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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백부장 그가 병든 하인을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 말씀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실 때의 일입니다. 그때에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 간청하였습니다. 당시 가버나움에는 헤롯 안티파스가 파견한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비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군대였죠. 그러니 이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인이거나 또는 이방인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와서 간청합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간청에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이 숨겨 있습니다. 우선 이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이 병들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 병은 중풍병, 다시 말하면 움직일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그는 중풍병 걸린 자신의 종이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치 자신이 아픈 듯 말입니다.
백부장의 말에는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이 숨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백부장인데 그가 자신의 하인을 위하여 왔다는 점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종이나 하인은 재산으로 취급받던 시대였습니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시대였죠. 그런데 재산과 같이 여겨지던 종이 그만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고,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얼마든지 처단하거나 죽일 수도 있고 아니면 팔아넘기거나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백부장은 이 종을 귀하게 여깁니다. 정말 귀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저 동조하는 마음으로 ‘참, 안됐다..’ 생각하고 두어도 될 것 같은데 백부장은 예수님께 희망을 걸며 나아옵니다.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한편으로 그는 굉장히 겸손해 보입니다. 당시 유대 민족은 피지배 민족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피지배 민족 중 한 사람이었는데, 지배 계급이었던 로마 군인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피지배 계급 중 한 사람인 예수님 앞에서 간청하는 장면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 점에서 백부장의 모습은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는 인격적이었고, 동정심 많은 사람이었고, 또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나아가서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간청하는 그를 향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태복음 8장 7절)
독일성서공회가 발행한 주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다고 제안합니다.
꼭 내가 가서 그를 낫게 해야 한다는 말이냐?
이 문장처럼 의문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흐름상 더 맞아 보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러워 보이죠. 그러나 해석이 어떻든 예수님 말씀 뒤에 따라오는 백부장의 말은 매우 놀랍습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마태복음 8장 8절)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일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을 알고 있었던 백부장은 유대인 예수님께서 이방인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면서 백부장은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매우 재미있는 말씀을 합니다. 군대 문화에 젖어 있는 그가 군대의 방식으로 예수님께 말씀드리며, 자신과 자신의 하인을 위해 명령을 내려 주시기만을 원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죠.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마태복음 8장 9절)
당시 군대 문화는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오늘날도 그렇습니다만은 상명하복 아니겠습니까? 왕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군대 장관이 위임받고 이것을 천부장에게, 그가 다시 백부장에게 위임하면서 이들의 명령에 따라 군대는 움직였습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인 것이죠. 이것이 바로 군대 문화입니다. 이 문화를 잘 알고 있고 또 익숙해 있던 백부장이 예수님께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랫사람에게 가라면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니, 우리 같은 아랫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한마디로 “그저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하는 말씀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백부장의 고백에는 아주 중요한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지금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고 이 땅에 내려오신 분으로 이해하는 듯합니다. 자신이 로마 황제의 권한을 가지고 유대 땅을 다스리는 것처럼, 그의 말 한마디가 법이 되고 실행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 권한을 위임받고 오신 예수님이시니 말씀만 하시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백부장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처럼 백부장의 고백은 군대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그의 믿음이 아주 잘 나타납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 칭찬해 주시고는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태복음 8장 10절)
이스라엘 중 어느 누구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는데, 이방인에게서 이와 같은 믿음을 보셨다는 칭찬이었습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8장 13절 중)
이 이야기는 상당히 많은 신앙적인 교훈을 알려 줍니다. 로마의 군인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명령만 하신다면,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신다면 일은 이루어집니다. 그 일은 진행됩니다.”라고 믿으며 정면에서 말하죠.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이고 하나님의 대행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이 땅에서 이루어집니다.”라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중보 기도의 가능성과 가치 또한 알고 배우게 됩니다.
성경은 백부장의 하인이 낫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고침받는 내용이죠.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를 입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의 이야기 속 하인은 어떻습니까? 그는 예수님께 나오지도 않았고, 심지어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를 수도 있었겠다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서 그가 구원을 받고 나음을 얻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기도 합니다. 즉 백부장의 이야기는 백부장의 믿음이 하인의 병을 낫게 했다는 중보의 가능성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을 매우 귀하게 여깁니다. 자신을 구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믿음, 예수님께 칭찬받을 만한 믿음, 이 믿음을 보며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제목을 달지요. ‘백부장의 믿음’이라는 제목입니다. 어쩌면 모두가 백부장을 부러워하는 듯 읽어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백부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십니까? 이 말씀을 읽은 후에 ‘아, 나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겠다.’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져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시겠죠? 좋은 결론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결론도 가능하겠지요. ‘아, 나는 믿음이 부족하니까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줄 만한 좋은 사람을 만나야겠다. 그렇게라도 내가 구원을 받아야겠다. 은혜를 입어야겠다.’ 이렇게 결단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이 백부장의 이야기는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나 자신이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단 아니면, 나는 부족하지만 믿음 좋은 사람 곁에서 은혜를 입어야겠다는 결단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목회자로서 저는 큰 부담이 되곤 했습니다. 나는 과연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 있는지, 예수님께 칭찬받을 만한 믿음의 사람인지,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구원할 만큼 중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인지 질문을 자주 던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말씀은 오랫동안 복음이 되지 못했습니다. 부담스러운 말씀이었죠. “너도 백부장처럼 되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그래, 나도 그와 같이 되어야지.” 결단하지만 돌아서고 나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며 자괴감이 들 때도 참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말씀이 나에게 복음이 될까, 이 말씀이 나에게 은혜가 될까, 해방의 메시지가 될까 하는 관점에서 말씀을 읽고 또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꼭 보셔야 하셨을까요?>
‘과연 하인이 낫기 위해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여 주어야만 했을까?’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에 고쳐 주신 걸까?’ ‘고침받은 하인은 백부장의 믿음에 대한 대가였을까?’ 언뜻 보면 그도 그럴 것 같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하인의 믿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시지 않으셨을까?’하는 점입니다. 하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몰랐을 수도 있죠. 그럼에도 믿음 없을 수 있던 하인에게 은혜가 도달합니다. 이 점을 묵상하며 말씀을 조금 더 넓혀서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은 5~7장에 걸쳐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이 이루어진 뒤에 시작됩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첫 번째로 나병 환자를 만나시고 고쳐 주시죠. 그 이야기가 마태복음 8장 2절에 나옵니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이야기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마태복음 8장 2절 중)
나병 환자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누구신지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는 믿음이었죠. 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니다. 부정한 나병 환자에게는 손을 대면 안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시고 고쳐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백부장 이야기입니다. 백부장 이야기가 끝난 후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시고는 열병을 앓고 있던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16절에는 이런 말씀도 등장합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태복음 8장 16~17절)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 주셨고,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고, 그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시야를 조금 넓혀서 마태복음 8장 전체를 보니깐 이야기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얘기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는 나병 환자였죠.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만나신 사람은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고 환자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하인의 병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세 번째는 베드로의 장모였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믿음의 고백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네가 믿느냐?” 묻지도 않으셨고, 베드로의 장모가 믿음의 고백을 하며 병을 고쳐 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저 그녀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원칙이나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병든 자, 모든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셨다는 기록만이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참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8장 23절 이후에는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는 예수님, 8장 28절 이후에는 귀신 들린 사람을 쫓아내시고 치유하시는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9장에도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죠. 또 다른 중풍병자가 나타납니다. 그가 침상에 들린 채로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도 사하여 주시며 고쳐 주셨습니다. 9장 18절 이후의 말씀은 회당장의 딸을 고쳐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가운데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잠깐 대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예수님 모르게 이 일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여인에게 능력이 나타났고, 혈루병이 고침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사이 회당장의 딸은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그를 다시 살려 내십니다. 9장 27절에는 맹인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9장 32절에서는 말 못하는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한발 물러나서 8장과 9장을 쭉 살펴보다 보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백부장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찾아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주님 앞에 나온 모든 자들을 고쳐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가 믿음을 고백하든 아니면 믿음을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라도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나아와 주님께 고쳐 달라고 요청하든 요청하지 않든, 주님은 이 땅의 모든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며 연약한 자들을 고쳐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마태복음 8~9장이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이야기를 읽어 가다 보면 그가 가진 믿음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믿음이 있어야 큰일을 할 수 있겠구나. 믿음이 있어야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겠구나. 믿음이 있어야 우리가 주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할 만큼 백부장의 이야기는 그의 믿음을 주목해서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고 계시는 예수님의 사역 중 한 부분에 해당할 뿐입니다.
나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낫게 하시는 예수님, 중풍병을 앓고 있는 하인에게 말씀만으로 그를 낫게 하시는 예수님, 믿음의 고백도 제대로 못하고 열병으로 누워 있었던 베드로의 장모에게 손을 내밀어 고쳐 주시는 예수님, 익명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한 사람도 그저 보내지 아니하시고 고쳐 주시는 예수님, 지나가는 길에 손만 내밀어도 고쳐 주시는 예수님, 죽었어도 살리시는 예수님, 침상에 눕힌 채로 사람들에게 이끌려 나오는 사람도 고쳐 주시는 예수님, 보지 못하는 자도 고치시는 예수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도 고쳐 주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타나는 것이죠. 그의 믿음이 드러나 보이기는 하지만 백부장의 이야기 역시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백부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 더 넓게 보아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나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지’하고 결단을 내리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고치시기 위하여 오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우리를 고치시기를 원하십니다. 직접 찾아오시고, 혹 다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찾아오시기도 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시기도 하시고, 믿음이 부족해도 우리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복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병든 사람, 아픈 사람,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믿음이 있는 사람도 오십시오. 믿음이 부족한 사람도 오십시오. 예수께 나오는 모든 사람은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감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께로 나오십시오. 마태복음 8장과 9장은 이 말씀 가운데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병을 짊어지시는 그분께로, 우리의 부족함을 짊어지시고 우리를 고치시는 그분께로 나아가십시다. 이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의 소식이 되기를 원합니다.
Do We Need The Centurion’s Faith?
Matthew 8:5-17
The story of the centurion in today’s Scripture always inspires us. How can I have such a great faith as his? How can come to possess such a character? How can Jesus praise me like him?
The centurion was a gentile—a Roman, in fact. At the time a Roman army made up of non-Jews, dispatched by Herod Antipas, was stationed in Capernaum. The centurion of today’s passage was a Roman officer leading 100 soldiers of thatoccupying force.
How could a non-Jew have displayed such a faith before Jesus? His story inspires ustime and again.
When Jesus came down from the mountain and entered Capernaum, a centurion came to Him asking for help: “Lord, my servant lies at home paralyzed and in terrible suffering.” (Matthew 8:6)
This supplication is amazing in several ways.
First, the centurion mentioned that his servant was ill. The servant had paralysis, an incurable disease at the time,which prevented the patient from moving. Imagine the scenefrom the perspective of the time. A servant of a Roman centurion is sick. The centurion may well discard him for a slave was no different than cattle. Servants weren’t considered humans. There was nothing wrong with abandoning him or kicking him out.
Moreoverthe owner was an army officer of the great Roman Empire. He was a leader, an administrator, a high official of agreat occupying force. At the time, a mastercould do whatever he wanted with his slave. But this centurion came looking for Jesus upon hearing that He was in town andbegged Him to heal his slave.
The amazing thing is not merely the fact that he loved his slave. The centurionactually went to Jesus, a man belonging to a people whom he ruled, and asked Him for help. At the time, being a citizen of Rome, in itself,was a tremendous privilege. Yet this man of great standing and privilege went to a Jesus—who was not even a Roman but a Jew that he had control over—asking for help.
And this was Jesus’ answer to the centurion’s request: “I will go and heal him.”(Matthew 8: 7)
A commentary published by The German Bible Society comments that this sentence spoken by Jesus may be translated into a question: “Do you mean that I must go and heal him?”This translation appears more natural considering the context, but whichever way the sentence is translated, the centurion’s reply is nothing short of astonishing:
“Lord, I do not deserve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But just w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Matthew 8: 8)
Since Jews at the time considered it unclean to enter a gentile’s home, the centurion, knowing this, may have thought it inappropriate to invite Jesus to his home. Accordingly,he may have been thinking about how things work in the army when he made this reply:
“For I myself am a man under authority, with soldiers under me. I tell this one, ‘Go,’ and he goes; and that one, ‘Come,’ and he comes. I say to my servant, ‘Do this,’ and he does it.” (Matthew 8: 9)
In themilitary culture, authority is handed down from the top. A part of the emperor’s authority is delegated to his subordinates, and they in turn delegate their power to their subordinates, and so on. A centurion’s authority comes from his superior, a commander of a thousand, whose authority comes from his superior too. But each authority is absolute.
The centurion’s response to Jesus comes from his personal experience. He believed Jesus was using the authority He received from God—just as he exercised his power on behalf of the Roman emperor. And just as his authority had the same effect as a command from the Roman emperor, he knew that Jesus’ God-given authority would have the same powerful effect.
Although he spoke from his experience as a military officer, this was faith. Jesus was the One who came to earth with God’s authority. A mere word or command from Himwas more than enough to heal his servant. This was his faith. That is why he said, “Lord, just say the word. Just make the command.”
In the centurion’s reply, Jesus saw a great faith. The Bible says, “When Jesus heard this, he was astonished and said to those following him, ‘I tell you the truth, I have not found anyone in Israel with such great faith.’”(Matthew 8: 10)And this is what verse 13 says: “Then Jesus said to the centurion, ‘Go! It will be done just as you believed it would.’ And his servant was healed at that very hour.” (Matthew 8: 13)
This story revealsmany lessons on faith. From a roman soldier’s confession—”Just say the word. All I need is a command from your lips, Lord”—we gain fresh insight into the meaning of faith.
Furthermore, we learn the power of intercession. Jesus said that it will be done as the centurion believed. And the servant was healed. This goes beyond the formula of “my faith saves me” or “my faith heals me.” It opens up a new possibility of one man’s faith and healing another—for the centurion’s belief and his intercessory prayer for his servant healed him. This makes the centurion’s faith all the more precious.
And as we study his faith, we come to reflect on our own faith. ‘Would I seek Jesus on behalf of my neighbor? Would I ask Him on someone else’s behalf? Do I truly believe that Jesus can heal with His word alone? Would I be able to show a faith like the centurion’s before my Lord? Would Jesus praise my faith?’
One day, as I was reading this passage, I felt a great burden. ‘Is my faith as great as the centurion? Would God commend my faith? Am I really praying for my neighbors? Am I seeking Jesus on their behalf?’ As I asked myself these questions, I saw my weakness.
When I returned to the centurion’s story, I felt the Lord commanding me to live as he did. This voice of the Lord felt so heavy that all I could say was, “I am a sinner, Lord.” Why did I feel so much pressure from the centurion’s story? Why was it not good news to me? With these questions, I reread the passage—again and again.
‘What is the gospel in today’s Scripture that liberates me? What is the message of freedom for me in today’s passage?’ I wondered.
I asked these questions: Was it necessary for the centurion to display his faith to Jesus for his servant to be healed? In other words, did Jesus heal the servant “because” the centurion displayed a great faith? Was the healing a reward for the centurion’s faith?
First of all, the primary message of the centurion’s story does seem to be that Jesus rewards a great faith with healing. This is probably why we feel pressuredby the story.
The story of Jesus healing a leper, which comes right before the centurion’s story, also emphasizes the faith of the patient. When Jesus came down from the mountainside where he gave the Sermon on the Mount, a man with leprosy came to Him and said, “Lord, if you are willing, you can make me clean.”(Matthew 8: 2) At this, Jesus reached out his hand, touched him, and said, “I am willing. Be clean!” Immediately he was cured. Faith is also stressed in this story.
Then what about the story that succeeds the centurion’s story? Jesus healed Peter’s mother-in-law who was sick in bed with a fever. But in this story a confession of faith is missing.
Furthermore, in verses 16 and after it says, “When evening came, many who were demon-possessed were brought to him, and he drove out the spirits with a word and healed all the sick. This was to fulfill what was spoken through the prophet Isaiah: ‘He took up our infirmities and carried our diseases.’” (Matthew 8: 16-17)
This means that Jesus healed all those who came to him, took on their infirmities, and carried their illnesses.
Today I want you to take a panoramic view of the centurion’s story.
If you focus only on the centurion, the lesson is confined to the importance of a great faith and a good character. This is because the centurion confessed in faith that Jesus came to earth with God’s absolute power and believed that Jesus could heal with words alone. And Jesus praised him, saying He had not seen a man of a greater faith than him in Israel. The centurion’s faith became a source of an amazing power that healed not just himself but his servant.
Every time we hear his story, we are inspired and come to reflect on ourselves. However,the lesson and meaning of his story go beyond this.
As I suggested, take a panoramic view.
Matthew chapters 6 to 8 describe Jesus telling the precious Sermon on the Mount. In the beginning of chapter 8 Jesus comes down from the mountainside. The first person He met after coming down from the mountain was the Jewish man with leprosy. This leper came to Jesus himself, confessed his faith, and asked Jesus to heal him. Even though he was a leper, Jesus touched and healed him.
The second person Jesus met was the centurion. Even though he was a gentile, he confessed in faith that a word from Jesus was more than enough to heal his servant. Despite the fact that he was not a Jew and lived far away, Jesus healed his servant.
The third person Jesus met was Peter’s mother-in-law. But, in this story there is no confession of faith. Jesus did not enter Peter’s house upon an invitation or a request for healing. He just happened to see Peter’s sick mother-in-law when He went to Peter’s home. And He healed her.
Then all the sick came to Him. And the Lord cured them all. The following are Jesus’s acts of healing in Matthew chapters 8-9:
Healing of the man with leprosy (8:1-4)
Healing of thecenturion’s servant (8:5-13)
Healing of Peter’s mother-in-law (8:14-17)
Jesus’s command to follow Him (8:18-22)
Calming (or Healing) of the sea (8:23-27)
Healing of two demon-possessed men (8:28-34)
Healing of the paralytic (9: 1-8)
Healing of Jairus’ daughter (9:18-26)
Healing of the blind man (9:27-31)
Healing of the dumb (9:32-34)]
What does this tell us? Whether Jew or gentile, Jesus wished to heal all those who came to Him. Whether there was a confession of faith or not, whether another man confessed his faith on behalf of the patient, Jesus healed. He wanted to heal everyone. Whether a man came in faith or not, our Lord desired to heal the sick, drive out all evil spirits, and cure the weak.
In other words, although it is true that the centurion’s story is a precious passage which teaches us the importance of faith and its power, we come to see Jesus Himself when we take a broader view. In the centurion’s story we see the centurion’s faith, but when we take a panoramic view, we see Jesus.
Jesus who touched the leper and healed him…
Jesus who healed the centurion’s servant with His words alone…
Jesus who visited, touched, and healed Peter’s mother-in-law who couldn’t even confess her faith because of her fever…
Jesus who healed countless anonymous people who came to Him after it became dark…
We see Jesus.
Dear Church, the Man we must focus on in this passage is this very Jesus.
As we read today’s text, it is important to resolve to have a faith like that of the centurion. But what is more important is to encounter Jesus and to see Him, the One who visits us to heal us, regardless of our situation.
Jesus comes to us even now. He wants to heal us. He comes to us directly. He heals us through another person’s faith. He heals us seeing our faith. He heals even those who don’t have faith. Jesus is our Healer.
I hope that this will be the gospel for us all. Come to the Lord, all you who are sick, weak, and in need of our Lord’s help. Come to the Lord, even you who do not have faith. Come to Him, even you with a small faith. Anyone who comes to Him will be healed. Jesus is our Healer who takes on our infirmities and carries our diseases.
마태복음 8: 5 ~ 17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로마 백부장 그가 병든 하인을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 말씀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실 때의 일입니다. 그때에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 간청하였습니다. 당시 가버나움에는 헤롯 안티파스가 파견한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비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군대였죠. 그러니 이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인이거나 또는 이방인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와서 간청합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간청에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이 숨겨 있습니다. 우선 이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이 병들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 병은 중풍병, 다시 말하면 움직일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그는 중풍병 걸린 자신의 종이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치 자신이 아픈 듯 말입니다.
백부장의 말에는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이 숨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백부장인데 그가 자신의 하인을 위하여 왔다는 점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종이나 하인은 재산으로 취급받던 시대였습니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시대였죠. 그런데 재산과 같이 여겨지던 종이 그만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고,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얼마든지 처단하거나 죽일 수도 있고 아니면 팔아넘기거나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백부장은 이 종을 귀하게 여깁니다. 정말 귀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저 동조하는 마음으로 ‘참, 안됐다..’ 생각하고 두어도 될 것 같은데 백부장은 예수님께 희망을 걸며 나아옵니다.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한편으로 그는 굉장히 겸손해 보입니다. 당시 유대 민족은 피지배 민족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피지배 민족 중 한 사람이었는데, 지배 계급이었던 로마 군인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피지배 계급 중 한 사람인 예수님 앞에서 간청하는 장면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 점에서 백부장의 모습은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는 인격적이었고, 동정심 많은 사람이었고, 또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나아가서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간청하는 그를 향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태복음 8장 7절)
독일성서공회가 발행한 주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다고 제안합니다.
꼭 내가 가서 그를 낫게 해야 한다는 말이냐?
이 문장처럼 의문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흐름상 더 맞아 보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러워 보이죠. 그러나 해석이 어떻든 예수님 말씀 뒤에 따라오는 백부장의 말은 매우 놀랍습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마태복음 8장 8절)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일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을 알고 있었던 백부장은 유대인 예수님께서 이방인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면서 백부장은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매우 재미있는 말씀을 합니다. 군대 문화에 젖어 있는 그가 군대의 방식으로 예수님께 말씀드리며, 자신과 자신의 하인을 위해 명령을 내려 주시기만을 원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죠.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마태복음 8장 9절)
당시 군대 문화는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오늘날도 그렇습니다만은 상명하복 아니겠습니까? 왕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군대 장관이 위임받고 이것을 천부장에게, 그가 다시 백부장에게 위임하면서 이들의 명령에 따라 군대는 움직였습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인 것이죠. 이것이 바로 군대 문화입니다. 이 문화를 잘 알고 있고 또 익숙해 있던 백부장이 예수님께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랫사람에게 가라면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니, 우리 같은 아랫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한마디로 “그저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하는 말씀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백부장의 고백에는 아주 중요한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지금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고 이 땅에 내려오신 분으로 이해하는 듯합니다. 자신이 로마 황제의 권한을 가지고 유대 땅을 다스리는 것처럼, 그의 말 한마디가 법이 되고 실행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 권한을 위임받고 오신 예수님이시니 말씀만 하시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백부장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처럼 백부장의 고백은 군대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그의 믿음이 아주 잘 나타납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 칭찬해 주시고는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태복음 8장 10절)
이스라엘 중 어느 누구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는데, 이방인에게서 이와 같은 믿음을 보셨다는 칭찬이었습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8장 13절 중)
이 이야기는 상당히 많은 신앙적인 교훈을 알려 줍니다. 로마의 군인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명령만 하신다면,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신다면 일은 이루어집니다. 그 일은 진행됩니다.”라고 믿으며 정면에서 말하죠.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이고 하나님의 대행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이 땅에서 이루어집니다.”라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중보 기도의 가능성과 가치 또한 알고 배우게 됩니다.
성경은 백부장의 하인이 낫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고침받는 내용이죠.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를 입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의 이야기 속 하인은 어떻습니까? 그는 예수님께 나오지도 않았고, 심지어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를 수도 있었겠다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서 그가 구원을 받고 나음을 얻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기도 합니다. 즉 백부장의 이야기는 백부장의 믿음이 하인의 병을 낫게 했다는 중보의 가능성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을 매우 귀하게 여깁니다. 자신을 구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믿음, 예수님께 칭찬받을 만한 믿음, 이 믿음을 보며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제목을 달지요. ‘백부장의 믿음’이라는 제목입니다. 어쩌면 모두가 백부장을 부러워하는 듯 읽어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백부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십니까? 이 말씀을 읽은 후에 ‘아, 나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겠다.’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져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시겠죠? 좋은 결론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결론도 가능하겠지요. ‘아, 나는 믿음이 부족하니까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줄 만한 좋은 사람을 만나야겠다. 그렇게라도 내가 구원을 받아야겠다. 은혜를 입어야겠다.’ 이렇게 결단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이 백부장의 이야기는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나 자신이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단 아니면, 나는 부족하지만 믿음 좋은 사람 곁에서 은혜를 입어야겠다는 결단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목회자로서 저는 큰 부담이 되곤 했습니다. 나는 과연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 있는지, 예수님께 칭찬받을 만한 믿음의 사람인지,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구원할 만큼 중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인지 질문을 자주 던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말씀은 오랫동안 복음이 되지 못했습니다. 부담스러운 말씀이었죠. “너도 백부장처럼 되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그래, 나도 그와 같이 되어야지.” 결단하지만 돌아서고 나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며 자괴감이 들 때도 참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말씀이 나에게 복음이 될까, 이 말씀이 나에게 은혜가 될까, 해방의 메시지가 될까 하는 관점에서 말씀을 읽고 또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꼭 보셔야 하셨을까요?>
‘과연 하인이 낫기 위해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여 주어야만 했을까?’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에 고쳐 주신 걸까?’ ‘고침받은 하인은 백부장의 믿음에 대한 대가였을까?’ 언뜻 보면 그도 그럴 것 같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하인의 믿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시지 않으셨을까?’하는 점입니다. 하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몰랐을 수도 있죠. 그럼에도 믿음 없을 수 있던 하인에게 은혜가 도달합니다. 이 점을 묵상하며 말씀을 조금 더 넓혀서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은 5~7장에 걸쳐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이 이루어진 뒤에 시작됩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첫 번째로 나병 환자를 만나시고 고쳐 주시죠. 그 이야기가 마태복음 8장 2절에 나옵니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이야기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마태복음 8장 2절 중)
나병 환자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누구신지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는 믿음이었죠. 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니다. 부정한 나병 환자에게는 손을 대면 안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시고 고쳐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백부장 이야기입니다. 백부장 이야기가 끝난 후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시고는 열병을 앓고 있던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16절에는 이런 말씀도 등장합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태복음 8장 16~17절)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 주셨고,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고, 그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시야를 조금 넓혀서 마태복음 8장 전체를 보니깐 이야기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얘기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는 나병 환자였죠.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만나신 사람은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고 환자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하인의 병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세 번째는 베드로의 장모였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믿음의 고백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네가 믿느냐?” 묻지도 않으셨고, 베드로의 장모가 믿음의 고백을 하며 병을 고쳐 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저 그녀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원칙이나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병든 자, 모든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셨다는 기록만이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참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8장 23절 이후에는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는 예수님, 8장 28절 이후에는 귀신 들린 사람을 쫓아내시고 치유하시는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9장에도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죠. 또 다른 중풍병자가 나타납니다. 그가 침상에 들린 채로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도 사하여 주시며 고쳐 주셨습니다. 9장 18절 이후의 말씀은 회당장의 딸을 고쳐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가운데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잠깐 대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예수님 모르게 이 일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여인에게 능력이 나타났고, 혈루병이 고침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사이 회당장의 딸은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그를 다시 살려 내십니다. 9장 27절에는 맹인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9장 32절에서는 말 못하는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한발 물러나서 8장과 9장을 쭉 살펴보다 보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백부장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찾아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주님 앞에 나온 모든 자들을 고쳐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가 믿음을 고백하든 아니면 믿음을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라도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나아와 주님께 고쳐 달라고 요청하든 요청하지 않든, 주님은 이 땅의 모든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며 연약한 자들을 고쳐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마태복음 8~9장이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이야기를 읽어 가다 보면 그가 가진 믿음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믿음이 있어야 큰일을 할 수 있겠구나. 믿음이 있어야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겠구나. 믿음이 있어야 우리가 주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할 만큼 백부장의 이야기는 그의 믿음을 주목해서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고 계시는 예수님의 사역 중 한 부분에 해당할 뿐입니다.
나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낫게 하시는 예수님, 중풍병을 앓고 있는 하인에게 말씀만으로 그를 낫게 하시는 예수님, 믿음의 고백도 제대로 못하고 열병으로 누워 있었던 베드로의 장모에게 손을 내밀어 고쳐 주시는 예수님, 익명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한 사람도 그저 보내지 아니하시고 고쳐 주시는 예수님, 지나가는 길에 손만 내밀어도 고쳐 주시는 예수님, 죽었어도 살리시는 예수님, 침상에 눕힌 채로 사람들에게 이끌려 나오는 사람도 고쳐 주시는 예수님, 보지 못하는 자도 고치시는 예수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도 고쳐 주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타나는 것이죠. 그의 믿음이 드러나 보이기는 하지만 백부장의 이야기 역시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백부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 더 넓게 보아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나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지’하고 결단을 내리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고치시기 위하여 오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우리를 고치시기를 원하십니다. 직접 찾아오시고, 혹 다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찾아오시기도 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시기도 하시고, 믿음이 부족해도 우리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복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병든 사람, 아픈 사람,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믿음이 있는 사람도 오십시오. 믿음이 부족한 사람도 오십시오. 예수께 나오는 모든 사람은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감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께로 나오십시오. 마태복음 8장과 9장은 이 말씀 가운데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병을 짊어지시는 그분께로, 우리의 부족함을 짊어지시고 우리를 고치시는 그분께로 나아가십시다. 이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의 소식이 되기를 원합니다.
2021년 10월 1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우리에게 백부장만큼의 믿음이 필요한가” (마 8:5-17)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50장, 53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마 8:5-17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0월 1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백부장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유대인도 아닌 로마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향해 그런 믿음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요? 백부장은 자신이 로마 황제의 부여받은 권한으로 나라를 통치하듯, 예수님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한으로 사역하신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백부장에게 있었기에 그는 예수님에게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백부장의 믿음을 보면서 부담을 갖게 됩니다: ‘나는 왜 이런 믿음이 없을까?’
설교의 요약
백부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마치 ‘너도 그렇게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니?’라고 들립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더욱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에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백부장이 자신의 믿음을 예수님께 보여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하인을 고쳐 주셨을까? 즉, 하인이 나은 것은 백부장의 믿음의 대가였을까?’ 그러나 화면을 조금 넓게 잡고 오늘의 이야기를 보면 더 큰 그림이 보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내용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산을 내려오시는 장면이 8장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유대인 나병환자였습니다. 그는 직접 예수님께 나아와 믿음을 고백하며 고쳐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이방인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와서 말씀만으로도 자신의 하인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세 번째로 만난 사람은 베드로의 장모였습니다. 이곳에는 어떤 믿음의 고백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장모를 고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태복음 8-9장은 바다를 치유(8:23-27)하시고, 귀신들린 사람(8:28-34), 중풍병자(9:1-8), 회당장 딸(9:18-26), 맹인(9:27-31), 말 못하는 사람(9:32-34)을 고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주님 앞에 나오는 모든 자들을 고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백부장의 이야기는 분명 우리에게 믿음의 중요성과 믿음이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본문이지만, 조금 더 넓게 본문을 읽게 되면, 고치시고 회복하시는 예수님이 보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읽으면서 ‘나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지’ 하는 결단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형편이든지, 우리를 고치시기 위해 오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든 사람, 아픈 사람, 주님의 도움심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부족한 사람도 오십시오. 예수님께 나오는 모든 사람은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는 분입니다.
나누기
1. 나도 백부장처럼 남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그 때 어떤 영적변화를 경험했습니까?
2. 나는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병 들었습니까? 화가 치밀어 오릅니까? 믿음이 조금밖에 없습니까? 어떤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십니까? 그 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항상 우리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다 꾸짖지 않으시고 우리를 싸매시고 고치시니 감사합니다. 몸의 질병과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시는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