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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

이사야 7:1~7, 10~12

김경진 목사

2025.09.07

<유다의 위기 앞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약속과 위로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의 일입니다. 이사야는 남유다의 선지자로서 남유다의 10대 왕인 웃시야로부터 13대 왕 히스기야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40여 년 동안 예언 활동을 한 선지자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중 아하스왕 시대에 일어났던 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즉, 이 사건은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함께 동맹을 맺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던 사건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전체적인 사건의 개요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합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사 7:1)

이렇게 전체적인 사건의 개요를 전한 후의 이야기는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사 7:2)

아람과 에브라임이 동맹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유다에게 너무나도 절망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유다는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유다의 국력은 북이스라엘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9대 왕이었던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도전하였다가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아마샤가 사로잡혀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유다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서, 아하스를 만나거라. 그가 ‘세탁자의 밭’으로 가는 길, 윗못 물 빼는 길 끝에 서 있을 것이다.” (사 7:3, 새번역)

그리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아하스 왕에게 전할 말씀의 내용을 주십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사 7:4~7)

이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하여 쳐들어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유다를 점령하여 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친 아람, 친 에브라임 성향의 왕을 세우고자 계획하고 있지만, 그 일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앞에 선 유다 왕 아하스는 선하지 않은 왕이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들은 아하스 왕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유다와 그를 도와주신다는 이 말씀이 참으로 감사하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열왕기서는 아하스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왕하 16:1~4)

아하스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 왕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이방의 가증한 것들을 따라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몰록 제사까지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왕이었습니다. 산당들을 그대로 두어서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방치했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을 수가 없는 왕이죠. 하나님 앞에서 악한 왕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하스를 위기에서 구해 주신다고 합니다. 아하스로서는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죄인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이 되어 주셔서 전쟁을 돕겠다고 말씀하시니, 그에게는 정말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하스를 구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죠. 그러고는 이사야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사 7:10~11)

이 말씀의 뜻은 이렇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유다와 아하스를 구해 주실 것인데, 그것을 네가 믿는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징조를 보여 주시고 그 말씀이 참임을 확증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후에 히스기야왕의 이야기 속에 나타납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15년간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징표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가 얻은 징표는 해시계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징조를 히스기야에게 보여 주심으로써 그의 생명 연장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결국 아하스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버리고 인간적인 노력과 선택을 의지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을 네가 믿느냐’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 아하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사 7:12)

이 대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믿음이 없던 아하스가 갑자기 믿음이 생겨서 하나님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족하니 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니 징표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전적인 믿음의 고백일까요? 언뜻 보면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말은 참으로 놀라운 믿음의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하스가 만약 이 말씀을 그대로 믿었더라면 그는 즉시 하나님께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겠죠. 성전에 올라가 기쁨의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아하스는 이후 어떻게 행동하였을까요? 열왕기서는 그의 행위를 이렇게 전합니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왕하 16:7~8)

아하스는 신앙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는 이사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외교적인 전략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가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성전에 있는 금과 은을 모두 빼내어서 그에게 전달하기까지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말하였지만, 정작 아하스는 하나님께 가지 않고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을 보십시오.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왕하 16:7)

이 말은 아하스가 하나님께 했어야 할 말입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이 간청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 디글랏 빌레셀에게 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하스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사야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예언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고 세상의 힘 있는 자에게 붙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왕하 16:9)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의지했던 아하스. 자신의 정치적인 판단을 의지했던 아하스는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람 왕 르신은 죽었고, 이스라엘 왕 베가 역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는데도 위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이후에 유다 왕 아하스는 직접 디글랏 빌레셀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메섹을 방문하여 이방인의 재단을 봅니다. 그는 부러워하며 그것을 본떠서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재단을 바꾸도록 합니다. 그리고 성전의 제사 방식까지 앗수르의 제사 방식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이러한 아하스의 행위를 보면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정치와 외교로 당면한 문제를 풀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전이 그에게는 하나님께 능력을 받는 곳이 아닌, 그저 나라의 정신을 가다듬는 하나의 종교적 신전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신 제사의 의식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고칠 만큼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왕이었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죄는 세대를 건너 결국 패배의 결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듯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오늘 설교의 제목과 관련하여 한 가지를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봅시다.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

긴 문구입니다. 이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떤 한 장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사 7:3)

하나님의 말씀 속에 이 장소가 드러납니다.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

여러분, 성경의 이 부분을 읽으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저는 이 부분을 읽다가 ‘왜 이렇게 장소의 명칭이 길고 복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장소의 의미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은 이 장소에서 아하스를 만나라고 말씀하셨을까? 왜 성경은 이 장소의 이름을 유독 길게 전하고 있는 걸까? 이 지명이 어떤 큰 의미가 있는지 본문의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그 이유를 바로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분명하게 지정하여 말씀하신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이라는 표현이 그냥 지나가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우연처럼 적혀 있는 이 장소의 명칭은 다른 한 곳에서 발견됩니다. 열왕기하 18장 17절 말씀입니다.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왕하 18:17)

때는 한 시대가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 왕이 다스리던 시대입니다. 앗수르 왕이 유다를 침공한 때입니다. 앗수르 왕은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에게 대군을 거느려 예루살렘을 치게 하죠. 자신의 아버지 아하스가 통치하고 있던 때에는 동맹국처럼 살았던 나라였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충성하였고, 앗수르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자 앗수르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유다를 침공하려고 합니다. 엊그제까지 우방과 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앗수르가 이제는 유다를 침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장면에서 한 장소를 다시 소개합니다.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

참으로 너무나도 정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에게 전했던 말씀을 다시 떠올리게 하시죠.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셨습니까?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징조를 구하라. 내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어 주겠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으면 내가 이 어려움에서 너를 구원하여 주마”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말씀을 어디서 하셨습니까?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외교와 정치적인 방법으로 인간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앗수르를 선택하여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판단이 옳은 듯 보였습니다. 적절하게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하게 되었고, 살아남았다는 환희로 아마 자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시간이 지나자 아하스의 지략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얼마 전 유다를 도와주었던 앗수르의 침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도록 하나님은 한 장소를 지정하셨고, 이사야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아하스에게 이야기를 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하스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그 장소에서 적군 앗수르의 군사들과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입니다.

<불신의 결과를 알고 깨어서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우리의 잠깐의 성공이 과연 진정한 성공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 없는 나의 생각, 나의 판단만으로 성공했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 그 자리가 혹시 또 다른 패망의 단초, 패전의 실마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장소 명을 통해서 우리는 늘 가지고 있던 한 신앙적 고민의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히스기야왕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정직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긴 왕이죠. 성경은 히스기야왕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왕하 18:3~4)

히스기야는 드물게 다윗의 길을 따랐던 왕이었습니다. 선한 왕, 정직한 왕이었고, 모든 산당들을 제거하며 바알의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깨뜨렸던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섬겨 왔던 놋뱀을 부수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모세가 만들어 놓았던 놋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 가고 있을 때 들어 올려졌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놋뱀이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것조차도 부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느후스단, ‘그릇에 불과하다 놋 덩어리에 불과하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만큼 과거의 어떤 것에 매이기보다는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드리고 영광 돌려드리기를 원했던 왕이었습니다. 역대하 19장을 보면 그의 선한 행적이 여럿 등장합니다. 성전 문을 열어 수리하였고, 성전을 깨끗이 정리하였습니다. 제사 일들을 다시 회복하였고,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으며, 유월절을 다시 지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왕하 18:5~7)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왕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있은 후에 앗수르 대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들어오는 장면이 전개됩니다. 한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죠.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신실하고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왕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 왜 앗수르의 침공을 허용하시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들지요. 하지만 우리는 앗수르의 군대가 점령하려고 섰던 장소의 명칭을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들(앗수르)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끝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왕하 18:17)

히스기야 시대에 받은 앗수르의 공격은 히스기야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이 아들 때에 이르러 큰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지요.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성전에 스스로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왕하 19:32~34)

아버지 아하스에서 시작된 일이 히스기야에게까지 이르게 되었고, 히스기야는 그 위기를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신앙의 비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불신앙의 자리에 섰던 아하스, 그리고 신앙의 자리에 섰던 히스기야. 이 자리에 아하스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이후에 히스기야도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의 방향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결단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리입니까? 그 자리는 나의 지혜와 선택의 자리입니까?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 그 길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얻는 모든 소망의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At the End of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Launderer’s Field

Isaiah 7:1-7, 10-12

The events of today’s passage take place during the time of Isaiah. Isaiah, a prophet of Judah, prophesied for 40 years, from the reign of King Uzziah, the tenth king of Judah, to King Hezekiah, the thirteenth king.

Today’s Scripture describes an incident that happened during the reign of King Ahaz. The kings of Aram and Israel forged an alliance and attacked Jerusalem. This is the overview given in today’s text:

“When Ahaz son of Jotham, the son of Uzziah, was king of Judah, King Rezin of Aram and Pekah son of Remaliah king of Israel marched up to fight against Jerusalem, but they could not overpower it.” (Isaiah 7:1 NIV)

After this overview, the Bible gives a more detail account about the event:

“Now the house of David was told, ‘Aram has allied itself with Ephraim’; so the hearts of Ahaz and his people were shaken, as the trees of the forest are shaken by the wind.” (Isaiah 7:2)

Hearing that Aram and Israel had allied themselves, Judah began to tremble. This was because at the time Judah wasn’t even strong enough to defeat Israel. Amaziah, the ninth king of Judah, had already unsuccessfully challenged King Jehoash of Israel, leading to the fall of Jerusalem and Amaziah’s capture. So, news of an alliance between Aram and Israel would have terrified the people of Judah.

This is when God gave Isaiah a message to give to King Ahaz:

“Go out to meet Ahaz, you and Shear-Jashub your son, at the end of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Launderer’s Field.” (Isaiah 7:3 NIV)

God then gives Isaiah the message he is to deliver to King Ahaz. The prophecy is as follows:

“Say to him, ‘Be careful, keep calm and don’t be afraid. Do not lose heart because of these two smoldering firebrands—because of the fierce anger of Rezin and Aram and the son of Remaliah. Aram, Ephraim and Remaliah’s son have plotted your ruin, saying, Let us invade Judah; let us tear it apart and divide it among ourselves, and make Terah’s son king.’ Yet this will not happen. It will not take place.” (Isaiah 7:4-7 NIV)

In short, this was good news for King Ahaz and the people of Judah. God is saying that even if King Rezin of Aram and King Pekah of Israel formed an alliance and attacked Jerusalem, Judah need not fear. The alliance will not be able to defeat Jerusalem.

Though Aram and Israel seek to invade Jerusalem, remove Ahaz, and install a pro-Aram, pro-Ephraim king, this will not succeed either.

What would Ahaz have felt upon hearing this prophecy? Most likely, he would have felt grateful, knowing that God was promising to help Judah.

However, King Ahaz was not an honest king before God. This was 2 Kings’ assessment of him:

“In the seventeenth year of Pekah son of Remaliah, Ahaz son of Jotham king of Judah began to reign. Ahaz was twenty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in Jerusalem for sixteen years. Unlike David his father, he did not do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his God. He followed the ways of the kings of Israel and even sacrificed his son in the fire, engaging in the detestable practices of the nations the Lord had driven out before the Israelites. He offered sacrifices and burned incense at the high places, on the hilltops and under every spreading tree.” (2 Kings 16:1-4 NIV)

Ahaz did not serve God faithfully. Instead, he followed the detestable practices of the nations, even sacrificing his son in the fire for Molech. He allowed the people to continue worshiping other gods at the high places he left standing.

Despite his failings, it is remarkable that God still promised to deliver Ahaz from his crisis. How great is His grace? Even though Ahaz was a sinner and had not done anything right, God was willing to stand by him. This was an unfathomable grace.

God promised to rescue Judah and Ahaz from the crisis. This is what God says to Ahaz through Isaiah:

“Again the Lord spoke to Ahaz, ‘Ask the Lord your God for a sign, whether in the deepest depths or in the highest heights.’” (Isaiah 7:10-11 NIV)

This means God will save Judah and Ahaz. And if Ahaz believes this, he should ask for a sign. You may remember a similar story in the Bible regarding King Hezekiah. When Hezekiah was gravely ill, God promised to extend his life by 15 years. At that time, Hezekiah asked God for a sign. He finally asked God to make the shadow on the sundial go back ten degrees, which God granted. By this sign, God confirmed He would indeed lengthen Hezekiah’s life.

In the same way, God told Ahaz to ask for a sign. But this was the king’s unexpected reply:

“But Ahaz said, “I will not ask; I will not put the Lord to the test.” (Isaiah 7:12 NIV)

How should we interpret this answer? Does it mean that since Ahaz fully believes the word of God, he does not need to ask for a sign? Does it imply that he possesses absolute faith?

At first sight, it may appear to be a faith-filled statement. “I will not put the Lord to the test.” How noble and confident that sounds! But is it really the case?

If Ahaz genuinely believed in God’s message, he would have gone to the temple to give thanks. He would have worshiped joyfully. But he didn’t. There is no record of him doing so. Then what were his actions after hearing this incredible prophecy?

Second Kings describes his subsequent actions:

“Ahaz sent messengers to say to Tiglath-Pileser king of Assyria, ‘I am your servant and vassal. Come up and save me out of the hand of the king of Aram and of the king of Israel, who are attacking me.’ And Ahaz took the silver and gold found in the temple of the Lord and in the treasuries of the royal palace and sent it as a gift to the king of Assyria.” (2 Kings 16:7-8 NIV)

Ahaz’s actions are incomprehensible from the perspective of faith. He ignores the message of God given to him through Isaiah. Instead, he tries to resolve the crisis by his own means of diplomacy.

He asks for Assyria’s help. He sends a messenger to Tiglath-Pileser, seeking his help.

Though Isaiah had told him that God would help him and that he should ask for God’s help, Ahaz ignored this and instead appealed to the king of Assyria, Tiglath-Pileser, not to God.

Look at what he says to Tiglath-Pileser:

“I am your servant and vassal. Come up and save me […].” (2 Kings 16:7-8 NIV)

These words should have been directed to God. They should have been Ahaz’s plea to God. But Ahaz makes this petition to the human king, Tiglath-Pileser, instead of God.

In conclusion, Ahaz did believe in God. He did not believe in God’s word, nor in God’s detailed prophecy given to him through Isaiah. He was a man of unbelief. He relied on human efforts to solve problems, depending on powerful people in this world to overcome his crisis. What was the outcome?

“The king of Assyria complied by attacking Damascus and capturing it. He deported its inhabitants to Kir and put Rezin to death.” (2 Kings 16:9 NIV)

The problem was temporarily solved. The king of Aram, Rezin, was killed, and the king of Israel, Pekah, also suffered significant setbacks.

Later, Ahaz travels all the way to Damascus to meet Tiglath-Pileser in person. After seeing the altar in Damascus, he even changes the altar in the temple of Jerusalem to resemble it. He also meddles with the temple’s sacrificial practices.

From these actions, it is clear that Ahaz was a king who had no faith in God. He tried to solve problems through politics and diplomacy, and the Jerusalem temple was just a religious facility to unite the country. His fear of God was so little that he had no qualms about changing the altar and the order of sacrifices which God had designed Himself. He did not know God; neither did he believe in Him.

Now, at this point, I want to check something related to the title of today’s sermon. Do you remember the title?

It is “At the End of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Launderer’s Field.” Yes, it is long. It refers to the name of a place. Today’s title indicates a place.

In our passage today, God says to Isaiah:

“Go out, you and your son Shear-Jashub, to meet Ahaz at the end of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Launderer’s Field.” (Isaiah 7:3)

This place name appears in God’s words: “at the end of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Launderer’s Field.”

What comes to your mind when you read this? I thought, ‘Why is this name so long and unique?’ My next question was this: ‘What significance does this place hold that God specifically told Isaiah to go out there and meet Ahaz?’

I couldn’t find a clear reason why this place was so significant, even after studying the texts surrounding today’s passage. Do you know why God instructed Isaiah to go to this very place to meet Ahaz?

It might seem like just any location, but I wonder why God designated this particular spot, “at the end of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Launderer’s Field,” for this encounter.

However, this name, which seems arbitrary, appears in another place in the Bible. Let’s look at 2 Kings 18:17:

“The king of Assyria sent his supreme commander, his chief officer and his field commander with a large army, from Lachish to King Hezekiah at Jerusalem. They came up to Jerusalem and stopped at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Washerman’s Field.” (2 Kings 18:17 NIV)

This was during the time of King Hezekiah, who came to the throne after his father Ahaz’s death. The king of Assyria was invading Judah. He sent the Tartan, the Rab-saris, and the Rabshakeh to attack Jerusalem. While it seemed like only yesterday that Ahaz, Hezekiah’s father, subjected himself to Assyria and Assyria defended Judah from Aram and Israel, now that same Assyria was invading Judah.

Interestingly, the Bible recalls and emphasizes a place name in this very scene:

“At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Washerman’s Field.”

How amazingly precise God’s word is. At this very moment, God reminds Hezekiah of His previous words to his father Ahaz.

What did God say to Ahaz in the past? “King Rezin of Aram and King Pekah of Israel will not succeed in their attempt to capture Jerusalem. So, Ahaz, ask Me for a sign. If you believe in Me, I will deliver you from this crisis.” These were God’s amazing words. Where did He say this? At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Washerman’s Field.

But Ahaz did not believe God’s word; instead, he chose his own diplomatic and political strategy. It was a human decision. He did not trust God; nor did he follow God’s way.

He chose Assyria, asked for its help, and overcame his crisis through its aid. At first glance, that decision seemed correct. Ahaz may have even celebrated his wisdom and survival among surrounding powers.

But what happened shortly after? What became of his strategy and feats?

The result was the attack of Assyria, the very country that had come to Judah’s aid not long ago.

In order to remind us of Ahaz’s story, God specifically chose a certain place. He made Isaiah go to that very place to meet Ahaz.

But Ahaz did not obey God. Meanwhile, Hezekiah later heard the deadly threats of the Assyrian army at the very same place that his father heard the prophetic message of God—“at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Washerman’s Field.”

What can we learn from this story? What is the Bible telling us about our own lives through it?

Can a temporary success achieved by abandoning God’s word be a true success?

Wouldn’t that incident, which led us to think success is possible without God though our own thoughts and judgement, turn into our downfall?

“At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Washerman’s Field.”

This name gives us an answer to another spiritual question.

King Hezekiah was truly faithful before God. God valued him greatly. This is what the Bible says about him:

“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just as his father David had done. He removed the high places, smashed the sacred stones and cut down the Asherah poles. He broke into pieces the bronze snake Moses had made, for up to that time the Israelites had been burning incense to it. (It was called Nehushtan.)” (2 Kings 18:3-4)

Hezekiah was a rare king of Judah who walked in the ways of David. He was honest before God, removed the high places, smashed the altars of Baal, and cut down Asherah poles. Furthermore, he destroyed the bronze serpent that Moses had made—something Israel had been burning incense to for many years. He even called it “Nehushtan,” which literally means “Bronze Thing,” indicating his desire to worship God alone wholeheartedly.

In 2 Chronicles chapter 19, many good deeds of Hezekiah are recorded. He repaired the temple doors, cleaned and restored the temple, kept the sacrifices,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sin offerings. It was also during King Hezekiah’s reign that the Passover was reestablished.

The Bible states:

“Hezekiah trusted in the LORD, the God of Israel. There was no one like him among all the kings of Judah, either before him or after him. He held fast to the LORD and did not stop following him; he kept the commands the LORD had given Moses. And the LORD was with him; he was successful in whatever he undertook. He rebelled against the king of Assyria and did not serve him.” (2 Kings 18:5-7 NIV)

As such, Hezekiah was a king who was upright before God, and because of that, God made him successful. But immediately after this assessment, the Bible records the story of Assyria’s invasion.

This is difficult to understand. Why does God give hardship to such a faithful, pious, and righteous king? Why does He allow the invasion of Assyria? Such questions may arise.

However, as we hear the name of the place that the Assyrian army conquered and stood upon, we realize something astonishing:

“The king of Assyria sent his supreme commander, his chief officer and his field commander with a large army, from Lachish to King Hezekiah at Jerusalem. They came up to Jerusalem and stopped at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Washerman’s Field.” (2 Kings 18:17 NIV)

Assyria’s attack during Hezekiah’s reign was not because of Hezekiah’s sins. It was because of his father’s sins. The sins committed by Ahaz had developed into a great disaster in the time of his son’s reign.

Yet, in this difficult situation, Hezekiah asked Isaiah to pray for Judah, and then he himself went to the temple to pray. And he received God’s answer:

“Therefore this is what the LORD says concerning the king of Assyria: ‘He will not enter this city or shoot an arrow here. He will not come before it with shield or build a siege ramp against it. By the way that he came he will return; he will not enter this city, declares the LORD. I will defend this city and save it, for my sake and for the sake of David my servant.’” (2 Kings 19:32-34 NIV)

The disaster that started with his father, Ahaz, reached Hezekiah, but through faith, prayer, and obedience, Hezekiah overcame the crisis. This is the incredible secret of faith.

Dear Church, let me repeat the place name again: “at the end of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Launderer’s Field.” Now do you know why the Bible calls our attention to this place?

This place of unbelief became the place of disaster and suffering.

Where are we now? What does God say to us in the place where we are? What does His word mean to us? Is it just noise? Or is it the stern, sovereign Word of God?

“At the end of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Launderer’s Field.” Both Ahaz and Hezekiah stood at that very place. But their directions and responses were completely different. How should we respond to the Word of God? Should we respond with obedience? Or with our own wisdom and choices?

May we seek and gain the wisdom of God “at the end of the aqueduct of the Upper Pool, on the road to the Launderer’s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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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7:1~7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2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5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6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7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이사야 7:10~12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유다의 위기 앞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약속과 위로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의 일입니다. 이사야는 남유다의 선지자로서 남유다의 10대 왕인 웃시야로부터 13대 왕 히스기야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40여 년 동안 예언 활동을 한 선지자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중 아하스왕 시대에 일어났던 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즉, 이 사건은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함께 동맹을 맺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던 사건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전체적인 사건의 개요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합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사 7:1)

이렇게 전체적인 사건의 개요를 전한 후의 이야기는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사 7:2)

아람과 에브라임이 동맹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유다에게 너무나도 절망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유다는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유다의 국력은 북이스라엘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9대 왕이었던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도전하였다가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아마샤가 사로잡혀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유다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서, 아하스를 만나거라. 그가 ‘세탁자의 밭’으로 가는 길, 윗못 물 빼는 길 끝에 서 있을 것이다.” (사 7:3, 새번역)

그리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아하스 왕에게 전할 말씀의 내용을 주십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사 7:4~7)

이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하여 쳐들어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유다를 점령하여 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친 아람, 친 에브라임 성향의 왕을 세우고자 계획하고 있지만, 그 일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앞에 선 유다 왕 아하스는 선하지 않은 왕이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들은 아하스 왕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유다와 그를 도와주신다는 이 말씀이 참으로 감사하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열왕기서는 아하스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왕하 16:1~4)

아하스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 왕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이방의 가증한 것들을 따라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몰록 제사까지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왕이었습니다. 산당들을 그대로 두어서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방치했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을 수가 없는 왕이죠. 하나님 앞에서 악한 왕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하스를 위기에서 구해 주신다고 합니다. 아하스로서는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죄인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이 되어 주셔서 전쟁을 돕겠다고 말씀하시니, 그에게는 정말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하스를 구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죠. 그러고는 이사야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사 7:10~11)

이 말씀의 뜻은 이렇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유다와 아하스를 구해 주실 것인데, 그것을 네가 믿는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징조를 보여 주시고 그 말씀이 참임을 확증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후에 히스기야왕의 이야기 속에 나타납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15년간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징표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가 얻은 징표는 해시계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징조를 히스기야에게 보여 주심으로써 그의 생명 연장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결국 아하스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버리고 인간적인 노력과 선택을 의지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을 네가 믿느냐’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 아하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사 7:12)

이 대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믿음이 없던 아하스가 갑자기 믿음이 생겨서 하나님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족하니 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니 징표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전적인 믿음의 고백일까요? 언뜻 보면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말은 참으로 놀라운 믿음의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하스가 만약 이 말씀을 그대로 믿었더라면 그는 즉시 하나님께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겠죠. 성전에 올라가 기쁨의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아하스는 이후 어떻게 행동하였을까요? 열왕기서는 그의 행위를 이렇게 전합니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왕하 16:7~8)

아하스는 신앙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는 이사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외교적인 전략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가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성전에 있는 금과 은을 모두 빼내어서 그에게 전달하기까지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말하였지만, 정작 아하스는 하나님께 가지 않고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을 보십시오.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왕하 16:7)

이 말은 아하스가 하나님께 했어야 할 말입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이 간청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 디글랏 빌레셀에게 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하스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사야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예언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고 세상의 힘 있는 자에게 붙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왕하 16:9)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의지했던 아하스. 자신의 정치적인 판단을 의지했던 아하스는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람 왕 르신은 죽었고, 이스라엘 왕 베가 역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는데도 위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이후에 유다 왕 아하스는 직접 디글랏 빌레셀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메섹을 방문하여 이방인의 재단을 봅니다. 그는 부러워하며 그것을 본떠서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재단을 바꾸도록 합니다. 그리고 성전의 제사 방식까지 앗수르의 제사 방식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이러한 아하스의 행위를 보면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정치와 외교로 당면한 문제를 풀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전이 그에게는 하나님께 능력을 받는 곳이 아닌, 그저 나라의 정신을 가다듬는 하나의 종교적 신전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신 제사의 의식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고칠 만큼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왕이었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죄는 세대를 건너 결국 패배의 결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듯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오늘 설교의 제목과 관련하여 한 가지를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봅시다.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

긴 문구입니다. 이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떤 한 장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사 7:3)

하나님의 말씀 속에 이 장소가 드러납니다.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

여러분, 성경의 이 부분을 읽으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저는 이 부분을 읽다가 ‘왜 이렇게 장소의 명칭이 길고 복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장소의 의미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은 이 장소에서 아하스를 만나라고 말씀하셨을까? 왜 성경은 이 장소의 이름을 유독 길게 전하고 있는 걸까? 이 지명이 어떤 큰 의미가 있는지 본문의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그 이유를 바로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분명하게 지정하여 말씀하신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이라는 표현이 그냥 지나가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우연처럼 적혀 있는 이 장소의 명칭은 다른 한 곳에서 발견됩니다. 열왕기하 18장 17절 말씀입니다.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왕하 18:17)

때는 한 시대가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 왕이 다스리던 시대입니다. 앗수르 왕이 유다를 침공한 때입니다. 앗수르 왕은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에게 대군을 거느려 예루살렘을 치게 하죠. 자신의 아버지 아하스가 통치하고 있던 때에는 동맹국처럼 살았던 나라였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충성하였고, 앗수르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자 앗수르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유다를 침공하려고 합니다. 엊그제까지 우방과 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앗수르가 이제는 유다를 침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장면에서 한 장소를 다시 소개합니다.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

참으로 너무나도 정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에게 전했던 말씀을 다시 떠올리게 하시죠.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셨습니까?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징조를 구하라. 내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어 주겠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으면 내가 이 어려움에서 너를 구원하여 주마”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말씀을 어디서 하셨습니까?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외교와 정치적인 방법으로 인간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앗수르를 선택하여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판단이 옳은 듯 보였습니다. 적절하게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하게 되었고, 살아남았다는 환희로 아마 자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시간이 지나자 아하스의 지략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얼마 전 유다를 도와주었던 앗수르의 침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도록 하나님은 한 장소를 지정하셨고, 이사야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아하스에게 이야기를 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하스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그 장소에서 적군 앗수르의 군사들과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입니다.

<불신의 결과를 알고 깨어서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우리의 잠깐의 성공이 과연 진정한 성공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 없는 나의 생각, 나의 판단만으로 성공했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 그 자리가 혹시 또 다른 패망의 단초, 패전의 실마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장소 명을 통해서 우리는 늘 가지고 있던 한 신앙적 고민의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히스기야왕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정직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긴 왕이죠. 성경은 히스기야왕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왕하 18:3~4)

히스기야는 드물게 다윗의 길을 따랐던 왕이었습니다. 선한 왕, 정직한 왕이었고, 모든 산당들을 제거하며 바알의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깨뜨렸던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섬겨 왔던 놋뱀을 부수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모세가 만들어 놓았던 놋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 가고 있을 때 들어 올려졌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놋뱀이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것조차도 부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느후스단, ‘그릇에 불과하다 놋 덩어리에 불과하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만큼 과거의 어떤 것에 매이기보다는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드리고 영광 돌려드리기를 원했던 왕이었습니다. 역대하 19장을 보면 그의 선한 행적이 여럿 등장합니다. 성전 문을 열어 수리하였고, 성전을 깨끗이 정리하였습니다. 제사 일들을 다시 회복하였고,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으며, 유월절을 다시 지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왕하 18:5~7)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왕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있은 후에 앗수르 대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들어오는 장면이 전개됩니다. 한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죠.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신실하고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왕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 왜 앗수르의 침공을 허용하시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들지요. 하지만 우리는 앗수르의 군대가 점령하려고 섰던 장소의 명칭을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들(앗수르)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끝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왕하 18:17)

히스기야 시대에 받은 앗수르의 공격은 히스기야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이 아들 때에 이르러 큰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지요.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성전에 스스로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왕하 19:32~34)

아버지 아하스에서 시작된 일이 히스기야에게까지 이르게 되었고, 히스기야는 그 위기를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신앙의 비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불신앙의 자리에 섰던 아하스, 그리고 신앙의 자리에 섰던 히스기야. 이 자리에 아하스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이후에 히스기야도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의 방향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결단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리입니까? 그 자리는 나의 지혜와 선택의 자리입니까?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 그 길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얻는 모든 소망의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 (사 7:1~7, 10~12)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72, 546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아하스 왕 시대의 일입니다.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동맹을 맺고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 유다는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시며, 적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특별한 장소를 지정하여 아하스를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아하스는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며 거절했습니다. 겉으로는 믿음의 고백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었습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말하며 성전의 은금을 예물로 보냈습니다. 이는 본래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간청을 인간에게 한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아하스는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의지하는 불신앙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이라는 장소가 다시 등장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 시대에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입니다. 아버지 아하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이제는 앗수르 군대가 유다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아하스의 불신앙으로 시작된 일이 아들 대에 재앙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아버지와 달리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위기 앞에서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결국 하나님의 능력으로 앗수르를 물리쳤습니다.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은 같은 장소에서도 불신앙과 믿음,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아하스에게는 불신앙의 자리가 되어 후에 재앙을 불러왔지만, 히스기야에게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자리가 되어 구원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누기>

1.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과 같은 선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다짐하고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윗못 수도 끝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 그 자리를 성경을 통해 다시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하스의 불신앙이 고난과 재앙의 출발이 되었던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지혜를 얻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히스기야의 믿음을 주시고, 위기 속에서도 말씀과 기도로 승리 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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