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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위대함 : 바울을 만든 다메섹교회

사도행전 9:17~25

김경진 목사

2026.02.01

<성경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복음을 위한 큰일을 했던 교회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기억할 만한 초대교회의 이름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에베소교회, 골로새교회, 라오디게아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로마교회, 고린도교회…. 이 외에도 많은 초대교회의 이름들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중 빌립보교회는 유럽 대륙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로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수리아의 안디옥교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처음 들은 특별한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초대교회의 많은 이름 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우 중요한 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이름은 다메섹교회입니다. 다메섹에도 교회가 있었는지 질문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도 오순절 이후 성령 강림과 더불어 시작된 교회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던 교회로 추측됩니다. 그 증거들이 성경에 여러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예루살렘교회가 큰 박해를 받고 많은 사람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때 다메섹은 예루살렘 박해를 피해서 온 성도들의 ‘거대한 피난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성경의 내용이 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행 9:1~2)

지금 예루살렘교회는 어려움과 박해를 받으며 거의 초토화가 된 상황입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다음 타깃인 다메섹으로 가려고 합니다. 사울이 왜 예루살렘에서 240km 정도나 떨어져 있는 먼 곳까지 가려고 했을까요? 그만큼 다메섹교회가 급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대제사장의 공문까지 받고 달려갔다는 것 자체가 다메섹교회의 영적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곳에는 아나니아와 같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심한 사울을 받아들일 만큼 결속력이 강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회심 사건을 천천히 읽다 보면, 아주 단단하고 일사불란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다메섹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 이 다메섹교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메섹교회를 통해 박해자 사울이 위대한 사도 바울로 거듭나기까지 그를 품어 주셨습니다.>

다메섹교회는 초대교회의 형성과 그리스도교의 전파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그 교회의 중대성은 무엇일까요? 많은 초대교회가 바울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교회만큼 바울과 깊이 연관된 교회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많은 초대교회를 바울 사도가 세웠습니다. 안디옥교회, 이고니온교회, 루스드라교회, 더베교회,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베뢰아교회,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이 이름들은 바울 사도가 전도 여행을 하면서 직접 세운 교회의 이름들입니다.
그런데 박해자 사울을 사도 바울로 빚어낸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다메섹교회입니다. 수많은 초대교회를 바울 사도가 세웠다면, 그 바울을 세운 교회가 다메섹교회입니다. 이 다메섹교회에서 바울은 최초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신약성경 27권 중에 13권을 기록한 사람이며, 유럽과 소아시아 전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사람입니다. 기독교와 전도에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사람입니다.
다시 한번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과연 누가 사울을 바울로 만들었을까요? 가장 근원적인 정답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다메섹에서 사울을 만나 주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성경은 그 극적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 9:3~6)

이렇듯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극적인 경험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극적인 경험만으로 사울을 사도 바울로 만드셨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박해자 사울이 위대한 사도 바울로 거듭나기까지 그를 품어 주고 양육하는 특별한 인큐베이터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곳이 이름조차 성경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다메섹교회입니다.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행 9:6)

이 말씀 속에 그들의 존재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울은 의기양양하게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길목에서 사울을 꺾으십니다. 강력한 빛 앞에서 그만 눈이 먼 사울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서 다메섹 누군가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사흘 동안 보지도 먹지도 못하고 물도 못 마신 채로 지냅니다. 이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행 9:8~9)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사울을 누가 데리고 갔을까요? 그리고 사울은 어디에서 사흘 동안 머물렀을까요? 성경은 이 사건이 우연한 사건이 아닌, 하나님의 치밀한 의도와 계획이었음을 알려 줍니다.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행 9:11)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지금 머무는 곳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직가’라는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누구였을까요? 이야기의 흐름으로 볼 때, 유다는 분명 그리스도의 제자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눈먼 사울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간호하고 도움을 주도록 하셨습니다. 후에 아나니아가 그 집을 방문하여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울의 눈을 뜨게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합니다. 이 장면을 볼 때, 그 집은 분명 예수를 믿고 있던 다메섹의 한 성도의 집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다메섹교회는 변화된 사울에게 인내와 기다림의 토양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다메섹의 성도 유다가 극진히 사울을 간호하고 있을 때, 아나니아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물론 그 역시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서 안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당황합니다.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이렇게 말하면서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행 9:13~14)

그러나 주님의 뜻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는 순간, 그는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찾아갔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나니아가 주님께 어떤 다른 질문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토도 달지 않고, 어떤 항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러 떠납니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행 9:17~19)

이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을 죽이러 온다는 소문으로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이름입니다. 이제 그 사울 앞에 아나니아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가 내뱉은 첫마디는 정죄나 심판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를 이렇게 부릅니다. “형제 사울아.” 다메섹교회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격 없는 자, 심지어 원수였던 자에게 ‘형제’라는 이름을 불러 주는 교회였습니다.
그 선한 말 한마디가 사울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 내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입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의 손길을 통해서 예수님의 용서가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거듭납니다. 이렇게 변화된 사울은 앞을 보게 되자마자 회당에 나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경악하고, 배신감을 느낀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그 내용을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 9:20)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행 9:23)

성경은 이 사건을 이렇듯 아주 짧게 “여러 날이 지나매”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울의 이야기를 읽을 때, 그가 다메섹에 잠시 머물다가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훗날 갈라디아서를 쓰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갈 1:16~18)

누가는 사도행전의 전개 과정을 조금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 시간을 생략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울이 다메섹 주변에서 머물며 그 공동체와 함께했던 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습니다. 바울의 회고를 보면 아라비아와 다메섹에 머물렀던 시간이 3년이라고 합니다.
이 긴 시간 동안 다메섹에 있는 교회 공동체는 변화된 사울과 어떤 삶을 함께 나누었을까요? 사울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어제까지 박해하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예수를 전하니, 누가 그 말을 믿으려고 했겠습니까? 유대인에게는 배신자였을 것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스파이일지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메섹교회는 그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 줍니다. 그를 먹이고 재우고 함께 예배드리며, 박해자 사울이 사도 바울로 바뀌는 시간 동안 삶의 터전을 함께 나눕니다. 거목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인내와 기다림으로 옥토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다메섹교회는 인내로 바울이라는 거목을 길러 낸 위대한 토양이었습니다. 그들의 선함은 ‘기다려 줌’이라는 방식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메섹교회는 부지중에도 사울을 믿고 격려하며 그를 위한 헌신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사울에게 박해로 인한 생애 첫 번째 죽음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유대인들이 다메섹 서문을 밤낮으로 지키면서 사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성벽은 높고, 성문은 막혔습니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였습니다. 이때 사울을 살린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사울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다메섹의 성도들은 그를 살리기 위해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행 9:25)

그때의 상황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이렇게 다시 증언합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고후 11:32~33)

여기서 ‘그의 제자들’은 아마도 바울이 된 사울이 다메섹에서 긴 시간 동안 사역하며 얻은 열매들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그곳에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메섹교회는 바울에게 흔쾌히 리더십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원수와도 같았던 사울을 용납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지도력까지 주어서 제자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열어 주었던 교회가 다메섹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무명의 성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울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칠흑 같은 밤, 성벽 위에 위치에 누군가의 집 창가에서 밧줄이 내려갑니다. 성인 남자의 무게가 담긴 광주리를 달아내기 위해서는 아마도 여러 사람이 함께 붙잡아야 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파수꾼에게 들킨다면 반역죄로 처형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안전하게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들은 과연 그들이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알고나 있었을까요? 그가 후에 그토록 위대한 주님의 사도가 될 것을 미리 알았을까요? 아마 그 당시로서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한 사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 회심하고, 이제 그리스도를 전파하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를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지중에 위대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광주리에 담아 내린 사람은 그저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복음의 미래였습니다. 바울이 훗날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서신서를 남길 수 있게 된 것은, 다메섹 성벽 위에서 묵묵히 밧줄을 달아서 사울을 내려 주었던 이름 없는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선함의 번짐’이라는 주제 안에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선함의 번짐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함을 실천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한 생각을 하고, 그 선한 생각을 실천하는 데서부터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다메섹교회 성도들은 박해자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되기까지 인내로 기다려 줌으로써 그들의 선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공동체 안에 받아 주고, 격려하며, 기다려 줍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선함이 번져 가게 하고 있습니다. 다메섹교회는 비록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울에게 세례를 베푼 위대한 교회였습니다. 원수를 형제로 다시 불러 주는 용서와 용납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충분히 사도로 준비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격려해 주며, 지도력도 주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박해를 피해 도망갈 수 있도록 바구니에 달아 그를 내려 줄 만큼 그를 소중하게 여겨 주었던 교회이기도 하였습니다.

<화평을 이룬 교회들과 같이 서로에게 격려와 힘을 주며 선함을 번져 가게 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 다메섹교회 같은 교회가 한국에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전북 김제의 금산교회 이야기입니다. 이자익 목사님과 조덕삼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2025년에 이자익 목사님에 관한 새로운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1897년, 17살 이자익이 남해에서 김제로 와서 조덕삼의 마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일정한 급료를 받고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의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05년에 두 사람은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함께 집사가 됩니다. 또 1907년에는 함께 영수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금산교회는 그해 독노회 전라대리회의 허락을 받고 1908년에 첫 번째로 교회의 장로를 선출하게 됩니다. 그때 투표를 실시하였는데, 그때 후보가 이자익과 조덕삼이었습니다. 당시 조덕삼은 김제 최고의 갑부였고, 교회를 지을 땅도 헌납하였으며, 교회 재정의 대부분을 감당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동네 많은 사람이 조덕삼의 소작농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조덕삼은 이자익보다 15살이나 많은 나이였다고 합니다. 누가 보아도 조덕삼이 먼저 장로가 되겠다고 생각할 만했습니다.
하지만 투표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자익이 먼저 장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조덕삼은 이 결과를 아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조덕삼은 그다음 해에 장로가 됩니다. 그리고 조덕삼은 이후 이자익을 적극적으로 후원합니다. 그는 이자익을 시기하거나 끌어내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평양신학교에 입학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의 학자금과 생활비 일체를 지원하며 훌륭한 목사로 키워 가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참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그 결과가 더 대단합니다.
다메섹 성도들이 내린 광주리를 타고 살아난 바울처럼, 조덕삼 장로님이 내어준 그 사랑의 광주리를 타고 공부한 이자익 목사님은 한국교회 역사에 전무후무한 거목으로 자라납니다. 이후 이자익 목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의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합니다. 그저 단순히 한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책임지는 총회장을 세 번이나 맡습니다. 1924년 제13회 총회장, 1947년과 48년, 33회, 34회 총회장이 됩니다. 이와 같은 일은 한국교회 역사에 그 후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특별히 화평의 사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에 분쟁이 있을 때마다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1948년 신학생 51명이 당시 조선신학교 김재준 박사의 신학에 반발하여 교단 내 갈등이 생긴 일이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교단이 분열할 수 있는 위기였습니다. 그때 이자익 목사님이 모든 문제를 잘 중재하고 해결했다고 합니다.
이자익 목사님은 1958년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 이듬해 장로교회가 예장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합니다. 많은 이가 이자익 목사님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분열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는 평가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인물을 길러 낸 교회가 김제의 금산교회였고, 금산교회 안에 자신의 마부였던 이자익을 끝까지 신뢰하고 믿어 주었던 조덕삼 장로가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소망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정과 직장,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대학 입시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대학이 결정된 자녀들도 있겠지만, 정시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학생도 있겠지만, 좋지 않은 대학에 들어가서 마음이 불편한 가족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입시에서 떨어져서 절치부심하며 한 해를 보내야 하는 가족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다메섹 공동체를 보면서 우리 가정에도 이 일을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다른 말보다는 “그래, 너는 그래도 위대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힘줄 수 있는 격려의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자녀들을 아껴 주고 격려하고 기다려 준다면, 지금은 사울일지라도 후에는 바울과 같이 그들이 놀라운 삶을 살아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올해 주제가 ‘선함의 번짐’입니다. 이 주제를 나누며 아마 교회의 봉사 자리를 지원하고 막 시작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새해가 시작한 지 막 한 달쯤 되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서 좌충우돌하는 분들이 나올 것입니다. 말실수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 조금 부족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찬양대에 들어오신 분 중에 소리를 잘못 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메섹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기다려 주고 함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대한 인물로 키워 내지 않았습니까? 우리 소망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여러 교회를 다녀 보니, 두 가지 교회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회자를 세워 주고 신나게 만들어 주는 교회가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교회는 목회자를 깎아내리며 지치게 만드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는 정말 목회자들을 힘 나게 만들어 주는 교회입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봉사하는 모든 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를 하면 할수록 힘이 나고 격려를 받는 교회가 있고, 반대로 자꾸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힘을 빼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교회, 서로 격려하며 선함을 번져 가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마음으로 함께합시다. 선함의 번짐을 통해 우리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가 되고, 우리 가정과 사회가 아름답고 멋진 곳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Unnamed Greatness: The Church in Damascus That Shaped Paul

Acts 9:17-25

The Bible mentions many significant names of the Early Church. Among them are the churches in Jerusalem, Antioch, Ephesus, Colossae, Laodicea, Thessalonica, Rome, and Corinth. Other names of the Early Church appear in the Bible too.

Among them, the church in Philippi was significant as the first church established in Europe. The church in Antioch was special because it was there that believers were first called “Christians” by unbelievers.

But among these many names, there is one relatively unfamiliar to us: the church in Damascus.

Some of you may be wondering, Was there even a church in Damascus? But it is thought that the church in Damascus was the fastest growing Christian community among the churches that began after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The Bible mentions several evidences of its powerful growth.

Damascus is thought to have served as a massive shelter for early Christians fleeing persecution in Jerusalem. After the martyrdom of Stephen, the church in Jerusalem was severely persecuted. At that time, many Christians scattered. Among the regions to which Christians fled, Damascus, in particular, was home to many Jewish synagogues and had a developed transportation system, which is why it is surmised to have received the greatest number of Christians fleeing persecution.

The Bible confirms such circumstances concerning Damascus. Acts 9:1-2 states:

“Meanwhile, Saul was still breathing out murderous threats against the Lord’s disciples. He went to the high priest and asked him for letters to the synagogues in Damascus, so that if he found any there who belonged to the Way, whether men or women, he might take them as prisoners to Jerusalem.” (Acts 9:1-2 NIV)

Saul planned to go to Damascus to arrest followers of Jesus. Why did he make the effort to go all the way to Damascus, a city 240 kilometers from Jerusalem? It was likely because the church in Damascus was growing so powerfully that it was becoming a threat to the Jewish religious system. The very fact that Saul went to Damascus with official papers from the high priest paradoxically proves the powerful spiritual influence of the church in Damascus.

Furthermore, in Damascus there were leaders who were spiritually alert like Ananias. Damascus also had a close-knit Christian community whose members had a bond strong enough to accept the newly converted Saul. In closely studying the story of Saul’s conversion, we find that there was an extremely strong and organized community of believers in Damascus.

Today, we will focus on this church in Damascus. What was its role in the growth of Christianity?

Although many names of the Early Church are associated with Paul, none will be as deeply connected to him as the church in Damascus.

Many of the early Christian churches were founded by Paul. The churches in Antioch, Iconium, Lystra, Derbe, Philippi, Thessalonica, Berea, Corinth, Ephesus… All these churches were established through Paul’s missionary journeys.

But there was one church that shaped persecutor Paul into Apostle Paul: the church in Damascus. While Paul started all the churches above, it was the church in Damascus that made Paul.

Who is Paul? He is the man who authored 13 of the 27 books in the New Testament. It was he who sowed the seeds of the Gospel in Europe and all across Asia Minor.

Now let’s ask this question. “Who transformed Saul to Paul?” Of course, the fundamental answer is God. It was the risen Lord who appeared to Saul in Damascus that changed him. The Bible describes his dramatic conversion as follows:

“As he neared Damascus on his journey, suddenly a light from heaven flashed around him. He fell to the ground and heard a voice say to him, ‘Saul, Saul, why do you persecute me?’ ‘Who are you, Lord?’ Saul asked. ‘I am Jesus, whom you are persecuting,’ he replied. ‘Now get up and go into the city, and you will be told what you must do.’” (Acts 9:2-6 NIV)

As such, Saul had a dramatic experience on his way to Damascus. But God did not complete him with this one dramatic incident. God prepared a very special “incubator” to protect and nurture him until persecutor Saul was reborn as the great Apostle Paul. This incubator was none other the members of the church in Damascus whose names are not even recorded in the Bible.

“You will be told what you must do.” The existence of these Christians is indicated in this very verse.

Before I go further into the story, I must explain a bit about the situation in Damascus at the time. To Saul, Damascus was “the enemy territory” that must be cleared. Saul, who had already gained official letters from the chief priest, was going to Damascus to track down all the believers hiding there, arrest them, and forcibly bring them back to Jerusalem.

But God struck him down on his way to Damascus. Saul, blinded by a bright light, was led into Damascus led by someone else’s hand. Then he entered someone’s house where he remained blind and went without food for three days:

“Saul got up from the ground, but when he opened his eyes he could see nothing. So they led him by the hand into Damascus. For three days he was blind, and did not eat or drink anything.” (Acts 9:8-9 NIV)

Who led this blind Saul by the hand? And where did Saul stay for three days?

The Bible tells us that this was not an accident, but an intentional incident meticulously planned by God. We can confirm this in God’s words to the disciple named Ananias:

“The Lord told him, ‘Go to the house of Judas on Straight Street and ask for a man from Tarsus named Saul, for he is praying.’” (Acts 9:11 NIV)

God knew exactly where Saul was staying—the house of Judas on Straight Street. Who was Judas? Judging from the flow of the story, it seems evident he was a disciple of Jesus. God had Judas take the blind Saul into his house to nurse and help him. From the fact that Ananias later visited this house and baptized Saul after his eyesight was restored, the house of Judas is thought to have belonged to the church in Damascus. When a member of the church in Damascus was doing his utmost to care for Saul, Ananias heard the Lord’s voice. Of course, Ananias was a disciple of Christ.

God ordered Ananias to go to Saul and lay hands on him. Ananias was dumbfounded by this command because he knew all too well who Saul was.

So Ananias expressed his fear: “‘Lord,’ Ananias answered, ‘I have heard many reports about this man and all the harm he has done to your holy people in Jerusalem. And he has come here with authority from the chief priests to arrest all who call on your name.’” (Acts 9:13-14 NIV)

However, the moment Ananias confirmed the Lord’s will, he surrendered his own judgement and visited Saul. When the Lord told Ananias about His plans for Saul, Ananias did not say another word. He didn’t protest. He didn’t ask questions.

He immediately set out to execute the Lord’s command:

“Then Ananias went to the house and entered it. Placing his hands on Saul, he said, ‘Brother Saul, the Lord—Jesus, who appeared to you on the road as you were coming here—has sent me so that you may see again and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Immediately, something like scales fell from Saul’s eyes, and he could see again. He got up and was baptized, and after taking some food, he regained his strength. Saul spent several days with the disciples in Damascus.” (Acts 9:17-19)

Let’s try to imagine this scene. Ananias is standing before Saul, the very man who until just a few days ago threatened to kill all the Christians in Damascus and made them tremble. Yet the first words spoken by Ananias were not those of condemnation or judgement. They were “Brother Saul.”

The name “Ananias” means “God is gracious.” The first person that Saul met when he was trapped in darkness showed him that God is gracious—as befits his name.

This is the greatness of the church in Damascus. It warmly welcomed Saul, an unworthy man and former enemy, and called him “brother.” This one word of goodness peeled the scales off Saul’s eyes and melted his cold heart. Through Ananias and his actions, Saul experienced firsthand the forgiveness of Christ.

After his conversion, Saul immediately goes to the synagogues to preach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People were shocked, and the Jews, feeling betrayed, resolved to kill Saul:

“At once he began to preach in the synagogu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Acts 9:20 NIV)

“After many days had gone by, there was a conspiracy among the Jews to kill him,” (Acts 9:23 NIV)

The Bible records this incident briefly with the phrase “after many days.” This tends to make us think that Saul tried to escape Damascus just a few days after his conversion. But Paul later describes this incident in Galatians as follows:

“to reveal his Son in me so that I might preach him among the Gentiles, my immediate response was not to consult any human being. […] but I went into Arabia. Later I returned to Damascus. Then after three years, I went up to Jerusalem to get acquainted with Cephas […].” (Galatians 1:16-18 NIV)

While, in Acts, Luke omitted the time Saul spent with the saints in Damascus for the sake of the story’s development, Saul actually spent quite a long time with the Christian community in Damascus while he lived in that area after his conversion. He spent three years in Arabia and Damascus. Dear friends, what do you think the saints in Damascus would have done in this long period?

Saul was not yet complete. Until yesterday he was persecuting Christians; today he suddenly preaches Jesus—who would trust him? To the Jews he was a “traitor,” and to the suspicious Christians he might have seemed a “spy.” Yet the church in Damascus waited for him, quietly and patiently, during this long period. They fed him, sheltered him, worshiped with him, and shared their lives with him so he could ripen from “Saul the persecutor” into “Apostle Paul.”

Great trees don’t grow overnight. Someone’s patience and waiting must become fertile soil. The church in Damascus—built on the endurance of unnamed believers—was the rich soil that raised the great tree called Paul. Their goodness spread by simply waiting.

Then came Saul’s first real persecution, a threat of death. Jews guarded the gates of Damascus day and night to kill him. The walls were high and the gates closed; he was like a mouse trapped in a jar. What saved him was not a miracle or a supernatural event.

When Saul faced death, the believers in Damascus found a way to save him:

“But his followers took him by night and lowered him in a basket through an opening in the wall.” (Acts 9:25 NIV)

Paul later testifies to that night in 2 Corinthians 11:

“In Damascus the governor under King Aretas had the city of the Damascenes guarded in order to arrest me. But I was lowered in a basket from a window in the wall and slipped through his hands.” (2 Corinthians 11:32–33 NIV)

“His followers” in Acts 9:25 were likely the fruit of Saul’s brief ministry in Damascus—unknown, unnamed believers. Yet they risked their lives for him.

In the dead of night, from a window on the wall, a rope and a basket were lowered. Hands gripped the rope with all their strength, knowing if the guards discovered them they could be charged with treason and put to death.

But they did not let go. They helped Paul escape safely.

Did they even know what they were doing? Did they foresee Paul would become a great apostle? Probably not. They simply helped one notorious persecutor who had met the Lord, preventing him from being seized and killed. But, unknowingly, they did something great.

The man they lowered was not merely an individual named Saul; he embodied the future of the Gospel envisioned by God. Paul’s later mission to Rome and the many letters he wrote were possible because of those nameless saints whose hands silently held onto the rope from the walls of Damascus that night.

Brothers and sisters, consider this story from the theme of the spread of goodness.

The spread of goodness begins with our active practice of doing good. But the believers in Damascus practiced goodness by patiently waiting until persecutor Saul became Apostle Paul. By receiving a person the community might otherwise reject, by being with him, and by encouraging him, they let goodness spread.

The church in Damascus, though not widely known by name, was a great church that shaped Paul. It was a church of forgiveness and acceptance that turned an enemy into a brother, a church that waited and encouraged him until he was ready to be an apostle, and a church that valued him enough to lower him in a basket so he could escape persecution.

Dear friends, I share this message with you today, praying that Somang Church would be such a church. The spread of goodness calls for active good deeds, but it can also happen through seemingly passive acts such as waiting, accepting, and receiving. The church in Damascus revealed its goodness through forgiveness, acceptance, and patient waiting.

The Korean church has its own story much like that of the church in Damascus: Geumsan Church in Gimje, North Jeolla Province.

In 2025, a new study on Pastor Lee Ja-ik of Geumsan Church was published by Pastor Mun Sung-mo. This offers more precise details than those commonly known.

In 1897, seventeen-year-old Lee Ja-ik came from Namhae to Gimje and began working as a horseman for Cho Deok-sam. In 1905 the two were baptized together at Geumsan Church, soon became deacons together, and in 1907 both became leaders of the church.

With the approval of the Dok Presbytery’s Jeolla Province Meeting that year, Geumsan Church held its first election of elders in 1908. At the time, Cho Deok-sam was the wealthiest man in Gimje; he had donated land to build the church and funded most of its finances. Many in the village were also Cho’s tenant farmers. Moreover, Cho was fifteen years older than Lee. But it was Lee Ja-ik who was voted elder. Cho welcomed the result gladly. The next year Cho himself became an elder too. Cho actively supported Lee. He helped him enter Pyongyang Seminary, paying for all his tuition and living expenses.

Dear friends, what was the result? Like Paul, who was rescued in a basket by the believers in Damascus, Lee Ja-ik—who rode the “basket of love” provided by Elder Cho and studied theology—became an unparalleled giant in Korean church history.

Pastor Lee Ja-ik later served as Moderator of the General Assembly of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three times. He became an unprecedented figure in our church’s history. He was the 13th, 33rd, and 34th Moderator in 1924, 1947, and 1948, respectively.

He was especially known as an apostle of peace, showing a special gift for resolving church conflicts peacefully. In 1948, when 51 theological students protested Dr. Kim Jae-joon’s theology at Chosun Theological Seminary and a conflict arose within the denomination, he mediated and resolved the issue. He also played a major role in settling disputes in multiple churches.

Pastor Lee died in 1958. The following year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split into Tonghap and Hapdong. Records note many believed that had Lee been alive, such a division might not have occurred.

The church that raised such a great man was Geumsan Church in Gimje, and in Geumsan Church was Elder Cho Deok-sam, who trusted and believed in his horseman Lee Ja-ik to the end.

Although Elder Cho provided just a “basket” for a single horseman, in that basket lay the great future of the Korean church. This is the very miracle that the spread of goodness creates.

Beloved members of Somang Church, the goodness we hope for does not only spread on a glittering stage. Goodness begins with a single word of welcome that calls someone “brother” before judging them.

Goodness spreads in the patient waiting that quietly allows a rough, inexperienced new believer to grow.

Goodness spreads in the devotion of gripping the rope through the night until your palms bleed to save a soul.

May Somang Church become the church in Damascus of this age. The small rope we hold, the rough basket we provide—these will one day form another Paul, another Pastor Lee Ja-ik who will revive this age. With that hope, let us become good saints who save others. In our homes, workplaces, and church, let us hope, wait, forgive, accept, and save lives. Goodness will spread—starting with me, then to our family, neighbors, and the next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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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17~25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성경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복음을 위한 큰일을 했던 교회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기억할 만한 초대교회의 이름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에베소교회, 골로새교회, 라오디게아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로마교회, 고린도교회…. 이 외에도 많은 초대교회의 이름들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중 빌립보교회는 유럽 대륙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로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수리아의 안디옥교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처음 들은 특별한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초대교회의 많은 이름 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우 중요한 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이름은 다메섹교회입니다. 다메섹에도 교회가 있었는지 질문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도 오순절 이후 성령 강림과 더불어 시작된 교회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던 교회로 추측됩니다. 그 증거들이 성경에 여러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예루살렘교회가 큰 박해를 받고 많은 사람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때 다메섹은 예루살렘 박해를 피해서 온 성도들의 ‘거대한 피난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성경의 내용이 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행 9:1~2)

지금 예루살렘교회는 어려움과 박해를 받으며 거의 초토화가 된 상황입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다음 타깃인 다메섹으로 가려고 합니다. 사울이 왜 예루살렘에서 240km 정도나 떨어져 있는 먼 곳까지 가려고 했을까요? 그만큼 다메섹교회가 급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대제사장의 공문까지 받고 달려갔다는 것 자체가 다메섹교회의 영적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곳에는 아나니아와 같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심한 사울을 받아들일 만큼 결속력이 강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회심 사건을 천천히 읽다 보면, 아주 단단하고 일사불란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다메섹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 이 다메섹교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메섹교회를 통해 박해자 사울이 위대한 사도 바울로 거듭나기까지 그를 품어 주셨습니다.>

다메섹교회는 초대교회의 형성과 그리스도교의 전파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그 교회의 중대성은 무엇일까요? 많은 초대교회가 바울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교회만큼 바울과 깊이 연관된 교회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많은 초대교회를 바울 사도가 세웠습니다. 안디옥교회, 이고니온교회, 루스드라교회, 더베교회,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베뢰아교회,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이 이름들은 바울 사도가 전도 여행을 하면서 직접 세운 교회의 이름들입니다.
그런데 박해자 사울을 사도 바울로 빚어낸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다메섹교회입니다. 수많은 초대교회를 바울 사도가 세웠다면, 그 바울을 세운 교회가 다메섹교회입니다. 이 다메섹교회에서 바울은 최초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신약성경 27권 중에 13권을 기록한 사람이며, 유럽과 소아시아 전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사람입니다. 기독교와 전도에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사람입니다.
다시 한번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과연 누가 사울을 바울로 만들었을까요? 가장 근원적인 정답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다메섹에서 사울을 만나 주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성경은 그 극적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 9:3~6)

이렇듯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극적인 경험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극적인 경험만으로 사울을 사도 바울로 만드셨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박해자 사울이 위대한 사도 바울로 거듭나기까지 그를 품어 주고 양육하는 특별한 인큐베이터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곳이 이름조차 성경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다메섹교회입니다.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행 9:6)

이 말씀 속에 그들의 존재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울은 의기양양하게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길목에서 사울을 꺾으십니다. 강력한 빛 앞에서 그만 눈이 먼 사울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서 다메섹 누군가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사흘 동안 보지도 먹지도 못하고 물도 못 마신 채로 지냅니다. 이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행 9:8~9)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사울을 누가 데리고 갔을까요? 그리고 사울은 어디에서 사흘 동안 머물렀을까요? 성경은 이 사건이 우연한 사건이 아닌, 하나님의 치밀한 의도와 계획이었음을 알려 줍니다.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행 9:11)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지금 머무는 곳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직가’라는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누구였을까요? 이야기의 흐름으로 볼 때, 유다는 분명 그리스도의 제자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눈먼 사울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간호하고 도움을 주도록 하셨습니다. 후에 아나니아가 그 집을 방문하여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울의 눈을 뜨게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합니다. 이 장면을 볼 때, 그 집은 분명 예수를 믿고 있던 다메섹의 한 성도의 집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다메섹교회는 변화된 사울에게 인내와 기다림의 토양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다메섹의 성도 유다가 극진히 사울을 간호하고 있을 때, 아나니아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물론 그 역시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서 안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당황합니다.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이렇게 말하면서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행 9:13~14)

그러나 주님의 뜻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는 순간, 그는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찾아갔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나니아가 주님께 어떤 다른 질문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토도 달지 않고, 어떤 항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러 떠납니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행 9:17~19)

이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을 죽이러 온다는 소문으로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이름입니다. 이제 그 사울 앞에 아나니아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가 내뱉은 첫마디는 정죄나 심판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를 이렇게 부릅니다. “형제 사울아.” 다메섹교회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격 없는 자, 심지어 원수였던 자에게 ‘형제’라는 이름을 불러 주는 교회였습니다.
그 선한 말 한마디가 사울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 내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입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의 손길을 통해서 예수님의 용서가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거듭납니다. 이렇게 변화된 사울은 앞을 보게 되자마자 회당에 나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경악하고, 배신감을 느낀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그 내용을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 9:20)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행 9:23)

성경은 이 사건을 이렇듯 아주 짧게 “여러 날이 지나매”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울의 이야기를 읽을 때, 그가 다메섹에 잠시 머물다가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훗날 갈라디아서를 쓰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갈 1:16~18)

누가는 사도행전의 전개 과정을 조금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 시간을 생략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울이 다메섹 주변에서 머물며 그 공동체와 함께했던 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습니다. 바울의 회고를 보면 아라비아와 다메섹에 머물렀던 시간이 3년이라고 합니다.
이 긴 시간 동안 다메섹에 있는 교회 공동체는 변화된 사울과 어떤 삶을 함께 나누었을까요? 사울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어제까지 박해하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예수를 전하니, 누가 그 말을 믿으려고 했겠습니까? 유대인에게는 배신자였을 것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스파이일지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메섹교회는 그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 줍니다. 그를 먹이고 재우고 함께 예배드리며, 박해자 사울이 사도 바울로 바뀌는 시간 동안 삶의 터전을 함께 나눕니다. 거목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인내와 기다림으로 옥토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다메섹교회는 인내로 바울이라는 거목을 길러 낸 위대한 토양이었습니다. 그들의 선함은 ‘기다려 줌’이라는 방식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메섹교회는 부지중에도 사울을 믿고 격려하며 그를 위한 헌신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사울에게 박해로 인한 생애 첫 번째 죽음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유대인들이 다메섹 서문을 밤낮으로 지키면서 사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성벽은 높고, 성문은 막혔습니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였습니다. 이때 사울을 살린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사울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다메섹의 성도들은 그를 살리기 위해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행 9:25)

그때의 상황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이렇게 다시 증언합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고후 11:32~33)

여기서 ‘그의 제자들’은 아마도 바울이 된 사울이 다메섹에서 긴 시간 동안 사역하며 얻은 열매들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그곳에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메섹교회는 바울에게 흔쾌히 리더십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원수와도 같았던 사울을 용납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지도력까지 주어서 제자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열어 주었던 교회가 다메섹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무명의 성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울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칠흑 같은 밤, 성벽 위에 위치에 누군가의 집 창가에서 밧줄이 내려갑니다. 성인 남자의 무게가 담긴 광주리를 달아내기 위해서는 아마도 여러 사람이 함께 붙잡아야 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파수꾼에게 들킨다면 반역죄로 처형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안전하게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들은 과연 그들이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알고나 있었을까요? 그가 후에 그토록 위대한 주님의 사도가 될 것을 미리 알았을까요? 아마 그 당시로서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한 사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 회심하고, 이제 그리스도를 전파하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를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지중에 위대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광주리에 담아 내린 사람은 그저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복음의 미래였습니다. 바울이 훗날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서신서를 남길 수 있게 된 것은, 다메섹 성벽 위에서 묵묵히 밧줄을 달아서 사울을 내려 주었던 이름 없는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선함의 번짐’이라는 주제 안에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선함의 번짐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함을 실천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한 생각을 하고, 그 선한 생각을 실천하는 데서부터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다메섹교회 성도들은 박해자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되기까지 인내로 기다려 줌으로써 그들의 선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공동체 안에 받아 주고, 격려하며, 기다려 줍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선함이 번져 가게 하고 있습니다. 다메섹교회는 비록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울에게 세례를 베푼 위대한 교회였습니다. 원수를 형제로 다시 불러 주는 용서와 용납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충분히 사도로 준비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격려해 주며, 지도력도 주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박해를 피해 도망갈 수 있도록 바구니에 달아 그를 내려 줄 만큼 그를 소중하게 여겨 주었던 교회이기도 하였습니다.

<화평을 이룬 교회들과 같이 서로에게 격려와 힘을 주며 선함을 번져 가게 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 다메섹교회 같은 교회가 한국에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전북 김제의 금산교회 이야기입니다. 이자익 목사님과 조덕삼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2025년에 이자익 목사님에 관한 새로운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1897년, 17살 이자익이 남해에서 김제로 와서 조덕삼의 마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일정한 급료를 받고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의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05년에 두 사람은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함께 집사가 됩니다. 또 1907년에는 함께 영수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금산교회는 그해 독노회 전라대리회의 허락을 받고 1908년에 첫 번째로 교회의 장로를 선출하게 됩니다. 그때 투표를 실시하였는데, 그때 후보가 이자익과 조덕삼이었습니다. 당시 조덕삼은 김제 최고의 갑부였고, 교회를 지을 땅도 헌납하였으며, 교회 재정의 대부분을 감당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동네 많은 사람이 조덕삼의 소작농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조덕삼은 이자익보다 15살이나 많은 나이였다고 합니다. 누가 보아도 조덕삼이 먼저 장로가 되겠다고 생각할 만했습니다.
하지만 투표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자익이 먼저 장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조덕삼은 이 결과를 아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조덕삼은 그다음 해에 장로가 됩니다. 그리고 조덕삼은 이후 이자익을 적극적으로 후원합니다. 그는 이자익을 시기하거나 끌어내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평양신학교에 입학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의 학자금과 생활비 일체를 지원하며 훌륭한 목사로 키워 가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참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그 결과가 더 대단합니다.
다메섹 성도들이 내린 광주리를 타고 살아난 바울처럼, 조덕삼 장로님이 내어준 그 사랑의 광주리를 타고 공부한 이자익 목사님은 한국교회 역사에 전무후무한 거목으로 자라납니다. 이후 이자익 목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의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합니다. 그저 단순히 한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책임지는 총회장을 세 번이나 맡습니다. 1924년 제13회 총회장, 1947년과 48년, 33회, 34회 총회장이 됩니다. 이와 같은 일은 한국교회 역사에 그 후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특별히 화평의 사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에 분쟁이 있을 때마다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1948년 신학생 51명이 당시 조선신학교 김재준 박사의 신학에 반발하여 교단 내 갈등이 생긴 일이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교단이 분열할 수 있는 위기였습니다. 그때 이자익 목사님이 모든 문제를 잘 중재하고 해결했다고 합니다.
이자익 목사님은 1958년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 이듬해 장로교회가 예장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합니다. 많은 이가 이자익 목사님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분열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는 평가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인물을 길러 낸 교회가 김제의 금산교회였고, 금산교회 안에 자신의 마부였던 이자익을 끝까지 신뢰하고 믿어 주었던 조덕삼 장로가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소망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정과 직장,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대학 입시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대학이 결정된 자녀들도 있겠지만, 정시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학생도 있겠지만, 좋지 않은 대학에 들어가서 마음이 불편한 가족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입시에서 떨어져서 절치부심하며 한 해를 보내야 하는 가족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다메섹 공동체를 보면서 우리 가정에도 이 일을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다른 말보다는 “그래, 너는 그래도 위대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힘줄 수 있는 격려의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자녀들을 아껴 주고 격려하고 기다려 준다면, 지금은 사울일지라도 후에는 바울과 같이 그들이 놀라운 삶을 살아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올해 주제가 ‘선함의 번짐’입니다. 이 주제를 나누며 아마 교회의 봉사 자리를 지원하고 막 시작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새해가 시작한 지 막 한 달쯤 되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서 좌충우돌하는 분들이 나올 것입니다. 말실수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 조금 부족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찬양대에 들어오신 분 중에 소리를 잘못 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메섹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기다려 주고 함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대한 인물로 키워 내지 않았습니까? 우리 소망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여러 교회를 다녀 보니, 두 가지 교회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회자를 세워 주고 신나게 만들어 주는 교회가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교회는 목회자를 깎아내리며 지치게 만드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는 정말 목회자들을 힘 나게 만들어 주는 교회입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봉사하는 모든 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를 하면 할수록 힘이 나고 격려를 받는 교회가 있고, 반대로 자꾸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힘을 빼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교회, 서로 격려하며 선함을 번져 가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마음으로 함께합시다. 선함의 번짐을 통해 우리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가 되고, 우리 가정과 사회가 아름답고 멋진 곳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름 없는 위대함 : 바울을 만든 다메섹교회” (행9:17~25)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04, 455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사람을 용납하고 기다려준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성경에는 주목할 만한 초대교회 이름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중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교회가 다메섹교회입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240km나 떨어진 다메섹까지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가려 했다는 사실이 다메섹교회의 영적 영향력을 증명합니다. 많은 초대교회를 바울이 세웠다면, 그 바울을 만든 교회가 바로 다메섹교회입니다. 하나님은 박해자 사울이 사도 바울로 거듭나기까지 그를 품어주고 길러낼 인큐베이터를 준비하셨고, 그것이 바로 다메섹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다메섹 성도 유다는 눈먼 사울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사흘 동안 간호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갑니다. 며칠 전까지 자신들을 죽이려 온다는 소문에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사울 앞에 선 아나니아가 내뱉은 첫마디는 “형제 사울아”였습니다. 원수였던 자에게 ‘형제’라는 이름을 먼저 불러준 것입니다. 이 선함의 말 한마디가 사울의 눈에서 비늘을 벗겼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습니다.

바울은 아라비아와 다메섹에 머문 기간이 3년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다메섹교회는 그 오랜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 주었습니다. 사울을 먹이고, 재우고, 함께 예배드리며 그가 ‘박해자 사울’에서 ‘사도 바울’로 무르익을 때까지 삶의 터전을 내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성문을 지킬 때, 다메섹 성도들은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렸습니다. 파수꾼에게 들키면 자신들도 죽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밧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광주리에 담아 내린 사람은 하나님이 꿈꾸시는 복음의 미래였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에도 다메섹교회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금산교회의 조덕삼 장로는 자신의 마부였던 이자익을 장로로 추천하고, 평양신학교 학자금과 생활비를 지원했습니다. 이후 이자익 목사는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며 한국교회 역사에 전무후무한 거목이 되었습니다.

선함의 번짐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형제여”라고 부르는 환대의 말에서, 초신자가 자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인내 속에서,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생명의 밧줄을 붙잡는 헌신 속에서 선함은 번져갑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기다리며 용납하는 그 사랑 속에서 이 시대를 밝힐 믿음의 거목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오늘 말씀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장면이나 표현을 나누어 봅시다.

2. 이번 한 주간 내가 기다려주고 용납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오늘 다메섹 교회의 이름 없는 성도들을 통해 참된 공동체의 위대함을 보게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소망교회가 편견을 깨고 환대하는 아나니아의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히 밧줄을 붙잡아 영혼을 살리는 광주리의 조력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올해 우리에게 주신 ‘선함의 번짐’이라는 약속대로, 우리의 작은 섬김을 통해 이 시대를 밝힐 위대한 믿음의 거목들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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