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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은 후손의 복과 어떤 관계를 가집니까? >
지난주 22일, 연합뉴스에 올라온 기사 중에 이런 제목이 있었습니다. “1만8천 신들이 자리 비운 사이 제주는 이사 전쟁.” 종종 올라오는 기사이자 제주도에 가보신 분들은 짐작 가는 내용일 것입니다. 제주도에는 전통적으로 신구간(新舊間)이라 불리는 특별한 기간이 있다고 합니다. 올해 2020년은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가 그 기간이라고 합니다.
신구간(新舊間)은 ‘신구세관교승기간(新舊歲官交承期間)’의 줄임말로, 제주를 대표하는 오래된 풍습이라고 합니다. 이 풍습에 따르면, 제주에는 많은 신이 있습니다. 약 1만8천 신들이 있다고 합니다. 생명의 신인 ‘삼승할망’, 사랑과 농경의 신인 ‘자청비’, 농경의 여신 ‘백주또’, 대문을 지키는 ‘문전신’, 장독대의 장맛을 좋게 만드는 ‘철륭신’, 집안 지킴이인 ‘성주신’ 등 수많은 신이 집을 지키며 만물을 다스린다고 믿습니다.
신구간이란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들이 임무를 교대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기간이라고 전해집니다.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한 해 동안 일어난 일을 보고한 뒤 새로운 임무를 받고 돌아오는데, 그 사이 즉 신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이사하거나 집을 고치면 동티(신의 성냄으로 인한 재앙)가 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재앙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믿어 이 기간에 많은 사람이 이사를 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신구간에 너무 많이 이사해서 이사 비용이 두 배에서 세 배까지 올랐다고도 합니다. 최근에는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가능하면 이 기간에 이사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있어서 그 원인이 무엇일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원인이 자신에게 없다면, 과연 어디서 그 원인이 비롯되었는지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와 같은 생각과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어떤 힘을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바꿔보려고 여러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던 중에 자료를 찾아보다 오래전 방영된 한 방송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조상의 음덕은 과연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제목을 보고 오늘 설교 제목을 정한 게 아니었는데, 혹시 ‘이 제목을 보고 설교 제목을 정했나?’ 하고 오해하실 정도로 비슷한 제목이었기 때문입니다. SBS의 <백만 불 미스터리>라는 프로그램에서 2004년 5월 31일에 방영된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방송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방송 기사가 적힌 글을 읽으면서 어떤 방송이었을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방송의 기본 전제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조상의 묘지가 과연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명당, 명당 하는데, 그 명당이 과연 자손의 번창에 관련되는가?’ 하는 주제입니다. ‘죽어서 땅으로 돌아간 선조들, 조상들의 넋이 과연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만약 영향을 미친다면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들을 통해 풀어보려 한 내용이었습니다. 다소 용두사미 같았지만, 흥미로운 내용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먼저 종로에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고 매번 실패해서 아버지의 묘를 파보았더니, 그만 물이 쏟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장을 했는데 마음이 편해졌다는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그분의 사업이 잘 되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땅의 기운이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등장했고, 전자파 같은 기운을 분석하는 사람들도 동원되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런 인터뷰가 실린 것도 보았습니다. 풍수지리학을 연구하는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조상의 무덤이 좋은 땅에 모셔졌더라도 그 후손이 모두 똑같이 명당의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땅이 아무리 좋은 땅이라 해도 모든 자손이 다 같은 복을 받는 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받을 복도 달라진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조상을 명당에 모셨다 해서 모두가 복을 받는 게 아니라 후손들 각자가 복을 받을 만해야 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 기독교 신앙은 효를 강조하며 자손의 축복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
우리는 지금 설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설날이 되면 제사를 드리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드리지 않지만, 우리 민족 문화가 그 전통을 지켜 왔습니다. 조상님을 돌아보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는 매우 당연시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가톨릭교회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조상 제사를 거부했습니다. 가톨릭교회 신자 중 많은 사람이 희생 및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조상 숭배와 제사를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통문화와 연결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 개신교회는 여전히 조상 제사를 반대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 전통문화와 관련해 많은 어려움과 불편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도 이런 상황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현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논하는 글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그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천지도덕을 말살하는 극단은 현재 서방(兌=西)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저들은 다만 아버지만 찾고 어머니의 은혜는 모르며 망령된 사탄의 말을 하고 있음이라. 세상에 어찌 하늘은 있는데 땅은 없고, 아버지만 있고 어머니가 없는 이치가 있겠는가! 서양사람들은 하늘 아버지만 높이면서 땅의 어머니는 몰라보니 장래 인류가 모두 금수로 돌아갈 징조라. 조상에게 제사도 지내주지 않으며 마귀라고 칭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들을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으리요.”
당시 기독교인들이 이런 모습으로 비쳤던 것 같습니다.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모습이 마치 짐승과 마귀와 같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많은 이가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이런 비판을 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기독교가 조상을 마귀라고 부르거나 사탄이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조상을 폄하하거나 적대하거나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늘 부모 공경을 가르쳐 왔고, 조상에 대해서도 바른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습니다. 교회나 성경이 조상을 멀리하라고 전한 적도 없습니다.
단, 기독교가 조상 제사 행위를 거절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조상 제사가 가진 몇 가지 전제 가운데 기독교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있는 까닭입니다. 우선 제사 의례의 배후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조상과 자손, 남편과 아내 등의 천륜(天倫) 관계는 죽음과 동시에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천륜의 관계는 죽은 다음에 신명이 되어서 계속된다. 후손이 조상님을 잘 모시는 만큼 조상들도 천상에서 늘 자손들을 보살피시고 자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아마 어른들을 통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내용일 것입니다. 우선 조상과 자손의 천륜 관계는 죽어서도 계속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전통문화 가운데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상을 기독교인들이 거절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살펴봐도 조상들과 죽은 조상들, 남겨진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내용은 보기 힘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의 자손, 야곱의 자손에 관한 이야기를 성경은 끊임없이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품에 안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이름은 여전하며, 이삭과 야곱의 이름 역시 여전합니다. 성경은 돌아가신 선조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에 이어지는 전제가 기독교인들로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바로 ‘조상님을 잘 모시면 조상님이 천상에서 자손들을 잘 돌봐주신다.’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조상님께서 하늘나라에 계신다면 아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을 것이고, 아뢸 수 있다면 우리 조상들이 당연히 자녀들과 후손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조상님을 잘 모시면 조상님이 천상에서 복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통적으로 유교권에 있는 우리 민족은 조상님을 잘 모시면, 조상님의 음덕을 입어 자손들이 잘 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반대로 잘 모시지 못하면, 도리어 재앙을 만날 수 있다는 전제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상의 음덕을 입는 방법에도 몇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묏자리를 잘 쓰는 것, 제사를 잘 드리는 것 등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통해 조상들로부터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이 부분을 수용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성경과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조상의 음덕으로 후손이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조상님의 음덕을 통해 후손의 운명을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묏자리를 바꾸면 조상님이 은혜를 베풀어 준다든지, 제사를 잘 드리면 조상님이 우리의 삶을 바꿔줄 수 있다는 전제는 기독교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조상님을 무시하거나 마귀나 사탄으로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복이 어디서 비롯되는가? 인간의 행복과 축복이 어떤 통로를 통해 전달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기독교인이 가진 명확한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기독교인은 정확한 답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 기독교 신앙은 조상의 ‘삶’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믿습니다. >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과연 조상은 자손의 삶과 행복에 관여할 수 있습니까? 조상 덕분에 후손들이 행복해지거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니면 “No.”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많은 분이 “No!”라고 대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Yes.”라고 대답하는 게 적절한 듯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대답, 곧 성경의 대답은 “Yes.”입니다. 조상이 후손의 삶에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민수기 14:18)
분명하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죄악이 언제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까? 삼사대까지 이른다고 말씀합니다. 또 다른 본문도 살펴보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28:3~4)
이 말씀에는 축복과 관련된 내용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을 이삭이 받고, 이삭에게 주셨던 축복을 그의 자손이 누리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두 말씀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조상은 분명 후손의 불행과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이 그랬으며,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전통과 기독교적 관점 사이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차이일까요?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조상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시점을 ‘죽음 이후’라고 봅니다. 조상이 혼령이 된 후 신적인 능력을 갖는다고 믿어 왔습니다. 즉 조상이 죽은 뒤에 인간 이상의 능력을 얻게 되고, 그 힘으로 후손을 돌볼 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생각은 다릅니다. 조상은 신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으로 살다 인간으로 죽었습니다. 때문에 죽은 뒤에도 살았을 때와 달라질 수 없습니다. 인간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없습니다. 혼령이 되었다 해도 인간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흙은 흙이고,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죽어서도 인간일 뿐입니다. 죽어서 그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그들에게 신적인 능력이 부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들에게 신적인 능력이 부여되었다고 믿으며 그들을 섬긴다면, 그래서 조상님으로부터 능력을 얻으려고 한다면, 결국 그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꼴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가족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제사를 드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조상이 신적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효의 표현이자 가족 사랑의 모습이고, 조상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효를 전수하는 방식이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상을 통해 복을 받으려고 시도하게 된다면, 또 조상의 신적인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나 다름없습니다.
< 오늘 내 삶을 통한 복이 후손의 축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기독교가 주장하는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성경이 전하는 조상에서 후손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복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조상이 죽은 후가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이 현실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따라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죽은 조상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조상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지가 후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죽은 조상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조상이 문제입니다. 살아 있는 내가 후손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아 있는 우리의 태도와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조상으로 살아가야 후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줄 수 있을까요? 바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당대에도 그는 하나님의 복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복과 하나님의 약속을 후손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또 이삭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빌었고, 그 복을 자녀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약속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자손들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와 기독교의 관점은 많이 다릅니다. 전통적인 세계관은 우리 자신이 받을 복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저 내가 받을 복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조상을 달래서라도 내가 복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묏자리를 바꿔서라도 내가 복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죽은 조상을 이용해서 복을 누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조상의 모습은 다릅니다. 내가 받을 축복은 이 땅에 사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내 생각, 내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다고 전합니다. 또 하나, 하나님과의 대면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내가 받을 복을 자손들에게 넘겨주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 자손이 언젠가 이 복을 받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지나친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내 자손이 스스로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이어 누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았기에, 이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그대로 이어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삭을 통해, 야곱을 통해,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 믿음의 조상이 되어 신앙의 유산을 전수합시다. >
오늘 본문은 모세를 통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신명기 6:23)
어떤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까? 우리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하신 것,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것, 바로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인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며, 믿음의 조상이 그 일들을 이어받았기에 가능했다고 말입니다.
또 오늘 본문은 ‘이제 후손인 우리가 어떻게 자녀들에게 복을 전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그 답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라는 것입니다.
“선조들의 믿음을 통해 너희가 여기까지 왔다. 가나안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선조들의 은혜로 너희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살아가는 모든 삶은 너희의 책임이 된다. 너희 자손에게 복을 내려주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지켜라.” 주님께서는 그렇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가족의 멸시를 받으면서도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조상을 달래서 복을 받는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고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 자손에게도 그 복이 이어질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손이 진정 행복하게 되기를, 복을 누리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 왔던 것입니다.
오늘의 현장을 보면, 안타깝게도 그와 같은 신앙의 지혜와 확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 복이 오는지, 어디서 구원이 오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흔들리면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도 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에게 요청하십니다. 선조들을 바라보면서 복 받기를 원하기보다 네가 믿음의 선조가 되라고, 복을 나눠 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말입니다. 언젠가 후손들이 나의 믿음, 우리의 믿음 때문에 기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길 바란다고, 그와 같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 보라고 요청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이 음성에, 이 요청에 응답하는 오늘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Do Ancestors AffectDescendants’Blessings?
Deuteronomy 6:1-3, 20-25
Last week, I read an article in Yonhap News titled, “Moving War in Jeju Due To 18,000 Spirits Not At Work.”Jeju, otherwise known as the “home of gods,” believesinaround 18,000 spirits and strictly observes Singugan, an approximately one-week period when the spirits are inactive. According to traditional beliefs,during this time the old spirits are replaced with the new ones, which meanspeople can safely move or repair houses without any harmful consequences. This year’s Singugan is between January 25 to February 1.Thearticlewroteabouthowmovingcostsaremoreexpensiveduringthistimeandsoon.
I think humans have always pondered the notion of good and bad luck resulting from external conditions rather than fromone’s own actions.
As I prepared for this sermon, I happened to see an SBS documentary “Do Ancestors’ Good Deeds Affect Descendants?” airedin 2004. It delved into Koreans’ belief that burying one’s ancestor in a good location will bring prosperity to the descendants. At the end of the program, an expert on Feng-Shei saidinaninterview that a good burial site alone did not guarantee the descendant’sblessings. The descendant had to be virtuous and work for his own blessings, in addition to the good deeds done by his ancestors.
We arenow celebrating the Korean New Year, one of our biggest holidays. During this festive season, Koreans commemorate their ancestors by practicing ancestral rites such as Jesa. After Christianity was preached, Jesa incited much controversy. Catholics have come to accept it, while Protestants continue to reject it. This is why we, Christians, sometimes find ourselves in an uncomfortable, strained relationship with our relatives. Someold-generationKoreans harshly criticize Christians for refusing to honor our ancestors, asserting that Christians call their ancestors the devil or Satan.
However, such criticisms are misplaced. Christianity does not callancestors the devil or Satan. Nor does it denigrate them. It teaches to honor one’s parents and maintains a positive stancetoward ancestors.
Yet, Christianity has rejected Jesa, a traditional rite of Koreansthatpaystributetotheirdeceasedancestors, for certain reasons. It rejects certain premises of Jesa regarding ancestors.
First, the rites of Jesa are based on a belief that “if the descendants honor their ancestors well, the ancestors will protect and pray for their children in heaven.” I put this in quotation marks because I found itinanonlinepost.Christians fully recognize the importance of our relationship withourancestors.However, wedo accept the view that our ancestors will look after us in heaven if—or,on the condition that—we honor them.
Traditionally, Koreans believed that descendants would prosper by the favor of their ancestors if they honored them well,accordingtoConfucianbeliefs. One way to honor ancestors well was to bury them in a good location. Another was to observe Jesa well.
However,Christians oppose the view that we prosper because of the favor of our ancestors. We also reject the view that descendants can win the favor of their ancestors by doing certain things. It is not because we think our ancestors areevilspirits. It comes from our viewon where blessings ultimatelycome from.
Today, as we celebrate theKoreanNewYear, I want to pose these questions: Can ancestors affect the happiness and fate of their descendants? Can we be blessed because of our ancestors? What is the biblical answer to these questions?
Christianity’s answer is “yes.”Yes, we can be blessed and enjoy happiness through our ancestors. This is the biblical answer.
“The Lordis slow to anger, abounding in love and forgiving sin and rebellion. Yet he does not leave the guilty unpunished; he punishes the children for the sin of the parents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 (Numbers 14: 18) This means that the sin of an ancestor affects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 A father’s wrongdoing can affect his children and grandchildren.
On the other hand, the Bible also talks about descendants being blessed through their ancestors:“May God Almighty bless you and make you fruitful and increase your numbers until you become a community of peoples. May he give you and your descendants the blessing given to Abraham, so that you may take possession of the land where you now reside as a foreigner, the land God gave to Abraham.” (Genesis 28:3-4)
The Bible tells us that our ancestors can affect our happiness and unhappiness. In this sense, Koreans’ traditional views and Christian views are not so different—except for one thing.
Koreans traditionally believe that ancestors begin to affect the good and bad fortunes oftheir descendants “after” they passaway, based on a belief that they gain supernatural powers after their death.
However, Christianity believes otherwise. Our ancestors are only humans, not God.Therefore,they do not possess any special powers after their death. They may enter God’s kingdom after they die, but this does not give them godly powers.If we believe otherwise and start to worship them, we would beservingother gods. This is why Christians refusedto participate in Jesa, despite manypersecutions from family membersand relatives.
If you do not believe that your deceased ancestors have special powers, fine. Jesa mayjustbe an expression of filial duty and love. However, if it is carried out on a belief that deceased ancestors possess divine powers and therefore can affect the descendant’s happiness, then it would be idol-worship from the perspective of Christians.
Biblically,ancestorsaffecttheirdescendantsonlythroughthelivestheyledinthisworld.Deadancestorsdonotdetermineourfate.Ancestors’ service towardGodwhilealiveiswhataffectstheirchildren.Therefore,forChristians,we,theliving,areimportant—notourdeadancestors.HowshouldwelivesothatwemaypassdownGod’sblessingstoourchildren? That iswhatmatterstous.AbrahamreceivedblessingsfromGod,whichhepasseddowntohisdescendants.Isaac,Jacob,andJudahdidthesame.
Inthissense,theChristianviewisdifferentfromtheConfucianone.Traditionally,Jesaiscarriedoutwithafocuson “receiving” blessings.Descendantswanttobeblessedbyappeasingtheirdeadancestorsandchangingtheirburialsites.
However,Christianitythinksdifferently.IcreatetheblessingsIreceive.Myblessingscomefrommythoughts,myactions,andmyrelationshipwithJehovah,theoneandonlyGod.Andthoseblessingsmustbepassedontomychildren.MydescendantscanenjoytheblessingsIreceivedfromGodwithouthavingtodoanything—thatis,ifIhaveGod’sblessingandpromise.
Today’sscriptureholdsGod’swordsgiventhroughMosestotheIsraeliteswhoareabouttoenterCanaan.Itsaysinverse23, “But he brought us out from there to bring us in and give us the land he promised on oath to our ancestors.” (Deuteronomy6:23)Whatdoesthismean?ItmeansthattheIsraelitesreceivedCanaanasagift because GodmadeapromisewiththeirancestorsAbraham,Isaac,andJacob.Itwasthankstotheirancestors.
GodsaidthatHisblessingswouldreachathousandgenerations.Thisisourfaith.“[…]maintaining love to thousands, and forgiving wickedness, rebellion and sin. Yet he does not leave the guilty unpunished; he punishes the children and their children for the sin of the parents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Exodus34:7)
Wheredoblessingscomefrom?God.Thisisourfaith.
Today’spassagefromDeuteronomyteachestheIsraeliteshowtheyshouldliveinthepromisedland.Canaanwillbefullofidolsandgentilebeliefs.TheIsraeliteswillhavetoguardtheirfaithsothattheyandtheirchildrenmaybeblessed.First,theymustobserveGod’sdecreesand commands.Iftheydoso,theyandtheirchildrenwillenjoylonglife.Thisishowweshareourblessingswithourchildren.
ThisiswhyourancestorsoffaithrejectedJesa.They believed thattheyandtheirdescendantswouldbeblessedwhentheyworshippedGodandlivedarighteouslife,notby appeasing deadancestors.TheyrejectedJesa because theytrulywantedtheirchildrentobehappy.
Today,itseemswearemissingthiswisdomandfaith.Weareconfusedaboutwheresalvationandblessingscomefrom.Whenwefailtostandfirm,wecannotreceiveHisblessings.Neithercanourdescendants.
Let’slooktoGodaloneandstandfirminthisworldsothatwemaybecometrulygreatancestorsthatpassdownGod’sblessingstoourchildrenandgrandchildren.ThisiswhatGodwantsfromus.
신명기 6: 1 ~ 3
1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 조상은 후손의 복과 어떤 관계를 가집니까? >
지난주 22일, 연합뉴스에 올라온 기사 중에 이런 제목이 있었습니다. “1만8천 신들이 자리 비운 사이 제주는 이사 전쟁.” 종종 올라오는 기사이자 제주도에 가보신 분들은 짐작 가는 내용일 것입니다. 제주도에는 전통적으로 신구간(新舊間)이라 불리는 특별한 기간이 있다고 합니다. 올해 2020년은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가 그 기간이라고 합니다.
신구간(新舊間)은 ‘신구세관교승기간(新舊歲官交承期間)’의 줄임말로, 제주를 대표하는 오래된 풍습이라고 합니다. 이 풍습에 따르면, 제주에는 많은 신이 있습니다. 약 1만8천 신들이 있다고 합니다. 생명의 신인 ‘삼승할망’, 사랑과 농경의 신인 ‘자청비’, 농경의 여신 ‘백주또’, 대문을 지키는 ‘문전신’, 장독대의 장맛을 좋게 만드는 ‘철륭신’, 집안 지킴이인 ‘성주신’ 등 수많은 신이 집을 지키며 만물을 다스린다고 믿습니다.
신구간이란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들이 임무를 교대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기간이라고 전해집니다.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한 해 동안 일어난 일을 보고한 뒤 새로운 임무를 받고 돌아오는데, 그 사이 즉 신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이사하거나 집을 고치면 동티(신의 성냄으로 인한 재앙)가 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재앙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믿어 이 기간에 많은 사람이 이사를 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신구간에 너무 많이 이사해서 이사 비용이 두 배에서 세 배까지 올랐다고도 합니다. 최근에는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가능하면 이 기간에 이사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있어서 그 원인이 무엇일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원인이 자신에게 없다면, 과연 어디서 그 원인이 비롯되었는지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와 같은 생각과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어떤 힘을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바꿔보려고 여러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던 중에 자료를 찾아보다 오래전 방영된 한 방송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조상의 음덕은 과연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제목을 보고 오늘 설교 제목을 정한 게 아니었는데, 혹시 ‘이 제목을 보고 설교 제목을 정했나?’ 하고 오해하실 정도로 비슷한 제목이었기 때문입니다. SBS의 <백만 불 미스터리>라는 프로그램에서 2004년 5월 31일에 방영된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방송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방송 기사가 적힌 글을 읽으면서 어떤 방송이었을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방송의 기본 전제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조상의 묘지가 과연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명당, 명당 하는데, 그 명당이 과연 자손의 번창에 관련되는가?’ 하는 주제입니다. ‘죽어서 땅으로 돌아간 선조들, 조상들의 넋이 과연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만약 영향을 미친다면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들을 통해 풀어보려 한 내용이었습니다. 다소 용두사미 같았지만, 흥미로운 내용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먼저 종로에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고 매번 실패해서 아버지의 묘를 파보았더니, 그만 물이 쏟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장을 했는데 마음이 편해졌다는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그분의 사업이 잘 되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땅의 기운이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등장했고, 전자파 같은 기운을 분석하는 사람들도 동원되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런 인터뷰가 실린 것도 보았습니다. 풍수지리학을 연구하는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조상의 무덤이 좋은 땅에 모셔졌더라도 그 후손이 모두 똑같이 명당의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땅이 아무리 좋은 땅이라 해도 모든 자손이 다 같은 복을 받는 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받을 복도 달라진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조상을 명당에 모셨다 해서 모두가 복을 받는 게 아니라 후손들 각자가 복을 받을 만해야 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 기독교 신앙은 효를 강조하며 자손의 축복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
우리는 지금 설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설날이 되면 제사를 드리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드리지 않지만, 우리 민족 문화가 그 전통을 지켜 왔습니다. 조상님을 돌아보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는 매우 당연시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가톨릭교회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조상 제사를 거부했습니다. 가톨릭교회 신자 중 많은 사람이 희생 및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조상 숭배와 제사를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통문화와 연결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 개신교회는 여전히 조상 제사를 반대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 전통문화와 관련해 많은 어려움과 불편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도 이런 상황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현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논하는 글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그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천지도덕을 말살하는 극단은 현재 서방(兌=西)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저들은 다만 아버지만 찾고 어머니의 은혜는 모르며 망령된 사탄의 말을 하고 있음이라. 세상에 어찌 하늘은 있는데 땅은 없고, 아버지만 있고 어머니가 없는 이치가 있겠는가! 서양사람들은 하늘 아버지만 높이면서 땅의 어머니는 몰라보니 장래 인류가 모두 금수로 돌아갈 징조라. 조상에게 제사도 지내주지 않으며 마귀라고 칭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들을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으리요.”
당시 기독교인들이 이런 모습으로 비쳤던 것 같습니다.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모습이 마치 짐승과 마귀와 같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많은 이가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이런 비판을 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기독교가 조상을 마귀라고 부르거나 사탄이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조상을 폄하하거나 적대하거나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늘 부모 공경을 가르쳐 왔고, 조상에 대해서도 바른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습니다. 교회나 성경이 조상을 멀리하라고 전한 적도 없습니다.
단, 기독교가 조상 제사 행위를 거절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조상 제사가 가진 몇 가지 전제 가운데 기독교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있는 까닭입니다. 우선 제사 의례의 배후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조상과 자손, 남편과 아내 등의 천륜(天倫) 관계는 죽음과 동시에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천륜의 관계는 죽은 다음에 신명이 되어서 계속된다. 후손이 조상님을 잘 모시는 만큼 조상들도 천상에서 늘 자손들을 보살피시고 자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아마 어른들을 통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내용일 것입니다. 우선 조상과 자손의 천륜 관계는 죽어서도 계속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전통문화 가운데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상을 기독교인들이 거절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살펴봐도 조상들과 죽은 조상들, 남겨진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내용은 보기 힘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의 자손, 야곱의 자손에 관한 이야기를 성경은 끊임없이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품에 안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이름은 여전하며, 이삭과 야곱의 이름 역시 여전합니다. 성경은 돌아가신 선조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에 이어지는 전제가 기독교인들로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바로 ‘조상님을 잘 모시면 조상님이 천상에서 자손들을 잘 돌봐주신다.’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조상님께서 하늘나라에 계신다면 아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을 것이고, 아뢸 수 있다면 우리 조상들이 당연히 자녀들과 후손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조상님을 잘 모시면 조상님이 천상에서 복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통적으로 유교권에 있는 우리 민족은 조상님을 잘 모시면, 조상님의 음덕을 입어 자손들이 잘 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반대로 잘 모시지 못하면, 도리어 재앙을 만날 수 있다는 전제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상의 음덕을 입는 방법에도 몇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묏자리를 잘 쓰는 것, 제사를 잘 드리는 것 등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통해 조상들로부터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이 부분을 수용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성경과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조상의 음덕으로 후손이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조상님의 음덕을 통해 후손의 운명을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묏자리를 바꾸면 조상님이 은혜를 베풀어 준다든지, 제사를 잘 드리면 조상님이 우리의 삶을 바꿔줄 수 있다는 전제는 기독교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조상님을 무시하거나 마귀나 사탄으로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복이 어디서 비롯되는가? 인간의 행복과 축복이 어떤 통로를 통해 전달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기독교인이 가진 명확한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기독교인은 정확한 답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 기독교 신앙은 조상의 ‘삶’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믿습니다. >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과연 조상은 자손의 삶과 행복에 관여할 수 있습니까? 조상 덕분에 후손들이 행복해지거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니면 “No.”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많은 분이 “No!”라고 대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Yes.”라고 대답하는 게 적절한 듯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대답, 곧 성경의 대답은 “Yes.”입니다. 조상이 후손의 삶에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민수기 14:18)
분명하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죄악이 언제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까? 삼사대까지 이른다고 말씀합니다. 또 다른 본문도 살펴보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28:3~4)
이 말씀에는 축복과 관련된 내용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을 이삭이 받고, 이삭에게 주셨던 축복을 그의 자손이 누리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두 말씀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조상은 분명 후손의 불행과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이 그랬으며,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전통과 기독교적 관점 사이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차이일까요?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조상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시점을 ‘죽음 이후’라고 봅니다. 조상이 혼령이 된 후 신적인 능력을 갖는다고 믿어 왔습니다. 즉 조상이 죽은 뒤에 인간 이상의 능력을 얻게 되고, 그 힘으로 후손을 돌볼 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생각은 다릅니다. 조상은 신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으로 살다 인간으로 죽었습니다. 때문에 죽은 뒤에도 살았을 때와 달라질 수 없습니다. 인간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없습니다. 혼령이 되었다 해도 인간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흙은 흙이고,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죽어서도 인간일 뿐입니다. 죽어서 그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그들에게 신적인 능력이 부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들에게 신적인 능력이 부여되었다고 믿으며 그들을 섬긴다면, 그래서 조상님으로부터 능력을 얻으려고 한다면, 결국 그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꼴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가족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제사를 드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조상이 신적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효의 표현이자 가족 사랑의 모습이고, 조상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효를 전수하는 방식이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상을 통해 복을 받으려고 시도하게 된다면, 또 조상의 신적인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나 다름없습니다.
< 오늘 내 삶을 통한 복이 후손의 축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기독교가 주장하는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성경이 전하는 조상에서 후손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복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조상이 죽은 후가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이 현실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따라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죽은 조상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조상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지가 후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죽은 조상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조상이 문제입니다. 살아 있는 내가 후손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아 있는 우리의 태도와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조상으로 살아가야 후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줄 수 있을까요? 바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당대에도 그는 하나님의 복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복과 하나님의 약속을 후손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또 이삭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빌었고, 그 복을 자녀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약속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자손들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와 기독교의 관점은 많이 다릅니다. 전통적인 세계관은 우리 자신이 받을 복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저 내가 받을 복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조상을 달래서라도 내가 복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묏자리를 바꿔서라도 내가 복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죽은 조상을 이용해서 복을 누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조상의 모습은 다릅니다. 내가 받을 축복은 이 땅에 사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내 생각, 내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다고 전합니다. 또 하나, 하나님과의 대면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내가 받을 복을 자손들에게 넘겨주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 자손이 언젠가 이 복을 받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지나친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내 자손이 스스로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이어 누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았기에, 이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그대로 이어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삭을 통해, 야곱을 통해,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 믿음의 조상이 되어 신앙의 유산을 전수합시다. >
오늘 본문은 모세를 통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신명기 6:23)
어떤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까? 우리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하신 것,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것, 바로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인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며, 믿음의 조상이 그 일들을 이어받았기에 가능했다고 말입니다.
또 오늘 본문은 ‘이제 후손인 우리가 어떻게 자녀들에게 복을 전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그 답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라는 것입니다.
“선조들의 믿음을 통해 너희가 여기까지 왔다. 가나안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선조들의 은혜로 너희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살아가는 모든 삶은 너희의 책임이 된다. 너희 자손에게 복을 내려주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지켜라.” 주님께서는 그렇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가족의 멸시를 받으면서도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조상을 달래서 복을 받는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고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 자손에게도 그 복이 이어질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손이 진정 행복하게 되기를, 복을 누리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 왔던 것입니다.
오늘의 현장을 보면, 안타깝게도 그와 같은 신앙의 지혜와 확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 복이 오는지, 어디서 구원이 오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흔들리면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도 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에게 요청하십니다. 선조들을 바라보면서 복 받기를 원하기보다 네가 믿음의 선조가 되라고, 복을 나눠 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말입니다. 언젠가 후손들이 나의 믿음, 우리의 믿음 때문에 기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길 바란다고, 그와 같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 보라고 요청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이 음성에, 이 요청에 응답하는 오늘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0년 1월 26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조상은 우리의 복에 관여하는가?” (신 6:1-3, 20-25)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64장, 204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신 6:1-3, 20-2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월 2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2004년 5월 31일 SBS의 <백만불 미스터리>에서 “조상의 음덕은 과연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제목의 방송이 있었습니다. 방송의 내용은 ‘조상의 넋이 과연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민족의 절기인 정월 초하루, 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옛날 어른들 중에는 기독교가 조상들을 마귀라고 부르거나, 사탄이라고 가르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부모를 공경할 것을 가르쳐왔으며, 조상들에 대하여도 좋은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설교의 요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조상의 제사라고 하는 민족 고유의 행위를 거절해 온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의식의 배후에 있는 ‘음덕 사상’입니다. 기독교는 조상님의 음덕으로 후손이 잘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묘자리를 잘 쓰고, 명당에 모시고, 제사를 잘 드리는 것을 반대합니다. 이것은 조상님을 무시하거나, 마귀나 사탄으로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참된 복은 조상들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만 온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은 신이 아닙니다. 만약 조상에게 신적인 능력이 부여된다고 믿어서 그들을 섬긴다면, 우리는 하나님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이 가족들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제사를 드리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기독교인들에게 조상은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의 조상은 우리 자손들의 운명과 행복에 관여할 수 있는가요? 기독교의 대답은 ‘그렇다(Yes)’입니다. 성경은 아버지의 잘못이 자손들에게 내려온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여호와는 …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민 14:18), 반대로 조상을 통한 자손의 축복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창 28:4). 즉, 조상이 후손들의 행복과 불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죽은 ‘조상’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가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어떤 조상으로 살아야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내려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통적인 제사관은 조상을 달래서라도 내가 받을 복에 관심을 가집니다. 조상의 묘자리를 바꿔서라도 내가 받을 복에 관심을 가집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생각은 다릅니다. 내가 받는 축복은 내가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나의 생각, 나의 행위를 통해서 유일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럼 이 복은 어디서오는 걸까요? 오늘 본문에 의하면, 이 복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때 (신 6:1-3)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상들을 달래서 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씀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온전히 설 때에, 믿음의 조상이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가문과 후손을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가문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나누기
1. 명절 때마다 제사문제로 다툼을 겪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떻게 이 문제를 설명하시곤 하셨나요?
2. 오늘 말씀을 통해 기독교는 조상을 폄하하거나 그들을 적대하지 않았다고 배웠는데, 그럼 조상의 음덕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복의 근원이신 주님을 부릅니다. 주님께 복을 받아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는 복된 조상이 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