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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 사건에는 제자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4장은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찾아가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중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부분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사실 그 뒤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이야기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한 가지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발견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시는 장면에서 숨겨진 이야기 하나, 그것은 바로 제자들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이를 둘로 나눠 소개할 수 있는데, 먼저 큰 흐름 가운데 있는 이야기는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장면입니다. 그 말씀 중에는 영생하는 샘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과 관련된 주제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한 가지 숨겨진 또 다른 주제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시는 중에 나타납니다. 그 내용의 중간 부분에 배고프지 않는 것과 관련된 주제가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목마르지 않음에 대한 주제, 또 하나는 배고프지 않음에 대한 주제가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늘 본문의 앞부분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4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요한복음 4:1)
요한복음 4장 1절은 세 가지 정보를 알려 줍니다. 먼저, ‘예수께 나와 세례 받는 사람의 수가 요한에게 나와 세례 받는 사람보다 많다’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인기와 인지도가 훨씬 높아졌고, 당대 위대한 인물로 칭송되던 세례 요한보다 커졌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져 가고 있음을 뜻합니다.
두 번째로는, ‘이 사실을 바리새인들이 알았다’는 정보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과 적대적인 관계에 선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따르면, 예수께서 이미 성전에 올라가 성전을 뒤엎으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좋아할 리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처치하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예수님의 명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즉 이 본문은 예수께 적대적인 세력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는 셈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예수께서도 그 사실을 아셨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주께서 아신지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까? 자신의 명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셨고, 동시에 예수님을 견제하는 바리새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아셨다는 뜻입니다.
<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해 갈릴리로 가시는 결정을 내리십니다. >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려는 결정을 내리십니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한복음 4:3~4)
예수님이 갈릴리로 올라가시는데, 사마리아 땅으로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땅을 통과해 가시겠다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마리아를 경유해 갈릴리로 향한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 사마리아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이었고,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갈릴리로 갈 때는 요단강을 건너 베레아 지방을 통과해 올라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해야겠다고 결정하십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는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사마리아를 통과하면 갈릴리로 가는 길이 직선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직선으로 올라간다면, 즉 최단거리로 가려 한다면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서 갈릴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뜻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해 가시겠다는 결단을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의도를 가지고 사마리아로 들어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셨을 때는 정오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셨고, 야곱의 우물 곁에 잠시 앉으셨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물을 긷기 위해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었고, 물을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첫 번째 대화입니다.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한복음 4:6~7 중)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살짝 다른 주제가 엿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요한복음 4:8)
제자들은 이미 마을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무엇을 가지러 갔습니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먹을 것을 구하려고 제자들이 마을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두 가지 주제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 즉 목마름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또 하나의 대화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 즉 배고픔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이 두 주제가 이제부터 역동적으로 뒤섞여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꽈배기처럼 말입니다. 물론 긴 주제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나타나지만, 그 사이사이에 또 다른 주제가 나타난다는 것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만나는 장면이 길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당시의 정황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 땅을 밟은 것도 이례적이었고,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 역시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랍비가 사마리아의 낯선 여인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상황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랍비와 같은 모습으로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고 계시는데,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그때 예수님은 “너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도리어 그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하며, 또 다른 질문과 말씀을 하십니다. 특히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에는 아주 값진, 멋진 말씀들이 나타납니다. 그중 14절이 우리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4)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여인은 예수님이 랍비를 넘어서는 분이시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선지자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께 예배에 관한 질문까지 던집니다. 이때 예수님이 예배와 관련된 주옥같은 말씀을 남기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3~24)
이렇게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러는 중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씀이 이어집니다. 27절입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요한복음 4:27)
그리고 또 다른 주제의 주인공인 제자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들고 예수께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당연히 제자들은 그 장면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예수님에게 묻지 못했습니다. 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막지 못했을까요?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당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너무 진지해서 감히 그 대화를 끊을 수 없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경의 흐름으로 본다면, 아마 그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아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중간에서 그 대화를 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제자들의 행적과 여인의 선포가 사마리아를 변화시킵니다. >
동시에 두 번째 이유, 즉 또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을 곰곰이 묵상하다 보면, 두 번째 이유도 꽤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들은 지금 어디를 다녀오는 중입니까? 그들은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내려갔습니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내려갔습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면, 제자들이 사람들을 만났겠습니까, 안 만났겠습니까? 당연히 사람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까요? 먹을 것을 구하고 사려는 사람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누구겠습니까? 아마 주로 여성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대인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역시 사마리아 마을로 들어가서 집집을 돌아다니며 여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야 음식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미 그들은 마을로 내려가 사마리아 여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을 것입니다. 왜 그들에게 음식이 필요한지도 알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음식을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장면이 제자들 자신에게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를 막을 수도, 막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마을로 보내신 이유가 단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충분히 그 내용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오셔서 제자들을 마을로 내려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먹을 것을 구해 오라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먹을거리는 핑계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로 하여금 사마리아인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접촉하도록 유도하신 것입니다. 그 길을 열고자 하셨습니다. 유대인이자 남성이었던 제자들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께서 잡수실 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마리아인과 접촉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반나절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곳저곳을 방문합니다. 음식을 사겠다며 사마리아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전에 없던 일입니다. 어떤 유대인이 사마리아 마을에 들어온다는 말입니까? 어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말을 트고 소통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야말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졌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도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마 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실까?’ ‘예수님이 어떤 분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마 예수께 나가 그분을 만날 만한 용기는 없었을 것입니다. 마을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 역시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차례 제자들이 마을을 돌고, 예수께로 돌아갔습니다.
한편 제자들이 돌아왔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차마 말을 끊지 못했는데,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물동이를 내버려 둔 채 마을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만났다고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감격, 메시아를 만난 그 감격이 여인으로 하여금 담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이끌고 오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마을 사람들이 제자들을 먼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쉽게 이 여인을 따라 예수께 나올 수 있었을까? 마을 사람들을 먼저 만났던 제자들의 행적과 사마리아 여인의 선포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예수께로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 복음의 결실은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대로 맺힙니다. >
사마리아 여인이 마을로 들어간 사이, 또 다른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바로 먹는 이야기, 그리고 제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마을에서 가져온 음식을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져온 음식에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요한복음 4:31~32)
예수님이 배고프다고 말씀하셨기에 제자들이 음식을 가지러 마을에 가지 않았습니까? 이제 음식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정작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게는 먹을 양식이 따로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사이 어떤 음식이 생겼을까? 예수님이 무엇으로 배를 채우셨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수군거립니다.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요한복음 4:33)
‘누군가 음식을 드렸나 보다. 아마 사마리아 여인이 드렸나 보다.’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수군거리고 있을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4:34)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나는 지금 배가 부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먹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매우 기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내 마음이 기쁨으로 넘치기 때문에 먹을 필요가 없다. 나는 먹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즉 “나의 양식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순간에 나는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살아 있는 동기로 충만하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어 왜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제자들과 함께 오셨는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이때 추수와 관련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온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밭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익어 거둘 때가 되었다.” 누구를 향해 주시는 말씀입니까? 사마리아를 보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먼 훗날 언젠가 추수할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보아라, 이미 모든 것이 익어 추수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추수하는 자는 품삯을 받으며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둬들인다. 그러면 씨 뿌리는 사람과 추수하는 사람이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심고, 한 사람은 거둔다.” 이렇게 추수와 관련된 말씀을 전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다음과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심고, 누군가는 거둔다. 너희는 지금 거두는 사람이다. 이미 거두고 있지 않느냐? 너희가 이미 사마리아 땅으로 내려가 많은 제자를 삼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보내서,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였다. 수고는 남들이 하였는데, 너희는 그들의 수고의 결실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4:38, 새번역)
이 말씀의 의미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말씀 그대로 제자들은 직접 먹을 것을 구해 왔습니다. 자신들이 수고하지 않은 열매를 가져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음식을 얻어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니 수고하지 않았습니다. 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바로 그 내용을 주님께서 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미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설명했고,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파했고, 예수님이 여기 계시다는 사실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씨를 뿌리고 오는 듯했는데, 이미 그들은 거두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증거가 이미 결실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심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심어 놨던 복음의 열매가 너희들을 통해서 거두어지고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요한복음 4장 3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요한복음 4:39)
<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성령을 통해 영원한 양식을 얻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는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배고프지 않는 양식입니다. 하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어진 말씀이었고, 하나는 제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생명력을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근원이자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서로 다른 대상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 물은 어떤 물일까요? 요한복음 7장 38절 이후의 말씀을 보면, 그 말씀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른 바와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뒤 이어 말씀하시기를, 39절에 “이를 믿는 자는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그것은 바로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실 때도 분명히 전하셨던 내용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하나가 있었지요. 제자들에게 주시는 배고프지 않는 양식입니다. 그 양식은 어떤 것입니까? 제자들이 누리는 양식이었습니다. 초신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누릴 영원한 양식, 생명의 근원, 예수님이 느끼고, 예수께서 가지고 계신 생명의 양식,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하게 이루는 행위, 그 자체가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백성들에게는, 제자들에게는 영원한 양식이 있습니다. 그 양식은 바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온전하게 이루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양식을 원합니다. 배고프지 않는 양식을 구합니다. 많은 재산을 가지면 배고프지 않은 양식을 구할 수 있습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배고프지 않은 양식을 영원히 가질 수 있습니까? 주님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요 그것을 온전하게 이루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배고프지 않는 비결을 말씀드립니다. 나의 뜻을 행하고 나의 이념과 나의 비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 주님의 뜻을 성취하고자 할 때, 비로소 솟아나는 생명의 근원이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힘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품고 이 땅을 넉넉히 살아낼 수 있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Jesus Travels All the Way
John 4:1-8, 28-38
Today’s scripturefrom John chapter 4 is well-known. Jesus meets a Samaritan woman by a well and preaches the gospel in Samaria.Thechaptercontains many precious verses including, “Whoever drinks the water I give them will never thirst. Indeed, the water I give them will become in the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John 4:14)
We tend to read John chapter 4 as a passage structured on a single story: Jesus’ conversation with the Samaritan woman. However, a careful analysis will reveal thattwo stories are in fact intertwined:first, the story on Jesus’ encounter with the Samaritan woman which has the themes of water and thirst; second, the story on the disciples and the matter of food.
Before we delve into the passage, let’s look at how the story begins in verse 1: “Now Jesus learned that the Pharisees had heard that he was gaining and baptizing more disciples than John.”(John 4:1) This seemingly ordinary sentence contains many important meanings: first, Jesus had become more popular than John the Baptist; second, the Pharisees knew this and opposition against Jesus was growing; and, third, Jesus knew all of this, that He had become famous, influential, and that the Pharisees had their guards up against Him.
Thus, Jesus decided to leave Judea and go to Galilee: “So he left Judea and went back once more to Galilee.Now he had to go through Samaria.” (John 4:3-4) Surprisingly, however, Jesus decides to go to Galilee via Samaria. This is surprising because in those time Jews almost never traveled that land. They despised the Samaritans. Samaria was situated between Judah, south of Samaria, and Galilee, north of it. But Jews almost never went to Galilee via Samaria. Instead, they traveled along the Jordan River to go north.
Yet, Jesus decided to travel through Samaria: “Now he had to go through Samaria.” This verse expresses Jesus’ strong determination. This means He set foot on Samaria with a clear purpose.
When Jesus arrived in the town of Sychar of Samaria, it was about noon. He was tired and thirsty from the journey. He sat by a well. A Samaritan woman came to draw water. Jesus started a conversation with her and asked her for a drink: “Jacob’s well was there, and Jesus, tired as he was from the journey, sat down by the well. It was about noon.When a Samaritan woman came to draw water, Jesus said to her, ‘Will you give me a drink?’” (John 4:6-7) Thus, the story of Jesus and the Samaritan woman and the theme of water begin.
Interestingly, however, verse 8—the verse that comes immediately after Jesus’ encounter with the woman—talks about a different theme: “His disciples had gone into the town to buy food.” (John 4:8) It is talking about “food.” Jesus was not only thirsty but also hungry. The disciples had gone to town to get food.
As I mentioned earlier, two themes, thirst and hunger, become intertwined like a twisted cord. Therefore, today, I will unpack the meaning of today’s scripture based on an often-neglected theme: the disciples and hunger.
The disciples had already gone to town to get food. After briefly mentioning this, chapter 4 focuses first on Jesus’ conversation with the Samaritan woman. Jesus takes the initiative and asks her for water. This act went against all norms and common sense of the time. First, Jews never went to Samaria, let alone speak with them. Second, a rabbi, a male teacher, never talked to a woman he didn’t know.
The woman replies, “You are a Jew. How can you ask me for a drink?” Jesus answers back, “If you knew who it is that asks you for a drink, you would have asked him for a drink.” Then Jesus says, “Whoever drinks the water I give them will never thirst. Indeed, the water I give them will become in the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John 4:14) The woman says, “Sir, give me this water so that I won’t get thirsty and have to keep coming here to draw water.”
Then Jesus asks her to bring her husband, to which she replies she has none. Jesus says that she had five, which amazes her and leads her to ask a question on worship. She asks if she has to worship here or in Jerusalem. Jesus replies,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the Spirit and in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the Spirit and in truth.” (John 4:23-24) Finally, Jesus tells her that He is the Messiah, the Christ.
It is at this moment that the disciples return: “Just then his disciples returned and were surprised to find him talking with a woman. But no one asked, ‘What do you want?’ or ‘Why are you talking with her?’” (John 4:27) Why did no one ask Jesus about His conversation with the Samaritan woman?
First, the disciples might have sensed that Jesus was having quite a serious conversation with the woman. So, they did not dare interfere. This is highly possible. But there is another possibility that cannot be ruled out. The disciples themselves had been talking with the locals in the town when they had gone out to get food. This was against Jewish taboo. Accordingly, they did not feel the need to ask Jesus about why He was talking to a Samaritan woman.
If we imagine the scene as such, we will come to understand that Jesus did not send out the disciples merely because He was hungry. Jesus wanted them to interact with the Samaritans. He wanted them to meet with them. Through the disciples He wanted the Samaritans to hear about Jesus.
Now let’s think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eople in the Samaritan town. All morning, Jesus’ disciples had been asking around for food in the town. Naturally, they would have talked to the women there. And the townspeople would have heard rumors about Jesus and His disciples.
After the disciples had made their rounds, the Samaritan woman, after meeting Jesus, went back to the town and told everyone, “I met the Messiah!” Although she had been an outcast in her community, she was so overwhelmed by her encounter with the Messiah that she began to boldlyproclaim the good news. And she brought people from the town to Jesus.
This is the story that unravels from verse 28. The Samaritan woman was so amazed that she left her water jar and went back to the town to tell people about Jesus.
Meanwhile, the chapter refocuses on the disciples and the topic of food. The disciples brought Jesus food, but to their surprise He was not interested in eating: “Meanwhile his disciples urged him, ‘Rabbi, eat something.’ But he said to them, ‘I have food to eat that you know nothing about.’” (John 4:31-32)
So the disciples asked each other, “Could someone have brought him food?” But Jesus replied, “My food is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to finish his work.” (John 4:34) He is saying, ‘I don’t need to eat… because I am so full of joy at this moment… because I am doing God’s work.’ Then Jesus explains why He came to Samaria and what He is doing here through the parable of the harvest.
“Don’t you have a saying, ‘It’s still four months until harvest’? I tell you, open your eyes and look at the fields! They are ripe for harvest.Even now the one who reaps draws a wage and harvests a crop for eternal life, so that the sower and the reaper may be glad together.Thus the saying ‘One sows and another reaps’ is true.” (John 4:34-37)
Jesus explains to the disciples why He sent them out to the town in Samaria: “I sent you to reap what you have not worked for. Others have done the hard work, and you have reaped the benefits of their labor.” (John 4:38)This refers to Jesus sending out His disciples to reap. First, they reaped food they did not make. Second, they reaped a harvest of souls from seeds of the gospel that others sowed.
After these words of Jesus, the Bible records, “Many of the Samaritans from that town believed in him because of the woman’s testimony, ‘He told me everything I ever did.’” (John 4:39)
What did Jesus intend to do by traveling through Samaria? He didn’t just travel through it without a purpose. He wanted to spread the gospel there. He wanted God’s salvation to reach that land.
His food was to go to Samaria, a detested land, and preach the gospel there. What is food? It gives us energy. It is the source of life, a cause that brings action. Jesus refers to mission as food. ‘Doing the work of God is My food. Preaching the gospel is My energy, My life’s driving force.’
Let’s go back to the beginning of today’s chapter: “Jacob’s well was there, and Jesus, tired as he was from the journey, sat down by the well. It was about noon.” (John 4:6) Jesus was tired. How amazing!
The Book of John starts with this verse: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The Word became flesh. Jesus came into this world. He went all the way to Samaria, a land detested by Jews. And the Word was tired. Tired as He was, He went all the way to a well in a town called Sychar to meet a Samaritan woman.
How can we apply this to ourselves? Jesus came all the way to us, we who are in a land even farther than Samaria. He traveled afar to meet someone as weak as me. He came all the way from heaven. He is Christ. Tired as He is, He does not stop His work to save us.
Today’s passage talks about Jesus who goes all the way to Samaria to preach the gospel. He also sent His disciples to the town to get food, to interact with the Samaritans. He rejoiced when the gospel reached Samaria through the disciples and through the Samaritan woman.
The Son who sitteth on high came to this lowliest of places to become flesh. The Son went all the way to Samaria, a land abhorred by Jews, to preach the good news. And He says that this is His food, the driving force of His life.
I pray that you will be able to see the Lord who traveled all the way to us, even though He was tired, as tired as He was. Jesus works for us. And just as He invited His disciples to join Him in His work, He is inviting us to do the same.
Dear Church, what is the water that never thirsts? What is the food that never lets us go hungry? Our Lord says it is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to finish his work.” (John 4:34) Let’s meditate on these words deeply. I pray that, in this time, you will be able to deeply meditate on His words that doing God’s will and finishing His work—not fulfilling my desire and doing my work—are our true food and true drink.
요한복음 4: 1 ~ 8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 사건에는 제자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4장은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찾아가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중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부분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사실 그 뒤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이야기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한 가지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발견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시는 장면에서 숨겨진 이야기 하나, 그것은 바로 제자들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이를 둘로 나눠 소개할 수 있는데, 먼저 큰 흐름 가운데 있는 이야기는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장면입니다. 그 말씀 중에는 영생하는 샘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과 관련된 주제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한 가지 숨겨진 또 다른 주제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시는 중에 나타납니다. 그 내용의 중간 부분에 배고프지 않는 것과 관련된 주제가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목마르지 않음에 대한 주제, 또 하나는 배고프지 않음에 대한 주제가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늘 본문의 앞부분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4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요한복음 4:1)
요한복음 4장 1절은 세 가지 정보를 알려 줍니다. 먼저, ‘예수께 나와 세례 받는 사람의 수가 요한에게 나와 세례 받는 사람보다 많다’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인기와 인지도가 훨씬 높아졌고, 당대 위대한 인물로 칭송되던 세례 요한보다 커졌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져 가고 있음을 뜻합니다.
두 번째로는, ‘이 사실을 바리새인들이 알았다’는 정보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과 적대적인 관계에 선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따르면, 예수께서 이미 성전에 올라가 성전을 뒤엎으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좋아할 리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처치하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예수님의 명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즉 이 본문은 예수께 적대적인 세력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는 셈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예수께서도 그 사실을 아셨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주께서 아신지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까? 자신의 명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셨고, 동시에 예수님을 견제하는 바리새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아셨다는 뜻입니다.
<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해 갈릴리로 가시는 결정을 내리십니다. >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려는 결정을 내리십니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한복음 4:3~4)
예수님이 갈릴리로 올라가시는데, 사마리아 땅으로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땅을 통과해 가시겠다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마리아를 경유해 갈릴리로 향한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 사마리아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이었고,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갈릴리로 갈 때는 요단강을 건너 베레아 지방을 통과해 올라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해야겠다고 결정하십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는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사마리아를 통과하면 갈릴리로 가는 길이 직선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직선으로 올라간다면, 즉 최단거리로 가려 한다면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서 갈릴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뜻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해 가시겠다는 결단을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의도를 가지고 사마리아로 들어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셨을 때는 정오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셨고, 야곱의 우물 곁에 잠시 앉으셨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물을 긷기 위해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었고, 물을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첫 번째 대화입니다.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한복음 4:6~7 중)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살짝 다른 주제가 엿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요한복음 4:8)
제자들은 이미 마을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무엇을 가지러 갔습니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먹을 것을 구하려고 제자들이 마을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두 가지 주제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 즉 목마름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또 하나의 대화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 즉 배고픔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이 두 주제가 이제부터 역동적으로 뒤섞여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꽈배기처럼 말입니다. 물론 긴 주제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나타나지만, 그 사이사이에 또 다른 주제가 나타난다는 것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만나는 장면이 길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당시의 정황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 땅을 밟은 것도 이례적이었고,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 역시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랍비가 사마리아의 낯선 여인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상황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랍비와 같은 모습으로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고 계시는데,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그때 예수님은 “너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도리어 그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하며, 또 다른 질문과 말씀을 하십니다. 특히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에는 아주 값진, 멋진 말씀들이 나타납니다. 그중 14절이 우리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4)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여인은 예수님이 랍비를 넘어서는 분이시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선지자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께 예배에 관한 질문까지 던집니다. 이때 예수님이 예배와 관련된 주옥같은 말씀을 남기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3~24)
이렇게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러는 중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씀이 이어집니다. 27절입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요한복음 4:27)
그리고 또 다른 주제의 주인공인 제자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들고 예수께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당연히 제자들은 그 장면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예수님에게 묻지 못했습니다. 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막지 못했을까요?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당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너무 진지해서 감히 그 대화를 끊을 수 없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경의 흐름으로 본다면, 아마 그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아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중간에서 그 대화를 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제자들의 행적과 여인의 선포가 사마리아를 변화시킵니다. >
동시에 두 번째 이유, 즉 또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을 곰곰이 묵상하다 보면, 두 번째 이유도 꽤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들은 지금 어디를 다녀오는 중입니까? 그들은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내려갔습니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내려갔습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면, 제자들이 사람들을 만났겠습니까, 안 만났겠습니까? 당연히 사람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까요? 먹을 것을 구하고 사려는 사람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누구겠습니까? 아마 주로 여성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대인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역시 사마리아 마을로 들어가서 집집을 돌아다니며 여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야 음식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미 그들은 마을로 내려가 사마리아 여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을 것입니다. 왜 그들에게 음식이 필요한지도 알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음식을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장면이 제자들 자신에게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를 막을 수도, 막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마을로 보내신 이유가 단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충분히 그 내용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오셔서 제자들을 마을로 내려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먹을 것을 구해 오라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먹을거리는 핑계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로 하여금 사마리아인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접촉하도록 유도하신 것입니다. 그 길을 열고자 하셨습니다. 유대인이자 남성이었던 제자들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께서 잡수실 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마리아인과 접촉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반나절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곳저곳을 방문합니다. 음식을 사겠다며 사마리아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전에 없던 일입니다. 어떤 유대인이 사마리아 마을에 들어온다는 말입니까? 어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말을 트고 소통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야말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졌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도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마 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실까?’ ‘예수님이 어떤 분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마 예수께 나가 그분을 만날 만한 용기는 없었을 것입니다. 마을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 역시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차례 제자들이 마을을 돌고, 예수께로 돌아갔습니다.
한편 제자들이 돌아왔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차마 말을 끊지 못했는데,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물동이를 내버려 둔 채 마을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만났다고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감격, 메시아를 만난 그 감격이 여인으로 하여금 담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이끌고 오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마을 사람들이 제자들을 먼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쉽게 이 여인을 따라 예수께 나올 수 있었을까? 마을 사람들을 먼저 만났던 제자들의 행적과 사마리아 여인의 선포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예수께로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 복음의 결실은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대로 맺힙니다. >
사마리아 여인이 마을로 들어간 사이, 또 다른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바로 먹는 이야기, 그리고 제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마을에서 가져온 음식을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져온 음식에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요한복음 4:31~32)
예수님이 배고프다고 말씀하셨기에 제자들이 음식을 가지러 마을에 가지 않았습니까? 이제 음식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정작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게는 먹을 양식이 따로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사이 어떤 음식이 생겼을까? 예수님이 무엇으로 배를 채우셨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수군거립니다.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요한복음 4:33)
‘누군가 음식을 드렸나 보다. 아마 사마리아 여인이 드렸나 보다.’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수군거리고 있을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4:34)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나는 지금 배가 부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먹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매우 기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내 마음이 기쁨으로 넘치기 때문에 먹을 필요가 없다. 나는 먹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즉 “나의 양식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순간에 나는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살아 있는 동기로 충만하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어 왜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제자들과 함께 오셨는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이때 추수와 관련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온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밭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익어 거둘 때가 되었다.” 누구를 향해 주시는 말씀입니까? 사마리아를 보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먼 훗날 언젠가 추수할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보아라, 이미 모든 것이 익어 추수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추수하는 자는 품삯을 받으며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둬들인다. 그러면 씨 뿌리는 사람과 추수하는 사람이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심고, 한 사람은 거둔다.” 이렇게 추수와 관련된 말씀을 전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다음과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심고, 누군가는 거둔다. 너희는 지금 거두는 사람이다. 이미 거두고 있지 않느냐? 너희가 이미 사마리아 땅으로 내려가 많은 제자를 삼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보내서,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였다. 수고는 남들이 하였는데, 너희는 그들의 수고의 결실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4:38, 새번역)
이 말씀의 의미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말씀 그대로 제자들은 직접 먹을 것을 구해 왔습니다. 자신들이 수고하지 않은 열매를 가져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음식을 얻어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니 수고하지 않았습니다. 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바로 그 내용을 주님께서 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미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설명했고,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파했고, 예수님이 여기 계시다는 사실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씨를 뿌리고 오는 듯했는데, 이미 그들은 거두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증거가 이미 결실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심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심어 놨던 복음의 열매가 너희들을 통해서 거두어지고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요한복음 4장 3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요한복음 4:39)
<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성령을 통해 영원한 양식을 얻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는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배고프지 않는 양식입니다. 하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어진 말씀이었고, 하나는 제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생명력을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근원이자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서로 다른 대상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 물은 어떤 물일까요? 요한복음 7장 38절 이후의 말씀을 보면, 그 말씀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른 바와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뒤 이어 말씀하시기를, 39절에 “이를 믿는 자는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그것은 바로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실 때도 분명히 전하셨던 내용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하나가 있었지요. 제자들에게 주시는 배고프지 않는 양식입니다. 그 양식은 어떤 것입니까? 제자들이 누리는 양식이었습니다. 초신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누릴 영원한 양식, 생명의 근원, 예수님이 느끼고, 예수께서 가지고 계신 생명의 양식,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하게 이루는 행위, 그 자체가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백성들에게는, 제자들에게는 영원한 양식이 있습니다. 그 양식은 바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온전하게 이루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양식을 원합니다. 배고프지 않는 양식을 구합니다. 많은 재산을 가지면 배고프지 않은 양식을 구할 수 있습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배고프지 않은 양식을 영원히 가질 수 있습니까? 주님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요 그것을 온전하게 이루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배고프지 않는 비결을 말씀드립니다. 나의 뜻을 행하고 나의 이념과 나의 비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 주님의 뜻을 성취하고자 할 때, 비로소 솟아나는 생명의 근원이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힘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품고 이 땅을 넉넉히 살아낼 수 있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