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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게 되면 잃으리라

창세기 43:11~15

김경진 목사

2025.06.08

<야곱의 결단이 담긴 이 고백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운 초석이 되었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4b)

이 말은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께 새롭게 받은 이름입니다. 사랑하는 막내아들 베냐민을 내어 주면서 한 이 말이 12지파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고 말씀드린다면, 과장된 이야기라고 보실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대목에서 이 순간이 야곱의 인생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인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결단이 야곱의 얼마나 위대한 결단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말을 하게 된 상황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그가 매우 사랑했던 아들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 가게 되죠.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 의해서 희생되었다고 알게 됩니다. 요셉을 잃은 후에 야곱은 그의 동생이며 자신의 막내아들인 베냐민을 특별히 사랑합니다. 혹시나 베냐민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베냐민에게 애착을 갖고 자신의 품에 두곤 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애굽으로 팔려 간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곡식을 얻고자 애굽으로 갑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정탐꾼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들을 몰래 알아본 요셉의 책략이 있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숨긴 채로 형들을 심문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신문하던 중에 자신의 동생 베냐민과 그렇게도 그리던 아버지 야곱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돌려보내되 시므온을 볼모로 잡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데리고 오면 그들이 정탐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곡식을 받아 들고 돌아온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이 사실을 알리죠. 그리고 형제 시므온을 구하기 위해서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이미 사랑하는 요셉을 한 번 잃어버린 야곱은 좀처럼 베냐민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자신의 또 다른 아들인 시므온이 애굽에 잡혀 있지만 말입니다. 똑같은 아들이지만, 그만큼 베냐민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더욱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갑니다. 얼마나 지나갔는지 알 수 없지만 가져온 곡식이 다 떨어져 갈 때쯤, 기근으로 모든 식구가 죽을 상황이 되자 유다는 아버지께 간청합니다. 혹시 베냐민을 데리고 갔다가 돌아올 때 데리고 오지 못하면 자신이 죄를 짊어지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대신 볼모가 되어서라도 베냐민을 반드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결국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야곱은 어쩔 수 없이 결단합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1~14)

이 장면에서 야곱이 어떠한 결단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제가 이 장면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이 순간이 위대한 이스라엘 지파가 탄생한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어째서 이 장면을 그토록 대단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차근차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야곱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편애였습니다.>

여러분, 한 가지 단어로 야곱의 인생을 요약한다면 무엇을 떠올리시겠습니까? 야곱의 인생이 너무나도 파란만장해서 다양한 생각이 나지만, 오늘 본문과 관련짓는다면 저는 ‘편애’를 꼽을 것 같습니다. 야곱은 어려서부터 편애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은 큰형 에서를 사랑했죠. 그리고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부모의 편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창 25:28)

그런데 야곱을 향한 리브가의 편애는 조금 도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것을 엿들은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서 형으로 변장하여 그 축복을 대신 받으라고 종용합니다. 자신이 음식을 마련해 줄 테니 아버지를 속이고 형 대신에 축복을 받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큰아들도 자신의 아들이고 둘째 아들도 자신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야곱에게만 사랑을 쏟고 있습니다. 리브가가 얼마나 편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이 이야기를 들은 야곱은 이렇게 어머니에게 이야기합니다.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창 27:11~12)

만약 아버지에게 들키면 도리어 혼이 나고 도리어 저주를 받을까 두렵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어머니 리브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창 27:13)

결국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사이가 크게 벌어졌죠. 결국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부모는 걱정하죠. 결국 리브가는 야곱을 하란 땅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야곱은 오랫동안 에서가 자신을 보복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돌아올 때 에서와 화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많은 물건과 재산, 종들을 보내 에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가 얍복 나루에서 홀로 남아 천사와 목숨을 건 씨름을 했던 것도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어머니의 편애를 받으며 자라난 야곱은 집안 분위기에서 배워서인지 여전히 편애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가장 두드러진 편애의 모습은 라헬을 향한 사랑일 것입니다. 야곱은 얼떨결에 라반에게 속아 언니 레아를 먼저 아내로 맞아야 했습니다. 그 대가로 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일을 해 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7년을 일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야곱의 편애는 가정에 깊은 상처를 남기며 화목을 무너뜨렸습니다.>

속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레아가 아이들을 넷이나 낳을 동안에도 야곱은 레아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습니다. 레아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창 29:31~33)

레아가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모습이 성경에 절절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레아가 얼마나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던지, 레아의 큰아들 르우벤이 합환채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결국 그 합환채로 레아가 야곱과 동침하여 다섯째 아들을 낳고, 이후에 여섯째 스불론과 일곱째 딸 디나를 낳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야곱의 이러한 편애는 아마도 요셉과 베냐민을 제외한 다른 아들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레아와 실바, 빌하에게도 큰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라헬만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야곱이 그렇게 사랑했던 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어 태를 열어 주셔서 마침내 요셉을 낳습니다. 그리고 고향에서는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 중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을 잃어버린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라헬의 죽음 소식을 전한 후에 레아의 맏아들인 르우벤이 라헬의 여종인 빌하를 범하여 동침한 사실을 알려 줍니다. 빌하는 라헬의 여종이면서 동시에 야곱의 아들을 낳은 또 다른 어머니뻘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그를 범하였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라헬이 죽자 그의 여종에게 치명적인 수치를 안겨 준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르우벤은 라헬에 대한 그의 악한 감정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렇듯 야곱은 라헬만을 편애하였고, 그 결과 그의 가정은 화목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별히 아들들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라헬이 죽은 후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야곱은 다시 라헬이 낳은 아들들만을 사랑하며 편애하죠. 그러한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창 37:3~4, 새번역)

다른 아들들은 양 떼를 치는 일로 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요셉과 베냐민은 항상 예외였습니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야곱의 편애가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은 요셉에게 형들이 양을 치고 있는 세겜 근처로 보냅니다. 그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형들을 찾아갑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 형들은 그를 보자마자 적의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를 죽일 마음을 갖습니다. 오랫동안 쌓여 왔던 미움이 발동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상인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가게 되죠. 그렇게 해서 요셉은 애굽의 종이 됩니다.
요셉이 이렇게 팔려 간 데에는 분명 아버지 야곱의 잘못이 있었을 겁니다. 아들들을 편애함으로써 다른 아들들과의 사이를 벌어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편애로 아들들이 요셉을 죽일 마음까지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자신이 사랑하던 요셉을 잃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야곱은 다시 베냐민만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다른 아들들이 곡식을 얻기 위해서 애굽으로 갈 때에도 야곱은 베냐민을 내어놓지 않았습니다. 베냐민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야곱이 편애를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 앞에 각오하며 순응할 때, 역전의 순간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애굽에서 아들들이 정탐꾼으로 몰리게 되고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는 애굽 총리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볼모로 잡힌 상황이 되었습니다. 시므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을 내어놓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시므온도 같은 아들인데, 그가 죽든 말든 그가 감옥에 있든 나오든 야곱은 베냐민만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결국 기근 끝에 모든 식구가 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을 때, 그는 결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여 내어놓지 못하던 베냐민을 내어놓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4b)

베냐민이 가서 죽을 수도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제 나는 아들을 내어놓겠다는 결단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이 야곱에게 얼마나 어려운 결단이었을지 이제는 상상이 되시죠? 그는 베냐민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하며 야곱은 지금까지 이어 왔던 편애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다른 아들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들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놓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버지에 대한 그간의 모든 상처가 아물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겠죠. 아버지가 우리도 사랑하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이제 우리가 베냐민을 보호해야겠다는 각오도 단단해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유다는 베냐민이 위기에 몰렸을 때, 총리에게 탄원하면서 모든 죄 값을 자신이 지겠다고 이야기하지요. 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형제도 베냐민을 살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유다의 탄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만일 이 아이를 아버지에게 다시 데리고 돌아가지 못하면, 소인이 아버지 앞에서 평생 그 죄를 달게 받겠다고 다짐하고 왔습니다. 그러니, 저 아이 대신에 소인을 주인 어른의 종으로 삼아 여기에 머물러 있게 해주시고, 저 아이는 그의 형들과 함께 돌려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아이 없이, 제가 어떻게 아버지의 얼굴을 뵙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의 아버지에게 닥칠 불행을, 제가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창 44:32b~34, 새번역)

이 단언을 듣고 요셉이 감동합니다. 지금까지 형들이 자신을 미워한 것같이 베냐민도 미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요셉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눈물을 흘리고 자기 자신이 요셉임을 밝힙니다. 요셉의 아들들이 다시 하나가 됩니다. 그간의 모든 상처와 미움과 질투가 다 사라지고 진정한 형제애를 나누게 됩니다.

<편애를 내려놓는 아픈 결단 뒤에,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 분열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본문의 장면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4b)

이 말씀이 야곱의 아들들을 하나로 묶은 역사적인 자리가 되었습니다. 편애로부터 시작되었던 모든 문제가 이 순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나라는 지독한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나라에 이렇게 분열이 일어났을까요? 이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역사를 바라보는 해석의 차이, 외교 문제를 보는 시각의 차이, 북한을 대하는 방법론적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장과 복지, 남성과 여성, 세대 간, 이익의 분배, 종교적인 신념 등의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다양한 생각은 어쩌면 사회와 나라를 발전시켜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들이 어우러져서 더 건강한 사회와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분열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너무나도 편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다 맞고, 내가 싫어하는 상대방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생각의 틀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큰아들이 하는 것은 모두 다 맞고, 작은 아들이 하는 것은 모두 다 틀렸다고 보는 생각의 틀, 내가 좋아하는 진영은 하나도 틀림이 없고, 상대의 진영을 악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틀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대화의 문을 막고 생각의 소통을 방해하며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편을 가르는 편견과 편애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그가 어디에 서 있던지 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하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비판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격려하고 함께 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내어놓으며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라고 말했던 야곱의 고통스러운 결단이 다른 아들들의 마음을 열어 서로 하나 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대한 12지파 이스라엘은 아버지의 편애를 극복한 후에 세워졌습니다. 가정도, 회사도, 교회도 그렇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편애가 있으면 분열이 생겨납니다. 편애가 강하면 그 공동체는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한계를 넘어서, 예루살렘이라는 성전, 유대인이라는 선민을 넘어서 모든 인류에게 미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성령입니다. 모든 인류, 모든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을 통해서 확증되고 드러났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일어나길 원합니다. 모두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이요, 능력입니다.
편애는 분열의 영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연합과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나라와 세상이 어지럽고 어렵습니다. 이 분열된 세상을 치유하는 길은 넓은 아량과 사랑입니다. 편애는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편애를 멈출 때 우리 앞에 새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세상을 치유하는 우리 성도님들, 또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If I am Bereaved, I am Bereaved

Genesis 43:11-15

“As for me, if I am bereaved, I am bereaved.” (Genesis 43:14b)

These were Jacob’s words to his sons.

Would it be an exaggeration to say that these words, spoken by Jacob as he let his beloved youngest son Benjamin go, gave birth to the great nation of Israel made up of 12 tribes?

I don’t think many are aware of just how painful this moment was for Jacob, as they read this part of his story. Moreover, not many seem to understand how great this resolution of Jacob was.

Let me explain the context of Jacob’s words above.

Jacob had twelve sons. Among them, his most beloved Joseph was sold as a slave to Egypt because of his brothers’ hatred. But Jacob was told that Joseph was killed by wild beasts. After losing Joseph, Jacob became attached to Benjamin instead, Joseph’s brother and his youngest son. Fearing that he might lose Benjamin too, Jacob was reluctant to let Benjamin leave and kept him at his side. While his other sons hunted and worked all the time, Benjamin was an exception—as Joseph had been when he was with Jacob.

Meanwhile, Joseph becomes the prime minster of Egypt and a famine strikes Canaan. So Jacob’s sons go to Egypt to get food.

But, in Egypt, they are mistaken as spies. Of course, this was according to the scheme of Joseph who had recognized them.

Hiding his identity, Joseph interrogates his brothers as prime minister. During his probe, he finds out that his brother Benjamin and his father are still alive. So he sends his brothers back to Canaan and commands them to return to Egypt with Benjamin, keeping Simeon as a hostage.

After getting back to Canaan with the grain, Jacob’s sons tell him everything that happened in Egypt, asking him to let Benjamin go to Egypt with them—if only for the sake of retrieving Simeon. But Jacob, who had already lost a son once, refuses—even though Simeon is a prisoner in Egypt.

Time passes. We are not sure how much time has passed; but when the grain brought back from Egypt almost runs out, Jacob tells his sons to go back to Egypt for grain. His sons repeat their previous message that getting grain would be impossible without taking Benjamin along.

When the whole family is about to starve to death, Judah pleads with his father. Judah promises that in the event that Benjamin faces any trouble in Egypt, he himself would become a hostage in his stead and make sure that Benjamin would return home safely.

When the situation becomes desperate, Jacob is forced to decide. This is when he says this to his sons:

“If it must be, then do this: Put some of the best products of the land in your bags and take them down to the man as a gift—a little balm and a little honey, some spices and myrrh, some pistachio nuts and almonds. Take double the amount of silver with you, for you must return the silver that was put back into the mouths of your sacks. Perhaps it was a mistake. Take your brother also and go back to the man at once. And may God Almighty grant you mercy before the man so that he will let your other brother and Benjamin come back with you. As for me, if I am bereaved, I am bereaved.” (Genesis 43:11-14)

After these words, Jacob’s sons take Benjamin to Egypt. And you know what happens next. After a series of events, Benjamin faces a crisis that prevents him from returning home, and Judah pleads with Joseph to take him as a prisoner instead of Benjamin. Moved, Joseph finally reveals his identity and reunites with his brothers.

Then why is this scene where Jacob lets Benjamin go so important? I stated earlier that this was the very moment that the great nation of Israel was born. But what makes this moment so great and critical?

I will now slowly explain the reason to you.

Although Jacob’s life could be expressed in many words, I think the one word that captures it best in relation to today’s passage would be “favoritism.”

Jacob grew up being treated with favoritism by his parents. His father favored Esau, his older brother, while his mother favored him.

This is how the Bible describes the favoritism of Jacob’s parents:

“Isaac, who had a taste for wild game, loved Esau, but Rebekah loved Jacob.” (Genesis 25:28)

Frankly, Rebekah’s favoritism for Jacob was excessive.

After overhearing that Isaac was about to bless Esau, Rebekah calls Jacob and tells him to impersonate Esau to steal his blessing. She says she will prepare the food and tells Jacob to go to his father pretending to be Esau and trick him to get his blessing.

This tells us just how much Rebekah favored Jacob.

Jacob, after hearing all this, says to his mother:

“Jacob said to Rebekah his mother, ‘But my brother Esau is a hairy man while I have smooth skin. What if my father touches me? I would appear to be tricking him and would bring down a curse on myself rather than a blessing.’” (Genesis 27:11-12)

At this, Rebekah replies:

“My son, let the curse fall on me. Just do what I say; go and get them for me.” (Genesis 27:13)

So, in the end, Jacob deceives his father and gets the blessing of the eldest son. But the result was catastrophic.

The hostility between Esau and Jacob becomes so serious that Esau plans to kill Jacob; Rebekah, finding out about this, is forced to send Jacob away to Haran.

For a long time after this incident, Jacob continues to live in fear that Esau will avenge him. So Jacob goes through painful lengths to reconcile with Esau when he later returns from Haran.

He even wrestles with an angel at the Jabbok, risking his life.

As such, Jacob, who grew up under his mother’s partial love, continues to show favoritism himself when he has his own family—perhaps due to the family atmosphere he experienced when he was young.

The greatest partiality displayed by Jacob was his love for Rachel. He was, of course, tricked into marrying Leah, Rachel’s sister. Yet, he continued to love only Rachel, refusing to give his love to Leah.

During the time Leah gave him four children, it appears he did not love her. The Bible’s description of events reflects Leah’s deep wounds:

“When the LORD saw that Leah was not loved, he enabled her to conceive, but Rachel remained childless. Leah became pregnant and gave birth to a son. She named him Reuben, for she said, ‘It is because the LORD has seen my misery. Surely my husband will love me now.’ She conceived again, and when she gave birth to a son she said, ‘Because the LORD heard that I am not loved, he gave me this one too.’ So she named him Simeon.” (Genesis 29:31-33)

This shows, in detail, how unloved Leah was by her husband.

She was so unloved that her eldest son Reuben even brought her a mandrake to trade for a night with Jacob. With that mandrake, Leah sleeps with Jacob, leading to the birth of Issachar.

No doubt, Jacob’s favoritism would have deeply hurt his sons. Of course, it hurt his wives too, including Leah, Zilpah, and Bilhah. Still, he loved only Rachel.

But Rachel, whom he loved so much, was barren and did not have many children. After having Joseph, she gave birth to Benjamin in her homeland, during which died.

How devastated Jacob would have been after losing his beloved Rachel!

But, after the death of Rachel, the Bible records that Reuben, Leah’s firstborn, forcefully slept with Bilhah, Rachel’s female servant whom she gave to Jacob to have children. What does this mean? It appears that after Rachel’s death, Reuben wanted to express his malice against her by shaming her servant in a serious way.

As such, Jacob favored Rachel; as a result, peace was impossible in his home. Then what happened after Rachel’s death?

Rachel’s sons replaced Rachel as the objects of Jacob’s love and favoritism. This is how the Bible describes it:

“Now Israel loved Joseph more than any of his other sons, because he had been born to him in his old age; and he made an ornate robe for him. When his brothers saw that their father loved him more than any of them, they hated him and could not speak a kind word to him.” (Genesis 37:3-4)

While his other sons had to tend flocks, Joseph and Benjamin were always exempt from this work. Partly, it would have been because they were too young, but the bigger reason was Jacob’s partiality.

One day, Jacob sent Joseph to Shechem where his brothers were working. He wanted Joseph to check how they were doing and report back to him. But when Joseph arrived, his brothers plotted to kill him. Eventually, they sold him to some traveling merchants. This is how Joseph became a slave in Egypt.

Clearly, Jacob is at least partly to blame for Joseph’s misfortune. Jacob’s preferential treatment created a wedge between Joseph and his brothers. His favoritism made his sons jealous and murderous.

This is how Jacob lost Joseph. After this loss, Jacob favored Benjamin. So when his other sons went to Egypt to get grain, Benajamin did not go with them.

But a problem arose. As I mentioned, his sons were accused of being spies in Egypt and returned to Canaan with the prime minister’s order to come back with Benjamin, leaving Simeon behind as a hostage.

If only for the sake of saving Simeon, they must go back to Egypt with Benjamin. But Jacob has no intention of letting Benjamin go. He tries to protect only Benjamin, not caring whether Simeon dies or remains imprisoned.

But as the famine gets worse and they can no longer survive, Jacob lets Benjamin, his most beloved son whom he had continuously refused to give up, go in order to save his family. It is precisely at this point that he says:

“As for me, if I am bereaved, I am bereaved.” (Genesis 43:14b)

Now, we can finally understand just how hard and painful this decision would have been for Jacob. He finally gives up Benjamin. With the above words, Jacob finally frees himself from favoritism.

How would his other sons have felt when they heard these words? What would they have thought as they saw their father give up his most beloved son? They would have felt gratitude as well as healing of past hurts.

They would have thought they must protect Benjamin from now on, as they saw their father make such a difficult decision. In reality, Judah later begged the prime minister to take him as prisoner and punish him for Benjamin’s sins when Benjamin faces a crisis. The other brothers also did their utmost to save Benjamin.

This was Judah’s petition:

“I said, ‘If I do not bring him back to you, I will bear the blame before you, my father, all my life!’ Now then, please let your servant remain here as my lord’s slave in place of the boy, and let the boy return with his brothers. How can I go back to my father if the boy is not with me? No! Do not let me see the misery that would come on my father.” (Genesis 44:32b-34)

This petition moves Joseph. He finally reveals his identity with tears. Jacob’s sons truly become one. All the wounds of the past and all the envy and jealousy they had harbored against each other disappear, and they share true brotherly love.

Now let’s return to that critical scene:

“As for me, if I am bereaved, I am bereaved.” (Genesis 43:14b)

Now you can understand why the above scene became the very place that united Jacob’s sons. It was the very moment that all the problems caused by his favoritism started to disappear.

Dear brothers and sisters, we are now living in a nation plagued by extreme divisions. What made Korea so divided?

Perhaps ideology was behind it. Perhaps it is because Koreans view issues from different perspectives. Korea’s division today may also come from diverging interpretations of history, or from opposing views on diplomatic issues. Or we may have different opinions on how we must deal with North Korea, including approach and methodology. Conflicts may be caused by our stance on which should be emphasized more—growth or welfare. Divisions in our society today may also arise from gender issues, or from protecting the interests of the poor or of the rich. Religion and faith may also play a part.

However, these diverse thoughts in our society today may actually enrich Korea and help it develop further. The coexistence of diversity can build a healthier society and country.

Then why are we so divided? Why are we so horribly split? Can it be that we favor something excessively? Can it be because of our attitude that thinks the people we like are always correct and their counterparts are always wrong or because of our partial attitude that believes the party that we like is always right and the opposite party is “evil”? Aren’t our such attitudes blocking dialogue, communication, and exchange of ideas?

What must we do to fix this nation and society? Don’t we have to do away with our favoritism and prejudice that draw a line between “our side” and “yours”?

May we once again remember that Jacob’s painful decision to give up his beloved Benjamin with these words, “As for me, if I am bereaved, I am bereaved,” healed and opened the hearts of his sons and united them. The twelve great tribes of Israel and the great nation of Israel were born when Jacob finally overcame his favoritism.

This applies to our homes, our workplaces, and our church, too. Wherever there is favoritism, there is division. When partiality is strong in a community, that community is bound to break up.

When we favor one of our children, brothers and sisters will fight and our children will eventually all be ruined.

Dear Church, today is Pentecost. The Holy Spirit is the Love of God that reaches all humanity, transcending the ethnical boundary of Israel, the Temple in Jerusalem, and the chosen people, the Jews.

The Holy Spirit reveals and confirms God’s work of loving all mankind and the entire world.

May this work of the Holy Spirit be seen and done among us saints. The Holy Spirit gives us the power to love and embrace all. Favoritism divides the world. But the Holy Spirit unites. Favoritism is a dividing spirit. But the Holy Spirit is a uniting Spirit that makes us one.

Our nation is in difficulty. The world is in chaos. The only way to heal this divided world is love. Favoritism only makes everything harder. Only when we stop being partial, will we see a new path. May we saints realize this and heal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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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3:11~15

11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12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5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야곱의 결단이 담긴 이 고백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운 초석이 되었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4b)

이 말은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께 새롭게 받은 이름입니다. 사랑하는 막내아들 베냐민을 내어 주면서 한 이 말이 12지파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고 말씀드린다면, 과장된 이야기라고 보실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대목에서 이 순간이 야곱의 인생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인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결단이 야곱의 얼마나 위대한 결단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말을 하게 된 상황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그가 매우 사랑했던 아들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 가게 되죠.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 의해서 희생되었다고 알게 됩니다. 요셉을 잃은 후에 야곱은 그의 동생이며 자신의 막내아들인 베냐민을 특별히 사랑합니다. 혹시나 베냐민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베냐민에게 애착을 갖고 자신의 품에 두곤 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애굽으로 팔려 간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곡식을 얻고자 애굽으로 갑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정탐꾼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들을 몰래 알아본 요셉의 책략이 있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숨긴 채로 형들을 심문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신문하던 중에 자신의 동생 베냐민과 그렇게도 그리던 아버지 야곱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돌려보내되 시므온을 볼모로 잡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데리고 오면 그들이 정탐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곡식을 받아 들고 돌아온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이 사실을 알리죠. 그리고 형제 시므온을 구하기 위해서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이미 사랑하는 요셉을 한 번 잃어버린 야곱은 좀처럼 베냐민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자신의 또 다른 아들인 시므온이 애굽에 잡혀 있지만 말입니다. 똑같은 아들이지만, 그만큼 베냐민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더욱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갑니다. 얼마나 지나갔는지 알 수 없지만 가져온 곡식이 다 떨어져 갈 때쯤, 기근으로 모든 식구가 죽을 상황이 되자 유다는 아버지께 간청합니다. 혹시 베냐민을 데리고 갔다가 돌아올 때 데리고 오지 못하면 자신이 죄를 짊어지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대신 볼모가 되어서라도 베냐민을 반드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결국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야곱은 어쩔 수 없이 결단합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1~14)

이 장면에서 야곱이 어떠한 결단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제가 이 장면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이 순간이 위대한 이스라엘 지파가 탄생한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어째서 이 장면을 그토록 대단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차근차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야곱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편애였습니다.>

여러분, 한 가지 단어로 야곱의 인생을 요약한다면 무엇을 떠올리시겠습니까? 야곱의 인생이 너무나도 파란만장해서 다양한 생각이 나지만, 오늘 본문과 관련짓는다면 저는 ‘편애’를 꼽을 것 같습니다. 야곱은 어려서부터 편애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은 큰형 에서를 사랑했죠. 그리고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부모의 편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창 25:28)

그런데 야곱을 향한 리브가의 편애는 조금 도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것을 엿들은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서 형으로 변장하여 그 축복을 대신 받으라고 종용합니다. 자신이 음식을 마련해 줄 테니 아버지를 속이고 형 대신에 축복을 받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큰아들도 자신의 아들이고 둘째 아들도 자신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야곱에게만 사랑을 쏟고 있습니다. 리브가가 얼마나 편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이 이야기를 들은 야곱은 이렇게 어머니에게 이야기합니다.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창 27:11~12)

만약 아버지에게 들키면 도리어 혼이 나고 도리어 저주를 받을까 두렵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어머니 리브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창 27:13)

결국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사이가 크게 벌어졌죠. 결국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부모는 걱정하죠. 결국 리브가는 야곱을 하란 땅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야곱은 오랫동안 에서가 자신을 보복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돌아올 때 에서와 화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많은 물건과 재산, 종들을 보내 에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가 얍복 나루에서 홀로 남아 천사와 목숨을 건 씨름을 했던 것도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어머니의 편애를 받으며 자라난 야곱은 집안 분위기에서 배워서인지 여전히 편애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가장 두드러진 편애의 모습은 라헬을 향한 사랑일 것입니다. 야곱은 얼떨결에 라반에게 속아 언니 레아를 먼저 아내로 맞아야 했습니다. 그 대가로 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일을 해 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7년을 일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야곱의 편애는 가정에 깊은 상처를 남기며 화목을 무너뜨렸습니다.>

속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레아가 아이들을 넷이나 낳을 동안에도 야곱은 레아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습니다. 레아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창 29:31~33)

레아가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모습이 성경에 절절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레아가 얼마나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던지, 레아의 큰아들 르우벤이 합환채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결국 그 합환채로 레아가 야곱과 동침하여 다섯째 아들을 낳고, 이후에 여섯째 스불론과 일곱째 딸 디나를 낳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야곱의 이러한 편애는 아마도 요셉과 베냐민을 제외한 다른 아들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레아와 실바, 빌하에게도 큰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라헬만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야곱이 그렇게 사랑했던 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어 태를 열어 주셔서 마침내 요셉을 낳습니다. 그리고 고향에서는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 중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을 잃어버린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라헬의 죽음 소식을 전한 후에 레아의 맏아들인 르우벤이 라헬의 여종인 빌하를 범하여 동침한 사실을 알려 줍니다. 빌하는 라헬의 여종이면서 동시에 야곱의 아들을 낳은 또 다른 어머니뻘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그를 범하였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라헬이 죽자 그의 여종에게 치명적인 수치를 안겨 준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르우벤은 라헬에 대한 그의 악한 감정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렇듯 야곱은 라헬만을 편애하였고, 그 결과 그의 가정은 화목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별히 아들들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라헬이 죽은 후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야곱은 다시 라헬이 낳은 아들들만을 사랑하며 편애하죠. 그러한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창 37:3~4, 새번역)

다른 아들들은 양 떼를 치는 일로 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요셉과 베냐민은 항상 예외였습니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야곱의 편애가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은 요셉에게 형들이 양을 치고 있는 세겜 근처로 보냅니다. 그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형들을 찾아갑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 형들은 그를 보자마자 적의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를 죽일 마음을 갖습니다. 오랫동안 쌓여 왔던 미움이 발동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상인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가게 되죠. 그렇게 해서 요셉은 애굽의 종이 됩니다.
요셉이 이렇게 팔려 간 데에는 분명 아버지 야곱의 잘못이 있었을 겁니다. 아들들을 편애함으로써 다른 아들들과의 사이를 벌어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편애로 아들들이 요셉을 죽일 마음까지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자신이 사랑하던 요셉을 잃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야곱은 다시 베냐민만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다른 아들들이 곡식을 얻기 위해서 애굽으로 갈 때에도 야곱은 베냐민을 내어놓지 않았습니다. 베냐민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야곱이 편애를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 앞에 각오하며 순응할 때, 역전의 순간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애굽에서 아들들이 정탐꾼으로 몰리게 되고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는 애굽 총리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볼모로 잡힌 상황이 되었습니다. 시므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을 내어놓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시므온도 같은 아들인데, 그가 죽든 말든 그가 감옥에 있든 나오든 야곱은 베냐민만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결국 기근 끝에 모든 식구가 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을 때, 그는 결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여 내어놓지 못하던 베냐민을 내어놓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4b)

베냐민이 가서 죽을 수도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제 나는 아들을 내어놓겠다는 결단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이 야곱에게 얼마나 어려운 결단이었을지 이제는 상상이 되시죠? 그는 베냐민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하며 야곱은 지금까지 이어 왔던 편애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다른 아들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들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놓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버지에 대한 그간의 모든 상처가 아물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겠죠. 아버지가 우리도 사랑하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이제 우리가 베냐민을 보호해야겠다는 각오도 단단해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유다는 베냐민이 위기에 몰렸을 때, 총리에게 탄원하면서 모든 죄 값을 자신이 지겠다고 이야기하지요. 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형제도 베냐민을 살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유다의 탄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만일 이 아이를 아버지에게 다시 데리고 돌아가지 못하면, 소인이 아버지 앞에서 평생 그 죄를 달게 받겠다고 다짐하고 왔습니다. 그러니, 저 아이 대신에 소인을 주인 어른의 종으로 삼아 여기에 머물러 있게 해주시고, 저 아이는 그의 형들과 함께 돌려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아이 없이, 제가 어떻게 아버지의 얼굴을 뵙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의 아버지에게 닥칠 불행을, 제가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창 44:32b~34, 새번역)

이 단언을 듣고 요셉이 감동합니다. 지금까지 형들이 자신을 미워한 것같이 베냐민도 미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요셉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눈물을 흘리고 자기 자신이 요셉임을 밝힙니다. 요셉의 아들들이 다시 하나가 됩니다. 그간의 모든 상처와 미움과 질투가 다 사라지고 진정한 형제애를 나누게 됩니다.

<편애를 내려놓는 아픈 결단 뒤에,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 분열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본문의 장면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4b)

이 말씀이 야곱의 아들들을 하나로 묶은 역사적인 자리가 되었습니다. 편애로부터 시작되었던 모든 문제가 이 순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나라는 지독한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나라에 이렇게 분열이 일어났을까요? 이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역사를 바라보는 해석의 차이, 외교 문제를 보는 시각의 차이, 북한을 대하는 방법론적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장과 복지, 남성과 여성, 세대 간, 이익의 분배, 종교적인 신념 등의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다양한 생각은 어쩌면 사회와 나라를 발전시켜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들이 어우러져서 더 건강한 사회와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분열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너무나도 편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다 맞고, 내가 싫어하는 상대방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생각의 틀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큰아들이 하는 것은 모두 다 맞고, 작은 아들이 하는 것은 모두 다 틀렸다고 보는 생각의 틀, 내가 좋아하는 진영은 하나도 틀림이 없고, 상대의 진영을 악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틀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대화의 문을 막고 생각의 소통을 방해하며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편을 가르는 편견과 편애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그가 어디에 서 있던지 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하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비판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격려하고 함께 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내어놓으며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라고 말했던 야곱의 고통스러운 결단이 다른 아들들의 마음을 열어 서로 하나 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대한 12지파 이스라엘은 아버지의 편애를 극복한 후에 세워졌습니다. 가정도, 회사도, 교회도 그렇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편애가 있으면 분열이 생겨납니다. 편애가 강하면 그 공동체는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한계를 넘어서, 예루살렘이라는 성전, 유대인이라는 선민을 넘어서 모든 인류에게 미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성령입니다. 모든 인류, 모든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을 통해서 확증되고 드러났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일어나길 원합니다. 모두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이요, 능력입니다.
편애는 분열의 영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연합과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나라와 세상이 어지럽고 어렵습니다. 이 분열된 세상을 치유하는 길은 넓은 아량과 사랑입니다. 편애는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편애를 멈출 때 우리 앞에 새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세상을 치유하는 우리 성도님들, 또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잃게 되면 잃으리라” (창43:11~15)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71, 94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편애”의 경험이 있습니까? 가족들 안에 편애로 인한 불화의 문제가 있지는 않습니까?

<설교의 요약>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고통 가운데 이 말을 하였지만, 이 위대한 결단이 12지파 위대한 이스라엘을 만드는 일이 됩니다.

  야곱의 인생은 “편애”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차별, 어머니의 편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편애하고 아들들도 편애합니다. 그의 편애가 레아와 다른 아들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편애가 결국 비극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형들에 의해 요셉이 팔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은 아들 베냐민만 편애하지만, 나중에 베냐민도 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가뭄에 식량을 구하러 야곱의 아들들이 이집트로 향하였지만, 시므온이 잡히고, 베냐민을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결국 기근 가운데 다른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야곱은 결단을 합니다. 이집트의 총리가 명한대로 볼모로 잡힌 시므온도 살리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힘들고 어려운 결단을 하며 드디어 편애에서 벗어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다른 아들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제는 이들이 베냐민을 끝까지 보호해야겠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모습을 보고 요셉이 감동을 받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하나가 됩니다. 그간의 상처가 사라지고 미움과 질투가 사라지고 진정한 형제애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편애로부터 시작된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입니다.

  지독한 분열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을 보십시오. 다양한 생각은 이 사회를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편애하고 치우친다면, 대화의 문이 막히고 소통을 막습니다. 편을 가르는 편애,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내어놓을 때에 다른 아들들의 마음이 열리고 하나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한계를 넘어 모든 인류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모두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능력,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을 구합니다.

  

<나누기>

  1. 편애와 편견을 버리면 하나됨이 일어납니다.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 가정과 우리나라 가운데 일어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되 편애하지 않으시는 주님, 주님의 크신 사랑에 이끌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의 편협함이 상처를 만들고, 편애가 분열을 만들어 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빛이 되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큰 사랑을 덧입혀 주시옵소서. 넓은 사랑과 아량으로 모든 것을 덮으며 온 세상을 밝고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주님의 종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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