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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조상 중 이삭은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존재감 없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존재감 없는 존재로 평가될 때도 있죠. 회의나 어떤 모임에 참석하면 그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오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반대로 그 사람이 왔어도 큰 의미가 없는 존재가 종종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성경을 읽다가 ‘성경 속에 존재감이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겠죠. 그러나 성경에도 나오고 우리도 제법 알 만한 사람 중에서 존재감이 없는 사람은 누구일지 생각해 보았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삭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서 이삭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그의 이름이 몇 번이나 거명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창세기 1~11장까지는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와 원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12장부터는 4명의 족장 이름이 나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이죠. 과연 성경에는 각각의 이름들이 몇 번이나 나올까요? 아브라함, 아브람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횟수는 대략 290회였습니다. 야곱의 경우는 야곱이라는 이름만 365회 나왔고, 이후 새 이름인 이스라엘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거명되었습니다. 요셉은 어떨까요? 요셉 역시 260회 정도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궁금해 했던 이삭, 이삭의 이름은 몇 번이나 나오는지 찾아보았더니 164회 정도 나왔습니다. 생각보다는 많이 나온 걸 보면서 ‘역시 족장은 족장이고,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구나’ 생각하면서 이삭의 이름이 어떤 경우에 거론이 되었는지 하나씩 하나씩 찾으며 성경을 읽어 갔습니다.
한참을 읽어 가다 보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아닌 다른 단어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창세기가 지난 이후부터는 밀 이삭 또는 이삭을 자르다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정리해 보니 대략 100회 정도가 이름이 아닌 이삭이라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았더니 의미 없이 불리던 이삭의 이름도 여러 번 등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과 같은 표현에 함께 들어가 있는 경우였습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이삭의 이름이 사용된 경우는 약 70회 정도였습니다. 성경에서 이삭의 이름은 적게 언급된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창세기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구조를 보아도 이삭은 크게 존재감이 없습니다. 아브라함 이야기가 12장부터 25장에 걸쳐 소개됩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12~25장까지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죽음이 소개된 이후 같은 장인 25장에는 에서와 야곱의 출생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21장부터 28장까지 이삭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앞에는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이삭의 이야기가, 뒤로 가면 리브가와 에서, 야곱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의 이야기가 나오는 형태입니다. 한마디로 이삭의 이야기만 독자적으로 나오는 부분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삭이 여러 곳을 다니며 우물을 팠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이삭의 이야기에서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의 인생에는 하나님과의 극적인 만남의 경험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를 직접 만나 주시며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죠. 이것이 아브라함과 하나님 간의 직접적인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하단으로 가고 있을 때, 벧엘에서 꿈을 꾸며 하나님을 만나죠. 특별히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에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는 경험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경우는 어땠습니까? 요셉은 많은 고생 끝에 이집트에 끌려가서 힘든 감옥 생활을 했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꿈을 꾸며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삭에게는 모리아 산의 경험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 주는 특별한 사건으로 이해될 뿐, 성경은 이삭의 믿음이나 순종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이삭이 독자적으로 하나님과 만난 신앙적인 경험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사건은 아마도 리브가의 임신을 위해 기도했고, 그 기도대로 리브가가 임신했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창세기 25장 21절 말씀입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창세기 25장 21절)
이삭이 긴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그분의 능력을 경험했던 사건이 있었다면, 아마도 리브가의 임신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만약에 아이를 낳기 전 태몽으로 엄청난 꿈을 꿨다면 어떠실 것 같습니까? 용이 들어오는 꿈을 꿨다든지,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셨다면 아이를 향한 기대가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이 아이가 무엇이 될까? 생각하며 아이를 주의 깊게 키우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라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생각해 보면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사람이 태어나겠구나 예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고향에서 끌고 나오실 때에 주셨던 약속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해 주겠다.” 그러니까 자손에 대한 축복을 하신 겁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비전을 주시면서 아브라함을 고향에서 끌어내셨죠.
그러나 그에게 자녀를 바로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긴 시간을 기다려 보지만 자녀가 없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나아가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 내용이 창세기 15장에 나오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난 자라야 상속자가 될 것이다”고 말씀하시며 하늘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들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아지게 하시겠다고 꿈을 꾸게 하셨죠. 그러나 그 다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며, 곧 태어날 새 아이가 아브라함의 상속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 19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장 19절)
이렇게 하나님이 꿈을 주시고 예언의 말씀을 주셔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이삭이었습니다.
<특별한 계시를 받고 탄생한 이삭이었지만 그는 매우 수동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특별한 과정을 통해 태어난 아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기대를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태어난 성경 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큰 업적들을 남겼습니다. 한나의 경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사무엘을 낳죠. 사무엘은 사울 왕과 다윗 왕을 세우며 선지자와 사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삼손을 낳지요. 이후 그는 위대한 장수가 되어 사사시대 큰일을 합니다. 엘리사벳에게 나타난 천사가 세례요한의 탄생을 예고했고,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견합니다. 이들은 성경에서 위대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비교해 본다면 이삭의 경우는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로 하여금 이삭의 탄생을 기다리게 하시며 100세가 되어서야 아들 이삭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탄생 이후에 이삭의 삶은 그다지 굵지도, 그렇다고 행복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때 이야기 속에서 이삭은 한낱 조연에 불과한 모습이죠. 야곱이 복을 받으려고 형 에서보다 앞서려고 할 때조차도 이삭은 야곱을 축복해 주는 주연으로 등장합니다. 이삭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은 성경에 많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삭이 태어나던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세기 21장 5~6절)
‘이삭’이라는 단어는 ‘웃음’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사라와 100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웃게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 역시 소식을 듣고 웃게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가 태어나면서 웃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정말 웃으면서 살았을까요? 이삭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100세의 아버지를 두고 기적적으로 태어난 사람, 하나님의 특별하신 예언 가운데 태어난 사람, 하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보았을 때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보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죽기 전 늙은 종에게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나이가 제법 든 자식이었지만 이삭에게는 말하지 않고 종, 그것도 늙은 종에게 시키며 그를 통해서 이삭의 아내를 얻도록 했습니다. 제대로 배필도 구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아브라함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한편으론 매우 수동적이고, 어찌 보면 답답한 이삭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길을 한 번 살펴봅시다. 이삭이 태어나 어느 정도 의식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에게 처음 일어난 일은 아버지가 칼을 들이대는 상황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을 나이였지만 이삭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모양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이삭이 큰 축복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을 크게 인정받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지만, 이삭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를 향해 하나님은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리아 산에서의 주연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종을 보내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데려오도록 하였을 때,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거절하거나 혹은 다른 특별한 사건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대로 아내를 맞이했습니다. 그 이후 그에게 다른 아내가 있었다는 기록은 보이질 않습니다. 아버지가 정해 준 한 여인을 만나서 평생 동안 그녀와 살다 간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갔지만, 조금은 답답해 보이는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좋은 부부 관계를 가지며 살았을까요? 성경을 살펴보면 두 사람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창세기 25장 2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창세기 25장 28절)
리브가와 이삭 사이에 어떤 간격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 또는 성향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리브가와 이삭은 굉장히 가깝지 않은 사이였음이 분명합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을 때 자기 나름대로 다른 계획을 세우죠. 아내인 리브가가 남편인 이삭에게 청원을 할 수도 있었을 법한 상황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과 소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짐작컨대 이삭과 리브가의 부부 관계는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관계였음이 분명합니다. 서로 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랄에서 이삭의 종들과 그랄 사람들이 우물을 놓고 싸우는 장면은 이삭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싸움을 싫어했는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창세기 26장의 말씀입니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창세기 26장 19~22절)
이삭은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그곳을 떠나 새로운 우물을 짓곤 했습니다. 시비를 걸면 떠나고, 싸움이 일어나면 또다시 떠나는 게 이삭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삭은 쫓겨 다니면서 우물을 팠지만, 결국은 이를 통해 번성하게 되는 특별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병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들 에서와 야곱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눈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시력을 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죽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삭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고 분명히 증언합니다. 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귀한 아들 야곱에게 속는 안타까운 경험을 합니다. 아들과 아내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죠. 이런 그에게 과연 인생이 의미가 있었을까요? 인생을 살 만한 맛이 있었을까요? 참 궁금합니다.
<이삭의 수동적인 삶 가운데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던 믿음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삭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는 이후 야곱을 축복한 후에 에서가 돌아왔을 때, 에서가 자신에게도 다시 축복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제가 만일 이삭이었다면 “조금 전 야곱에게 기도했던 것 취소합니다, 하나님.” 말하면서 에서를 축복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구절도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야속하게도 이삭은 에서를 향해 해 줄 수 있는 축복이 얼마 없다고 말합니다. 야곱에게 속아서 축복을 해 주었지만 그것을 바꿀 의지도, 용기도 없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에서가 빗나가죠. 야곱을 죽이려는 생각까지 합니다. 그리고 가정은 어려운 국면에 처합니다. 야곱은 도망할 수밖에 없었고, 리브가와 에서의 관계는 틀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 에서와의 관계도 틀어져서 죽을 때까지 삐뚤어진 에서와 살아야 했던 슬픈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삭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에셀도 아니고 이스마엘도 아니고, 반드시 이삭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삭의 인생은 그저 그랬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인생을 보았다면 참으로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삭의 인생이 혹시 우리의 모습 같지는 않습니까? 우리와 어딘가 닮지는 않았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도 됐죠. 아들 야곱은 이스라엘의 족장이라도 됐죠. 그러나 이삭에게는 그 어떤 호칭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아브라함에서 야곱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함께 끼어 있는 이름 정도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삭은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의 삶을 돌아보도록 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살펴보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이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의 이름은 ‘웃는다’, ‘웃다’ 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웃었다는 의미도 함축합니다.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난, 참으로 평범한 일상의 삶으로 태어난 그 아이가 태어나서 웃습니다. 이후로 이삭은 이름 때문에 웃으며 산 사람이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삭의 믿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히브리서 11장 20절)
믿음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만, 이삭과 관련된 주도적인 이야기는 이 한 절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삭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입니다. 이삭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한 일, 단지 그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장차 있을 일, 곧 미래를 내다보며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삭의 믿음입니다. 이삭의 현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먼 훗날을 봅니다. 자신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통해 먼 미래를 봅니다. 그리고는 장래 일을 놓고 아이들을 위해 축복합니다.
때로는 우리 삶이 역동적이지 못하고 자녀들을 위하여 일하다 끝나 버리는 인생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이삭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믿음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비록 현재가 어렵지만, 혹시라도 이렇게 평범하게 끝난다고 할지라도 나는 웃는다. 나의 아들을 바라보면서 웃는다.’ ‘현실은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나는 웃는다.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할 것이다. 나는 나의 미래, 아니 나의 후손의 미래를 위해 믿음을 가지고 축복의 기도를 드린다. 이 미래를 위해 나는 기도한다.’ 여기에 이삭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평범한 인생을 살았지만 참으로 위대한 가문을 이어 주는 큰 역할을 감당합니다. 로마서 9장 6~7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로마서 9장 6~7절 중)
이삭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비록 그의 삶에는 능력 있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삭은 분명 약속을 잉태한 씨앗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삶을 견뎌냈고 놀라운 축복을 자손들에게 넘겨줍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족장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 사이에 그 이름을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삭이 없이는 결코 야곱이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삭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 결코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평범한 것같이 살았던 이삭의 일생.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고, 약속을 품은 채 살아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삭같이 산다 하여도 실망하지 마십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장래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을 믿으십시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며,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The Man Whose Name Meant “Laughter”
Genesis 21:1-7
There are those who donot have a presence. The kind of people you can’t remember from a meeting or a function, the kind you remember only vaguely, the kind that make no difference whether they were there or not.
One day, I was piqued by a curiosity: If such a person existed in the Bible, who would it be? Of course, the most insignificant oneswould not even be recorded. But, among those recorded in Scripture, who has the weakest presence?
After some thought, one man came to my mind: Isaac. Genesis chapters 1-11 record God’s creation story,and chapters 12-50 the patriarchs, Abraham, Isaac, Jacob, and Joseph, among whom Isaac is given the least prominence.
So Icounted Isaac’s name in the Bible.In Scripture Abraham (or Abram) is mentioned 290 times, Jacob 365 times, and Israel, Jacob’s new name, countless times. Joseph is mentioned 260 times.
Then what about Isaac? I looked him up in the Korean Bible with curiosity. To my surprise,“이삭,” the Korean transliteration of Isaac, appeared much more frequently than I had expected: 164 times!
So I thought, ‘Of course! It’s Isaac! I shouldn’t be surprised.’ Butthen when I looked up each occurrence and the context in which it was written, what would I find? In about 100 cases, the Korean transliteration of Isaac referred to the Korean word for wheat. You see, in Korean the two are homonyms. Furthermore, in many cases Isaac was mentioned not independently but in tandem with Abraham and Jacob: for example,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 So, it turns out thatIsaac’s name is mentioned only 70 times in the Bible.
Isaac’s role and presence are also meager even in terms ofthe plot of Genesis. Abraham’s story starts in chapter 12 and ends in chapter 25 with his death. Jacob’s story, however, begins in chapter 25, too. Accordingly, although Isaac appears in Genesis chapters 21-28, he is always depicted in connection to someone else: first, to his father, and second, to his sons, Jacob and Esau. The only part where he is described independently is when he wanders here and there to dig wells.
One aspect about Isaac’s story draws our attention: He never had a dramatic, independent encounter with God. God called Abraham in a very personal way, blessed him, and directed him to leave his homeland. Jacob met God deeply in a dream in Bethel, making a pledge to Him. Joseph had specials dreams as well as a special gift of interpreting them. Yet none of these things happened to Isaac. It appears he did not have such a special, independent relationship with God.
A common desire among us is for God to give us an undeniable confirmation that we are His—by ground-shattering, miraculous events such as healings or raising the dead. However, even in the Bible, many did not experience such miracles ora special relationship with God. Isaac was one of them.
Of course, there was his experience at Mount Moriah as the sacrifice. Yet,this event is recorded first and foremost as a display of Abraham’s faith, notIsaac’s, andas Abraham’s experience, not Isaac’s.
The most independent and prominent experience of Isaac in terms of his faith was when he prayed for Rebekah to become pregnant: “Isaac prayed to the Lord on behalf of his wife, because she was childless. The Lord answered his prayer, and his wife Rebekah became pregnant.” (Genesis 25: 21)
Brothers and sisters, if you had a dream of a dragon flying to heaven before getting pregnant, what would your hopes be for the child? Wouldn’t the baby grow up to be someone great? Your hopes would be high. Well, this was the case of Isaac.
In Genesis chapter 12 Abraham left his home for the land God showed him after receiving God’s promise that He would make a great nation out of him. From the very beginning God gave Abraham a grand vision about a great people. But when it seemed God wasn’t fulfilling that promise anytime soon, Abraham appointed Eliezer, his servant, heir. At this God spoke clearly to Abraham that one of his offspring would become heir and his descendants would become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Still, Abraham was childless. Accordingly, Sarai and Abraham decided to get a child through Hagar, Sarai’s servant, who gave birth to Ishmael. However, God said even more clearly, “Yes, but your wife Sarah will bear you a son, and you will call him Isaac.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with him as an everlasting covenant for his descendants after him.” (Genesis 17:19)
This was how Isaac was born. So, brothers and sisters, imagine your hopes for this child if you were the parent.
In most cases in the Bible, a child born with a revelation from God became a great figure. Samuel, whom Hannah conceived after praying with all heart to God, did many great things for Israel as a prophet. Samson, whom Manoah got through a revelation from God, also did amazing things for Israel as a great warrior judge. John the Baptist was born after an angel visited Elisabeth. Our Lord Jesus was also born after an angel appeared to Mary.
Compared with all of them, Isaac’s case is strange. Although God made Abraham and Sarah wait almost forever for their son, the life of Isaac was neither outstanding nor blissful.
Isaac appears merely as a sacrifice in his father’s story in which Abraham offers his only son whom he got at the age of 100. Isaac plays only a small, supporting role in the greatstory of his father. He appears as a supporting role, again, in his son’s story where Jacob tries to steal Esau’s blessing. After that, there is no significant mention of Isaac.
Then what can we learn from his story?
This is how the Bible describes Isaac’s birth: “Abraham was a hundred years old when his son Isaac was born to him. Sarah said, ‘God has brought me laughter, and everyone who hears about this will laugh with me.’” (Genesis 21: 5-6)
Isaac’s name means “laughter.” On the one hand, it means that Isaac brought joy and laughter to his parents who conceived him at an impossible age of 100. One the other, it means that people laughed when they heard this and when he was born. That is why he was born with this name.
Then did Isaac himself laugh a lot in his own life? Many wouldagree that the following sentence wraps up his life:“A man who was born in a most extraordinary waythrough God special prophecy and promise, but whose life ended in a most ordinary way…”
What do you think Abraham thought of him? Well, it seems Abraham wasn’t completely at ease about his son. Before he died, he called a trusted servant and ordered him to get a wife for Isaac. Perhaps, he was worried that Isaac had not yet found a woman to marry even when he was way past an eligible age.
In a word, it seems Isaac was a passive and frustrating person.
Let’s look at this life. The first important event after coming to age was getting tied up by his father to become a sacrifice. He could have resisted, but he didn’t. There is no record or evidence of him doing so. Isaac was an obedient son.
Yet, he was not blessed greatly for his obedience. While Abraham was greatly praised and recognized by God for what he did at Mount Moriah, God remained silent about Isaac.
When Abraham’s servant brought him Rebekah, he did not oppose, either. He married her and had no other wives. According to the Bible, he did not have concubines or any other romantic relationship. He met this one woman, married her, and lived an ordinary life. A life by the book.
This, however, does not mean his life was full of bliss. He and Rebekah were not on the best of terms. We can tell from several instances in the Bible that their relationship had fissures and conflicts: “Isaac, who had a taste for wild game, loved Esau, but Rebekah loved Jacob.”(Genesis 25: 28) This verse symbolically captures the couple’s distance.
A couple may have different tendencies and tastes. But in the case of Isaac and Rebekah the gap in their relationship was quite serious. Rebekah tricked her husband when he tried to bless Esau. She could havetalked with her husband on the matter, but there was no such dialogue. Their relationship was, almost certainly, strained. Communication was lost.
In the scene where Isaac’s servants and the herders of Gerar quarrel in the Valley of Gerar over a well, Isaac’s passive character and his aversity to fighting are all too evident:
“Isaac’s servants dug in the valley and discovered a well of fresh water there. But the herders of Gerar quarreled with those of Isaac and said, ‘The water is ours!’ So he named the well Esek, because they disputed with him. Then they dug another well, but they quarreled over that one also; so he named it Sitnah. He moved on from there and dug another well, and no one quarreled over it. He named it Rehoboth, saying, ‘Now the Lord has given us room and we will flourish in the land.’”(Genesis 26: 19-22)
When faced with a dispute, Isaac left and dug another well. When another quarrel arose, he left again. This was Isaac. Interestingly, however, Isaac experienced God’s blessing in the process of fleeing and digging the next well.
Isaac was also sick in his old age. His eyesight became so bad that he couldn’t even distinguish his sons. He was almost blind. Abraham died of old age, but there is no record of him having weak eyesight. Yet, Isaac was frail and ill in his old age. Furthermore, Isaac was tricked and betrayed by his wife and son.
I sometimes wonder, ‘Did Isaac consider his life happy or meaningful?’
His passive and inactive attitude is most poignant in the scene where Esau begs his father to bless him after finding out that his brother had stolen his blessing. If I were Isaac, I would have begged God, ‘Lord, can’t you just cancel the prayer I prayed for Jacob? It was a mistake!’ Then I would have blessed Esau. Who could blame Isaac for going back on his prayer? But he doesn’t. He just says, “Esau, I have no more blessings to give you.” Although he was tricked into blessing the wrong son, he did not have the will or courage to reverse his action.
This ultimatelyled Esau astray. In his fury, he even thought to kill his brother, completely destroying their relationship. Furthermore, Isaac never saw Jacob again. Instead he was stuck with bitter Esau for the rest of his life.
This was the life of Isaac. The life of the one whom God told Abraham, ‘He will be your heir—not Eliezer or Ishmael.’ The life of the one whom Abraham got miraculously at the age of 100.
If Abraham had lived to witness his son’s life to the end, can you imagine his disappointment? Isaac was a precious son of promise, conceived by a miracle. Yet, in his life, there was no promise or miracle.
Isaac led a sorry life. His wells were stolen, he got into quarrels, he had an unhappy marriage, he was tricked by his own son, he became almost blind, and even the son he loved more, Esau, betrayed him.Abraham would have been dismayed, too.
But, brothers and sisters, isn’t Isaac’s life similar to that of ours? Isn’t it all too similar with our own mediocre lives? We, too, quarrel with our spouses, and we, too, have children who deceive and betray us. In fact, aren’t our lives more pathetic than Isaac’s?
If only God had spoken in thunder and lightning when Isaac was quarreling over the wells…. How grand would that be? But such miracles didn’t happen.
Joseph became prime minister, David a king, Abraham the Father of Faith, and Jacob a great patriarch. But Isaac? No such title or praise was given him. There could not have been a more mediocre life.
Yet his name is mysterious: Laughter. His name tells us there was laughter when he was born and that the boy laughed. The boy laughed. Isaac laughed throughout his life because of his name.
This is what Hebrews says about Isaac: “By faith Isaac blessed Jacob and Esau in regard to their future.” (Hebrews 11:20)
The only thing he did was to bless his children. But one special phrase is added to this sentence: “in regard to their future.”
Isaac’s present wasn’t so happy. But he saw the future. And he blessed his children “in regard to their future.”
Sometimes, we may live completely undynamic lives, only raising and providing for our children. Such was the life of Isaac. Yet, his faith shines.
‘I, Isaac, will laugh even though my present is difficult, even if my life ends in a mediocre way. I will bless my sons as I look to the future.’
This was Isaac’s greatness. There were no miracles in his life, and his life was filled with strife, but he laughed. He made others laugh. Furthermore, he prayed blessings over his future, and the future of his sons and grandsons.
Isaac lived an extremely ordinary life, but played an enormous role as an important link that sustained agreat family of faith.
Look at Romans 9:6: “It is not as though God’s word had failed. For not all who are descended from Israel are Israel. Nor because they are his descendants are they all Abraham’s children. On the contrary, ‘It is through Isaac that your offspring will be reckoned.’” (Romans 9:6-7)
Only though Isaac will Abraham’s offspring be reckoned. Isaac was a seed of promise. Although nothing amazing happened in his life, he was the seed that held God’s promise. He withstood his life, and, in so doing, he passed on a great blessing—a great seed—to his descendants.
This was how he became a great patriarch.
This is why the Bible says,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
Now we know. Without Isaac, there would have no Jacob, and God’s promise to Abraham would have become nothing.
Therefore, don’t be dismayed if your life seems like that of Isaac. We are God’s people who hold His promise. Believe that amazing things will happen through you in the future. Our God is a God of promise. He is able.
창세기 21: 1 ~ 7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믿음의 조상 중 이삭은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존재감 없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존재감 없는 존재로 평가될 때도 있죠. 회의나 어떤 모임에 참석하면 그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오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반대로 그 사람이 왔어도 큰 의미가 없는 존재가 종종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성경을 읽다가 ‘성경 속에 존재감이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겠죠. 그러나 성경에도 나오고 우리도 제법 알 만한 사람 중에서 존재감이 없는 사람은 누구일지 생각해 보았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삭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서 이삭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그의 이름이 몇 번이나 거명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창세기 1~11장까지는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와 원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12장부터는 4명의 족장 이름이 나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이죠. 과연 성경에는 각각의 이름들이 몇 번이나 나올까요? 아브라함, 아브람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횟수는 대략 290회였습니다. 야곱의 경우는 야곱이라는 이름만 365회 나왔고, 이후 새 이름인 이스라엘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거명되었습니다. 요셉은 어떨까요? 요셉 역시 260회 정도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궁금해 했던 이삭, 이삭의 이름은 몇 번이나 나오는지 찾아보았더니 164회 정도 나왔습니다. 생각보다는 많이 나온 걸 보면서 ‘역시 족장은 족장이고,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구나’ 생각하면서 이삭의 이름이 어떤 경우에 거론이 되었는지 하나씩 하나씩 찾으며 성경을 읽어 갔습니다.
한참을 읽어 가다 보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아닌 다른 단어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창세기가 지난 이후부터는 밀 이삭 또는 이삭을 자르다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정리해 보니 대략 100회 정도가 이름이 아닌 이삭이라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았더니 의미 없이 불리던 이삭의 이름도 여러 번 등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과 같은 표현에 함께 들어가 있는 경우였습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이삭의 이름이 사용된 경우는 약 70회 정도였습니다. 성경에서 이삭의 이름은 적게 언급된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창세기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구조를 보아도 이삭은 크게 존재감이 없습니다. 아브라함 이야기가 12장부터 25장에 걸쳐 소개됩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12~25장까지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죽음이 소개된 이후 같은 장인 25장에는 에서와 야곱의 출생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21장부터 28장까지 이삭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앞에는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이삭의 이야기가, 뒤로 가면 리브가와 에서, 야곱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의 이야기가 나오는 형태입니다. 한마디로 이삭의 이야기만 독자적으로 나오는 부분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삭이 여러 곳을 다니며 우물을 팠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이삭의 이야기에서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의 인생에는 하나님과의 극적인 만남의 경험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를 직접 만나 주시며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죠. 이것이 아브라함과 하나님 간의 직접적인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하단으로 가고 있을 때, 벧엘에서 꿈을 꾸며 하나님을 만나죠. 특별히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에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는 경험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경우는 어땠습니까? 요셉은 많은 고생 끝에 이집트에 끌려가서 힘든 감옥 생활을 했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꿈을 꾸며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삭에게는 모리아 산의 경험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 주는 특별한 사건으로 이해될 뿐, 성경은 이삭의 믿음이나 순종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이삭이 독자적으로 하나님과 만난 신앙적인 경험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사건은 아마도 리브가의 임신을 위해 기도했고, 그 기도대로 리브가가 임신했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창세기 25장 21절 말씀입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창세기 25장 21절)
이삭이 긴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그분의 능력을 경험했던 사건이 있었다면, 아마도 리브가의 임신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만약에 아이를 낳기 전 태몽으로 엄청난 꿈을 꿨다면 어떠실 것 같습니까? 용이 들어오는 꿈을 꿨다든지,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셨다면 아이를 향한 기대가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이 아이가 무엇이 될까? 생각하며 아이를 주의 깊게 키우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라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생각해 보면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사람이 태어나겠구나 예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고향에서 끌고 나오실 때에 주셨던 약속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해 주겠다.” 그러니까 자손에 대한 축복을 하신 겁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비전을 주시면서 아브라함을 고향에서 끌어내셨죠.
그러나 그에게 자녀를 바로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긴 시간을 기다려 보지만 자녀가 없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나아가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 내용이 창세기 15장에 나오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난 자라야 상속자가 될 것이다”고 말씀하시며 하늘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들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아지게 하시겠다고 꿈을 꾸게 하셨죠. 그러나 그 다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며, 곧 태어날 새 아이가 아브라함의 상속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 19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장 19절)
이렇게 하나님이 꿈을 주시고 예언의 말씀을 주셔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이삭이었습니다.
<특별한 계시를 받고 탄생한 이삭이었지만 그는 매우 수동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특별한 과정을 통해 태어난 아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기대를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태어난 성경 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큰 업적들을 남겼습니다. 한나의 경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사무엘을 낳죠. 사무엘은 사울 왕과 다윗 왕을 세우며 선지자와 사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삼손을 낳지요. 이후 그는 위대한 장수가 되어 사사시대 큰일을 합니다. 엘리사벳에게 나타난 천사가 세례요한의 탄생을 예고했고,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견합니다. 이들은 성경에서 위대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비교해 본다면 이삭의 경우는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로 하여금 이삭의 탄생을 기다리게 하시며 100세가 되어서야 아들 이삭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탄생 이후에 이삭의 삶은 그다지 굵지도, 그렇다고 행복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때 이야기 속에서 이삭은 한낱 조연에 불과한 모습이죠. 야곱이 복을 받으려고 형 에서보다 앞서려고 할 때조차도 이삭은 야곱을 축복해 주는 주연으로 등장합니다. 이삭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은 성경에 많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삭이 태어나던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세기 21장 5~6절)
‘이삭’이라는 단어는 ‘웃음’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사라와 100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웃게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 역시 소식을 듣고 웃게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가 태어나면서 웃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정말 웃으면서 살았을까요? 이삭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100세의 아버지를 두고 기적적으로 태어난 사람, 하나님의 특별하신 예언 가운데 태어난 사람, 하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보았을 때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보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죽기 전 늙은 종에게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나이가 제법 든 자식이었지만 이삭에게는 말하지 않고 종, 그것도 늙은 종에게 시키며 그를 통해서 이삭의 아내를 얻도록 했습니다. 제대로 배필도 구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아브라함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한편으론 매우 수동적이고, 어찌 보면 답답한 이삭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길을 한 번 살펴봅시다. 이삭이 태어나 어느 정도 의식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에게 처음 일어난 일은 아버지가 칼을 들이대는 상황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을 나이였지만 이삭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모양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이삭이 큰 축복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을 크게 인정받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지만, 이삭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를 향해 하나님은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리아 산에서의 주연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종을 보내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데려오도록 하였을 때,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거절하거나 혹은 다른 특별한 사건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대로 아내를 맞이했습니다. 그 이후 그에게 다른 아내가 있었다는 기록은 보이질 않습니다. 아버지가 정해 준 한 여인을 만나서 평생 동안 그녀와 살다 간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갔지만, 조금은 답답해 보이는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좋은 부부 관계를 가지며 살았을까요? 성경을 살펴보면 두 사람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창세기 25장 2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창세기 25장 28절)
리브가와 이삭 사이에 어떤 간격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 또는 성향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리브가와 이삭은 굉장히 가깝지 않은 사이였음이 분명합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을 때 자기 나름대로 다른 계획을 세우죠. 아내인 리브가가 남편인 이삭에게 청원을 할 수도 있었을 법한 상황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과 소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짐작컨대 이삭과 리브가의 부부 관계는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관계였음이 분명합니다. 서로 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랄에서 이삭의 종들과 그랄 사람들이 우물을 놓고 싸우는 장면은 이삭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싸움을 싫어했는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창세기 26장의 말씀입니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창세기 26장 19~22절)
이삭은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그곳을 떠나 새로운 우물을 짓곤 했습니다. 시비를 걸면 떠나고, 싸움이 일어나면 또다시 떠나는 게 이삭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삭은 쫓겨 다니면서 우물을 팠지만, 결국은 이를 통해 번성하게 되는 특별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병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들 에서와 야곱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눈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시력을 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죽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삭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고 분명히 증언합니다. 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귀한 아들 야곱에게 속는 안타까운 경험을 합니다. 아들과 아내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죠. 이런 그에게 과연 인생이 의미가 있었을까요? 인생을 살 만한 맛이 있었을까요? 참 궁금합니다.
<이삭의 수동적인 삶 가운데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던 믿음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삭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는 이후 야곱을 축복한 후에 에서가 돌아왔을 때, 에서가 자신에게도 다시 축복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제가 만일 이삭이었다면 “조금 전 야곱에게 기도했던 것 취소합니다, 하나님.” 말하면서 에서를 축복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구절도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야속하게도 이삭은 에서를 향해 해 줄 수 있는 축복이 얼마 없다고 말합니다. 야곱에게 속아서 축복을 해 주었지만 그것을 바꿀 의지도, 용기도 없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에서가 빗나가죠. 야곱을 죽이려는 생각까지 합니다. 그리고 가정은 어려운 국면에 처합니다. 야곱은 도망할 수밖에 없었고, 리브가와 에서의 관계는 틀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 에서와의 관계도 틀어져서 죽을 때까지 삐뚤어진 에서와 살아야 했던 슬픈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삭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에셀도 아니고 이스마엘도 아니고, 반드시 이삭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삭의 인생은 그저 그랬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인생을 보았다면 참으로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삭의 인생이 혹시 우리의 모습 같지는 않습니까? 우리와 어딘가 닮지는 않았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도 됐죠. 아들 야곱은 이스라엘의 족장이라도 됐죠. 그러나 이삭에게는 그 어떤 호칭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아브라함에서 야곱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함께 끼어 있는 이름 정도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삭은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의 삶을 돌아보도록 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살펴보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이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의 이름은 ‘웃는다’, ‘웃다’ 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웃었다는 의미도 함축합니다.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난, 참으로 평범한 일상의 삶으로 태어난 그 아이가 태어나서 웃습니다. 이후로 이삭은 이름 때문에 웃으며 산 사람이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삭의 믿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히브리서 11장 20절)
믿음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만, 이삭과 관련된 주도적인 이야기는 이 한 절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삭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입니다. 이삭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한 일, 단지 그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장차 있을 일, 곧 미래를 내다보며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삭의 믿음입니다. 이삭의 현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먼 훗날을 봅니다. 자신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통해 먼 미래를 봅니다. 그리고는 장래 일을 놓고 아이들을 위해 축복합니다.
때로는 우리 삶이 역동적이지 못하고 자녀들을 위하여 일하다 끝나 버리는 인생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이삭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믿음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비록 현재가 어렵지만, 혹시라도 이렇게 평범하게 끝난다고 할지라도 나는 웃는다. 나의 아들을 바라보면서 웃는다.’ ‘현실은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나는 웃는다.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할 것이다. 나는 나의 미래, 아니 나의 후손의 미래를 위해 믿음을 가지고 축복의 기도를 드린다. 이 미래를 위해 나는 기도한다.’ 여기에 이삭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평범한 인생을 살았지만 참으로 위대한 가문을 이어 주는 큰 역할을 감당합니다. 로마서 9장 6~7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로마서 9장 6~7절 중)
이삭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비록 그의 삶에는 능력 있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삭은 분명 약속을 잉태한 씨앗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삶을 견뎌냈고 놀라운 축복을 자손들에게 넘겨줍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족장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 사이에 그 이름을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삭이 없이는 결코 야곱이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삭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 결코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평범한 것같이 살았던 이삭의 일생.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고, 약속을 품은 채 살아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삭같이 산다 하여도 실망하지 마십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장래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을 믿으십시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며,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021년 9월 1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웃음이란 불린 사람 – 이삭” (창 21:1~7)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86장, 545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창 21:1~7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9월 1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이삭의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예언과 말씀 속에 기적적으로 태어난 사람이지요. 그랬기에 더 특별함을 기대했을 법한데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기대와는 달리 너무도 평범하고 존재감이 크지 않습니다. 애타는 기다림과 특별한 기대를 안고 태어난 이삭, 그럼 그는 자신의 인생 속에서 이름처럼 웃으며 살았을까요?
설교의 요약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전폭적인 일하심과 기적 사건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고히 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성경의 인물 모두가 특별한 관계나 기적을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와 일하심 속에 있었던 이삭은, 놀랍게도 탄생 이후엔 그 존재감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삶도 아니었습니다.
이삭의 행보를 보면 대단히 수동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순종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40세가 될 때까지 배필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 자신의 우물을 빼앗기고 분쟁에 휩싸여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도리어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아버지가 어렵게 구해다준 아내와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고, 노년에 시력을 다 잃고 사랑하던 아들에게 속임을 당하고, 결국 두 아들과의 관계도 깨져 있는 이삭의 인생 전체를 아버지 아브라함이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이것이 엘리에셀도 아니고, 이스마엘도 아니고, 반드시 이삭이라고 하셨던, 100세가 되어 얻은 기적의 아들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삭, 그의 이름이 참 묘합니다. 이삭은 언제나 그 이름 때문에 웃으며 산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삭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히 11:20) 그에게 현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장래 일을 놓고 아들들을 축복하였습니다. “비록 나의 현재가 어렵고, 그렇게 끝이 난다 하더라도 나는 웃는다. 장래를 바라보면서, 나의 아들들을 축복한다.” 이삭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평범한 삶을 살았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견디면서 끝내 그 약속을 잇는 역할을 잘 감내 하였습니다.
현재 내가 기대한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역동적이지 못하고 그저 자녀들을 위해 살다 끝나는 인생이라도, 내 삶이 이삭처럼 보여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놓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통하여 장차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을 믿으십시오.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은 약속을 친히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누기
1. 이삭은 ‘웃음’이란 뜻입니다. 내 이름은 어떤 뜻인가요? 그 이름이 삶에 미친 영향이 있을까요?
2. 주님께서 장래에 웃게 하실 것을 고대하며, 오늘도 소망으로 붙든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마무리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비록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내 삶이 기대보다 못할지라도, 약속을 붙잡고 나가는 신앙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약속 붙들고 웃을 수 있는 사람, 다른 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