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자유,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로부터 해방된 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유’라는 단어를 들을 때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어떤 것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까? 출애굽 사건,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영화 <쇼생크 탈출>, 미국 독립 혁명의 지도자 패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실존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이다”, 에릭 프롬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자유의 대헌장’이라 불리는 갈라디아서 … 아마 자유라는 주제를 가지고 각자가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만 해도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3절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자유로의 부르심!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자유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본문 13절은 앞에 있는 갈라디아서 5장 1절의 말씀과 자연스레 연결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선언합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자유는 무엇보다 먼저 ‘무엇으로부터의(from)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저와 여러분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마귀에게 붙들렸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로 인해 우리는 죄로부터, 율법으로부터, 사망으로부터, 마귀로부터, 고정관념으로부터,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 하반부는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굳게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과 우리를 향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이전의 죄, 사망, 율법, 억압, 고정관념의 멍에를 다시 메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빛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대한민국 역사에 해방의 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광복절(光復節)이라고 부릅니다. ‘빛을 다시 찾은 절기’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일제 치하 35년은 캄캄한 어둠이었습니다. 우리말과 글을 빼앗겼고, 그리하여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조차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일제 말기 한국교회는 일본교회와 교단에 흡수되어 종교의 자유조차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칠흑 같은 어두움에 한줄기 밝은 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그것이 광복입니다. 수많은 독립투사의 피와 땀이 해방이라는 열매로 맺어질 수 있도록 국제 정세를 바꾸시고 섭리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하여 서슬 퍼런 억압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제는 참으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우리의 광복절과 같은 ‘빛의 절기’가 있습니다. 수전절(修殿節; feast of dedication)이라 불리는 절기로, 요한복음 10장 22절에는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수전절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중간기에 있었던 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수리아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왕이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 우상을 세워 성전을 더럽히자 B.C.164년 유다 마카베오가 군사를 일으켜 수리아 군대를 물리치고 성전을 깨끗이 정화하여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바로 이날을 기념하여 8일 동안 지키는 절기가 수전절입니다. 유대력으로 9월 25일인데, 양력으로는 11월 말에서 12월 사이에 해당합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외경 마카베오上, 마카베오下에 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누카’(חנוכה, 봉헌)라 불리는 이 절기를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빛의 절기’라고 불렀습니다. 수전절 8일 동안 ‘메노라’라 불리는 중앙의 점화봉과 오른쪽과 왼쪽으로 각각 4개씩 총 9개의 가지를 가진 촛대에 매일 하나씩 불을 밝혀 나갑니다. 일곱 가지의 메노라가 보통이지만, 수전절에는 아홉 가지 메노라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광복의 의미와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광복절을 지키듯, 유대인들은 성전을 회복한 이 날을 기억하기 위해 지금도 수전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올해 ‘하누카’는 11월 28일부터 12월 6일까지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1서 1장 5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빛은 곧 생명입니다. 빛이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며 생명을 불어넣으실 때 제일 먼저 “빛이 있으라!”(창 1:3) 말씀하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요 생명이십니다. 주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이 민족에게 빛을 비추어 어둠에서 밝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복 76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순국선열에게, 무엇보다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비춰 주신, 억압을 물리치고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죄로부터 해방된 성도는 이제 사랑으로의 자유에 부름받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과 13절은 비슷한 말씀처럼 보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1절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이지만, 13절은 그것을 넘어서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말합니다. ‘하지 말라’를 넘어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가 아닙니다. 따라서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3절은 중반부에서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육체의 탐욕을 위해 우리의 자유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New English Bible은 이 구절을 “여러분은 자유로운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단 여러분의 자유를 저급한 본성에의 방종으로 바꾸지는 마십시오.”라고 번역했습니다. 한글 새번역은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라고 번역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에로의 자유가 아니라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Freedom to sin이 아니라 freedom from sin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사랑에로의 자유’, ‘freedom to love’입니다. 본문 13절 하반부에서는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죄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죄로부터, 자신의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기꺼이 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형제자매를 위해서는 기꺼이 종이 될 자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의 자유, 섬김의 자유입니다. 사도 베드로 또한 새번역 성경에서 “여러분은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을 행하는 구실로 쓰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십시오.”(벧전 2:16) 라고 말합니다. 바울과 베드로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시고, 동시에 모든 것에로 자유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는 이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자유는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취사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식구들과 함께 중국집에 가서 외식하는데 아이들에게 “오늘은 무엇을 먹든지 너희들 자유다”라고 말해도 아이들이 피자나 초밥을 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짜장이나 짬뽕이나 탕수육이나 북경 닭고기 등 중국집 메뉴판에 있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유와는 달리 우리의 자유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로 인해 이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주어진 것입니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왜 하필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전봇대로 이빨을 쑤십니까. 자기 책이나 손목시계로 자기 이빨 쑤시는 거야 괜찮지만요. 나의 자유는 이웃의 자유와 함께 공존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라는 원리에 의해 통제를 받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원리에 의해 통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5장 14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율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곧 사랑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메어야 할 멍에가 있다면, 종의 멍에가 아니라 사랑의 멍에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우리의 자유는 사랑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습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하지 말라고 금지한 것을 하는 것이 적극적인 죄라면, 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하지 않는 죄도 소극적인 태만의 죄입니다.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음에도 다시 율법의 종이 되는 것이 능동적으로 행하는 범죄이라면, 사랑하라고 하신 명령을 어기고 사랑하지 않는 것도 수동적인 범죄입니다. 우리는 흔히 후자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태만과 나태의 죄도 중대한 죄입니다.
<사랑으로의 자유에 부름 받은 성도는 책임 있는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고 말합니다. “길을 잃은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 고통 속에 있는 자를 위로하는 것, 연약한 자를 일으켜 주는 것,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웃을 도와주는 것, 이웃의 결함을 참아 주는 것, 교회와 사회에서 불화, 수고, 배은망덕, 경멸을 견뎌내는 것,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것, 부모를 합당하게 공경하는 것, 가정에서 다투기 좋아하는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버릇없는 가족을 참아 주는 것 등등.”[루터, <갈라디아서 주석>(1535)]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자유를 남용하게 되면 15절 말씀처럼 서로 물고 헐뜯게 되고 결국은 피차 멸망에 이르게 될 뿐입니다. 아마도 갈라디아 교회도 자유의 남용으로 인해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본문 5장 15절에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말한 것을 보면 갈등이 상당히 심각했던 듯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옛날 부르던 노래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아침이슬의 작사자인 김민기의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입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곡조가 마치 동요 같은 느낌을 주기만, 사실 이 노래는 무척 슬픈 노래입니다. 이것은 남북으로 나누어져 서로 싸우고 있는 한반도의 안타까운 현실을 꼬집은 것입니다. 실로 남과 북이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가정도 피차 물고 먹으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서로 물고 먹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에서 찾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십자가는 어디에 걸어야 하겠습니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 노사 갈등, 남북 갈등이 왜 이렇게 극심한지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 우리 선열들의 피를 통해 얻은 광복, 해방,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자유를 무질서와 방종으로 남용한다면, 자유라는 미명 아래 이전보다 훨씬 나쁜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하고 섬길 자유이지 물고 뜯을 자유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글에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더할 수 없이 충성스러운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다.”고 썼습니다. 이어서 그는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 그는 신앙으로 그리스도 안에 살며, 사랑으로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 신앙에 의하여 그는 그 자신 이상으로 하나님에게 올리어지며, 사랑에 의하여 그는 그 자신 이하로 이웃에게 내려간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말한, 그리고 오늘 본문이 말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정확히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하신 값비싼 선물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십자가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선물입니다. 우리의 광복은 순국선열의 죽음을 대가로 지불하고 얻은 값비싼 선물입니다. 독일어로 선물이라는 단어는 die Gabe입니다. 이 단어에 auf(on)를 붙이면 die Aufgabe, 사명/책무라는 뜻이 됩니다. 선물은 책임을 불러옵니다. 선물을 받은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사명이 주어집니다. ‘세상의 빛’이신 주님의 제자인 우리에게는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등대가 될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자유로운 하나님의 자녀다.’ ‘세상 사람들이 너희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잘 감당함으로써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참으로 주님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하나님이셨지만 동시에 죽기까지 순종하며 섬긴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려는 저와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섬김의 자유, 사랑의 자유가 주는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Freedom: Christ’s Gift To Us
Galatians 5:13-15
What comes to your mind when you hear the word “freedom”? What is the first thing that comes to your mind? Some associations include: the Exodus story; the famous verse in the book of John which goes,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John 8:32); the film Shawshank Redemption; Patrick Henry’s“Give me death or give me liberty!”; Martin Luther King’s 1963 speech titled, “I Have ADream”; Jean-Paul Sartre’s famous words “Man is condemned to be free”; Erich Fromm’s book “Escape From Freedom”; and, finally, the book of Galatians, also known as the “Charter of Christian Freedom.” Discussing our diverse thoughts on freedom would, in itself, be a fascinating and enlightening endeavor.
Today’s passage from Galatians starts with these words: “You, my brothers and sisters, were called to be free.” (Galatians 5:13) A call to freedom. This is the very essence of the Christian faith. Jesus came to earth to set us free. And set us free He did! To become a Christian means to become free. Then what is the specific nature of the Christian freedom?
Naturally, Galatians 5:13 is connected to Galatians 5:1, a preceding verse: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This is a proclamation that Christ gave us freedom. John 8:36 says, “So if the Son sets you free, you will be free indeed.” A Christian’s freedom is, first of all, a “freedom from.” Through Jesus Christ, the Son of God, we have been set free from sin and have become free. We, who were once enslaved to the devil, became children of God—moved from death to life. We gained freedom from the law which is represented by circumcision. The freedom Christ gave us freed us from sin, the law, death, the devil, oppression, and fixed ideas.
The latter part of Galatians 5:1 says,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We must “stand firm” in order to guard our freedom. Peter, like Paul, says, “Be alert and of sober mind. Your enemy the devil prowls around like a roaring lion looking for someone to devour.” (1 Peter 5:8-9) Paul warns the Christians in Galatia—and us, for that matter,—not to“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He is stressing that we should not foolishly take up the yoke of sin, death, the law, oppression, and rigid ideas again.
This year marks the 76th anniversary of the Republic of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In Korean, Liberation Day is “Gwang-bok-jeol,” which literally means “the day on which we regained light.” The 35 years of Japanese oppression was pitch dark. Koreanswere robbed of their language and even their names. Toward the end of the colonial era, Korean churches were annexed to Japanese churches and denominations, trampling our freedom of religion. But God, so thankfully, shone a beacon of light upon this nation in that utter darkness. Korea was liberated. I believe that it was God who worked to change the international dynamics so that the precious blood and sweat of Korea’scountless independence fighters would finally bear fruit. This is how this nation broke free from the chains of oppression. Now we must “stand firm” and never again let ourselves be “burdened by a yoke of slavery.”
The Israelites also have such a “festival of light,” like our Liberation Day. It is called the Feast of Dedication.You may have seen it mentioned in John 10:22: “Then came the Festival of Dedication at Jerusalem. It was winter […].” The Feast of Dedication celebrates a historic event that happened in the intertestamental period, the period between the Old Testament and the New Testament. It is a festival observed for 8 days in celebration of the commemoration and reconsecration of the Jewish Temple in Jerusalem after Judas Maccabeus and his army defeated Antiochus Epiphanes who desecrated the Temple by worshipping idols at the altar.
The Feast of Dedication starts on September 25 by the Jewish calendar, which is usually between late November andearly December. Although it is not mentioned in the Bible, it is recorded in I Maccabees (4:52-59) and II Maccabees (10:5) which are part of the Protestant Apocrypha. Jewish historian Josephus called the Feast of Dedication, which is “Hannukah” in Jewish, “the Festival of Lights.” During the 8 days, the Jews lit the “menorah,” a candlestick with one “servant” candle, a candle used to light other candles, at the center and four candles on each side, making it a candlestick with a total of nine branches. While the Jews normally used a menorah with seven branches, on Hannukah, they would use this one with nine. Just as Koreans observe Liberation Day to remember the meaning and spirit of the country’s liberation, the Jews have been observing Hannukah for thousands of years to remember the day that their temple was restored. This year Hannukah will be observed from November 28 to December 6.
God is light. The Apostle John said in First John 1:5, “God is light; in him there is no darkness at all.” Light is life. Without light no creature can live. This is probably why when God created the world, his first commanded was, “Let there be light.” (Genesis 1:3) Jesus also referred to himself as the light: “I am the light of the world.” (John 8:12) Jesus is the light and the life. Our Lord shone his light on me, on us, and on the people of this land to lead us out of darkness. As we celebrate Korea’s 76th Liberation Day, let us give thanks to the fallen who gave their lives for this nation and, most of all, to God for driving out darkness and oppression and giving us light and freedom.
Galatians 5:1 and Galatians 5:13 appear similar but are actually distinct. While the former is written in a passive and negative form, “let us not be burdened by a yoke of slavery,” the latter, going beyond this, is expressed in an active and positive way, “serve one another humbly in love.” The latter moves beyond a prohibition and boldly commands us to“do” such and such.
A Christian’s freedom is not a “freedom to sin.” That is why Galatians 5:13 has this sentence in the middle: “But do not use your freedom to indulge the flesh.” This means that we must not use our freedom to seek the desires of the flesh. The NIV translation says, “You, my brothers and sister, were called to be free. But do not use your freedom to indulge the flesh.” The NLT says, “For you have been called to live in freedom, my brothers and sisters. But don’t use your freedom to satisfy your sinful nature.” A Christian’s freedom is not a “freedom to sin” but a “freedom from sin.”
Furthermore, a Christian’s freedom is a “freedom to love.” The latter part of Galatians 5:13 says, “Instead, use your freedom to sere one another in love.” This verse is teaching us to use the freedom that Christ gave us as an opportunity to love, not to sin. To become a Christians means to free oneself of one’s sins and desires. It also means to willingly serve God and our neighbors. A Christian is a man who will willingly use his freedom to become a servant for Christ and his brothers and sisters. Paul said in 1 Corinthians 9:19, “Even though I am a free man with no master, I have become a slave to all people to bring many to Christ.” A Christian’s freedom is a “freedom to love” and a “freedom to serve.” Peter also said, “For you are free, yet you are God’s slaves, so don’t use your freedom as an excuse to do evil.” (1 Peter 2:16)As you can see, Paul and Peter were one the same page on the topic of freedom.
Strictly speaking, God is the only one Being who is truly free. God is both free from all things and free to all things. On the contrary, man’s freedom inherently has limits. In fact, our freedom is a freedom to choose within a certain boundary. If you take your kids out to eat Chinese and tell them to order whatever they want, they will not shout “Pizza!” or “Sushi!”—for they already know that they must choose from the restaurant’s menu, such as sweet and sour pork or Chinese noodles.
Unlike God’s freedom, our freedom is limited because of the people around us. Man’s freedom is only guaranteed to the extent that it does not violate the freedom of others. We can’t say, “What does it matter if my neighbor uses an electric pole to floss his teeth?” It wouldn’t matter if he flossed his teeth with his book or his watch, but one’s freedom is only practicable to the extent that it coexists with the freedom of others. Just as a man’s freedom is limited by that of others, a Christian’s freedom must be controlled by the love of God andlove of neighbors. That is why Paul says in Galatians 5:14, “For the whole law can be summed up in this one comm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is verse clearly tells us that a Christian’s freedom does not destroy the law, but practices the very essence of it—love. A Christian’s freedom is inevitably linked to love.
If there is a yoke that must burden us, it is not one of slavery but of love. “Instead, use your freedom to serve one another in love.” (Galatians 5:13) Our freedom is locked within the boundary of love. “For the whole law can be summed up in this one comm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 completion of the law is love. If doing what is prohibited constitutes an “active sin”,failing to carry out a command would constitute a “passive sin” of negligence. In other words, if one goes against the command “do not be burdened by a yoke of slavery” and becomes a slave to the law, his sin would be a “commission.” But if he breaks God’s command to love by failing to love, he would be committing a passive sin of “omission.” Although we tend to take the latter lightly, negligence and laziness are also grave sins.
The reformist Luther said in his 1535 commentary to Galatians that the command to “serve one another in love” includes the following: teaching the way to the lost, comforting those in pain, helping the weak up, using all means possible to help one’s neighbor, withstanding the weaknesses of one’s neighbor, bearing dissonances, betrayals, ingratitude, and contempt within the church and society, being loyal to your country, honoring your parents, withstanding quarrelsome spouses, bearing with rude family members, and so forth. Acting as such is to serve one another in love.
If we fail to act as such and misuse our freedom, we will bite, devour, and eventually destroy one another, according to Galatians 5:15. It appears that the church in Galatia wasfacing problems coming from the misuse of freedom. Judging from verse 15—“But if you are always biting and devouring one another, watch out! Beware of destroying one another.” (Galatians 5:15)—its problems seem to have been serious. As I meditated on this verse, I was reminded of an old song “A Small Pond”.These are the lyricswritten by Kim Min-gi who is also famous for writing “Morning Dew”:
In a small pond near a dense forest path,
Only dirty water is now found with nothing alive.
Long ago, in that pond,
Two pretty fish livedtogether, they say.
A small pond in a dense forest.
One fine summer day, the two fish in the pond fought.
And one of them, dead, floated to the surface.
The soft flesh decayed,
The water also decayed along with it.
Eventually, in the pond, nothing could live.
In a small pond near a dense forest path,
Only dirty water is now found with nothing alive.
Although the song’s melody is idyllic like a children’s song, its lyrics are extremely sad, criticizingthe bitter reality of the two Koreas. When North Korea and South Korea fight and bite each other, they will only reach destruction. This goes for the church and the home, too. If the body of Christ bite and devour each other, where can God’s glory be found and where can the cross of Christ be hung? I am deeply saddened by the extreme ideological division, generational conflict, class conflict, labor-management arguments, and North-South conflict within Korean society today. I fear that we may lose the freedom, the liberty, and the light that God gave us through our patriots in his special grace. If we fail to guard our freedom properly, abusing our freedom and pursuing disorder and license instead, we may, under the pretense of “liberty”, end up in a worse state than the one we had to endure 76 years ago.
A Christian’s freedom is a freedom to love and to serve, not a freedom to bite and to devour. The reformist Martin Luther stated in his famous treatise “On the Freedom of a Christian (1520)”, “A Christian is a perfectly free lord of all, subject to none. A Christian is a perfectly dutiful servant of all, subject to all.” He also said, “We conclude, therefore, that a Christian lives not in himself, but in Christ and the neighbor. He lives in Christ through faith, and in his neighbor through love.” This captures the freedom of a Christian which is described in today’s passage from Galatians.
Freedom is a priceless gift that Christ gave us in grace by giving his life. It was a gift given to us at the cost of his crucifixion. Korea’s liberation was also a priceless gift bought by the blood of countless patriots. Gift, in German, is “die Gabe.” Add to it “auf,” and you have the word “die Aufgabe”, which means mission or duty. A gift requires a duty. A man who has received a gift is given a mission. As disciples of the Lord,the light of the world, we have a duty to become a beacon of light in this world.
Our Lord says to us,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You are the salt of the world,” “You are free children of God,” “The world must give glory to God through you.” I pray that wewill glorify God by properly carrying out the duty that comes with freedom. Jesus was free from all things—He was God Himself—but He was obedient to death. I hope, in our endeavor to resemble Christ, we may fully experience the joy that springs from the freedom to serve and the freedom to love.
갈라디아서 5: 13 ~ 15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로부터 해방된 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유’라는 단어를 들을 때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어떤 것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까? 출애굽 사건,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영화 <쇼생크 탈출>, 미국 독립 혁명의 지도자 패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실존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이다”, 에릭 프롬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자유의 대헌장’이라 불리는 갈라디아서 … 아마 자유라는 주제를 가지고 각자가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만 해도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3절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자유로의 부르심!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자유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본문 13절은 앞에 있는 갈라디아서 5장 1절의 말씀과 자연스레 연결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선언합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자유는 무엇보다 먼저 ‘무엇으로부터의(from)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저와 여러분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마귀에게 붙들렸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로 인해 우리는 죄로부터, 율법으로부터, 사망으로부터, 마귀로부터, 고정관념으로부터,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 하반부는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굳게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과 우리를 향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이전의 죄, 사망, 율법, 억압, 고정관념의 멍에를 다시 메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빛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대한민국 역사에 해방의 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광복절(光復節)이라고 부릅니다. ‘빛을 다시 찾은 절기’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일제 치하 35년은 캄캄한 어둠이었습니다. 우리말과 글을 빼앗겼고, 그리하여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조차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일제 말기 한국교회는 일본교회와 교단에 흡수되어 종교의 자유조차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칠흑 같은 어두움에 한줄기 밝은 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그것이 광복입니다. 수많은 독립투사의 피와 땀이 해방이라는 열매로 맺어질 수 있도록 국제 정세를 바꾸시고 섭리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하여 서슬 퍼런 억압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제는 참으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우리의 광복절과 같은 ‘빛의 절기’가 있습니다. 수전절(修殿節; feast of dedication)이라 불리는 절기로, 요한복음 10장 22절에는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수전절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중간기에 있었던 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수리아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왕이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 우상을 세워 성전을 더럽히자 B.C.164년 유다 마카베오가 군사를 일으켜 수리아 군대를 물리치고 성전을 깨끗이 정화하여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바로 이날을 기념하여 8일 동안 지키는 절기가 수전절입니다. 유대력으로 9월 25일인데, 양력으로는 11월 말에서 12월 사이에 해당합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외경 마카베오上, 마카베오下에 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누카’(חנוכה, 봉헌)라 불리는 이 절기를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빛의 절기’라고 불렀습니다. 수전절 8일 동안 ‘메노라’라 불리는 중앙의 점화봉과 오른쪽과 왼쪽으로 각각 4개씩 총 9개의 가지를 가진 촛대에 매일 하나씩 불을 밝혀 나갑니다. 일곱 가지의 메노라가 보통이지만, 수전절에는 아홉 가지 메노라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광복의 의미와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광복절을 지키듯, 유대인들은 성전을 회복한 이 날을 기억하기 위해 지금도 수전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올해 ‘하누카’는 11월 28일부터 12월 6일까지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1서 1장 5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빛은 곧 생명입니다. 빛이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며 생명을 불어넣으실 때 제일 먼저 “빛이 있으라!”(창 1:3) 말씀하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요 생명이십니다. 주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이 민족에게 빛을 비추어 어둠에서 밝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복 76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순국선열에게, 무엇보다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비춰 주신, 억압을 물리치고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죄로부터 해방된 성도는 이제 사랑으로의 자유에 부름받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과 13절은 비슷한 말씀처럼 보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1절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이지만, 13절은 그것을 넘어서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말합니다. ‘하지 말라’를 넘어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가 아닙니다. 따라서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3절은 중반부에서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육체의 탐욕을 위해 우리의 자유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New English Bible은 이 구절을 “여러분은 자유로운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단 여러분의 자유를 저급한 본성에의 방종으로 바꾸지는 마십시오.”라고 번역했습니다. 한글 새번역은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라고 번역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에로의 자유가 아니라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Freedom to sin이 아니라 freedom from sin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사랑에로의 자유’, ‘freedom to love’입니다. 본문 13절 하반부에서는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죄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죄로부터, 자신의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기꺼이 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형제자매를 위해서는 기꺼이 종이 될 자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의 자유, 섬김의 자유입니다. 사도 베드로 또한 새번역 성경에서 “여러분은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을 행하는 구실로 쓰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십시오.”(벧전 2:16) 라고 말합니다. 바울과 베드로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시고, 동시에 모든 것에로 자유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는 이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자유는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취사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식구들과 함께 중국집에 가서 외식하는데 아이들에게 “오늘은 무엇을 먹든지 너희들 자유다”라고 말해도 아이들이 피자나 초밥을 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짜장이나 짬뽕이나 탕수육이나 북경 닭고기 등 중국집 메뉴판에 있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유와는 달리 우리의 자유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로 인해 이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주어진 것입니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왜 하필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전봇대로 이빨을 쑤십니까. 자기 책이나 손목시계로 자기 이빨 쑤시는 거야 괜찮지만요. 나의 자유는 이웃의 자유와 함께 공존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라는 원리에 의해 통제를 받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원리에 의해 통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5장 14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율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곧 사랑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메어야 할 멍에가 있다면, 종의 멍에가 아니라 사랑의 멍에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우리의 자유는 사랑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습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하지 말라고 금지한 것을 하는 것이 적극적인 죄라면, 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하지 않는 죄도 소극적인 태만의 죄입니다.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음에도 다시 율법의 종이 되는 것이 능동적으로 행하는 범죄이라면, 사랑하라고 하신 명령을 어기고 사랑하지 않는 것도 수동적인 범죄입니다. 우리는 흔히 후자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태만과 나태의 죄도 중대한 죄입니다.
<사랑으로의 자유에 부름 받은 성도는 책임 있는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고 말합니다. “길을 잃은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 고통 속에 있는 자를 위로하는 것, 연약한 자를 일으켜 주는 것,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웃을 도와주는 것, 이웃의 결함을 참아 주는 것, 교회와 사회에서 불화, 수고, 배은망덕, 경멸을 견뎌내는 것,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것, 부모를 합당하게 공경하는 것, 가정에서 다투기 좋아하는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버릇없는 가족을 참아 주는 것 등등.”[루터, <갈라디아서 주석>(1535)]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자유를 남용하게 되면 15절 말씀처럼 서로 물고 헐뜯게 되고 결국은 피차 멸망에 이르게 될 뿐입니다. 아마도 갈라디아 교회도 자유의 남용으로 인해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본문 5장 15절에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말한 것을 보면 갈등이 상당히 심각했던 듯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옛날 부르던 노래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아침이슬의 작사자인 김민기의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입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곡조가 마치 동요 같은 느낌을 주기만, 사실 이 노래는 무척 슬픈 노래입니다. 이것은 남북으로 나누어져 서로 싸우고 있는 한반도의 안타까운 현실을 꼬집은 것입니다. 실로 남과 북이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가정도 피차 물고 먹으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서로 물고 먹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에서 찾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십자가는 어디에 걸어야 하겠습니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 노사 갈등, 남북 갈등이 왜 이렇게 극심한지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 우리 선열들의 피를 통해 얻은 광복, 해방,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자유를 무질서와 방종으로 남용한다면, 자유라는 미명 아래 이전보다 훨씬 나쁜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하고 섬길 자유이지 물고 뜯을 자유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글에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더할 수 없이 충성스러운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다.”고 썼습니다. 이어서 그는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 그는 신앙으로 그리스도 안에 살며, 사랑으로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 신앙에 의하여 그는 그 자신 이상으로 하나님에게 올리어지며, 사랑에 의하여 그는 그 자신 이하로 이웃에게 내려간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말한, 그리고 오늘 본문이 말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정확히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하신 값비싼 선물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십자가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선물입니다. 우리의 광복은 순국선열의 죽음을 대가로 지불하고 얻은 값비싼 선물입니다. 독일어로 선물이라는 단어는 die Gabe입니다. 이 단어에 auf(on)를 붙이면 die Aufgabe, 사명/책무라는 뜻이 됩니다. 선물은 책임을 불러옵니다. 선물을 받은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사명이 주어집니다. ‘세상의 빛’이신 주님의 제자인 우리에게는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등대가 될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자유로운 하나님의 자녀다.’ ‘세상 사람들이 너희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잘 감당함으로써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참으로 주님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하나님이셨지만 동시에 죽기까지 순종하며 섬긴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려는 저와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섬김의 자유, 사랑의 자유가 주는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