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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에베소서 4: 17 ~ 24

김경진 목사

2020.10.11

< 욕심은 인간을 약한 존재로 만듭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센 사람, 넘어뜨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대통령일까요? 검찰총장일까요? 참모총장일까요? 인기 연예인일까요? 아니면 종교인일까요?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일까요? 사실 어떤 위치나 직업, 삶의 자세가 강함의 기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신 안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 모자람 느끼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가장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가장 약한 사람, 쉽게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 무언가에 욕심을 내는 사람, 강렬하게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약한 사람입니다. 그가 갖고 싶어 하는 것으로 유혹하면 얼마든지 쓰러지고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돈으로 유혹할 수 있습니다. 인기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인기로 현혹하면 됩니다. 어떤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를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무엇이 있든 없든 자기 안에서 만족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물질이나 자리에 상관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편안함과 완전함을 누리는 사람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좀처럼 무너뜨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은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돈에 대한 목마름이 강한 사람은 여전히 약한 사람입니다. 또다시 돈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은 큰 의미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욕심이 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종종 우리는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던 인물이 낙마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리고 그 뒷면에 항상 욕심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 성적인 탐닉, 자녀에 대한 욕심 등 어떤 이득을 좇아 행하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마주하곤 합니다. 욕심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디모데전서 6:9)

< 욕심은 악한 행실을 부추깁니다. >

그렇다면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가진 꿈과 비전까지 욕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욕심과 비전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 안에 만들어 주신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얼마든지 욕심과 비전을 분별해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그것은 욕심이야.’라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3장을 보면, 악행을 부추기는 욕심에 관한 기사도 나옵니다.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3:4~5)

욕심과 함께 따라오는 현상이 있는데, 바로 ‘악을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언제든지 나를 받아주실 것이라는 기대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이용해 악행을 지속하는 인간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욕심은 ‘거짓’을 말하고 행하는 형태로 드러납니다. 예레미야 8장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예레미야 8:10 중)

선지자와 제사장과 같은 종교인들도 욕심에서 예외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종교인들 속에서 욕심을 더 많이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악을 즐겨 행하고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아가 주님은 미가서를 통해 우리의 또 다른 욕심을 보게 하십니다. 욕심을 중심으로 결탁하는 인간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미가 7장의 말씀입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미가 7:2~3)

욕심을 행하는 삶의 양태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악을 행하는 모습, 형제를 잡기 위해 매복한 자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피를 흘리고자 하는 악한 의도를 품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뇌물을 구하며 결탁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악한 행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욕심은 다툼을 일으키며, 욕망으로 구한 기도는 응답될 수 없습니다. >

주님께서는 야고보서 1장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3~15)

욕심의 의미와 속성을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어도 좋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금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현혹한 뱀의 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에 그만 욕심을 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죽음을 맛봐야 하는 운명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 여러 곳에서 욕심이 인간에게 어떤 불행을 일으키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잠언 28:25)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야고보서 4:1~2 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욕심에서 시작된 매우 중요한 표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툼’입니다. 이 땅에서 끊임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투와 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 가정 안에서, 사회 안에서, 기업이나 직장 안에서 수많은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자신의 이익을 빼앗기지 아니하려는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서로의 욕망과 욕심이 상충될 때 다툼이 벌어지곤 합니다. 모든 분쟁의 자리에는 욕심이 존재합니다. 우리 안에 욕심이 가득하기에, 이 땅에서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앞부분을 보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발생하는 세 가지 문제가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다툼입니다. 한편 이어지는 내용이 매우 흥미로운데, ‘기도’와 관련된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구하는 일’ 곧 ‘기도’에 관한 말씀을 하시며, 그 내용을 정욕과 욕망과 연결하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4:2~3 중)

우리의 기도가 욕심과 정욕과 연결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때 기도를 ‘신앙생활’로 바꿔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욕심에 근거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욕심과 정욕으로 하는 기도는 주님께 응답받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엄중한 선언입니다.

< 욕심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단절시킵니다. >

우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마가복음 4:18~19)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욕심을 갖고 말씀을 들으면 결실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욕심과 욕망을 기초로 한 신앙생활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욕심을 근거로 시작되었다면, 욕망 때문에 시작된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귀한 은혜와 은총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를 보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욕심으로 가득 찬 종교 지도자들이 많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욕심으로 가득 찬 신도들의 모습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기독교인’ 하면 ‘욕심 많은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종교인과 종교단체가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2018년도에는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이 7%였다고 합니다. 2년 후인 올해 다시 똑같은 조사를 했는데, 1%가 하락해 겨우 6%만이 ‘종교인이 종교인답게 살고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은, 욕망에 어떤 악한 삶의 열매가 맺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4절은 성적인 실패를 경고합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이제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욕심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며, 이웃과의 다툼을 일으키고, 진정한 구도자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게 하고, 성적인 타락과 악행, 악한 자와의 결탁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에베소서 4:17~20)

< 욕망의 옛사람을 버리고, 성령께 새사람이 되는 은총을 구합시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욕심을 거둬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한 존경받는 종교인에게 어떤 분이 ‘어떻게 하면 욕심을 버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분의 대답은 단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냥 놓아라.” 성의 없는 대답처럼 들리지만, 사실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고 명상한 대답입니다. 차 문을 열고 가볍게 내리듯이 욕심으로부터 내려오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큰일이 날 것 같아도 생각보다 쉽게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욕심의 열차는 가짜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이며 말입니다. 많은 분이 좋아하는 법륜 스님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욕심과 관련한 성경 말씀이 그분의 깨달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탐구해 봐도 알게 되는 진실이며, 성경 말씀을 통해서도 얻게 되는 진리입니다.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욕망의 열차에서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욕심의 끝에는 반드시 불행과 파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듣는 중에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지.’라고 생각한 분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욕심을 붙잡는 순간, 그 안에는 이미 사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멸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에베소서 4:22)

‘옛 모습’을 내어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까지는 세상의 지혜자들과 같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냥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우 중요한 말씀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3~24)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나오는 것도 중요합니다. 욕망의 걸음을 멈추겠다고 결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시 욕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욕심을 버릴 수 있어도, 또다시 욕심의 노예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을 통해 우리의 관점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거룩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은혜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욕망으로 기도하던 것을 멈추고, 욕심으로 신앙생활 하던 것을 멈추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그 말씀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의 울림을 하나님께 아뢰어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우리를 새 존재로 빚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우리의 살결이 부드러웠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부드러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살이라는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욕심부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붙잡았습니다. 꽉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살결은 거칠어졌고, 우리의 마음도 딱딱해졌습니다. 단단해졌습니다. 움켜쥐려 하는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엉클어진 모습, 볼품없는 모습에서 우리가 벗어나기를 주님께서도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새롭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새로운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며, 새로운 성도가 되기를 원하시고, 새로운 자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요청하십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십시오. (에베소서 4:22~24, 새번역)

Desire Is The Beginning of Unhappiness

Ephesians 4: 17-24

I don’t think I need to persuade you on the title of today’s sermon. We have seen so many examples of desire bringing unhappiness that all that is needed is a reconfirmation of thiswell-known fact. Yet, the reason why we must revisit this subject is that we still continue to desire and to be unhappy, even though we know thisobvious truth.

Who do you think is the strongest person in the world? Who is indomitable and unbeatable? A rich man? A president? A celebrity? A famous journalist? A prosecutor? A chief of staff? A religious leader? Well, the most powerful man is one who feels no lack, a satisfied man who accepts himself as he is.

Who is easily defeated then? It is a personwho always wants something. Such a man can be defeated by tempting him with his desire. A man who wants money can be bought with it. A man who seeks fame will kneel before a person who can give him that. A man who seeks a certain position will submit to a man who can give him that position. A man hard to deal with is the one who does not care if he has money or not, that is, a man who feels no lack. A man who is satisfied with what he has, a man who does not care if he holds a high position or not is the strongest person. A rich man who cravesmore wealth will be tempted by it. A man of high status who wishes to go higher will be tempted by position.

Our desires make us weak. We see many influential people fall. And behind every fall, we see desire—whether it be money, sex, children, or status.

We also see businesses fail. Of course, sometimes it’s because of anadverse economic environment, but, in many cases, companies go belly up because of greed and reckless expansion. This applies to investments failures, too. Although investments fail for a variety of reasons, often it is because of the investor’s greed which makes him vulnerable to fraud.

Desire is the beginning of unhappiness. That is why the Lord says, “Those who want to get rich fall into temptation and a trap and into many foolish and harmful desires that plunge people into ruin and destruction.”(1 Timothy 6: 9)Our Lord points out that a cause for ruin and destruction is “many foolish and harmful desires.” As such, foolish and harmful desires cause unhappiness.

Then what does it mean to have foolish and harmful desires? Is it a sin to earn money and to make more of it? Is engaging in economic activities a harmful desire? Is wanting to live a better life a harmful desire?

I don’t think I need to answer these questions because we ourselves know what desire is in each of our hearts. The inner conscience God placed in us discerns that. The problem is that certain desires feign legitimacy.Several important criteria help us discern whether these “legitimate desires” are harmful desires or not. Desires have a way of stimulating us by telling us it’s okay to use whatever means possible to attain that desire.

First, a desire encourages and justifies evil.

“Have you not just called to me:‘My Father, my friend from my youth,will you always be angry?Will your wrath continue forever?’This is how you talk,but you do all the evil you can.”(Jeremiah 3:4-5)

Second, a desire makes a person speak lies and practice deceit.

“Therefore I will give their wives to other menand their fields to new owners.From the least to the greatest,all are greedy for gain;prophets and priests alike,all practice deceit.”(Jeremiah 8: 10)

Third, as we have read, prophets, priests, and religious people are not immune to desires. Rather, they are more susceptible to them. God says through Jeremiah that religious leaders practice evil and fill their own greed by abusing God’s mercy and love.

Fourth, through Micah, God says the following:

“The faithful have been swept from the land;not one upright person remains.Everyone lies in wait to shed blood;they hunt each other with nets.Both hands are skilled in doing evil;the ruler demands gifts,the judge accepts bribes,the powerful dictate what they desire—they all conspire together.” (Micah 7:2-3)

Hence, the Lord clearly says in chapter 1 of James that we cannot blame God for the things caused by our desires: “When tempted, no one should say, ‘God is tempting me.’ For God cannot be tempted by evil, nor does he tempt anyone; but each person is tempted when they are dragged away by their own evil desire and enticed. Then, after desire has conceived, it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grown, gives birth to death.Don’t be deceived,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James 1: 13-16)

The first man Adam and Eve made this mistake. Although God forbid them to eat from just one tree, allowing them to eat from all others, they desired to be like God after listening to the serpent’s lies, which eventually made them return to dust.

Therefore, desire is the cause of man’s unhappiness. And man is solely responsible for his unhappiness. The Lord tells us in many places of the Bible how destructive desires can be:

“The greedy stir up conflict,but those who trust in the Lordwill prosper.” (Proverbs 28:25)

“What causes fights and quarrels among you? Don’t they come from your desires that battle within you? You desire but do not have, so you kill. You covet but you cannot get what you want, so you quarrel and fight. You do not have because you do not ask God.” (James 4:1-2)

Dear brothers and sisters, fights, wars, and conflicts continue endlessly in this world. Conflicts are occurring in countries, homes, societies, and workplaces. What is the reason for this? It is because people continue to hold on to their self-interests. Fights occur when desires conflict with each other. Therefore, in every fight and struggle, greed and desire are at the center. They are the beginning of endless conflicts and fights. Desire is the cradle of all unhappiness. It is what causes conflicts and wars.

The earlier part of James 4 deals with three problems that stem from man’s desire. First of all, desire causes fights, struggles, and conflicts.

The second problem, however, is quite interesting for it is connected to supplication and prayer. In James 1, our Lord talks about prayer and supplication in relation to desire and greed: “You do not have because you do not ask God. When you ask, you do not receive, because you ask with wrong motives, that you may spend what you get on your pleasures.” (James 4: 2-3)

These verses reveal an important fact: Our prayers may be related to desire and greed. If we substitute prayer with faith, then we may say that our faith lives may be motivated by greed and desire. What happens then? Our Lord says, “You ask but do not receive.” In other words, when we pursue faith with desire, we do not get what we ask. What does this mean? It means that God does not answer prayers motivated by greed and desire. Neither does God answer a faith life pursued with greed and desire.

Interestingly, our Lord touches upon this subject in the parable of sower: “Still others, like seed sown among thorns, hear the word;but the worries of this life, the deceitfulness of wealth and the desires for other things come in and choke the word, making it unfruitful.”(Mark 4: 18-19)

What does this mean? It means that desires prevent us from bearing fruit, even after we hear God’s word. A faith based on greed and desire is bound to be an unfruitful and unanswered faith.

If our faith is based on greed and desire, if we pursue faith in order to gain more, we will become pathetic Christians who cannotreceive His grace. Sadly, the Korean Church today is filled with such desirous leaders, which is breeding desirous congregants.

According to the Ministry Data Institute, 7% of Koreans answered “Yes” to the question, “Are religious groups in Korea carrying out their roles properly?” This year, that percentage dropped to 6%. Sixty-five percent of the respondents said the major problem of religion was corruption, while 55% saidgroup egoism was a problem in Korean churches. I hope Korean churches will overcome such evil desires.

James 4 talks about a third desire. As verse 4 points out, the third is sexual corruption. Among the people led by desire, there are adulterers. Desire causes sexual immorality. Desire makes us enemies with God and makes us commit adultery: “You adulterous people, don’t you know that friendship with the world means enmity against God? Therefore, anyone who chooses to be a friend of the world becomes an enemy of God.” (James 4: 4)

What more be said? Desire drives us away from God, makes us fight with our neighbors, prevents us from becoming truth-seekers, causes sexual immorality, and makes us practice eviland lie and join hands with the wicked. Therefore, our Lord says, “So I tell you this, and insist on it in the Lord, that you must no longer live as the Gentiles do, in the futility of their thinking. They are darkened in their understanding and separated from the life of God because of the ignorance that is in them due to the hardening of their hearts. Having lost all sensitivity, they have given themselves over to sensuality so as to indulge in every kind of impurity, and they are full of greed.That, however, is not the way of life you learned.” (Ephesians 4: 17-20)

Then what must we do about our desires? How can we free ourselves from them?

A respected religious leader was asked, “How can a man abandon his desires?” He replied, “Just let go.” Of course, this was a deeply meditated answer. His advice was to just let go, as if getting off a train. The sky won’t fall. And it’s not as difficult as one would imagine it to be, because the train called “desire” is actually fake. The popular Buddhist monk, Pomnyun, said this.

I think the teaching of the Bible is not so different from the wisdom of Pomnyun. Having desire only leads to unhappiness. The wise man will get off the train of desire as quickly as possible, before it drops off a cliff. This is because the final destination is unhappiness and destruction: “Then, after desire has conceived, it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grown, gives birth to death.”(James 1: 15)

Therefore, our Lord says, “You were taught, with regard to your former way of life, to put off your old self, which is being corrupted by its deceitful desires.” (Ephesians 4: 22)

So far, the Bible’s lesson on desire seems not so different from worldly wisdom. It tells us toabandon desire,to just let it go. The sooner the better. But our Lord takes this teaching one step further and talks about a truly saving hope: “To be made new in the attitude of your minds; and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Ephesians 4: 23-24)

Yes, it is important to abandon our desires. This means to stop wanting more, tostop being friends with evildoers, to cease doing evil, and to stoplying. It means doing away with evil desires, such as murder and adultery.

Yes, abandoning such desires is important. However, it is also pivotal that onedoesn’t return to them. Man may surrender his desires for a while, but his utter weakness makes him highly likely to be enslaved by them again. That is why the Lord says, “You must be made new in the attitude of your minds. You must put on a new self.”

What this means is that our perspectives must be renewed through the Holy Spirit working in our hearts. It means that we must be reborn as new beings. We must be reborn as holy and just people who resemble God’s image. This renewing is done the Holy Spirit. This makes it grace.

Our job therefore is to give ourselves to God so that He may do His work in us. We must stop prayingor pursuing faith according to our desires. Instead, we must read Scripture so that we can hear His voice, and we must pray deep, honest prayers. When God heals and renews us, we will be truly free from our desires.

Therefore, our Lord speaks to us:

“You were taught, with regard to your former way of life, to put off your old self, which is being corrupted by its deceitful desires; to be made new in the attitude of your minds; and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Ephesians 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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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 17 ~ 24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욕심은 인간을 약한 존재로 만듭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센 사람, 넘어뜨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대통령일까요? 검찰총장일까요? 참모총장일까요? 인기 연예인일까요? 아니면 종교인일까요?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일까요? 사실 어떤 위치나 직업, 삶의 자세가 강함의 기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신 안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 모자람 느끼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가장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가장 약한 사람, 쉽게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 무언가에 욕심을 내는 사람, 강렬하게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약한 사람입니다. 그가 갖고 싶어 하는 것으로 유혹하면 얼마든지 쓰러지고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돈으로 유혹할 수 있습니다. 인기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인기로 현혹하면 됩니다. 어떤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를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무엇이 있든 없든 자기 안에서 만족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물질이나 자리에 상관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편안함과 완전함을 누리는 사람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좀처럼 무너뜨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은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돈에 대한 목마름이 강한 사람은 여전히 약한 사람입니다. 또다시 돈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은 큰 의미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욕심이 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종종 우리는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던 인물이 낙마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리고 그 뒷면에 항상 욕심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 성적인 탐닉, 자녀에 대한 욕심 등 어떤 이득을 좇아 행하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마주하곤 합니다. 욕심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디모데전서 6:9)

< 욕심은 악한 행실을 부추깁니다. >

그렇다면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가진 꿈과 비전까지 욕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욕심과 비전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 안에 만들어 주신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얼마든지 욕심과 비전을 분별해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그것은 욕심이야.’라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3장을 보면, 악행을 부추기는 욕심에 관한 기사도 나옵니다.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3:4~5)

욕심과 함께 따라오는 현상이 있는데, 바로 ‘악을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언제든지 나를 받아주실 것이라는 기대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이용해 악행을 지속하는 인간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욕심은 ‘거짓’을 말하고 행하는 형태로 드러납니다. 예레미야 8장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예레미야 8:10 중)

선지자와 제사장과 같은 종교인들도 욕심에서 예외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종교인들 속에서 욕심을 더 많이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악을 즐겨 행하고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아가 주님은 미가서를 통해 우리의 또 다른 욕심을 보게 하십니다. 욕심을 중심으로 결탁하는 인간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미가 7장의 말씀입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미가 7:2~3)

욕심을 행하는 삶의 양태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악을 행하는 모습, 형제를 잡기 위해 매복한 자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피를 흘리고자 하는 악한 의도를 품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뇌물을 구하며 결탁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악한 행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욕심은 다툼을 일으키며, 욕망으로 구한 기도는 응답될 수 없습니다. >

주님께서는 야고보서 1장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3~15)

욕심의 의미와 속성을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어도 좋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금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현혹한 뱀의 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에 그만 욕심을 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죽음을 맛봐야 하는 운명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 여러 곳에서 욕심이 인간에게 어떤 불행을 일으키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잠언 28:25)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야고보서 4:1~2 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욕심에서 시작된 매우 중요한 표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툼’입니다. 이 땅에서 끊임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투와 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 가정 안에서, 사회 안에서, 기업이나 직장 안에서 수많은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자신의 이익을 빼앗기지 아니하려는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서로의 욕망과 욕심이 상충될 때 다툼이 벌어지곤 합니다. 모든 분쟁의 자리에는 욕심이 존재합니다. 우리 안에 욕심이 가득하기에, 이 땅에서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앞부분을 보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발생하는 세 가지 문제가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다툼입니다. 한편 이어지는 내용이 매우 흥미로운데, ‘기도’와 관련된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구하는 일’ 곧 ‘기도’에 관한 말씀을 하시며, 그 내용을 정욕과 욕망과 연결하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4:2~3 중)

우리의 기도가 욕심과 정욕과 연결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때 기도를 ‘신앙생활’로 바꿔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욕심에 근거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욕심과 정욕으로 하는 기도는 주님께 응답받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엄중한 선언입니다.

< 욕심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단절시킵니다. >

우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마가복음 4:18~19)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욕심을 갖고 말씀을 들으면 결실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욕심과 욕망을 기초로 한 신앙생활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욕심을 근거로 시작되었다면, 욕망 때문에 시작된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귀한 은혜와 은총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를 보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욕심으로 가득 찬 종교 지도자들이 많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욕심으로 가득 찬 신도들의 모습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기독교인’ 하면 ‘욕심 많은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종교인과 종교단체가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2018년도에는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이 7%였다고 합니다. 2년 후인 올해 다시 똑같은 조사를 했는데, 1%가 하락해 겨우 6%만이 ‘종교인이 종교인답게 살고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은, 욕망에 어떤 악한 삶의 열매가 맺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4절은 성적인 실패를 경고합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이제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욕심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며, 이웃과의 다툼을 일으키고, 진정한 구도자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게 하고, 성적인 타락과 악행, 악한 자와의 결탁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에베소서 4:17~20)

< 욕망의 옛사람을 버리고, 성령께 새사람이 되는 은총을 구합시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욕심을 거둬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한 존경받는 종교인에게 어떤 분이 ‘어떻게 하면 욕심을 버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분의 대답은 단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냥 놓아라.” 성의 없는 대답처럼 들리지만, 사실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고 명상한 대답입니다. 차 문을 열고 가볍게 내리듯이 욕심으로부터 내려오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큰일이 날 것 같아도 생각보다 쉽게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욕심의 열차는 가짜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이며 말입니다. 많은 분이 좋아하는 법륜 스님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욕심과 관련한 성경 말씀이 그분의 깨달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탐구해 봐도 알게 되는 진실이며, 성경 말씀을 통해서도 얻게 되는 진리입니다.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욕망의 열차에서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욕심의 끝에는 반드시 불행과 파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듣는 중에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지.’라고 생각한 분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욕심을 붙잡는 순간, 그 안에는 이미 사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멸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에베소서 4:22)

‘옛 모습’을 내어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까지는 세상의 지혜자들과 같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냥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우 중요한 말씀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3~24)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나오는 것도 중요합니다. 욕망의 걸음을 멈추겠다고 결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시 욕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욕심을 버릴 수 있어도, 또다시 욕심의 노예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을 통해 우리의 관점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거룩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은혜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욕망으로 기도하던 것을 멈추고, 욕심으로 신앙생활 하던 것을 멈추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그 말씀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의 울림을 하나님께 아뢰어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우리를 새 존재로 빚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우리의 살결이 부드러웠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부드러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살이라는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욕심부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붙잡았습니다. 꽉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살결은 거칠어졌고, 우리의 마음도 딱딱해졌습니다. 단단해졌습니다. 움켜쥐려 하는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엉클어진 모습, 볼품없는 모습에서 우리가 벗어나기를 주님께서도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새롭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새로운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며, 새로운 성도가 되기를 원하시고, 새로운 자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요청하십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십시오. (에베소서 4:22~24, 새번역)

2020년 10월 1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욕심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엡 4:17-24)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531장, 526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엡 4:17-24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0월 1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이 세상에서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늘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고 얻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으로 유혹한다면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돈이든, 명예든 그것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더 이상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욕심의 문제입니다. 

 설교의 요약

    그럼 욕심은 왜 문제일까요? 첫째, 욕심은 악행을 부추기고 정당화 합니다 (렘 3:4-5). 둘째, 욕심은 거짓을 말하고 행하게 합니다 (렘 8:10). 셋째로 욕심은 서로 결탁하고 피 흘리게 합니다 (미 7:2-3). 그러므로 욕심은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원인이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습니다. 심지어 야고보서 4장은 우리가 기도마저 욕심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 4:2-3). 그럴 때는 아무런 결실이 없는 신앙생활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막 4:18-19). 

    그렇다면 우리는 이 욕심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세상의 지혜자들, 종교인들도 욕심은 그냥 버리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냥 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새사람을 입을 것”(엡 4:24)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관점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자아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진정 정의롭고 거룩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일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고, 그러므로 은혜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도록 우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욕망으로 기도하기를 멈추고 욕심으로 신앙생활하기를 멈추고, 진정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며, 진정 우리의 깊은 속을 주님께 말씀드리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시고 새롭게 하실 때에, 우리는 진정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에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십시오.” (엡 4:22-24, 새번역).

     

 나누기

 1. 지금 나의 간절한 소원, 꼭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소망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2. 새사람을 입으면, 새로운 자아로 태어나면 내 관점이 바뀌고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 어떻습니까? 아직 내가 붙들고 있는 나의 욕심은 무엇이고 어떻게 여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욕심을 버리고 싶지만,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떠나라는 명령을 주시니 주님의 음성으로 받습니다. 새사람을 입는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세상이 결코 흔들 수 없는 참된 제자로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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