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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첫 수업

요한복음 2:1~11

김경진 목사

2024.02.04

<첫 번째 이적, 가나 혼인 잔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는 예수님의 공생애 첫 번째 이적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특별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공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데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공관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예수님의 일대기를 순차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은 신학적인 구조로 시간에 관계없이 의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첫 번째 기적인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이야기는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생명과 빛에 대한 말씀이 총제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후에 세례요한의 증언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2장에서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기적이 소개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의 고민을 시작하곤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기적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보여 주셨을까?”, “물과 포도주는 어떤 의미일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인간의 잔치와 하나님의 잔치를 대조합니다. 인간의 잔치는 결국 끝날 수밖에 없는 잔치이지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잔치는 영원한 잔치라는 해석입니다. 어떤 분들은 마지막에 있을 어린 양의 잔치,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예견하는 모습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또, 성찬·성례전 제정과 연결해서 계시적 사건으로 보기도 하고,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탁하는 장면을 통해 마리아를 통한 기도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다양한 관점들은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으려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이 말씀이 요한복음의 첫 번째로 나오는 의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관심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여기에 대한 설교와 연구를 해 왔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첫 이적인 가나 혼인 잔치 이적에는 어떤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여러분과 좀 더 쉬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가나 혼인 잔치의 이적은 누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첫 번째 이적을 통해 특별한 이들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그럼에도 첫 번째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과연 이 기적은 누구를 위해서 하신 것일까요? 언뜻 생각나는 대상이 있습니다.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고 당황하고 있을 혼주들과 신랑·신부입니다. 외경에 따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신랑의 숙모라는 전설도 있습니다. 3세기 초 라틴어 서문에는 신랑을 세배대의 아들 요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사람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마리아가 결혼식과 관련된 가족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예수님께 가족의 문제 해결을 부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이적은 연회를 베푼 혼주의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생애 첫 이적을 가족의 문제 해결만을 위해 행하셨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보다 더 큰 뜻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를 위하여 이와 같은 일을 하셨을까요? 누구를 염두에 두고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요한복음 1장과 2장에는 연결되는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제자’라고 하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2장 역시 ‘제자’가 앞부분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 2:1~2)

 

제자들도 혼례의 청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른 뒤의 사흘째 되던 날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여러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부른 제자가 나다나엘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나 혼인 잔치에 가신 날입니다. 이것만으로 제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적을 일으키셨다고 보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이야기의 마지막을 확인하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2:11)

 

마지막에 나오는 단어 역시 제자들입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결론으로 “그[예수]의 제자들이 그[예수]를 믿게 되었다.”(요 2:11, 새번역)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가나 혼인 잔치 이적의 앞뒤로 ‘제자들’이라는 단어가 거명되고 있고,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야기의 결론 역시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해 이루실 새로운 이스라엘을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생각하시면서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말일까요?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이는 장면을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우선 세례요한의 제자들 중에 두 사람이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떠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후에 형제 시몬 베드로를 찾아가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들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다음 날 예수님께서 지나가다가 빌립을 발견하시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시자, 빌립은 즉시 예수님을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빌립은 자신의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갑니다. 그에게 “우리가 찾던 선지자가 드디어 나타났다.”라고 말하면서 “그가 바로 나사렛 예수다.”라고 증언합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빌립이 “와 보라.”고 말하면서 강한 확신을 보여 줍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찾아 나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부르는 장면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의 절정입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7)

 

예수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 1:48, 새번역)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과정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이렇게 됐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기는 적절한 시간이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 1:50~51)

 

예수님께서 나다나엘과 대화하시는 이 장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야곱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올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간사한 것’은 야곱의 특징입니다. 간사함과 속이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이는 참 이스라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이름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던 것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야곱이었던 자, 속이는 자였던 자, 간사하였던 자가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이 되고 큰 민족을 이루었던 사건을 기억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요 1:5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역시 야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라고 고백했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부르실 때, 야곱이 하나님의 민족, 이스라엘이 되었던 사건을 말씀하시면서 나다나엘이 그와 같은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이야기를 조금 바꿔서 “인자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 이제 예수님을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될 이스라엘 공동체를 꿈꾸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자들의 첫 번째 수업의 내용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이렇게 큰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났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사흘째 되던 날 (요 2:1a)

 

그렇다면 가나의 혼인 잔치에 나다나엘도 빌립도, 모든 제자들이 함께 갔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곳에 가서 본 것, 그들이 경험한 것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내용 그대로일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제자들이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마리아가 예수님을 불러서 포도주가 없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이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 2:5)고 하인들에게 명령하는 장면도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사용하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의 과정도, 하인들이 그렇게 하는 모습도, 또 어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하시는 말씀도 보았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연회장이 그것을 마시고는 어떻게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아직까지 남겨 두었느냐고 감탄하는 모습도 보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키시는 모든 단계, 모든 장면을 함께 경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타개하시는 데 하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하인들은 두 번의 말씀으로 동원이 됩니다. 우선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인들이 그것을 채웠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또 “거기에 있는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 따라서 하인들은 연회장에게 물을 갖다줍니다. 어디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연회장이 물을 마실 때 이미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 과정을 보고 있던 제자들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씀할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면 어색한 일이 되었을까요. “마리아여 포도주가 떨어졌다니 이제 제가 포도주를 채워 드리겠습니다. 다시 가서 포도주 통을 열어 보십시오. 포도주가 가득 차 있을 터이니 그것을 가져다가 함께 나누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이상할까요.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을 갖다가 길어서 넣고, 다시 떠다 주는 과정 없이도 얼마든지 물을 포도주로, 아니 그냥 포도주를 만드실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충하실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을 채우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물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셨고, 또 물을 채우는 하인들의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을 갖다주라고 말씀을 하셨고, 순종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가나의 이적은 이 두 가지 요소가 없었다면 아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셨을까요. 물이 없으면 포도주를 만들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나름의 목적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자들을 교육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부르짖는 자가 발견되리라.”라는 제목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능동의 수동에 대해서 함께 배웠습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같지만, 그것은 마치 무인도에서 SOS를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발견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즉, 결국은 수동형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봉사를 하죠. 능동형처럼 보입니다. 하인들이 아구까지 물을 채우는 것도 능동적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 일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필요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합력하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이 이적을 유도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물통마다 물을 가득 채워 넣어도 하나님께서 하지 아니하신다면 절대로 물은 포도주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물이 포도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하인들이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이에 말씀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라.”라는 말씀도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 때문에 그것에 순종하는 사람이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제자들이 그물을 오른편에 던집니다. 그랬을 때 많은 고기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그물을 오른편에 던진다고 한들, 결코 고기를 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에 의지하여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합력하여서 하나님의 일을 아름답게 성취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은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생애와 그의 헌신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 없이도, 아론 없이도, 바로를 그에게 보내지 않고서도 충분히 하나님 홀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과 같은 부족한 사람들을 사용하셨고, 그 부족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에 동참시키시고 그들에게도 영광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연회장이 “이것이 어디에 왔는지 몰랐다.”라고 말하는 반면에, 하인들은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인들은 말씀에 순종하면서 예수님께서 그것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하인들이 이 기적의 비밀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첫 번째 수업, 첫 번째 레슨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이 일을 행하셨다고 한다면,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 행하셨다면 제자들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하인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갈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사도의 역할을 할 사람들입니다. 이제 새롭게 출발할 그들에게 주시고자 한 첫 번째 레슨은 “나의 말을 따라라.”,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말을 따라가라.”, “그 말씀을 따라갈 때 너희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2024년을 보내면서 주님의 말씀을 함께 읽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며 온전히 충성할 때 그 말씀과 함께 이루어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올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라는 말씀을 하실 때, 주님의 말씀 앞에 모인 그들에게 이러한 일을 맡기겠다는 주님의 결단을 알려 줍니다. 제자들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중에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물을 채우라는 말씀에 순종하고, 가져다주라는 말씀에 그대로 할 때 하인들과 제자들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우리 또한 그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2024년 주님의 말씀을 굳건히 붙잡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충성되게 하인이 했던 것처럼 비록 완전한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다른 대안이 생각날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미련하게 붙잡고 그저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기적을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 붙잡으며 행복한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

Jesus’ First Lesson

 

John 2:1-11

 

Today’s text is familiar to us. It tells the story of Jesus turning water into wine, the first miracle of His public ministry.

 

The passage is important in several aspects. First, the story of Jesus turning water into wine at a wedding in Cana appears only in the Gospel of John. Second, the story plays an extremely part of the book.

 

It is a well-known fact that the Gospel of John is different from the other Gospels. The Synoptic Gospels—Matthew, Mark, and Luke—revolve around the life of Jesus. But John writes his book with a unique structure and a theological perspective. The Gospel of John is a well-structured, single book that explains who Jesus is.

 

The first chapter starts with a grand sentence,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a brief introduction on Jesuswho will be explained in the rest of the book. Then the book tells us about John the Baptist’s testimony on Jesus andhow Jesus calls the disciples.

 

From chapter 2 John writes about the acts of Jesus, the first of which is the miracle at the wedding at Cana. This story appears only in John. Therefore, it can be compared to a key that opens the Gospel of John to us. It holds secrets and allusions that help us interpret the other stories about Jesus John writes in the following chapters. Today’s text, therefore, has been deemed important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 church and has been interpreted from diverse perspectives.

 

Why did Jesus make this miracle at Cana, the transformation of water into wine, His first miracle?

 

Some people make a comparison between the feast of man and the feast of God to better understand this text. While the former does not go on forever, as symbolized by the reality of the wine running out, the latter, the feast of Jesus, lasts forever.

 

Developing this perspective, some say the story of the wedding feast in Cana is an illustration of the ultimate Feast of the Lamb in the Kingdom of Heaven to which we will be invited.

 

Others claim that the wedding feast in Cana in connected toJesus’ creation of communion, the feast Jesus Himself gives at the end of His life using wine. There are also those who use today’s text to teach prayer through Mary, focusing on her request to Jesus. There have also been attempts to interpret the text through the connection between wisdom and wine in the Old Testament.

 

Although some of these interpretations are farfetched, they are meaningful. Their significance has been explained by many preachers and theologians.

 

Looking at all these interpretations, we may say they all attempt to answer these questions: What is the significance of Jesus’ miracle of turning water into wine at Cana? Why is this story introduced as the first miracle? What is the purpose?  In short, all these interpretations are trying to answer this: What is the theological meaning of Jesus’ miracle at the wedding at Cana?

 

I, however, wish to change the question a bit: For whom did Jesus perform the miracle at the wedding feast at Cana?

 

Jesus transformed water into wine in Cana. Even though Jesus Himself said His time had not yet come, He performed the miracle. For whom, then,did He do this?

 

We may first consider the bride and groom and their family who would have panicked at the lack of wine. According to apocryphal legends, the groom was Mary’s nephew; and in the preface of a Latinapocrypha written in AD 3C the groom is introduced as Zebedee’s son John; so it is possible that Mary asked Jesus to solve the crisis because He is family.

 

We cannot deny that the primary beneficiaries of Jesus’ miracle werethe family of the bride and groom, the hosts of the party. In this sense, you may say Jesus performed the miracle for them. Yet it is highly unlikely that our Lord performed His first ever miracle to solve a family crisis. He would have had a greater purpose than that.

 

Reading John 1 and 2 in continuation, we find that the disciples have a major role in the story of the wedding at Cana. John 2 starts like this:

 

“On the third day a wedding took place at Cana in Galilee. Jesus’ mother was there,and Jesus and his disciples had also been invited to the wedding.”(John 2:1-2)

 

The Bible starts John 2 with the phrase “On the third day.” The third day from when? Although the Bible is not explicit about this, it seems to have been the third day since Jesus called Nathaniel to be His disciple.

 

On the third day since Jesus called His disciples and Nathaniel, Jesus goes to a wedding feast with them. This alone however does not confirm that the miracle was intended for the disciples. But the last part of the story allows us to conclude that it was indeed for them. As John wraps up the story, he writes in verse 11:

 

“This, the first of his miraculous signs, Jesus performed in Cana of Galilee. He thus revealed his glory, and his disciples put their faith in him.”(John 2:11)

 

In short, the disciples are mentioned at the beginning and end of the story about the miracle in Cana. Furthermore, the story’s conclusion is this: “and his disciples put their faith in him.”(John 2:11b)

 

John 2 testifies that the disciples came to believe in Jesus as a result of His miracle at Cana.

 

Now, with this viewpoint in mind, let’s study the story of the wedding feast in Cana more closely.

 

John 1 describes, in a simple but dynamic way, how the disciples come to Jesus.

 

First, two of John the Baptist’s disciples decide to follow Jesus after hearing John’s testimony about Him. One of the two was Andrew, whobrings his brother Peter.

 

Then Jesus calls Philip to be His disciple, who in turn brings his friend Nathaniel. The scene of Jesus calling Nathaniel forms the climax of the calling of the disciples.

 

When Jesus sees Nathaniel approaching Him, He says:

 

“When Jesus saw Nathanael approaching, he said of him, ‘Here is a true Israelite, in whom there is nothing false.’” (John 1:47)

 

Hearing this, Nathaniel asks, “How do you know me?” Jesus replies, “I saw you while you were still under the fig tree before Philip called you.”(John 1:48) Then Nathaniel shouts, “Rabbi, you are the Son of God; you are the King of Israel.”

 

“Jesus said, ‘You believe because I told you I saw you under the fig tree. You shall see greater things than that.’ He then added, ‘I tell you the truth, you shall see heaven open,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John 1:50-51)

 

It is interesting that Jesus adopts imagery related to Jacob in calling Nathaniel. “False” reminds us of Jacob’s character before he got his new name. Jesus, however, is now calling Nathaniel a “true Israelite,” which brings to mind how Jacob became Israel and became the father of a new people.

 

Furthermore, the phrase “you shall see heavens open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reminds us of Jacob at Bethel. The difference is that Jesus adds the expression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Jesus says that Nathaniel will see this.

 

In short, Jesus is saying He will now call the disciples, including Nathaniel, as people who will form a new Israel.

 

Then comes today’s passage which starts with “On the third day […].”(John 2:1a))

 

Then what did the disciples see when they went to the wedding at Cana with Jesus?

 

First, they saw Mary calling Jesus and telling Him about the wine running out; they also probably saw her telling the servants to “do whatever He tells you.” (John 2:5)

 

Jesus commands the servants to fill six stone jars used for Jewish ceremonial washing with water. When they do this, He tells them to draw some out and take it to the master of the banquet. The disciples see the master of the banquet praising the groom after tasting the wine.

 

In short, they see Jesus at work, in action. In solving the problem of a lack of wine, He uses the servants. The servants were twice mobilized by His two commands.

 

The first command was to fill the jugs with water; the second was to draw some from the jugs and take it to the master of the banquet. The servants faithfully obeyed Jesus’ words and, in so doing, witnessed the miracle of water transforming into wine.

 

I wonder, ‘Would it have been strange if Jesus, after hearing from Mary that the wine had run out,commanded the following?’

 

“Now open the wine caskets again. You will see new wine.” Couldn’t He have just replenished the wine without anyone knowing? Of course it was possible. Jesus’ power is infinite. But He didn’t work that way.

 

He used water as material and demanded obedience, the act of filling the jars, from the servants. Without these two elements the miracle of transforming water into wine at Cana would not have taken place.

 

Why did Jesus command the servants to fill the jars with water? It was not because He needed water to make wine, but because He had a purpose. Jesus is more than capable of fulfilling His work even without the process of pouring water into jugs. He has that power. But our Lord didn’t skip the part of pouring water into jugs. Why?

 

Today’s passage teaches us that when Jesus performs a miracle for us, He never works alone. The miracle at Cana happened only when the servants did the work of pouring and drawing water.

 

Of course, man’s work or action does not induce or create a miracle of God. No matter how many jugs we fill with water, that water will never turn into wine if God does not work. But God uses man’s obedience, his act of filling the jugs, to perform His miracle of turning water into wine.

 

In short, today’s passage is a lesson on how God cooperates with us to carry out His work beautifully. There are many examples of this the Bible.

 

Through the life and commitment of Moses, God led the Israelites out of Egypt and fulfilled His work of deliverance. God Almighty was more than capable of delivering His people Himself without sending Moses to Pharaoh; yet He made weak men like Moses and Aaron coworkers of His ministry, allowing them to glorify Him.

 

Today’s text states that although the master of the banquet did not know where the wine came from, the servants who drew the wine did.

 

There were people who knew where the miracle came from. They were the servants who poured water into the jugs and drew water from them in obedience to Jesus’ word.

 

The servants became the people who possessed the secret of miracle. The Bible states that the disciples put their faith in Jesus after this incident.

 

According to John, this was the very first lesson Jesus taught His disciples. He taught them what they now ought to do—with His actions, not His words, and through the servants’ example.

 

The disciples now must lead a new Israel. They will be the leaders of a new Israel founded on Jesus. So what must they do now?

 

They must obey the Lord’s word—as did the servants. Through that obedience they must experience His miracles. This will be their secret.

 

The disciples most likely drank new wine at the wedding feast in Cana. They would have tasted the transformed wine—which was not of this world. It was the wine that God had foretold and spoke of.

 

Isaiah invited people to this wine through his prophecy:

 

“Come, all you who are thirsty, come to the waters; and you who have no money, come, buy and eat! Come, buy wine and milk without money and without cost.Why spend money on what is not bread, and your labor on what does not satisfy? Listen, listen to me, and eat what is good, and your soul will delight in the richest of fare.Give ear and come to me; hear me, that your soul may live.” (Isaiah 55:1-3a)

 

This is the wine that Isaiah invited people to thousands of years ago. The disciples drank that new wine.

 

The disciples also drank the wine that the wise author of Proverbs sang of. This is what it says in Proverbs:

 

“‘Let all who are simple come in here!’ she says to those who lack judgment.‘Come, eat my food and drink the wine I have mixed.Leave your simple ways and you will live; walk in the way of understanding.’”(Proverbs 9:4-6)

 

This is the wine of true life. The disciples drank that very wine. Then their eyes opened and saw the glory of Jesus. And they confessed Jesus as Lord with faith.

 

God could have delivered Nineveh without Jonah, but He sent him to that city. He saves Nineveh through Jonah. God not only appointshim as His partner, but also ends up saving Jonah himself. This is the mystery of God’s work.

 

Today we see Jesus calling the disciples, training them at the wedding in Cana, and transforming them. The Lord wanted them to become His coworkers by obeying His word. He also wanted them to become participants in the Lord’s secret. Most of all, He wanted them to see His glory and follow Him with faith by tasting the new wine.

“Follow Me!” The Lord calls out to us even today. After this invitation come these words: “Fill the jars with water.” Join My ministry. It is a servant’s honor to take part in his master’s work; it is a servant’s duty to be faithful to his master’s work.

 

If you have been called, it is now time for you to roll up your sleeves and get to work. After calling the disciples, our Lord gave them work to do. When Jesus says He will gather the scattered, He means He will give the gathered a mission.

 

Fill the jars with water! Then I will turn that water into the wine of life! Let us listen to the voice of the Lord who calls us to be His coworkers in performing miracles. Let us all faithfully answer His call.

 

Fill the jars with water! The water that we pour into jars will become water that saves, the wine of life. The Lord will do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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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첫 번째 이적, 가나 혼인 잔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는 예수님의 공생애 첫 번째 이적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특별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공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데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공관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예수님의 일대기를 순차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은 신학적인 구조로 시간에 관계없이 의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첫 번째 기적인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이야기는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생명과 빛에 대한 말씀이 총제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후에 세례요한의 증언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2장에서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기적이 소개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의 고민을 시작하곤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기적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보여 주셨을까?”, “물과 포도주는 어떤 의미일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인간의 잔치와 하나님의 잔치를 대조합니다. 인간의 잔치는 결국 끝날 수밖에 없는 잔치이지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잔치는 영원한 잔치라는 해석입니다. 어떤 분들은 마지막에 있을 어린 양의 잔치,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예견하는 모습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또, 성찬·성례전 제정과 연결해서 계시적 사건으로 보기도 하고,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탁하는 장면을 통해 마리아를 통한 기도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다양한 관점들은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으려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이 말씀이 요한복음의 첫 번째로 나오는 의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관심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여기에 대한 설교와 연구를 해 왔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첫 이적인 가나 혼인 잔치 이적에는 어떤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여러분과 좀 더 쉬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가나 혼인 잔치의 이적은 누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첫 번째 이적을 통해 특별한 이들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그럼에도 첫 번째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과연 이 기적은 누구를 위해서 하신 것일까요? 언뜻 생각나는 대상이 있습니다.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고 당황하고 있을 혼주들과 신랑·신부입니다. 외경에 따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신랑의 숙모라는 전설도 있습니다. 3세기 초 라틴어 서문에는 신랑을 세배대의 아들 요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사람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마리아가 결혼식과 관련된 가족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예수님께 가족의 문제 해결을 부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이적은 연회를 베푼 혼주의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생애 첫 이적을 가족의 문제 해결만을 위해 행하셨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보다 더 큰 뜻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를 위하여 이와 같은 일을 하셨을까요? 누구를 염두에 두고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요한복음 1장과 2장에는 연결되는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제자’라고 하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2장 역시 ‘제자’가 앞부분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 2:1~2)

 

제자들도 혼례의 청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른 뒤의 사흘째 되던 날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여러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부른 제자가 나다나엘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나 혼인 잔치에 가신 날입니다. 이것만으로 제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적을 일으키셨다고 보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이야기의 마지막을 확인하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2:11)

 

마지막에 나오는 단어 역시 제자들입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결론으로 “그[예수]의 제자들이 그[예수]를 믿게 되었다.”(요 2:11, 새번역)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가나 혼인 잔치 이적의 앞뒤로 ‘제자들’이라는 단어가 거명되고 있고,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야기의 결론 역시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해 이루실 새로운 이스라엘을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생각하시면서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말일까요?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이는 장면을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우선 세례요한의 제자들 중에 두 사람이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떠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후에 형제 시몬 베드로를 찾아가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들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다음 날 예수님께서 지나가다가 빌립을 발견하시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시자, 빌립은 즉시 예수님을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빌립은 자신의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갑니다. 그에게 “우리가 찾던 선지자가 드디어 나타났다.”라고 말하면서 “그가 바로 나사렛 예수다.”라고 증언합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빌립이 “와 보라.”고 말하면서 강한 확신을 보여 줍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찾아 나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부르는 장면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의 절정입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7)

 

예수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 1:48, 새번역)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과정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이렇게 됐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기는 적절한 시간이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 1:50~51)

 

예수님께서 나다나엘과 대화하시는 이 장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야곱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올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간사한 것’은 야곱의 특징입니다. 간사함과 속이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이는 참 이스라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이름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던 것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야곱이었던 자, 속이는 자였던 자, 간사하였던 자가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이 되고 큰 민족을 이루었던 사건을 기억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요 1:5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역시 야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라고 고백했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부르실 때, 야곱이 하나님의 민족, 이스라엘이 되었던 사건을 말씀하시면서 나다나엘이 그와 같은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이야기를 조금 바꿔서 “인자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 이제 예수님을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될 이스라엘 공동체를 꿈꾸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자들의 첫 번째 수업의 내용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이렇게 큰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났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사흘째 되던 날 (요 2:1a)

 

그렇다면 가나의 혼인 잔치에 나다나엘도 빌립도, 모든 제자들이 함께 갔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곳에 가서 본 것, 그들이 경험한 것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내용 그대로일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제자들이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마리아가 예수님을 불러서 포도주가 없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이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 2:5)고 하인들에게 명령하는 장면도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사용하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의 과정도, 하인들이 그렇게 하는 모습도, 또 어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하시는 말씀도 보았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연회장이 그것을 마시고는 어떻게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아직까지 남겨 두었느냐고 감탄하는 모습도 보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키시는 모든 단계, 모든 장면을 함께 경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타개하시는 데 하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하인들은 두 번의 말씀으로 동원이 됩니다. 우선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인들이 그것을 채웠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또 “거기에 있는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 따라서 하인들은 연회장에게 물을 갖다줍니다. 어디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연회장이 물을 마실 때 이미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 과정을 보고 있던 제자들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씀할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면 어색한 일이 되었을까요. “마리아여 포도주가 떨어졌다니 이제 제가 포도주를 채워 드리겠습니다. 다시 가서 포도주 통을 열어 보십시오. 포도주가 가득 차 있을 터이니 그것을 가져다가 함께 나누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이상할까요.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을 갖다가 길어서 넣고, 다시 떠다 주는 과정 없이도 얼마든지 물을 포도주로, 아니 그냥 포도주를 만드실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충하실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을 채우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물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셨고, 또 물을 채우는 하인들의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을 갖다주라고 말씀을 하셨고, 순종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가나의 이적은 이 두 가지 요소가 없었다면 아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셨을까요. 물이 없으면 포도주를 만들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나름의 목적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자들을 교육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부르짖는 자가 발견되리라.”라는 제목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능동의 수동에 대해서 함께 배웠습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같지만, 그것은 마치 무인도에서 SOS를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발견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즉, 결국은 수동형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봉사를 하죠. 능동형처럼 보입니다. 하인들이 아구까지 물을 채우는 것도 능동적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 일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필요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합력하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이 이적을 유도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물통마다 물을 가득 채워 넣어도 하나님께서 하지 아니하신다면 절대로 물은 포도주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물이 포도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하인들이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이에 말씀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라.”라는 말씀도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 때문에 그것에 순종하는 사람이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제자들이 그물을 오른편에 던집니다. 그랬을 때 많은 고기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그물을 오른편에 던진다고 한들, 결코 고기를 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에 의지하여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합력하여서 하나님의 일을 아름답게 성취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은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생애와 그의 헌신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 없이도, 아론 없이도, 바로를 그에게 보내지 않고서도 충분히 하나님 홀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과 같은 부족한 사람들을 사용하셨고, 그 부족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에 동참시키시고 그들에게도 영광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연회장이 “이것이 어디에 왔는지 몰랐다.”라고 말하는 반면에, 하인들은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인들은 말씀에 순종하면서 예수님께서 그것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하인들이 이 기적의 비밀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첫 번째 수업, 첫 번째 레슨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이 일을 행하셨다고 한다면,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 행하셨다면 제자들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하인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갈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사도의 역할을 할 사람들입니다. 이제 새롭게 출발할 그들에게 주시고자 한 첫 번째 레슨은 “나의 말을 따라라.”,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말을 따라가라.”, “그 말씀을 따라갈 때 너희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2024년을 보내면서 주님의 말씀을 함께 읽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며 온전히 충성할 때 그 말씀과 함께 이루어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올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라는 말씀을 하실 때, 주님의 말씀 앞에 모인 그들에게 이러한 일을 맡기겠다는 주님의 결단을 알려 줍니다. 제자들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중에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물을 채우라는 말씀에 순종하고, 가져다주라는 말씀에 그대로 할 때 하인들과 제자들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우리 또한 그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2024년 주님의 말씀을 굳건히 붙잡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충성되게 하인이 했던 것처럼 비록 완전한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다른 대안이 생각날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미련하게 붙잡고 그저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기적을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 붙잡으며 행복한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2월 4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예수님의 첫 수업” (요 2장 1~11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35장, 449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요 2장 1~11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2월 4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그 동안 들을 수 있었고, 알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한 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제자들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불러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을 들었고,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부탁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명령을 하시고, 하인들이 그렇게 하자,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연회장이 그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을 칭찬하는 모습을 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 행동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이 보게 된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께서 포도주 통을 열어보라고, 새 포도주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셨고, 물을 채우는 하인들의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항아리에 담는 과정 없이도 충분히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적을 베푸실 때 결코 홀로, 단독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포도주를 만드시는 이적은 물을 나르는 하인들의 수고가 있을 때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물통에 물을 채우는 순종을 통해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이적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연회장은 이것이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알았다고 증언합니다. 이 기적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길어 통에 부었고, 그것을 가져다 준 하인들입니다. 이들은 기적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인들처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을 통하여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비밀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음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바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은 하인으로서는 영광이며, 주님의 일에 충성하는 것은 하인의 본분입니다. 제자들을 모으시는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실 일을 맡기십니다.

 

 

나누기

 

  1.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곧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은 하인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2. 주님의 일에 충성하는 것은 하인의 본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충성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생명의 하나님, 첫 번째 이적으로 생명의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하인들에게 물을 채우라 명령하신 주님은 그들의 충성을 통하여 이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 우리도 그 하인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충성되게 따름으로 주님의 기적을 맛보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하늘의 비밀을 소유한 자로 살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참된 제자를 찾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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