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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소서

레위기 4: 1 ~ 4

김경진 목사

2020.09.06

< 레위기 제사법을 토대로 예배자로서의 내 모습을 점검해 봅니다. >

오늘 본문인 레위기는 ‘제사’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레위기 앞부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다섯 가지의 제사가 설명돼 있습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그리고 화목제, 이 다섯 가지 제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본문인 레위기 4장은 ‘속죄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제사를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가? 예수님이 이미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셨는데,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굳이 이런 제사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레위기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귀한 말씀이자 하나님의 음성이 담긴 책입니다. 특별히 제사를 다루고 있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어떤 제사 곧 예배를 받기 원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가치요, 자산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하는지, 레위기 말씀을 통해 자세히 배우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온라인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당에서 드리던 예배를 잠시 멈추고,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각 처소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장소가 바뀐 것입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상황 속에서 많은 분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온라인예배가 맞는가? 온라인예배의 장점이 무엇인가? 단점은 무엇인가? 어떤 문제가 있는가?” 물론 가능하고 중요한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온라인예배를 드리면서 매체 자체에 대한 고민보다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현장에서 우리가 과연 진정한 예배자로 서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대한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늘 본문은 속죄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속죄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하나님과 관계가 깨졌을 때,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속죄제와 관련된 내용은 레위기 4장을 넘어 5장 앞부분까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의 상황에 적용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나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자세를 원하시는가? 즉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가?’라고 말입니다.

< 속죄제는 죄로 인해 멀어진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입니다. >

우리 소망교회 예배의 특징이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특징은 ‘참회의 기도’가 있다는 점입니다. ‘참회의 기도’는 장로교 예배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장로교 예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는 아주 오래전부터 참회의 기도를 드려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여러분 모두 예배당에서 참회의 기도를 드리실 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익히 아실 것입니다. 아주 감격적이고 놀라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재직할 때도 채플 시간에 참회의 기도를 여러 번 시도하기도 하고 훈련한 적도 있는데, 우리 교회에서처럼 제대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소망교회의 ‘참회의 기도’는 참 은혜롭고 경건한 참회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참회의 기도를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맨날 똑같은 기도인데요…. 참회할 게 뭐 그리 많다고 매번 그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까?” 어떤 분들은 참회의 기도 시간에 죄를 다 고백해서 용서받았으니 다시 밖으로 나가 죄를 지어도 된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결코 그런 용도로 참회의 기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매 주일 주님 앞에서 나와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우리는, ‘앞으로 매 주일 참회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 참회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레위기 4장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보며 본문을 보겠습니다. 이 레위기 4장을 구조적으로 분석해 보면, 대략 다섯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은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이후 네 단락은 하나씩 가지를 치면서 네 가지 형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중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은 레위기 4장 1~2절의 말씀입니다. 제가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어떤 사람이 실수로 잘못을 저질러, 나 주가 하지 말라고 명한 것을 하나라도 어겼으면, 다음과 같이 하여야 한다. (레위기 4:1~2, 새번역)

이 두 절이 속죄제를 드리는 이유, 그리고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먼저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라는 구절로 본문이 시작됩니다. 즉 속죄제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제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속죄제의 효과 내지는 이유를 전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실수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한 것을 하나라도 어긴 경우,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라도 어겼을 경우,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 그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가 속죄제라는 것입니다.

< 속죄제는 크게 네 차원으로 나뉘어 설명됩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 제사에서 주안점은 무엇인가를 성경은 네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이 내용을 보다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3절이 첫 번째 단락 앞부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레위기 4:3 중)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단락은 13절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레위기 4:13 중)

이스라엘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앞에 있는 내용은 제사장이 무엇인가를 잘못했을 때, 두 번째는 이스라엘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를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는 어떤 경우를 가리킬까요? 예를 들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던 사건과 같은 경우를 말합니다. 온 회중이 잘못 결정하여 다른 길로 갔을 때를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락은 22절부터 시작됩니다.

만일 족장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레위기 4:22 중)

여기서는 족장이 잘못했을 때를 상정합니다. 네 번째 단락은 27절부터 시작됩니다.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레위기 4:27 중)

속죄제를 드리는 네 가지 범주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제사장이 잘못했을 때, 두 번째는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 세 번째는 족장이나 지도자가 잘못했을 때, 네 번째는 평민 중 한 사람이 잘못했을 때입니다. 이렇게 넷으로 나누어 속죄제를 드리는 방법을 예시로 보여줍니다. 이 네 경우에 어떤 제물을 드려야 하는지, 성경은 조금씩 다른 제물에 대한 이야기도 전합니다. 제사장이 잘못했을 때, 그리고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는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리라고 명합니다. 족장이 잘못했을 때는 숫염소를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평민 한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암염소를 드리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제사 방법도 네 범주에 따라 설명이 이어집니다. 제물을 잡고, 피를 받고, 그 피를 휘장에 일곱 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바르고, 번제단 밑에 모든 피를 뿌리고, 모든 기름을 떼어내 고기를 번제단에서 사르고, 나머지 고기는 진영 밖으로 가지고 나가 재 버리는 곳, 정결한 곳에서 태우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 하나님은 ‘누가’ 죄를 지었는가에 관심을 두십니다. >

이 네 단락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사한 방식으로 제사 드릴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하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피를 뿌리는 모든 제사 방법은 결국 나중에 올 온전한 제사,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예표합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피를 흘리시고, 마을 밖으로 나오셔서 마지막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그 내용을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외에 나오는 매우 중요한 한두 가지 내용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내용은 ‘왜 이렇게 네 단락으로 나누어졌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제사장, 온 회중, 족장, 평민으로 이어지는 이 단락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질문입니다. 즉 제사장에서 시작되어 평민으로 이어지는 순서는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죄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제사장의 죄가 제일 큰 죄로 명명되고 있고, 회중 전체가 잘못 결정하는 죄를 두 번째 무게로 다루고 있으며, 족장들의 죄를 세 번째 무게로 다루고 있고, 이어 평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작은 무게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의 죄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큰 죄라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관련해 속죄제를 드리라고 명하셨을 때, 죄의 내용을 따지기보다는 ‘누가’ 죄를 지었는가에 관심을 두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죗값을 치르게 합니까? 법조계에 계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판결에 있어 근간이 되는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요즘에는 여러 정황도 함께 고려해 판결하는 것 같지만, 무엇보다 ‘어떤 죄’를 지었는가에 방점을 둘 것입니다. 죄목이 무엇인지에 따라 형벌의 정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죄와 형벌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관점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하게 한마디로 정리하십니다.

나 주가 하지 말라고 명한 것을 하나라도 어겼으면 (레위기 4:2 중, 새번역)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죄목을 따져 가며 죗값을 치르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명령 가운데 하나라도 어기면 죄가 되니 속제죄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 내용을 하나도 다루지 않으셨습니다. 그중 어떤 하나라도 잘못하면 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일만 달란트를 훔쳤든지, 한 데나리온을 훔쳤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내용도 거론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하나라도 어겼으면’이라고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 데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죄의 내용보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는가에 관심을 두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오늘 본문인 레위기 4장에서 하나님은 ‘제사장의 죄야말로 가장 큰 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해 주고 계십니다.

< 하나님의 제사장인 그리스도인의 죄를 하나님께서 가장 엄중히 여기십니다. >

그렇다면 제사장의 죄가 가장 큰 죄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말씀이 되겠습니까? 제사장과 오늘 우리는 어떤 관계 혹은 관련성이 있습니까? 베드로전서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5)

우리에게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너희는 거룩한 제사장이라.”라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9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베드로전서 2:9 중)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너희들은 제사장이다.”라고 칭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옵니다. 먼저 우리를 제사장으로 불러 주신 은혜가 큰 영광이요,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아주시는구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셨는데, 이제 주님을 따르는 내게도 제사장의 직분을 맡기시는구나.’라는 생각에 감격스럽습니다. 그러나 한편 레위기 4장의 말씀을 대입해 보면, 이 선언은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제사장의 죄가 가장 큰 죄로 여겨졌듯이, 우리가 짓는 죄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죄가 되는 까닭입니다.
성경의 원리 곧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릅니다. 바로 이 놀라운 원리를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묻기 전에 ‘누가’ 잘못했는가를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비밀을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인이 잘못하거나 목회자가 잘못하면 크게 비난을 하곤 합니다.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기독교인이 잘못했다고 하면, 교회가 실수했다고 하면, 더 엄격한 잣대로 심판의 목소리를 내곤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심판의 잣대를 심어 놓으신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방식과는 다르게 사는 모습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서 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참 신자의 모습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 주님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

요즘 우리 성도님들께서 저를 만날 때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하십니다. “교회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럴까요? 왜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만 합니까?” 아마 제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생각되어 위로하시는 마음도 있으실 것이고, 억울한 마음이 들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더 큰 잘못을 하면서 왜 교회만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가?’ 하는 억울한 심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식당에 가보십시오. 삼삼오오 모여서 얼마든지 마음껏 식사하는데, 교회에서만 식사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고자질하듯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한강 둔치에 가보십시오. 거리 두기 절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다들 모여 앉아 마음껏 놀고 있습니다. 거리 두기 하는 곳은 교회와 학교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가 잘못하면, 예를 들어 성 윤리를 위반하거나, 재정적인 문제가 생기거나, 잘못된 관례가 드러나면, 세상 사람들은 아주 강하게 교회를 비난합니다. 아마 통계로 따진다면 교회 구성원의 잘못보다 세상 사람들의 잘못이 훨씬 위중하고 빈도도 높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이 잘못하면 세상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며 분개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며 오늘 본문인 레위기 4장의 말씀을 대입해 봅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어떠실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곧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불리는 우리가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게 책망하실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같은 죄를 지어도 ‘제사장’으로 불리는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이 하나님께 가장 크고 엄중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중)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선택된 민족으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고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고 잘못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목보다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두십니다. “누가 죄를 지었느냐? 내 자녀들이 잘못했느냐? 나의 제사장들이 죄를 범했느냐?”라고 물으시며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더욱 엎드려 “하나님,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 여러분, 코로나19 감염병 상황 속에서 교회가 마치 박해가 받는 것 같고, 견디기 힘든 비난을 받는 것 같아서 힘들지만,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의 앞으로 조율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님, 우리가 죄인입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소서.”라는 것을 말입니다. 겸손한 자세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중)

Forgive Us Our Sins

Leviticus 4:1-4

Today’s Scripture is from Leviticus. The Book of Leviticus is mostly about the methods of sacrifice, which God tells the Israelites through Moses. The first part of the book introduces the five offerings: the burnt offering, the grain offering, the peace offering, the sin offering, and the guilt offering. Today’s passage is about the sin offering.

Some people question the need to know about the sacrificial methods of the Old Testament since we are now living in the age of the New Testament. If we no longer give Old Testament sacrifices, and if Jesus completed them, why must we learn about them?

However, Leviticus, along with all the other books of the Old Testament, is the word of God. In particular, God’s instructions on how to give offerings contain important principles of sacrifice, extremely useful to Christians today. They provide a precious guide on how we must worship today.

Again, we are worshiping online. Instead of coming to church, we are praising and worshiping Him in our homes or wherever we are. Our place of worship has changed. Our environment has changed. And if there is one thing we must deeply reflect on in such a changed circumstance, it is the spirit of worship. Are we truly observing services with the right attitude of worship? Am I a true worshiper? Thesearemuch more important questions than ‘Does online worship have value? Can we call it true worship?’

Through today’s message, I pray that God will help us reflect on our worship and become true worshipers.

As I mentioned, today’s passage is about the sin offering. This offering, given when an Israelite sinned, cleansed that individual of the sin and made his relationship right with God. It allowed a purification of sins, especially when one broke the Law.

Although Today’s Scripture is taken from the first part of chapter 4, the sin offering is described in length in chapters 4 and 5. Today’s Scripture yields critical insight into howsin must be viewed as we come before the Lord for worship.

One characteristic of our service here at Somang is that we set aside a time for a confession of sins. Not many churches observe such a quiet and holy time of confession. I have not seen such a solemn confession of sins even in the seminary where I formerly taught.

Occasionally, a new member of the church may ask, “Why do Christians need to ask for forgiveness of sins each week when they are actuallyless sinful than the people of the world?” Of course, we do not confess our sins so that we may conveniently go on sinning after getting a clean slate.

The important question is this:How must we pray—that is, what must our heart’s attitude be—when we confess our sins each week? I wish to gain wisdom from Today’s Scripture from Leviticus.

To answer this question, we must look at chapter 4 of Leviticus from a macro and structural perspective.

First, taking a structural view of God’s instruction on the sin offering, we can divide chapter 4 into four parts—excluding the introductory part which are verses 1 and 2 on the meaning of the sin offering: “The Lordsaid to Moses,‘Say to the Israelites, When anyone sins unintentionally and does what is forbidden in any of the Lord’s commands—’” (Leviticus 4: 1-2) In these verses God tells Moses about the authority and meaning of the sin offering. When anyone sins by mistake and does what is forbidden in any of the Lord’s commands, he must give a sin offering.

God’s commands on the sin offering following verses 1 and 2, are largely composed of four parts. The first part from verse 3 starts with these words: “If the anointed priest sins, bringing guilt on the people, […]” (Leviticus 4:3)The second part starts in verse 13, which begins with these words: “If the whole Israelite community sins unintentionally and does what is forbidden in any of the Lord’s commands, even though the community is unaware of the matter, […]”(Leviticus 4:13)The third part starts in verse 22: “When a leader sins unintentionally and does what is forbidden in any of the commands of the Lordhis God, […]” (Leviticus 4:22)The fourth part comes starting from verse 27: “If any member of the community sins unintentionally and does what is forbidden in any of the Lord’s commands, […]”(Leviticus 4:27)

In each of the four parts in chapter 4, Godcommands what kind of offering should be made, and how. For example, if the priest or the whole community sins, a young bull must be brought for a sin offering. If a leader sins, he must bring a male goat. If a member of the community sins, then it is to be a female goat.

In each of the four sections, there is a detailed instruction on how to slaughter the offering, how to put the blood on the horns of the alter, how to pour the rest of the blood at the base of the altar, and how to burn the fat. Although the instruction varies a little in the four sections, it remains largely similar.

Of course, we do not sacrifice with animals and blood today. The meaning of worship is, of course, found in every command of God, but today I want to take a more structural approach to this chapter on sin offering.

A few things stand out in God’s instructions for the sin offering. First, we can guess the gravity of sins from the order in which God tells us about them, which is the priest, the whole community, a leader, and a member of the community in that order.

The priest’s sin is the gravest. Then comes the sin of the whole community. One example of this would be Israel’s worship of the golden calf at Mount Sinai. Then comes the sin of a leader, followed by the sin of a member of the community.

A critical discovery can be made here: God considers the sin of the priest to be the greatest. Another important point: In establishing the structure of the sin offering God did not consider the name of the sin, but the person who committed it.

Think about it. How are secular laws made? Our justice system treats a crime impartially by treating all man equal before the law. In other words, it looks at the nature of the crime, not the person who committed it.

For example, if someone commits murder, it doesn’t matter if he/she is wealthy or poor. Anyone who commits murder—rich or poor—gets the same punishment. Of course, other factors are considered to a certain extent, but the principle remains that a person gets punished for the crime committed.

However, in God’s instructions on the sin offering, there is no mention of the sin’s name. Well, God does mention it once, but this is it: “‘When anyone […] does what is forbidden in any of the Lord’s commands […]” (Leviticus 4: 2) And this applies to all four sections of chapter 4.

When anyone breaks any one of His commands, he is guilty. There is no exception. The Lord focuses on “who” commits the sin, rather than “what” the sin is. This is something to ponder. God considered the sin of priests to be graver than that of anyone else. He demanded a greater accountability from them.

Then what does this mean for us today? God said in 1 Peter, “you also, like living stones, are being built into a spiritual house to be a holy priesthood, offering spiritual sacrifices acceptable to God through Jesus Christ.” (1 Peter 2:5) God is telling Christians to be a holy priesthood.

He goes on to say, “But you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God’s special possession, […]” (1 Peter 2:9)God calls us a royal priesthood.

Paradoxically, this verse tells us that God regrets and mourns our sins—sins of His children, a holy nation, a royal priesthood—more so than we do.

Interestingly, the world seems to know how God judges us. It judges the wrongs of churches and Christians more harshly. When a believer commits the same crime as an unbeliever, the former is subject to harsher criticism.

The world does not give us extra benefits, but punishes us with extra criticism. But I think God’s principle can be found in this treatment. The world expects us to be priests. They want us to play the role of a leader. They want us to be different. And when we fall short of their expectations, they slander us.

What did the Church do so wrong? Why are we treated so unfairly?

Some Christians complain that thegovernment is pointing fingers to the Church and stoking criticisms against it, even though it is doing its utmost to prevent coronavirus infections. I, too, sometimes feel that the world’s criticism against the Church is excessive.

But I found myself asking these questions: What would “God” say about the Korean church today? Would He praise us or rebuke us? Would He hold us accountable for our sins, or would He defend us? Would he comfort and acknowledge us, saying that it was unfair? Or would He rebuke us?

Dear Church, what do you think God would say about the world’s treatment and view of the Korean church?

We want His comfort and encouragement—especially, at times like this. We wish God would commend us and acknowledge that we are being persecuted. But if… God rebukes the Korean church… for what it has become, what would the reason be?

Often the Church is scorned for money and sex issues. The world is not so sensitive to the sex crimes of a bartender as the sexual misconduct of a pastor. Some Christians complain that the crimes of pastors and Christians are treated partially and more harshly by the media.

What do you think of such complaints? Although the crime rate among pastors would be significantly lower than that of the general population, the world treats the wrongs of pastors and the Church with a disproportional contempt. ‘Is this fair?’ you may ask.

What do you think? Do you think that the world is treating us unfairly? Is the world wrong in being partial? What would God say about our complaints of harsher treatment from the world? What would He do about it?

I quoted the first part of 1 Peter 2:9 above. Now let me read you the complete verse, including latter part: “But you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God’s special possession, that you may declare the praises of him who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wonderful light.” (1 Peter 2:9)

For what purpose did God call us? Why did He call us as a royal priesthood? So that we may declare the praises of Him. This is the reason why He called us as priests.

When we fail in this work, God does not see the nature, type, or scale of the problem, but our sins as priests. So, we are being scorned by the world today because of our sins. In a sense, this is only fitting.

Therefore, we cry out to our Lord today. When we do, we must not pray, ‘Lord, this is unfair. Lord set things right!’ We must say, ‘Lord, we deserve this. This is our sin. Lord, forgive us our sins.’ This must be our prayer.

Today, the Lord is calling us, again, to be priests. And He asks this of us:

“But you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God’s special possession, that you may declare the praises of him who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wonderful light.” (1 Peter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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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4: 1 ~ 4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3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4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 레위기 제사법을 토대로 예배자로서의 내 모습을 점검해 봅니다. >

오늘 본문인 레위기는 ‘제사’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레위기 앞부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다섯 가지의 제사가 설명돼 있습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그리고 화목제, 이 다섯 가지 제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본문인 레위기 4장은 ‘속죄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제사를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가? 예수님이 이미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셨는데,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굳이 이런 제사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레위기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귀한 말씀이자 하나님의 음성이 담긴 책입니다. 특별히 제사를 다루고 있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어떤 제사 곧 예배를 받기 원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가치요, 자산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하는지, 레위기 말씀을 통해 자세히 배우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온라인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당에서 드리던 예배를 잠시 멈추고,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각 처소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장소가 바뀐 것입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상황 속에서 많은 분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온라인예배가 맞는가? 온라인예배의 장점이 무엇인가? 단점은 무엇인가? 어떤 문제가 있는가?” 물론 가능하고 중요한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온라인예배를 드리면서 매체 자체에 대한 고민보다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현장에서 우리가 과연 진정한 예배자로 서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대한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늘 본문은 속죄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속죄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하나님과 관계가 깨졌을 때,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속죄제와 관련된 내용은 레위기 4장을 넘어 5장 앞부분까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의 상황에 적용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나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자세를 원하시는가? 즉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가?’라고 말입니다.

< 속죄제는 죄로 인해 멀어진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입니다. >

우리 소망교회 예배의 특징이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특징은 ‘참회의 기도’가 있다는 점입니다. ‘참회의 기도’는 장로교 예배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장로교 예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는 아주 오래전부터 참회의 기도를 드려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여러분 모두 예배당에서 참회의 기도를 드리실 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익히 아실 것입니다. 아주 감격적이고 놀라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재직할 때도 채플 시간에 참회의 기도를 여러 번 시도하기도 하고 훈련한 적도 있는데, 우리 교회에서처럼 제대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소망교회의 ‘참회의 기도’는 참 은혜롭고 경건한 참회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참회의 기도를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맨날 똑같은 기도인데요…. 참회할 게 뭐 그리 많다고 매번 그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까?” 어떤 분들은 참회의 기도 시간에 죄를 다 고백해서 용서받았으니 다시 밖으로 나가 죄를 지어도 된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결코 그런 용도로 참회의 기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매 주일 주님 앞에서 나와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우리는, ‘앞으로 매 주일 참회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 참회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레위기 4장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보며 본문을 보겠습니다. 이 레위기 4장을 구조적으로 분석해 보면, 대략 다섯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은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이후 네 단락은 하나씩 가지를 치면서 네 가지 형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중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은 레위기 4장 1~2절의 말씀입니다. 제가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어떤 사람이 실수로 잘못을 저질러, 나 주가 하지 말라고 명한 것을 하나라도 어겼으면, 다음과 같이 하여야 한다. (레위기 4:1~2, 새번역)

이 두 절이 속죄제를 드리는 이유, 그리고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먼저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라는 구절로 본문이 시작됩니다. 즉 속죄제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제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속죄제의 효과 내지는 이유를 전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실수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한 것을 하나라도 어긴 경우,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라도 어겼을 경우,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 그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가 속죄제라는 것입니다.

< 속죄제는 크게 네 차원으로 나뉘어 설명됩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 제사에서 주안점은 무엇인가를 성경은 네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이 내용을 보다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3절이 첫 번째 단락 앞부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레위기 4:3 중)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단락은 13절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레위기 4:13 중)

이스라엘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앞에 있는 내용은 제사장이 무엇인가를 잘못했을 때, 두 번째는 이스라엘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를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는 어떤 경우를 가리킬까요? 예를 들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던 사건과 같은 경우를 말합니다. 온 회중이 잘못 결정하여 다른 길로 갔을 때를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락은 22절부터 시작됩니다.

만일 족장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레위기 4:22 중)

여기서는 족장이 잘못했을 때를 상정합니다. 네 번째 단락은 27절부터 시작됩니다.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레위기 4:27 중)

속죄제를 드리는 네 가지 범주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제사장이 잘못했을 때, 두 번째는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 세 번째는 족장이나 지도자가 잘못했을 때, 네 번째는 평민 중 한 사람이 잘못했을 때입니다. 이렇게 넷으로 나누어 속죄제를 드리는 방법을 예시로 보여줍니다. 이 네 경우에 어떤 제물을 드려야 하는지, 성경은 조금씩 다른 제물에 대한 이야기도 전합니다. 제사장이 잘못했을 때, 그리고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는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리라고 명합니다. 족장이 잘못했을 때는 숫염소를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평민 한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암염소를 드리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제사 방법도 네 범주에 따라 설명이 이어집니다. 제물을 잡고, 피를 받고, 그 피를 휘장에 일곱 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바르고, 번제단 밑에 모든 피를 뿌리고, 모든 기름을 떼어내 고기를 번제단에서 사르고, 나머지 고기는 진영 밖으로 가지고 나가 재 버리는 곳, 정결한 곳에서 태우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 하나님은 ‘누가’ 죄를 지었는가에 관심을 두십니다. >

이 네 단락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사한 방식으로 제사 드릴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하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피를 뿌리는 모든 제사 방법은 결국 나중에 올 온전한 제사,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예표합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피를 흘리시고, 마을 밖으로 나오셔서 마지막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그 내용을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외에 나오는 매우 중요한 한두 가지 내용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내용은 ‘왜 이렇게 네 단락으로 나누어졌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제사장, 온 회중, 족장, 평민으로 이어지는 이 단락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질문입니다. 즉 제사장에서 시작되어 평민으로 이어지는 순서는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죄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제사장의 죄가 제일 큰 죄로 명명되고 있고, 회중 전체가 잘못 결정하는 죄를 두 번째 무게로 다루고 있으며, 족장들의 죄를 세 번째 무게로 다루고 있고, 이어 평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작은 무게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의 죄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큰 죄라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관련해 속죄제를 드리라고 명하셨을 때, 죄의 내용을 따지기보다는 ‘누가’ 죄를 지었는가에 관심을 두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죗값을 치르게 합니까? 법조계에 계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판결에 있어 근간이 되는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요즘에는 여러 정황도 함께 고려해 판결하는 것 같지만, 무엇보다 ‘어떤 죄’를 지었는가에 방점을 둘 것입니다. 죄목이 무엇인지에 따라 형벌의 정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죄와 형벌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관점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하게 한마디로 정리하십니다.

나 주가 하지 말라고 명한 것을 하나라도 어겼으면 (레위기 4:2 중, 새번역)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죄목을 따져 가며 죗값을 치르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명령 가운데 하나라도 어기면 죄가 되니 속제죄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 내용을 하나도 다루지 않으셨습니다. 그중 어떤 하나라도 잘못하면 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일만 달란트를 훔쳤든지, 한 데나리온을 훔쳤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내용도 거론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하나라도 어겼으면’이라고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 데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죄의 내용보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는가에 관심을 두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오늘 본문인 레위기 4장에서 하나님은 ‘제사장의 죄야말로 가장 큰 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해 주고 계십니다.

< 하나님의 제사장인 그리스도인의 죄를 하나님께서 가장 엄중히 여기십니다. >

그렇다면 제사장의 죄가 가장 큰 죄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말씀이 되겠습니까? 제사장과 오늘 우리는 어떤 관계 혹은 관련성이 있습니까? 베드로전서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5)

우리에게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너희는 거룩한 제사장이라.”라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9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베드로전서 2:9 중)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너희들은 제사장이다.”라고 칭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옵니다. 먼저 우리를 제사장으로 불러 주신 은혜가 큰 영광이요,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아주시는구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셨는데, 이제 주님을 따르는 내게도 제사장의 직분을 맡기시는구나.’라는 생각에 감격스럽습니다. 그러나 한편 레위기 4장의 말씀을 대입해 보면, 이 선언은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제사장의 죄가 가장 큰 죄로 여겨졌듯이, 우리가 짓는 죄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죄가 되는 까닭입니다.
성경의 원리 곧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릅니다. 바로 이 놀라운 원리를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묻기 전에 ‘누가’ 잘못했는가를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비밀을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인이 잘못하거나 목회자가 잘못하면 크게 비난을 하곤 합니다.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기독교인이 잘못했다고 하면, 교회가 실수했다고 하면, 더 엄격한 잣대로 심판의 목소리를 내곤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심판의 잣대를 심어 놓으신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방식과는 다르게 사는 모습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서 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참 신자의 모습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 주님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

요즘 우리 성도님들께서 저를 만날 때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하십니다. “교회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럴까요? 왜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만 합니까?” 아마 제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생각되어 위로하시는 마음도 있으실 것이고, 억울한 마음이 들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더 큰 잘못을 하면서 왜 교회만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가?’ 하는 억울한 심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식당에 가보십시오. 삼삼오오 모여서 얼마든지 마음껏 식사하는데, 교회에서만 식사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고자질하듯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한강 둔치에 가보십시오. 거리 두기 절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다들 모여 앉아 마음껏 놀고 있습니다. 거리 두기 하는 곳은 교회와 학교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가 잘못하면, 예를 들어 성 윤리를 위반하거나, 재정적인 문제가 생기거나, 잘못된 관례가 드러나면, 세상 사람들은 아주 강하게 교회를 비난합니다. 아마 통계로 따진다면 교회 구성원의 잘못보다 세상 사람들의 잘못이 훨씬 위중하고 빈도도 높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이 잘못하면 세상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며 분개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며 오늘 본문인 레위기 4장의 말씀을 대입해 봅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어떠실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곧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불리는 우리가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게 책망하실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같은 죄를 지어도 ‘제사장’으로 불리는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이 하나님께 가장 크고 엄중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중)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선택된 민족으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고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고 잘못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목보다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두십니다. “누가 죄를 지었느냐? 내 자녀들이 잘못했느냐? 나의 제사장들이 죄를 범했느냐?”라고 물으시며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더욱 엎드려 “하나님,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 여러분, 코로나19 감염병 상황 속에서 교회가 마치 박해가 받는 것 같고, 견디기 힘든 비난을 받는 것 같아서 힘들지만,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의 앞으로 조율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님, 우리가 죄인입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소서.”라는 것을 말입니다. 겸손한 자세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중)

2020년 9월 6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소서” (레 4:1-4)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6장, 274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레 4:1-4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9월 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 본문은 속죄제사에 대한 부분입니다. 속죄제사는 인류가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씻고 다시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들어가게 하는 만들어 주는 제사입니다.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우리의 죄를 생각하며 주님 앞에 나와야 할까요? 오늘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의 속죄제사의 내용은 크게 넷으로 나뉩니다. 첫 단락은 ‘제사장의 죄’(3절)이고, 두 번째 단락은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13절)이고, 셋째 단락은 ‘족장 즉 지도자의 죄’(22절)이고, 마지막 단락은 ‘평민 한 사람’(27절)의 죄입니다. 우리는 이 내용 속에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제사장의 죄를 가장 큰 죄로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죄의 내용’보다는 ‘죄를 짓는 사람’을 중심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제사장의 죄를 더 크게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오늘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너희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히 2:5).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벧전 2:9).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 즉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나라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 저지르는 죄에 대하여 더 마음 아파하시고 안타까워하십니다.

    흥미롭게도 세상 사람들은 이 원리를 알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들은 우리(교회)가 잘못하는 것을 더 크게 보고 비난하지요. 똑같이 죄를 지어도 그들은 믿는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더 크게 비난합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원리가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지요. 리더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들은 우리들을 향하여 비난을 합니다.

    우리는 요즘 상황에서 억울함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식당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이야기하면서 잘만 먹고, 한강 둔치에서는 거리두기하며 마스크를 끼는 사람도 거의 없음에도 교회를 자꾸 거론하며 나쁜 여론을 만든다고 정부를 향하여 볼멘소리를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하나님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제사장으로 불러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제사장으로 부르신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님께 탄원합니다. ‘억울합니다. 이 억울함을 풀어 주소서!’가 아니라 ‘마땅합니다. 우리의 허물입니다. 주님,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제사장으로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부탁하십니다.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누기

 1. 요즘 우리도 할 말이 많습니다. 우리(교회)가 세상에 대해 억울한 부분이 무엇일까요? 

 2.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제사장으로 부르시고, 부탁하십니다. 내게는 뭐라고 부탁하실까요?

 마무리 기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세워 주셨는데, 우리는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너는 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가?’라는 말씀 앞에 가슴을 치고 회개합니다.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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