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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서울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님은 90이 넘었을 때 남한산성에서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그곳에서 조용하게 요양하고 계실 때 제가 가끔 찾아뵙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번은 심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곽 목사, 잘 들어두라오. 내가 영어 잘하는 거 알지?” “예, 압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영어를 잘하면 신학적으로나 목회적으로나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철저하게 공부했지. 그래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도 오래도록 영어를 공부했네.”
목사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한국말 성경보다 영어 성경을 읽을 때 뜻이 잘 들어오더군. 그래서 영어 성경을 많이 읽었지. 아침마다 영어 성경을 펴놓고 소리 내어 읽는 습관을 가지고 살아왔지. 그런데 며칠 전 아침에 성경책을 읽었는데 영어가 싹 지워져 버리고 한 단어도 생각이 안 나더군.” 세상에 어떻게 공부하신 건데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싹 없어졌다고 합니다. 도저히 영어 성경을 볼 수가 없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총명과 기억력은 항상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능력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제 아내가 생전에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딸아이가 어느 날 물었습니다. “목사님이라도 되시려고요? 왜 그렇게 성경을 많이 보세요?” 그러니까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귀가 어두워지잖니. 언젠가는 눈도 어두워질 텐데, 눈이 어두워지기 전에 성경을 많이 읽어 둬야지.” 여러분, 여러분 가진 총명과 지혜, 기억력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믿음도 재점검해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 상태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해도 괜찮겠습니까? 생각을 잘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로 제가 목회를 시작한 지 63년이 되었습니다. 서른 살에 목사가 되어 지금 아흔셋이 되었으니, 63년 동안이나 목회를 해온 셈입니다. 지금도 계속 매 주일 설교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계속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의 귀한 말씀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살후 3:2)
이 말씀이 계속해서 제 귓가에 들려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지식이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감성도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열심을 내어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열심도 믿음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 앞에서 열심을 내는 것 같지만 정작 그 마음속에는 달라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욕심이 너무 많습니다. 아직도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 믿음이 참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믿음, 그 고귀한 믿음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거듭 이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이 은사를 주실 때에야 비로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 지식과 의지, 감성으로 만든 믿음을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여러분의 믿음을 재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내 믿음이 성경적인 바른 믿음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들음에서 멈추지 말고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리고 그 듣는 말씀은 성경에서 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던 시대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소문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전도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영어로는 프로클라메이션(Proclamation), 곧 선포하는 것, 소문을 내는 일입니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열심히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망교회 교인들이 소망교회의 좋은 소문을 내야 합니다. 한때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소망교회, 한 번만 나가 보세요. 더도 말고 딱 한 번만 나가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소문이고 전도입니다.
그리고 이 소문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문을 듣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축복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거기서 멈추지 않고, 들었으니 이제 믿어야 합니다. 들었으니까 따라해야죠. 들었으니까 순종해야죠. 들었으니까 받아들여야죠.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나의 결심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소문을 듣고 와서 병도 고치고 구원도 받고 생명을 얻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소문을 듣고 따라가는 마음, 믿는 마음, 받아들이는 마음, 이것이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께 가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을 듣고 많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소문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소문을 듣고, 실제로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만 듣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소문을 들었으니 소문의 소재를 향해서 가야 합니다. 가서 그 소문의 중심 되는 분을,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소문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찾아가서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굉장한 과정이고 믿음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한 사람 있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입니다. 당시 혈루증은 여성들이 부끄러워하던 질병입니다. 예수님 앞에 서서 “제가 아픕니다, 이 병을 고쳐주십시오”라고 말조차 하기 어려운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말없이 예수님의 뒤로 다가가, 조용히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때, 예수님께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때의 여자가 대답합니다. “제가 만졌습니다.” 부끄러운 얼굴로 나올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막 5:34)
그리고 그가 병에서 나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가까이 가야 합니다.
제가 인천에서 14년간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는 참 가난하고 어려워서 교회에 따로 사무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부 손님이 오시면 근처 다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방에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방에 마담 한 분이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을 마주하면서도 그분에게 예수 믿으라는 말을 안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안 믿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놀라운 것은 어느 날, 주일 예배 시간에 그분이 예배당 뒤편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인사도 안 하고 가 버렸기에, 다방에서 왜 인사도 하지 않고 갔는지 물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마담이니 교인들하고도, 목사님한테도 인사를 안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래도 열심히 나오시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뒤로 그분은 계속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점점 앞으로 오시더니, 결국에는 맨 앞자리까지 나와 앉으셨습니다. 깜짝 놀라 제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앞으로 나오게 된 이유가 뭡니까?”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 두어야 할 말입니다. “뒤에서 들으면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이지만, 가까이 가서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도 말씀합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전 5:1)
몸도 마음도 가까이 가는 것이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분은 결국 교회 집사가 되셨고, 봉사도 아주 열심히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면, 본인이 먼저 나서서 “차 끓이는 것은 제가 가겠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헌신하며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는 마음 그 자체가 신앙 고백입니다. 믿음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의롭다 함’을 얻은 참 믿음이 됩니다.>
성경에 가버나움의 한 백부장이 있습니다. 그의 하인이 병에 들자, 그는 체면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와서 말합니다. “내 하인이 병들었나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요청에 응답하시며 환자를 만나러 집에 가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때 백부장이 대답합니다. “저희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말씀으로만 하세요. 말씀으로만 하면 제 하인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눅 7:6~7)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눅 7:9)
백부장은 돈을 바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명예를 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출세를 원한 것도, 건강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백부장이 보여 준 믿음은 오직 말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은 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백부장은 믿음만큼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믿음은 귀하고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에 응답하셨고,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구원을 얻는 믿음은 아닙니다. 영생을 얻은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참 믿음은 무엇입니까?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입니다.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 모든 죄를 다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케 하사 영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오늘 본문에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주 귀한 믿음의 표본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 고백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5)
여기에 우상숭배가 많으니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떠나라고만 했지, 어디로 가라 하신 말씀은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명령이 어디 있을까요? 선행지도 목적지도 없이 떠나라고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봅시다. 이 말씀만 믿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떠납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떠나라 하시니 “예” 하고 떠났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기본적인 신앙입니다. 참 믿음은 떠나는 것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과거를 내려놓고 오늘 내게 말씀에 오직 믿음으로 응답할 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도 역시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가 떠난 후 도착한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약속의 땅을 벗어난 것입니다. 큰 실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아내가 특별히 예쁘니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지 않을까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것은 믿음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사건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창 22:17)
자식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내 사라는 점점 나이가 들어 단산, 즉 생리마저 끊어졌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들은 합의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입니다. 인간적인 나약함을 잘 보여 줍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니, 그가 이스마엘이나 잘 살게 해 달라는 기도까지 합니다. 그의 나약함이 저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 25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합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0)
아브라함은 깜짝 놀랍니다. 아내가 단산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항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저 말씀을 듣고, 받아들입니다.
이 장면을 연극으로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천막 무대에서 천사가 나타나 다른 부연 없이 이렇게 외칩니다. “아브라함아, 내년 이때 네 아내가 아들을 낳으리라.” 그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가만히 있다가 “예.” 한 마디 대답합니다. 그리고 천사가 떠난 방향을 향해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다음 장면이 정말 잊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천막 안으로 가서 아내를 부릅니다. 그러자 천막에서 머리가 하얀 할머니인 사라가 가까이 옵니다.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아브라함이 한마디 합니다. “여보, 오늘 밤은 제 천막에 들어가 쉽시다.” 그리고 데리고 들어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물론 그에게 실수도 많았습니다. 다 알고 있지만, 잘못된 길로 멀리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주시는 말씀에 순종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히 11:12)
인간적으로 보면 죽은 것과 방불한 가운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축복의 자녀, 이삭이 태어납니다. 아브라함은 연약했고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휘청휘청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전해질 때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허물이 있습니다. 나약함과 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직선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수용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만 나타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 말씀에 즉각 응답할 때 그 순간,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말합니다. “The Word of God waits for us in the Bible.”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속에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성경을 펴서 읽으십시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그대로 직선적으로 응답하십시오. 내 과거도 허물도 실수도 나약함도 상관하지 마시고 말씀에만 응답하십시오. 그러면 말씀의 능력이 나와 함께하십니다.
사람의 나이로 본다면 죽은 것과 방불한 것과 같은 상태에서 아브라함은 말씀을 믿고 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여러 가지 실수도 있고 뉘우치는 바도 많고 후회하는 것도 많을 수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내려놓고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말씀을 그대로 받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구원에 이릅니다. 그래서 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 아브라함과 같은 확실한 믿음의 후예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Faith Credited As Righteousness
Romans 4:18-25
When Reverend Han Kyung-Chik, founder of Young Nak Church, became over ninety, he spent his final years in a cottage in Namhansanseong. Occasionally, I would visit him. One day, he started a serious conversation with me:
“Reverend Kwak, you know that I am fluent in English, right? I studied English diligently in Soongsil University, majoring in English literature, because I thought it would help me study theology. Then I studied theology in the United States for many years, including at Princeton University. I read the English Bible countless times because it seemed to convey the meaning of the Word better than the Korean Bible. Reading the Bible in English was a daily habit. But do you know what happened to me a few days ago? I couldn’t read the English Bible. The language had been completely erased from my head. How can this be? After so much studying? I simply cannot read the Bible in English anymore. Reverend Kwak, mark my words. Someday this will happen to you too.”
Dear Church, we must remember that our intelligence is not everlasting. Neither is our memory. They will all vanish one day. Our wisdom, memory, and abilities will one day cease to exist.
In this sense, we must also reexamine our faith, the faith that we have been given. Is my faith strong enough? Will I be able to go to the Lord as I am now? What will happen to me after my life on earth ends? These are things you must deeply reflect upon.
I have been a pastor for 63 years. I became a pastor at 30, and now I am 93. I still preach every Sunday. But there is an amazing truth that strikes me repeatedly. As the precious words in 2 Thessalonians states, “not everyone has faith.” Why? Because knowledge is not faith. The emotions we feel is not faith either. Sometimes we show zeal. We serve passionately. But even this is not faith. Upon deep reflection, we will find that even when we appear passionate before the Lord, we still have too many desires. We still have too much to lay down and surrender. Therefore, this faith of passion cannot be the true faith.
Seeing how we fail to reach the true, precious faith that the Bible teaches us, I find myself mediating more on 2 Thessalonians 3:2: “for not everyone has faith.” Not everyone has faith. Faith is given to us as a gift from God. It is a blessing given to us by God. When God gives us this gift, we come to have faith. Our knowledge, will, and feelings are not faith. Dear Church, please think about this seriously and reexamine your faith. Do I really believe in God? Is my faith a correct, biblical faith?
Faith comes from hearing—that is, hearing the Word. Dear Church, think about Jesus’ time. How did salvation come? It came from rumors, from hearing the news. To evangelize, to proclaim the Gospel, means to spread the news. We must do our utmost to spread the news. Telling your neighbors, “Come to church just once, and your life will be changed.”—this is evangelism. This is what Somang Church did in the past. When we spread the news, people listen. Hearing that news is a blessing. After hearing, they must believe. After hearing, they must follow. After hearing, they must obey. Since they have heard, they receive. This is all God’s gift. We must never forget that all these are gained not by human will or determination. This is why the Bible says, “for not everyone has faith.” Faith is a precious gift from God. It is a gift. We must never forget this.
Even in Jesus’ time, many people came to Jesus after hearing the news. They received salvation, life, and healing just by coming to hear the news. But what is important is a heart that follows, believes, and receives after hearing. After hearing the news, countless sick people came to Jesus to be healed. But what is interesting is that they had to get near Him. Just hearing the news about Jesus and His healing are not enough. You have to go and find Him. You have to go and meet that very Person at the center of the rumors. You must have an encounter with Him. But that journey toward encounter is a great journey of faith.
Among the many sick who came to Jesus after hearing about His miracles, one particularly stands out: the woman with an issue of blood. At the time, this disease was something to be ashamed of. This woman couldn’t just come up to Jesus and say, “Lord, heal me of this illness.” So after drawing near Jesus, she merely touches the edge of His cloak. When Jesus demands to know who touched Him, she shyly confesses it was she. Jesus praises her great faith, calling it a “mega-faith.” Then He tells her to go in peace. She is healed. There are many such miracles in the Bible. People drew near to Jesus after hearing about Him. Then they heard Him speak. But this was not enough. They had to draw near. We, too, have to draw near to Him. Nearer and nearer.
Let me tell you an interesting story. When I was ministering in Incheon for 14 years, I was very poor and the church did not have a pastor’s office. So when guests came, I would meet them at a nearby dabang, a traditional Korean coffeehouse. I would go there several times a day to meet guests. The owner of the coffeehouse was a pretty lady who wore hanbok, the typical “madam” (or female owner of a dabang). I never shared the Gospel with her because she appeared to be the typical madam who would never believe in Jesus. But one Sunday, who would I spot but her, sitting in one of the back pews of our church? I was so happy to see her, but she left so early that I had to talk to her at her cafe. She said she didn’t say hello to me or to the others because she felt out of place. I encouraged her to come often. But do you know what happened after? She started sitting closer to the pulpit. Finally, to my amazement, she was sitting in the very front row during service. I couldn’t help asking, “What made you come all the way up front?” We must all heed her answer. She replied, “When I sit in the back, the sermon is just Pastor Kwak’s sermon; but when I come up front, it becomes the Word of God.”
Dear Church, do you get it? Drawing near and listening is better than the sacrifice of fools. As Ecclesiastes says, “Go near to listen rather than to offer the sacrifice of fools.” We must go near in body and in spirit. A heart that draws near is proof of faith. Later, that madam became a deaconess and served our church in many precious ways, including, in particular, offering refreshments. Dear Church, remember that our heart that draws near to God is, in itself, our confession of faith. That heart is sure proof of faith. We must not forget this.
In particular, the Bible tells the story of a Roman centurion in Capernaum. When his servant was sick, he came to Jesus. He came boldly, asking Jesus to heal his servant, for it was beyond his power. Jesus kindly suggests going to his home to heal him. But the centurion says no. He says, “Lord, I do not deserve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Don’t come, Lord. Just speak the words here. If only You speak, my servant will get well. What precious words! What a precious testimony!
Amazed, Jesus says, “Truly I tell you, I have not found anyone in Israel with such great faith.” Jesus says that the centurion’s faith is by far the greatest. Why? Because he trusted solely in Jesus’ words. Dear Church, it is the Word, not money, honor, success, or even health. Faith that trusts solely in the Word—this is the precious faith. All we need is the Word. Lord, all you need to do is speak.
I was stirred by the story of the centurion. I saw how Jesus commended his faith. Brothers and sisters, you must not forget this. Jesus praised the centurion, saying He had never seen such a faith in all of Israel. But how can we describe the faith of these great men? Their wishes come true. They receive healing. Their faith produces a result. Healing. Their wishes came true. But such faith is not one that receives salvation. Having such faith doesn’t mean that you will have eternal life. That’s not it. It means that such faith will give you healing. That’s it. So then what is true faith? It is faith credited as righteousness. It is faith that makes us righteous, faith that all our sins have been forgiven, faith that we are reborn as God’s children, and faith that we have been justified to enter everlasting life. This is the faith that Abraham shows us in today’s passage. Abraham’s faith is the very model of a precious faith. It may be considered the essence of our confession of faith. So let’s look at Abraham’s faith in today’s passage.
God speaks to Abraham, “Leave your country, Ur of the Chaldeans.” God tells him to leave because the place is full of idol worship. But all God says is to leave. He doesn’t tell him where to. What kind of command is that? Telling someone to go without giving him a destination. But look at what Abraham does. He trusts in this word and leaves, “even though he did not know where he was going.” You go when God tells you to. Abraham didn’t ask where he was going. He just went when God told him to go from his homeland. This was Abraham’s faith. Our faith stops growing because we fail to leave that which we ought to depart from. True faith is to leave. It is to go, even when we do not know where we are going.
But even Abraham had human weaknesses. He left his country, Ur of the Chaldeans, for which he must be praised. But when a famine struck Canaan, the Promised Land, he left it and moved to Egypt, without asking God. He went in order to survive, which was a big mistake. Some people interpret this as the very reason that the Israelites suffered 400 years of slavery in Egypt. At any rate, going down to Egypt was a big mistake. Furthermore, Abraham lied about his wife Sarah, who was very beautiful. He was worried that foreign kings would kill him to get his wife. So he lied that she was his sister. This shows an absence of faith. This cannot be the attitude of a man who believes in God. It was a big mistake. Abraham made such mistakes.
Yet God speaks to Abraham. He says that He will make him the father of all nations and bless him and his descendants, making them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and the sand on the sea. God promised him land and offspring. But look at his life. Even after ten years since receiving God’s covenant, he had no son. And his wife was only aging. She had even passed the age of childbearing. So Abraham falters. He and his wife agree to get a son through her female servant, Hagar. This was how Ishmael was born. Ishmael was a bastard. This was unbelief. But this was Abraham. This shows his human weaknesses. Although he believed in God’s promise, he was growing old. God had made a covenant with him, but 10 years had already passed and his wife was beyond the age of childbearing. So he makes the mistake of getting an illegitimate child. This was Abraham. A man who faltered. Later, when God states His covenant of blessing, Abraham even says, “If only Ishmael might live under your blessing!” His weakness reaches a nadir.
Yet there is something important. After 25 years of waiting since God’s covenant of giving him a son, when Sarah had become barren and Ishmael had been born, and when Abraham’s weakness reached its worst point, angels visit him. And one of them says, “about this time next year, Sarah will have a son.” Abraham is shocked and perplexed. This promise about a son had been given to him 25 years ago. But his wife had long passed the age of childbearing. At this moment, Abraham could have protested, “What do you mean she will have a son? She is already barren!” But Abraham didn’t.
I remember seeing this scene acted out in a play. The angel tells Abraham that Sarah will have a son around this time next year. But Abraham just replies, “Yes.” Nothing more. No further interpretation is added either. Just this one word. He could have protested, “How can you say that now?” But he doesn’t. In the play, the angel tells him he will have a son around this time next year. Abraham just says yes. After the angel leaves, he quietly worships in the direction that the angel left. After that, Abraham gets up and does something that I can’t forget. He calls his wife. Sarah, old and shriveled, comes to him. Placing a hand on her shoulder, Abraham says, “Let’s rest in my tent tonight.” And he takes her to his tent. You know what I mean? This is faith. There is no protest at all. He doesn’t cry out, “Why, God? Why? Why? Why does it have to be like this?” He is well past childbearing age. He is 100 years old, and Sarah no longer has her period.
Abraham had made many mistakes, even showing unbelief in God. He had also sinned and faltered. All those things happened in the time since God made a covenant with him. But despite all this, he listens to the Word of God given to him that day. He doesn’t say, “Lord, I made so many mistakes. I am weak. Sarah is old. She cannot bear children. Ishamel is already 14 years old.” He doesn’t make any excuses. When the angel says he will have a son around this time next year, he simply replies, “Yes.”
This was Abraham’s faith. This is the great faith. We must not forget this. We too make many mistakes. We all know this. We all go astray. Yet all this is nullified before the Word of God. All we must do is to obey the Word He gives us today. The Bible states that Abraham was “as good as dead.” He believed in the Word of God when he was as good as dead.
And Isaac was born. The child of blessing was born. Abraham was weak. He failed. He faltered. Yet when God spoke the Word to him today, he replied “Yes” and obeyed. That was the faith of Abraham. God didn’t question him about his past. Not at all. He just gave him Isaac. And through Abraham, God’s history was fulfilled.
Dear Church, we have many faults and weaknesses. But the moment we directly accept the Word that God gives us today and receive it as it is, God doesn’t question us about our past. God doesn’t take issue with our past. Our weaknesses are not revealed. Only God’s history is manifested. Therefore, we must receive the Word that He gives us today.
Karl Barth, the famous theologian, said, “The Word of God waits for us in the Bible.” Open your Bible today and read it. Read it in the morning with a reverent heart. In that Word, God speaks to us. And we must respond directly to the Word and receive it as it is. Amen. Don’t dwell on your past, your sins, your weaknesses, or your failures. Just respond to the Word, and the Word will be with you in power.
This is what Abraham did. That is why today’s Scripture from Romans says he believed when “his body was as good as dead.” He received Isaac by believing in the Word when, humanly speaking, Sarah’s womb was as good as dead. He received his covenant child.
Dear Church, you will have made many mistakes in your life and may have many regrets. But stop all that now. Just receive the Word that God gives you today. If God says, “You will have son around this time next year,” just believe it to be true. Receive it as it is. When you obey in faith and when you give thanks for that faith and accept that faith, you will reach salvation.
That is why Romans, our Scripture for today, talks about faith that is “credited as righteousness.” This was Abraham’s faith. Abraham’s faith was noble and unwavering. May we all become Abraham’s descendants by following his faith.
로마서 4:18~25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서울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님은 90이 넘었을 때 남한산성에서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그곳에서 조용하게 요양하고 계실 때 제가 가끔 찾아뵙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번은 심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곽 목사, 잘 들어두라오. 내가 영어 잘하는 거 알지?” “예, 압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영어를 잘하면 신학적으로나 목회적으로나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철저하게 공부했지. 그래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도 오래도록 영어를 공부했네.”
목사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한국말 성경보다 영어 성경을 읽을 때 뜻이 잘 들어오더군. 그래서 영어 성경을 많이 읽었지. 아침마다 영어 성경을 펴놓고 소리 내어 읽는 습관을 가지고 살아왔지. 그런데 며칠 전 아침에 성경책을 읽었는데 영어가 싹 지워져 버리고 한 단어도 생각이 안 나더군.” 세상에 어떻게 공부하신 건데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싹 없어졌다고 합니다. 도저히 영어 성경을 볼 수가 없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총명과 기억력은 항상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능력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제 아내가 생전에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딸아이가 어느 날 물었습니다. “목사님이라도 되시려고요? 왜 그렇게 성경을 많이 보세요?” 그러니까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귀가 어두워지잖니. 언젠가는 눈도 어두워질 텐데, 눈이 어두워지기 전에 성경을 많이 읽어 둬야지.” 여러분, 여러분 가진 총명과 지혜, 기억력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믿음도 재점검해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 상태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해도 괜찮겠습니까? 생각을 잘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로 제가 목회를 시작한 지 63년이 되었습니다. 서른 살에 목사가 되어 지금 아흔셋이 되었으니, 63년 동안이나 목회를 해온 셈입니다. 지금도 계속 매 주일 설교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계속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의 귀한 말씀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살후 3:2)
이 말씀이 계속해서 제 귓가에 들려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지식이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감성도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열심을 내어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열심도 믿음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 앞에서 열심을 내는 것 같지만 정작 그 마음속에는 달라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욕심이 너무 많습니다. 아직도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 믿음이 참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믿음, 그 고귀한 믿음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거듭 이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이 은사를 주실 때에야 비로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 지식과 의지, 감성으로 만든 믿음을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여러분의 믿음을 재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내 믿음이 성경적인 바른 믿음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들음에서 멈추지 말고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리고 그 듣는 말씀은 성경에서 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던 시대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소문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전도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영어로는 프로클라메이션(Proclamation), 곧 선포하는 것, 소문을 내는 일입니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열심히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망교회 교인들이 소망교회의 좋은 소문을 내야 합니다. 한때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소망교회, 한 번만 나가 보세요. 더도 말고 딱 한 번만 나가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소문이고 전도입니다.
그리고 이 소문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문을 듣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축복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거기서 멈추지 않고, 들었으니 이제 믿어야 합니다. 들었으니까 따라해야죠. 들었으니까 순종해야죠. 들었으니까 받아들여야죠.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나의 결심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소문을 듣고 와서 병도 고치고 구원도 받고 생명을 얻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소문을 듣고 따라가는 마음, 믿는 마음, 받아들이는 마음, 이것이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께 가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을 듣고 많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소문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소문을 듣고, 실제로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만 듣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소문을 들었으니 소문의 소재를 향해서 가야 합니다. 가서 그 소문의 중심 되는 분을,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소문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찾아가서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굉장한 과정이고 믿음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한 사람 있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입니다. 당시 혈루증은 여성들이 부끄러워하던 질병입니다. 예수님 앞에 서서 “제가 아픕니다, 이 병을 고쳐주십시오”라고 말조차 하기 어려운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말없이 예수님의 뒤로 다가가, 조용히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때, 예수님께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때의 여자가 대답합니다. “제가 만졌습니다.” 부끄러운 얼굴로 나올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막 5:34)
그리고 그가 병에서 나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가까이 가야 합니다.
제가 인천에서 14년간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는 참 가난하고 어려워서 교회에 따로 사무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부 손님이 오시면 근처 다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방에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방에 마담 한 분이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을 마주하면서도 그분에게 예수 믿으라는 말을 안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안 믿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놀라운 것은 어느 날, 주일 예배 시간에 그분이 예배당 뒤편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인사도 안 하고 가 버렸기에, 다방에서 왜 인사도 하지 않고 갔는지 물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마담이니 교인들하고도, 목사님한테도 인사를 안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래도 열심히 나오시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뒤로 그분은 계속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점점 앞으로 오시더니, 결국에는 맨 앞자리까지 나와 앉으셨습니다. 깜짝 놀라 제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앞으로 나오게 된 이유가 뭡니까?”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 두어야 할 말입니다. “뒤에서 들으면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이지만, 가까이 가서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도 말씀합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전 5:1)
몸도 마음도 가까이 가는 것이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분은 결국 교회 집사가 되셨고, 봉사도 아주 열심히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면, 본인이 먼저 나서서 “차 끓이는 것은 제가 가겠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헌신하며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는 마음 그 자체가 신앙 고백입니다. 믿음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의롭다 함’을 얻은 참 믿음이 됩니다.>
성경에 가버나움의 한 백부장이 있습니다. 그의 하인이 병에 들자, 그는 체면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와서 말합니다. “내 하인이 병들었나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요청에 응답하시며 환자를 만나러 집에 가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때 백부장이 대답합니다. “저희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말씀으로만 하세요. 말씀으로만 하면 제 하인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눅 7:6~7)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눅 7:9)
백부장은 돈을 바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명예를 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출세를 원한 것도, 건강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백부장이 보여 준 믿음은 오직 말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은 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백부장은 믿음만큼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믿음은 귀하고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에 응답하셨고,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구원을 얻는 믿음은 아닙니다. 영생을 얻은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참 믿음은 무엇입니까?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입니다.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 모든 죄를 다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케 하사 영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오늘 본문에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주 귀한 믿음의 표본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 고백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5)
여기에 우상숭배가 많으니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떠나라고만 했지, 어디로 가라 하신 말씀은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명령이 어디 있을까요? 선행지도 목적지도 없이 떠나라고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봅시다. 이 말씀만 믿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떠납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떠나라 하시니 “예” 하고 떠났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기본적인 신앙입니다. 참 믿음은 떠나는 것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과거를 내려놓고 오늘 내게 말씀에 오직 믿음으로 응답할 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도 역시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가 떠난 후 도착한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약속의 땅을 벗어난 것입니다. 큰 실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아내가 특별히 예쁘니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지 않을까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것은 믿음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사건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창 22:17)
자식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내 사라는 점점 나이가 들어 단산, 즉 생리마저 끊어졌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들은 합의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입니다. 인간적인 나약함을 잘 보여 줍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니, 그가 이스마엘이나 잘 살게 해 달라는 기도까지 합니다. 그의 나약함이 저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 25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합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0)
아브라함은 깜짝 놀랍니다. 아내가 단산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항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저 말씀을 듣고, 받아들입니다.
이 장면을 연극으로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천막 무대에서 천사가 나타나 다른 부연 없이 이렇게 외칩니다. “아브라함아, 내년 이때 네 아내가 아들을 낳으리라.” 그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가만히 있다가 “예.” 한 마디 대답합니다. 그리고 천사가 떠난 방향을 향해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다음 장면이 정말 잊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천막 안으로 가서 아내를 부릅니다. 그러자 천막에서 머리가 하얀 할머니인 사라가 가까이 옵니다.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아브라함이 한마디 합니다. “여보, 오늘 밤은 제 천막에 들어가 쉽시다.” 그리고 데리고 들어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물론 그에게 실수도 많았습니다. 다 알고 있지만, 잘못된 길로 멀리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주시는 말씀에 순종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히 11:12)
인간적으로 보면 죽은 것과 방불한 가운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축복의 자녀, 이삭이 태어납니다. 아브라함은 연약했고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휘청휘청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전해질 때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허물이 있습니다. 나약함과 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직선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수용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만 나타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 말씀에 즉각 응답할 때 그 순간,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말합니다. “The Word of God waits for us in the Bible.”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속에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성경을 펴서 읽으십시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그대로 직선적으로 응답하십시오. 내 과거도 허물도 실수도 나약함도 상관하지 마시고 말씀에만 응답하십시오. 그러면 말씀의 능력이 나와 함께하십니다.
사람의 나이로 본다면 죽은 것과 방불한 것과 같은 상태에서 아브라함은 말씀을 믿고 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여러 가지 실수도 있고 뉘우치는 바도 많고 후회하는 것도 많을 수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내려놓고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말씀을 그대로 받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구원에 이릅니다. 그래서 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 아브라함과 같은 확실한 믿음의 후예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 (롬4:18~25)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0, 37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 언제 기억력이나 기력이 약해졌다고 느끼실 때가 있으셨습니까? 더 약해지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신앙행위(성경읽기, 기도, 예배, 봉사 등)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설교의 요약>
살후3:2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식, 감정, 의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 우리의 진실한 응답,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아무나 얻지 못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믿어지고, 감사함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복음의 소문입니다. 소문 속에 복음이 들려지고, 소문을 들은 사람이 성령의 은사에 이끌려 믿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대부분이 환자였습니다. 아쉬운 것이 있는 사람들, 고침이 필요한 사람들이 멀리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가까이 가서 그 옷자락을 만져 고침을 받았습니다. 전5:1 …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 (개역한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간 사람들 중에 하인의 병고침을 위해 나아간 백부장도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집에 오시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씀으로만 하시면 하인이 낫겠다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병고침을 받았지만,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칭찬을 받았지만, 의롭다 여김은 받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나왔지만, 흉년에 이집트로 피하였고,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도 했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기까지 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내년 이맘 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의로 여겨졌습니다. 잘못도 많고 연약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직선적으로 응답하면 과거의 허물이 사라지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에 응답하여 의롭다함을 얻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나누기>
- 믿음 없었던 모습들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실수했던 경험을 나누어봅니다.
- 만약,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말씀하신다면, 그래도 믿고 순종하기 어렵겠다 할 말씀이 있습니까?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믿고 바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기도>
주님, 주님의 부름에 응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허물이 많았습니다. 실수도 많았고, 넘어지고, 낙심할 때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용서하소서.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믿음을 주소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의롭다 함을 얻은 것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