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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약속이다

베드로후서 3: 8 ~ 13

김경진 목사

2019.12.08

< 인간은 약속하는 존재입니다. >

‘약속은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면 남들이 나를 우습게 보거나 조급한 사람으로 오해한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가면 자기 관리를 못하는 게으른 사람이라며 싫어한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 가면 지나치게 빈틈없는 사람이라며 경계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며 욕한다. 약속을 지키든 안 지키든, 또 어떻게 지키든, 약속은 내게 불행을 준다.”
어떻습니까? 조금 이상한 논리 같지만, 살짝 웃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즉 ‘인간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인간은 약속하는 존재다’라는 것입니다. 철학자 니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분명히 인간은 약속을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약속하고, 약속을 믿으며, 약속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끊임없는 약속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도 우리는 약속합니다. 사업을 할 때도 계약서를 쓰고, 반드시 약속하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이르기까지 하루의 일정이 약속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결혼식을 할 때도 신랑과 신부가 “건강하든지 병들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하겠다.”라고 엄숙한 서약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약속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이 약속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들이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깊은 농촌의 마을에서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였습니다. 신앙심이 두터운 아이였는데, 교회까지 가려면 십여 리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신앙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서울에서 어느 목사님이 내려와 부흥회를 인도하셨습니다. 열정이 남달랐던 이 아이는 단숨에 교회로 달려가 며칠을 머물게 됩니다. 고무신이 닳을까 봐 손으로 고무신을 들고, 맨발로 십여 리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당도한 예배당에서 아침, 점심, 저녁의 모든 예배를 맨 앞자리에서 드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부흥사 목사님이 그 아이에게 주목했습니다. 그저 밥도 못 먹고 마음을 다해 예배드리며 뒹구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는 함께 식사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강사 대접을 받는 곳마다 아이가 동석했습니다. 그 아이가 잘 곳이 없는 것을 알고는 함께 자자며, 강사가 머무는 거처로 아이를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부흥사로 오신 목사님이 잠이 들자 아이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주무시는 목사님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도무지 옆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함께하던 시간이 지나던 중에 목사님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 내 아들 할래? 우리 아들 할까?”라고 이야기하며 “너, 나중에 커서 서울에 오게 되면 꼭 나를 찾아오너라. 내가 주소와 교회 이름을 줄 테니 나중에 그 주소로 찾아오면 내가 너를 맞이해 주마.”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부흥사 목사님은 서울로 올라가셨습니다.
이후부터 이 아이는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갔습니다. “언젠가 서울에 올라가서 꼭 목사님을 만나야지. 그러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적어준 지역에 가서 교회를 찾아 들어가려고 머뭇머뭇하다가 한편 생각해 보니 ‘그래도 우리 아버지와 같은 분이신데, 이런 모습으로 목사님을 찾아가는 것보다 좀 더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찾아 뵈어야겠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제대로 된 다음에 목사님을 찾아가야겠다.’라고 결정하고는, 그 날을 조금 더 미루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교사가 되어 목사님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만 건강에 이상이 와서 오랜 시간 투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가지 못하고 ‘건강한 다음에 찾아가야지.’ 생각하고는 열심히 건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는 ‘이제 우리 목사님을 찾아가 뵈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자리를 잡고, 소명을 다 얻은 후에 우리 아버님 목사님을 만나 뵈어야지.’라고 생각하고 또 미루었다고 합니다. ‘당당하게 목사님을 만나야겠다.’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그가 큰 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나 다름없는 목사님을 뵈러 몇십 년 만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실만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목회하고 계시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부흥사 목사님은 저의 아버님이십니다.
어느 날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제 동생의 연락이었는데 “형님, 형님의 형님이 오셨어요.”라는 전화였습니다. 뜻밖의 소식에 달려갔더니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참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약속 하나를 붙잡고 이렇게 멋진 삶을 살아낼 수 있구나. “너, 내 아들 될래?”라는 이 약속 하나를 붙잡고 이처럼 멋진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

이토록 인간은 멋집니다. 약속 하나만으로도 이처럼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편, 인간의 약속은 인간이 온전히 이루어 낼 수 없는 불완전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게 약속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 사이에 맺은 약속도 크고 위대한데, 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약속이라니 얼마나 귀하고 놀랍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6장은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자기보다 더 큰 분이 계시지 아니하므로, 자기를 두고 맹세하시고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복을 줄 것이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오래 참은 끝에 그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위대한 이를 두고서 맹세합니다. 그런데 맹세는 그들에게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여 주고, 확정을 지어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욱 환히 나타내 보이시려고, 맹세로써 보증하여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6:13~17, 새번역)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맺으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사실이 조금 전에 읽은 말씀에서 절절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하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3절은 그 약속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사도행전 13:23)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이 땅에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 생명의 면류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더불어 또 한 가지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재림주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약속과 영원히 연결되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속의 은혜와 연결된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밖에도 성경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약속이 넘쳐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과 함께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바치라’는 주님의 말씀과 함께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하나, 둘, 아니 수없이 성경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한결같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면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러한 약속들을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현세적인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특별하게 만나시며 하나님께서 해 주신 약속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와 특별한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또 야곱과 벧엘에서, 얍복 나루에서 특별한 약속을 맺어 주신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이삭 이야기는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약속을 품고 산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또 기도하면서,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약속으로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

여러분에게는 어떤 말씀이 약속으로 주어져 있습니까? 그 말씀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붙잡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 약속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내 것으로 붙잡고, 그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삶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것이 ‘믿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 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영원하신 구원의 약속을 붙잡고, 동시에 이 세상에서의 일반적인 삶의 약속을 붙잡고, 더 나아가 나에게 주시는 특별한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믿을 때, 비로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의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린도후서 1:20)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 예스가 된다, 허락된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곳에서 우리가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에서 그 약속을 품고 우리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예스’라고 할 때, ‘아멘’이라고 할 때,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사람들입니다. 약속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사는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과 관련하여 매우 귀중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세상의 비웃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심판,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한 세상의 비아냥거림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면서, 여러분을 조롱하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어디 갔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 때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냥 그대로다.” (베드로후서 3:3~4, 새번역)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향해 조롱하듯 비웃는 말씀이 오늘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이천 년 동안 우리 주님은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믿고 있던 바로 그 당시에도 주님은 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오실 줄 알았는데, 주님은 강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세상 사람들은 믿는 자들을 향해 조롱하듯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신다고 했는데, 언제 오시느냐? 아직도 오지 않았는데,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오시는 게 맞느냐?”라며 조롱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비웃음에 대해 주님은 베드로후서를 통해 권면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8~10 중, 새번역)

이 본문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다만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질 것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우리의 시간 안에서만, 우리의 예상 범위 안에서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우리의 시선에서 하나님이 약속의 성취가 더디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더 큰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희망의 약속을 붙잡는 성도가 됩시다. >

2006년에 개봉된 <에이트 빌로우(Eight Below)>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남극 대륙으로 탐사를 떠난 사람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특히 남극 대륙에 남겨진 8마리의 썰매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1958년 일본의 남극원정대가 경험한 실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질학자인 데이비스는 운석을 찾기 위해 남극 탐사 대원 제리 쉐퍼드와 8마리의 훈련된 썰매견과 함께 남극 탐사를 떠나게 됩니다. 숙련된 개들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긴 데이비스와 제리는 폭풍이 오고 있으니 빨리 귀환하라는 본부의 연락을 받게 됩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이, 데이비스 박사가 부상을 당하게 되었고, 비행기가 도착했으나 탑승 인원이 꽉 차 썰매를 몰던 개들을 태울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제리가 다음 비행기로 가려다가 몸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썰매견들만 두고 떠나게 됩니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말입니다.
그러나 당시 폭풍이 상당했습니다. 25년 만에 닥친 최악의 폭풍으로 더는 비행기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개들이 생존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시간도 다 지나가고, 이제 모든 사람이 포기할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제리와 데이비스는 썰매견들을 찾으러 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계획이 무산됩니다. 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여러 노력을 하던 끝에 결국 오랜 시간이 흘러 배를 타고, 또 썰매 차를 타고 그곳으로 가게 됩니다. 무려 175일 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썰매를 몰던 개들이 자신의 주인이 찾아올 것을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한 마리의 개는 목줄을 끊어내지 못해 죽고, 한 마리는 부상 당했지만, 나머지 개들은 기쁨으로 주인과 재회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남겨둔 개들을 찾으러 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을 끝까지 기다린, 믿음으로 끝까지 기다리던 개들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시는 주님의 모습과 믿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 교차되었습니다. 참으로 신실하신 주인이 자신의 자녀들을 찾으러 오시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대림절을 지낼 때마다 이런 생각을 종종 하는 것 같습니다.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이라니, 무섭다. 그러니 좀 늦게 오시면 좋겠다. 아니면 안 오시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대림절을 맞는 분들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대림절은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구조하시기 위해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림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우리를 구하러 오시는 주님, 우리를 구출하시기 위해 달려오시는 주님을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는 절기가 대림절입니다. 그렇다면, 이 대림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베드로후서 3:14, 새번역)

주인을 기다리던 개들처럼 간절한 모습으로 우리도 주님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구조하러 오시는 주님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약속은 희망입니다. 우리를 찾으러 오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주님입니다. 그분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품에 안아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담대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고 계십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님을 기다리는 귀한 대림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To Promise Is Man

2 Peter 3:8-13

Among the many attributes that make us human, there is one very important one: man makes promises. One does not have to study Nietzsche to understand that man is a being that can make promises. He makes them, believes them, and keeps them. We are surrounded by promises in our daily lives—when we meet someone, when we draw up a contract to do business, when we say our wedding vows, and so on.

What is a promise? A promise always has to do with the future, never the past. And when human beings make promises, they have certain expectations. First, we expect that a promise will be kept. We rely on a person’s faithfulness to keep that promise. Second, we examine our counterpart’s ability to keep a promise. However good or faithful a person may be, a promise can never be fulfilled if he/she doesn’t have the ability to carry it out. Accordingly, when we make a promise, we always ask ourselves, ‘Is my counterpart faithful and capable?’

But the reality is that man is neither entirely faithful nor capable of keeping promises. In 2018, there were 257,000 marriages and 108,000 divorces, which shows a 40% divorce rate. Even without such statistics, we can spot how easily we ignore and break promises. Due to his sinfulness, evil nature, emotional weakness, laziness, fickleness, lack of will, incapacity, weak health, and death, man cannot fully keep his word on the promises he makes. Therefore, man’s promises are inevitably incomplete. In that sense, while man is entitled to make promises, he is incapable of keeping them.

Then why is man entitled to make promises if he cannot keep them? Although it may be hard to understand, the answer lies in the fact that God approaches man with promises. While man’s promises are easily broken and incomplete, God’s promises toward us are totally different. They exist on a completely different level. God’s promises are unchanging, can never be broken, and are complete in and of themselves.

Hebrews chapter 6 tells us just how great and grand His promises are: “When God made his promise to Abraham, since there was no one greater for him to swear by, he swore by himself, saying, ‘I will surely bless you and give you many descendants.’ And so, after waiting patiently, Abraham received what was promised.People swear by someone greater than themselves, and the oath confirms what is said and puts an end to all argument. Because God wanted to make the unchanging nature of his purpose very clear to the heirs of what was promised, he confirmed it with an oath.” (Hebrews 6:13-17)

These verses tell us just how true and unchanging His promises are. Then what exactly are those everlasting, unchanging, and faithful promises He made with us? Of course, all of His Words in the New and Old Testaments are His promises. Still, we can group them into a few categories.

To begin with, God gave us some basic and everlasting promises regarding salvation, which can agai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He promised man that He would save him through His Son, Jesus Christ, who was sent to earth and crucified for our sins. Acts 13:23 testifies that this promise has already been fulfilled: “From this man’s descendants God has brought to Israel the Savior Jesus, as he promised.” (Acts 13:23)

Second, God promised us that He would send us a Helper, the Holy Spirit. In Luke, Jesus says, “I am going to send you what my Father has promised; but stay in the city until you have been clothed with power from on high.” (Luke 24:29)

Third, God promised us “the kingdom” (James 2:5) and the “crown of life” (James 1:12). He also promised us “eternal life” (1 John 2:25).

Fourth, He promised that Jesus would return in judgement: “H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says, ‘Yes,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Revelation 22:20) The above four promises are those related to our salvation. They are true and unchanging.

There are also God’s promises regarding our life in this world, such as those on honoring our parents and tithing. In Ephesus it says, “‘Honor your father and mother’—which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so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that you may enjoy long life on the earth.’” (Ephesus 6:2-3) In Malachi it says, “‘Bring the whole tithe into the storehouse, that there may be food in my house. Test me in this,’ says the LordAlmighty, ‘and see if I will not throw open the floodgates of heaven and pour out so much blessing that there will not be room enough to store it.’” (Malachi 3:10) Such promises are related to how we enjoy God’s blessings in this life. They are God’s general and temporal promises for us.

Beyond these general and temporal promises, there are personal and special ones, too. When God chose Abraham, He made a special promise with him. He also made special promises with Jacob at Bethel and Jabbok. A prime example is Isaac, a son that Abraham received at the age of 100. Our ancestors of faith held onto God’s special promises in their hearts.

What does it mean to believe in God? One answer may be “to hold onto His promises.” Believers are those who hold steadfastly onto His promises that are revealed to them through the Bible. We, God’s people, hold onto God’s everlasting and fundamental promises of salvation, His general and temporal promises in this world, and His personal and special promises given especially to me.

We often misunderstand faith. We mistakenly think that when we believe in God, He will give us all that we want. But no. God fulfills His promises when we accept and believe the promises that He gave us through the Bible. Therefore, this verse in 2 Corinthians is very important: “For no matter how many promises God has made, they are ‘Yes’ in Christ. And so through him the ‘Amen’ is spoken by us to the glory of God.” (2 Corinthians 1:20)

But even as we live with such faith, there are times when we are filled with doubt and mistrust: ‘Will God’s promises really come true?’ Today’s scripture is especially helpful in dealing with those doubts and disbelief. It tells us that the world may mock us when God’s Word has not yet come true. People will scoff at God’s judgement and the Second Coming of Christ: “Above all, you must understand that in the last days scoffers will come, scoffing and following their own evil desires. They will say, ‘Where is this coming he promised? Ever since our ancestors died, everything goes on as it has since the beginning of creation.’” (2 Peter 3:3-4)

But this is the answer Our Lord gives the scoffers through 2 Peter: “But do not forget this one thing, dear friends: With the Lord a day is like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re like a day.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Instead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Bu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like a thief. The heavens will disappear with a roar; the elements will be destroyed by fire, and the earth and everything done in it will be laid bare.” (2 Peter 3:8-10)

God’s promise will surely come to pass. But in God’s time. With the Lord a day is like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re like a day. When God seems to be delaying a promise, it is because of His greater plans—because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The Bible tells us that there were those who had God’s promises in their hearts but did not see them come to pass in their lifetime: “All these people were still living by faith when they died. They did not receive the things promised; they only saw them and welcomed them from a distance, admitting that they were foreigners and strangers on earth.” (Hebrews 11:13) This is faith: to see and welcome God’s promises from a distance. In this sense, faith is to look at things from a long-term perspective and wait.

“Eight Below” is a 2006 film about eight sled dogs who are left behind in Antarctica. It is based on a true story of a Japanese expedition team that went to Antarctica in 1958. Davis McClaren, a professor of geology, goes on an expedition to Antarctica with Jerry Shepard, a guide at an Antarctica research base. They take eight well-trained sled gods in search of a rare meteorite. In extreme conditions, Davis and Jerry are able to save their lives thanks to the dogs, but they are told to return home due to an approaching heavy storm. The plane arrives, but there is no room for thedogs whom are left behind. Jerry promises them that he would return, tightening their collars to ensure they cannot run away. He expects to return in two weeks, but due to a harsh storm—the worstever in 25 years—he cannot until the following spring. Finally, in 175 days, Jerry and Davis return. To their amazement, the dogs were waiting for themwith faith that their owners would come back to them. Although one had died because he couldn’t free himself from his collar and one had been injured, the rest joyfully reunited with Jerry and Davis. This scene of reunion is pure bliss.

Watching Jerry and Davis doing their utmost to return—to keep their promise—and the dogs faithfully waiting for them to the end, I found myself thinking of Jesus running toward us and us who must wait for Him with faith. Our faithful Lord will surely come to get His children.Therefore, Our Lord says, “So then, dear friends, since you are looking forward to this, make every effort to be found spotless, blameless and at peace with him.” (2 Peter 3:14)

Dear brothers and sisters, we are now standing on His faithful promise. What promises do you have in your hearts? A person without one lives a meaningless existence. He cannot say he truly lived. A promise is hope.

Dear Church, let’s hold onto His promise that He will come for us. Our Lord who is working for us even now will come and find us and hold us in His arms in the last day. The world is harsh. But be strong. Our Lord will come to redeem us. Maranatha! Come, Lord Jesu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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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 8 ~ 13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인간은 약속하는 존재입니다. >

‘약속은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면 남들이 나를 우습게 보거나 조급한 사람으로 오해한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가면 자기 관리를 못하는 게으른 사람이라며 싫어한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 가면 지나치게 빈틈없는 사람이라며 경계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며 욕한다. 약속을 지키든 안 지키든, 또 어떻게 지키든, 약속은 내게 불행을 준다.”
어떻습니까? 조금 이상한 논리 같지만, 살짝 웃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즉 ‘인간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인간은 약속하는 존재다’라는 것입니다. 철학자 니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분명히 인간은 약속을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약속하고, 약속을 믿으며, 약속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끊임없는 약속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도 우리는 약속합니다. 사업을 할 때도 계약서를 쓰고, 반드시 약속하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이르기까지 하루의 일정이 약속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결혼식을 할 때도 신랑과 신부가 “건강하든지 병들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하겠다.”라고 엄숙한 서약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약속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이 약속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들이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깊은 농촌의 마을에서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였습니다. 신앙심이 두터운 아이였는데, 교회까지 가려면 십여 리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신앙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서울에서 어느 목사님이 내려와 부흥회를 인도하셨습니다. 열정이 남달랐던 이 아이는 단숨에 교회로 달려가 며칠을 머물게 됩니다. 고무신이 닳을까 봐 손으로 고무신을 들고, 맨발로 십여 리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당도한 예배당에서 아침, 점심, 저녁의 모든 예배를 맨 앞자리에서 드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부흥사 목사님이 그 아이에게 주목했습니다. 그저 밥도 못 먹고 마음을 다해 예배드리며 뒹구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는 함께 식사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강사 대접을 받는 곳마다 아이가 동석했습니다. 그 아이가 잘 곳이 없는 것을 알고는 함께 자자며, 강사가 머무는 거처로 아이를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부흥사로 오신 목사님이 잠이 들자 아이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주무시는 목사님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도무지 옆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함께하던 시간이 지나던 중에 목사님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 내 아들 할래? 우리 아들 할까?”라고 이야기하며 “너, 나중에 커서 서울에 오게 되면 꼭 나를 찾아오너라. 내가 주소와 교회 이름을 줄 테니 나중에 그 주소로 찾아오면 내가 너를 맞이해 주마.”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부흥사 목사님은 서울로 올라가셨습니다.
이후부터 이 아이는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갔습니다. “언젠가 서울에 올라가서 꼭 목사님을 만나야지. 그러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적어준 지역에 가서 교회를 찾아 들어가려고 머뭇머뭇하다가 한편 생각해 보니 ‘그래도 우리 아버지와 같은 분이신데, 이런 모습으로 목사님을 찾아가는 것보다 좀 더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찾아 뵈어야겠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제대로 된 다음에 목사님을 찾아가야겠다.’라고 결정하고는, 그 날을 조금 더 미루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교사가 되어 목사님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만 건강에 이상이 와서 오랜 시간 투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가지 못하고 ‘건강한 다음에 찾아가야지.’ 생각하고는 열심히 건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는 ‘이제 우리 목사님을 찾아가 뵈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자리를 잡고, 소명을 다 얻은 후에 우리 아버님 목사님을 만나 뵈어야지.’라고 생각하고 또 미루었다고 합니다. ‘당당하게 목사님을 만나야겠다.’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그가 큰 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나 다름없는 목사님을 뵈러 몇십 년 만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실만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목회하고 계시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부흥사 목사님은 저의 아버님이십니다.
어느 날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제 동생의 연락이었는데 “형님, 형님의 형님이 오셨어요.”라는 전화였습니다. 뜻밖의 소식에 달려갔더니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참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약속 하나를 붙잡고 이렇게 멋진 삶을 살아낼 수 있구나. “너, 내 아들 될래?”라는 이 약속 하나를 붙잡고 이처럼 멋진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

이토록 인간은 멋집니다. 약속 하나만으로도 이처럼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편, 인간의 약속은 인간이 온전히 이루어 낼 수 없는 불완전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게 약속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 사이에 맺은 약속도 크고 위대한데, 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약속이라니 얼마나 귀하고 놀랍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6장은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자기보다 더 큰 분이 계시지 아니하므로, 자기를 두고 맹세하시고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복을 줄 것이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오래 참은 끝에 그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위대한 이를 두고서 맹세합니다. 그런데 맹세는 그들에게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여 주고, 확정을 지어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욱 환히 나타내 보이시려고, 맹세로써 보증하여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6:13~17, 새번역)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맺으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사실이 조금 전에 읽은 말씀에서 절절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하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3절은 그 약속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사도행전 13:23)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이 땅에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 생명의 면류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더불어 또 한 가지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재림주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약속과 영원히 연결되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속의 은혜와 연결된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밖에도 성경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약속이 넘쳐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과 함께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바치라’는 주님의 말씀과 함께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하나, 둘, 아니 수없이 성경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한결같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면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러한 약속들을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현세적인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특별하게 만나시며 하나님께서 해 주신 약속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와 특별한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또 야곱과 벧엘에서, 얍복 나루에서 특별한 약속을 맺어 주신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이삭 이야기는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약속을 품고 산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또 기도하면서,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약속으로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

여러분에게는 어떤 말씀이 약속으로 주어져 있습니까? 그 말씀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붙잡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 약속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내 것으로 붙잡고, 그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삶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것이 ‘믿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 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영원하신 구원의 약속을 붙잡고, 동시에 이 세상에서의 일반적인 삶의 약속을 붙잡고, 더 나아가 나에게 주시는 특별한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믿을 때, 비로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의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린도후서 1:20)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 예스가 된다, 허락된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곳에서 우리가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에서 그 약속을 품고 우리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예스’라고 할 때, ‘아멘’이라고 할 때,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사람들입니다. 약속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사는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과 관련하여 매우 귀중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세상의 비웃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심판,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한 세상의 비아냥거림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면서, 여러분을 조롱하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어디 갔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 때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냥 그대로다.” (베드로후서 3:3~4, 새번역)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향해 조롱하듯 비웃는 말씀이 오늘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이천 년 동안 우리 주님은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믿고 있던 바로 그 당시에도 주님은 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오실 줄 알았는데, 주님은 강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세상 사람들은 믿는 자들을 향해 조롱하듯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신다고 했는데, 언제 오시느냐? 아직도 오지 않았는데,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오시는 게 맞느냐?”라며 조롱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비웃음에 대해 주님은 베드로후서를 통해 권면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8~10 중, 새번역)

이 본문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다만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질 것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우리의 시간 안에서만, 우리의 예상 범위 안에서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우리의 시선에서 하나님이 약속의 성취가 더디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더 큰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희망의 약속을 붙잡는 성도가 됩시다. >

2006년에 개봉된 <에이트 빌로우(Eight Below)>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남극 대륙으로 탐사를 떠난 사람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특히 남극 대륙에 남겨진 8마리의 썰매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1958년 일본의 남극원정대가 경험한 실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질학자인 데이비스는 운석을 찾기 위해 남극 탐사 대원 제리 쉐퍼드와 8마리의 훈련된 썰매견과 함께 남극 탐사를 떠나게 됩니다. 숙련된 개들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긴 데이비스와 제리는 폭풍이 오고 있으니 빨리 귀환하라는 본부의 연락을 받게 됩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이, 데이비스 박사가 부상을 당하게 되었고, 비행기가 도착했으나 탑승 인원이 꽉 차 썰매를 몰던 개들을 태울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제리가 다음 비행기로 가려다가 몸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썰매견들만 두고 떠나게 됩니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말입니다.
그러나 당시 폭풍이 상당했습니다. 25년 만에 닥친 최악의 폭풍으로 더는 비행기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개들이 생존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시간도 다 지나가고, 이제 모든 사람이 포기할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제리와 데이비스는 썰매견들을 찾으러 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계획이 무산됩니다. 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여러 노력을 하던 끝에 결국 오랜 시간이 흘러 배를 타고, 또 썰매 차를 타고 그곳으로 가게 됩니다. 무려 175일 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썰매를 몰던 개들이 자신의 주인이 찾아올 것을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한 마리의 개는 목줄을 끊어내지 못해 죽고, 한 마리는 부상 당했지만, 나머지 개들은 기쁨으로 주인과 재회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남겨둔 개들을 찾으러 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을 끝까지 기다린, 믿음으로 끝까지 기다리던 개들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시는 주님의 모습과 믿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 교차되었습니다. 참으로 신실하신 주인이 자신의 자녀들을 찾으러 오시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대림절을 지낼 때마다 이런 생각을 종종 하는 것 같습니다.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이라니, 무섭다. 그러니 좀 늦게 오시면 좋겠다. 아니면 안 오시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대림절을 맞는 분들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대림절은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구조하시기 위해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림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우리를 구하러 오시는 주님, 우리를 구출하시기 위해 달려오시는 주님을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는 절기가 대림절입니다. 그렇다면, 이 대림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베드로후서 3:14, 새번역)

주인을 기다리던 개들처럼 간절한 모습으로 우리도 주님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구조하러 오시는 주님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약속은 희망입니다. 우리를 찾으러 오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주님입니다. 그분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품에 안아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담대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고 계십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님을 기다리는 귀한 대림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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