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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 5

김경진 목사

2021.09.19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마태복음 5장 5절, 새번역)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세 번째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떤 마음으로 묵상하시며 해석하십니까? 저는 이런 마음으로 받곤 했습니다.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사람, 화도 잘 내지 않고 온화하게 사람을 대하는 사람의 영역은 점차로 넓어질 것이다. 더 많은 일, 더 중요한 일을 맡아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더 큰일을 하고 싶다면 너는 온유해야 한다.’ 여러분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참 온유하다는 생각을 하시진 않으십니까? 이렇게 자랑하는 거 보니 온유하진 않죠? 겸손하지 못합니다.
저는 늘 온유함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녀들에게 항상 온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너희들이 땅을 차지할 수 있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뜻밖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빠는 목사님이니까 그렇지, 목회하는 곳에서는 원칙이 통할지 몰라도 세상에서는 안 통해요.”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세상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더 큰일,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면 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너는 배경이 있어야 한다.”
부잣집에 태어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것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겠습니까? 정치와 경제의 흐름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용기 있게 대출받을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부동산이 너희의 것이요, 이것이 세상의 언어가 아닐까요? 사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의미가 더 와닿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온유함’은 사람들이 참 좋아하면서도 그다지 찾지 않는, 배우려고 하지 않는 덕목인 것도 같습니다. 사람을 소개하면서 ‘이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하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보통은 ‘이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가정 배경이 든든한 사람입니다. 좋은 학교 나온 사람입니다. 좋은 직업 가진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합니다. 온유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온유한 사람을 소개받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소개팅을 하거나 중매를 한 경우에 “그 사람 어땠어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소개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을 때, “그 사람 참 착해” 말하곤 하죠. 사실 착하다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런데도 그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온유하다’, ‘착하다’, ‘겸손하다’는 덕목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게 되죠. 이렇듯 온유함은 사람들이 좋아하면서도 열심히 추구하지는 않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산상수훈 말씀을 통해 ‘복 있는 사람’이라는 명제 아래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온유’는 비교적 다양한 문맥 안에서 나타납니다.>

오늘 저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는 우리가 ‘온유’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저는 온유라는 표현을 ‘얌전한’, ‘유순한’, ‘온순한’, ‘겸손한’, ‘참을성 있는’, ‘착한’, ‘부드러운’, ‘화를 내지 않는’ 정도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단어로 온유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부정적인 뜻으로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분명하지 못한’, ‘씩씩하지 못한’, ‘당당하지 못한’, ‘우유부단한’ … 부정적인 의미 때문에 현대인들이 온유라는 말을 추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 언급되는 온유는 어떤 의미일까요? 우선 사용된 용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에서 ‘온유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프라우스(πραΰς)입니다. 본문에서는 남성복수형으로 사용되어서 프라에이스(πραεῖς)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신약성경에 4번 발견되죠.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에서 첫 번째로 등장합니다. 두 번째로는 매우 중요한 말씀인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태복음 11장 28~29절 중)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키시면서 ‘온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사용된 단어가 바로 프라우스(πραΰς)입니다. 또 다른 용례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마지막 입성을 하실 때 나타납니다. 나귀를 타고 올라가시는 장면을 묘사하는 내용이 있는데 스가랴와 이사야서의 말씀이 인용되며 선포되죠.

“시온의 딸에게 말하여라. 보아라, 네 임금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온유하시어, 나귀를 타셨으니, 어린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다.” (마태복음 21장 5절, 새번역)

이 말씀 속에 들어있는 ‘온유하다’는 표현 역시 프라우스(πραΰς)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 성경에는 ‘겸손하여’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어서 온유라는 말이 발견되지 않아 아쉽습니다만, 헬라어로는 ‘온유하다’는 단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용례는 베드로전서 말씀입니다.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벧전 3장 4절, 새번역)

여성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으로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만들라는 권면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프라우스(πραΰς)가 다시 한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온유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예수님과 관련하여서는 네 번 중 두 번 사용되었고, 번역상으로는 ‘겸손하다’는 말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온유를 겸손이라는 단어로 바꿔서 사용한 예가 많이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사례가 민수기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기 12장 3절)

새번역으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민수기 12장 3절, 새번역)

사실 이 말씀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본문입니다. 이후에 설명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에 더하였다는 표현은 그의 행동과 삶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새번역 성경은 모세의 온유함을 겸손함으로 표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온유함이라는 개념 안에 모세는 포함될 수 있습니까?
젊었을 때 그는 이스라엘 사람을 핍박하던 애굽 사람을 보고는 분을 참지 못해 그만 죽이고 맙니다. 결국 미디안으로 피해 도망가게 되죠. 그만큼 혈기가 있었던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그런 그를 과연 온유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불평도 꽤나 했던 사람입니다. 시내산에서 계명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범죄하는 이스라엘을 보고는 돌판을 던져 버리는 강한 성격을 소유하기도 했죠. 마지막으로 우리는 므리바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고 두 번이나 바위를 침으로써 결국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우리는 과연 온유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요?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온유’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클 수도, 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산상수훈에 언급된 ‘온유한 자’의 의미는 시편 37편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5장 5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그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받을 복만을 이야기하시기 때문에 온유한 자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유한 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떤 근거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염두에 두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던 걸로 보입니다. 인용된 구약의 본문이 시편 37편 11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편 37편 11절)

많은 성경학자들은 마태복음 5장 5절 말씀이 시편 37편 11절 말씀을 인용한 걸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시편 말씀을 기억하시며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면, 우리는 시편의 말씀을 조금 더 살펴봄으로써 온유한 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시편 37편은 제가 참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저는 늘 이 말씀을 읽으며 위로를 받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말씀은 매우 귀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의 시로 알려진 시편 37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편 37편 1절)

악을 행하는 사람들,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한 권면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볼 때 마음이 어떻습니까? 응징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저런 사람을 그대로 살게 두시는가’ 생각하며 불편한 심정을 가질 때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때로는 악한 자를 찾아가서 불의에 대해 화를 내거나 모욕을 주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받은 폭력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우리에겐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두 명이나 죽이고도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한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향해 한 사람이 달려가서 폭력을 가하다가 그만 제재를 당하는 사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못된 짓을 한 사람, 나라도 가서 혼내고 싶고 때려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편 37편 1~2절)

7절 이후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편 37편 7절 중)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시편 37편 10절)

참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또 악인으로 인해 고통당할 때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종종 위로받곤 했습니다. 특별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하나님께서 그를 제거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을 베어 버리시리라”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을 보면서 불평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악한 꾀를 내어서 잘 되는 사람을 보며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곧 베임을 당할 것이고 쇠잔해질 것이며 제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 안에서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이 설명됩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편 37편 11절)

<시편 37편은 온유한 자를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자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시편 37편 9절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온유의 첫 번째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하죠.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시편 37편 9절 중)

여러분, 앞서 있는 말씀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9절에서 역시 땅을 차지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 37편 말씀에는 땅을 차지하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37:11),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37:9)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사람이 진정 온유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를 소망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 된다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시편 37편 3~7절 말씀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시편 37편 3~7절)

이 말씀은 온유함이 무엇인지, 여호와를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먼저는 ‘여호와를 의뢰하며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악인들이 흥행하는 것을 보면서도 여호와만을 믿고 의지하며 선을 행하기를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해 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온유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덕목입니다. 두 번째는 4절 말씀에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며 그분께 소원을 아뢰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 곧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사람입니다. 여호와께 기도하는 자가 온유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온유한 자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로 5~7절 말씀은 ‘여호와께 길을 맡기고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성경은 온유함에 대해 여호와에 대한 인식과 여호와에 대한 소망이 어우러진 상태로서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악인들이 창궐하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온유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불의를 행하는 자를 보면서도 우리가 온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베어 내시고 쇠잔케 하시고 제거하시리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화를 낸다고 해서 악인들을 제거할 수도 없고, 우리가 보복한다고 해서 이 땅에 악인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있는 그곳에서 승승장구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그들을 없애 버리시며 쇠잔케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분만을 신뢰하고 선을 행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하나님께서 보고 들으시기에 그분께 기도하며 소망을 가지는 것,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믿기에 나의 모든 길을 맡기며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 온유한 자입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그의 책 『행복』 에서 온유함에 대해서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결코 연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온유함이란, 나를 하나님께 맡기고 내면의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비록 우리 자신은 나약하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뜻에 맞추어 살기로 작정하는 것, 그분의 인도하심만을 받기로 결정하는 삶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온유하라’ 말씀하며 온유한 자의 복을 전해 줍니다.
우리 주님은 온유한 자, 곧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인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온유는 항상 오래 참음과 함께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에베소서 4장 2절에는 겸손함, 온유함, 오래 참음이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이 여러분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Blessed Are The Gentle

Matthew 5:5
(Numbers 12:1-9)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Matthew 5:5 NIV)
“Blessed are the gentle,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Matthew 5:5 NASB)

This beatitude, one that you may know well, is the third of the eight beatitudes in Matthew chapter 5.

I have always understood it as follows: A man with a gentle character whodoes not get angry easily and is always gentle toward otherswill see his boundary grow, be given more things to do, and be tasked with more important work. If you want to do greater things, you must become gentle.

How do you interpret this verse?

In life, I found that people and the world did not interpret this verse as I did. The common belief is this:If you want to do greater, more important things and expand your boundary, be competent. Be skillful and have the right background. Have vision.

The world seems to think, ‘Blessed are those who are from well-off families,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Blessed are those who are competent and goal-driven,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Blessed are those who are knowledgeable about economy and politics and have the courage to take outlots of loans, for they will inherit the real estate.’

We all agree thatgentleness is a good thing. Yet, today, it is not a virtue admired and sought by people. Normally, we don’t consider it flattering to introduce someone as ‘He is a good, gentle man.’ It’s more flattering to say, ‘He is extremely accomplished. He has vision.’ or ‘He comes from a good family and has a great career.’

I don’t know how it is these days, but back when I was trying to arrange a match, it wasn’t a compliment to say, “He is a really good guy.” It kind of meant that there was nothing special about him. To say that someone is “gentle” also has a similar nuance.

Married couples, however, know how precious gentleness and goodness are. Yet, today, while peoplegenerally agree that gentleness is a good thing, they do not deem it a virtue to be pursued and admired.

Yet our Lord clearly said that “the gentle”,or “the meek”, are blessed and will inherit the earth. With the Spirit’s guidance, I want to unpack the meaning of these words.

First, what does it mean “to be gentle”? What are some of its synonyms? There would be words like docile, humble, tame, meek, patient, good, soft, not easily angered, amiable, and so on. There are also, however, negative words associatedwith gentleness:unclear, unconfident, insecure, hesitant,and so on.Perhaps it is because of these connotations that people today do not like this word.

Then what does the Bible mean by“gentle”? First, let’s look at its usages. The original Greek word for gentle is “praus (πραΰς).” In Matthew 5:5the masculine plural of praus,“πραεῖς,”is used.

The most prominent usage of “praus” is found in Matthew 11:29: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Matthew 11:28-29) Here Jesus used “praus” to describe himself as gentle.

“Praus” is also used in the scene where Jesus enters Jerusalem riding a young colt. Here the Bible quotes Zechariah 9:9 and Isaiah 62:11: “Say to Daughter Zion, ‘See, your king comes to you, gentle and riding on a donkey, and on a colt, the foal of a donkey.’”(Matthew 21: 5) Here, too, in a prophecy about Jesus, our Lord is described as “gentle.” Although the NIV uses “gentle,” the NLT describes him as “humble.”

The fourth important usage of “praus” is found in Peter’s advice to wives: “You should clothe yourselves instead with the beauty that comes from within, the unfading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s so precious to God.” (1 Peter 3:4)

To summarize, “praus” is used in the Bible to express a certain state of the heart, a certain condition of a person’s most inner being. In particular, in two instances the Bible uses this word to describe Jesus’ character. “Praus” is mainly translated as “gentle,” but is also translated as “humble.”

Among several places in the Bible where “praus” is translated as “humble,” the most representative usageisfound in Numbers where Moses is described as “humble”:

“Now Moses was a very humble man, more humble than anyone else on the face of the earth.”(Numbers 12:3 NIV)
“Now Moses was very humble—more humble than any other person on earth.”(Numbers 12:3 NLT)

This verse is saying that Moses was “praus”—in other words, “gentle.” But this is not easy to accept, considering Moses’ actions and character in the Bible. Perhaps this is why the NIV and NLT used the word “humble” instead.

I may have to explain this further in another sermon, butlet me just point out one aspect related to today’s message. Can we really say that Moses was “praus”—or gentle—in the true sense of the word? As you may know, he beat an Egyptian to death and complained to Goda lot. Furthermore, God forbid him from entering the promised land because he hit the rock twice at Meribah. Therefore, is it appropriate to say that he was “praus, that is,” “gentle”? Let me elaborate on this point in a moment.

In conclusion, our study of Scripture tells us that the meaning of gentleness in the Bible may differ from our perceptions, encompassing a broader meaning.

Let’s return to today’s verse, Matthew 5:5. What does this mean? Well, it is a very short verse, and the usages of “praus” in the Bible are limited. So fully comprehending this verse is a challenge.

Then why don’t we ask this question? Was Jesus being creative and independent when He said this beatitude, or did He have a certain verse or incident from the Old Testament in mind?

Although we cannot be 100 percent certain, Jesus seemed to have an Old Testament verse in mind: “The lowly will possess the land and will live in peace and prosperity.” (Psalm 37: 11)If Jesus was really thinking of this verse when He spoke Matthew 5:5, a study of the former will surely shed light on the latter as well as the meaning of “gentle.”

Psalm 37 is a psalm I love. It always gave me strength when I went through trials,especially when I was wronged by the wicked. It encourages me even now. This famous psalm written by David starts like this: “Don’t worry about the wicked or envy those who do wrong.” (Psalm 37: 1)

When we see the evil do wicked things, how do we feel? We are discouraged, we complain to God, and we are deenergized: ‘How can there be such people? God, why don’t You punish them?’ We cannot accept that the world seems unfair. When we feel this way, what can we do? We may rise up against the evil, punish them, be angry at them, humiliate them, try to stop them by force, or pay them back using the same method as theirs.

But our Lord speaks to us through David:

“Don’t worry about the wicked or envy those who do wrong.” (Psalm 37: 1)
“For like grass, they soon fade away. Like spring flowers, they soon wither.” (Psalm 37: 2)
“Don’t worry about evil people who prosper or fret about their wicked schemes.” (Psalm 37: 7)
“Soon the wicked will disappear. Though you look for them, they will be gone.” (Psalm 37: 10)

God is telling us to not worry or complain about the wicked. He is commanding us to not envy those who do wrong, even if their evil schemes appear successful—for they will soon disappear like flowers. They will fade and wither.

It is in this context that God gave David these words: “The gentle will possess the land. They will live in peace and prosperity.”

Then what does “gentle” mean in this text from Psalms? First, we may more properly understand the meaning of gentle by looking at Psalm 37:9 which also mentions something about possessing the land: “[…] but those who trust in the Lord will possess the land.” (Psalm 37: 9)

While Psalm 37:11 says that the “lowly” will possess the land, Psalm 37:9, a preceding verse, is saying that“those who trust in the Lord” will possess the land. Therefore, it is clear that a “lowly” person—or a “gentle” person for that matter—is one who “trusts” in the Lord. Furthermore,this person who trusts in the Lord is described in more detail in the verses preceding verse 9: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Then you will live safely in the land and prosper. Take delight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your heart’s desires. Commit everything you do to the Lord. Trust him, and he will help you. He will make your innocence radiate like the dawn, and the justice of your cause will shine like the noonday sun. Be still in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to act.” (Psalm 37: 3-7)

To trust in the Lord—that is, to be gentle—is; to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verse 3); to take delight in the Lord and to tell Him our heart’s desires (verse 4); and to commit everything we do to the Lord, be still in His presence, and wait patiently for Him (verses 5-7).

This is gentleness. The world may think that gentleness is just an attitude of the heart, but the Bible tells us that it includes an acknowledgement of God and a hope in Him.

Therefore, we come to know the reason why we can be gentle. We must be gentle—even when we face evil people and their evil deeds—because God will strike them, because He will make them wither, and because He will ultimately erase them.

Our anger does nothing to stop the wicked. These evil weeds will not disappear because we take revenge. Although they seem to be everywhere and successful, God will strike them down and get rid of them. This is why we can be gentle. We can be gentle if we have this faith.

Because we have God, wecan trust in Him,do good, and live faithfully. Because God sees and hears, we can pray to Him and tell Him our heart’s desires. Because we believe that He will do it, we can commit everything to the Lord, be still before Him, and wait patiently for Him. This is gentleness.

This is why Billy Graham says in his book The Secret of Happiness that true gentleness is not weakness. He says that it is to commit oneself to God. It is to be reborn on the inside and to be changed into someone whom God can use for his purpose. In other words, it is to commit everything to God’s will and guidance and to align ourselves to His will—although it may seem like weakness. This gentleness.

Pastor Kim Ji-Chul often used this anecdote ofthe reformer Calvin when preaching Matthew 5:5. Once on his journey from Italy to Strasbourg, Calvin stopped by Geneva to meet W. Penel, his friend, who strongly persuaded him to join the reform movement. Calvin had originally planned to become a theologian, but at his friend’s persistent encouragement, he decided to stay in Geneva and jointhe movement, thinking that it may be God’s will.

But Calvin was a very meticulous and strict person, which led to considerable opposition. Hewas expelled from the city, following the decision of the city council. Yet he did not blame or hold a grudge against anyone for this. Three years later, the city’s decision was reversedbecause people needed Calvin. This time, too, Calvin returned, thinking that it may be God’s will.

Most people would have felt bitter: ‘Why must I come and go as they please? How dare they treat me this way?’ But Calvin was gentle and silent. He returned without complaint. He held no grudges. And when he returned, he accomplished great things in the history of the Reformation, making Geneva what it is today. This is gentleness.

How can we number all the incomprehensible things in this world? How can we count all the unacceptable ones? However, the gentle will be blessed. The one who strives to understand God’s will, aligns his thoughts with God’s, and transforms himself into the person that God sees fit for His purpose is the gentle man.

Therefore, gentleness always goes hand in hand with patience. Psalm 37 also tells us to be patient. Ephesians 4:2 mentions humility, gentleness, and patience in the same breath.

Dear brothers and sisters, be gentle. Gentleness is to be weak before the Lord. It is to commit everything to Him. It is to align ourselves to God’s will and to let Him guide us—even though it may seem weak. This is meekness. This is gentleness.

Blessed are the gentle. Blessed are the meek. For God will give them the land as a gif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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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 5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마태복음 5장 5절, 새번역)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세 번째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떤 마음으로 묵상하시며 해석하십니까? 저는 이런 마음으로 받곤 했습니다.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사람, 화도 잘 내지 않고 온화하게 사람을 대하는 사람의 영역은 점차로 넓어질 것이다. 더 많은 일, 더 중요한 일을 맡아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더 큰일을 하고 싶다면 너는 온유해야 한다.’ 여러분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참 온유하다는 생각을 하시진 않으십니까? 이렇게 자랑하는 거 보니 온유하진 않죠? 겸손하지 못합니다.
저는 늘 온유함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녀들에게 항상 온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너희들이 땅을 차지할 수 있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뜻밖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빠는 목사님이니까 그렇지, 목회하는 곳에서는 원칙이 통할지 몰라도 세상에서는 안 통해요.”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세상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더 큰일,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면 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너는 배경이 있어야 한다.”
부잣집에 태어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것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겠습니까? 정치와 경제의 흐름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용기 있게 대출받을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부동산이 너희의 것이요, 이것이 세상의 언어가 아닐까요? 사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의미가 더 와닿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온유함’은 사람들이 참 좋아하면서도 그다지 찾지 않는, 배우려고 하지 않는 덕목인 것도 같습니다. 사람을 소개하면서 ‘이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하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보통은 ‘이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가정 배경이 든든한 사람입니다. 좋은 학교 나온 사람입니다. 좋은 직업 가진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합니다. 온유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온유한 사람을 소개받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소개팅을 하거나 중매를 한 경우에 “그 사람 어땠어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소개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을 때, “그 사람 참 착해” 말하곤 하죠. 사실 착하다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런데도 그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온유하다’, ‘착하다’, ‘겸손하다’는 덕목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게 되죠. 이렇듯 온유함은 사람들이 좋아하면서도 열심히 추구하지는 않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산상수훈 말씀을 통해 ‘복 있는 사람’이라는 명제 아래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온유’는 비교적 다양한 문맥 안에서 나타납니다.>

오늘 저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는 우리가 ‘온유’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저는 온유라는 표현을 ‘얌전한’, ‘유순한’, ‘온순한’, ‘겸손한’, ‘참을성 있는’, ‘착한’, ‘부드러운’, ‘화를 내지 않는’ 정도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단어로 온유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부정적인 뜻으로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분명하지 못한’, ‘씩씩하지 못한’, ‘당당하지 못한’, ‘우유부단한’ … 부정적인 의미 때문에 현대인들이 온유라는 말을 추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 언급되는 온유는 어떤 의미일까요? 우선 사용된 용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에서 ‘온유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프라우스(πραΰς)입니다. 본문에서는 남성복수형으로 사용되어서 프라에이스(πραεῖς)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신약성경에 4번 발견되죠.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에서 첫 번째로 등장합니다. 두 번째로는 매우 중요한 말씀인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태복음 11장 28~29절 중)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키시면서 ‘온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사용된 단어가 바로 프라우스(πραΰς)입니다. 또 다른 용례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마지막 입성을 하실 때 나타납니다. 나귀를 타고 올라가시는 장면을 묘사하는 내용이 있는데 스가랴와 이사야서의 말씀이 인용되며 선포되죠.

“시온의 딸에게 말하여라. 보아라, 네 임금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온유하시어, 나귀를 타셨으니, 어린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다.” (마태복음 21장 5절, 새번역)

이 말씀 속에 들어있는 ‘온유하다’는 표현 역시 프라우스(πραΰς)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 성경에는 ‘겸손하여’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어서 온유라는 말이 발견되지 않아 아쉽습니다만, 헬라어로는 ‘온유하다’는 단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용례는 베드로전서 말씀입니다.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벧전 3장 4절, 새번역)

여성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으로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만들라는 권면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프라우스(πραΰς)가 다시 한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온유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예수님과 관련하여서는 네 번 중 두 번 사용되었고, 번역상으로는 ‘겸손하다’는 말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온유를 겸손이라는 단어로 바꿔서 사용한 예가 많이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사례가 민수기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기 12장 3절)

새번역으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민수기 12장 3절, 새번역)

사실 이 말씀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본문입니다. 이후에 설명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에 더하였다는 표현은 그의 행동과 삶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새번역 성경은 모세의 온유함을 겸손함으로 표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온유함이라는 개념 안에 모세는 포함될 수 있습니까?
젊었을 때 그는 이스라엘 사람을 핍박하던 애굽 사람을 보고는 분을 참지 못해 그만 죽이고 맙니다. 결국 미디안으로 피해 도망가게 되죠. 그만큼 혈기가 있었던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그런 그를 과연 온유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불평도 꽤나 했던 사람입니다. 시내산에서 계명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범죄하는 이스라엘을 보고는 돌판을 던져 버리는 강한 성격을 소유하기도 했죠. 마지막으로 우리는 므리바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고 두 번이나 바위를 침으로써 결국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우리는 과연 온유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요?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온유’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클 수도, 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산상수훈에 언급된 ‘온유한 자’의 의미는 시편 37편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5장 5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그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받을 복만을 이야기하시기 때문에 온유한 자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유한 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떤 근거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염두에 두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던 걸로 보입니다. 인용된 구약의 본문이 시편 37편 11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편 37편 11절)

많은 성경학자들은 마태복음 5장 5절 말씀이 시편 37편 11절 말씀을 인용한 걸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시편 말씀을 기억하시며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면, 우리는 시편의 말씀을 조금 더 살펴봄으로써 온유한 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시편 37편은 제가 참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저는 늘 이 말씀을 읽으며 위로를 받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말씀은 매우 귀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의 시로 알려진 시편 37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편 37편 1절)

악을 행하는 사람들,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한 권면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볼 때 마음이 어떻습니까? 응징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저런 사람을 그대로 살게 두시는가’ 생각하며 불편한 심정을 가질 때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때로는 악한 자를 찾아가서 불의에 대해 화를 내거나 모욕을 주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받은 폭력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우리에겐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두 명이나 죽이고도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한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향해 한 사람이 달려가서 폭력을 가하다가 그만 제재를 당하는 사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못된 짓을 한 사람, 나라도 가서 혼내고 싶고 때려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편 37편 1~2절)

7절 이후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편 37편 7절 중)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시편 37편 10절)

참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또 악인으로 인해 고통당할 때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종종 위로받곤 했습니다. 특별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하나님께서 그를 제거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을 베어 버리시리라”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을 보면서 불평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악한 꾀를 내어서 잘 되는 사람을 보며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곧 베임을 당할 것이고 쇠잔해질 것이며 제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 안에서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이 설명됩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편 37편 11절)

<시편 37편은 온유한 자를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자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시편 37편 9절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온유의 첫 번째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하죠.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시편 37편 9절 중)

여러분, 앞서 있는 말씀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9절에서 역시 땅을 차지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 37편 말씀에는 땅을 차지하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37:11),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37:9)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사람이 진정 온유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를 소망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 된다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시편 37편 3~7절 말씀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시편 37편 3~7절)

이 말씀은 온유함이 무엇인지, 여호와를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먼저는 ‘여호와를 의뢰하며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악인들이 흥행하는 것을 보면서도 여호와만을 믿고 의지하며 선을 행하기를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해 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온유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덕목입니다. 두 번째는 4절 말씀에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며 그분께 소원을 아뢰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 곧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사람입니다. 여호와께 기도하는 자가 온유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온유한 자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로 5~7절 말씀은 ‘여호와께 길을 맡기고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성경은 온유함에 대해 여호와에 대한 인식과 여호와에 대한 소망이 어우러진 상태로서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악인들이 창궐하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온유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불의를 행하는 자를 보면서도 우리가 온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베어 내시고 쇠잔케 하시고 제거하시리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화를 낸다고 해서 악인들을 제거할 수도 없고, 우리가 보복한다고 해서 이 땅에 악인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있는 그곳에서 승승장구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그들을 없애 버리시며 쇠잔케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분만을 신뢰하고 선을 행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하나님께서 보고 들으시기에 그분께 기도하며 소망을 가지는 것,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믿기에 나의 모든 길을 맡기며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 온유한 자입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그의 책 『행복』 에서 온유함에 대해서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결코 연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온유함이란, 나를 하나님께 맡기고 내면의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비록 우리 자신은 나약하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뜻에 맞추어 살기로 작정하는 것, 그분의 인도하심만을 받기로 결정하는 삶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온유하라’ 말씀하며 온유한 자의 복을 전해 줍니다.
우리 주님은 온유한 자, 곧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인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온유는 항상 오래 참음과 함께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에베소서 4장 2절에는 겸손함, 온유함, 오래 참음이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이 여러분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1년 9월 19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5)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187, 427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마 5: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9월 19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온유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온순함부드러운참을성이 있는… 이런 의미가 떠오를 것입니다또는 부정적 이미지도 있지요분명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온유라는 덕목을 좋아하면서도더는 찾지도 추구하려 않는 것은 이런 부정적 느낌 때문일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으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요그럼 여기서 말하는 온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온유한 자에게 주어진 복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설교의 요약

    예수님께서 어떤 의미로 온유를 말씀하셨을까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 예수님의 독창적 말씀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말씀이나 사건을 염두 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인용한 듯 보이는 말씀이 있습니다그 말씀은 시편 37편 11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시 37:11)

    시편 37편은 악한 자들 앞에서 손해와 고통을 겪는 자들에게 늘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37편은 1절에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로 시작합니다불의 앞에서 우리 마음은 어떻습니까응징하고 싶고모욕을 주거나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지 않습니까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을 보면서 불평하지 말고시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왜냐하면 그들은 곧 베임을 다할 것이고쇠잔할 것이며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온유하라는 것입니다여호와를 소망하는 자가 땅을 차지할 것(시 37:9)임을 말씀하시면서 온유한 자그건 바로 여호와를 소망함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온유의 덕목은 마음의 상태일 수 있지만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의식여호와를 향한 소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온유한 자는 여호와를 소망하기에 하나님을 의뢰하고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보고 들으심을 믿기에 그분께 기도하고 소원을 아뢸 수 있으며 희망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기에 나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이것이 바로 온유한 자입니다.(시 37:3~7)

빌리 그래함 목사는 그의 저서 「행복」에서 다음과 같이 온유함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연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진정한 온유는 나를 하나님께 맡기고내면의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살이 속 이해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그러나 온유한 자는 복을 받습니다하나님의 뜻을 소망하며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자로 변화되고자 하는 사람하나님 앞에서 내 연약함을 알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것이 바로 온유한 자입니다그런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땅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온유한 자들의 것입니다.

나누기

1.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된 온유함의 경험이 내게도 있습니까?

2. 이해되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오늘도 삶의 자리에서 온유함으로 대처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마무리기도

    온유하신 하나님온유하라고 말씀하신 그 명령을 순종으로 받아 듭니다내 생각과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되는 줄 믿습니다신원하시는 하나님을 늘 기억하며 모든 것 하나님께 맡기는 온유한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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