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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예배로의 부르심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 하실 두 가지 질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만약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 요즘 여러분에게 가장 큰 관심은 무엇입니까? 신앙적 용어로 바꾼다면, 요즘 신앙인으로서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제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입니다. 저의 가장 긴급한 기도 제목은 연로하신 부모님이 영과 육이 명료한 상태에서 장로, 권사답게 하나님과의 여정을 계속하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시야를 넓힐 때 가장 큰 기도 제목은 우리 사회의 미래입니다. 과연 20, 30년, 아니 50년 후에 우리 대한민국은 어떠한 모습이겠습니까? 제가 인생의 대부분을 속해 있었던 신학교의 미래가 참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어떠한 모습일까요? 우리 신학교와 일터, 우리나라, 우리 교회의 모습은 우리 관심의 초점인 동시에 우선적인 기도의 제목입니다.
저는 지난해로 삼십 년 동안 섬긴 신학교에서 은퇴하였습니다. 지난 기간 함께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깊이 감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교우 여러분의 사랑과 섬김을 통하여 제 자신과 신학교로 전해진 것이 참으로 감사하였습니다. 그쯤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일터에서의 정년 은퇴는 진짜 은퇴의 예고편이라는 것입니다. 일터에서의 은퇴는 진짜 은퇴를 잘하라고 주신 주님의 준비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진짜 은퇴하는 날이 옵니다.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날을 잘 준비하라고 기회를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진짜 은퇴를 앞선 일터에서의 은퇴, 그 의미와 은퇴 이후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은퇴하는 그 순간, 주님 앞에(Coram Deo) 설 때, 우리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런 질문을 주실 것 같았습니다.
첫 번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래, 어땠어? 내가 너를 20세기 중반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보내 21세기까지 살게 했는데, 네 삶이 어땠어?” 이렇게 물으실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이 어디 멀리 떠났다가 돌아오면 묻듯이 우리 아버지께서도 그러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실 것 같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아마도 이런 내용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신나게 감사한 삶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와 젊은 시절 대부분은 나라가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꽤 부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나라로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해 받다가, 그 복음을 세상과 나누는 복도 누렸습니다.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세계 곳곳을 누비는 복음 전도자들, 선교사들과 함께하였던 삶이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조금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질문인 것 같습니다. 만약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질문하시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지 난감하였습니다. “너희가 남겨 두고 온 나라는 괜찮은 것이냐, 너희 교회는 괜찮아? 너의 딸과 너희 아들은, 손녀와 손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렇게 물으실 때 과연 우리는 어떠한 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은퇴 이후의 시간을 주신 이유, 우리가 지금도 생명을 연장받고 이 세상에서 진정한 은퇴를 하기까지의 시간을 더 허락받은 이유는 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주신 은혜의 잉여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에게 지난 반세기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엄청난 은혜의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엄청난 은혜를 생각할 때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주님 앞에 참 죄송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온 세상은 불안과 모호성을 띤 문화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하나님께 가장 죄송한 것은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고, 생명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 생명 경시의 문화가 주도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차별적으로 받았던 은혜에 대한 감사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오늘의 현실, 자살률 최고와 출생률 최저로 상징되는 생명 경시의 문화가 오늘 우리가 만들어 놓은 주도적 문화라는 것이 하나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에게 주신 그 생명, 그리고 누구든지 주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게 하시려는 그 생명을 우리는 너무 귀히 여기지 않게 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감사한 삶을 살았는데, 오늘의 대한민국과 사회는 정말 많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이 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특징적으로 우리는 이 사회 문화의 특징을 ‘VUCA’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사회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으로 가득 찬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격동적’(Volatile) 변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던 것들과의 연속성보다는 차별성을, 예측 가능함보다는 예측 불가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격동적이며 불확실하며 너무도 복잡한 사회변동은 우리를 ‘모호함’(Ambiguous) 속에 살게 합니다. 결국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추구를 불가능하게 하며, 찰나적인 소비 중심의 쾌락적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불확실함과 모호함을 간파한 이 세대의 문화는 기존의 가치로는 답할 수 없는 의미 상실과 불안, 외로움과 허무함을 가져오는 현실에 직면하게 합니다. 또한 우리 기성세대가 경험하였던 바와 같이 높은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경제 상황과 치열한 세계적 경쟁은 이웃을 돌볼 여유가 없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젊은 세대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체험되는 현실입니다.
이런 변화들로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확실성을 갖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했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될 거야’라는 확신을 갖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 너무 복잡해서 뭐 하나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다 얽혀 있지만 모호하여 사람들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어서 불안하고, 비교적 젊은 세대들은 정보가 많지만 더욱 불안해합니다. 그래도 기성세대는 성장하는 세상, 성장하는 대한민국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생각할 때, 지금 감사하지 않을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잘 살았기 때문에 이제는 올라갈 일이 별로 없습니다. 경제는 수축되고 경쟁은 심해지며 똑똑한 사람들은 많다 보니, 젊은 세대의 불안감은 사실 기성세대보다 더 큰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호하고 불안한 시대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모호함과 허무함, 외로움과 불안감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 시대에 누구를 탓할 수 있으며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를 예배로 부르신 주님의 뜻이 여기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것이 곧 VUCA 시대의 신앙인과 교회의 과제입니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변화를 이해해야 하고, 변화에 응답하기 위하여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과 문화가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우리가 붙잡고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이때 불변하는 진리와 불변의 상수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운영하시며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사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격동하는 가운데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창조주가 나의 아버지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실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님은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롬 12:1)
모든 것이 극심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할 때 우리에게 희망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힘입어서 희망을 이 땅에 선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일러 주시고 우리를 초대하신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맛본 백성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이 자리에 나왔겠습니까?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 나온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예배를 드려 왔습니다. 오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드려왔던 예배를 돌아보게 됩니다. 주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롬 12:1)
저는 이 말씀을 접할 때마다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렸겠습니까? 그러나 이 말씀 앞에서 지금까지 제가 드려왔던 예배 중 상당 부분이 립서비스였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제 몸을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가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입술로만 드리는 기도, 입술로만 드리는 찬양, 입술로만 드리는 예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입술만이 아니라 나의 몸이, 우리의 몸들이 거룩한 산제물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께서 권고하십니다. “입술로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내가 받기를 원하는 예배는 너희의 몸이다.” 거룩한 산제사로 드린다는 것은 입술뿐만이 아니라 몸이 바쳐지는 삶입니다. 몸으로 드려지는 예배란 일요일만이 아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 즉 일상에서도 우리 주님이 주님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을 인정하는 것은, 찬양하는 것은 교회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가정, 지역사회, 일터에서도 주님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적 예배, 삶의 예배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가 예배당 안에서 거룩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배당 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과 일터와 지역사회에서도 주님으로서 인정받고 찬양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몸으로 드려야 할 산 재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영적 예배’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영적’이란 이성을 초월하여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영적’으로 번역된 단어는 ‘λογικήν’(로기켄)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어떤 번역에는 ‘spiritual service’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때로는 ‘reasonable service’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영적’이라는 의미인 ‘로기켄’이 ‘로고스’, 즉 ‘하나님의 말씀’ 또는 ‘하나님의 도리’로부터 비롯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예배는 방언이나 찬양만을 하는 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알아듣고 느낄 수 있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도리에 합당한 삶이 곧 영적인 삶입니다. 따라서 ‘영적’이란 우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영역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영적이라는 것은 곧 우리의 신앙은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과연 이러한 신앙적 삶을 살아가는 것, 이러한 영적 예배를 드리며 살아가라는 주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배당 안에서와 집, 일터, 지역사회에서의 모습이 일관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다시 구체적으로 일러 주십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우리가 영적 예배를 신앙인다운 삶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살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고 그것을 분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우리가 첫 번째 노력해야 하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이 세대의 안경을 가지고 말씀을 보면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거나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즉 성과 돈과 권력을 우상으로 삼고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즐기고 살아야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이 세대의 결국은 성과 돈과 권력이 우상이 되는 삶입니다. 물론 성과 돈, 권력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문화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목적이 되고 이것이 우리의 주인이 될 때, 이것은 우상이 됩니다. 이것이 단지 도구로만 쓰일 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세상을 주인 삼지 말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말씀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지식, 경험과 이념을 절대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변화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지식, 나의 경험, 나의 이념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걸 절대화하지 말고 계속해서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도 계속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뭔지, 디지털이 뭔지, 무엇보다 주님의 뜻을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소망의 교우 여러분, 이 불안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 모호함의 시대에 누가 자신이 있겠습니까? 자신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너무 불안하니 이웃을 돌볼 겨를도 없이 각자도생의 삶,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는 개인주의에 매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지 현재를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찰나적인 현실주의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도 그 문화에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영적 예배로 부르십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마지막 주님께서 “그래, 살아 보니 어땠어?”라고 물으실 때, “너희 딸, 너의 아들, 손자와 손녀는 어디 있어? 너희 교회, 너희 나라는 어때?”라고 물으실 때, 조금 자신 있게 “주님, 지금까지 신나게 살아왔던 것처럼, 우리의 남은 여정도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세상에 소망이 되어 가고, 우리나라가 열방의 희망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고백을 주님 앞에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들을 주님 앞에 제대로 드리고 삶으로 예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 희망을 주고, 민족의 희망으로서 우리 교회가 세워져 가는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Call to Spiritual Worship
Romans 12:1-2
Beloved friends, what would your answer be to the following question? What is your greatest concern these days? To put it in theological terms, what is your most important prayer topic as a Christian?
This will be my answer. My greatest concern these days is our future. What will Korea look like in three, four, or five decades? I am also worried and curious about the future of the seminary to which I dedicated most of my life. In particular, what would Somang Church look like in the future? Our seminary, our workplace, our nation, and our church are our concerns as well as top-priority prayer topics.
Last year, I retired from the Presbyterian University and Theological Seminary (PUTS) where I had served for three decades. This change instilled in me a deeper gratitude for the Lord who was with me all those years and granted me His love and grace. I am truly grateful for His grace and love sent to me and the school through your love and service.
And I realized something. Retirement from work is a preview of our ultimate retirement. As I thought about the former as a preview of the latter and the meaning of life after retirement, I imagined the following. I imagined that God would ask us these questions when we stand before Him (Coram Deo) on the day we permanently retire from this life.
His first question: “So how was it? I let you be born in a country called the Republic of Korea in the 20th century and you lived there into the 21st century. How was your life?” I would answer, “Thank you, Father. I am grateful for the dynamic life I led. When I was young, most Koreans were very poor. But in a few decades Korea became quite a prosperous country. I saw it change from a recipient of aid to a donor country. In particular, Korea, a country that received the Gospel at first, was blessed to become a nation that shared it with the world. During my life, I was able to meet many evangelists and missionaries who worked to evangelize our people and traveled to every corner of the globe to spread the Gospel to all nations and peoples.”
“Lord, thank You, truly!”
However, what would I say to Him if He asked me this second question? “But will your country that you are leaving behind in this world be okay? Will your church be okay? And what about your children and grandchildren?” I think I would be speechless.
My friends, I believe that the reason God gave me this post-retirement period, the reason He has given us more time until our ultimate retirement by extending our life, is to give us a surplus time of grace so that we will be able to answer His second question better.
Truth be told, the past half century of Korea was a period of amazing grace of God for most of the older generation.
However, when we consider this great grace that was lavished upon us in the past, we become remorseful before God about the reality of our society today. What grieves me most is that we have lost thanksgiving and have created a world dominated by a culture that disregards human life. I feel deeply apologetic to God about our reality and culture today. Our reality is that we are full of complaints and dissatisfaction instead of gratitude for the grace God lavished upon for the past five decades; and we have created a culture that blatantly disrespects life, symbolized by the highest suicide rate and lowest birth rate in the world.
We need to understand the background and factors of this situation. Only then can we find a way to overcome this crisis.
The characteristics of today’s society and culture can be summed up in the acronym VUCA. Our world today is full of 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nd ambiguity.
The volatile changes of today’s society fueled by digital technology and artificial intelligence mean that we will see more differences than continuity in what we have experienced till now. Also, there will be more unpredictability than predictability.
Turbulent, unpredictable, and complex societal changes make our lives ambiguous, making it impossible to pursue the true meaning and purpose of life and creating a hedonistic culture of instant gratification and consumption. The culture of today’s generation, already familiar with uncertainty and ambiguity, is facing a reality that cannot be explained by existing values—a reality characterized by loss of meaning, anxiety, loneliness, and futility.
Furthermore, Korea’s economy today cannot achieve the high growth witnessed by its older generation and we are facing fierce global competition. In such a world, it is every man for himself and people no longer have the luxury to care for their neighbors. This is the painful reality felt particularly by the young generation today.
How can we overcome this ambiguity, futility, loneliness, and anxiety? The mission of Christians and the church today living in this VUCA era is to provide an answer to this question.
Most of all, to adapt to this rapidly changing society, we must be able to understand those changes and also change ourselves to respond to them. At the same time, however, there are things we must guard and hold on to, no matter how much the world and our culture may change.
Discerning what we must hold on to and what must be changed is not an easy task. Putting it into practice is not easy either.
Yet we have hope. Despite a world full of volatility and variables, we have a constant that never changes.
Our hope that allows us to bear the weight of this world begins in the fact, the truth, that God loves us.
The existence of God and His unfailing presence in our lives even in the midst of utter turbulence! The love of our Lord on the cross that embraces us as we are with absolute certainty in this uncertain world and forgives all our weaknesses and sins!
The existence of God who shows us our path ahead in this utterly complex and ambiguous world that prevents us from understanding meaning sincerity and the fact that this God is our Father who loves us! This is our only hope.
Therefore, the Bible speaks to us through Paul:
“Therefore, brothers, by the mercies of God, I urge you […]” (Romans 12:1 CSB)
This means that even in this constantly changing world, the way of hope will be opened to us when we trust in God’s love.
The unchanging thing in this changing world, the purpose for which we have been called to this world, is to delight in God and to give Him delight. In other words, to live a life of worship. This is why God called us to worship even on this Sunday.
Truth be told, we have worshiped God thousands of times until now. But today’s Scripture makes us reflect on our past services. Our Lord speaks to us through Paul:
“to present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pleasing d pleasing to God—” (Romans 12:1 CSB)
Before these words, I confess that many of my services to God until now have been just lip service to Him. Worship that pleases God is worship that offers our bodies—not just our lips—as a holy and living sacrifice to God.
To offer our bodies as a holy and living sacrifice refers to a life that offers not just our lips to Him but our whole bodies. Such a worship means to live a life that acknowledges Jesus not just on Sundays, but in our daily lives throughout the whole week. And to acknowledge and praise Him means to live a life that acknowledges Jesus not just in church but in our homes, local communities, and workplaces.
The Bibles calls this “spiritual worship.”
Here “spiritual” does not refer to things that occur in an unknown realm that goes beyond reason.
The original Greek word for “spiritual” is “λογικήν (logikēn).” The translations in English Bibles include not just “spiritual service” but also “reasonable service.” This is because logikēn originates from logos, the Word of God or divine reason.
That’s right. Your spiritual worship is a life worthy of the Word of God and His divine reason. Therefore, “spiritual” is a realm that encompasses our entire lives. Saying that our faith is spiritual is the equivalent of saying that our faith is manifested in the fruit of our lives.
But how can we respond to our Lord’s call to offer this spiritual worship to Him, to live such a life of faith?
Our Lord teaches us again in detail how we can live such a life. The Bible says, “Do not be conformed to this age,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so that you may discern what is the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of God.” (Romans 12:2 CSB)
That’s right. The way to live the proper life of a Christian with our bodies, the way to properly respond to God’s call to spiritual worship, is to discern the will of God our Father and to live in obedience to His will.
Here the important thing is to know His heart, that is, to know His will. This means to discern His will. In order to discern His will, our Lord first tells us not to be conformed to this age. This means that we should not follow or worship the lust of the flesh, the lust of the eyes, or the pride of life. That is, we should not follow or idolize sex, money, or power.
The reason we are not grateful, complain, are dissatisfied, and love worldly pleasures today—isn’t it because we have been conformed to this age and its culture?
The Lord also says this. To live a life that discerns the will of God properly and obeys it, we mus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our minds. This means we must not consider our own knowledge, experiences, or ideas to be absolute.
We must be changed by the renewing of our minds. We must also exert efforts to understand the changes of this new age and learn how to communicate. Those who have received the love of God must not remain in that first love. We must remember Paul’s prayer: “I pray that your love will overflow more and more, and that you will keep on growing in knowledge and understanding. […] May you always be filled with the fruit of your salvation—the righteous character produced in your life by Jesus Christ —for this will bring much glory and praise to God.”(Philippians 1:9-11 NLT)
Today we are living in the era of VUCA: everything is volatile, making the future uncertain; everything is intertwined in a complex way, creating an unclear and ambiguous world.
This means that we cannot return to the familiar daily life of yesterday. Therefore, we must change in many ways. No one is an exception. No one, neither the older generation nor the young, can confidently say he/she is ready for the changes of this world. We all must be changed and renewed.
Yet no matter how much this world may change, our unchanging purpose in life and faith which must be guarded and sustained is to offer spiritual worship that is holy and pleasing to God.
Although this world may be fatally uncertain and ambiguous, the only unchanging constant is God the Father, the Creator and Ruler of the world. And this God loved us to the point of crucifying His one and only Son, Jesus Christ, on the cross. This is our hope.
Isn’t this the very reason we are here to worship? Hasn’t God, the One who gave us hope, called us and given us a chance to praise and please Him? This is how we have come to worship today.
Now we are called not only to offline worship and fellowship, but also to online worship and online fellowship. We have been called to become true and proper Christians who acknowledge Jesus not just on Sundays but throughout the whole week, who acknowledge Him not just in church but also at home, in our local community, and at work. We hear God’s call to spiritual worship.
Now, the more we offer spiritual worship and become true and proper Christians, the more our church will be strengthened and built up to become a truly church-like church.
May we build a truly church-like church by presenting our lives to God as a living sacrifice, offering spiritual worship, and becoming true and proper Christians.
In this era of crisis marked by uncertainty, ambiguity, and anxiety where every man has to look out for himself, our Lord is calling us to “spiritual worship” today to reinstate us as the hope of our society and people. May we all respond to His call to spiritual worship with our lives.
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 하실 두 가지 질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만약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 요즘 여러분에게 가장 큰 관심은 무엇입니까? 신앙적 용어로 바꾼다면, 요즘 신앙인으로서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제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입니다. 저의 가장 긴급한 기도 제목은 연로하신 부모님이 영과 육이 명료한 상태에서 장로, 권사답게 하나님과의 여정을 계속하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시야를 넓힐 때 가장 큰 기도 제목은 우리 사회의 미래입니다. 과연 20, 30년, 아니 50년 후에 우리 대한민국은 어떠한 모습이겠습니까? 제가 인생의 대부분을 속해 있었던 신학교의 미래가 참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어떠한 모습일까요? 우리 신학교와 일터, 우리나라, 우리 교회의 모습은 우리 관심의 초점인 동시에 우선적인 기도의 제목입니다.
저는 지난해로 삼십 년 동안 섬긴 신학교에서 은퇴하였습니다. 지난 기간 함께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깊이 감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교우 여러분의 사랑과 섬김을 통하여 제 자신과 신학교로 전해진 것이 참으로 감사하였습니다. 그쯤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일터에서의 정년 은퇴는 진짜 은퇴의 예고편이라는 것입니다. 일터에서의 은퇴는 진짜 은퇴를 잘하라고 주신 주님의 준비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진짜 은퇴하는 날이 옵니다.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날을 잘 준비하라고 기회를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진짜 은퇴를 앞선 일터에서의 은퇴, 그 의미와 은퇴 이후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은퇴하는 그 순간, 주님 앞에(Coram Deo) 설 때, 우리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런 질문을 주실 것 같았습니다.
첫 번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래, 어땠어? 내가 너를 20세기 중반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보내 21세기까지 살게 했는데, 네 삶이 어땠어?” 이렇게 물으실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이 어디 멀리 떠났다가 돌아오면 묻듯이 우리 아버지께서도 그러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실 것 같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아마도 이런 내용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신나게 감사한 삶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와 젊은 시절 대부분은 나라가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꽤 부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나라로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해 받다가, 그 복음을 세상과 나누는 복도 누렸습니다.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세계 곳곳을 누비는 복음 전도자들, 선교사들과 함께하였던 삶이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조금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질문인 것 같습니다. 만약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질문하시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지 난감하였습니다. “너희가 남겨 두고 온 나라는 괜찮은 것이냐, 너희 교회는 괜찮아? 너의 딸과 너희 아들은, 손녀와 손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렇게 물으실 때 과연 우리는 어떠한 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은퇴 이후의 시간을 주신 이유, 우리가 지금도 생명을 연장받고 이 세상에서 진정한 은퇴를 하기까지의 시간을 더 허락받은 이유는 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주신 은혜의 잉여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에게 지난 반세기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엄청난 은혜의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엄청난 은혜를 생각할 때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주님 앞에 참 죄송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온 세상은 불안과 모호성을 띤 문화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하나님께 가장 죄송한 것은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고, 생명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 생명 경시의 문화가 주도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차별적으로 받았던 은혜에 대한 감사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오늘의 현실, 자살률 최고와 출생률 최저로 상징되는 생명 경시의 문화가 오늘 우리가 만들어 놓은 주도적 문화라는 것이 하나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에게 주신 그 생명, 그리고 누구든지 주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게 하시려는 그 생명을 우리는 너무 귀히 여기지 않게 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감사한 삶을 살았는데, 오늘의 대한민국과 사회는 정말 많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이 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특징적으로 우리는 이 사회 문화의 특징을 ‘VUCA’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사회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으로 가득 찬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격동적’(Volatile) 변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던 것들과의 연속성보다는 차별성을, 예측 가능함보다는 예측 불가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격동적이며 불확실하며 너무도 복잡한 사회변동은 우리를 ‘모호함’(Ambiguous) 속에 살게 합니다. 결국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추구를 불가능하게 하며, 찰나적인 소비 중심의 쾌락적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불확실함과 모호함을 간파한 이 세대의 문화는 기존의 가치로는 답할 수 없는 의미 상실과 불안, 외로움과 허무함을 가져오는 현실에 직면하게 합니다. 또한 우리 기성세대가 경험하였던 바와 같이 높은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경제 상황과 치열한 세계적 경쟁은 이웃을 돌볼 여유가 없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젊은 세대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체험되는 현실입니다.
이런 변화들로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확실성을 갖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했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될 거야’라는 확신을 갖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 너무 복잡해서 뭐 하나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다 얽혀 있지만 모호하여 사람들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어서 불안하고, 비교적 젊은 세대들은 정보가 많지만 더욱 불안해합니다. 그래도 기성세대는 성장하는 세상, 성장하는 대한민국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생각할 때, 지금 감사하지 않을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잘 살았기 때문에 이제는 올라갈 일이 별로 없습니다. 경제는 수축되고 경쟁은 심해지며 똑똑한 사람들은 많다 보니, 젊은 세대의 불안감은 사실 기성세대보다 더 큰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호하고 불안한 시대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모호함과 허무함, 외로움과 불안감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 시대에 누구를 탓할 수 있으며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를 예배로 부르신 주님의 뜻이 여기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것이 곧 VUCA 시대의 신앙인과 교회의 과제입니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변화를 이해해야 하고, 변화에 응답하기 위하여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과 문화가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우리가 붙잡고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이때 불변하는 진리와 불변의 상수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운영하시며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사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격동하는 가운데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창조주가 나의 아버지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실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님은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롬 12:1)
모든 것이 극심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할 때 우리에게 희망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힘입어서 희망을 이 땅에 선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일러 주시고 우리를 초대하신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맛본 백성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이 자리에 나왔겠습니까?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 나온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예배를 드려 왔습니다. 오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드려왔던 예배를 돌아보게 됩니다. 주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롬 12:1)
저는 이 말씀을 접할 때마다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렸겠습니까? 그러나 이 말씀 앞에서 지금까지 제가 드려왔던 예배 중 상당 부분이 립서비스였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제 몸을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가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입술로만 드리는 기도, 입술로만 드리는 찬양, 입술로만 드리는 예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입술만이 아니라 나의 몸이, 우리의 몸들이 거룩한 산제물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께서 권고하십니다. “입술로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내가 받기를 원하는 예배는 너희의 몸이다.” 거룩한 산제사로 드린다는 것은 입술뿐만이 아니라 몸이 바쳐지는 삶입니다. 몸으로 드려지는 예배란 일요일만이 아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 즉 일상에서도 우리 주님이 주님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을 인정하는 것은, 찬양하는 것은 교회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가정, 지역사회, 일터에서도 주님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적 예배, 삶의 예배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가 예배당 안에서 거룩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배당 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과 일터와 지역사회에서도 주님으로서 인정받고 찬양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몸으로 드려야 할 산 재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영적 예배’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영적’이란 이성을 초월하여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영적’으로 번역된 단어는 ‘λογικήν’(로기켄)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어떤 번역에는 ‘spiritual service’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때로는 ‘reasonable service’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영적’이라는 의미인 ‘로기켄’이 ‘로고스’, 즉 ‘하나님의 말씀’ 또는 ‘하나님의 도리’로부터 비롯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예배는 방언이나 찬양만을 하는 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알아듣고 느낄 수 있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도리에 합당한 삶이 곧 영적인 삶입니다. 따라서 ‘영적’이란 우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영역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영적이라는 것은 곧 우리의 신앙은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과연 이러한 신앙적 삶을 살아가는 것, 이러한 영적 예배를 드리며 살아가라는 주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배당 안에서와 집, 일터, 지역사회에서의 모습이 일관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다시 구체적으로 일러 주십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우리가 영적 예배를 신앙인다운 삶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살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고 그것을 분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우리가 첫 번째 노력해야 하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이 세대의 안경을 가지고 말씀을 보면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거나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즉 성과 돈과 권력을 우상으로 삼고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즐기고 살아야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이 세대의 결국은 성과 돈과 권력이 우상이 되는 삶입니다. 물론 성과 돈, 권력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문화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목적이 되고 이것이 우리의 주인이 될 때, 이것은 우상이 됩니다. 이것이 단지 도구로만 쓰일 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세상을 주인 삼지 말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말씀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지식, 경험과 이념을 절대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변화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지식, 나의 경험, 나의 이념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걸 절대화하지 말고 계속해서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도 계속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뭔지, 디지털이 뭔지, 무엇보다 주님의 뜻을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소망의 교우 여러분, 이 불안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 모호함의 시대에 누가 자신이 있겠습니까? 자신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너무 불안하니 이웃을 돌볼 겨를도 없이 각자도생의 삶,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는 개인주의에 매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지 현재를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찰나적인 현실주의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도 그 문화에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영적 예배로 부르십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마지막 주님께서 “그래, 살아 보니 어땠어?”라고 물으실 때, “너희 딸, 너의 아들, 손자와 손녀는 어디 있어? 너희 교회, 너희 나라는 어때?”라고 물으실 때, 조금 자신 있게 “주님, 지금까지 신나게 살아왔던 것처럼, 우리의 남은 여정도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세상에 소망이 되어 가고, 우리나라가 열방의 희망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고백을 주님 앞에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들을 주님 앞에 제대로 드리고 삶으로 예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 희망을 주고, 민족의 희망으로서 우리 교회가 세워져 가는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영적 예배로의 부르심” (롬12:1~2)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90, 34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가장 큰 불안이나 걱정은 무엇입니까? 그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설교의 요약>
우리는 VUCA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고, 의미와 목적을 찾기 힘든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감사를 잃어버리고 생명을 경시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하는 가운데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상수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격동하는 세상에서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확실하게 우리를 품어 주시며, 복잡하고 모호한 세상에서도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근거로 우리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권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드려온 예배 중 상당 부분이 입술만의 예배였다면, 이제는 몸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적 예배란 주일뿐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교회당 안에서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도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며 사는 삶입니다.
이러한 영적 예배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과 돈과 권력을 우상으로 삼는 세상 문화를 따르지 말고, 동시에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절대화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누기>
-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나누고, 입술뿐만이 아닌 삶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에 대해 서로 격려해 봅시다.
- 우리 가정과 일터, 그리고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저희들을 부족하다 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영적 예배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부르심에 우리의 삶으로 응답하여, 더욱 신앙인다운 신앙인이 되고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어, 이 땅에 희망을 일구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