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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어떻게 보이느냐

학개 2: 1~4

김경진 목사

2023.10.22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는 참 중요합니다.>

 

옛날에 전쟁에 나가서 한쪽 눈을 잃고 애꾸눈이 된 왕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가 자신의 집으로 화가를 불러서 초상화를 그리게 했답니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을 본 왕이 크게 화를 내었다고 하네요. “왜 나를 이렇게 병신처럼 그려 놓았느냐!” 그렇게 호통을 치면서 화가를 끌어내어 목을 치라고 명령했다는 겁니다. 이제 다른 화가가 왕궁으로 불려가게 됩니다. 전에 간 화가의 소식을 들은 터라 두 번째 화가는 왕의 두 눈을 그려서 초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초상화를 본 왕이 화를 내었답니다. “이게 어떻게 나란 말이냐! 내 눈이 어째서 둘이냐? 이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이 화가 역시 첫 번째 화가처럼 참수당하고 맙니다.

자, 세 번째 화가가 왕 앞으로 불려갑니다. 어떻게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까요? 앞선 두 화가가 한쪽 눈을 안 그려서 죽임을 당하고, 두 눈을 다 그려서 죽임을 당했으니 별 도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앞모습이 아닌 옆모습을 그려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이 이야기가 실제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왕의 옆모습을 그려서 최고의 예술가로 평가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게도니아의 왕 안티고노스(Antigonus) 1세의 얼굴을 그린 아펠레스(Apelles)라는 화가입니다. 그가 그린 이 그림은 지금은 소실되어서 찾을 수 없다고 하는데, 저서 ‘자연의 역사’(Naturalis Historia) 유명한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가 안티고노스의 초상화를 두고 아펠레스가 그린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고 합니다. 한쪽 눈에 장애가 있는 왕의 초상화를 창의적인 방법으로 그려서 안티고노스 왕이 크게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항상 느끼지만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보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계실 텐데요. 젊은 부부가 슬하에 어린 자녀를 두었는데 자녀가 점점 자라나면서 방에서 뛰기 시작하니까 층간 소음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문제 때문에 여러 번 이사를 가고 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네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에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바로 위층이 마침 비어서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그러자 층간 소음 문제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해요. 물론 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아침마다 일어나서 뛰었고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소리를 들으면서 도리어 기뻐했다는 것이죠. ‘아, 아이들이 깼구나.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구나.’ 이처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은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층간 소음 문제로 고민하고 계신 분들은 부모님 윗집으로 이사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정치권이 여와 야로 나뉘어 계속해서 싸움을 벌이고 있죠. 왜 그렇습니까? 관점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가정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사의 문제도 그러하고요.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문제는 확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물론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모두가 한 방향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바라보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럴 때에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게 되고,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것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검은색 돌덩어리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모양을 본 로뎅과 같은 조각가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이 끓는 주전자를 무심코 보았지만, 제임스 와트는 여기서 힘을 보고 증기기관차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번개가 치는 것을 보며 무서워하고 도망갔지만, 프랭클린은 치는 번개 속에서 어둠을 밝히는 전기를 보게 됩니다. 같은 현상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7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유다 백성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도 동일한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내용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유다 사람들이 70년 만에 바벨론에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재건하기로 결정하고 공사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성전 건축이 쉽지 않았습니다. 더디게, 더디게 진행됩니다.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합니다. 포로에서 막 돌아왔으니 그들에게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살기도 어려웠을 형편인데 성전을 그리 쉽게 지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학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지을 것을 끊임없이 독려하셨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성전을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전을 짓지 못하여서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성전 짓는 일이 이어집니다만, 과거 솔로몬 시대에 완공된 성전과 비교하면 턱없이 초라한 성전을 지어야 했을 것입니다. 자,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를 통하여 임합니다. 학개서 2장 3절입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학 2:3)

 

유다 백성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 중에는 과거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성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화려하고 영광스런 성전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들이 짓는 이 성전은 참으로 처량합니다.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이런 건물 지어서 무엇하는지’ 하는 생각으로 짓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동기 부여가 잘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전의 영광과 비교해 본다면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을 콕 집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너희가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성전이지 아니하냐? 이 성전을 보면서 실망하고 있지 아니하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라. 성전을 보지 말고 나를 보아라. 너희와 함께하고 있는 나를 보아라. 내가 너희와 함께하고 있노라.” 주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유다 백성은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합니다.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초라한 현실을 바라봅니다. 비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영광도, 현재의 초라함도 생각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과 함께 성전을 지어 가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명령하십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우리 삶 속에서 종종 일어납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사업, 건강함, 명예 등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비하여 초라해진 현실을 바라볼 때가 꽤 많습니다. 어느새 노약해진 모습, 병약해진 모습, 이전처럼 번창하지 못하는 사업 … 그래서 힘겨운 마음을 가진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함께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건물의 화려함이나 초라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건물 안에 있는지, ‘누가’ 그들과 함께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물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같은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성경을 보면 같은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본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증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보고 온 열 명의 정탐꾼들은 그곳의 거주민들이 강하고, 성읍이 심히 클 뿐 아니라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강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3:32~33)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모습을 보았어도 다르게 증언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14:7~9)

 

물론 두 사람도 장대한 아낙 자손을 보았고, 견고한 성읍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맞다는 겁니다. 이 땅을 그들에게 예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땅을 보호하던 보호자가 떠났고, 방비는 이미 허술해졌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말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앞에 두고 절규할 때의 일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로는 바로의 병거가 뒤쫓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4:11)

 

“아, 이제 죽었다! 우리는 이제 죽었다!”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는 게 더 좋았을 뻔했다고 진단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영의 눈을 통해서 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그는 앞과 뒤가 막혀 있는 현실에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썩을 육체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향하여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7:55~56)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서 죽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만큼 고통도 심했겠죠. 분노로 가득 찬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가 참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 옆에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 열린 하늘 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본 스데반은 결국 순교의 길을 감당하게 됩니다.

야곱 역시 그러합니다.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한 곳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돌로 베개를 삼고 누워 자는데, 꿈에서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28:13~15 )

 

그저 한적한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어떤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돌베개를 벤 채 잠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임을 꿈을 꾸면서 깨닫게 됩니다. 이후에 야곱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28:16)

 

<믿음의 눈을 통하여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다르게 볼 수 있을까요? 다르게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서 좌, 우로 나뉘어서 보는 시각이 있겠고, 노와 사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도 있을 겁니다. 남자와 여자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도 있겠습니다. 다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시각이 있음을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현실을 보지 말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시각이 우리 안에 계속해서 열리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우리 삶의 여정 속에도 때로는 암울하고, 힘들고,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불치의 병일 수 있고요. 사업의 실패일 수도 있습니다. 건강의 이상일 수도 있고, 그 외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황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내도록 도울 것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씀드렸습니다. 이 땅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동행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곁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영적인 시각이 우리 모두에게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장 2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12:2 )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예수 안에 소망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상황을 다 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보며 척박한 인생을 힘 있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How Does It Look To You?

 

Haggai 2:1-4

 

Once there lived a king who had lost one eye in a battle. One day he decided to have his portrait done and commissioned an artist. The painter drew him just as he was—a one-eyed man. When the king saw the finished work, however, he was furious. “How dare you depict me as a disabled man!” He ordered the painter to be beheaded. One wrong drawing led to the painter’s death.

 

After this incident, the king’s general called in another portraitist. He toldhim that the previous painter had been executed for drawing the king as he is. The second painter, therefore, drew the king with two eyes. Yet this time, too, the king was angry. “How can I have two eyes? How is it that you see two eyes when I only have one? That’s not me,but someone else.” The second painter was beheaded too.

 

Then there was a third painter; but he didn’t lose his life. There was a reason he survived. He dida side-view portrait of the king.

 

Idon’t know if this tale is a true story or not. But, in history, there was an artist who was renowned for his side-view portraits. It is Apelles, who drew Macedonian ruler Antigonus 1 Monophthalmus from the side view. Although the portrait itself has been destroyed and can no longer be found, Gaius Plinius Secundus, author of the first encyclopedia Naturalis Historia, deemed the portrait of Antigonus to be Apelles’ greatest masterpiece. Antigonus,the one-eyed ruler, is said to have been greatly pleased when Apelles creatively drew a side-view portrait of him.

 

This is something we sense all the time, but seeing is not what’s important; what and how we see is. Moreover, the perspective from which we think and see is critical. Things look different from different angles.

 

This is a story of a family with kids. Like everyone else living in apartments, apartment noise was a problem for them too. When their children ran around in the house, it affected their neighbors. Because of this, they had to move many times. Every time they moved into a new apartment, however, the people below them would complain. Finally, after a lot of thinking, they moved into a placeright above their parents’ home. Their problem was completely solved. The grandparentsactually welcomed the noise of their grandchildren jumping around. They would think happily, ‘Those pumpkins are awake now! How energetic theyare!’

 

Dear parents, if any of you have such a problem, why not consider moving into a place above your parents?

 

Depending on our perspective and position, a great deal changes.

 

Politics has been divided not just in recent years but almost forever. Why is it so? It is because the ruling and opposition parties see things completely differently. This also applies to family issuesas well as labor-management ones.

 

However, this does not mean that we all must see things from an identical viewpoint in order to avert problems and struggles. Creative and divergent perspectives are also critical. When we look at things differently and creatively, we notice things that were previously invisible to us and realize what is truly consequential.

 

Many have discovered great things from the ordinary. Such people have led the development of human civilization.

 

Great sculptors like Auguste Rodin who saw the beautiful form of The Thinker in a mere block of black rock wereamong the artists who saw the unseen before it ever came into being.

 

While most people never gave much thought to a boiling kettle, James Watt saw the power of steam and imagined the steam engine, observing it. While most people only felt fear then they saw lightning, Benjamin Franklin saw electricity that would lighting up the darkness.

 

As such, even when people see the same phenomenon, they reach completely different results depending on what and how they view it.

 

We see things with our eyes. The eye is often dubbed the “window of the soul.” In other words, depending on what is in our hearts, we see the world completely differently. And this may lead us to discover something new.

 

Today’s passage from Haggai tells the story of the people of the Kingdom of Judah returning from Babylonian captivity to restore the Temple in Jerusalem. Although they have returned home and have started to rebuild the Temple, the restoration process was slow due to many hurdles. As former captives who had just been released to return to their homeland, what possession did they have? They had hardly enough to live on, let alone offer for the Temple’s restoration. Therefore you can imagine just how difficult the restoration work would have been.

 

Yet God encourages them through Haggai to continue rebuilding the Temple. Furthermore, He says it is not their difficult circumstances that are hindering the restoration, but the other way round—because they have not rebuilt the Temple, their situation is hard.

 

Thus, the Temple is rebuilt, but it is nowhere close to the magnificent one that Solomon had built in the past. Yet, as the Israelites rebuild their humble Temple, the voice of God is heard. God speaks to them through Haggai. This is described in today’s passage:

 

“Who of you is left who saw this house in its former glory? How does it look to you now? Does it not seem to you like nothing?” (Haggai 2:3)

 

Yes, their Temple is shabby. But even this is hard to build. This is why the people of Judah are demoralized. They are thinking, ‘What use is it to build this insignificant structure? What is the meaning of building such a shabby house that pales in comparison to the glorious one of Solomon?’

 

However, this is what God says to them:

 

“‘But now be strong, O Zerubbabel,’ declares the LORD. ‘Be strong, O Joshua son of Jehozadak, the high priest. Be strong, all you people of the land,’ declares the LORD, ‘and work. For I am with you,’ declares the LORD Almighty.”(Haggai 2:4)

 

What did the Israelites, the people of Judah, see when they built the Temple? First, they saw the humbleTemple they were building.But what else did they see? They had their eyes on the past, glorious Temple of Solomon.

 

As they rebuilt the Temple, the Israelites who had returned from Babylonian exile thought of the past, glorious Temple. But what they saw in reality was the Temple of Zerubbabel which looked incomparably insignificant and humble compared to it. What is worse, this shabby Temple was not even complete.

 

Yet God declares to them, “But now be strong!” He tells them not to see the Temple of the past or the humble Temple currently being built, but to see God who is with them.

 

God is saying it is not the house or its magnificence—or its shabbiness, for that matter—that counts, but who is in it. What is important is to see Him, the God who is with them.

 

You know what Air Force One is. It refers to the aircraft that carries the president of the Unites States. Although the U.S. government designatesan aircraft to carry the president and calls it “Air Force One,” it is not the Air Force One if the president is not traveling on it. What this means is that whicheveraircraft the president travels on, that becomes Air Force One.

 

In today’s passage, God commands the Israelites to stop looking at the building and to look to thepresence of God. He wants them to see things differently. In fact, He wants them to see what is most important.

 

In the Bible there are many stories ofpeople who saw things differently in diversesituations. In Numbers 13, the Israelite spies who were sent to scout out the land of Canaan return to give differing accounts. Ten of the twelve spies report that the people of Canaan are strong,the city walls are firm and formidable, andthey saw the descendants of Anak there. They mean to say that conquering the land is impossible because the inhabitants are too strong for them:

 

“And they spread among the Israelites a bad report about the land they had explored. They said, ‘The land we explored devours those living in it. All the people we saw there are of great size.We saw the Nephilim there (the descendants of Anak come from the Nephilim). We seemed like grasshoppers in our own eyes, and we looked the same to them.’”(Numbers 13:32-33)

 

But the report of Joshua and Caleb was different:

 

“and said to the entire Israelite assembly, ‘The land we passed through and explored is exceedingly good.If the LORD is pleased with us, he will lead us into that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and will give it to us.Only do not rebel against the LORD. And do not be afraid of the people of the land, because we will swallow them up. Their protection is gone, but the LORD is with us. Do not be afraid of them.’” (Numbers 14:7-9)

 

The Twelve saw the same land, but their perspectives differed completely. Ten of them saw giants, a formidable fortress, and a strong power in the land. But Joshua and Caleb saw God’s promised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and God Almighty who was with them and desired to givethem that land. The two also saw that the protection was gone from that land.

 

There are many other examples of people who saw things differently in the Bible.

 

When the Israelites came to the Red Sea after fleeing Egypt, they were blocked by the sea in frontand chased by the Egyptian army at their heels. So they cried out to Moses:

 

“Was it because there were no graves in Egypt that you brought us to the desert to die? What have you done to us by bringing us out of Egypt?” (Exodus 14:11)

 

Yet through the eyes of the spirit, Moses saw God who was with them and felt the presence the Almighty God who would deliver them. Moses wasn’t blind to the Red Sea or to Pharaoh’s special forces. He had spiritual eyes, not that of the dying flesh, which allowed him to see the power of the Almighty God. Thus he declared boldly to the people:

 

“Do not be afraid. Stand firm and you will see the deliverance the Lord will bring you today. The Egyptians you see today you will never see again.The LORD will fight for you; you need only to be still.” (Exodus14:13-14)

 

This was also true of Stephen in Acts:

 

“But Stephen, full of the Holy Spirit, looked up to heaven and saw the glory of God, and Jesus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Look,’ he said, ‘I see heaven open and the Son of Man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Acts 7:55-56)

 

The Bible speaks this theme consistently: Don’t look at the appearance, the phenomenon, or the circumstance. Look to God.

 

What is important is to see that God is with us.

 

Let us look to God who provided a ram for Abraham, who was with Abraham and Isaac on Mount Moriah.

 

Let us also remember Jacob’s story. When he ran away from Beersheba and set out for Haran, he stopped the night at a certain place. He put a stone under his head and lay down to sleep. There, he had a dream in which he saw a stairway reaching to heaven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it. TheLord stood above it andsaid:

 

“I am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 Abraham and the God of Isaac. I will give you and your descendants the land on which you are lying.Your descendants will be like the dust of the earth, and you will spread out to the west and to the east, to the north and to the south.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you and your offspring.I am with you and will watch over you wherever you go, and I will bring you back to this land.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done what I have promised you.”(Genesis 28:13-15)

 

And let us remember what Jacob said after this experience at Bethel:

 

“When Jacob awoke from his sleep, he thought, ‘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and I was not aware of it.’” (Genesis 28:16)]

 

Depending on what we see and where our sight rests on, our lives become completely different. As the author of Hebrews declares,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Hebrews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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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2: 1~4

1~4

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는 참 중요합니다.>

 

옛날에 전쟁에 나가서 한쪽 눈을 잃고 애꾸눈이 된 왕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가 자신의 집으로 화가를 불러서 초상화를 그리게 했답니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을 본 왕이 크게 화를 내었다고 하네요. “왜 나를 이렇게 병신처럼 그려 놓았느냐!” 그렇게 호통을 치면서 화가를 끌어내어 목을 치라고 명령했다는 겁니다. 이제 다른 화가가 왕궁으로 불려가게 됩니다. 전에 간 화가의 소식을 들은 터라 두 번째 화가는 왕의 두 눈을 그려서 초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초상화를 본 왕이 화를 내었답니다. “이게 어떻게 나란 말이냐! 내 눈이 어째서 둘이냐? 이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이 화가 역시 첫 번째 화가처럼 참수당하고 맙니다.

자, 세 번째 화가가 왕 앞으로 불려갑니다. 어떻게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까요? 앞선 두 화가가 한쪽 눈을 안 그려서 죽임을 당하고, 두 눈을 다 그려서 죽임을 당했으니 별 도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앞모습이 아닌 옆모습을 그려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이 이야기가 실제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왕의 옆모습을 그려서 최고의 예술가로 평가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게도니아의 왕 안티고노스(Antigonus) 1세의 얼굴을 그린 아펠레스(Apelles)라는 화가입니다. 그가 그린 이 그림은 지금은 소실되어서 찾을 수 없다고 하는데, 저서 ‘자연의 역사’(Naturalis Historia) 유명한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가 안티고노스의 초상화를 두고 아펠레스가 그린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고 합니다. 한쪽 눈에 장애가 있는 왕의 초상화를 창의적인 방법으로 그려서 안티고노스 왕이 크게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항상 느끼지만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보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계실 텐데요. 젊은 부부가 슬하에 어린 자녀를 두었는데 자녀가 점점 자라나면서 방에서 뛰기 시작하니까 층간 소음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문제 때문에 여러 번 이사를 가고 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네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에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바로 위층이 마침 비어서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그러자 층간 소음 문제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해요. 물론 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아침마다 일어나서 뛰었고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소리를 들으면서 도리어 기뻐했다는 것이죠. ‘아, 아이들이 깼구나.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구나.’ 이처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은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층간 소음 문제로 고민하고 계신 분들은 부모님 윗집으로 이사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정치권이 여와 야로 나뉘어 계속해서 싸움을 벌이고 있죠. 왜 그렇습니까? 관점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가정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사의 문제도 그러하고요.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문제는 확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물론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모두가 한 방향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바라보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럴 때에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게 되고,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것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검은색 돌덩어리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모양을 본 로뎅과 같은 조각가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이 끓는 주전자를 무심코 보았지만, 제임스 와트는 여기서 힘을 보고 증기기관차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번개가 치는 것을 보며 무서워하고 도망갔지만, 프랭클린은 치는 번개 속에서 어둠을 밝히는 전기를 보게 됩니다. 같은 현상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7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유다 백성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도 동일한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내용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유다 사람들이 70년 만에 바벨론에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재건하기로 결정하고 공사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성전 건축이 쉽지 않았습니다. 더디게, 더디게 진행됩니다.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합니다. 포로에서 막 돌아왔으니 그들에게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살기도 어려웠을 형편인데 성전을 그리 쉽게 지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학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지을 것을 끊임없이 독려하셨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성전을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전을 짓지 못하여서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성전 짓는 일이 이어집니다만, 과거 솔로몬 시대에 완공된 성전과 비교하면 턱없이 초라한 성전을 지어야 했을 것입니다. 자,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를 통하여 임합니다. 학개서 2장 3절입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학 2:3)

 

유다 백성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 중에는 과거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성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화려하고 영광스런 성전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들이 짓는 이 성전은 참으로 처량합니다.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이런 건물 지어서 무엇하는지’ 하는 생각으로 짓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동기 부여가 잘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전의 영광과 비교해 본다면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을 콕 집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너희가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성전이지 아니하냐? 이 성전을 보면서 실망하고 있지 아니하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라. 성전을 보지 말고 나를 보아라. 너희와 함께하고 있는 나를 보아라. 내가 너희와 함께하고 있노라.” 주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유다 백성은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합니다.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초라한 현실을 바라봅니다. 비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영광도, 현재의 초라함도 생각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과 함께 성전을 지어 가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명령하십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우리 삶 속에서 종종 일어납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사업, 건강함, 명예 등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비하여 초라해진 현실을 바라볼 때가 꽤 많습니다. 어느새 노약해진 모습, 병약해진 모습, 이전처럼 번창하지 못하는 사업 … 그래서 힘겨운 마음을 가진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함께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건물의 화려함이나 초라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건물 안에 있는지, ‘누가’ 그들과 함께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물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같은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성경을 보면 같은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본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증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보고 온 열 명의 정탐꾼들은 그곳의 거주민들이 강하고, 성읍이 심히 클 뿐 아니라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강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3:32~33)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모습을 보았어도 다르게 증언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14:7~9)

 

물론 두 사람도 장대한 아낙 자손을 보았고, 견고한 성읍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맞다는 겁니다. 이 땅을 그들에게 예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땅을 보호하던 보호자가 떠났고, 방비는 이미 허술해졌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말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앞에 두고 절규할 때의 일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로는 바로의 병거가 뒤쫓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4:11)

 

“아, 이제 죽었다! 우리는 이제 죽었다!”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는 게 더 좋았을 뻔했다고 진단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영의 눈을 통해서 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그는 앞과 뒤가 막혀 있는 현실에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썩을 육체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향하여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7:55~56)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서 죽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만큼 고통도 심했겠죠. 분노로 가득 찬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가 참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 옆에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 열린 하늘 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본 스데반은 결국 순교의 길을 감당하게 됩니다.

야곱 역시 그러합니다.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한 곳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돌로 베개를 삼고 누워 자는데, 꿈에서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28:13~15 )

 

그저 한적한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어떤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돌베개를 벤 채 잠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임을 꿈을 꾸면서 깨닫게 됩니다. 이후에 야곱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28:16)

 

<믿음의 눈을 통하여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다르게 볼 수 있을까요? 다르게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서 좌, 우로 나뉘어서 보는 시각이 있겠고, 노와 사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도 있을 겁니다. 남자와 여자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도 있겠습니다. 다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시각이 있음을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현실을 보지 말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시각이 우리 안에 계속해서 열리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우리 삶의 여정 속에도 때로는 암울하고, 힘들고,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불치의 병일 수 있고요. 사업의 실패일 수도 있습니다. 건강의 이상일 수도 있고, 그 외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황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내도록 도울 것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씀드렸습니다. 이 땅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동행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곁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영적인 시각이 우리 모두에게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장 2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12:2 )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예수 안에 소망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상황을 다 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보며 척박한 인생을 힘 있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3년 10월 2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이것이 어떻게 보이느냐 (학 2:1~4)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35장, 291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학 2:1~4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0월 2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냥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내가 보는 것을 어떤 방향에서 생각하면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나요?

 

 

설교의 요약

 

평범한 것에서 위대한 것을 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의 문명을 이끌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검은 돌덩어리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모양을 보았던 로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이 끓는 주전자를 무심코 보았지만, 제임스 와트는 거기서 힘을 보았고 증기기관차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번개가 치는 것을 보면서 무서워했지만, 프랭클린은 어둠을 밝힐 전기로 보았습니다. 이처럼 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오늘의 본문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는 내용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성전재건 공사를 시작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건축이 더디게 진행됩니다. 포로생활 하던 사람들이 고국에 막 돌아와서 가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살기도 어려운데 성전을 어떻게 쉽게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통하여 그들에게 계속해서 성전을 지으라고 독려하십니다.

 

지금 유다의 백성들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지으며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스런 성전을 생각합니다. 그러한 성전과 비교하여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스룹바벨 성전을 봅니다. 그것도 아직 완성되지 못하고 있는 참으로 처량한 신세에 있는 성전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말씀하시며, 과거의 성전을 볼 것이 아니고, 건물로 지어지고 있는 초라한 성전을 볼 것이 아니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물의 화려함이나 초라함이 문제가 아니라, 그 건물 안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건물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르게 보라는 것입니다. 아니, 가장 중요한 것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이야기가 일관되게 증언하는 내용은 겉모양을 보지 말고, 현상을 보지 말고,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나누기

 

  1. 현재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2. 사물을 보는 관점이나, 사람을 보는 눈길이 달라졌던 경험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늘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땅에서도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영원히 주님과 동행함을 확신하게 하시고, 특별히 이 땅을 사는 동안 험난한 상황 가운데에서 주님의 함께하심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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