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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열왕기하 20:8~13

김경진 목사

2024.08.25

<끝이 있는 삶의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저의 선친과 함께 구로동 교회를 개척하신 어느 권사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말 자태가 고우시고 점잖으시며 신앙도 깊은 분이셨습니다. 양반 출신이라서 그러셨는지 항상 한복을 입고, 집에서는 병풍 앞에서 늘 꼿꼿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곤 하셨습니다. 그분은 늘 갖고 있던 기도 제목이 하나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꼿꼿하게 하나도 삐뚤어짐 없이 언제나 예수님께서 오시면 바로 달려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셨습니다. 어렸을 때 저와 친구들의 관심은 정말 그 권사님이 예수님의 재림을 보실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젊음을 펴 보지도 못하고 죽는데, 큰일 났다는 마음으로 궁금함을 가지고 권사님의 기도를 바라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정말 오래 사셨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00세 이상 사셨던 것 같은데, 당시로는 상당히 오래 산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래 사시는 것은 좋았지만, 그러다 보니 살면서 이런저런 힘든 일들을 경험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드님의 사업이 잘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려움과 파산을 겪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다 보니 아들마저도 나이가 들어 병으로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몸도 점점 쇠약해지는 것을 보았죠.
그리고 결국 권사님의 기도의 제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을 직접 보지 않아도 되니 저를 속히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기도 제목을 바꾸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정말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계셨던 권사님이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오래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까’입니다. 누구나 다 오래 살기를 원하죠.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오래 살면 우리는 잘 살 수 있을까요? 나에게 정해져 있는 시간보다 조금 더 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잘 채울 수 있겠습니까? 더 좋은 일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도 올려 드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제가 유학을 했던 보스턴에는 여러 좋은 대학들이 있었습니다. MIT 대학도 있고 하버드 대학도 있죠. 하버드 대학 교정 가운데에는 와이드너 도서관이 있고, 건너편에는 자그마한 예배당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종종 그 예배당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요. 예배당에 가면 벽에 동문들의 이름들이 가지런히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켠에 보면 6·25 전쟁 때 한국을 돕기 위해 하버드 학생들 중에서 자원한 이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파병되었다가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름인데, 그 이름을 볼 때마다 저는 마음이 참 뭉클하였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인재들이었을 텐데, 이름도 알지 못하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버렸으니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분들이 만약에 목숨을 부지해서 하버드로 돌아와 공부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갔다면 얼마나 큰 인재가 되었을까요.
어찌 이뿐만이겠습니까? 너무 일찍 하나님의 품으로 떠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담겨 있기도 합니다. 우리 가정과 주변에도 이런 슬픔을 당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또 한편으로 나에게 병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죽음을 마주해야 하겠습니까?

<히스기야가 삶의 끝에서 얻은 시간은 큰 의미가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한 가지 사실을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을 모두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히스기야 왕에 관한 내용입니다. 몇 주 전에도 히스기야 왕과 관련된 말씀을 드렸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던 왕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이후에 그 내용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죠. 하나님 앞에서 아주 드물게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던 히스기야 왕에게 병이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0장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왕하 20:1)

병에 걸린 히스기야 왕에게 선지자 이사야가 ‘네가 죽고 살지 못한다’라는 선언까지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 확정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통곡하면서 기도하죠. 그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고쳐 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표적을 보여 주시며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히스기야는 15년이라는 시간을 더 누리게 됩니다. 그에게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열왕기하 20장 이후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병에서 나음을 얻고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1절에서 11절까지 이어지고, 12절부터 20절까지 한 가지 사건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21절로 가면 15년을 훌쩍 뛰어넘어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묘사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하 20:21)

15년 동안 생명의 연장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이어지는 15년 및 그의 죽음의 이야기 사이에는 약 10절밖에 없습니다. 그가 다시 살게 된 후의 이야기는 단 한 가지만 열왕기하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새롭게 선물받은 15년 동안 어떻게 산 것일까요? 성경은 그의 새로운 15년의 시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기록할 만한 내용이 없다는 의미이겠습니다.
단 한 가지 사건만 소개되고 있는데 11절부터 1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편지 및 예물과 함께 사신들을 보냅니다. 사신들이 도착했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병이 낫게 되었죠. 죽지 않고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사신들을 만난 히스기야는 한 가지 큰 실수를 합니다.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보물들과 군기고의 창고들을 열어서 보여 주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왕하 20:13)

왜 히스기야가 이렇게 창고를 열어 보여 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생명을 얻고 살아난 기쁨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겠죠. 그는 기쁨에 겨워 즐겁게 자신의 창고에 놓여 있는 모든 것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큰 실수였습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를 책망하며 훗날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이곳에 있던 모든 보물을 다 가져가고 자녀들을 포로로 잡아갈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합니다. 이렇게 실수를 한 이야기를 단 한 가지만 적고 성경은 21절에 이어서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15년 동안의 삶은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 사람도 만나고 식사도 많이 하며, 또 사랑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책도 세워 나라에 보탬이 될 만한 일들도 했겠죠. 심지어 자녀도 낳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그 이야기들을 침묵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생략한 채로 그의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가 덤으로 살았던 15년의 삶은 하나님께나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삶의 길이보다 삶이 낳은 의미를 살펴봐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어지는 21장은 히스기야가 생명을 연장받아서 남긴 매우 치명적인 사실을 또 하나 전하고 있습니다.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왕하 21:1)

히스기야에 이어서 나라를 다스리게 된 왕은 그의 아들 므낫세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서 본다면 태어나서는 안 될 악한 왕이었습니다. 유다의 왕 중에서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경력을 보면 가장 악했던 왕이 므낫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합니다.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왕하 21:11)

착하고 선한 왕 히스기야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29년간 다스립니다. 그런데 악한 왕 므낫세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55년간 길게 통치합니다. 그동안에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므낫세의 악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유다가 바벨론으로 잡혀갈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선지자를 통하여 전해집니다.

내가 내 소유인, 내 백성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을 모두 내버리겠고,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겨 주겠다. 그러면 그들이 원수들의 먹이가 될 것이고, 그 모든 원수에게 겁탈을 당할 것이다. (왕하 21:14, 새번역)

므낫세의 악행은 결국 모든 유다 백성에게 큰 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다의 심판을 가져오는 하나의 출발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띕니다. 므낫세가 왕위에 오르던 나이입니다.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왕하 21:1a)

히스기야 왕이 죽은 다음에 므낫세가 왕위에 올랐으니, 성경의 흐름을 따라가면 므낫세는 히스기야 왕이 덤으로 얻게 된 15년 사이에 얻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병 나음을 얻은 후 3년쯤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12살 되었을 때 히스기야가 15년의 삶을 마치고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연장해 주심으로 예정에 없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므낫세입니다. 그는 왕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55년 동안 지속적으로 합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히스기야는 자신이 더불어 얻은 15년 동안에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리어 문제의 단초들만 만들어 내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더불어 살았던 15년의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민족의 환란을 잉태하는 출발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셨던 때에 열조에게 돌아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저보다 먼저 목회하셨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의사였다가 나중에 목사님이 된 분이셨습니다. 한평생 의사로 계시다가 70세 때 하버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시고 80세가 넘어갈 때까지 목사님으로 봉직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에게 사위가 있었는데, 그 사위 역시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촉망과 사랑을 받던 유능한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과 함께 목회하며 지내던 중에 목사님에게 갑자기 뇌출혈이 발생하였습니다.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사위인 의사 선생님도 달려갔습니다. 사진을 찍어 보니 뇌에 여러 가지 많은 지장이 생겨 더 이상 일어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사위인 의사 선생님이 저에게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산소호흡기를 떼면 돌아가실 것 같고 산소호흡기를 붙이면 무의식 상태로 계실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누워 계신 목사님에게 의식이 조금 남아 있어서 약간의 반응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인 사위가 장인어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온 진단 결과와 상황을 의학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설명했습니다. “아버님, 이제 호흡기를 떼면 돌아가시게 되고 호흡기를 붙이면 사실 수 있을 때까지 살아갑니다. 그러나 의식은 얼마 몇 분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아버님 어떻게 할까요? 만약에 산소호흡기를 붙이기를 원하시면 어떤 표현을 해 주십시오. 저의 손을 잡을 수 있으면 한번 잡아 주십시오.” 그때 목사님께서 손을 꽉 잡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마음속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목사님이 의사를 표명해 주셔서 산소호흡기를 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의식은 사라졌고요. 무의식 상태에서 3년여 동안 병원에 계시다가 결국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었는데도 생명을 연장했던 것입니다. 의식이 없으실 때 제가 가 보면 날마다 가족들이 달력 날짜에 동그라미도 치고 한 장씩 떼 내며, ‘오늘도 사셨어요, 아버님.’이라고 적은 흔적 같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자녀들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과연 그 삶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래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까요?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주어진 삶의 시간 안에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3세까지 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죠. 만약 예수님께서 그때를 모면하시고 더 사셨다면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하셨을까요? 우리가 알지 못한 더 큰 비밀스러운 일을 행하셨을까요? 물론 그렇게 하실 수도 있었겠지요. 아마도 예수님께서 더 사셨다면 병자들을 더 고쳐 주시고 악귀를 물리쳐 주시는 일도 더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33세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꽉 채우고 가셨습니다. 그 시간을 온전하게 살아 내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그의 삶의 완성이기도 했습니다. 종지부이면서 그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만들어 낸 멋진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더 살고 싶어 합니다. 오래 살면 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오래 살면 좋은 점도 많습니다. 저도 오래 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다 오래 살고 싶어 하지요.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래 사는 것은 한편으로 또 다른 위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곤 합니다. 히스기야가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받은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생명을 연장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중요한 말씀이기도 하죠.
그러나 오늘 본문 뒤에 있는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이 말씀의 참뜻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 봅니다. 마치 이 말씀은 이런 뜻 같습니다.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네가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느냐.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셨던 말씀과 닮아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병이 낫기를 원하며 주님 앞에 기도했던 히스기야에게 “그래, 병 낫기를 원하느냐. 내가 낫게 해 주마.” 하시며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때 “네가 세상을 떠나서 내가 준비한 곳으로 와도 괜찮다. 충분히 넉넉하다.”라는 말씀을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 20여 일 전에 저희 가정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 사랑하는 매제가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의 나이는 58세였습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억울함도 있습니다. 목사인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왜 하나님은 들어주지 않으셨는지, 아쉬움과 죄책감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불쑥불쑥 올라오곤 합니다. 살려주셔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이유를 다 지워버리셨습니다.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시지.’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제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섭리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저 우리는 믿음으로 받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으셨겠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비밀이 어디엔가 있겠지.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그것을 알려 주시겠지. 지금은 억울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분노와 아픔을 치료해 주시겠지.’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어찌 죽음의 문제뿐만이겠습니까? 사업이 힘들 때도 그러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그러합니다. 병들었을 때도, 심지어 죽음 앞에 설 때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겠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니 가장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루라도 주님의 선한 능력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 참 기쁨의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이야기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나치 정권에 저항하다가 잡혀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도소에서 교수형을 받고 처형된 분이십니다. 1944년 12월 19일, 감옥에 있을 때 그는 한 편의 시를 써서 자신의 사랑하는 약혼자에게 보냈습니다. 그 시의 제목은 “선한 능력으로”(Von guten Mächten)라는 제목입니다. 그리고 100여 일이 지난 1945년 4월 9일에 교수형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그프리트 피에츠(Siegfried Fietz)라는 작곡가가 이 시에 노래를 붙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도록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그 노래를 들어 본 분들이 꽤 많으실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선한 능력에 언제나 고요하게 둘러싸여서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속에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날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하십니다. …
(Dietrich Bonhoeffer, “Von guten Mächten,” muzica 역)

죽음이 바로 옆에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곧 사형이 집행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선한 능력이 나를 감싸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나는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믿음으로 기대했던 것은 석방되거나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통해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었습니다. 더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주님의 선하신 능력에 둘러싸여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요 행복이라고 고백합니다.
훗날 강제수용소에서 본회퍼의 죽음을 바라보았던 의사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는 본회퍼 목사가 죄수복을 벗기 전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주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
어찌나 경건한지,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확신할 정도였다.
그는 형장에서 다시 짤막한 기도를 드린 다음,
계단을 밟고 교수대에 올랐다. …
처형은 몇 초 만에 끝났다.
나는 지난 50년간 의사로 일하면서
그토록 경건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강제수용소 담당 의사, 피셔 휠스트룽(H. Fisher-huellstrung)]

여러분, 삶과 죽음은 함께 있습니다. 죽음은 너무도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더 오래 사는 것도 축복이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큰 축복입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축복입니다. 조금 더 사는 것이 아니라, 벅찬 감격으로 나에게 주신 오늘 이 시간을 살아 내는 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얼마 후면 추석을 맞습니다. 먼저 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솟아 올라올 것입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주님 앞에 “참 감사합니다.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라고 기도하며 감사를 표현하는 추석 명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Will Living Longer Make You Live Better?

 

2 Kings 20:8-13

 

This is the story of a senior deaconess who planted Gurodong Church with my father. Senior Deaconess Kim Kyung-sook was a deeply faithful and noble woman. I heard that Gurodong Church started in her home. She was a truly respectable woman. She was of “yangban (nobleman)” ancestry, which may explain her soft speech and charitable deeds.

 

She had a constant prayer topic: May I see the coming of the Lord before I die. Perhaps this is why she wore hanbok all the time,was always composed, and sat up straight wheneverI saw her in her home.

 

The question that my friends and I had as kids was, ‘Will she really see the coming of the Lord?’ Since she was so faithful, we thought perhaps God would really answer her prayer.

 

Surprisingly, she did live to a very old age. And people around her began to wonder if she would really see the Lord’s coming with a note of concern.

 

She enjoyed a long life. But longevity also meant that she had to witness various hardships in life. She saw her son suffer because of a business failure. She even had to bear the pain of sending her children to heaven.

 

With continuous sufferings and hardships, her prayer finally changed:‘Lord, I don’t need to see Your coming with my own two eyes. Take me to heaven. Waiting for You in this world of pain is just too hard.’

 

Finally shewent into the arms of God. In retrospect, she had a truly pure faith.

 

The title of today’s message is “Will Living Longer Make You Live Better?” Everyone wants a long life. But will we live better if we live as long as we want?

 

If we live longer, will we do more good works, become a better person, be useful to God, glorify Him, and do great works to build His Kingdom?

 

We often see people die at an early age. This is deeply saddening. If he had lived a little longer, he would have done so many good things in this world with hisknowledge. What a pity. Who will take care of his children now? Who will comfort his bereaved family? We even feel angry at God.

 

Boston, where I ministered, is home to Harvard University. There are also MIT and other universities there. Right in front of the Widener Library, situated at the center of Harvard,there is a small chapel. In it, you will see the names of Harvard students who died serving in the Korean War. I would be moved by reading their names.It was hard to put into words thegratitude I felt for these preciousyoung students who gave their lives for a country that they hardly knew, whose name they had never heard of before. Sometimes, I thought it was a shame that the most elite students in America had to die, instead of returning to school and living their lives to the fullest.

 

But are they the only ones? In our hearts there are countless sad stories of precious souls who went into the arms of God too early. How should we feel about them? And what should be our heart’s attitude in the face of illness or death?

 

I hope that we will find a fragment of peace in astory from 2 Kings—particularly, in one aspect of it.

 

Today’s Scripture is about King Hezekiah. As you know very well, God cured him of a terminal illness and added 15 years to his life.

 

Hezekiah was faithful in the eyes of God. His story is recorded from 2 Kings 18. But this faithful king who trusted God fell sick. His illness was incurable. Second Kings 20 describes his plight as such:

 

“In those days Hezekiah became ill and was at the point of death. The prophet Isaiah son of Amoz went to him and said, ‘This is what the LORD says: Put your house in order, because you are going to die; you will not recover.’”(2 Kings 20:1)

 

Hezekiah was a dead man walking; even the prophet Isaiah prophesied that he would die and not live. But when Hezekiah prayed to God, weeping bitterly, his prayers moved God’s heart. Hearing his prayers, God decides to cure him.

 

Furthermore, God shows him a sign and adds fifteen years to his life. This is the most incredible example among all the stories in the Bible about healing and life extension through prayer.

 

After his miraculous recovery, Hezekiah is blessed with 15 more years. But there is something very interesting inthis story.

 

After the story of Hezekiah’s miraculous healing, the Bible describes just one particular incident following the healing; then it fast-forwards 15 years to his death:

 

“Hezekiah rested with his fathers. And Manasseh his son succeeded him as king.”(2 Kings 20:21)

 

Only about ten versesremain between Hezekiah’s healing and his death. Up to verse 11, the Bible records the story of how his life was miraculously extended; from verse 21 it records his death.

 

The one thing that he did after his miraculous recovery is described in today’s text.

 

How did he live the extra 15 years he receivedfrom God as a gift? The Bible doesn’t sayanything much about what he did during those 15 years. What does this mean? It means that there was nothing worth mentioning.

 

Only one incident is mentioned, which is described in 2 Kings 20:11-19:

 

This is the incident. After hearing of Hezekiah’s illness, the king of Babylon, Merodach-Baladan, sends a delegation to Israel with a letter and gifts. However, when the delegation arrived, Hezekiah was cured and well. But as Hezekiah greets the envoys, he makes a serious mistake.

 

He opens his storehouses and shows the Babylonians his treasures and arsenal:

 

“Hezekiah received the messengers and showed them all that was in his storehouses–the silver, the gold, the spices and the fine oil–his armory and everything found among his treasures. There was nothing in his palace or in all his kingdom that Hezekiah did not show them.”(2 Kings 20:13)

 

This was a grave error. After learning about it, Isaiah rebukes Hezekiah. Isaiah prophesies that Babylon will one day invade the country, looting all the treasures Hezekiah had shown the envoys and taking the people as captives. Hezekiah had made a very big mistake.

 

Immediately after the incident, the Bible records Hezekiah’s death.

 

During the 15 years that had been added to him, he would have met manypeople, had many meals, loved, made many political decisions, and had many children; yet the Bible omits all such stories and records his death.

 

In short, the life added to him was largelyinsignificant to God and his people.

 

Furthermore, chapter 21 records a fatal event that occursbecause of Hezekiah’s extended life:

 

“Manasseh was twelv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in Jerusalem fifty-five years.”(2 Kings 21:1)

 

Hezekiah’s successor who ruled 55 years was none other than Manasseh. Manasseh, however, was an extremely evil king who should not have been born. This is the Bible’s assessment of him:

 

“Manasseh king of Judah has committed these detestable sins. He has done more evil than the Amorites who preceded him and has led Judah into sin with his idols.”(2 Kings 21:11)

 

While good and faithful Hezekiah ruled 29 years, evil Manasseh reigned 55 years, during which he committed all kinds of evil and sins before the Lord.

 

Because of such detestable sins, Israel invokes the wrath of God. Manasseh’s wickedness is an important cause of Israel’s Babylonian captivity.

 

“I will forsake the remnant of my inheritance and hand them over to their enemies. They will be looted and plundered by all their foes,”(2 Kings 21:14)

 

But one interesting fact stands out. We must note Manasseh’s age when he comes to the throne:

 

“Manasseh was twelv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2 Kings 21:1a)

 

Following the flow of the Bible, we learn that Manasseh was born three years after Hezekiah’s miraculous healing. This means that if Hezekiah’s life had not been extended, Manasseh would not have been born.

 

Through life extension by God, an unexpected baby is born—Manasseh. This baby becomes a king thatcommits all sorts of evil before God.

 

In hindsight, Hezekiah did not do anything significant during the 15 years that had been added to his life. Instead, he created a seed of a great problem. In fact, Hezekiah’s added years was not a blessing to the people of Israel, but a conception period fordisaster.

 

It would have been better if Hezekiah had joined his ancestors at God’s appointed time. As readers of the Bible, we may view the life of Hezekiah in a different light. If Hezekiah’s life had not been extended, Israel’s history may have taken a different path.

 

When I was ministering in the U.S., an old doctor was hospitalized after a stroke. I was at his side when this happened. His son-in-law who was also a doctor explainedthesituation to him. “You will live with an oxygen mask, but you will not be conscious. You will just have your life extended. Without the mask, you will die. You have to choose. If you want us to put on the mask, press my hand.”The old doctor held tightly to his hand. After that, he lived three more years in a coma. His family visited him daily. I too went every week or every two weeks.

 

Will we live better if we live longer? Let’s return to this question.

 

Jesus bore the Cross when He was 33. Would He have done greater things if He had bypassed that moment and had lived longer? This would have been possible of course, but Jesus lived those 33 years to the fullest. And His crucifixion completed His life.

 

We want to live longer. We consider longevity a blessing. Long life has its merits. But simultaneously, it is a source of crises.

 

On the twentieth of August, my brother-in-law passed away. He was only 58 years old. How we grieved that he could not live longer! I felt bitter and sad about not being able to keep him. I even felt resentful toward God.

 

Couldn’t You have extended his life? But now I must trust in the good Lord and accept His providence. There must be a will…Since God loves me, loves us, there will be God’s will in both death and life. This is faith.

 

In closing, I wish to share the story of man whose deathsaddens us deeply: Dietrich Bonhoeffer.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was a German pastor/theologian and anti-Nazi dissident who was executed by the regime at the age of 39.

 

He is known to have written a poem on December 19, 1944“Von guten Mächten (By Powers of Goodness),” which he sent to his fiancé in a letter. And 112 days later, on April 9, 1945, he was executed by hanging by the Nazis. His poem has been made into a song by Siegfried Fietzand is widely sung:

 

Surrounded truly and silently by powers of goodness

protected and comforted wonderfully

thus I would live these days with you (all)

and go with you into a new year

 

Sheltered wonderfully by powers of goodness

We are looking forward confidently to what may come

God is with us in the evening and in the morning

and for sure on every new day

(English Translation of Dietrich Bonhoeffer’s “Von guten Mächten(By Powers of Goodness)”)

 

Even when he knew that death was imminent, Bonhoeffer saw he was surrounded by God’s powers of goodness. He confesses in faith that God is with him day and night.

 

Although he had hoped in faith, the endof his faith was not release from prison but life through death.

 

Living longer is not what’s important; the joy of Christians is to live each day in God’s power.

 

“Through the half-open door in one room of the huts I saw Pastor Bonhoeffer, before taking off his prison garb, kneeling on the floor praying fervently to his God. I was most deeply moved by the way this lovable man prayed, so devout and so certain that God heard his prayer. At the place of execution, he again said a short prayer and then climbed the steps to the gallows, brave and composed. His death ensued after a few seconds. In the almost fifty years that I worked as a doctor, I have hardly ever seen a man die so entirely submissive to the will of God.” (H. Fischer-Hüllstrung, doctor of the Nazi prison camp)

 

Life and death coexist. Death is all too near us. Living longer is also a blessing, but living today in happiness is a greater one. Living each new day with a fresh heart is a blessing.

 

Having more is not a blessing. Enjoying happiness with what you have is a blessing. Living a little longer is not a blessing. Living today with overwhelming gratitude is a blessing.

 

Chuseok is coming up. We will miss our loved ones who have passed away before us. Yet, we must be thankful. We must confess, “Lord, thank you.”Although we cannotunderstand it all, we acceptin faith what God has done. May we overcome our griefs by confessing to our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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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0:8~13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끝이 있는 삶의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저의 선친과 함께 구로동 교회를 개척하신 어느 권사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말 자태가 고우시고 점잖으시며 신앙도 깊은 분이셨습니다. 양반 출신이라서 그러셨는지 항상 한복을 입고, 집에서는 병풍 앞에서 늘 꼿꼿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곤 하셨습니다. 그분은 늘 갖고 있던 기도 제목이 하나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꼿꼿하게 하나도 삐뚤어짐 없이 언제나 예수님께서 오시면 바로 달려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셨습니다. 어렸을 때 저와 친구들의 관심은 정말 그 권사님이 예수님의 재림을 보실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젊음을 펴 보지도 못하고 죽는데, 큰일 났다는 마음으로 궁금함을 가지고 권사님의 기도를 바라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정말 오래 사셨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00세 이상 사셨던 것 같은데, 당시로는 상당히 오래 산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래 사시는 것은 좋았지만, 그러다 보니 살면서 이런저런 힘든 일들을 경험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드님의 사업이 잘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려움과 파산을 겪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다 보니 아들마저도 나이가 들어 병으로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몸도 점점 쇠약해지는 것을 보았죠.
그리고 결국 권사님의 기도의 제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을 직접 보지 않아도 되니 저를 속히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기도 제목을 바꾸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정말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계셨던 권사님이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오래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까’입니다. 누구나 다 오래 살기를 원하죠.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오래 살면 우리는 잘 살 수 있을까요? 나에게 정해져 있는 시간보다 조금 더 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잘 채울 수 있겠습니까? 더 좋은 일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도 올려 드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제가 유학을 했던 보스턴에는 여러 좋은 대학들이 있었습니다. MIT 대학도 있고 하버드 대학도 있죠. 하버드 대학 교정 가운데에는 와이드너 도서관이 있고, 건너편에는 자그마한 예배당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종종 그 예배당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요. 예배당에 가면 벽에 동문들의 이름들이 가지런히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켠에 보면 6·25 전쟁 때 한국을 돕기 위해 하버드 학생들 중에서 자원한 이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파병되었다가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름인데, 그 이름을 볼 때마다 저는 마음이 참 뭉클하였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인재들이었을 텐데, 이름도 알지 못하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버렸으니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분들이 만약에 목숨을 부지해서 하버드로 돌아와 공부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갔다면 얼마나 큰 인재가 되었을까요.
어찌 이뿐만이겠습니까? 너무 일찍 하나님의 품으로 떠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담겨 있기도 합니다. 우리 가정과 주변에도 이런 슬픔을 당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또 한편으로 나에게 병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죽음을 마주해야 하겠습니까?

<히스기야가 삶의 끝에서 얻은 시간은 큰 의미가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한 가지 사실을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을 모두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히스기야 왕에 관한 내용입니다. 몇 주 전에도 히스기야 왕과 관련된 말씀을 드렸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던 왕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이후에 그 내용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죠. 하나님 앞에서 아주 드물게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던 히스기야 왕에게 병이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0장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왕하 20:1)

병에 걸린 히스기야 왕에게 선지자 이사야가 ‘네가 죽고 살지 못한다’라는 선언까지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 확정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통곡하면서 기도하죠. 그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고쳐 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표적을 보여 주시며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히스기야는 15년이라는 시간을 더 누리게 됩니다. 그에게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열왕기하 20장 이후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병에서 나음을 얻고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1절에서 11절까지 이어지고, 12절부터 20절까지 한 가지 사건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21절로 가면 15년을 훌쩍 뛰어넘어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묘사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하 20:21)

15년 동안 생명의 연장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이어지는 15년 및 그의 죽음의 이야기 사이에는 약 10절밖에 없습니다. 그가 다시 살게 된 후의 이야기는 단 한 가지만 열왕기하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새롭게 선물받은 15년 동안 어떻게 산 것일까요? 성경은 그의 새로운 15년의 시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기록할 만한 내용이 없다는 의미이겠습니다.
단 한 가지 사건만 소개되고 있는데 11절부터 1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편지 및 예물과 함께 사신들을 보냅니다. 사신들이 도착했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병이 낫게 되었죠. 죽지 않고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사신들을 만난 히스기야는 한 가지 큰 실수를 합니다.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보물들과 군기고의 창고들을 열어서 보여 주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왕하 20:13)

왜 히스기야가 이렇게 창고를 열어 보여 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생명을 얻고 살아난 기쁨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겠죠. 그는 기쁨에 겨워 즐겁게 자신의 창고에 놓여 있는 모든 것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큰 실수였습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를 책망하며 훗날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이곳에 있던 모든 보물을 다 가져가고 자녀들을 포로로 잡아갈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합니다. 이렇게 실수를 한 이야기를 단 한 가지만 적고 성경은 21절에 이어서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15년 동안의 삶은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 사람도 만나고 식사도 많이 하며, 또 사랑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책도 세워 나라에 보탬이 될 만한 일들도 했겠죠. 심지어 자녀도 낳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그 이야기들을 침묵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생략한 채로 그의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가 덤으로 살았던 15년의 삶은 하나님께나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삶의 길이보다 삶이 낳은 의미를 살펴봐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어지는 21장은 히스기야가 생명을 연장받아서 남긴 매우 치명적인 사실을 또 하나 전하고 있습니다.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왕하 21:1)

히스기야에 이어서 나라를 다스리게 된 왕은 그의 아들 므낫세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서 본다면 태어나서는 안 될 악한 왕이었습니다. 유다의 왕 중에서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경력을 보면 가장 악했던 왕이 므낫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합니다.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왕하 21:11)

착하고 선한 왕 히스기야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29년간 다스립니다. 그런데 악한 왕 므낫세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55년간 길게 통치합니다. 그동안에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므낫세의 악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유다가 바벨론으로 잡혀갈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선지자를 통하여 전해집니다.

내가 내 소유인, 내 백성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을 모두 내버리겠고,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겨 주겠다. 그러면 그들이 원수들의 먹이가 될 것이고, 그 모든 원수에게 겁탈을 당할 것이다. (왕하 21:14, 새번역)

므낫세의 악행은 결국 모든 유다 백성에게 큰 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다의 심판을 가져오는 하나의 출발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띕니다. 므낫세가 왕위에 오르던 나이입니다.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왕하 21:1a)

히스기야 왕이 죽은 다음에 므낫세가 왕위에 올랐으니, 성경의 흐름을 따라가면 므낫세는 히스기야 왕이 덤으로 얻게 된 15년 사이에 얻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병 나음을 얻은 후 3년쯤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12살 되었을 때 히스기야가 15년의 삶을 마치고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연장해 주심으로 예정에 없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므낫세입니다. 그는 왕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55년 동안 지속적으로 합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히스기야는 자신이 더불어 얻은 15년 동안에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리어 문제의 단초들만 만들어 내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더불어 살았던 15년의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민족의 환란을 잉태하는 출발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셨던 때에 열조에게 돌아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저보다 먼저 목회하셨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의사였다가 나중에 목사님이 된 분이셨습니다. 한평생 의사로 계시다가 70세 때 하버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시고 80세가 넘어갈 때까지 목사님으로 봉직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에게 사위가 있었는데, 그 사위 역시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촉망과 사랑을 받던 유능한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과 함께 목회하며 지내던 중에 목사님에게 갑자기 뇌출혈이 발생하였습니다.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사위인 의사 선생님도 달려갔습니다. 사진을 찍어 보니 뇌에 여러 가지 많은 지장이 생겨 더 이상 일어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사위인 의사 선생님이 저에게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산소호흡기를 떼면 돌아가실 것 같고 산소호흡기를 붙이면 무의식 상태로 계실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누워 계신 목사님에게 의식이 조금 남아 있어서 약간의 반응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인 사위가 장인어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온 진단 결과와 상황을 의학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설명했습니다. “아버님, 이제 호흡기를 떼면 돌아가시게 되고 호흡기를 붙이면 사실 수 있을 때까지 살아갑니다. 그러나 의식은 얼마 몇 분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아버님 어떻게 할까요? 만약에 산소호흡기를 붙이기를 원하시면 어떤 표현을 해 주십시오. 저의 손을 잡을 수 있으면 한번 잡아 주십시오.” 그때 목사님께서 손을 꽉 잡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마음속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목사님이 의사를 표명해 주셔서 산소호흡기를 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의식은 사라졌고요. 무의식 상태에서 3년여 동안 병원에 계시다가 결국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었는데도 생명을 연장했던 것입니다. 의식이 없으실 때 제가 가 보면 날마다 가족들이 달력 날짜에 동그라미도 치고 한 장씩 떼 내며, ‘오늘도 사셨어요, 아버님.’이라고 적은 흔적 같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자녀들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과연 그 삶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래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까요?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주어진 삶의 시간 안에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3세까지 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죠. 만약 예수님께서 그때를 모면하시고 더 사셨다면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하셨을까요? 우리가 알지 못한 더 큰 비밀스러운 일을 행하셨을까요? 물론 그렇게 하실 수도 있었겠지요. 아마도 예수님께서 더 사셨다면 병자들을 더 고쳐 주시고 악귀를 물리쳐 주시는 일도 더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33세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꽉 채우고 가셨습니다. 그 시간을 온전하게 살아 내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그의 삶의 완성이기도 했습니다. 종지부이면서 그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만들어 낸 멋진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더 살고 싶어 합니다. 오래 살면 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오래 살면 좋은 점도 많습니다. 저도 오래 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다 오래 살고 싶어 하지요.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래 사는 것은 한편으로 또 다른 위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곤 합니다. 히스기야가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받은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생명을 연장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중요한 말씀이기도 하죠.
그러나 오늘 본문 뒤에 있는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이 말씀의 참뜻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 봅니다. 마치 이 말씀은 이런 뜻 같습니다.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네가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느냐.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셨던 말씀과 닮아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병이 낫기를 원하며 주님 앞에 기도했던 히스기야에게 “그래, 병 낫기를 원하느냐. 내가 낫게 해 주마.” 하시며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때 “네가 세상을 떠나서 내가 준비한 곳으로 와도 괜찮다. 충분히 넉넉하다.”라는 말씀을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 20여 일 전에 저희 가정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 사랑하는 매제가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의 나이는 58세였습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억울함도 있습니다. 목사인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왜 하나님은 들어주지 않으셨는지, 아쉬움과 죄책감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불쑥불쑥 올라오곤 합니다. 살려주셔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이유를 다 지워버리셨습니다.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시지.’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제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섭리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저 우리는 믿음으로 받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으셨겠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비밀이 어디엔가 있겠지.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그것을 알려 주시겠지. 지금은 억울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분노와 아픔을 치료해 주시겠지.’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어찌 죽음의 문제뿐만이겠습니까? 사업이 힘들 때도 그러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그러합니다. 병들었을 때도, 심지어 죽음 앞에 설 때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겠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니 가장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루라도 주님의 선한 능력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 참 기쁨의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이야기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나치 정권에 저항하다가 잡혀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도소에서 교수형을 받고 처형된 분이십니다. 1944년 12월 19일, 감옥에 있을 때 그는 한 편의 시를 써서 자신의 사랑하는 약혼자에게 보냈습니다. 그 시의 제목은 “선한 능력으로”(Von guten Mächten)라는 제목입니다. 그리고 100여 일이 지난 1945년 4월 9일에 교수형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그프리트 피에츠(Siegfried Fietz)라는 작곡가가 이 시에 노래를 붙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도록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그 노래를 들어 본 분들이 꽤 많으실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선한 능력에 언제나 고요하게 둘러싸여서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속에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날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하십니다. …
(Dietrich Bonhoeffer, “Von guten Mächten,” muzica 역)

죽음이 바로 옆에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곧 사형이 집행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선한 능력이 나를 감싸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나는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믿음으로 기대했던 것은 석방되거나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통해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었습니다. 더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주님의 선하신 능력에 둘러싸여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요 행복이라고 고백합니다.
훗날 강제수용소에서 본회퍼의 죽음을 바라보았던 의사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는 본회퍼 목사가 죄수복을 벗기 전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주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
어찌나 경건한지,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확신할 정도였다.
그는 형장에서 다시 짤막한 기도를 드린 다음,
계단을 밟고 교수대에 올랐다. …
처형은 몇 초 만에 끝났다.
나는 지난 50년간 의사로 일하면서
그토록 경건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강제수용소 담당 의사, 피셔 휠스트룽(H. Fisher-huellstrung)]

여러분, 삶과 죽음은 함께 있습니다. 죽음은 너무도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더 오래 사는 것도 축복이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큰 축복입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축복입니다. 조금 더 사는 것이 아니라, 벅찬 감격으로 나에게 주신 오늘 이 시간을 살아 내는 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얼마 후면 추석을 맞습니다. 먼저 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솟아 올라올 것입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주님 앞에 “참 감사합니다.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라고 기도하며 감사를 표현하는 추석 명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8월 25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오래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왕하 20장 8-13)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07장, 435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왕하 20장 8-13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8월 2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오래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까요? 오래 산다는 것이 잘 사는 것을 보장하는 것일까요?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의 말씀은 히스기야 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 생명을 15년간 연장시켜 주신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왕이었지만 그만 불치의 병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하자 결국 하나님은 그에게 표적을 보여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간 연장해 주셨습니다. 선물로 받은 15년 동안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편지와 예물을 사신들을 통해 보냅니다. 그런데 사신들이 도착했을 때 그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히스기야가 사신들을 만났을 때 한 가지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물들과 군기고를 열어 보여 준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 사실을 알고 히스기야를 책망하지요. 훗날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그가 보여준 모든 보물들을 가져가고 자손들을 포로로 끌고 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한마디로 히스기야에게 덤으로 주어진 삶은 하나님께나 백성들에게 큰 의미가 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어지는 21장에서는 히스기야가 생명을 연장받아서 남기게 된 매우 치명적인 한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히스기야 왕이 덤으로 살게 된 지 3년 만에 얻은 아들 므낫세의 이야기입니다.

 

므낫세는 무려 55년간이나 나라를 다스리면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아들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덤으로 얻은 15년 동안 의미있는 일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15년은 축복이 아니라 환난을 잉태하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히스기야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열조에게 돌아가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삶과 죽음은 함께 있습니다. 죽음은 너무도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더 오래 사는 것도 축복이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큰 축복입니다. 하루하루가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가진 것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축복입니다. 조금 더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벅찬 감격으로 살아가는 오늘의 삶이 축복입니다.

 

나누기

 

  • ‘오래 산다는 것’에 대해 평소에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나누어 봅시다.
  • 오늘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의 이야기처럼 오래 사는 것이 언제나 복된 삶은 아니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은 어떤 것일까요?

 

마무리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믿음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하오나 주님, 신뢰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살기 원합니다. 이해되지 않은 모든 것들 속에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성실하심과 사랑이 담겨 있음을 믿으며, 고난 속에서도 힘을 내어 일어서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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