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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사순절마다 주님의 속량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찬송가 254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사순절 수난주간을 보내며 자주 부르는 찬송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 사죄의 은총을 우리는 늘 찬양하며 노래합니다. 254장과 비슷한 찬송들이 많이 있습니다. 252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피 말고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258장 1절도 동일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주어지는 사죄의 은총을 찬양합니다. 우리 힘과 노력으로 주어지는 죄의 용서가 아니라 밖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로서의 죄의 용서를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자 믿음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이 종종 질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정말 모든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살인죄도 용서됩니까? 간음죄도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죄를 계속해서 저지르는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전통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 나오는 자는 어떠한 죄든지 용서받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대답이고 성경이 전해 주는 대답입니다. 요한1서 1장 7절 말씀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서 1장 7절 중)
에베소서 1장 7절 또한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1장 7절)
베드로전서 1장 19절도 우리가 대속함을 받은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고 분명하게 전해 줍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는 이사야 말씀은 죄의 용서의 범위와 그 능력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사죄의 은총, 이 속량의 은혜는 어떻게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옵니까?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됩니까? 요한1서 1장 9절이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서 1장 9절)
주님 앞에 나와서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이 사죄함의 은총이 우리에게 현재화 될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은 믿는 우리들에게 자유와 해방감을 줍니다. ‘나 같은 죄인도 살려 주시는구나’ 하는 믿음을 가지고 기쁨으로 새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교도소를 10번, 20번 끊임없이 드나들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고는 새로운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살인자가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서 새 사람이 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고,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때로 죄 용서에 대한 믿음이 그리스도인을 비난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이 탈선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사죄의 은총에 대한 남용과 잘못된 적용이 부작용을 낳은 것입니다. 언젠가 안티 기독교 채널을 통해 우연히 접한 이야기입니다. 한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예화로 들면서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학교에 갔는데 짝꿍이 가진 연필이 너무도 탐이 났습니다. 며칠 동안 연필만을 보던 아이는 결국 유혹에 넘어갔고 연필을 훔치게 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양심의 가책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자 아이가 교회로 가서는 예수님께 용서를 빕니다. 방송은 그다음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아이는 그렇게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다음부터는 훔친 연필을 양심의 가책 없이 편하게 사용했다 ···’
방송을 들으면서 마음이 참 불편했습니다. 기독교를 폄하하려고 끼워 맞추는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혹시나 이 모습이 세상 사람들이 보고 있는 기독교가 아닐까 싶어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에 문제 제기를 하는 영화도 있죠. 밀양이라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살인을 행하고도 당사자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오면서 기독교의 문제점이 지적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기독교의 믿음이 사회 질서에 반하는 체계입니까? 그리스도인은 환상에 사는 듯, 몽환 속에 사는 듯 ‘나는 용서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마음대로 살아가는 부적절한 존재들입니까? 다시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까? 어떠한 죄를 지었든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부터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까? 한 어린아이 이야기가 보여 주었듯이 사회에 낳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신앙을 포기하거나 수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매우 중요한 복음이자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놓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은 틀림없지만 사죄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을 얻고 누리는 동안 간과한 점이 있습니다.>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죄의 은총과 그 능력을 강조하는 일에 집중한 나머지 매우 중요한 전제 조건을 잊어버리곤 하였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셔서 사죄의 은총에 선행하는 조건을 보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의 레위기서 말씀입니다. 레위기서 안에는 많은 제사가 소개됩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그리고 화목제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구약의 모든 제사를 단번에 완성하신 사건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제사를 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온전한 제사의 그림자를 보곤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은 속건제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죄를 회개하며 드리는 제사입니다. 예를 들면 성전에 들어갔다가 하나님의 물건에 손해를 입힌 경우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한 일로 인해 누군가 손해를 입게 될 때 드리던 제사였습니다. 레위기 6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 주에게 성실하지 못하여 죄를 지으면,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담보물을 속이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이웃의 것을 강제로 빼앗거나,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줍고도 감추거나, 거짓 증언을 하거나, 사람이 하면 죄가 되는 일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하면, 그래서 그가 그런 죄를 짓고 유죄판결을 받으면, 그는 자기가 강도질을 하여 훔친 물건이든, 강제로 빼앗아서 가진 물건이든, 맡고 있는 물건이든,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든 (레위기 6장 1~4절, 새번역)
다시 말하면 거짓으로 인해 물건을 가졌거나, 물건을 훔쳤을 때에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6절 이후에 나옵니다.
그는 주에게 바치는 속건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 가야 한다 … 제사장이 주 앞에서 그의 죄를 속하여 주면, 그는 사람이 하면 죄가 되는 일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하여 지은 그 죄를, 용서받게 된다. (레위기 6장 6~7절 중, 새번역)
구약의 속건제사는 제사장에게 다가가서 용서를 구하고 속건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사건과 연결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도둑질, 거짓 증거, 간음죄를 불문하고 죄를 지은 누구나 참되고도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님께 나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주님의 보혈이 용서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죄의 은총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속건제사를 드리기 전 해결해야 할 선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모두 물어내야 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모자람이 없이 다 갚아야 할 뿐 아니라, 물어내는 물건값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값을 보태어 본래의 임자에게 갚되, 속건제물을 바치는 날로 갚아야 한다. (레위기 6장 5절 중, 새번역)
레위기 제사법은 이웃과 발생한 죄에 대해 제사를 드리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선행 조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루라는 명령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도 “모두 물어내야 한다. 모자람이 없이 다 갚아야 할 뿐만 아니라 물건 값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임자에게 주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스스로 범한 죄악된 행동에 대해 마땅한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로만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문제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했습니다. 대가를 치룬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속건제사를 드렸습니다. 속건제사는 손해를 물어내는 일과 합하여서 계산될 수 없었습니다. 제사는 제사이고, 손해를 물어내는 일은 또 다른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해서 주님의 용서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값싼 은혜만을 생각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마땅한 대가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연필을 훔쳤던 아이의 이야기를 다시 해 봅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해야 할 태도는 이렇습니다. 훔친 연필을 주인에게 돌려줄 뿐만 아니라 미안함을 표시하고, 그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선물을 주면서 뉘우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 나와서 회개의 기도를 드릴 수 있을 때 주님 앞에서 용서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해석은 자칫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듯 보여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잘못을 용서받고자 할 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영역이 있고, 사람이 해야 할 영역이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의 피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예수의 피의 능력이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예수의 피가 더욱더 고귀하게 사용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이고 그분의 명령인 것입니다.
이 조건은 구약의 조건일 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는 사라져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수께 죄를 고백하면 무조건 죄를 용서받는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인간의 용서와 화해의 우선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장 23~24절)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는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한 사람에게 화해하고 용서를 구한 다음에 제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화해가 먼저요,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 먼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태복음 6장 12절)
“하나님,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탄원 기도 이전에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일이 우선인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난 죄를 해결하는 일이 먼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늘 암기하고 나누는 요한1서 말씀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서 1장 7절)
우리는 이 말씀의 뒷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외우고 다닙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런데 그 앞에 어떤 내용이 등장합니까?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후에 예수의 피가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피, 예수 보혈의 능력, 사죄의 능력은 어디에서 발현됩니까? 우리가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며 살고 있을 때, 사죄의 은총은 현실이 되고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치르신 온전한 제사를 받기 위해 용서하고 용서받는 사순절이 되길 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은 수난주간입니다. 그 절정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모든 제사를 하나로 농축하고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대신해 지신 십자가 위에서 사죄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를 한없이 기뻐하며 감사하는 절기가 사순절이고 수난주간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순절 기간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우리 죄를 주님께 아뢰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물어내는 일입니다. 오분의 일을 더하여 갚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말한 일이 생각나거든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십자가를 준비하기 위한 선제 조건입니다. 이 준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사죄의 은총을 진정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두 물어내야 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모자람이 없이 다 갚아야 할 뿐 아니라, 물어내는 물건값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값을 보태어 본래의 임자에게 갚되, 속건제물을 바치는 날로 갚아야 한다. (레위기 6장 5절 중,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사죄의 은총을 말하기 전에 주님은 먼저 명령하십니다. “모두 갚아야 한다.” 사실 이 명령은 매우 무거운 명령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에게 갚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에게도 갚아야 것이 있습니다. 교회의 교우들 간에도 신세지고 잘못한 것들이 많이 있고 이웃 간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참으로 잔인해 보이시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모두 다 갚아야 한다.”
여러분, 이 말씀은 준엄한 말씀입니다. 어쩌면 우리를 사지로 몰아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복음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할 때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진정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서로 용서받을 수 있을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사죄의 은총이 효력을 발하고 현실화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주님의 초청입니다. 주님의 자비로우신 초대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이 초대에 흔쾌히 응하고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기다리는 복된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The One Condition for Forgiveness
Leviticus 6:1-7
The verses of the hymn that we just sang, “I Hear Thy Welcome Voice,” are as follows:
I hear Thy welcome voice
That calls me, Lord, to Thee
For cleansing in Thy precious blood
That flowed on Calvary.
I am coming, Lord;
Coming now to Thee:
Wash me, cleanse me, in the blood
That flowed on Cal-va-ry.
(Verse 1 of “I hear Thy welcome voice” )
We sing hymns such as this often during Lent and Passion Week. We always remember the cross, the precious blood of Jesus, and the forgiving grace that flows from that blood.
There are many such hymns as the above which sing of His blood, including “What Can Wash Away My Sin” and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What can wash away my sin?
Nothing but the blood of Jesus;
What can make me whole again?
Nothing but the blood of Jesus.
Oh! precious is the flow
That makes me white as snow;
No other fount I know,
Nothing but the blood of Jesus.
(Verse 1 of “What Can Wash Away My Sin”)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Drawn from Immanuel’s veins;
And sinners, plunged beneath that flood,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And sinners, plunged beneath that flood,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Verse 1 of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Yes, we praise the forgiving grace given to us through the precious blood of Jesus. The problem of sin cannot be solved by our might, but is solved by God’s grace as a gift. This is our hope and faith.
Some people ask these questions: “Does the blood of Christ really have the power to forgive all our sins? Even murder? Even the murder of tens of people? What about adultery? What about stealing—not once, but multiple times? Can all this be forgiven?”
The conventional answer of Christians is “Yes.”“Yes, there is no sin in the world that cannot be forgiven by the precious blood of Jesus. Anyone who comes to the Lord will be forgiven, no matter his sin.” Isn’t this right?
We can say this confidently because the Bible confirms this: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his Son, purifies us from all sin.” (1 John 1: 7)
“In hi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sins, in accordance with the riches of God’s grace.” (Ephesians 1:7)
First Peter also clearly says that we have been saved“wit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 lamb without blemish or defect.” (1 Peter 1: 19)
The following verse from Isaiah also explains the scope and power of forgiveness: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they shall be like wool.” (Isaiah 1: 18)
Then how can we make this precious forgiving grace ours?
First John says,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and will forgive us our sins and purify us from all unrighteousness.”(1 John 1: 9)
Therefore, we believe that all those who come to Christ will have God’s forgiving grace. And we confess this.
Such a faith gave believers unlimited freedom and liberation. However it has also often led to deviations, causing many adverse effects resulting from abuses or misapplications of God’s forgiving grace.
I once heard a story about the hypocritical behavior of Christians told by an anti-Christian onTV. There was a little Christian girl who envied her friend’s pencil. So one day she stole it. She used it well for some time, but after a few days she felt guilty. So what did she do? She went to church and prayed to Jesus for forgiveness. With tears. What happened next? This girl was able to use that stolen pencil with a peace in heart, without feeling guilty. After telling the story, the anti-Christian fiercely criticized Christians.
I was upset that such a story would be told on TV. The story seemed to be made up for the purpose of condemning Christians. But, after mulling it over, I realized that this may be how non-Christians perceive Christians.
The movie “Secret Sunshine” was a major complaint against Christianity’s problems. In the movie, the murderer, who later became a Christian, faced the victim’s mother with a ruthless confidence, instead of repentance, revealing to us a serious problem of Christians.
Then it is really the case that Christianity’s faith system is anti-social? Let’s go back to the first question. Does the blood of Christ really forgive people of all sins? Can even the most heinous, sinful acts be forgiven by the grace of God and Christ’s blood?
Despite the adverse social effects, abuses, and problems, we still cannot give up or alter our faith which proclaims that the precious blood of Jesus forgives all sins. However, there is an importance catch. Yes, Christ’s blood has the power to forgive all sins, but we must do one thing to receive that forgiving grace.
The Protestant Church has often been remiss in beingmore clear about this important precondition for the forgiveness of sins due to its emphasis on the sheer grace that forgives all sins through Jesus Christ.
I pray that God will open our eyes today so that we will understand this one condition for Hisforgiving grace which has often beenlooked over.
We understand that the crucifixion of Christ was a once-for-all sacrifice for all sacrifices in the Old Testament. So whenever we read about the sacrifices in the Old Testament, we see a shadow of the perfect sacrifice to come through Jesus. Today’s passage can be seen from this perspective, too.
Today’s passage from Leviticus is about the guilt offering which was a sacrifice given to God when a damage was done or a loss incurred in human-human or human-God relationships. For example, if a person damaged an item in the temple while entering it, how must he/she restore the damage done to something that belonged to God? When misconducts between people incur a loss, how can that loss be restored, and how can one receive God’s forgiveness?
This is how chapter 6 of Leviticus starts:
“The Lordsaid to Moses: ‘If anyone sins and is unfaithful to the Lordby deceiving a neighbor about something entrusted to them or left in their care or about something stolen, or if they cheat their neighbor, or if they find lost property and lie about it, or if they swear falsely about any such sin that people may commit— when they sin in any of these ways and realize their guilt, they must return what they have stolen or taken by extortion, or what was entrusted to them, or the lost property they found,” (Leviticus 6: 1-4)
How can such a person be forgiven? Verse 6 and after tells us how:
“And as a penalty they must bring to the priest, that is, to the Lord, their guilt offering, a ram from the flock, one without defect and of the proper value. In this way the priest will make atonement for them before the Lord, and they will be forgiven for any of the things they did that made them guilty.” (Leviticus 6: 6-7)
How can we connect these verses from the Old Testament to the forgiveness of sins that comes from Christ? We may interpret that anyone, including thieves, perjurers, adulterers, and so on, shall receive forgiveness by the precious blood of Jesus, if only he/she comes to Christ, the perfect Sacrifice, confesses his/her sins, and asks for forgiveness.
However, there is one critical precondition to this guilt offering, which must come before thegiving of the sacrifice. Let’s look at verse 5: “They must make restitution in full, add a fifth of the value to it and give it all to the owner on the day they present their guilt offering.” (Leviticus 6: 5)
The sacrificial laws in Leviticus state one prerequisite to offering a guilt sacrifice for sins occurring between the sinner and his/her neighbor. The sinner himself/herself shall pay the price for his/her sin. The Bible clearly states that restitution must be made fully for all losses and damages. Furthermore, the sinner must add a fifth of the value and give it to the owner. This is God’s will.
When the Israelites resolved problems arising between a sinner and his/her neighbors, they did not just do it by offering a sacrifice to God. There was a precondition to that sacrifice: the sinner had to pay the price or give the adequate compensation for the wrong committed. Only then could he/she offer a guilt sacrifice to God.
What is critical is that the guilt offering and the restitution for damages were separate.
Perhaps we have held misguided views on the Lord’s forgiveness because we failed to properly understand the will of God. If we have done so, must look back on ourselves. God clearly commanded that we must make the full and proper restitution for the sin committed.
Let’s go back to the story of the girl. A Christian should have done this: Return the pencil to the friend, apologize, even give a gift to appease the friend, show truerepentance, and then come to God and pray inrepentance. Only then willthat Christian be forgiven before the Lord, no matter the sin.
Such an interpretation is sometimes misunderstood because it seemingly undermines the power of Christ’s blood. However, the Bible clearly tells us the above. The important thing is that when we seek forgiveness, there is a forgiveness that we must receive from God, but, at the same time, there are problems to be sorted out between people before we get that forgiveness from God.
Of course, this does not mean that we cannot receive forgiveness if those problems are notresolved. Jesus declared that the kingdom of God was upon the thief crucified next to Him. Likewise, God’s forgiving grace may be granted in an overwhelming way. Yet, God desires, most of all, that His forgiveness will be given in tandem with our act of reconciliation.
This is not because the blood of Jesus lacks power, but it is God’s command to us that makes the blood more holy and more precious. Some argue that this precondition applies only to the Old Testament and must be done away with under the gospel of Jesus Christ. But even our Lord Himself said that the forgiveness given by fellow human beings and reconciliation with them must come first.
“Therefore, if you are offering your gift at the altar and there remember that your brother or sister has something against you,leave your gift there in front of the altar. First go and be reconciled to them; then come and offer your gift.” (Matthew 5: 23-24)
What does this mean? Jesus is saying that forgiveness from and reconciliation with a brother is necessaryprior to offering Him a sacrifice. This principle is also seen in the Lord’s Prayer, the prayer that our Lord Himself prayed: “And forgive us our debts,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Matthew 6: 12)
The above is the Lord’s teaching that we will enjoy the Lord’s forgiving graceby first having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among us.
The Lord also says in 1 John,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his Son, purifies us from all sin.”(1 John 1: 7)
Where does the power of the blood of Jesus and His forgiveness come from? When do they come? They come when we come out of darkness and walk in the light. Then,Hisforgiving grace becomes a reality and a power.
Dear Church, it is now Lent. The last week of Lent is Passion Week. At the climax of it all is the cross of Christ. Lent is a season to remember the grace of salvation and thank the Lord for dying on the cross for our sins which can never be cleansed with our own strength.
We are now preparing to enter that place of grace during this 40-day period. So what should we be doing now? Yes, purifying our hearts and confessing our sins to God are important. But there is one more thing that must be done in order to enjoy the grace of the cross, the true grace that the Lord wants to give us.
We must make restitution for our wrongs. We must add a fifth of the value to it, too. And if we remember anyone who has anything against us, we mustapproach that person, ask for his/her forgiveness, and be reconciled. To receive God’s grace, we must first confess to each other our sins and ask for forgiveness.
Through such preparations, we can make the Lord’s compassionate and forgiving grace and God’s true forgiveness ours.
God speaks to us today:“They must make restitution in full, add a fifth of the value to it and give it all to the owner on the day they present their guilt offering.” (Leviticus 6: 5)
레위기 6: 1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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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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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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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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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훔친 것이나 착취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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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6
그는 또 그 속건제물을 여호와께 가져갈지니 곧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고 갈 것이요
7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
<그리스도인은 사순절마다 주님의 속량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찬송가 254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사순절 수난주간을 보내며 자주 부르는 찬송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 사죄의 은총을 우리는 늘 찬양하며 노래합니다. 254장과 비슷한 찬송들이 많이 있습니다. 252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피 말고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258장 1절도 동일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주어지는 사죄의 은총을 찬양합니다. 우리 힘과 노력으로 주어지는 죄의 용서가 아니라 밖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로서의 죄의 용서를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자 믿음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이 종종 질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정말 모든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살인죄도 용서됩니까? 간음죄도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죄를 계속해서 저지르는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전통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 나오는 자는 어떠한 죄든지 용서받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대답이고 성경이 전해 주는 대답입니다. 요한1서 1장 7절 말씀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서 1장 7절 중)
에베소서 1장 7절 또한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1장 7절)
베드로전서 1장 19절도 우리가 대속함을 받은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고 분명하게 전해 줍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는 이사야 말씀은 죄의 용서의 범위와 그 능력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사죄의 은총, 이 속량의 은혜는 어떻게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옵니까?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됩니까? 요한1서 1장 9절이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서 1장 9절)
주님 앞에 나와서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이 사죄함의 은총이 우리에게 현재화 될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은 믿는 우리들에게 자유와 해방감을 줍니다. ‘나 같은 죄인도 살려 주시는구나’ 하는 믿음을 가지고 기쁨으로 새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교도소를 10번, 20번 끊임없이 드나들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고는 새로운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살인자가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서 새 사람이 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고,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때로 죄 용서에 대한 믿음이 그리스도인을 비난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이 탈선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사죄의 은총에 대한 남용과 잘못된 적용이 부작용을 낳은 것입니다. 언젠가 안티 기독교 채널을 통해 우연히 접한 이야기입니다. 한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예화로 들면서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학교에 갔는데 짝꿍이 가진 연필이 너무도 탐이 났습니다. 며칠 동안 연필만을 보던 아이는 결국 유혹에 넘어갔고 연필을 훔치게 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양심의 가책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자 아이가 교회로 가서는 예수님께 용서를 빕니다. 방송은 그다음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아이는 그렇게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다음부터는 훔친 연필을 양심의 가책 없이 편하게 사용했다 ···’
방송을 들으면서 마음이 참 불편했습니다. 기독교를 폄하하려고 끼워 맞추는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혹시나 이 모습이 세상 사람들이 보고 있는 기독교가 아닐까 싶어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에 문제 제기를 하는 영화도 있죠. 밀양이라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살인을 행하고도 당사자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오면서 기독교의 문제점이 지적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기독교의 믿음이 사회 질서에 반하는 체계입니까? 그리스도인은 환상에 사는 듯, 몽환 속에 사는 듯 ‘나는 용서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마음대로 살아가는 부적절한 존재들입니까? 다시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까? 어떠한 죄를 지었든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부터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까? 한 어린아이 이야기가 보여 주었듯이 사회에 낳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신앙을 포기하거나 수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매우 중요한 복음이자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놓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은 틀림없지만 사죄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을 얻고 누리는 동안 간과한 점이 있습니다.>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죄의 은총과 그 능력을 강조하는 일에 집중한 나머지 매우 중요한 전제 조건을 잊어버리곤 하였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셔서 사죄의 은총에 선행하는 조건을 보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의 레위기서 말씀입니다. 레위기서 안에는 많은 제사가 소개됩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그리고 화목제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구약의 모든 제사를 단번에 완성하신 사건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제사를 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온전한 제사의 그림자를 보곤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은 속건제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죄를 회개하며 드리는 제사입니다. 예를 들면 성전에 들어갔다가 하나님의 물건에 손해를 입힌 경우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한 일로 인해 누군가 손해를 입게 될 때 드리던 제사였습니다. 레위기 6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 주에게 성실하지 못하여 죄를 지으면,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담보물을 속이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이웃의 것을 강제로 빼앗거나,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줍고도 감추거나, 거짓 증언을 하거나, 사람이 하면 죄가 되는 일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하면, 그래서 그가 그런 죄를 짓고 유죄판결을 받으면, 그는 자기가 강도질을 하여 훔친 물건이든, 강제로 빼앗아서 가진 물건이든, 맡고 있는 물건이든,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든 (레위기 6장 1~4절, 새번역)
다시 말하면 거짓으로 인해 물건을 가졌거나, 물건을 훔쳤을 때에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6절 이후에 나옵니다.
그는 주에게 바치는 속건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 가야 한다 … 제사장이 주 앞에서 그의 죄를 속하여 주면, 그는 사람이 하면 죄가 되는 일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하여 지은 그 죄를, 용서받게 된다. (레위기 6장 6~7절 중, 새번역)
구약의 속건제사는 제사장에게 다가가서 용서를 구하고 속건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사건과 연결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도둑질, 거짓 증거, 간음죄를 불문하고 죄를 지은 누구나 참되고도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님께 나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주님의 보혈이 용서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죄의 은총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속건제사를 드리기 전 해결해야 할 선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모두 물어내야 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모자람이 없이 다 갚아야 할 뿐 아니라, 물어내는 물건값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값을 보태어 본래의 임자에게 갚되, 속건제물을 바치는 날로 갚아야 한다. (레위기 6장 5절 중, 새번역)
레위기 제사법은 이웃과 발생한 죄에 대해 제사를 드리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선행 조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루라는 명령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도 “모두 물어내야 한다. 모자람이 없이 다 갚아야 할 뿐만 아니라 물건 값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임자에게 주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스스로 범한 죄악된 행동에 대해 마땅한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로만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문제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했습니다. 대가를 치룬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속건제사를 드렸습니다. 속건제사는 손해를 물어내는 일과 합하여서 계산될 수 없었습니다. 제사는 제사이고, 손해를 물어내는 일은 또 다른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해서 주님의 용서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값싼 은혜만을 생각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마땅한 대가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연필을 훔쳤던 아이의 이야기를 다시 해 봅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해야 할 태도는 이렇습니다. 훔친 연필을 주인에게 돌려줄 뿐만 아니라 미안함을 표시하고, 그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선물을 주면서 뉘우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 나와서 회개의 기도를 드릴 수 있을 때 주님 앞에서 용서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해석은 자칫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듯 보여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잘못을 용서받고자 할 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영역이 있고, 사람이 해야 할 영역이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의 피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예수의 피의 능력이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예수의 피가 더욱더 고귀하게 사용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이고 그분의 명령인 것입니다.
이 조건은 구약의 조건일 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는 사라져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수께 죄를 고백하면 무조건 죄를 용서받는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인간의 용서와 화해의 우선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장 23~24절)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는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한 사람에게 화해하고 용서를 구한 다음에 제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화해가 먼저요,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 먼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태복음 6장 12절)
“하나님,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탄원 기도 이전에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일이 우선인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난 죄를 해결하는 일이 먼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늘 암기하고 나누는 요한1서 말씀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서 1장 7절)
우리는 이 말씀의 뒷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외우고 다닙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런데 그 앞에 어떤 내용이 등장합니까?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후에 예수의 피가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피, 예수 보혈의 능력, 사죄의 능력은 어디에서 발현됩니까? 우리가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며 살고 있을 때, 사죄의 은총은 현실이 되고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치르신 온전한 제사를 받기 위해 용서하고 용서받는 사순절이 되길 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은 수난주간입니다. 그 절정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모든 제사를 하나로 농축하고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대신해 지신 십자가 위에서 사죄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를 한없이 기뻐하며 감사하는 절기가 사순절이고 수난주간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순절 기간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우리 죄를 주님께 아뢰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물어내는 일입니다. 오분의 일을 더하여 갚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말한 일이 생각나거든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십자가를 준비하기 위한 선제 조건입니다. 이 준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사죄의 은총을 진정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두 물어내야 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모자람이 없이 다 갚아야 할 뿐 아니라, 물어내는 물건값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값을 보태어 본래의 임자에게 갚되, 속건제물을 바치는 날로 갚아야 한다. (레위기 6장 5절 중,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사죄의 은총을 말하기 전에 주님은 먼저 명령하십니다. “모두 갚아야 한다.” 사실 이 명령은 매우 무거운 명령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에게 갚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에게도 갚아야 것이 있습니다. 교회의 교우들 간에도 신세지고 잘못한 것들이 많이 있고 이웃 간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참으로 잔인해 보이시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모두 다 갚아야 한다.”
여러분, 이 말씀은 준엄한 말씀입니다. 어쩌면 우리를 사지로 몰아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복음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할 때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진정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서로 용서받을 수 있을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사죄의 은총이 효력을 발하고 현실화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주님의 초청입니다. 주님의 자비로우신 초대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이 초대에 흔쾌히 응하고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기다리는 복된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021년 3월 14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용서를 위한 단 한 가지 조건” (레 6:1-7)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54장, 283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레 6:1-7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3월 14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사순절과 수난주간을 보낼 때면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더 자주 묵상하곤 합니다. 어떤 분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정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대답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에게 무한한 자유와 해방감을 줍니다.
설교의 요약
그런데 세상은 영화 <밀양>과 ‘안티방송’등을 통해 이런 보혈의 능력을 비상식적이고 반사회적인 것으로 폄하할 때가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당사자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만 부각시켜 기독교의 신앙을 파렴치한 것으로 각색하곤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정말 세상이 말하는 이런 믿음 체계를 가지고 있는 건가요? 앞서 말씀드린 사회적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는 우리의 신앙을 수정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어떠한 죄든지 용서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단 한 가지, 우리가 그 사죄의 은총을 얻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제사(예배)를 드리기 전에 해야 할 한 가지입니다. “모두 물어내야 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모자람이 없이 다 갚아야 할 뿐 아니라, 물어내는 물건 값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값을 보태어 본래의 임자에게 갚되, 속건 제물을 바치는 날로 갚아야 한다” (레 6:5, 새번역). 레위기의 제사법은 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가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주에게 바치는 속건 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한다.” 레 6:6, 새번역). 성경은 이웃에게 가한 죄를 속죄 받기 위해 제사를 드리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저지를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루는 일입니다. 모두 물어내는 것입니다 (레 6:5).
이러한 해석은 자칫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듯 보여서 오해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용서받고자 할 때, 하나님께 받아야 하는 영역이 있고, 그 전에 사람들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 예배(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서로의 용서와 화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뜻은 산상수훈(마 5:23-24)에도, 주기도문(마 6:12)에도, 요한 일서(1:7)에도 나타납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죄를 주님께 아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저지른 잘못을 ‘물어내는 것’입니다. 그 때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나누기
1. 사순절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 자주 아뢰는 나의 죄는 무엇입니까?
2. 나는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이웃에게 물어낸 적이 있습니까?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십자가에서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오나 주님, 내가 이웃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이웃과 화해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를 돌아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