넘어질 것 같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의와 선을 행하면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끊임없이 어려움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한 사람, 요셉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하나님께 의뢰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유혹을 물리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처참한 듯 보였습니다. 모함을 받으며 그의 선함은 드러나지도 않고 파묻혀 버렸습니다. 누구도 그의 진심을 믿어 주지 않았고,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의 의로움과 선함은 완전히 묻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둠 속에서 요셉을 다듬고 계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요셉을 역사의 전면으로 다시 끌어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의 의로움은 정오의 빛처럼 빛나게 되었습니다. 자기 민족과 열방을 살리는 구원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말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 37:5~6)
때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악인이 끝까지 승리한 것 같은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선한 사람이 회복하지도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맙시다. 우리 인생의 서사는 이 땅의 죽음으로 마침표가 찍히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법정은 1심과 2심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보좌 앞이라는 ‘최종심’이 남아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판정을 다 받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받을 최종 심판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끝내 밝혀지지 않은 눈물들, 끝내 보상받지 못한 헌신들이 하나님의 장부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억울하셨던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던 것처럼, 이 땅에서 공의를 보지 못하고 눈감은 성도들의 의로움은 영원한 나라에서 정오의 빛보다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선한 길을 포기하지 맙시다. 이 땅에 선한 것이 소멸하는 것 같고, 보상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해서 선한 길을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보상하는 분이시기 이전에, 이 어두운 과정을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보상 여부와 관계없이 당당하게 선함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믿는 자가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야말로 선함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시 37:3). 흔들리지 않는 믿음,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시37:1~6)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30, 382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보고 속상했던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우리는 새해를 맞으며 ‘선함의 번짐’을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이 더 빨리 성공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도리어 잘되는 모습을 볼 때, 우리 마음에는 조급함과 박탈감이 찾아옵니다. 다윗은 청년 시절부터 노년까지 불의한 자들에게 쫓기며 억울함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황혼기에 서서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열 내지 말며, 냉정해지라고 권면합니다. 악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한순간이 지나면 흔적조차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여호와를 의뢰하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선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또 말합니다.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라.” 여기서 ‘성실’은 히브리어로 ‘에무나’입니다. 세상은 부정한 방법을 양식 삼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에무나)을 생존 전략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방법이 결국 이긴다는 그분의 신실하심을 양식 삼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에무나를 양식으로 삼는 사람은 자신의 길을 여호와께 맡깁니다. 여기서 ‘맡기다’는 히브리어로 ‘갈랄’인데, ‘굴려 보낸다’는 뜻입니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굴려 보내는 것입니다. ‘의지하면’은 ‘바타흐’인데, 어린아이가 부모의 품에 몸을 휙 던지듯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던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여호와를 의뢰하며 선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둠 속에서 요셉을 다듬고 계셨고, 마침내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의 의로움은 정오의 빛처럼 드러났습니다. 우리 인생의 서사는 이 땅의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보좌 앞이라는 ‘최종심’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선의 길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이 말씀이 2026년 한 해를 살아가는 지침이 되길 바랍니다.
<나누기>
1. 오늘 말씀을 통해 ‘에무나(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나누어 봅시다.
2. 이번 한 주간 하나님께 굴려 보내야 할 무거운 짐은 무엇인지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새해를 시작하며 주님의 보좌 앞에 나온 우리 성도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세상 속에서 정직하게 살려다 손해를 보고, 선을 행하려다 오해를 받아 마음이 상한 채 이 자리 에 앉아 있는 주의 자녀들을 안아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악인의 형통함 때문에 불평하거나 시기하며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로 결단합니다. 특별히 사업장과 일터에서 고군분투하는 성도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편법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신실함을 먹거리로 삼아 묵묵히 정직의 길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2026년 한 해,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사랑과 선을 행하는 일에만 전념하기를 원합니다. 끝까지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